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어서 오라고!!"
시로는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는 에반젤린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 협박에 가까운 부탁에 의해 에반젤린과 함께 축제를 돌게 된 시로는 막 돌아온 이리야의 의해 엄청나게 추궁 받았던 탓이었다. 뭐, 에반젤린이 이리야와 잠시 쑥덕대더니 이리야가 무척이나 기쁜 얼굴을 하며 그냥 보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오는 본능적인 두려움은 어쩔 수 없었다.
"아~ 정말!"
천천히 걷고 있는 시로 모습에 약간 짜증이 났는지 시로에게 다가와 팔을 잡아당기며 서둘렀다. 아침까지만 해도 저런 모습으로 변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시로로서는 상당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요즘 길가메쉬가 하고 있는 미소녀 게임의 츤데레 캐릭터라는 느낌이랄까...
"얼른~!!"
시로는 에반젤린에게 끌려가면서 생각했다.
오늘은 왠지 평탄할 것 같지 않다고.
시로의 예감은 적중했다.
처음 에반젤린이 가기로 결정한 곳은 영화관... 그것도 찐득찐득한 멜로물이었다. 너무 찐득찐득해서 시로도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다행이도 그 찐득찐득함에 에반젤린이 먼저 질린 나머지 금방 나올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게임센터... 정확히는 공포 서바이벌 게임센터... 서바이벌 게임은 궁병인 시로에게 있어서 별로 어려운 게임이 아니었다. 하지만 적이 나타나면 놀란 척 하며 들러붙으려는 에반젤린을 피하느라 상당한 심력이 소모되었다.(끝부분에 가서는 인형용 실까지 동원했으니 얼마나 처절했을지 알만하리라.) 그 다음에는 비행선을 타고 공중에서 뒤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그 뒤에도 하드한 일정과 자잘한 사고(취재를 하기 위해 몰려드는 기자들을 회피, 갑자기 만나버린 다중시간대의 네기들을 수습 등)는 계속되어 시로는 엄청난 피로를 느꼈다. 그리고 어느새 밤이 되어버렸다.
"어땠어, 오늘은?"
에반젤린의 물음에 시로는 무척이나 지친 표정을 지으며 에반젤린에게 투덜거렸다.
"엄청나게 하드 하더군... 특히 무도회 직후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심해..."
시로의 투덜거림에 에반젤린은 풋- 하며 웃었다.
"그래도 즐거웠지?"
"뭐... 나름대로."
시로의 말에 에반젤린은 미소를 지으며 드러누었다.
"나도 즐거웠어."
"그런데 왜 나를 연인으로 소개한 거야?"
시로의 물음에 에반젤린은 재빨리 일어나 시로의 이마에 알까기를 먹였다. 마력이 상당히 주입된 알까기였던 터라 누워있던 시로는 그대로 머리가 흙바닥에 파고드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바보~! 좋아하니까 그런 거지!!"
약간 심통이 난 에반젤린은 몇 번 더 시로의 이마에 알까기를 날렸다. 워낙에 강력한 알까기인 탓에 시로는 뭔가를 말하기도, 묻기도 전에 기절해 버렸다.
만약 자신에게 있어 소중한 것 두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 그보다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후훗... 쓸데없는 생각이군..."
차오는 세계수의 광장에서 한창 축제 중인 학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지난 3년간 지내온 마호라 학원... 이곳에서의 추억은 무척이나 소중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였다.
"여기 있었나해?"
"왔나?"
차오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지도 않고 환한 표정을 지으며 화답했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쿠페이였다. 쿠페이는 천천히 차오의 옆으로 걸어가 물었다.
"그만 둘 수 없겠나?"
"없어... 내가 이 계획을 위해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알아?"
"대화로는 힘들겠네..."
"말로서 마음을 바꿀 시기는 지났으니까..."
"그런가..."
차오의 말에 쿠페이는 천천히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 도착한 순간 그대로 몸을 돌려 차오를 보며 물었다.
"정말로 힘든가해?"
"그래..."
"어쩔 수 없네... 그렇다면..."
쿠페이는 팔극권의 기수식을 잡으며 차오를 바라보았다. 차오도 그런 쿠페이를 보며 소림오형권의 기수식을 잡았다.
"실력행사뿐!"
"와라! 쿠페이!!"
빛나는 세계수의 아래, 쿠페이와 차오는 전력을 다해 격돌했다.
"응? 전화?"
아픈 이마에 물수건을 얹은 채 에반젤린의 무릎에 누워있던(자의가 아니다. 협박이 가득 곁들어진 친절에 의해서다.) 시로는 상의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확인했다. 온 것은 전화가 아닌 문자... 그것도 네기에게서 온 것이었다.
[시로형, 오늘 저녁 11시 까지 세계수의 광장으로 와주세요.]
너무나도 간결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무슨 일인지 대략 짐작하고 있는 탓이었다.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나?"
"응? 뭐가?"
"차오가."
에반젤린의 물음에 시로는 간단하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대로 뛰어오르며 네기가 문자로 보낸 세계수의 광장으로 향했다. 에반젤린은 그런 시로를 보며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아~ 오늘 데이트는 이걸로 끝인가... 뭐, 차오가 움직였다면 나도 약간은 움직여 줘야겠지...?"
에반젤린도 자리에서 일어나 차오가 있을만한 장소로 향했다.
