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스 2화
“걸리면 귀찮으니까 이해해 줘. 대신 간단하게 네가 죽어야 하는 이유는 설명해줄게.”
“컥, 끄윽. 으허.”
“여기는 ‘학교’ 라는 게임 속 공간이고 우리는 ‘학생’이야. 학생은 이 과거의 게임에서 지금은 사라진 그 시대의 지식을 습득해야 해. 또 다른 마을에서 선발된 학생 그리고 이 가상세계의 원주민들과 교류할 의무가 있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그게 왜 내가 칼에 찔려야 하는 이유가 되냔 말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목적과 달리 이 과거의 게임에는 특이한 시스템이 있었지. 학생은 서로를 죽이면 특별한 이득을 얻는다는 것. 상부는 이 시스템을 폐기하지 않고 사용하기로 결정했어. 단 무차별한 학살을 막기 위해 학생이 아닌 NPC를 죽이면 패널티가 있지.”
소녀는 내 가슴에서 칼을 뽑았다.
“너는 바보같이 첫날부터 지각해 이 설명을 듣지 못했고, 정체를 숨겨야 한다는 것을 몰랐기에 내 제물이 되어버린 거야. 출신을 물어보면 내가 들어보지 못한 마을 이름을 댔어야지.”
아프다. 미치도록 아프다. 로그아웃, 강제 로그아웃을……!
“라이프는 1인당 세 개씩. 덤으로 알려주겠는데 자신을 죽인 사람을 보복으로 죽이거나 플레이어라는 정체를 폭로하면 NPC를 죽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큰 패널티를 받아. 알겠지? 넌 날 죽일 수 없어.”
『하교시간이 지나지 않아 로그아웃 할 수 없습니다.』
“더 궁금한 게 있다면 선생님에게 물어봐. 앞으로는 NPC인 척 하는 것도 잊지 말고. 그럼 안녕.”
소녀는 다시 한 번 내 가슴에 칼을 찔러넣었다. 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사망했습니다. 잠시 후 부활합니다.』
배경이 하얀 방으로 바뀌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내 몸을 살폈다. 핏자국은 깨끗이 지워져 있다. 상처도 아물었다. 하지만 칼이 꽂힐 때의 섬뜩함은 그대로 남아있다. 도대체 얻는 이득이 무엇이기에 그 사람은 망설임 없이 살인을 한 걸까.
“지각도 모자라 첫 희생자가 되다니 터무니없는 열등생이군.”
등 뒤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검은 실루엣의 두상 두 개가 허공에 떠 있었다.
“네가 우리 반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워. 빨리 세 번 죽어버리고 퇴학당하는 게 어때?”
이번에는 가는 여자 목소리였다. 당황한 나는 머뭇머뭇 입을 열었다.
“뭐, 뭐야 이거.”
“이거라니. 교사에게 아주 좋은 말버릇이군. 예의범절을 다시 배울 필요가 있겠어.”
“네 반, 1-2의 담임과 부담임이야. 선생님이라고 부르도록.”
두 목소리가 연달아 방에 울려퍼졌다. 교관과 비슷한 존재인가.
“죄송합니다.”
일단 사과했다. 말실수와 지각은 몰라도 죽은 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아무튼 깨어난 걸 보았으니 이만 가겠네. 교실에서 만나지. 음, 그전에 지각한 대가를 치러야겠군.”
선생님의 말과 동시에 효과음이 연달아 뜨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지각한’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매력이 일시적으로 감소합니다. 교사 NPC와의 친밀도를 올리기 어려워집니다.』
『지각 벌금을 지불합니다. 소지금이 1000원 줄어들었습니다.』
『방과 후 교실 청소를 하게 됩니다. 하교 가능 시간이 30분 늦춰졌습니다.』
어라? 엄중 처벌이라고 적혀있던 것 치고는 별 거 아닌데?
“청소는 며칠 동안 하는 건가요?”
“기본적으로 일주일. 내가 검사할 테니 깨끗하게 해야 해. 연장 당하기 싫다면 말이지. 앗, 최 선생님. 같이 가요!”
더 이상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몇 초 후 검은 실루엣도 사라져버렸다.
나는 1-2반, 교실이라고 불리는 장소로 돌아왔다. 점심시간이 끝나 가는지 자리의 대부분은 채워져 있었다. 내 자리가 어딘지 몰라 주변을 기웃거리다. 나를 칼로 찌른 소녀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적으로 움찔, 하고 시선을 피했다. 천적을 만난 동물의 심정이었다.
“한야, 여기여기.”
그러나 그 소녀는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살인자가 짓는 표정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해맑은 웃음이었다. 무시한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나는 한숨을 쉬고 그녀에게 다가섰다.
“왜. 또 죽이게?”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녀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번 죽인 사람을 다시 죽여 봤자 나에겐 아무런 이득도 없어. 안심해도 좋아.”
안심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다짜고짜 칼로 찔러놓고 이제 친한 척이야?
“내 앞자리가 네 자리야. 잘 부탁해.”
“뒤에서 칼빵 맞기 딱 좋은 자리로군.”
소녀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도 꽁해 있는 거야? 우린 서로가 플레이어란 걸 알잖아. 친하게 지내는 게 이득이라구?”
“넌 날 죽였어. 내가 너와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내 말을 들은 소녀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이 진정될 때 까지 나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웃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한 그녀는 말했다.
“정신 차려. 이건 게임이야. 죽고 죽이는 게 당연하다구.”
나는 그녀와 내가 본질적인 부분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아.”
“좋을 대로.”
그녀가 미소 지었다. 욕지기가 치밀었다.
『5교시가 시작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정장을 입은 중년이었다. 국사라는 과목을 가르친다고 하셨다. 아직 교과서를 받지 못했을 테니 역사의 학습 목적에 대해 짧게 강의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역사를 배움으로써 과거의 사실을 토대로…….”
수업은 단조롭게 진행되었다. 노트를 꺼내 필기를 하는 열성적인 학생도 있었고, 하품을 하며 주변을 힐끔거리는 학생도 있었다. 나는 이 게임의 목적인 과거의 지식 습득을 위해 집중해서 수업을 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합니다. 질문 있는 학생 있으십니까?”
맨 앞자리에서 꾸벅꾸벅 졸던 여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키가 꽤 작다.
“역사는 역시 필요 없는 하아암. 과목이라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그 필요성에 대해 수업을 했잖습니까.”
선생님이 허허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건 과거가 아닌 하아암. 현재와 미래입니다.”
“역사를 배움으로써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는 법이지요.”
잠이 덜 깼는지 계속해서 하품을 하는 학생을 상대로 선생님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현실적인 예를 들자면! 도시를 파괴하는 괴물이 나왔을 때 필요한 건 총이지. 과거엔 활로 괴물을 잡았더라는 게 아니란 겁니다. 하아암.”
“괴물이 나타나는 게 어디가 현실적이지요?”
뒤에서 누군가 등을 쿡쿡 찔렀다. 무시했지만 계속 찔렀다. 물론 칼이 아니라 손가락이다. 결국 짜증을 내며 몸을 살짝 돌렸다.
“왜!”
“저 아이. 플레이어 같지?”
“맞으면, 또 죽이게?”
“아직 생각 중이야. 다짜고짜 죽여 버리면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거든.”
“아 그러시겠죠.”
“일단 네가 접근해 봐.”
“내가 왜?”
“나는 실수로 저 아이를 죽여 버릴지도 모르니까.”
어이가 없다. 그래. 가서 이 악녀를 경계하라고 말만 해두자.
그 사이 학생과 선생님의 논쟁은 대충 끝을 맺었다. 둘 다 완전히 만족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