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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RREGULAR HUNTER -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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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야가미 하야테는 보통의 관점에서 보자면 불행한 소녀다.
선천적으로 다리에 장애를 앓고 있어 휠체어에 의지하며, 철이 들기도 전에 부모가 사고로 숨을 거두어 고아가 되었다.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이렇다할 만한 친구도 없다. 아무리 생활에 부족함이 없다고 해도, 그것은 틀림없이 '불행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불행한 소녀' 하야테는 요즘들어 매일매일이 싱글벙글이었다. 특히 요 1주일간은 그야말로 놀라움의 연속. 이만큼 그녀가 '나 지금 굉장히 즐겁고 행복해요~'라는 기운을 뿜어낸 적은 여지껏 없었다.


그것은, 그녀의 집에 식객 하나가 새로 들어온 다음부터였다.


하야테가 부르던 이름은 엑스. 아마도 별명이겠지만, 본명은 불명. 외견으로 보건대 추정 연령은 14~15세. 처음 얼핏 봤을 때는 소녀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뜯어보니 소년.
그 이외에는 국적 불명, 출생지 불명, 인종 불명(아마도 앵글로색슨계?). 그외 인적 사항 모두 불명.
거기까지 기록한 이시다는 볼펜을 입에 물고 머리를 긁적였다.


"… 얘를 그냥 둬도 되려나 모르겠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우미나리 병원의 의사이자 하야테의 담당의인 이시다는 매우 성실하다. 단순히 하야테를 진료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녀를 위해 이런저런 여러가지 편의까지 봐주고 있다.
하야테의 주변 환경을 알고 있고, 또한 자신을 전적으로 신뢰해주는 가련한 소녀. 그렇기에 그 소녀를 어떻게든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다리 치료에는 지금까지도 계속 여러가지 방법을 시험해보았지만, 전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분명 의학적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고, 트라우마라던가 그런 쪽과도 관계가 없는데.
원인을 알 수 없고, 치료법도 알 수 없는 기이한 병. 물론 그렇다고 단념할 생각은 없다.


메모장에 대충 끄적인 것처럼, 최근의 하야테는 웃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분명 얼마 전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다던 그 소년이 원인이겠지.
확실히 하야테는 그 어린 나이에 혼자서 살고 있다. 평소부터 그 아이에게는 누군가가 함께 있어주는 쪽이 좋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리고 오늘 하야테와 함께 온 그 아이. 사람 보는 눈에는 꽤 자신이 있었기에, 나쁜 녀석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정도까지 정체 불명. 정말로 같이 둬도 되는걸까. 고아일지도 모르고, 혹시 가출한 거나 길을 잃은 거라면 부모가 찾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총명한 아이니까 아무 생각없이 데리고 들어왔을 리는 없겠지만 말이지."


솔직히 곤란한데. 몰랐다면 몰라도, 알아버린 이상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선, 경찰 쪽의 지인에게 연락에서 그런 인상착의를 한 소년의 실종신고가 들어와있는지 물어보자.
만약 가출이나 범죄와 관련이 없다면 그대로 하야테와 함께 지내도록 해도 괜찮을 것이다.


"그 둘, 벌써 상당히 친해진 것 같았고."

 

 

 


"그러고보니까 엑스 군."
"응?"
"옷 필요한 거 아이가?"


이시다가 어떤 고민을 하던가 말던가, 하야테는 저녁식사를 끝낸 후 엑스에게 그렇게 말했다.


"이 집에 여벌 남자아이용 옷은 없고, 엑스 군이 입고 있는 것 하나 뿐이니까."


… 아아, 그러고보니.
하야테에게는 제대로 이야기해준 적이 없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엑스는 다 먹은 식기를 싱크대로 가져갔다.


"하야테."
"응?"
"지금 내가 무슨 옷 입고 있는지 알 수 있어?"
"… 야가 지금 누굴 장님으로 아나…"


은색의 선이 들어간 청색의 와이셔츠와 짙은 바다빛깔의 블루진. 하야테는 눈에 보이는대로 대답했다.
그러자 엑스는 옅게 웃음을 띄우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우리가 공원에서 만났을 때는 뭐 입고 있었는지 기억해?"
"그야 은색 조끼 두꺼운 거랑 하늘색 청바지… 어?!"