약 2시간 후 세계수의 광장 인근
"흐음... 역시 말빨로는 네기가 밀리는군..."
대략 5분에 걸친 네기와 차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시로는 차오의 말에 반론하지 못하는 네기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똑똑한 네기라지만 5년에 가까운 세월의 차이를 무시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아무런 반론도 하지 못하고 있던 네기는 급작스러운 차오의 공격에 놀라며 자세를 잡았다.
권과 권의 격돌...
네기의 무문팔극권과 차오의 북파소림권, 거의 달인에 가까운 두 사람의 권이 서로 격돌했다. 무척이나 치열한 격돌... 그렇게 싸우고 있던 중 네기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약해... 아니 분명 강하기는 하지만... 아빠나 마스터, 쿠페이 사부에 비하면 약해... 도대체 쿠페이 사부에게 어떻게 이긴 거지?'
자신을 만났을 때 상처투성이의 모습이었던 쿠페이의 모습을 보자면 차오의 실력은 이 이상이어야 했다. 하지만 차오의 실력은 네기와 비슷한 정도... 아니 어쩌면 그 이하일 수 도 있었다. 네기는 예상외로 낮은 차오의 실력에 재빨리 끝내기로 마음을 먹고 무문팔극권의 팔대초식 중 하나인 맹호경파산을 마법의 사수와 병용해 사용했다.
-마법의 사수, 징계의 바람화살! 무문팔극권 팔대초식 맹호경파산!
마법의 사수가 실린 맹호경파산을 날리는 네기. 무도회에서 맹호경파산의 위력을 본 차오는 재빨리 손을 들어 제 위력이 나오기 전에 초식을 봉쇄하려 했다. 하지만 차오는 너무나도 막강한 맹호경파산의 위력에 되려 왼팔이 마비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더불어 차오의 팔과 네기의 팔이 서로 부딪힘과 함께 해방된 포박마법이 차오의 몸을 휘감았다. 차오가 완전하게 자신의 포박에 걸린 것을 확인한 네기는 차오를 향해 말했다.
"죄송합니다. 학생인 당신에게 이런 짓을 하게 되어서... 하지만 제가 이겼지요? 이제 이유를 말해 주세요."
네기의 말에 차오는 웃으며 대답했다.
"뭐... 실력행사에 대한 것은 사과할 필요 없다해. 내가 먼저 청한 승부니까해. 하지만 말이야..."
차오의 말끝이 흐려지면서 포박마법에 걸려 있던 차오의 모습이 사라졌다. 네기는 갑작스럽게 사라진 차오의 모습에 놀라며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차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겼다는 것은 좀 성급한 판단이었던 것 같군..."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차오의 목소리에 네기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뒤에는 특이한 복장을 한 차오가 서 있었다.
"조금 아플지도 모르지만 나쁘게 생각 말라해."
차오는 놀란 네기를 향해 일권을 날렸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강맹하기 그지없는 일격... 그 위력은 네기의 무문팔극권의 기 중 하나인 통천포와 비견될 정도였다. 네기는 차오의 일권에 재빨리 몸을 틀어 빗겨내려 했으나 너무나 빠른 일권이었던 탓에 채 빗겨내지 못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날려졌다.
차오는 그런 네기를 보며 놀랍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호오... 그 와중에도 몸을 틀어 충격을 줄인 것인가...? 하지만..."
차오는 천천히 네기에게 다가갔다.
네기는 전신을 덮친 충격에 손가락 까딱하기 힘들었다.
"그럼... 이것으로 네기 도령이 패배한 것으로 봐도 되겠지? 수고했다해. 잠시 잠들어 있으라고, 이유는 나중에 천천히 설명할 테니..."
차오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네기의 이마로 향했다. 그 순간, 한가닥의 섬광이 네기와 차오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차오는 무척이나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일에는 끼어들지 않기로 하지 않았었나요? 에미야 선생님?"
"약속한 것은 마지막 날의 '그것'뿐이라고 기억하고 있다만..."
시로의 말에 차오는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확실히 그랬었군요... 제가 좀 물렀습니다."
"뭐... 내가 안 나섰어도 될 것 같긴 했지만 말이지..."
시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차오는 재빨리 몸을 피했다. 차오가 피하자마자 어느새 날아온 수리검과 검기가 차오가 서 있던 자리를 유린했다. 차오는 자신이 있던 자리를 유린한 수리검과 검기를 보며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두른 사람이 누군지를 생각해 냈다.
"카에데와 세츠나인가..."
"차오...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 두지 않겠나?"
"차오... 어제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만. 네기 선생님의 신뢰를 배반하면 내 검이 용서치 않겠다고!"
차오는 네기 앞에 내려선 두 사람을 보며 무척이나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배반이 아니야. 왜냐하면 지금 서로를 설득시키기 위한 상담 중 이었거든."
"웃기지마!!"
세츠나는 순동으로 재빨리 차오의 뒤를 잡아 관절기로 차오를 제압했다.
"네가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기 선생님과 너의 친구로서 너를 저지하겠어."
"하아~ 역시 굉장하군, 세츠나. 설마 내가 개조한 특제 군용 강화복을 맨몸으로 가볍게 능가하다니... 아아... 정말 놀랐..."
세츠나는 심하게 당황했다. 차오의 말이 흐려지며 제압하고 있던 차오가 순식간에 사라진 탓이었다. 그리고 남은 대답은 뒤쪽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왔다.
