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어느새 취침시간이 다 되자 시로와 네기는 학생들을 지도했다. 대부분 이미 골아떨어진 탓인지 학생지도는 무척이나 무난했다. 학생지도 도중 카에데가 무엇인가를 눈치 챈 듯한 눈빛을 보냈으나 그 이상은 없었다. 학생지도가 끝나고 네기와 시로, 아스나, 길가메쉬, 히스리는 세츠나의 정체를 묻기 위해 현관 쪽으로 향했다.
마침 세츠나는 결계설치를 끝내고 현관에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 시로들은 세츠나가 앉은 탁자에 둘러앉았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
세츠나는 시로들이 올 것을 예상했는지 무척이나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시로는 정문위에 붙어있는 종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건?”
“식신을 퇴치하는 부적입니다. 아까와 같은 일을 막기 위해서요.”
“음양도도 사용할 수 있나?”
“보조정도는...”
“서양식으로 따지자면 마검사인 셈이군... 어쨌든 잡답은 이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시로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말을 하려던 세츠나는 아스나를 보고는 멈칫했다. 아스나는 그런 세츠나를 향해 말했다.
“뭐 이미 발을 뺄 수 없을 정도로 관계된 터라 말이지...”
아스나의 말에 세츠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선생님들이 궁금하신 건 제 정체겠지요? 저는 코노카아가씨의 호위인 신명류의 검사입니다.”
“신명류라면...”
시로는 이곳 교토에 오기 전에 학원장인 코노에 코노에몬에게서 관서에서 주의해야할 것들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신명류... 도성을 지키면서 마물을 멸하는 막강한 전투 집단... 그들의 전투능력은 비공식의 세계에서도 상위클레스로 쳐줄 만큼 엄청나다고 학원장이 설명했었다. 그리고...
“신명류라면 관서주술협회와 관계가 깊지 않나?”
그랬다. 신명류는 도성방어와 요괴퇴치를 위한 탓인지 주술사와도 연관이 깊었다. 요즘 들어서는 드물지만 과거에는 신명류의 검사와 주술사가 함께 행동하는 경우도 빈번했다고 하니 그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의 소망은 코노카 아가씨를 지키는 것. 그러기 위해 서쪽에서 나와 동쪽으로 붙은 저는 배신자인 셈이지요...”
세츠나의 고백에 한동안 무거운 분위기가 지속 되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세츠나는 무겁게 닫고 있던 입을 다시 열었다.
“그런데 시로선생님,네기선생님... 정말로 우수한 마법사 맞습니까? 우수한 마법사라 길래 잘 대처해주실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대응이 어설퍼서인지 상대도 마음놓고 일을 벌이는 것 같아요...”
“앗- 죄송해요! 아직 미숙해서...”
네기는 약간 울상을 지으며 세츠나에게 사과했다. 시로는 팔짱을 끼며 자신의 대응이 늦은 이유를 생각했다.
“뭐 네기야 실력이 모자라다기 보다는 경험부족이지... 나 같은 경우에는 마법사라하기에도 애매하고 말이지...”
확실히 시로는 마술사라기보다는 마술사용자... 마술에는 상당히 약한 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분석과 감지에 특화된 마력회로가 부적의 마력을 감지 못했다는 것은 조금 이상하기는 하나 지금은 잠시 넘겨두자.
“그럼 저기 두분은?”
세츠나는 길가메쉬와 히스리를 가리키며 물었다.
“길가메쉬는 마법사도 아닐뿐더러 전투에 특화된 녀석이고 히스리양도 메카인 탓인지 마력감지는 쥐약이지...”
사실 히스리양에게는 다른 자매기에게는 없는 특수한 마력감지센서가 있지만 마력도 부적의 마력도 감지 못한 상태에서 굳이 언급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가요... 흐음...”
세츠나는 걱정이 되는 듯 침음성을 흘렸다. 상대의 공격이나 방해공작을 미리 감지하지 못한 다는 것은 그만큼 불리한 일이니 당연한 일이였다.
“일단 경계를 철저히 하는수 밖에 없군요...”
세츠나의 말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로는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나와 네기는 주위순찰, 아스나와 세츠나는 내부를 맡아줘. 그리고 히스리와 길가메쉬는 외각경계를...”
모두는 시로의 말대로 자신이 맡은 자리로 향하려했다. 그때 시로가 말을 이었다.
