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다음날 시로는 네기를 방으로 데려다 준 후 곧장 학원장실로 직행했다.
학원장실에서는 학원장인 코노에몬이 차를 마시며 무수히 쌓인 서류를 결제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에미야 선생?”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지금 바쁜데...”
학원장은 그렇게 말했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도리어 여유가 넘쳐보였다. 시로는 학원장의 말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학원 결계에 관련된 이야기인데도 말입니까?”
시로의 말에 학원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시로가 말하고자하는 이야기의 심각성을 깨달은 탓이었다.
“어제 상급마물인 바포메트와 조우했습니다.”
시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학원장의 눈이 크게 뜨였다. 바포메트... 전문적인 장비를 갖춘 중급이상의 마법사가 10명 이상 모여야 퇴치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마물 중 하나... 그런 존재와 조우했다는 건 큰 사건이었다.
“언제, 어디서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되었나!”
“어제 중등부 기숙사 근처 산에서입니다. 다행이도 퇴치할 수 있었지만 네기와 카에데가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리 심하지 않은 부상이라 약간의 요양으로 회복될 정도기는 하지만요.”
사실 퇴치정도가 아닌 소멸이었지만 시로는 굳이 축소시켜 학원장에게 말했다. 학원장에게 사실대로 말했다가는 꽤나 굴릴 거라는 예감이 든 탓이었다. 뭐 혼자서 바포메트를 퇴치한 것도 엄청난 사실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시로의 말에 코노에몬은 경악을 금치 못한 채 말했다.
“그 마물을 혼자서?!”
“혼자서는 아닙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상당한 타격을 입은 후였지요. 그보다 중요한건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시로의 말에 정신을 차린 코노에몬은 다시 말을 이었다.
“즉 자네가 하고 싶은 말은...”
“학원 결계에 이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아니면 구멍이라도 생긴듯 합니다.”
시로의 말에 코노에몬은 무척이나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토우코선생, 지금당장 결계관리를 맡은 마법사들에게 연락을 해서 결계상태를 체크하게 그리고 다른 마법선생들에게 연락해 그 현장을 조사해주게.”
“네”
토우코선생은 대답과 함께 모습을 감추었다. 토우코 선생이 사라지자 학원장은 양손으로 턱을 괴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보게... 뒤는 우리가 처리할 테니...”
“그럼...”
시로가 학원장실을 나서자 학원장은 이마의 골이 한층 깊어졌다.
“지난번에 있었던 세계수 발광 탓인가?”
학원장의 눈은 창밖의 세계수를 향하고 있었다.
오늘따라 세계수가 더욱 거대하게 느껴지는 학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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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네기와 시로는 일상으로 복귀했다. 카에데와 네기가 붕대 투성이인 채로 등교하는데 대해 반 전체가 술렁였으나, 시로의 설명에 의해 대부분 수긍하고 원래자리로 돌아갔다. 다만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몇이 보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시로는 다친 네기가 무리하지 않도록 교무실로 보내고 대신 출석을 불렀다.
“응...? 에반젤린과 차차마루는?”
시로의 물음에 뒤늦게 반장이 손을 들며 말했다.
“아... 에반젤린은 감기몸살에 걸려 못 온다 하더군요... 차차마루는 에반젤린의 간호를 한다고...”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시로는 약간 의구심이 들기는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아프다는데 어찌할까? 요주인물이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마구대할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혹시 모르니 문병이라도 가봐야겠군...’
시로는 재빨리 전달사항만 전달해 H.R을 마치고 곧장 에반젤린의 집으로 향했다. 다행이도랄까? 오늘은 처리할 일도 수업도 없는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에반젤린의 집에 병문안을 갈 수 있었다.
“계십니까?”
시로는 문 옆에 있는 종을 울리며 외쳤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확실히 인기척은 있는데...”
시로는 혹시나 싶어서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 시로는 조심스럽게 안을 살펴보았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거실 가득한 팬시용품... 입구에서부터 귀여운 인형들이 가득 넘쳐나고 있었다. 딱 보아도 귀여운 것을 무지 좋아하는 철없는 부자 집 아가씨의 집 같았다.