"어!"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세츠나의 몸이 날려졌다. 예상보다 강한 차오의 일권에 세츠나는 제대로 방비하지 못하고 날려졌다. 그것을 본 카에데는 재빨리 차오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차오는 어느새 카에데의 뒤를 잡았다. 카에데는 드물게 놀란 얼굴로 차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침착하게 닌자의 비술을 사용해 차오의 공격을 막으며 팔을 잡았다. 하지만 차오는 가볍게 카에데의 구속에서 빠져나와 카에데를 공격했다. 카에데는 가까스로 차오의 공격을 피하며 세츠나의 곁으로 물러섰다.
"어떻게 된 거지?!"
"글쎄... 우리도 알지 못할 어떤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지만..."
"그렇다면... 확인해 봐야겠지!!"
세츠나는 자신의 아티팩트인 칠수 십육관려로 봉인의 술을 펼쳤다. 카에데도 은사(銀絲)를 꺼내들어 닌자 비전의 포박술을 전개했다.
-칠수 십육관려 비교미룡
-코우가 인법 포박술 교룡봉박진(蛟龍縫搏陣)
두 사람의 포박술이 차오를 뒤덮었다. 그러나 차오는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징조도 없이 두 사람의 포박술에서 빠져나왔다. 더불어 빠져나오면서 두 사람의 머리끈을 쥐도새도 모르게 풀어 손에 쥐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전 방위 완전 차단이었건만...! 더불어 내 아티펙트와 포박진의 효력으로 전이 같은 마법은 사용하기 힘들 텐데?!'
'허어... 도대체 무슨 방법을 사용한 건지...?'
'저건 축지도 아니고 전이도 아니야...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단 하나... 그렇다면 세츠나도 카에데도 절대로 이길 수 없어!'
세츠나와 카에데, 그리고 네기는 각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을 정리하며 웃고 있는 차오를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핸드폰 벨소리가 네기들 사이로 울려 퍼졌다. 그 벨소리의 근원지는 다름 아닌 옆에서 구경 중이던 시로였다. 시로는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며 말했다.
"아, 미안. 전화가 왔군."
긴장을 깨는 한마디에 모두는 갑자기 맥이 풀려버렸다. 전화를 받은 시로는 이런저런 말들을 하다가 전화를 끊고 차오와 네기들을 보며 말했다.
"차오, 네기, 싸움은 그만 끝내야겠어."
시로의 말에 네기가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송별회."
"네?"
"차오의 송별회다."
"에엑-!!"
시로의 예상 밖의 말에 차오도 덩달아 놀라 버렸다.
차오의 송별회는 무척이나 요란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쟈지가 차오에게 준 특이한 애완동물이라던가 반장이 준비한 특제 차오흉상이라던가 쿠페이가 차오에게 넘긴 사부의 창검이라던지... 정말 요란한 선물들이 많았다. 뭐 도중에 차오가 살짝 자신의 정체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진실을 확인할 만한 능력을 지닌 사람은 '거의' 없었으므로(반에서가 아니다. 세계에서다.) 믿는 사람은 극소수의 인물들뿐이었다. 송별회가 끝나고 차오와 네기, 그리고 시로는 잠깐 동안 개인면담 시간을 가졌다.
"아까 얘기는 진짜인가요?"
"아하하하~ 이런 얘기는 어지간해서는 믿어주지 않지... 뭐 에미야 선생님은 이미 확인했을 터이지만..."
네기는 차오의 말에 고개를 돌려 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로는 품속에서 지퍼백을 꺼내 네기와 차오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사실이야. 너희 둘의 머리카락을 얻어 마호라 대학에 조사를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지. 유전자 검사 결과 너와 차오가 조손관계일 가능성은 약 70%정도... 확실하게 피가 이어져 있다는 얘기지."
시로의 말에 네기는 차오와 시로를 번갈아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뭐... 아직까지는 어려운 얘기 일려나...? 간단하게 말해서 차오가 네 후손이 맞다는 얘기지."
"뭐, 그런 얘기는 관두고..."
차오는 천천히 옥상 가에로 가 세계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선조께 있어서는 미래, 나에게 있어서는 과거... 즉 그 사이의 역사를 바꾸기 위해서 미래에서 이 과거로 온 거야. 그것이 나의 목적..."
"역사라니..."
당황한 네기의 물음에 차오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만약... 네기 선생에게 시간을 넘나드는 힘이 있다면 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 아버지가 죽었다는 10년 전... 마을이 사라져 버린 6년 전... 그 불행했던 시간들을 바꿔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나?"
"어떻게 그걸?!"
네기는 차오의 말에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마법과 관련된... 특히 6년 전의 사건은 사건 관련자와 지난번 에반젤린의 별장에 모인 사람들... 그리고 시로형과 관계된 사람들뿐이었다.
차오는 네기의 물음에 그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일이 되었군... 오전 중에는 움직이지 못하니 잠깐 숨이라도 돌리고 있게나..."
차오는 그 말을 끝으로 오늘 낮처럼 모습을 감춰 버렸다.
"준비 됐나요?"
바벨탑에서 휴식을 취한 네기 일행은 차오와의 결전을 위해 아티펙트의 점검과 전략을 구상했다. 준비를 마친 네기는 일행들과 함께 출발 준비를 했다.
"아, 네기. 나도 같이 가지."
시로의 말에 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막 나가려던 찰나, 시로는 에반젤린을 보며 물었다.
