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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게 피는 소리(시 모음)


그들은 약한 자 앞에 서지 않는다


1

들어오기 무섭게 눈을 굴리며 적합한 먹잇감을 노린다. 파마한 머리는 염색이 덜 됐는지 군데군데 희끗한 머리가 보이고, 자신들끼리는 큰 소리로 떠들면서도 중고생이 수다떠는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 눈에는 번쩍이는 금테 안경, 입술에는 시뻘건 립스틱, 두 볼에는 묻어날 듯 쳐바른 분가루, 예외없는 치맛바람. 가끔 아이라도 하나 동반하면 효과는 최상이다. 지하철 계단을 두 단씩 올라오면서도, 버스가 출발하려 하면 총알처럼 뛰어오면서도, 막 딴 은행 두세 봉지쯤 가볍게 들면서도, 건강을 위해 산 한바퀴 휘돌고 귀가하는 길이면서도 어째서 그들은 앉은 우리에게 혹은 노골적으로 혹은 은근하게 압력을 주는 것인가.

 

2

(엉거주춤하게 일어서며) 할머니, 여기 앉으시죠.

(어색하게 웃으며) 아니 젊은이, 나는 괜찮은데, 괜찮은데, 괜찮은데…

(그러나 젊은이는 노인의 눈빛에 눌려 앉지 못하고 자리를 뜬다)

 

3

너희도 늙어봐라

우리때는 안그랬나

늙은이 경멸하고

경로석에서 버텨봤자

허덕허덕 살아가고

결혼해서 애낳고

손주보고 쫓겨나고

사업하고 쏘다니고

한 사십년만 하면

나같은 혹은 나같은 아내

데리고 살게 될 것을

요샌 좀 덜한 편이지만,
아직도 근근히 보이는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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