12화
며칠 후
“시로, 네기 말이야... 괜찮은 거야?”
수업이 다 끝나고 각자 부활의 들어가기 직전의 시간, 이리야는 시로를 불러서 현재 네기의 상태를 물었다. 요 며칠 새에 네기가 많이 지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며칠 전 그 사건의 관련자이기도 하기에 더욱 궁금해 하였다.
“글쎄... 어느 부분을 묻는지는 모르겠지만 몸놀림과 지구력에 있어서는 발전이 많았어... 하지만...”
“하지만?”
시로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을 계속 이었다.
“정신적으로는 약간 불안해... 뭔가 쫓기고 있다는 느낌? 아무리 그런 일을 겪었다지만, 그런 것 치고 너무 조급해 하고 있어...”
시로의 염려에 이리야는 활짝 웃으며 말한다.
“그럼 잠시 기분전환이라도 하지 그래? 마호라 학원 내에는 의외로 숨겨진 명소도 많으니까 조금 쉬면 네기의 조급함도 조금은 풀리겠지?”
“그랬으면 좋겠지만...”
말끝을 흐리던 시로는 무엇인가 생각이 난듯 이리야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참, 누...”
“이리야라고 해!”
이리야의 살벌한 표정에 시로는 곧바로 말을 수정하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이리야, 저번에 학생부를 보니까 에미야 마리라는 이름이 있던데...”
시로가 말끝을 흐리자 이리야는 화들짝 놀랬다. 이전에 넘어갔기에 괜찮은 줄 알았던 탓이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닌 듯싶은데... 고아 출신도 아닌 것 같고...”
고아라면 시로가 단박에 알아차렸을 터이다. 고아는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고아 특유의 느낌이 나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사진에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마리는 그런 느낌이 오지 않았다. 그보다 애초에 인간이라는 느낌 자체가 오지 않았다.
“시... 실은...”
이리야는 성배에 들어간 이후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성배를 정화하기위해 성배 안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오염의 근원인 앙그라 마이뉴와 만나 함께 나오던 도중 이 세계로 떨어지게 되어 이곳에서 생활하게 된 이야기까지.
“하아... 누ㄴ...”
“이리야!”
“이리야도 난감하다니까... 앙그라 마이뉴를 동생으로 삼다니...”
시로는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꼈다. 앙그라 마이뉴는 모든 영령의 천적... 아무리 수육되고 정화되어 침식의 능력이 사라졌다지만 그래도 (전직)영령으로서 껄끄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시로, 차별하면 안돼!”
“네~네~”
시로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이리야에게서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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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시로형, 방금 뭐라고...?”
네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나 시로에게서 나온 대답은 냉정했다.
“오늘은 훈련 없어.”
“그런...”
네기는 난감했다. 다음 보름까지 앞으로 약 11일 남짓. 그때까지 충분히 단련하지 않으면 에반젤린에게 이길 수 없다. 그런데 오늘 훈련이 없다니...
“무슨 일이라도...”
“그건 말이지... 네가 너무 조급해하고 있어서야.”
개인사정 탓이라 생각했던 네기로서는 정말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래서일까 납득이 안 된 네기는 불만이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
“어째서...”
“말했지, 네가 너무 조급해 하고 있다고... 조급한 마음으로 훈련에 임해봤자 효율도 나쁘고 몸만 상할 뿐이야.”
“하지만...”
“안돼, 어쨌든 오늘은 훈련금지. 참 내일은 토요일이라 수업이 없지?”
“네.”
갑작스런 시로의 질문에 얼떨결에 대답한 네기. 네기의 대답에 시로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이었다.
“네기, 오늘 방에 가서 짐을 챙겨놔 내일은 야외 합숙이니까.”
“네?”
갑작스럽게 내일의 일정이 결정되어버린 네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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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네기는 시로에 의해 아침 일찍부터 마호라학원 부근에 있는 산에 올라야 했다. 집에 나오기 직전에 코노카와 아스나도 따라오려 했으나 시로가 네기를 데리고 올라가려한 코스는 프로라도 힘든 난코스, 보통사람이 따라올 수 있을 리 없었다. 가까스로 따라오겠다는 두 사람을 설득, 예정보다 약 1시간가량 늦게 산을 오르게 되었다.
