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이 넘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곤란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상당히 많다고 볼 수도 있다. 하여튼 살아온 세월이 세월이니까.
이를테면, 이레귤러 소굴 한가운데에서 인질을 구출해서 돌아오던 수송선이 추락해버렸을 때라거나.
이를테면, 저번에 이레귤러에게 납치당해서 구해왔던 동료가 같은 놈에게 다시 납치당했을 때라거나.
이를테면, 새로 들어온 오퍼레이터가 전파방해 뚫는 법도 모르는 초짜라 방향지시도 없이 임무수행할 때라거나.
이를테면, 전송 장치가 고장나고 '우연히' 수송기들도 다 같이 수리가 필요해져서 현장까지 뛰어가야 했을 때라거나.
이를테면, 겨우 고친 전송장치가 고장나서 바다 한가운데에 떨어졌을 때라거나.
아무튼 크고 작은 일 다 합치면 '곤란했던' 적따윈 셀 수도 없이 많이 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그 동안 있었던 '곤란했던 일'들과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면서도, 난이도는 압도적으로 높았다. 단언하건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곤란했던 순간 BEST 5」안에도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도대체 뭐가 잘못되서─
"아, 찾았다, 우주인 군!"
… 이런 일이 된 걸까.
『12시간 전』
엑스는 공중을 부유하고 있다. 빌딩과 빌등을 넘나들면서.
물론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지금 그가 등에 엎고 있는 소녀─루시퍼에게 습격받고 의식을 잃어버린─를 내려놓을 곳을 찾고 있는 것 뿐.
너무 인적이 없는 곳에 내려놓는 것도 역효과가 될테니까, 우선은 인적없는 곳에 착지한 후 적당한 건물 앞에다 내려놓을 생각이다.
'혹시 이곳에도 이레귤러 헌터나 치안대같은 조직이 있을까. 그러면 거기다 맡겨두면 될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눈으로는 적당한 장소를 찾는다.
그리고, 그때였다.
엑스가 엎고 있는 소녀… 야가미 하야테가 눈을 뜬 것은.
"…… 으, 응…… 에… 에?! 뭐꼬, 이기?! 여기 어데고?!"
"?!"
어째서?!
기절했을 때 관찰한 상태로 봐서, 다소의 진동이 있다고 해도 쉽게 눈을 뜰만큼 가볍게 의식을 잃었던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앞으로 몇시간은 깨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일부러 진동과 바람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스톰 이글리드의 힘까지 사용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 쪽이 아니었다. 자신이 지금 '한밤중의 하늘을 날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소녀가 비명을 지르며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와아, 와아, 와앗?! 내려줘! 아니, 내리지마! 아니, 그보다 지금 어떻게 하늘에 있는거야?!"
"아니, 그렇게 날뛰면……!!"
큰일났다. 뒤에서 마구잡이로 날뛰기 시작한 탓에 고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상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떨어졌다간 어찌될지 뻔한 일. 자신이야 상처가 없다고 치더라도 소녀는 무사하지 못한다.
이쯤에서 엑스는 이를 악물고 결단을 내렸다.
─에어 대쉬로,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의 벽에 발을 붙인다.
"으에에엣?!"
귀 옆에다 대고 비명을 지르는 것에 뭐라고 하려다가 그만뒀다. 어차피 지금 이 상황에서는 들리지도 않을테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엑스는 소녀를 무시한 채 하려고 했던 일을 계속한다.
벽에 붙인 발은 비록 속도는 느릴지언정 계속 아래를 향해 미끄러지고 있었다. 당연한 일일까, 이 세상에는 중력이라는 게 있으니까.
하지만 엑스가 지금 하려는 일은 그 중력을 거역하는 일이다.
─발이 미끄러져내리던 상태에서 힘을 가해 뛰어오른다. 수직으로, 위를 향해.
'벽 차기'라고 불리는 이 곡예는 전투형 레플리로이드 중에서도 한정된 전사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물론 엑스는 이보다 더 상위의 기술인 '삼각 차기'도 가능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선 벽 차기만으로 충분하다.
