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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


리버스 5화


  캡슐에서 나오자마자 내가 한 일은 배를 채우는 것이었다. 식당에 갈 의욕이 들지 않아 냉장고에 들어있던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한 빵과 우유를 먹었다. 시계는 어느덧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후 훈련은 이미 종료되었을 시간이다. 교관님에게 받은 임무를 수행했고 그 이전에 하교 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로그아웃도 안 됐으니 훈련은 면제 받았다고 보는 게 맞겠지.
  “야, 들어간다.”
  아민이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노크하고 잠깐 기다리라는 말은 들어먹질 않네. 훈련을 끝내고 샤워를 마치자마자 이리로 온 건지 머리카락이 온전히 마르지 않았다.
  “감기 걸린다.”
  “바보는 감기 안 걸린데.”
  자랑스럽게 할 얘기냐.
  “무슨 일로 왔어?”
  “야가 오후 훈련에 빠졌잖아 교관님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셨지만 ​역​시​…​…​궁​금​해​져​서​.​”​
  “걱정이 아니라 호기심이냐.”
  “걱정을 왜 해. 야한테 무슨 일이 생길리가 없는데. 그래서? 훈련 빠지고 뭐했어?”
  나는 간단하게 학교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정 교관님이 비밀 임무라고 했던 것 같지만 아민이한테 숨기고 싶진 않았다. 물론 칼에 맞았다느니 지각 청소를 했다느니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내가 전해들은 룰을 설명하는 정도였다.
  “그거 매일 가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을까?”
  자세한 건 교관님에게 다시 물어봐야겠지만.
  “야, 힘들었어?”
  “죽을 정도로 힘들었어.”
  실제로 한 번 죽었지.
  “좋아 결정했어.”
  “뭘?”
  “내일 하루, 야가 그 학교라는 곳에 가지 않게 해줄게.”
  어떻게. 라고 묻지 않았다. 아민이라면 높은 확률로 학교에 가는 것보다 더 귀찮은 일을 끌고 올 테니까.
  “자, 잠깐. 나는 아직 큰 불만이 없어. 학교 갈게! 간다니까?”
  “사양할 거 없어. 아 잘하면 며칠 이상 빠지게 될 수도 있겠다. 그럼 이만 가볼게.”
  아민이는 배시시 웃고 그대로 방밖으로 나가버렸다. 안 돼. 재빨리 아민이를 따라갔지만 그녀는 이미 복도에서 모습을 감춘 뒤였다.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시간은 오전 6시. 아민이는 특별한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임무를 받아내는 데 실패한 걸까. 그렇다면 오늘도 학교에 가야겠지. 등교 시간인 8시 반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짧게 훈련이라도 하고 올까.
  옷을 갈아입는 도중에 문이 열렸다. 열리고 나서야 야, 들어간다. 하는 아민이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1초 2초 3초. 아민이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문을 닫았다. 나도 재빠르게 옷을 마저 입었다.
  “노크 좀 해. 노크.”
  “귀찮다니까. 그것보다 교관님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어.”
  “뭔데?”
  아민이의 눈빛이 자신만만하게 변했다. 흐흥. 하고 팔짱을 낀 그녀는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옆 마을 까지 캡슐 배송.”
  예상대로 귀찮은 일에 말려버렸다. 그것도 생명이 걸린 정도의.
  “옆 마을 어디?”
  “명일.”  
  “우리 둘이서 가는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조금 안심했다. 단체 임무라면 슬쩍 묻어가면 되겠지.
  “트럭 운전기사를 포함해 야와 나까지 세 명이야.”
  맙소사.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둔촌에서 명일까지의 거리는 차를 타면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문제는 마을 간 도로를 점거한 괴물들. 그들에게 들키지 않는다면 이 임무는 무척이나 손쉽겠지만, 전투가 벌어진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캡슐은 상당히 고가의 물품이기 때문에 전투 중 파손되더라도 상당히 난감하다.
  “이런 중요한 임무를 왜 우리한테….”
  “내가 달라고 했어. 야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으니까.”
  “한 적 없거든? 학교 가고 싶거든!”
  달라고 했다고 주는 것도 이해가 안 가.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늦었어. 가서 기념품이라도 사오자.”
