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의 머리를 한 노인은,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여성이 가져온 사진들을 책상 위에 늘어놓고 차분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 사진에는 한 소녀와 그 소녀가 앉은 휠체어를 밀고 있는 소년 한명. 이렇게 두 사람이 찍혀있었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사진 대부분이 두 사람이 함께 찍혀져있는 물건이었다.
딸이 말하길, '소년 쪽의 감이 굉장히 좋았기 때문에 몰래 찍기 힘들었다'라고.
이 소년이 나타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개월 전.
정확히 노인이 그 사실을 인지한 것은 그로부터 3일 뒤지만, 소녀의 이런저런 발언을 가지고 추측하여 정확한 일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소년이 누구인지, 또 어디에서 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 소년은, 딸들의 보고를 듣는 한으로는 착실하고 온후한 성품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 보고를 받았을 때는 쫓아내거나 없애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얼마 뒤 그는 생각을 바꿨다.
이대로 두 사람을 함께 살도록 내버려두자, 라고.
자신은 한 소녀의 인생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그것에 어떤 보상도 되지 않겠지만, 적어도 얼마 안되는 시간이나마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고 싶었다.
물론, 얼마 후 그 소녀를 잃어버리고도 한참을 더 살아가야할─아마도 자신보다는 오래 살─ 소년에게는 지독하게 가혹한 일이 될 것이다. 그것에도 노인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가족', 그리고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고통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노인이었기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정. 노인에게는 감정을 넘어서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있다.
소녀에게도, 소년에게도 지독한─ 아니, 그런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만큼 나쁜 일이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해야하는 일이 있다.
소녀의 양친이 소녀만 남겨두고 숨을 거둔 이후에도, 소녀가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보조금을 보내고 이런저런 편의를 봐준 것도 그 죄책감에 대한 표시. 물론 그런 것으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무엇이든지 해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 지금 그가 하려고 하고 있는 이 일을 중지하는 것 이외의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그렇기 때문에 노인은 소년이 소녀의 곁에서 생활하는 것을 묵인하기로 했다. 소년이 있음으로서 소녀는 확실히 보다 자유롭게 웃을 수 있었고, 또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틀리지 않은 판단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노인은 자각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소녀에게 주었던 행복 모두를 빼앗고, 그 인생마저 빼앗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도 구역질이 날 정도의 위선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자각하고 있어도, 노인은 '악인'이 될 수는 없었다.
하려고 하는 일은 극악무도하기 짝이 없지만, 적어도 악의에서부터 하려는 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녀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은 충분히 행복하게 살게 해주고 싶었다.
이 모든 일이 끝나면, 괴로움에 빠질 소년에게도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한 다음 본국에 자수할 생각이다. 소녀의 인생을 송두리째로 빼앗고도 멀쩡히 살아갈 생각을 할만큼, 노인은 철면피도 아니고 죄값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수호기사들이 소환된 이상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길어야 수개월. 그때까지만, 그때까지만 이 위선에 기대도록 하자.
'어둠의 서의 영구 봉인'이라는, 오랜 숙원을 이룰 때까지만.
IRREGULAR HUNTER - X
12화
츠키무라 스즈카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공원의 벤치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녀의 친구 혼자 나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왜냐하면 그 친구 스스로가 자신에게 맡긴 것이다.
<나 오늘은 진짜로 못나가거든. 약속은 해놨지만, 아빠가 돌아오는 날이라서. 그러니까 내 대신 부탁 좀 할게. 그 녀석한테는 잘 말해둘테니까.>
오늘 학교에서 그렇게 말하던 친구의 얼굴은, 정말로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외국에 나가있던 아빠가 몇달만에 돌아온다는 기쁨과, 그 소년을 만나지 못하게 됐다는 슬픔이 정확히 반반씩 섞여있었기 때문에.
아리사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늘의 스즈카는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여하튼 그 소년과 만나는 건 1주일만의 일이니까. 하지만, 친구 아리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한숨이 나온다. 그 소년은 분명히 자신들보다 연상일텐데 '이 녀석 그 녀석 저 녀석'이라니.
게다가 언니와 노엘, 파린들도 어떻게 알았는지 호들갑이었던 터라 나오기도 전에 힘을 다 빼야 했다. 특히 언니와 파린의 경우, 자신들도 연애 경험이 없는 주제에 데이트 테크닉이라든지 하는 걸 가르치려고 들었으니까.