“이... 이거 좀 힘드네요.”
산을 오르는 네기는 땀을 무척이나 많이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시로와 네기가 오르고 있는 코스의 각도는 대략 70도 내외... 한마디로 경사만 약간 져 있다 뿐이지 거의 절벽이나 다름없었다.
땀을 비오듯이 흘리고 있는 네기와는 달리 시로는 무척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산책하듯이 오르고 있었다. 더구나 네기 몫의 짐까지 지고서 말이다.
“네기 늦어.”
“형이 너무 빠른거에요.”
네기는 약간 투덜거리며 계속 올랐다. 실제로 네기의 속도가 그렇게 느린 것은 아니었으나 이런 경사를 가벼운 걸음으로 걸어 올라가는 시로에게 있어선 네기의 속도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하아... 하는 수 없지... 먼저 올라갈 테니 지팡이를 타고 올라오던지 알아서 올라와. 나는 야영준비를 할 테니까.”
시로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산을 올라가 버렸다. 그것도 아까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빠른 속도로. 혼자 남겨진 네기는 잠깐 숨을 고르더니 페이스를 올리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것도 다 훈련이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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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기가 정상에 도착한 것은 시로가 짐을 다 풀고 텐트까지 다 치고 난 후였다. 네기는 산길(사실상 절벽)을 올라오는데 힘을 너무 소모했는지 올라오자마자 바닥에 쓰러진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
“허약하구만...”
시로는 쓰러져있는 네기를 보며 혀를 찼다. 보통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런 험난한 코스를 1시간 만에 주파한 네기가 굉장했을 것이나 네기의 아버지를 아는(단 한번 같이 싸웠을 뿐이지만.) 시로로서는 이정도에 지친 네기가 허약해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뭐... 일단 점심준비라도 할까?”
시로는 쓰러져있는 네기를 텐트 안으로 밀어 넣은 후 물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 얼마 안 있어 무척이나 물이 깨끗한 계곡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바닥까지 보일만큼 맑은 계곡물에는 곤들 메기를 포함, 수많은 물고기가 서식하고 있었다.
“자... 그럼 낚시를 시작해 볼까?”
시로는 물속을 노니는 물고기들을 주시하며 단검을 투영했다. 본래는 낚시대를 투영해야 되었겠지만 산천어들은 대체로 경계심이 많은 터라 낚시로 잡으려면 상당한 기술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니 이런 편법 쪽이 산천어를 잡기에 딱 적당했다.(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일단 하나!”
시로가 단검을 던졌다. 단검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며 물고기를 꿰뚫었다.
“계속!”
시로는 단검을 계속 던졌다. 시로가 던진 단검은 단 하나의 빗나감도 없이 모두 물고기를 꿰뚫었다.
“응?”
연결된 끈으로 단검을 회수한 시로는 하류 쪽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하류 쪽을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저 아이는?”
시로는 잡은 물고기를 나무위에 매달아 놓고 하류 쪽으로 걸어갔다. 하류 쪽에 있던 인물도 이쪽의 기척을 느꼈는지 올라오고 있었다. 시로는 이마를 감싸며 올라오고 있는 인영에게 말했다.
“이것 참... 우연이라 해야하나?”
“그러게 말이요. 에미야 선생”
하류에 있던 사람은 네기와 시로의 반 학생중 한명인 나가세 카에데. 더불어 3-A반의 바보레인저 중 한명이었다.
“나가세양, 이곳에는 무슨 일이지요?”
“주말수행이라오.”
너무나도 고리타분한 질문. 그러나 카에데는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는 에미야 선생은 무슨 일이오?”
“수행중 기분 전환 이랄까나... 네기가 너무 조급해하고 있는듯해서 기분전환이나 시켜줄까 해서 말이지...”