색의 배합은 비슷해도 입고 있는 옷의 종류는 달랐다.


"그 전까지 입고 있던 장갑을 분해했다가 재조립한 거야. 형태랑 촉감은 원래 거랑 비슷해도, 아마 제대로 조사해보면 재질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과~연. 오버 테크놀러지란 거네."


하지만 해답을 들었음에도 하야테의 얼굴은 왠지 부루퉁했다.
그것을 본 엑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의류는 비쌀 거고, 그 부담이 없어졌다면 가계부를 직접 쓰고 있는 하야테로서는 기쁜 소식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 돈 문제는 그렇다치고… 갈아입히는 재미가 없어져버렸으니. 틀림없이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


지금 뭔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어째서일까. 이 소녀는 분명 자신의 아군인데 어째서 자신은 그녀에게 한기를 느낀걸까.


"엑스 군?"
"어, 응?"
"사람은 있다 아이가. 꼭 필요하기만 해서 옷을 사는 게 아이데이."
"……?"
"아, 그렇제. 엑스 군은 이쪽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제. 괘안데이, 내 다 가르쳐줄테니까. 하나하나 확.실.하.게."
"……"

 

…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잘 지내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IRREGULAR HUNTER - X



4화


엑스는 고민했다.
옷 문제가 아니다. 그건 그거대로 고민스러웠지만, 자신은 하야테를 믿고 있다. … 믿고 있다고 믿고 싶다.
어쨌든 지금 그가 고민하고 있는 건 다른 문제.
자신이 이곳에 온지도 어느덧 일주일째. 처음에야 익숙해지는데 바빠서 다른데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지만 슬슬 문제점을 깨닫기 시작했다.


자신은 하야테의 집에서 얹혀살고 있다.
자신은 하야테에게 얻어먹고 있다(사실 별 필요는 없지만).
자신은 하야테에게 대단히 큰 신세를 지고 있다.
하지만 하야테는 자신에게 딱히 빚을 지고 있는 것이 없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결론.

 


이거, 그냥 하야테에게 빌붙어 사는 기생충 아냐?

 


지금까지 나름대로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는만큼 그것을 자각했을 때의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본의아니게 '감정을 가진 레플리로이드가 감성적으로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직접 그 몸으로 체감해본 셈.
언제까지고 정신줄 놓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엑스는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데미지는 여전히 남아있었고, 때문에 엑스는 혼자서 이 일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야테를 병원에 데려다 준 후부터 생긴 약 1시간동안의 빈 시간, 하야테에게서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말해진 방에 쳐박혀서.
그리고는 간신히 하나의 결과를 이끌어냈다.


역시 이대로는 미안하니까, 뭔가 일이라도 하자 라는 심플한 대답을.


물론 하야테가 엑스에게 그런 것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명확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감정과 관련된 문제. 까놓고 말해 양심이라는 게 있는 이상 얹혀사는 주제에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수는 없다.
누누히 이야기했다시피, 엑스는 뻔뻔한 것과는 거리가 먼 '선인'이다. 다른 사람의 문제라면 모를까,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고 먹기만 한다는 것─그것도 남에게 빌붙은 채로─이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남은 것은 어떤 일자리를 어떻게 구하느냐, 라고 하는 문제.


"역시나, 인가…"