"$#%*#@$&%*$*#*$**$@#$%$@"
다시 뒤쪽에 엎고 있는 소녀에게서 뭔지 모를 비명이 터져나왔지만 무시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귀도 미리 막아뒀으니까 아무 문제없음.
… 아니, 정말로 아무 문제없는걸까 엑스 본인도 의문이 들긴 했지만 신경쓰지 말자. 엑스는 귀찮은 일을 전부 미래의 자기 자신에게 떠넘기고 현재의 자신은 지금 해야할 일에 신경쓰기로 했다.
벽을 차고 뛰고, 벽을 차고 뛰고, 벽을 차고 뛰고, 벽을 차고 뛴다.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혔다 싶자, 벽 차기를 그만두고 허공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부스터로 공중을 향해 상승.
눈 깜짝할 사이에 빌딩을 넘어서버린 엑스는 일단 기세를 줄이고 다시 떨어져내려, 빌딩의 옥상 위에 착지. 그대로 달렸다. 어차피 깨버린 거, 더이상 눈치볼 것도 없으니까 그냥 이대로 '적당한 곳'을 찾아낼 생각이었다.
옥상 위를 달려, 단숨에 난간 위로 올라서 주위를 둘러본다. 적당히 불빛의 숫자가 적은 곳을 찾고, 그쪽을 향해 뛰었다.
그 상태에서 다시 에어 대쉬. 벽에 부딪힐 것 같으면 벽 차기로 방향을 수정하고 그쪽으로 향한다. 그러기를 약 2분. 시간상으로는 얼마 되지 않지만, 그 동안 엑스는 100회에 달하는 점프를 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이 적은 거리를 찾아내고 그 근처에 있는 골목길에 있는 건물 위에 떨어진다.
그 건물 위에서 다시 아래로 몸을 던져, 벽에 발을 대고 미끄러지듯이 감속. 안전하게 땅에 착지하는 것에 성공하는 것으로, 짧은 여행을 끝마쳤다.
'… 괜찮으려나.'
이제와서 새삼 걱정하는 것도 우습지만, 다치거나 놀라기라도 했다면 이쪽의 뒤끝이 좋지 못하니까.
고개를 뒤로 돌려서 바라본 소녀의 얼굴은 입을 살짝 벌리고 눈을 크게 뜬 채 굳어있는 상태. 하지만 다행히 딱히 상처나 이상이 있는 것 같진 않았기에, 엑스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엑스의 몸이 푸른 빛에 일순간 휩싸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전투 모드를 해제하고 '인간'의 모습을 한 엑스가 서 있었다.
그 상태로 엑스는 소녀를 엎은 채, 골목길을 나서 거리로 나갔다. 그리고는 발견한 벤치 위에 소녀를 내려놓고, 몸을 돌렸다.
작은 사건 하나는 이걸로 끝났고, 이제부터는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자세히 알아보는 게 우선─
─이라고 생각하고 몸을 움직이려는 찰나.
─작은 저항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 벤치에 내려놨던 소녀가 머리를 숙인 채 손을 뻗어 자신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
"……"
"… 저기."
엑스가 먼저 입을 열었고.
소녀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소녀의 얼굴은, 실로 초롱초롱하기 그지없는 눈망울로 빛을 발하다시피 하고 있다.
소녀는 숨을 들이쉬더니, 결코 크지 않은 목소리로… 하지만 확실하게 말했다.
"우주인이제?! 우주인 맞제?!"
"…… 하아?"
지금 이 시점에서의 엑스가 알지 못하는 일이 하나 있다.
엑스의 등에 엎혀, 결코 단시간에는 깨어나지 못할 잠을 자고 있던 소녀.
그녀가 깨어나기 직전.
─그녀의 집에 있는 한권의 책이, '빛'을 발했다는 것.
IRREGULAR HUNTER - X
2화
『현재』
"… 내가 여기있다는 건 어떻게 안 거야?"
엑스는 누워있던 나뭇가지 위에서 일어나 밑으로 뛰어내려, 하야테의 앞에 내려선 다음 그렇게 말했다.
이 소녀와 헤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2시간 전. 무지 시끄럽게 구는게 건강해보이길래, 엑스는 가장 간편한 방법을 택했다.