'괜찮아… 긴장할 거 없어… 데이트가 아닌걸. 그냥 만나서 이야기만 하는 것 뿐이야. 그야 뭐 공원 분수대 앞에서 만나는 거고, 경우에 따라선 상점가로 가서 돌아다닐 수도 있고, 그러다 시간이 늦으면 식사도 같이 할지 모르고, 그 사람의 기분이 내키면 유원지에 가거나 지금 영화관에서 하는 영화를 같이 보러 가거나 할 수도 있지만, 데이트는 아니니까 긴장할 필요없어.'
세간에선 그걸 훌륭한 데이트라고 부르지만, 스즈카는 이미 거기까지 신경쓸 수 없을만큼 긴장한 상태였다.
… 애초에, 이제 겨우 초등학교 저학년을 벗어났으면서 잘도 저기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 대단할 정도지만.
그렇게, 심호흡을 하느라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어버리고 있었을 무렵.
그녀가 가장 기다렸으면서도, 그토록 마주하기 힘들었던 소년─ 엑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 빨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오, 저도 금방 왔으니까요."
좋았어, 우선 첫 인사는 패스.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며, 스즈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엑스는 늦게 왔다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엑스는 약속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했지만 시즈카는 약속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해서 숨을 고르고 있었으니까.
"아리사한테 여러가지 부탁한다고 듣긴 했지만, 오늘은 어디로 갈 생각인가요?"
"어디로 갈 생각이냐고 해도… 난 아직 잘 모르니까."
엑스가 우미나리 시에 살기 시작한지 1개월. 그나마도 아리사를 만나기 전까진 행동반경이 지극히 한정되어있었고, 아리사를 만나고 난 이후에도 늘어났다곤 하지만 역시 하야테를 혼자 두고 그렇게 멀리까지 움직일 수 있을리도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사정이 좀 다르다. 지금까진 엑스가 집에서 나오면 하야테 혼자 남게 되기 때문에 이쪽에 집중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하야테 혼자가 아니라 시그넘들도 있다.
─즉, 마그마 드래곤을 찾는데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봤던 그의 집념으로 보면 이미 두세번쯤 공격을 해왔어도 이상할 것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것이 '있을 수 없는 일'. 설령 자신이 하야테의 집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어도, 자신을 끌어내기 위해 눈에 띄는 행동을 했어야 정상이다. 솔직히 거리에 나타나 닥치는대로 때려부수는 것이 엑스와 만나기 위해서는 가장 빠른 방법이고.
하지만 마그마 드래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은 남아있었던건가, 아니면 무언가 다른 일이 있었던건가. 어쩌면 양쪽 모두일 지도 모르고, 양쪽 다 아닐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 현 상황에서 판단하기엔 재료가 너무 적다.
그러나, 발견하면 발견하는대로 또 귀찮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누누히 말하지만 이곳은 아르카디아가 아니다. 이레귤러를 발견했다고 해서 곧바로 전투로 들어갔다간 어떤 소동이 벌어지게 될지 정도는 어렵지않게 예상할 수 있다.
그로 인해 자신이 성가셔지는 건 상관없지만, 하야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는 것은 사절이다. 설령 어떤 불이익이 닥친다고 해도, 그녀는 자신의 편에 서길 주저하지 않을테니까. 요 1개월간 그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무작위로 돌아다니기를 택한 것이다. 돌아다니다가 마그마 드래곤 본인이나 그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찾으면 좋지만 반대로 마그마 드래곤이 엑스를 발견해주어도 좋다. 그러면 그쪽에서 먼저 움직여줄테니까.
물론 그 경우엔 시가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아무 소란도 행동도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엑스를 보자마자 길거리 한복판에서 싸움을 걸어오진 않을 것이다. 지난번 아리사가 납치당했을 때의 경우를 봐도, 마그마 드래곤은 자신과의 싸움에 남을 끌어들이길 꺼려한다.
주위의 인간이 많을수록 엑스는 전력으로 싸우지 못하고, 그것은 마그마 드래곤이 진심으로 바라는 '결투'와는 거리가 멀다. 분명 마그마 드래곤은 이레귤러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가 정한 규율에는 철저하다. 그런 면에서는 신용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스즈카처럼 평범한 소녀와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런 일을 할 수 없으니까.