엑스는 컴퓨터의 모니터에 '담궈'두었던 손을 빼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쪽 세계든 아르카디아든, 신원이 명확하지 않은 사람이 구할 수 있는 일자리라는 건 극히 한정되어있다. 그것이 합법적인 일이라고 하면 더더욱 범위는 줄어든다. 직장 채용 규정이라고 하는 것도 법으로 적혀있는 모양이니까.
비합법적인 일이라고 해도, 문제가 생긴다. 일단 엑스 자신이 그쪽에 손을 대고 싶지 않다는 것은 뒤로 제껴두더라도 현재 엑스의 외견은 14~15세 정도의 인간 소년의 것. 까놓고 말해서 합법적 직장에선 연령 제한에 걸리고 비합법적 직장도 구하기 어렵다.
물론 세상은 넓다. "외견은 어려도 실제 연령은 많은 사람"이나 혹은 그 반대의 경우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주민등록을 위조하면 문제는 해결… 될 리가 없잖아, 어이.
엑스의 사이버엘프화라면 위조 자체는 가볍게 해낼 수 있지만 그건 말할 것도 없이 대단히 중대한 위법 행위다. 아르카디아식으로 표현하자면 당장에 이레귤러로 낙인찍혀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이레귤러 헌터 부대의 대장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고, 1조분의 1 이하의 확률이라도 들통날 경우 큰 문제가 발생할 게 뻔하다. 하야테에게 진 신세를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서 하는 일인데 되려 폐를 끼쳐서야 본말 전도.


해서 일단은 사이버엘프화의 능력을 이용해 인터넷 네트워크에 다이브. 자신이 찾는 조건의 구인 광고를 수색했다. 보수는 다소 적더라도 신분은 묻지 않고 연령도 신경쓰지 않으며 합법적이고 남에게 해를 입히는 일이 아닐 것, 이라는 조건으로.
그러나 이 세상, 그리 달콤할 리 없다. 당연하게도 모니터는 「조건에 맞는 건수는 0개」라는 표시를 당당하게 띄워올렸다.


어째서 복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기능은 있는 주제에 외모를 마음대로 바꾸는 기능은 없는걸까. 스스로를 개조하면서 이런 기능을 덧붙이지 않은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며 엑스는 크나큰 한숨을 다시 한번 내쉬었다.
… 하기야, 이레귤러랑 싸우는데 얼굴을 바꾸는 기능은 필요없으니까.


아니, 아직 절망하기엔 이르다. 뒤져본 건 인터넷 뿐이고 아직 '직접 발로 뛴다'라고 하는 방법이 남아있으니까. 방법이 남아있는데도─ 아니, 설령 방법이 남아있지 않더라 하더라도 포기해서야 이레귤러 헌터로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이제와서? 라는 느낌도 들지만).

 

 

 


"─라는 이유로, ​부​탁​드​리​겠​습​니​다​.​"​
"… 아니, 그렇게 허리 숙여봐야 말이지…"


이시다는 실로 난감한 얼굴로 눈앞의 소년─ 엑스를 바라보았다.
… 하야테가 이 이야기를 듣지 못했기에 망정이지 들었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근데 왜 하필 나한테?"
"외람됩니다만, (이쪽 세계에서)이 문제로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인 분은 이시다 선생님밖에 안계시므로."


하야테를 위해서 일이라도 하는 걸로 조금이나마 갚고 싶다. 의지는 가상하다. 세상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남에게 빌붙어 갉아먹는 구더기들도 잔뜩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그녀라고 해서 "15살짜리 애한테 제대로된 직장을 구해줄"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굳이 그런 걸 하지 않아도 하야테는 아무 말 안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 그건 알지만 그거랑은 관계없이 제 쪽의 양심 문제라고 할까 그냥 놀고만 있으려니까 이런 곳 저런 곳이 상당히 찔려서."


…… 역시 그런 것 때문인가.
예상했던 대로 이 소년의 성격은 첫인상과 그리 빗나가지 않는 것 같다. 어린 나이인데도(물론 사정을 모르는 그녀의 눈으로 봤을 때. 실제 연령으로 치자면 엑스가 그녀보다 몇배는 위다) 심지가 굳고 올바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당장 하야테를 위해서 일을 얻으려고 자신을 찾아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무의식 중에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멈추고, 이시다는 행동을 개시했다.


─하야테의 진료기록이 적힌 차트의 모서리로, 엑스의 정수리를 강타한다는 행동을.


"?!"
"뜻은 알겠어. 충분히 기특하다고도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애 주제에 혼자 다 짊어져야 되는 것처럼 말하지마."


애 아닌데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라왔지만, 아무래도 거기까지 말할 수는 없었기에 겨우 집어삼켰다.