─벽 차기와 에어 대쉬를 최대한 활용하여,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뒤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들렸지만 깨끗이 무시하고, 이번엔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는 장소를 찾아서.
어차피 하룻밤만 넘기고 다른 장소를 찾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장소의 편안함이나 거리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발견되버린 모양이지만.
"에, 어쩐지 모르게─ 라고 말하면 믿어줄래나."
"절대로."
"역시 그렇제…"
하지만 진짠데. 하야테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휠체어를 움직였다.
"근데, 와 이런 데 있노?"
"뭐?"
"있을 거 아이가. 비밀기지."
"…… 왜 그렇게 생각하는건데?"
"외계인이다 아이가."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들어올리며 상큼하게 웃어보이는 소녀를 보며, 엑스는 상당히 기묘한 감각에 휩싸였다.
그 감정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때려주고 싶다" 정도일까.
"…… 외계인 아니거든."
"어, 그라믄 초능력자가? 역시 어딘가의 비밀 조직에 소속되있어서 외계인이나 이차원의 침략자라던가 상대로 싸우거나?"
대답하는 것도 성가셔졌다.
"비밀기지 같은 건 없고, 난 외계인도 초능력자도 아냐."
"어? 그라믄 어제 그건 뭐고? 하늘 날라댕겨놓고."
정확히는 비행이 아니라 대쉬한 거지만, 거기까지 설명해줄 이유는 없고 생각도 없다.
엑스는 하야테의 말에 한숨을 쉬며, 가수면 모드를 헤제했다. 그리고는 다시 신체를 체크. 자동 회복이 진행되고는 있었지만 그 속도는 상당히 더뎠다. 물론 그 원인은 지난밤 루시퍼에게 공격당한 것의 데미지가 아직도 남아있는 탓. 까놓고 말해서 가수면 모드로 휴식을 취한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두통은 꽤 사그라들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약간 남아있고.
그 최흉의 레플리로이드는, 완전히 파괴되기 일보직전이었던 상태에조차 눈앞의 적─엑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만약 그것이 완전한 상태였더라면. 만약 그것을 엑스가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만약 그것이 그대로 시내에 진입했더라면.
… 생각하기에도 끔찍한 상상이 계속해서 연상된다. 자신이 아르카디아에서 맞서싸웠던 루시퍼의 전투력을 감안했을 때, 설령 자신이 루시퍼를 제압했다 하더라도 이 도시 전체가 쑥대밭이 되버리는 정돈 각오해야했을 지 모른다. 무엇보다 어제 싸웠던 루시퍼는 이성이나 지성이라고 할만한 것이 보이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자랑인 동시에 주력 병기였던 12장의 광익(光翼)들을 모조리 잃어버린 상태였으니까. 애초에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기동 포격전으로 몰고가는 것을 주특기로 하는 녀석이 몸으로 부딪혀온 시점에서, 얼티밋 아머를 제외한 무장이 거의 그대로 남아있는 이쪽이 유리한 입장이었다.
즉, 루시퍼를 상대로 사상자가 없이 끝났다는 것 자체만으로 운이 좋은 편에 속한 거였으니까 몸이 다친 정도로 투덜거리지 말자. 엑스는 그렇게 결론을 지었다.
… 그건 그렇다치고.
이 아이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어제 그거는 뭐고? 역시 외계인 아이가? 아니면 다른 세상에서부터의 침략자라던가?"
외계인… 은 아니지만, 뒤의 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네. 엑스는 한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자아를 잃은 상태였던 루시퍼에게 침략 의사가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한 행위는 그리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이때의 엑스는 아직 알지 못했다.
이 이후에 일어날 일이 엑스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여하튼 엑스는 이 세계에 도착한지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인 이방인이고, 무엇보다 제대로된 정보매체를 접하지 못해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알지 못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발언이 이 세계 사람들에게 있어서, 얼마나 '비정상적인' 이야기인지 인식하지 못했다.
… 그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경솔했다는 건 사실이지만.
"전자는 완전히 아니고, 후자는… 아주 틀린 건 아니네."
그렇기에, 이런 발언을 해버렸다.
'외계인'도 나타나지 않고.
'다른 세계'와의 연결도 확인되지 않아서.