“참, 히스리양.길가메쉬. 두 사람은 적을 발견하더라도 숙소를 벗어나면서 까지 쫓지는 마. 숙소에 있는 학생들도 지켜야 하니까.”
“알았어.”
“알겠습니다. 미스터.”
둘은 대답을 하고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각자의 위치로 향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
현관의 자동문이 열리며 빨랫감을 가득 실은 수레를 밀며 종업원이 한명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종업원으로 변장한 사람이 한명 들어왔다.
“시키가미를 퇴치하는 결계인가...? 그래봤자 나에게는 무용지물.”
종업원으로 변장한 사람의 주력을 못 견딘 탓인지 부적은 힘없이 타올랐다.
“자... 그럼 코노카아가씨를 납치해 볼까나?”
불길한 웃음과 함께 그녀는 수레를 밀며 유유히 안으로 향했다.
코노카의 옆을 지키고 있던 아스나는 갑자기 느껴지는 기척에 눈을 떴다. 그리고 인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흐음....”
인기척의 정체는 잠에서 깬 코노카였다.
“아스나 안자고 뭐해?”
“아, 미안 코노카. 나 때문에 깼어?”
코노카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했다. 아스나는 그것을 제지하며 물었다.
“어딜 가는거야?”
“화장실...”
“빨리 갔다 와.”
생리현상마저 막을 수는 없는 터라 아스나는 코노카를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코노카는 무척이나 졸린지 반쯤 감긴 눈으로 더듬고 더듬어 화장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문을 연 순간...
“사람 있어요~”
무척이나 거대한 원숭이 옷을 입은 여자가 있었다. 코노카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려 했으나 원숭이 옷을 입은 여자가 재빨리 입을 막은 터라 소리는 입안에서 메아리 쳐야했다.
“우훗~ 목표확보”
원숭이 옷을 입은 여자는 기묘한 미소를 띄우며 화장실의 문을 닫았다.
코노카가 화장실에 가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데도 돌아오지 않자 아스나는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앞에는 유에가 문을 두들기며 괴로움에 몸부림 치고 있었다.
“빨리 나와 줘!!!”
“사람 있어요~”
“빨리!”
“사람 있어요~”
아무 고저차없이 똑같이 반복되는 멘트에 수상함을 느낀 아스나는 유에를 비키게 한 후 문을 열었다. 문을 열었을 때 아스나의 눈에 보이는 것은 화장실 변기에 붙어있는 기이한 문자가 쓰여진 종이... 아까 세츠나가 결계를 칠 때 사용한 부적이랑 비슷한 물건이었다.
“당했다!”
아스나는 곧장 세츠나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 시각.
네기와 시로는 숙소밖을 돌며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감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감시하고 있는 것은 시로뿐. 네기는 카모의 설명을 들으며 가계약 카드의 기능을 익히기 바빴다.
“응?”
“왜 그래요 시로형?”
갑작스런 시로의 행동에 네기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시로는 그 물음에 대답할 겨를도 없이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당했다!”
시로의 외침과 동시에 시로와 네기의 앞에 거대한 원숭이 인형이 내려앉았다. 그 원숭이 인형을 둘러쓰고 있는 여자는 시로와 네기에게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후훗... 별거 아니구만 서양마법사도.”
그리고는 대량의 식신을 뿌리고 그대로 코노카를 안아들고 도망쳤다.
“방해하지 마!”
시로는 모노호시자오를 투영하며 외쳤다. 그리고 발하는 사살비연... 시로의 엄청난 검기에 식신들은 단숨에 종이로 돌아가 버렸다.
“선생님!”
언제 나온건지 아스나와 세츠나가 뒤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코노카가 사라진 것을 눈치 챈 탓인 듯 했다. 시로와 네기는 아스나들과 합류한 뒤 그대로 원숭이 옷을 입은 여자를 쫓았다. 그렇게 많이 시간을 지체하지 않은 탓인지 금새 쫓을 수 있었다.
“거기 서라!!!”
시로는 어느새 투영했는지 모를 간장과 막야를 힘껏 던졌다. 그러나 코노카가 맞지 않게 조절한 탓인지 원숭이 여자는 간단히 간장과 막야를 피했다.
“칫!”
시로들은 원숭이 여자를 따라 역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역 입구에 붙여진 부적을 보았다.