"그런 생각할 틈이 있다면 말야. 좀더 하야테 곁에 더 많이 있어줄수 없을까 쪽을 생각하라고. 네가 아르바이트따윌 나갔다간 하야테가 혼자 남게 되잖아. 그래서 하야테가 외로워하기라도 하면, 오히려 폐를 끼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 아."


차트에 맞은 정수리를 매만지고 있던 소년이 한순간 그런 소리를 냈다.
설마설마 했지만 정말로 그쪽은 생각도 못했던 거냐, 이 자식. 이시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혀를 찼다.


확실히 이시다의 말이 옳았다.
하야테가 자신을 집에 머물게 해준 것은 크게 보자면 "싸우지 않고도 살아갈 목적을 함께 찾아주기 위해서"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녀 자신이 엑스와 마찬가지로 '혼자뿐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고독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엑스를 내버려둘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엑스가 일 한다는 명목으로 나가기라도 하면, 그 시간동안 하야테는 집에 혼자 남아있게 된다. 물론 다부지고 당찬 소녀이기 때문에 내색을 하거나 하진 않겠지만, 내심적으론 분명 쓸쓸해하겠지. 이시다는 그 점을 제대로 짚은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엑스는 곧바로 이시다에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흐음?"
"최근 조급해져있었기 때문에 제 생각밖에 못하고… 하야테의 기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괜한 일로 신경쓰이게 한 것도 사과드립니다."


어린애 운운은 틀렸지만요. 속으로 덧붙인 후 엑스는 고개를 들었다.
이런 식의 감사 인사를 정면에서 듣기엔 낯간지러웠기에, 이시다는 살짝 머쓱한 기분으로 이야기를 이었다.


"뭐, 뭐. 그런 쪽의 일은 3~4년 쯤 지난 다음부터 생각해도 될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진 너도 마음껏 응석부리라고. … 그리고, 딱 두가지만 더 너한테 말해두고 싶은 게 있는데."


돌연 이시다는 표정을 굳히고, 엑스를 바라본다.
그에 맞춰, 엑스도 자세를 바로하고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네가 어디에 사는 누구고, 어떤 경위로 하야테와 함께 살게 되었는지는 몰라. 하야테는 길에서 자고 있는 걸 보다 못해 데려왔다고 했지만 그게 진짜일 리는 없겠지. 하지만─ 나쁜 녀석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히 알았어."


이시다는 검지 손가락을 들어, 엑스의 이마를 꾸욱하고 눌렀다.
완벽한 '아이 취급'이지만, 어째서일까. 불쾌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하야테를 슬프게 하지마. 쓸쓸하게 하지마. 울리지도 마. 옆에 있어주고, 혼자 있게 하지마. 안 그럼 내가 가만 안둬. 담당의사로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그 말을 듣고서, 엑스 또한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녀도 역시 하야테를 걱정해주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솔직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네, 맡겨주세요."

 

 

 


결국 원래 목적은 달성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걸 되새길 수 있었으니까 나쁘지는 않았다고 해둘까.


"그런 이야기 했드나…"


그리고 이시다와 있었던 이야기를 하야테에게 했더니(뒷부분은 아무래도 쑥쓰러워서 뺐다) 예상대로라고 할까, 잔뜩 볼을 부풀렸다.


"내는 분명히 그런 거 안바란다고 말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걸 잊고 있었어. 제멋대로인 이야기해서 미안."
"헤에… 말한지 이틀도 안지났는데 잊어묵었단 말이제…"
"…… 미안."


이건 좀, 화 풀 때까지 고생 좀 할지도. 그저 하야테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식은땀을 흘린다.
위험하다. 이건 진짜로 위험하다. 하야테를 알게 된지도 얼마 안되긴 했지만, 지금 밟아버린 지뢰는 특대급. 아르카디아에서 완전한 상태의 루시퍼와 싸웠을 때조차, 이 정도로 긴장하진 않았다.


​"​흐​─​─​─​─​─​─​─​─​─​─​음​.​"​


미션을 위해서라면 7일 철야로 일한 적도 있었지만, 그때보다도 지금의 1분 1초가 훨씬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면서 한숨을 내쉰다'는 행위를 하는 극히 짧은 순간이 이 정도까지 괴로울 수도 있었던가.