"에반젤린은 어쩔 거야?"
"뭐, 나? 나는 좀 더 쉬었다 갈 생각. 역시 어제는 조금 하드하게 뛴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
에반젤린의 대답에 시로는 네기들과 함께 바벨탑에서 빠져나왔다. 에반젤린은 바벨탑을 나가는 네기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차오가 준비해둔 장난에 걸리기 싫으니까 말이지..."
에반젤린은 확신하고 있었다.
차오가 분명 뭔가 장난을 쳐놓았다는 것을...
"응?"
바벨탑에서 나온 시로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학원에 가득 차 있어야 할 마력이 거의 사라져 있었던 것이었다. 이상함을 느낀 시로는 좀 더 주위를 살피려 했으나 네기가 서둘러 나선 탓에 주위를 살피지 못하고 네기를 뒤따라 나섰다.
"어라...?"
밖으로 나온 네기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축제 3일째 일 터였다. 그런데 축제의 요란함이 없었다. 그리고 주위에 사람들의 시선이 좀 미묘했다. 뭔가를 묻고 싶은데 묻지 못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람들의 시선과 주위의 분위기... 시로는 앗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당해버렸군..."
"네?"
네기의 되물음에 시로는 그 물음을 무시하고 말했다.
"네기, 빨리 지금 일자를 알 수 있는 매체를 찾아봐."
"네? 갑자기 무슨...?"
갑작스런 시로의 말에 네기가 의문을 가지는 중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시로와 네기를 둘러쌌다. 마법 선생들이었다.
"같이 가줘야겠네. 네기 선생, 에미야 선생..."
"이거... 알만하군..."
시로는 얼굴을 찌푸리며 기세가 흉흉한 마법선생들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네기와 시로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이 축제 후 일주일이 지난 시간에 있음을 깨달았다. 더불어 차오의 작전이 성공해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마법이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TV와 라디오에는 연일 마법과 관련된 특보가 나오고 있었고 신문에도 마법에 관련된 기사가 첫 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이... 이건?!”
“일단 에반젤린의 별장으로 가 봐야...”
에반젤린의 별장으로 향한 아이들은 거기서 차오가 남긴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째서 자신들이 일주일 후로 날려졌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네기가 두고간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갈까 했지만 그것도 세계수의 마력이 필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과연... 그렇게 되었군...”
다른 마법선생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시로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그 말에 간돌피니 선생은 심하게 흥분하면서 말했다.
“그걸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왜 알려주지 않았나!!”
“증거가 없었어. 그런 상태에서 말해봤자 믿어줄 리가 없잖아.”
그 말에 간돌피니 선생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증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해봤자 믿어줄 리가 만무했던 탓이었다.
“어쨌든 자네들도 이번 일의 책임에서 벗어나지는 못해. 두사람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 최소 2년 이상의 족제비 형을 받게 될 걸세!”
“그런...!”
족제비형이라는 말에 네기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타임머신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지만 이곳으로 끌려올 때 시로가 네기 보고 타임머신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언급하지 말라고 했었기 때문에 말하기도 뭐했다. 그리고 자세히 생각해보니 믿어줄 지도 의문이었다.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금 세계의 지론이었다. 그런데 타임머신에 대해 믿어 줄 리가 만무했다.
“그럼... 본국으로 이송될 때 까지 자네들을 이곳에 가둬두겠네. 자네들은 마호라 무도회 탓에 유명인이 되어버렸으니까... 더 이상 혼란의 가중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어... 이해해 주길 바라네...”
“미안하지만 가만히 있지는 못하겠어...”
“뭐?!”
시로의 말에 모두는 놀란 표정으로 시로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시로의 손에는 검고 하얀 두 자루의 단도가 들려 있었다.
“아니?!”
“분명 무장은 다 해제해 놨을 텐데?!”
시로는 당황하고 있는 마법선생들의 소매를 향해 간장과 막야를 던졌다. 간장과 막야는 무척이나 빠르게 날아가 간돌피니를 포함한 두명의 마법 선생의 소매를 꿰뚫었다. 시로는 그대로 게이볼그를 투영해 두 마법선생의 머리를 향해 힘껏 휘둘렀다. 두 사람을 기절시킨 시로는 재빨리 로 아이아스를 투영해 다카미치를 향해 돌진했다. 다카미치는 재빨리 발권을 사용했으나 무도회에서도 입증되었듯이 발권으로 로 아이아스를 부수거나 막는 것은 무리였다. 다카미치는 상당한 충격을 느끼며 벽에 부딪혔다.
이 공간 내에 마법사들을 다 처리한 것을 확인한 시로는 그대로 회로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시로의 마술은 이곳의 마법사와는 달리 내부에서부터 발현하기에 석실 전체에 걸려있는 대마법 주문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트레이스 온!”
시로는 재빨리 세이브 더 퀸을 투영해 석실의 문을 갈랐다.
“네기, 가자!”
“네!”
이곳에 남아 있어봤자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남은 해결방법은 단 한 가지... 학생들과 합류한 다음 타임머신을 이용해 축제 마지막 날로 돌아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시로는 멀리서 손을 흔들고 있는 에반젤린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반 협박에 가까운 부탁에 의해 에반젤린과 함께 축제를 돌게 된 시로는 막 돌아온 이리야의 의해 엄청나게 추궁 받았던 탓이었다. 뭐, 에반젤린이 이리야와 잠시 쑥덕대더니 이리야가 무척이나 기쁜 얼굴을 하며 그냥 보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오는 본능적인 두려움은 어쩔 수 없었다.