'그런 쪽의 존재'는 곧 '비정상'이라고 연결되는 이 세계.
그 세계의 일원 중 하나인, 눈앞의 소녀에게.
한동안, 야가미 하야테는 멍한 표정으로 엑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별안간 고개를 푸욱하고 숙인다.
"……?"
어딘가가 아픈 걸까. 하지만 어제 살짝 스캔해본 바론 별 이상 없었는데?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소녀가 고개를 들어올렸을 때, 엑스의 머리 속에 "뭔가 실수했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소녀는 웃고 있었다.
그것도, 지금까지 본 적 없을 정도로 눈을 빛내면서.
"그거 진짜제?!"
"… 어?"
정신을 차렸을 때, 엑스는 어느 사이엔가 소녀에게 붙잡혀 맹렬히 흔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진짜제?! 진짜제?! 진짜로 어제 그건 외계 침략자인거제?! 그럼 나는 그거가?! 일본에서 최초로 외계인─ 다른 세계 사람이랑 퍼스트 콘텍트?! 우와아, 다른 세계 사람이라는 게 진짜로 있는 거였구나!!"
… 뭔가 대단히 혼란스러워졌다. 더불어, 엑스 자신의 머리도 아파오기 시작한다.
"어? 그럼 그쪽은……"
하야테는 한참동안 엑스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리고는 아까 이상으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꺼낸다.
"그래서, 어느 쪽이고?"
"… 뭐가?"
"1번 우주 범죄자를 쫓아서 지구에 온 우주 경비대. 2번 다른 세계에서 지구 침략하러 온다는 거 알고 막아주러온 외계의 왕자님. 3번 정부가 비밀리에 만든 조직의 초능력 전투요원. 4번 어떤 과학자가 만든 대(對) 외계침략대응용 안드로이드. 다른 보기 더 필요하나?"
…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이 아이는.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건지 알아듣기는 했다. 다만 왜 이 시점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이해를 못했을 뿐.
"굳이 분류하자면 4번인데."
"아, 역시."
"… 역시라니?"
"어제 하늘 날 때 발에서 불 나왔다 아이가. 초능력치곤 좀 이상하다 했드만."
발에서 불이라니, 그게 그런 식으로 보일 수도 있는 거였구나.
에어 대쉬를 사용하는 본인이기에 신경쓰지 않았지만, 비쥬얼적으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 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직후, 엑스는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냈다.
"미안하지만."
"응?"
"이 근처에 데이터 베이스가 있으면 길을 가르쳐줬으면 하는데. 단말기가 있으면 더 좋고."
"… 데이터 베이스?"
"정보 입수가 쉬운 곳이라면 굳이 데이터 베이스가 아니더라도 상관없지만."
그 말을 들은 하야테는 두어번 눈을 깜빡이더니, 손을 위로 높이 들어올려 엑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 이건, 무슨 의미야?"
"괜찮데이, 괜찮데이. 내 다 안다 안카나."
"…… 에?"
"그러니까 그거 아이가. 연구소 안에만 틀어박히는 바람에 일반 상식같은 거 모르니까 좀 배워야겄다, 그거제? 걱정말그라. 다 이해한다. 다른 사람들한텐 절대 말 안할테니께, 내 믿고 따라오그라. 대신 나중에 제대로 다 이야기해주는 거 잊지 말고."
사람의 웃음을 보고 오한이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엑스는 실로 오랜만에 체험했다.
이후 하야테가 데려다준 '이 세계의 데이터 베이스'. 즉, '도서관'에 들어간 엑스는 소리없이 절규했다.
책.
나무를 원료로 한 '종이'라는 물건으로 만들어진 구 시대의 기록 보관 장치.
관리도 힘들고 부피도 크고 무게도 있는데다 무엇보다 저장할 수 있는 자료가 너무나도─엑스의 관점으로─ 적은 비효율적인 인터페이스.
아르카디아에서는 이제 찾아볼수도 없는 물건이며, 엑스조차 100년 전 케인 박사의 서재에서밖에 구경 못해본 물건.