“저 부적은... 사람을 쫓는 부적인가? 치밀한 계획이었군!”
시로들은 이를 갈며 아슬아슬하게 출발하려던 열차에 올라탔다. 그 순간 원숭이 여자는 불길한 미소를 짓고 시로들을 보며 말했다.
“우훗... 질긴 사람은 싫더라. 두 번째 부적 갑니다!”
원숭이 여자가 부적을 던지자마자 시로들이 있던 열차는 물로 가득 차 버렸다. 네기는 마법을 쓰려했으나 무영창주문을 사용할 수 없는 네기로서는 이런 물속에서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절체절명의 상황.
-신명류 오의 참공섬(斬空閃)
촤아아아아아-!
괴로워하던 세츠나는 갑자기 눈을 부릅뜨며 칼을 휘둘렀다. 세츠나가 칼을 휘두르자 검에서 생긴 엄청난 기류가 물과 함께 원숭이 여자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꺄악!”
물에 휩쓸린 원숭이여자는 시로들과 마찬가지로 물속에서 발버둥 치다가 다음 역에 도착하자 시로들과 함께 휩쓸려 역으로 나왔다. 세츠나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코노카를 데리고 있는 원숭이여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콜록콜록- 거기 원숭이여자... 짗궂은 장난은 그만하고 어서 코노카 아가씨를 돌려주시지!”
그러나 원숭이여자는 세츠나의 말에 가소롭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아- 하아- 제법이군요... 하지만 코노카 아가씨만큼은 돌려줄 수 없어요.”
“뭐? 코노카 아가씨?”
원숭이 여자의 말에 네기와 아스나는 순간 당황했다. 원숭이 여자는 그 틈을 타서 코노카를 안고 전력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시로들도 전력을 다해 원숭이 여자를 뒤쫓았다. 아까 원숭이 여자의 말에 의문을 품은 네기와 아스나는 달리면서 세츠나에게 물었다.
“세··· 세츠나 무슨 말인 거지요?”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던 거야? 왜 저 원숭이 여자가 코노카를 납치 하려고 하는거야?”
“그... 그건...”
“코노카가 관서주술협회의 고위 측과 꽤나 관련이 있다는 얘기겠지? 그것도 관서주술협회를 좌지우지 할 만큼의 고위인사와...”
세츠나가 대답을 머뭇거리자 시로가 대신 대답했다. 그 말에 네기와 아스나는 입을 딱 벌리며 외쳤다. 세츠나도 시로의 말에 적잖게 놀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에-?!”
“어... 어떻게 그걸?”
“많이 겪어본 일이니까”
시로는 대답할 시간도 아까웠는지 뒷사람들의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며 원숭이 여자를 쫓았다. 전력을 다한 덕인지 금세 원숭이 여자를 따라잡았다. 원숭이 여자는 계단 중간에서 시로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용케 여기까지 쫓아왔군요.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이 세 번째 부적으로 끝입니다!”
“누구마음대로!”
원숭이 여자는 부적을 던지며 주문을 외웠다.
“부적아부적아 우리를 도망치게 해다오. 세장 부적술 교토 대문자 화염!”
부적이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엄청난 불길이 치솟으며 시로들과 원숭이여자와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불길이 워낙에 센 탓인지 앞으로 돌진하던 세츠나는 열기에 밀려 뒤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호호호~ 웬만한 주술사라도 이 불길을 넘을 수 없을 터. 그럼 안녕~”
“젠장! 네기!!”
원숭이 여자의 말에 열이 받은 시로는 네기의 이름을 불렀다. 네기는 시로가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눈치 채고 주문을 영창했다.
“불어라 한줄기 바람! 풍화 풍진난무!!!”
주문이 완성됨과 동시에 네기의 지팡이에서 세찬 광풍이 몰아쳤다. 보통 마법사라면 이정도의 바람은 나오지 않을 터이나 바람속성과 친화력이 높은데다가 명색이 사우전드 마스터의 아들, 이정도의 위력이 나와 주지 않으면 곤란했다. 광풍은 뜨겁게 타오르는 불길을 가볍게 날려버리며 시로들이 지나갈 길을 텄다.
“놓치지 않겠어요. 코노카는 나의 학생이자 소중한 친구니까요!”
“우릴 건드린걸 후회하게 해주마!”
시로와 네기는 원숭이 여자를 노려보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