"뭐, 엑스 군 성격이니까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서도… 내는 진짜로 괜찮데이. 애초에 엑스 군, 아직 다친데도 다 안나았다고 했다이가."
"… 진짜로 미안."


그러고보니 하야테에게는 그런 ​(​쓸​데​없​는​)​소​리​까​지​ 했었다.
하야테의 집에 살게 된 지 3일 째 정도였을까. 돌연 몸 여기저기에서 연기가 뿜어져 나와 바깥에 나갈 수 없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요상한 꿈이었는지 아니면 잔류 바이러스의 정신공격이었는지 모를 영상(아마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만)을 보고 난 이후부터 회복 프로그램이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었는데, 그걸 깜빡한 채 계속 움직이다가 결국 부상이 도져버린 탓으로.
당연히 하야테는 대패닉. 하마터면 병원까지 연락이 들어갈 뻔한 위기였지만 그것만은 간신히 막을 수 있었다. 어쨌거나 이 세계의 '병원'은 인간의 병을 치료하는데에는 도움이 되는 모양이지만 인간이 아닌 자신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테니까.


"확실히 반성하고 있는 거 맞제?"
"진심으로. 산보다 높게, 바다보다 깊게."
"응… 그럼 괘안타. 이번엔 그냥 넘어가주꾸마."


…… 어째서일까.
틀림없이 하야테는 자신을 용서하겠다고 말하고 있는데.
틀림없이 하야테는 '활짝'이라는 말이 어울릴만큼 밝게 웃고 있는데.
어째서, 자신은 이렇게나 '무서워'하고 있는걸까.


"그~은~데~에~ 있제, 엑스 군? 내 부탁이 하나 있는데."
"… 으, 으응."


온 몸을 휘감고 있는 오한이 그 크기와 농도를 더해갔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이상 그녀에게 말을 하게 했다간 아웃이라는 느낌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야테의 입을 막을만한 용기는 엑스에게 없다. 세계를 지켜야 되니까 시그마랑 싸워, 라고 하면 몇십번 몇백번이라도 싸우겠지만.
긴장에 긴장을 더하며, 엑스는 하야테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에에, 그렇게 겁낼 필요 없는데. 물건 좀 대신 사와달라고 하려는 거 뿐이고."


뭐야, 겨우 그런 것인가.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따윌 할까보냐.
내용만으로 봐선 '고작 심부름' 정도의 레벨이다. 하지만, '고작 심부름' 정도에 이렇게까지 긴장이 될 리는 없다. 뭔가 터무니없는 조건이 따라붙을 게 분명하다. 이를테면 돈을 주지 않고 그냥 내보낸다던가


"혹시나 해서 말해두겠는데, 돈은 제대로 줄 거니까."


… 그건 아니었던가. 아주 살짝 엑스의 긴장이 풀렸다.


"그럼, 정말로 물건 사오는 것 뿐?"
"응, 응. 허리에 타이어를 메고 오리 걸음으로 갔다 오라던가 가면서 경찰관 아저씨 만날 때마다 토끼뜀으로 주변을 한바퀴씩 돌면서 하라던가 메이드 말투로 물건 사오라던가 그런 건 붙이지 않을테니께. 아, 그치만 마지막 건 좀 해보고 싶을지도."
"당장 갔다 오겠습니다."


하야테의 입에서 더이상 무서운 말이 튀어나오기 전에, 엑스는 냉큼 고개를 숙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럼 여기 적힌 거 사온네이~☆ 하나도 빠트리지 말고."


하야테는 어디까지나.
'활짝'이라는 말이 어울릴만큼, 밝게 웃으며 말했다.

 

 

 


만약 한숨으로 땅이 꺼지게 할 수 있었다면, 지금쯤 엑스는 지구 반대편까지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보는 사람이 지나가다 쳐다보며 안쓰러워할 만큼, 엑스의 얼굴은 창백하고 어두웠다. 거기에 더해 한숨까지 내쉬고 있다.
확실히 하야테가 부탁한 것은 어디까지나 심부름이었다. 그것은 틀림없다. 딱히 이상한 조건따윌 달거나 하진 않았기에 그다지 어려운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완벽한 오산이었다.
문제는 물건을 사오는 '과정'이 아니라, 사오라고 부탁받은 물건 '그 자체'에 있었다.