"아~ 정말!"
천천히 걷고 있는 시로 모습에 약간 짜증이 났는지 시로에게 다가와 팔을 잡아당기며 서둘렀다. 아침까지만 해도 저런 모습으로 변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시로로서는 상당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요즘 길가메쉬가 하고 있는 미소녀 게임의 츤데레 캐릭터라는 느낌이랄까...
"얼른~!!"
시로는 에반젤린에게 끌려가면서 생각했다.
오늘은 왠지 평탄할 것 같지 않다고.
시로의 예감은 적중했다.
처음 에반젤린이 가기로 결정한 곳은 영화관... 그것도 찐득찐득한 멜로물이었다. 너무 찐득찐득해서 시로도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다행이도 그 찐득찐득함에 에반젤린이 먼저 질린 나머지 금방 나올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게임센터... 정확히는 공포 서바이벌 게임센터... 서바이벌 게임은 궁병인 시로에게 있어서 별로 어려운 게임이 아니었다. 하지만 적이 나타나면 놀란 척 하며 들러붙으려는 에반젤린을 피하느라 상당한 심력이 소모되었다.(끝부분에 가서는 인형용 실까지 동원했으니 얼마나 처절했을지 알만하리라.) 그 다음에는 비행선을 타고 공중에서 뒤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그 뒤에도 하드한 일정과 자잘한 사고(취재를 하기 위해 몰려드는 기자들을 회피, 갑자기 만나버린 다중시간대의 네기들을 수습 등)는 계속되어 시로는 엄청난 피로를 느꼈다. 그리고 어느새 밤이 되어버렸다.
"어땠어, 오늘은?"
에반젤린의 물음에 시로는 무척이나 지친 표정을 지으며 에반젤린에게 투덜거렸다.
"엄청나게 하드 하더군... 특히 무도회 직후라 그런지 평소보다 더 심해..."
시로의 투덜거림에 에반젤린은 풋- 하며 웃었다.
"그래도 즐거웠지?"
"뭐... 나름대로."
시로의 말에 에반젤린은 미소를 지으며 드러누었다.
"나도 즐거웠어."
"그런데 왜 나를 연인으로 소개한 거야?"
시로의 물음에 에반젤린은 재빨리 일어나 시로의 이마에 알까기를 먹였다. 마력이 상당히 주입된 알까기였던 터라 누워있던 시로는 그대로 머리가 흙바닥에 파고드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바보~! 좋아하니까 그런 거지!!"
약간 심통이 난 에반젤린은 몇 번 더 시로의 이마에 알까기를 날렸다. 워낙에 강력한 알까기인 탓에 시로는 뭔가를 말하기도, 묻기도 전에 기절해 버렸다.
만약 자신에게 있어 소중한 것 두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선택할까? 그보다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후훗... 쓸데없는 생각이군..."
차오는 세계수의 광장에서 한창 축제 중인 학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지난 3년간 지내온 마호라 학원... 이곳에서의 추억은 무척이나 소중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였다.
"여기 있었나해?"
"왔나?"
차오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지도 않고 환한 표정을 지으며 화답했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공은 쿠페이였다. 쿠페이는 천천히 차오의 옆으로 걸어가 물었다.
"그만 둘 수 없겠나?"
"없어... 내가 이 계획을 위해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알아?"
"대화로는 힘들겠네..."
"말로서 마음을 바꿀 시기는 지났으니까..."
"그런가..."
차오의 말에 쿠페이는 천천히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 도착한 순간 그대로 몸을 돌려 차오를 보며 물었다.
"정말로 힘든가해?"
"그래..."
"어쩔 수 없네... 그렇다면..."
쿠페이는 팔극권의 기수식을 잡으며 차오를 바라보았다. 차오도 그런 쿠페이를 보며 소림오형권의 기수식을 잡았다.
"실력행사뿐!"
"와라! 쿠페이!!"
빛나는 세계수의 아래, 쿠페이와 차오는 전력을 다해 격돌했다.
"응? 전화?"
아픈 이마에 물수건을 얹은 채 에반젤린의 무릎에 누워있던(자의가 아니다. 협박이 가득 곁들어진 친절에 의해서다.) 시로는 상의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확인했다. 온 것은 전화가 아닌 문자... 그것도 네기에게서 온 것이었다.
[시로형, 오늘 저녁 11시 까지 세계수의 광장으로 와주세요.]
너무나도 간결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했다. 무슨 일인지 대략 짐작하고 있는 탓이었다.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나?"
"응? 뭐가?"
"차오가."
에반젤린의 물음에 시로는 간단하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대로 뛰어오르며 네기가 문자로 보낸 세계수의 광장으로 향했다. 에반젤린은 그런 시로를 보며 안타깝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하아~ 오늘 데이트는 이걸로 끝인가... 뭐, 차오가 움직였다면 나도 약간은 움직여 줘야겠지...?"
에반젤린도 자리에서 일어나 차오가 있을만한 장소로 향했다.
약 2시간 후 세계수의 광장 인근
"흐음... 역시 말빨로는 네기가 밀리는군..."