그것을 계산에 넣은 이후부터, 엑스는 가급적이면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일을 많이 하고 있다. 하야테가 나갈 일이 생기면 반드시 함께 나갔고, 지금처럼 아리사나 스즈카가 불러내주는 것도 훌륭한 핑계가 된다.
마그마 드래곤을 찾는 것과 동시에, 우미나리 시의 지형도 확실하게 숙지하기로 했다. 전투를 하든 도주를 하든 방어를 하든, 지리를 알고 있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이점이 되니까.
'뭐, 그렇게 금방 발견될 것 같진 않지만.'
엑스는 자신의 운이 좋은 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일에 있어서 조급함을 가지는 것은 금물, 안달한다고 해서 안되는 일이 갑자기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나 이틀 돌아다니는 정도로 발견할 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딱 한가지 불안한 점이 있다면, 엑스의 몸 상태가 '정상'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는 것 정도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언제나 만전의 상태에서 적과 싸울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일단─
'… 이쪽 생각은 그만둘까. 스즈카한테 실례고.'
"엑스 씨?"
"아니, 아무것도."
모처럼 불러내준 사람을 앞에 놓고 다른 생각에만 빠져있다는 건 분명히 실례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자신에게 호의로 대해주고 있는 이 소녀에게 집중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엑스는 '전투'에 대한 생각을 접었다.
아르카디아에 있던 시절의 엑스라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여기까지 배려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100년 전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최근까지의 엑스라면.
─확실하게, 그는 돌아오고 있었다.
하야테를 만나고, 아리사를 만나고, 스즈카를 만나고, 시그넘들을 만나고.
어떠한 타산도 내심도 없는 순수한 호의를 접해오면서.
여기에서, '푸른 유성의 용사 엑스'를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알지도 못하는 존재에게 경외를 보내는 일도 없고, 반대로 증오를 받는 일도 없다.
이곳에서의 자신은 단순히 하야테의 가족일 뿐. 결코 '용사'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다. 인간끼리의 싸움은 있을지언정 인간이라는 종족 그 자체를 위협하는 존재는 없다. 자신이 인간을 위해서 싸워야할 '적' 자체가, 이곳에는 없다.
기껏해야 1개월. 고작해야 1개월.
짧다고 한다면 짧은 시간이고, 결코 길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이지만─
그런데도, 엑스는 틀림없이 예전의 자신을 되찾고 있었다.
"어서 오세… 어머나, 츠키무라 양. 오랜만이네."
미도리야의 안주인, 타카마치 모모코는 들어온 손님들을 보고는 작게 탄성을 질렀다.
들어온 소녀의 이름은 츠키무라 스즈카. 둘째 딸의 친구였기 때문에 익히 아는 얼굴이니까 그녀가 놀랄 이유는 없다. 그녀가 놀란 것은 소녀와 함께 온, 처음보는 소년의 존재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 저, 나노하는?"
인사를 한 후, 작은 목소리로 친구의 안부를 묻는다. 요즘들어서 스즈카가 학교 외에서도 만나고 있는 친구는 아리사가 유일. 나노하는 학교가 끝나면 쏜살같이 돌아갔버렸던 탓에, 방과 후에는 거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혹시 여기에 오면 볼 수 있을까 했지만, 모모코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오늘도 학교에서 들어오자마자 바로 나가버렸거든. 최근엔 가게에도 잘 오지 않고."
"그런가요…"
스즈카의 어깨가 저절로 아래로 내려갔다.
그녀도 아리사도, 나노하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자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은 쉽게 알아차렸다. 하지만 나노하 본인이 그것을 말하려고 하지 않고 있기에, 굳이 들으려고 하지 않았을 뿐.
나노하가 숨기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녀 스스로 말해줄 때까지 기다린다. 그것이 스즈카가 택한 방법이다. 그 때문에 "완력으로라도 듣겠다"고 날뛰던 아리사를 전력으로 말린 거였고.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걱정이 되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
스즈카가 딸을 걱정하느라 침울해져있다는 것을 눈치챈 모모코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구나, 딸이 폐를 끼치고. 아리사도 그렇고, 좋은 친구들 많이 가졌네, 우리 딸은."