  믿기지 않을 정도의 태평함이다. 아민이가 그렇지 뭐.
  예정 출발 시간은 7시. 그렇게 아민이와 조금 더 수다를 떨다 마을 입구로 향했다.
  트럭은 순탄하게 도로를 달렸다. 캡슐이 단단히 고정되어 있고 나와 아민이 그 옆에서 주변을 살폈다. 앞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지만 아민은 거절했다.
  10분 쯤 지났을 무렵, 처음으로 괴물이 나타났다. 하늘을 나는 독수리 형태의 괴물이었다. 다행히도 우리에게 관심은 없는지 이내 먼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공중을 나는 적은 역시 껄끄러우니까.
  “야.”
  “왜?”
  “학교에 여자 많아?”
  “우리 반은 절반 쯤 되는 것 같던데?”
  짧은 정적이 흘렀다.
  “야.”
  “왜?”
  “야한테 접근하는 여자 많아?”
  “접근? 음. 세 명 정도인가. 아니 굳이 따지자면 한 명은 내가 먼저 접근했나.”
  “그래.”
  어쩐지 아민이의 표정이 굳은 것 같았다. 이제야 긴장이라도 한 걸까.
  침묵 속에 다시 10분이 흘렀다. 중간에 들개형 괴물의 추적이 붙기는 했지만 트럭의 속도를 올려 간신히 떨쳐낼 수 있었다.
  트럭이 멈췄다. 도로 한 가운데를 인간형 검은 그림자가 지키고 있었다. 최악이다. 인간형 괴물은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게 지능이 꽤 높은 편이다. 종류에 따라 동물 형태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소리쳤다.
  “무시하고 달려주세요!”
  트럭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옆을 스쳐지나가는 순간 괴물이 타이어에 발차기를 했다. 타이어는 그대로 터져버렸다.
  대비하고 있던 아민이가 먼저 움직였다. 트럭에서 뛰어내리며 작은 원형 방패를 소환, 그대로 괴물의 머리를 내리쳤다. 괴물이 비틀거렸다.
  “예비 타이어 있죠? 빨리 갈아주세요!”
  나는 한 번 더 소리를 지르고 주머니에서 손가락 크기의 검 모형을 꺼냈다. 소환. 아민이를 향해 날아가던 괴물의 손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놈은 재빠르게 몸을 뒤로 날렸다.
  그 사이 운전기사는 타이어를 갈기 시작했다. 이길 생각은 없다. 조금만 버티면 도망 칠 수 있어!
  괴물의 발차기가 날아왔다. 나는 살짝 몸을 뒤로 뺐다. 빈자리를 아민이가 치고 들어오면서 전신 크기의 방패를 소환, 공격을 막아냈다. 얕은 신음을 토한 아민이는 방패를 원래의 작은 크기로 돌려놓았다. 그 틈을 타서 아민이를 살짝 비껴 칼을 찔러 넣었다. 칼은 괴물의 어깻죽지에 깊이 박혔다.
  칼을 뽑는 대신 재빠르게 뒤로 달렸다. 거리를 확보하고 이번에는 모형 총기를 소환했다. 아민이는 연달아 방패를 만들어내며 괴물의 공격을 막아냈다. 하지만 괴물과 아민이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총을 쏠 수 없었다.
  “아민아!”
  내가 소리침과 동시에 아민이가 뒤로 뛰어 거리를 벌리며 온몸을 방패로 둘러쳤다. 곧바로 난사를 시작했다. 아민이의 방패는 총탄 정도는 가볍게 막는다. 총알세례에 정면으로 노출된 괴물은 크게 울부짖었다.
  그리고 놈의 동물화가 시작되었다. 만약 맹금류나 맹수로 변한다면 승산은커녕 도망치기도 힘들어진다. 타이밍 좋게 운전기사가 신호를 보냈다. 나는 연사를 그만두고 트럭을 향해 달렸다. 아민이도 방패를 원래 크기로 돌려보내고 뛰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트럭 뒤에 올라탔을 때 괴물은 변신을 완료했다. 거대한 거북이였다. 방어력은 좋지만 다행히도 속도는 느리다.
  살았다. 하고 아민이가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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