대략 5분에 걸친 네기와 차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시로는 차오의 말에 반론하지 못하는 네기를 보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똑똑한 네기라지만 5년에 가까운 세월의 차이를 무시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아무런 반론도 하지 못하고 있던 네기는 급작스러운 차오의 공격에 놀라며 자세를 잡았다.
권과 권의 격돌...
네기의 무문팔극권과 차오의 북파소림권, 거의 달인에 가까운 두 사람의 권이 서로 격돌했다. 무척이나 치열한 격돌... 그렇게 싸우고 있던 중 네기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약해... 아니 분명 강하기는 하지만... 아빠나 마스터, 쿠페이 사부에 비하면 약해... 도대체 쿠페이 사부에게 어떻게 이긴 거지?'
자신을 만났을 때 상처투성이의 모습이었던 쿠페이의 모습을 보자면 차오의 실력은 이 이상이어야 했다. 하지만 차오의 실력은 네기와 비슷한 정도... 아니 어쩌면 그 이하일 수 도 있었다. 네기는 예상외로 낮은 차오의 실력에 재빨리 끝내기로 마음을 먹고 무문팔극권의 팔대초식 중 하나인 맹호경파산을 마법의 사수와 병용해 사용했다.
-마법의 사수, 징계의 바람화살! 무문팔극권 팔대초식 맹호경파산!
마법의 사수가 실린 맹호경파산을 날리는 네기. 무도회에서 맹호경파산의 위력을 본 차오는 재빨리 손을 들어 제 위력이 나오기 전에 초식을 봉쇄하려 했다. 하지만 차오는 너무나도 막강한 맹호경파산의 위력에 되려 왼팔이 마비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더불어 차오의 팔과 네기의 팔이 서로 부딪힘과 함께 해방된 포박마법이 차오의 몸을 휘감았다. 차오가 완전하게 자신의 포박에 걸린 것을 확인한 네기는 차오를 향해 말했다.
"죄송합니다. 학생인 당신에게 이런 짓을 하게 되어서... 하지만 제가 이겼지요? 이제 이유를 말해 주세요."
네기의 말에 차오는 웃으며 대답했다.
"뭐... 실력행사에 대한 것은 사과할 필요 없다해. 내가 먼저 청한 승부니까해. 하지만 말이야..."
차오의 말끝이 흐려지면서 포박마법에 걸려 있던 차오의 모습이 사라졌다. 네기는 갑작스럽게 사라진 차오의 모습에 놀라며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차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겼다는 것은 좀 성급한 판단이었던 것 같군..."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차오의 목소리에 네기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뒤에는 특이한 복장을 한 차오가 서 있었다.
"조금 아플지도 모르지만 나쁘게 생각 말라해."
차오는 놀란 네기를 향해 일권을 날렸다. 여태까지와는 다른 강맹하기 그지없는 일격... 그 위력은 네기의 무문팔극권의 기 중 하나인 통천포와 비견될 정도였다. 네기는 차오의 일권에 재빨리 몸을 틀어 빗겨내려 했으나 너무나 빠른 일권이었던 탓에 채 빗겨내지 못하고 엄청난 충격을 받으며 날려졌다.
차오는 그런 네기를 보며 놀랍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호오... 그 와중에도 몸을 틀어 충격을 줄인 것인가...? 하지만..."
차오는 천천히 네기에게 다가갔다.
네기는 전신을 덮친 충격에 손가락 까딱하기 힘들었다.
"그럼... 이것으로 네기 도령이 패배한 것으로 봐도 되겠지? 수고했다해. 잠시 잠들어 있으라고, 이유는 나중에 천천히 설명할 테니..."
차오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네기의 이마로 향했다. 그 순간, 한가닥의 섬광이 네기와 차오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차오는 무척이나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일에는 끼어들지 않기로 하지 않았었나요? 에미야 선생님?"
"약속한 것은 마지막 날의 '그것'뿐이라고 기억하고 있다만..."
시로의 말에 차오는 인정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확실히 그랬었군요... 제가 좀 물렀습니다."
"뭐... 내가 안 나섰어도 될 것 같긴 했지만 말이지..."
시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차오는 재빨리 몸을 피했다. 차오가 피하자마자 어느새 날아온 수리검과 검기가 차오가 서 있던 자리를 유린했다. 차오는 자신이 있던 자리를 유린한 수리검과 검기를 보며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두른 사람이 누군지를 생각해 냈다.
"카에데와 세츠나인가..."
"차오...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만 두지 않겠나?"
"차오... 어제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만. 네기 선생님의 신뢰를 배반하면 내 검이 용서치 않겠다고!"
차오는 네기 앞에 내려선 두 사람을 보며 무척이나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배반이 아니야. 왜냐하면 지금 서로를 설득시키기 위한 상담 중 이었거든."
"웃기지마!!"
세츠나는 순동으로 재빨리 차오의 뒤를 잡아 관절기로 차오를 제압했다.
"네가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네기 선생님과 너의 친구로서 너를 저지하겠어."
"하아~ 역시 굉장하군, 세츠나. 설마 내가 개조한 특제 군용 강화복을 맨몸으로 가볍게 능가하다니... 아아... 정말 놀랐..."
세츠나는 심하게 당황했다. 차오의 말이 흐려지며 제압하고 있던 차오가 순식간에 사라진 탓이었다. 그리고 남은 대답은 뒤쪽에서 갑작스럽게 들려왔다.