"아, 아니오. 신세지고 있는 건 언제나 저인걸요."
"으응, 아니야 아니야. 나노하는 돌아오면 언제나 친구들 이야기 많이 해주거든. 그런데…"
모모코의 시선이 스즈카에게서 떠나, 스즈카의 옆에 있는 소년에게로 향했다.
나이는 열 넷 정도일까. 잘해줘야 열 다섯을 넘기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늘빛, 아니 물빛에 가까운 머리칼과 같은 색의 눈동자를 가지고, 까딱 잘못했으면 '소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만큼 예쁜 얼굴. 소년이라고 제대로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가게를 해오면서 많은 손님들을 만나 발달된 관찰력 덕분이다. 실제로 그녀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이런 타입이 조금 있고.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상깊은 것은 그 눈이었다.
물빛이라기보다는, 바다빛이라고 해야 옳을만큼 깨끗하고… 또한 깊고 조용하며 차분한 눈.
이 나이에 어떤 일을 어떻게 겪으면 저런 눈을 가질 수 있는걸까.
"옆은 누구? 남자친구니?"
"에, 에? 에?! 아, 아니, 그…!"
굉장한 기세로 당황하기 시작하는 스즈카를 보며, 모모코는 입에 걸린 미소를 지울 수 없었다.
"아, 아니오! 그… 우미나리시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많아서, 제가 안내하고 있던 중이었어요! 남자 친구 같은 게 아니고, 되고 싶긴 하지만 그, 뭐라고 해야할까…!"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아까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크게 당황하면서, 스즈카는 모모코가 예상했던 그대로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정말로, 이 나이대의 여자아이들은 알기 쉬운데다 귀엽다. 자신의 딸은 언제쯤에야 이렇게 귀여운 모습을 보여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무렵 지금까지 조용히 있던 소년─ 엑스가 입을 열었다.
"우미나리에 온지 얼마 안됬거든요. 츠키무라 씨들에게는 이렇게 저렇게 신세지고 있습니다."
"아아, 그렇구나. 그럼 계속 우미나리에 있을 생각이니?"
"네."
하야테가 이사를 가거나 하지 않는 한은.
한편, 모모코는 지금 엑스의 발언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챘다. 스즈카는 이 소년에게 확실히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소년 역시 스즈카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스즈카의 그것이 연애감정이라면, 소년의 그것은 단순히 '친구'를 바라보는 종류다.
스즈카가 모모코의 말을 듣고 당황할 때도 이 소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속으로야 어떻든간에 태도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을만큼 감정의 흔들림을 조절할 수 있다는 이야기. 정말로, 외견 그대로의 나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소년이다.
'이건 좀 허들 높을지도.'
소녀의 사랑을 응원해주고 싶은 건 당연한 감정이지만, 상대가 좀 만만찮다. 모쪼록 힘내길.
"그래서, 주문은 뭘로 할거니?"
"아, 네! 슈크림빵 5개하고, 딸기케이크 하나… 그, 엑스 씨는?"
"치즈 케이크 둘."
모모코는 빠르게 주문을 받으면서 생각했다.
엑스 라니, 외국인이었나. 확실히 외모도 일본인같진 않지만, 그래도 '엑스'라는 건 이름이라기보단…
"그래도 시간은 잘 맞춰왔네. 지금은 한가하니까, 빨리 나올거야. 조금 있으면 손님들이 밀려들어올 시간이거든. 자리는 저쪽."
점심 식사 직후의 디저트 타임은 미도리야에서 제일 바쁜 시간대 중 하나다. 물론 저녁에도 만만치 않지만. 어쨌든, 스즈카가 그 시간대를 일부러 피해서 온 덕분에 두 사람은 널찍한 탁자에서 마주보고 앉을 수 있었다.
잠시 후 주문했던 과자들을 받아서 자리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이곳은 제 친구의 어머니가 하시는 가게예요. 듣기로는 일류 호텔 셰프 자격증도 갖고 계시다고. 그래서 인기도 많고. 제 친구들 중에도 이곳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 그럴 것 같네."
치즈케이크를 떠먹어본 후 스즈카의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확실히 맛있다. 나중에 집에 돌아갈 때 한번 더 들려서 하야테들에게 줄 선물로 사가도록 하자고 생각할 정도로.