위에 적힌 가게별 추천 복장 1벌 씩.


… 기어이 옷을 사서 입힐 생각이었던가.
하려고만 하면 지금 이 복장에서도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엑스로서는 '낭비'라고밖엔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 솔직히 이야기하겠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가벼운 벌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저 종이쪽지를 받고 거리로 나왔을 때까지는.
그 생각이 180도 반전한 것은 종이에 적힌 가게 앞에 도착했을 때의 일이었다.
쪽지에 적힌 가게의 위치는 총 3군데. 가게들의 이름은, 이러했다.


1. 앤틱☆고딕 드레스
2. ■아■롯에 어서오세요! 메이드/버틀러 전문점
3. 코스프레 전문점 네코♥네코


…… 자신이 얻은 정보에 의하면 분명 이런 것들은 분명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복장'이 아니다. 아니, 최소한 앞의 둘은 지금부로부터 몇백년 전에 만들어졌고, 지체높은 가문의 경우에는 아직도 쓰이는 경우가 있다고 알고 있지만 마지막은 전혀 해당사항이 아니다.
뭐, 좋다. 다소 방향성이 빗나가있긴 하지만 여기까지도 '다소 과한 호의'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사오라고 한 옷이, 모조리 여성용이라고 하는 건 납득할 수 없다.

 


"게다가 여자옷을 달라고 하는데 의심도 안하고 덥썩 줘버리는 건 무슨 경우야."


조금이라도 주저하는 기색이 있었다면 ​"​실​례​했​습​니​다​"​라​고​ 말하고 그걸 핑계삼아 돌아가버릴 생각이었는데.
게다가 드레스점에서는 "입고 ​가​시​겠​습​니​까​?​"​라​는​ 말까지 들었다. 자신은 틀림없이 '남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존재인데도 그런 소리를 한다는 건, 놀릴 생각이었다고밖엔 생각할 수 없다.


여기서 잠시 엑스를 위한 변명을 하자면, 그가 인간이 아닌 '로봇'이기에 인간과는 사고방식이 꽤 다르다는 것이다.
물론 '로봇'에게도 ​'​레​플​리​로​이​드​'​에​게​도​ 미의식이라고 하는 건 있고, 엑스를 비롯한 인간형들은 그것이 '인간의 것'에 대단히 가깝다. 외형이 나쁜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 100년쯤 전에 친우에게는 아이리스가 오퍼레이터를 맡았지만 자신에게는 더블이 왔을 때 그 둘을 비교해보고 살짝 절망했던 적도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지​금​이​야​ 아무도 그런 거 모르지만).


하지만 그 뿐.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은 있지만, 그 인식은 인간과 다르다.
'남성'과 '여성'이 가지는 아름다움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차이'를 가지고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진 않는다.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자신의 얼굴이 남자의 것에 가깝든 여자의 것에 가깝든 남들이 그걸로 자신의 성별을 판별할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자기자신이 그런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참고로 말하자면 하야테는 엑스가 평소에 하는 언동으로 미루어 이미 이 사실을 대강이나마 알고 보낸 것이며, 이시다의 경우에는 하야테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처음에는 대단히 놀랐지만 지금은 꽤 익숙해진 모양이고.
어찌되었건 무사히 미션 클리어. 멘탈 회로에서부터 울컥울컥 치밀어 올라오는 이 불쾌함과 모욕감과 자존심 손상을 제외하면 자신에게 손해는 없다.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저러나 하야테는 이런 걸 사서 어떻게 하려는걸까. 이런 걸 은근히 좋아한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지금 산 옷을 자신이 입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엑스는 터덜터덜 집(귀문)을 향해 걸어갔다.

 

 

 


아니, 가려고 했다.
향하던 도중, 자신의 머리 속에서 들린 '거슬리는' 소리만 아니었더라면.

 

 

 


<이레귤러 반응 체크. 전투 레벨 A+ 이상. 상세 위치 확인 중.>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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