"어!"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세츠나의 몸이 날려졌다. 예상보다 강한 차오의 일권에 세츠나는 제대로 방비하지 못하고 날려졌다. 그것을 본 카에데는 재빨리 차오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차오는 어느새 카에데의 뒤를 잡았다. 카에데는 드물게 놀란 얼굴로 차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침착하게 닌자의 비술을 사용해 차오의 공격을 막으며 팔을 잡았다. 하지만 차오는 가볍게 카에데의 구속에서 빠져나와 카에데를 공격했다. 카에데는 가까스로 차오의 공격을 피하며 세츠나의 곁으로 물러섰다.
"어떻게 된 거지?!"
"글쎄... 우리도 알지 못할 어떤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 수 있지만..."
"그렇다면... 확인해 봐야겠지!!"
세츠나는 자신의 아티팩트인 칠수 십육관려로 봉인의 술을 펼쳤다. 카에데도 은사(銀絲)를 꺼내들어 닌자 비전의 포박술을 전개했다.
-칠수 십육관려 비교미룡
-코우가 인법 포박술 교룡봉박진(蛟龍縫搏陣)
두 사람의 포박술이 차오를 뒤덮었다. 그러나 차오는 아무런 소리도, 기척도, 징조도 없이 두 사람의 포박술에서 빠져나왔다. 더불어 빠져나오면서 두 사람의 머리끈을 쥐도새도 모르게 풀어 손에 쥐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전 방위 완전 차단이었건만...! 더불어 내 아티펙트와 포박진의 효력으로 전이 같은 마법은 사용하기 힘들 텐데?!'
'허어... 도대체 무슨 방법을 사용한 건지...?'
'저건 축지도 아니고 전이도 아니야... 그렇다면 남은 것은 단 하나... 그렇다면 세츠나도 카에데도 절대로 이길 수 없어!'
세츠나와 카에데, 그리고 네기는 각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을 정리하며 웃고 있는 차오를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핸드폰 벨소리가 네기들 사이로 울려 퍼졌다. 그 벨소리의 근원지는 다름 아닌 옆에서 구경 중이던 시로였다. 시로는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며 말했다.
"아, 미안. 전화가 왔군."
긴장을 깨는 한마디에 모두는 갑자기 맥이 풀려버렸다. 전화를 받은 시로는 이런저런 말들을 하다가 전화를 끊고 차오와 네기들을 보며 말했다.
"차오, 네기, 싸움은 그만 끝내야겠어."
시로의 말에 네기가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송별회."
"네?"
"차오의 송별회다."
"에엑-!!"
시로의 예상 밖의 말에 차오도 덩달아 놀라 버렸다.
차오의 송별회는 무척이나 요란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쟈지가 차오에게 준 특이한 애완동물이라던가 반장이 준비한 특제 차오흉상이라던가 쿠페이가 차오에게 넘긴 사부의 창검이라던지... 정말 요란한 선물들이 많았다. 뭐 도중에 차오가 살짝 자신의 정체를 언급하기는 했지만... 진실을 확인할 만한 능력을 지닌 사람은 '거의' 없었으므로(반에서가 아니다. 세계에서다.) 믿는 사람은 극소수의 인물들뿐이었다. 송별회가 끝나고 차오와 네기, 그리고 시로는 잠깐 동안 개인면담 시간을 가졌다.
"아까 얘기는 진짜인가요?"
"아하하하~ 이런 얘기는 어지간해서는 믿어주지 않지... 뭐 에미야 선생님은 이미 확인했을 터이지만..."
네기는 차오의 말에 고개를 돌려 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로는 품속에서 지퍼백을 꺼내 네기와 차오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사실이야. 너희 둘의 머리카락을 얻어 마호라 대학에 조사를 유전자 검사를 의뢰했지. 유전자 검사 결과 너와 차오가 조손관계일 가능성은 약 70%정도... 확실하게 피가 이어져 있다는 얘기지."
시로의 말에 네기는 차오와 시로를 번갈아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뭐... 아직까지는 어려운 얘기 일려나...? 간단하게 말해서 차오가 네 후손이 맞다는 얘기지."
"뭐, 그런 얘기는 관두고..."
차오는 천천히 옥상 가에로 가 세계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선조께 있어서는 미래, 나에게 있어서는 과거... 즉 그 사이의 역사를 바꾸기 위해서 미래에서 이 과거로 온 거야. 그것이 나의 목적..."
"역사라니..."
당황한 네기의 물음에 차오는 계속 말을 이었다.
"만약... 네기 선생에게 시간을 넘나드는 힘이 있다면 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 아버지가 죽었다는 10년 전... 마을이 사라져 버린 6년 전... 그 불행했던 시간들을 바꿔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나?"
"어떻게 그걸?!"
네기는 차오의 말에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이야기를 아는 사람들은 마법과 관련된... 특히 6년 전의 사건은 사건 관련자와 지난번 에반젤린의 별장에 모인 사람들... 그리고 시로형과 관계된 사람들뿐이었다.
차오는 네기의 물음에 그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내일이 되었군... 오전 중에는 움직이지 못하니 잠깐 숨이라도 돌리고 있게나..."
차오는 그 말을 끝으로 오늘 낮처럼 모습을 감춰 버렸다.
"준비 됐나요?"
바벨탑에서 휴식을 취한 네기 일행은 차오와의 결전을 위해 아티펙트의 점검과 전략을 구상했다. 준비를 마친 네기는 일행들과 함께 출발 준비를 했다.