스즈카는 슈크림의 비닐을 벗겨, 그것을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그것을 흉내내어 엑스도 하나 짚어서 들어올렸다.
─우직.
"……"
"……"
뭉개졌다.
그러고보니 아직 이 상태였지. 엑스는 속으로 그렇게 한탄했다.
"… 잠깐만 실례할게."
엑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 뒤로 돌아가 스즈카에게 보이지 않도록 몸을 숙였다. 힘 조절을 못하고 뭉개버린 탓에 빵조각과 크림이 껍질에 그대로 붙어있어, 현재 자신의 밸런스 회로 상태로 볼 때 분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결정을 내렸다.
뭉개진 슈크림을 껍질채 입에 집어넣고 우물거리다가 잠시 미각을 차단한 후 그대로 삼키고는 되돌렸다.
그리고는 손만을 뻗어 탁자 위에 있는 휴지 중 몇장을 뽑아 손과 입 주변을 닦고 난 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 왠지, 스즈카의 시선이 따갑다.
"… 엑스 씨."
"… 응."
"껍질은 벗기라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 나도."
나중에 화장실에 들리는 척하고 비닐만 토해서 버리도록 하자.
엑스가 의자 뒤에서 촌극을 벌이는 동안 스즈카는 미리 슈크림의 껍질들을 다 벗겨놓아준 상태였다. 엑스의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고보니…"
하지만 엑스가 아무 말 하지 않기로 결심한 건 그의 사정이고, 스즈카까지 입을 다물 이유는 없다.
"엑스 씨는, 아리사짱하고 어떻게 만나게 된건가요?"
"… 아리사한테 듣지 못했어?"
"네에. 생명의 은인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그녀라면 틀림없이 미주알 고주알 다 떠벌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고보니 확실히 전에 아리사가 스즈카를 소개해줄 때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고 들었었다.
"별로 대단한 건 아닌데… 아리사가 위험할 때 조금 구해줬던 것 뿐이고."
"… 어떤…?"
이야기해도 될까.
… 스즈카라면 믿을 수 있고, 마그마 드래곤과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엑스는 전번 경찰서에서 아리사와 맞추어두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와… 무섭지 않았나요?"
"별로. 그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다 알아서 나가떨어진 걸 가서 구해줬을 뿐인걸."
엑스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지만, 그 납치 미수 사건 당사자를 친구로 두고있는 스즈카로서는 그냥 넘길 수 없었다.
"저… 감사합니다!"
"… 에?"
엑스는 치즈 케이크를 극히 조심스럽게 입으로 옮기다가, 느닷없이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스즈카를 보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 과정에서 힘의 가감이 또 어긋나서 포크에 꽂혀있던 케이크가 접시 위로 다시 떨어졌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저 말이지… 내가 한 건 없다니까. 굳이 말하자면 뒷수습일까, 만약 그 사람들이 서로 자멸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을거야."
라는 건 물론 거짓말이다. 설령 인간으로 의태한 상태에다 맨손이라고 해도, 총기를 꺼내기 전이라면 건장한 인간 남자 열명을 상대로 싸워도 지지 않는다. 아니, 설령 상대 전원이 총기를 들고 엑스에게 무장이 없는 상태라고 해도 그 파워 차이가 메워질지 어떨지.
"그런데도, 예요. 아리사는 제 친구고, 하마터면 큰일날 뻔 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 은인인 엑스에게, 자신이 감사의 인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 과연,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데. 엑스는 더이상 고집피우지 않기로 했다.
"그럼 받을게. … 양심에 꽤 찔리지만."
"그러니까, 그렇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요."
감사를 받아준 엑스에게 미소지으며, 스즈카는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물론, 이번엔 엑스도 함께.
─물론 엑스는 이후의 식사에도 상당한 고생을 했으며… 뭐, 접시와 식기를 망가뜨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해두자.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었을 무렵.
두 사람은 중앙 공원을 걷고 있었다.
스즈카에게 있어서 오늘의 '안내(라고 쓰고 데이트라고 읽는다)'는 굉장히 즐거운 것이었지만, 엑스에게는 힘든 하루였다. 물론 스즈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갖고 있지만, 그건 그거고 힘든 건 힘든 것.