그것들이 지금 엑스의 눈앞에 가득 펼쳐져있다.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서는 전용 서가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되고 원하는 정보가 적힌 책자를 정확히 구하지 못하면 볼 수도 없으며, 무엇보다도 작자의 개인적인 시점에서 적혀진 것들이 많기 때문에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는 그 '책'들이.
※지극히 편협적이고 지극히 편집적이며 지극히 편파적인 시점에서의 이야기입니다.
"…… 일단, 찾아나 보자."
그 후 엑스는 '역사' 항목부터 시작하여, 천천히 훓어나가기 시작했다.
엑스가 1권의 책을 읽는데 걸리는 시간은 약 30초. 5시간 정도가 지나, 해가 서서히 지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얻고 싶었던 정보의 대부분을 얻은 상태였다.
'데이터 칩 1장 분량의 정보를 얻는데 이렇게 오래 걸리다니…'
비효율에도 정도가 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무튼 정보를 얻는데 성공한 것은 사실이니까 더이상 따지지 않기로 했다.
이 세계는 아르카디아와 상당히 비슷했다. 단, 아르카디아 쪽의 시간을 200년 정도 뒤로 감은 후에 비교한다는 전제 하에서.
이 세계에 레플리로이드는 없다.
'로봇'이라고 하는 존재는 있지만,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그다지 뛰어난 존재라고 하긴 어렵다.
전신이 기계(유기체계가 섞여있다곤 해도)이면서,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한 자신과 같은 '것'은 존재 자체가 이질.
─이 세계에 있어서는, 자신이야말로 '이레귤러'다.
"어차피 '다른 세계'라는 시점에서 이미 이레귤러겠지만."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지막으로 본 책을 책장에 꽂아넣는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비슷하다곤 해도, 분명 이곳은 아르카디아와 다른 곳이었다. 문화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저쪽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종교'라는 물건도 여기에는 많고.
하지만 소녀… 하야테가 말했던 우주인이라거나 외계인이라거나 하는 존재는 가공의 존재로 취급받고 있었다. 이것을 발견한 시점에서 엑스는 자신이 쓸데없는 소리를 경솔하게 했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제 '그런' 장면을 보여줬으니까 말로 넘어가긴 어려웠겠지만 그렇게 대놓고 정체를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엑스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세계'의 존재조차도 알지 못하는 이 세계에서, 아르카디아로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엑스의 연산 능력이 낮은 축이었다면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유감스럽게도 전 레플리로이드 중에서도 연산 능력이 대단히 높은 편에 속하는 그의 회로는 그 질문을 떠올린지 0.1초만에 부정적인 대답만 20가지 이상을 내놓았다.
물론 정보를 얻으면서 생각했던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에서 "핵미사일"이라고 부르는 무기를 10개 정도 동시에 터트리거나, 반물질을 이용한 폭발을 일으키거나 해서 그 폭심지에 노바 스트라이크로 돌진하면, 적어도 자신이 아르카디아에서 루시퍼와 부딪혔을 때 정도의 충격은 나온다. 그걸 어떻게 이용하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돌아가기 위해서라고 해도 이 세계에 거기까지 피해를 입힐 수는 없다.
'당분간 머물면서 방법을 찾는 수밖에 없나…'
또다시 저쪽에 이레귤러 사건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 걱정되긴 하지만, 그 정도의 일이 터진 직후다. 아마 앞으로 얼마간은 아무 일 없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설립 초기와 달리 지금의 이레귤러 헌터 베이스는 엑스의 원맨팀이 아니다. 자신이 부재 중이라고 금방 무너질만큼 약하게 키운 기억은 없으니까, 당분간이라면 문제없겠지.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여기에 있는 것이 '당분간'이 아니게 될 경우다. 최악의 경우에는─
"…… 거기까진 생각하지 말자."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지 이제 겨우 수 시간이 지났을 뿐이다. 포기하기엔 일러도 너무 이르다.
돌아가는 것을 나중으로 미룰 경우, 지금 가장 급한 건 신체의 회복. 지금 엑스가 받은 데미지는 아까 취했던 가수면같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꽤 시간을 들여서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낫긴 커녕 현상유지도 어려운 상태다.
우선 찾아야할 것은 무방비 상태로 쉴 수 있는 곳. 다른 것은 몸 상태를 완전하게 만든 다음 생각하자.