"아, 네기. 나도 같이 가지."
시로의 말에 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막 나가려던 찰나, 시로는 에반젤린을 보며 물었다.
"에반젤린은 어쩔 거야?"
"뭐, 나? 나는 좀 더 쉬었다 갈 생각. 역시 어제는 조금 하드하게 뛴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
에반젤린의 대답에 시로는 네기들과 함께 바벨탑에서 빠져나왔다. 에반젤린은 바벨탑을 나가는 네기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차오가 준비해둔 장난에 걸리기 싫으니까 말이지..."
에반젤린은 확신하고 있었다.
차오가 분명 뭔가 장난을 쳐놓았다는 것을...
"응?"
바벨탑에서 나온 시로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학원에 가득 차 있어야 할 마력이 거의 사라져 있었던 것이었다. 이상함을 느낀 시로는 좀 더 주위를 살피려 했으나 네기가 서둘러 나선 탓에 주위를 살피지 못하고 네기를 뒤따라 나섰다.
"어라...?"
밖으로 나온 네기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축제 3일째 일 터였다. 그런데 축제의 요란함이 없었다. 그리고 주위에 사람들의 시선이 좀 미묘했다. 뭔가를 묻고 싶은데 묻지 못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람들의 시선과 주위의 분위기... 시로는 앗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당해버렸군..."
"네?"
네기의 되물음에 시로는 그 물음을 무시하고 말했다.
"네기, 빨리 지금 일자를 알 수 있는 매체를 찾아봐."
"네? 갑자기 무슨...?"
갑작스런 시로의 말에 네기가 의문을 가지는 중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시로와 네기를 둘러쌌다. 마법 선생들이었다.
"같이 가줘야겠네. 네기 선생, 에미야 선생..."
"이거... 알만하군..."
시로는 얼굴을 찌푸리며 기세가 흉흉한 마법선생들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네기와 시로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들이 축제 후 일주일이 지난 시간에 있음을 깨달았다. 더불어 차오의 작전이 성공해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마법이 알려지게 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TV와 라디오에는 연일 마법과 관련된 특보가 나오고 있었고 신문에도 마법에 관련된 기사가 첫 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이... 이건?!”
“일단 에반젤린의 별장으로 가 봐야...”
에반젤린의 별장으로 향한 아이들은 거기서 차오가 남긴 메시지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째서 자신들이 일주일 후로 날려졌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네기가 두고간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갈까 했지만 그것도 세계수의 마력이 필요...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과연... 그렇게 되었군...”
다른 마법선생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시로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그 말에 간돌피니 선생은 심하게 흥분하면서 말했다.
“그걸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왜 알려주지 않았나!!”
“증거가 없었어. 그런 상태에서 말해봤자 믿어줄 리가 없잖아.”
그 말에 간돌피니 선생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증거도 없이 그런 말을 해봤자 믿어줄 리가 만무했던 탓이었다.
“어쨌든 자네들도 이번 일의 책임에서 벗어나지는 못해. 두사람 모두 본국으로 돌아가 최소 2년 이상의 족제비 형을 받게 될 걸세!”
“그런...!”
족제비형이라는 말에 네기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타임머신에 대해서 말하려고 했지만 이곳으로 끌려올 때 시로가 네기 보고 타임머신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언급하지 말라고 했었기 때문에 말하기도 뭐했다. 그리고 자세히 생각해보니 믿어줄 지도 의문이었다.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지금 세계의 지론이었다. 그런데 타임머신에 대해 믿어 줄 리가 만무했다.
“그럼... 본국으로 이송될 때 까지 자네들을 이곳에 가둬두겠네. 자네들은 마호라 무도회 탓에 유명인이 되어버렸으니까... 더 이상 혼란의 가중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어... 이해해 주길 바라네...”
“미안하지만 가만히 있지는 못하겠어...”
“뭐?!”
시로의 말에 모두는 놀란 표정으로 시로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시로의 손에는 검고 하얀 두 자루의 단도가 들려 있었다.
“아니?!”
“분명 무장은 다 해제해 놨을 텐데?!”
시로는 당황하고 있는 마법선생들의 소매를 향해 간장과 막야를 던졌다. 간장과 막야는 무척이나 빠르게 날아가 간돌피니를 포함한 두명의 마법 선생의 소매를 꿰뚫었다. 시로는 그대로 게이볼그를 투영해 두 마법선생의 머리를 향해 힘껏 휘둘렀다. 두 사람을 기절시킨 시로는 재빨리 로 아이아스를 투영해 다카미치를 향해 돌진했다. 다카미치는 재빨리 발권을 사용했으나 무도회에서도 입증되었듯이 발권으로 로 아이아스를 부수거나 막는 것은 무리였다. 다카미치는 상당한 충격을 느끼며 벽에 부딪혔다.
이 공간 내에 마법사들을 다 처리한 것을 확인한 시로는 그대로 회로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시로의 마술은 이곳의 마법사와는 달리 내부에서부터 발현하기에 석실 전체에 걸려있는 대마법 주문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트레이스 온!”
시로는 재빨리 세이브 더 퀸을 투영해 석실의 문을 갈랐다.
“네기, 가자!”
“네!”
이곳에 남아 있어봤자 해결되는 일은 없었다.
남은 해결방법은 단 한 가지... 학생들과 합류한 다음 타임머신을 이용해 축제 마지막 날로 돌아가는 수밖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