도서관에서는 하마터면 책을 찢어버릴 뻔했으며,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구를 뻔 했다. 마침 스즈카가 붙잡아주지 않았다면 상당한 참극이 벌어졌을 것이다(자신보다 훨씬 큰 엑스를 한 손으로 붙잡고도 끄떡없던 스즈카에겐 좀 놀랐지만). 하지만 영화관에서는 기어이 사고를 하나 내버렸다. 그가 앉았던 좌석의 손잡이를 부숴버린 것이다. 천만다행히도 영화의 소리가 컸던 탓에 그가 손잡이를 부수는 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지만, 아마도 지금쯤이면 들통나지 않았을까.
그나마도, 이것조차 극도로 긴장하고 있던 상태였기에 이 정도로 끝난 것이다. 만약 평소같은 정신 상태로 돌아다녔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 상상하기도 싫어.'
어찌되었건 스즈카에게는 신세를 많이 졌다. 이래서야 누가 누구를 돌보는 건지. 스스로가 한심해진 엑스는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그런데도 스즈카는 즐거웠다.
"오늘은 이 정도지만, 다음에는 좀더 여러 곳을 보여드릴게요. 아직 보여드리고 싶은게 잔뜩 있으니까."
"… 미안. 오늘 폐 많이 끼쳤어."
"천만에요. 저도 굉장히 즐거웠는걸요."
진심을 담아서 고개를 숙이는 엑스에게, 스즈카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그, 뭐랄까… 좀 어려운 사람처럼 보였거든요."
첫만남 때부터 자신들보다 연상으로 보였던 소년이지만, 그녀의 마음을 흔든 것은 소년의 눈 속에서 엿볼 수 있었던 '어떤 것'이었다. 언니나 언니의 지인 중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만큼 깊고 조용하게 가라앉은 것.
그것에 더해, 엑스 자신이 아리사와 스즈카를 만날 때 보였던 차분한 태도가 맞물려, 어딘지 모르게 접근하기 어려운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하지만 심하던걸요, 엑스 씨~"
"…… 그만둬줘.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니까."
밸런스 회로만 멀쩡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그냥 봐주고 넘어간 것이 아쉬웠다. 역시 반성문 20장 정도는 제출받았어야 했던건데.
"괜찮아요. 덕분에… 엑스 씨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었는걸요."
실수도 하고.
케이크를 먹으면 기뻐할 줄도 알고.
영화를 보고 웃는 것도 감동하는 것도 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하게 감정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결코 가까이 갈 수 없을만큼 멀리 떨어져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 덕분에, 스즈카의 가슴 속에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미혹이 깨끗이 사라졌다.
"앞으로 아리사짱, 잘 부탁드릴게요. 착한 아이지만 좀… 많이 드세서 걱정되거든요. 그리고 저도… 앞으로 잘 부탁해요. 위기에 처하거나 하면, 구해주실거죠?"
"응. 노력할 수 있는 범위라면 전력으로."
그럴 때는 농담이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라고 대답해주는 쪽이 여자 아이의 마음에 드는 법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즈카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런 걸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런 걸 모르더라도, 자신은 이 소년을─
아이들은 순수하지만, 동시에 잔혹하기도 했다.
고통을 그다지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호기심'이라는 감정으로 자신들보다 약한 생물에게 터무니없는 짓도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아이들에 의해 목숨을 잃어가는 작은 생명이 있었다.
어째서 자신은 이렇게 죽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걸까.
그저 하늘을 날다가 지쳐, 잠시 그곳에 앉았던 것 뿐인데.
무자비하게 얻어맞고, 날개와 다리가 부러진 후 한참동안이나 휘둘러졌다.
그리고는 질렸다는 듯이 수풀에다 던져버리고는 사라졌다.
어째서 이렇게 된걸까.
그저, 날고 싶었을 뿐인데.
살아가고 싶었던 것 뿐인데.
그 작은 소망마저도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것이었던가.
용서 못해.
용서 못해.
용서 못해.
용서 못해.
용서 못해.
절대로, 용서 못해.
그리고.
그런 작은 새의 앞에.
─푸른 보석이, 나타났다.
<반경 400m 이내에 이레귤러 3체 반응 확인. 3체 전부 추정 전투레벨 A+ 이상. 상세 위치 확인 중.>
<반경 400m 이내에 고용량의 미확인 에너지 확인. 상세 위치 확인 중.>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