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다.
너무나도 무서웠다.
폭염의 용이 품은 집념이,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감정과 압력이.
당장 이 자리에서 등을 돌리고 도망쳐버리고 싶어졌을만큼 무서워졌다.
사실 그렇게 해도 상관없다. 그녀는 이 자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
방금 전 가르쳐준 곳으로 가서,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러면 내일부터는 또 아무 일 없이─
'상관…… 없다고……?'
아리사의 머리 속을, 수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두 사람과의 첫 만남.
그날 이후부터 지금까지 만나온 엑스.
만나진 못했지만, 잊어본 적은 없는 마그마 드래곤.
입술을 깨물고, 눈을 똑바로 뜨며 눈앞의 전장을 주시한다.
─도망칠 수 없다.
아마도 이것이, 두 사람의 '최후'.
두 사람 중 하나는 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두 사람을 함께 볼 수 있는 것은 이 자리가 마지막일 것이다.
자신은 이 두 사람의 '처음'을 봤다.
그리고 우연인지 운명인지, 두 사람의 마지막 자리에까지 오게 되었다.
'도망치지… 않아…!'
그러니까 자신에게는, 이 싸움을 지켜봐야할 의무가 있다.
용사와 용, 둘 중 하나가 사라지는 순간을 지켜보지 않으면 안된다.
"도망칠 수 없어…!"
두려움을 누르고.
떨리는 손을 움켜쥐면서.
아리사 버닝스는 두 사람을 지켜보기로 결정했다.
IRREGULAR HUNTER - X
30화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포효와 함께 폭염의 용이 돌진했다.
그것을 보며, 엑스는 갑옷을 변신시킨다.
「FIGHT」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고, 오른발을 휘두른다.
엑스의 머리를 노리는 하이킥. 엑스는 회피하는 것과 동시에 오른손을 움직여 그 공격을 흘려버리듯이 막아냈다.
─그와 동시에, 마그마 드래곤의 주먹이 날아온다.
처음부터 이런 큰 동작이 필요한 공격을 사용한 것은 엑스로 하여금 방어태세를 취하게 만들기 위한 것. 한번 회피하거나 밀리기 시작하면, 마그마 드래곤 정도의 실력자에겐 끝도 없이 계속 밀리게 된다.
그것을 막기 위해 엑스 역시 주먹을 뻗는다. 엑스의 주먹이 마그마 드래곤의 주먹과 부딪히고, 그 상태로 둘은 서로를 밀어내기 위한 힘겨루기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자세가 불안정한 엑스가 밀리는 듯 하다가, 엑스가 자세를 바로잡자 마그마 드래곤이 밀리고, 다시 마그마 드래곤이 밀어내는 것을 반복한다.
호각.
두 사람의 주먹은 맞부딪힌 채로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있었다.
단지 그 주먹에 힘을 넣고 있는 것 때문에 두 사람이 밟고 있는 지면이 박살나고, 아리사가 있는 곳까지 흔들릴 정도의 진동이 일어날 뿐이다.
지금 자신과 싸우고 있는 상대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자라고는 생각되지 않을만큼 강력한 힘과 압박감이 엑스에게 전해진다.
아니, 그 반대.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모조리 불태우며 싸우고 있는 자이기에 이런 기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둘은 동시에 주먹을 떼어내고 떨어진다.
─그 직후, 서로가 서로를 발로 걷어차고, 그 충격으로 각기 반대 방향으로 날려갔다.
엑스는 날려가던 도중에 지면을 손으로 붙잡아 몇차례 회전한 끝에 정지했지만, 원래부터 몸이 거대한 마그마 드래곤은 뒤로 밀려나던 도중에 중심을 잡고 그대로 버텨냈다.
그 상태에서 다시 한번 서로를 향해 돌진. 한 차례 크게 부딪혀 광풍을 일으킨다.
이번에도 역시 무승부. 힘으로는 결판이 나지 않았다.
마그마 드래곤은 발로 엑스의 다리를 걸어 자세를 무너뜨렸고, 두 손으로 엑스를 붙잡아 몸을 반회전시키는 것과 동시에 내던진다.
「FIRE」
불꽃의 갑옷으로 몸을 감싼 후, 날려가던 방향을 향해 역분사. 곧이어 날려가던 것보다 더한 기세로 돌진하여, 그대로 마그마 드래곤에게 충돌했다.
─그 압도적인 충격을 버텨내며, 마그마 드래곤은 엑스를 붙잡았다.