“이거... 왠지 상상했던 거랑은 무지 다르군...”
이곳에 옴과 동시에 학원장과 네기에게서 들은 에반젤린의 이미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집이었다.
‘뭐 그 하얀 공주님도 처음 봤을 때는 소문과 엄청나게 차이가 났었으니...’
시로는 갑자기 떠오른 옛 생각에 웃음을 입가에 띄웠다. 그 순간 계단 쪽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내려온 사람은(애초에 사람이 아니지만.) 차차마루. 차차마루는 시로를 보자 무척이나 정중히 인사했다.
“에미야 선생님... 무슨 일로?”
"아... 에반젤린이 아프다고 해서 말이야. 병문안 차 왔달까?“
“그럼 안으로...”
차차마루는 시로를 안으로 안내했다. 안으로라고 해봤자 거실까지 였지만 말이다. 차차마루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 시로를 앉게 한 후 차를 타러 부엌으로 향했다. 위험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변형시킨 룰 브레이커를 투영해 놓았다.
저벅저벅
갑자기 계단 위쪽에서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무척이나 가벼운 발소리...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집의 주인이 내려오는 소리라는 것을.
“차차마루-”
차차마루를 찾는 에반젤린의 얼굴에는 열 때문인지 홍조가 가득했다. 더불어 머리에는 얼음주머니를 이고 비틀거리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응?”
갑자기 느껴지는 주시감에 에반젤린은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에반젤린의 눈에는 새하얀 백발을 가진 사내가 비춰졌다.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거지 에미야 선생?”
“단순한 병문안”
에반젤린은 시로를 보자 무척이나 기분이 나빠진 듯 적의까지 내비쳤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한두번 겪어본 시로가 아니었기에 가볍게 흘려 넘겼다. 그것이 기분이 나쁜지 에반젤린은 더욱 적대감을 내비쳤다.
“마법사의 끄나풀이 병문안을 와봤자 기분이 나쁠 뿐이야.”
“하아... 진심으로 제자가 걱정 되서 온 건데... 섭섭하군.”
시로는 눈물을 닦는 모션까지 취해가며 말했다. 능글거리는 시로의 행동이 못마땅한지 에반젤린은 품속에서 시약을 꺼내며 마법을 준비했다. 그러나 에반젤린은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끼며 계단에서 쓰러졌다.
“으앗!”
시로는 전력을 다해 쓰러지는 에반젤린을 받았다. 시로는 붉게 물든 에반젤린에 이마에 손을 올렸다. 상당히 심한 열... 시로는 곧바로 계단을 올라가 에반젤린의 방으로 생각되는 곳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혔다.
“마스터!”
뒤늦게 들어온 차차마루가 에반젤린의 상태를 살폈다. 어느정도 에반젤린의 상세를 살피던 차차마루는 시로에게 말했다.
“마스터의 상세가 심해졌군요. 에미야 선생님 대학부에 가서 아는 선생님께 약을 받아올 테니 잠시만 돌봐 주시길...”
“그러지”
시로의 승낙이 떨어지자 차차마루는 조용히 방을 나섰다.
“자... 그럼 일단 응급처치부터 할까?”
시로는 자그마한 마력석을 몇개 투영해 회복의 룬과 활력의 룬을 새겼다. 그런 후 침대 끄트머리에 달아 일종의 마술적인 진이 형성되도록 했다. 회복의 룬을 통한 치유의 마술진... 그렇게 큰 효과는 나타나지 않겠지만 이정도면 상태를 호전시키는 데는 충분할 것이였다.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반시간도 지나니 열이 조금 내려가고 혈색이 조금 나아졌다. 잠시 후 에반젤린은 정신이 드는지 눈을 가늘게 떴다.
“차차...”
에반젤린은 차차마루를 찼으며 고개를 돌리다가 시로를 보자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아까와 같이 적대감을 풀풀 휘날리며 말했다.
“당신이 왜 여기있는거지?”
