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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스


리버스 6화


  도착한 마을은 캡슐이 부족해 훈련소도 없을 정도의 작은 곳이었다. 학교 프로젝트에도 뒤늦게 참가가 결정 되어 우리 마을에서 여분의 캡슐을 빌린 것이라고 아민이는 설명했다.
  교관의 집에 배송을 마치고 우리는 마을로 돌아가는 대신 상점가에 들렸다. 잃어버린 칼을 새로 사고 써버린 총탄을 보충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무기점이 없었다. 골목을 구석구석 뒤졌고 지나는 사람들에게도 물어봤지만 모르겠는데요. 없는 걸로 알아요. 같은 대답만 들을 뿐이었다.
  “어쩌지.”
  한창 무기를 못 사면 괴물과는 어떻게 싸우느니 하는 불만을 내뱉은 본심이었다. 잠잠히 내 말을 듣고 있던 아민이는 몇 가지 제안을 했다.
  “그냥 돌아갈래? 가는 길에 괴물을 안 만나면 그만이고.”
  “그게 맘대로 되냐.”
  “내 꺼 빌려줄까?”
  “넌 방패밖에 없잖아.”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무기고는 있을 텐데. 아까 만난 교관한테 빌려달라고 하면?”
  솔직히 말해서 빌려줄 것 같지는 않다만, 일단 뭐라도 해보는 수밖에. 나와 아민이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사정은 이해하지만 역시 곤란하다.”
  칼 같은 대답이었다. 마을 공용 무기는 엄중히 관리되기 때문에 외부인에게 쉽게 내어줄 수 없다는 정설만을 들을 수 있었다. 큰 기대도 안했기에 순순히 납득하고 다른 방법을 찾으려 나가던 찰나 교관이 말했다.
  “창고를 뒤져보지. 검 한 자루 쯤은 있을지도 모른다.”
  교관은 우리더러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자리를 비웠다.
  교관이 모습을 감추자마자 기둥 뒤에 숨어있던 중학생으로 보이는 짧은 트윈테일의 어린아이가 쪼르르 달려왔다.
  “오빠랑 언니가 캡슐을 가져온 사람이에요?”
  “어, 맞아.”
  “와 대단하다. 아빠는 마을 밖으로 저를 나가지 못하게 해요. 괴물들이 많다고. 오빠랑 언니는 괴물들을 싸워서 이 마을까지 온거죠?”
  “응, 그래.”
  싸우기는 했지. 정확히는 도망쳤지만.
  “돌아갈 때 저도 데려가 주실 수 있나요. 마을 밖을 보고 싶어요.”
  “아, 물론. 이 아니라 그건 곤란한데.”
  “역시 그런가요.”
  소녀는 순식간에 시무룩해졌다.
  아민이가 나서서 소녀를 달래기 시작했다.
  “오늘 우리를 따라가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어. 교관, 아니 네 아버지를 오래 동안 못 보게 될지도 모른 단다?”
  “우, 그건 싫어요.”
  소녀가 더욱 시무룩해졌다. 아민이가 도움을 요청하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나더러 뭘 어쩌라고.
  “하지만 괜찮아요. 이제 조만간 마을이 아닌 세상을 볼 수 있게 되니까.”
  다행히도 소녀는 금새 기운을 되찾았다. 그리고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그런데 왜 다시 오셨어요? 두고 가신 물건이라도 있으신가요?”
  “교관님에게 무기를 빌릴 수 있을까 해서.”
  “무기가 필요하세요? 잠깐만요!”
  소녀는 다다닥하고 방으로 달려갔다. BB탄 총이라도 가져오려는 걸까했지만 소녀는 작은 검 모양 액세서리를 들고 돌아왔다. 의외로 제대로 된 무기였다.
  “괜찮다면 써보실래요?”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소환했다. 이전에 쓰던 칼보다 조금 가볍고 길이도 짧았지만 상당히 괜찮은 검이었다. 몇 번 휘둘러보고 다시 크기를 작게 돌렸다.
  “나쁘지 않긴 한데. 이걸 빌려줘도 되는 거야?”
  “네! 대신 이 마을에 언젠가 한 번 더 와주세요! 칼은 그때 돌려주시면 돼요!”
  두 손을 모으고 내가 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멍하니 보던 소녀는 눈을 크게 뜨고 대답했다.
  여러모로 고민해 봤지만 역시 받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 어린 소녀가 검을 잡아야 할 일도 없을 테고. 나는 액세서리를 주머니에 넣고 소녀에게 말했다.
  “정말로 고마워. 덕분에 살았어.”
  “도움이 되어서 다행이에요.”
  소녀는 헤헤 하고 웃었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이 마을의 교관님이 돌아오셨다. 무기가 될 만한 것은 찾지 못했다고 말한 교관은 소녀에게 칼을 받았단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그 칼이 있었군. 무기 없이는 조금 걱정이 되지만. 아무튼 소이를 잘 부탁하네.”
  이름이 소이였구나. 잘 부탁한다는 건 무슨 소리일까.
  교관님에게 인사를 하고 트럭이 주차된 곳까지 걸어갔다. 소이는 마중을 하겠다고 끝까지 따라왔다. 아민이와 트럭 뒤편에 앉았고 시동이 걸렸다. 트럭이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했다. 소이에게 손을 흔드니 그녀도 손을 흔들며 크게 외쳤다.
  “앞으로…… 저를 꼭 지켜주세요!”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이 마을의 선발학생은 소이라는 걸. 게임에서 사용해야 할 무기를 나한테 넘겨주었다는 것도.
  트럭은 순탄하게 마을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나 평화는 잠시. 아까 만났던 거대 거북을 좁은 길목에서 다시 마주치고 말았다. 무시하고 옆으로 지나가기는 힘든 상황. 거북은 우리를 발견하고 느릿하게 이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거북 옆에는 피 묻은 채 부러진 검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가자.”
  아민이가 먼저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거북 같은 생물은 방패로 상대하기 어려울 텐데. 아민은 자기 몸 크기의 방패를 소환. 모서리로 거북이의 등을 찍어버렸다. 그러나 데미지를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머리를 노린 방패의 일격. 거북은 재빠르게 몸을 움츠려 공격을 피해냈다.
  “아민!”
  아민이가 물러나는 동시에 나는 총을 소환. 남은 탄환을 전부 쏟아 부었다. 껍데기 안을 맞춘 총탄도 있었지만 죽이진 못했다. 거북은 다시 고개를 내밀고 천천히 기어오기 시작했다. 아민은 거북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뒤쪽에서 방패 공격을 계속했다. 거북이 몸을 돌리는 사이 나도 검을 소환하고 트럭에서 뛰어내렸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민의 방패도. 내 총탄도 막아낸 거북이의 등껍질을 이 검으로 베어낼 수 있다는 그런 느낌.
  거북의 다리를 노리던 궤적을 바꿔 그대로 껍데기를 내리쳤다. 검은 그대로 거북의 몸을 파고들었다. 너무나도 간단하게, 괴물은 죽어버렸다.
  아민이가 어안이 벙벙해져서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내가 대답할 수 있을리 없었다. 몰라. 하고 말한 뒤 검을 칼집에 꽂아 넣고 원래 크기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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