그렇게 결론을 지은 엑스가 발걸음을 돌렸다.
"……"
"……"
"…… 어째서 네가 여기에?"
"도서관에 드가서 소식이 없으니 말이제."
"얼마나 기다렸는데?"
하야테는 시계가 있는 방향을 돌아보고는 이야기했다.
"1시간쯤."
… 어째서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했던걸까. 알았다 하더라도 별 뾰족한 수는 없었겠지만.
엑스는 한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숨을 푹 쉬고는 하야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응? 뭐가?"
"이유가 있으니까 기다렸겠지?"
"으~~~~~~응…"
팔짱을 끼고, 한참동안 신음을 흘리던 하야테는 이렇게 대답했다.
"없는데. 딱히."
"…… 이쪽은 진지하니까, 농담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하지만, 이유랄까 진짜 없는데. 그렇게 큰 집에 돌아가도 혼자서는 할 일도 없고 해서 병원갔다가 여기 온 것 뿐이라서."
"친구라던가 있지 않아?"
자신과 같은 레플리로이드는 물론이고 인간에게도 친구라고 하는 존재는 있다. 그것을 생각하며 엑스는 하야테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생각 외로 무거웠다.
"없는데."
"………… 뭐?"
"그게, 다리도 이렇고해서 다니는 곳도 병원 근처로 정해져있으니까… 그런 데에는 애들이 잘 안오거든. 그게 그런 느낌이래서…"
라고 말하면서, 멋쩍은 듯이 웃는 소녀에게 뭐라고 대답해야할까.
유감스럽게도 엑스의 회로는 그에 대한 대답까지 해줄 수 있을만큼 감성적이지 못했다.
엑스가 대답을 고르느라 조용히 있자, 하야테는 여전히 웃어보이며 말했다.
"괘안타, 괘안타. 혼자 지내기 시작한지 꽤 오래 됐으니까."
"……… 그래."
가볍게 한대 치면 목숨을 잃어버릴만큼 어리고 연약한 소녀.
하물며 보행 장애이기까지 한 아이가 '혼자' 지낸지 오래 됐다고 하는 건 무슨 사정이 있다고밖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엑스는 어디까지나 '타인'. 섣불리 프라이버시를 파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걱정은 되지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없으니까.
"그래서, 찾던 건 찾았나?"
"그럭저럭. … 그러고보니, 여기에 올 수 있었던 건 네 덕분이었구나. 고마워."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숙이자, 하야테는 살짝 놀란 얼굴을 했다.
"… 왜 그래?"
"아니, 인사 들을 줄은 몰랐응께. 어제의 그걸로 봐선 꽤 무뚝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난 밤 살짝 거칠었던 건, 엑스 자신이 이런저런 문제로 타인에게 신경쓸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녀에게는 어제 본의 아니게 꽤 심한 짓을 해버리기도 했고, 오늘 이렇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감사의 인사만이 아니라, 가능하면 뭔가 보답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럴 형편이 못된다.
"뭔가 답례라도 하고 싶지만, 지금은 가진 게 없어서. 하지만 나중에 어떻게든 갚아줄테니까 지금은 용서해줘."
"아니, 그니까 딱히 그런 거 바란 게 아니고─"
거기까지 말하는 순간 하야테는 입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 뭔가 보답으로 받을 거라도 생각이 난걸까. 그렇다면 엑스로서는 오히려 나쁘지 않은 이야기지만, 이 세계의 금품같은 걸 요구하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말했다시피, 가진 게 없으니까.
최소한 신체 노동 정도로 메울 수 있는 일을 요구해오면 좋겠는데─ 라는 되도 않는 상상을 하는 동안, 하야테는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까 요새는 이 근처도 참 흉흉하다 안카나."
"…… 어?"
"어딘가의 동물 병원이 반쯤 무너지기도 했다는 소리도 있고."
"……"
"그러니까, 꼭 보답해주고 싶으면 우리 집까지 좀 데려다줬으면 좋겠는데."
뭐야, 그런 건가. 엑스는 작게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때의 결정이. 이때의 대화가.
엑스와 하야테의─ 나아가서는 이 세계의 운명을 크게 뒤트는 '방아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