“간병”
아까와 같이 적대감이 가득한 발언에 시로는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 쓴웃음이 마음에 안 드는지 에반젤린은 더욱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후 에반젤린은 본래의 목적을 상기시키며 시로에게 물었다.
“차차마루는?”
“대학부에 약을 가지러갔어. 그래서 그동안 내가 간병을 하는 거고.”
“차차마루!!!”
시로의 설명에 에반젤린은 애꿎은 차차마루를 원망했다. 그것도 잠시 에반젤린은 이내 몸을 추스르며 잠을 청하려 했다. 그러나 그동안 계속 잠만 잔 터라 잠도 오지 않았다.
“이봐 에미야선생.”
“‘님’자는 안 붙여?”
“어차피 그런거 신경 쓰는 타입도 아니잖아. 그보다 당신 정체가 뭐야?”
“무슨 말인지...?”
시로의 말에 에반젤린은 화를 내며 말을 이었다.
“시치미 때지마! 당신의 마력으로 볼 때 당신은 절대로 일반인은 아니야. 일반인이라면 이토록 정제된 마력을 지닐 수 없으니까... 하지만 마법사도 아니야. 당신에게서는 마법사 특유에 느낌이 나지가 않아. 게다가 일본에는 물론 전 세계, 심지어는 마법사계에까지도 당신에 대한 정보를 찾았지만 아주 약간의 정보조차 없더군... 마치 없었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듯 말이야... 도대체 당신 정체가 뭐야?”
에반젤린의 말이 끝나자 시로는 약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언제나 와 같은 마이 페이스로 돌아와 말했다.
“우연히 이쪽 세계로 떨어진 궁병이랄까?”
“뭐?”
시로의 말도 안 되는 대답에 에반젤은 인상을 구겼다.
“이봐, 그게 무슨 뜻이야!!!!”
시로의 알지 못할 대답에 에반젤린은 화가 났는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시로는 그런 에반젤린을 무시하며 되려 질문했다.
“뭐 그건 넘어가고 에반젤린, 너는 어째서 네기의 피를 노리는 거지?”
“내가 왜 그걸 너한테 말해야 하지?”
에반젤린은 품속에서 시약을 꺼내며 말했다.
“그것도 그렇군...”
“에?”
좀 더 질문을 할 줄 알았던 에반젤린으로서는 좀 맥 빠지는 반응 이였다. 하지만 시로도 패미니스트. 여성을 곤란하게 하는 일을 잘 하지 않는다. 그걸 모르는 에반젤린은 시로가 무슨 꿍꿍인지 계속 고민을 해야 했다.
“마스터, 약을 가져왔습니다.”
에반젤린의 방문이 열리며 차차마루가 들어왔다. 시로는 차차마루가 오자 자리에서 일어서며 에반젤린에게 말했다.
“차차마루도 왔겠다. 그럼 나는 이만 가지. 빨리 나으라고”
“다신 오지마!”
시로는 에반젤린의 반응에 싱글거리며 방을 나섰다.
“마스터 괜찮으신지?”
“괜찮아!”
에반젤린은 그렇게 말하고는 도로 이불을 뒤집어썼다. 차차마루는 에반젤린의 그런 반응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어째야 할지를 몰라 한참동안 당황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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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도 넘은 심야...
에반젤린은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에서 달을 보았다. 아직 차지 않은 달을 보며 그녀는 옛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순간 ‘그’와 동조되는 그의 얼굴...
“갑자기 왜...”
에반젤린은 왠지 기분이 나쁜듯 하면서도 그렇게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가 않았다. 왜 일까? 잠시 동안 여러 고민에 빠졌던 에반젤린은 귀찮은지 다시 잠을 청하려했다. 그 순간 침대 끄트머리에 달린 돌들을 발견했다. 특이하게도 마력을 품고 있는 이 돌에는 각각 회복의 룬과 활력의 룬이 새겨져있었다. 분명 오늘 자신의 집을 방문한 사람은 단 한명뿐... 에반젤린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왠지 심통이났다.
“아... 왠지 ‘그’녀석을 닮았어... 쓸데없는데서 친절한 점이...”
그날밤 에반젤린은 복잡 미묘한 기분으로 잠들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