“호오... 네기도령이 수행 중이오?”
시로의 말에 카에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매우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로는 말실수를 한 듯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은 어쩔 수 없었다.
“뭐... 그런 거지... 그런데 복장으로 보아 너도 수행 중인 것 같은데...? 뭐 그런 복장과 도구로 ‘닌자가 아니라오.’ 라는 고리타분한 옛날 개그를 하는 건 아니겠지?”
시로의 지적에 카에데는 다시 웃는 표정으로 돌아와 땀을 흘리며 당황해 했다. 확실히 이런 복장으로 닌자가 아니라 하는 건 닌자를 아예 모르거나 엄청 둔한사람에게나 먹혀들만한 이야기였다.
“글쎄올시다...”
카에데의 답변회피에 시로는 의미심장한 눈길을 보냈으나 선생이 학생을 놀리는 것도 할 짓이 못되었기에 그만 두었다.
“뭐 상관없겠지... 그런데 나가세양은 어디에서 야영을 할 생각이지...?”
“이미 자리를 잡아 놨소이다. 저 아래에 말이오.”
카에데는 계곡 하류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네기와 나는 저기 상류 쪽에 자리를 잡았어. 놀러오려면 오든지.”
시로의 말에 카에데는 잠시 고민하더니 시로에게 물었다.
“아예 그쪽으로 옮겨도 상관없소이까?”
“뭐 별로 상관은 없을 듯 하다만...”
“그럼 나중에 뵙지요.”
카에데는 매우 즐거운 표정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하류로 내려갔다. 시로는 나무에 걸어둔 물고기를 이고 네기가 기다리고 있는 텐트를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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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가 물고기를 이고 야영지로 돌아오자 그런 시로를 맞이하는 건 어느새 일어나 기초체력 단련을 하고 있는 네기였다.
“아, 왔어요?”
네기는 시로를 보자 하고있던 단련을 그만두고 시로 앞으로 다가왔다.
“등에 이고 있는 건?”
“오늘 점심이지. 네기 저쪽 짐에서 냄비와 코펠 좀 꺼내오렴.”
시로의 부탁에 짐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네기, 시로는 식칼을 투영해 잡아온 물고기를 단번에 손질했다. 우선 비늘을 벗기고 내장과 뼈를 제거한 후, 머리를 잘라 따로 두었다. 그다음 손질이 끝나 포로 만든 생선은 소금에 절여 나무에 걸어두고 점심 때 쓸 생선은 간을 해 한쪽 구석에 두었다.
“형, 여기”
냄비와 코펠을 건네받은 시로는 냄비에 간을 한 생선과 함께 산나물을 잔뜩 넣고, 코펠에는 쌀을 2인분 약간 넘게 담았다.
“네기, 물을 생성해내는 마법 알지? 그걸로 여기에 물 좀 채워줘.”
시로는 네기에게 냄비와 코펠에 물을 담아줄 것을 부탁하고 불을 지피기 위해 장작을 준비했다.
잠시 후, 네기와 시로의 앞에는 정말 그럴싸한 점심식사가 차려졌다.
“시로형, 대단하네요.”
“별거 아니야... 한 10년 정도 배고픈 호랑이에게 시달리면 되는 일이니까 말이야...”
“그게 무슨...?”
네기는 물어보려했으나 공포에 질려있는 듯한 시로의 표정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대체 옛날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여~ 시로선생, 네기도령 지금 점심을 먹고 있는 중이오? 먹으려던 차이면 나도 좀 끼워 주시구려.”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로는 목소리의 주인이 방금 계곡쪽에서 만난 카에데 임을 금방 눈치챘다.
“카에데양, 여기는 어쩐 일로?”
“그저 같이 점심을 먹을까 해서 왔다네.”
시로의 물음에 카에데는 평소의 웃는표정을 보이며 대답했다.
“그럼 등에 지고 있는 산더미 같은 짐들은 뭐지?”
“아하하하...”
시로의 지적에 카에데는 그저 웃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