물론 엑스의 화염은 부스터화한 상태로 계속 불을 내뿜고 있었기에 돌진 자체가 멈추는 일은 없다. 엑스는 붙잡힌 채로 마그마 드래곤을 계속 밀어내려고 하고, 마그마 드래곤은 그것을 힘으로 눌러 제압하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과 달리, 그 겨루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엑스의 힘은 부스터로 인해 나오는 '앞으로 나아가려는 힘'. 굳이 정면에서 대항하지 않는다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마그마 드래곤은 엑스를 붙잡은 채 방향을 틀어 위로 향하게 했고, 엑스가 그것을 알아차린 후 다시 역분사를 하기 위해 극히 짧은 순간 부스터를 멈췄을 때.
그때를 노려, 그대로 엑스를 붙잡은 채 두 손을 바닥으로 내리쳤다.
"……!!"
무지막지한 파워밤(Powerbomb).
엑스의 몸이 지면을 파고 들어가고, 그 영향으로 지진이 일어난게 아닐까 싶을만큼 지면이 흔들린다.
이곳이 도심 한복판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하고 있을 틈도 없이 마그마 드래곤은 지면에 박힌 엑스를 향해 발을 들어올리고는 내리찍었다.
아슬아슬하게 두 손을 들어올려 그 스톰핑(Stomping)을 받아낸다.
위에서 찍어누르려고 하는 힘과, 밑에서 들어올리려고 하는 힘. 엑스와 마그마 드래곤의 힘이 호각이라면, 지금 이 자세의 차이나 힘을 가하는 방향은 엑스에게 있어서 대단히 불리하다.
엑스는 아주 잠깐동안 마그마 드래곤의 발을 막아냈고, 그 틈을 이용해 양쪽 발에서 부스터를 점화. 불길을 일으키며 생겨난 맹렬한 추진력으로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한발 늦게 마그마 드래곤의 발이 지면을 찍었고, 엑스는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그마 드래곤은 지면을 찍은 그 반동을 이용하여 그대로 다시 돌진.
엑스는 두 팔을 교차시켜 들어올렸고, 마그마 드래곤은 그 가드 위로 어깨를 부딪혔다.
'역시 이걸로는…!!'
확실히 파이어 아머는 높은 추진력과 막강한 화력을 가져다주지만, 마그마 드래곤을 상대로 해서는 이득이 없다. 아무리 막강한 화력이라고 해도 '불'을 힘의 근원으로 하고 있는 이상, 마그마 드래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애초에 마그마 드래곤은 용암속에서조차 활동이 가능한 레플리로이드. 그런 그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화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STORM」
마그마 드래곤에게 밀려나는 상태에서 아머 교체.
엑스의 등에서 날개가 생겨나고, 엑스는 그 날개를 움직여 위로 날아올랐다.
날개를 활짝 펼치고, 힘을 끌어모은다.
창공의 용사를 중심으로 바람이 소용돌이치며, 그 위를 전격이 거미줄처럼 뒤덮었다.
그리고 엑스가 두 손을 앞으로 내밀자, 두 가지의 힘이 하나로 합쳐져 날아간다.
"스톰 블링거!!"
바람의 힘과 전기의 힘. 그 두가지가 합쳐진 전기의 폭풍.
과거 루시퍼를 상대로도 발휘되었던 힘이 다시 한번 발휘되었다. 청백색의 빛으로 이루어진 전기의 '회오리'가, 지면을 부수고 바위를 깎아가며 마그마 드래곤을 향해 날아간다.
「라이징 파이어」
거기에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마그마 드래곤이 전신에서 불길을 뿜었고, 그것을 입으로 모아 발사하여 스톰 블링거에 충돌시킨다.
그리고 마그마 드래곤의 이 판단은 옳은 것이었다. 시그마 이후로 최흉의 레플리로이드라고 일컬어진 루시퍼조차 구속했던 전기 폭풍의 감옥. 그것에 걸렸더라면 지금의 마그마 드래곤이라고 해도 그렇게 쉽게 나올 순 없었을테니까.
번개와 바람이 맹렬한 화염과 부딪혀 강렬한 빛과 스파크를 사방으로 퍼트린다. 그리고 곧 폭발했고, 두 사람의 중간 지점에서 사라진다.
「EARTH」
땅으로 내려옴과 동시에 대지의 갑옷으로 바꾼다.
앞의 세 갑옷보다 훨씬 육중하고 두꺼운 갑옷. 그 크기는 이미 마그마 드래곤에 필적했고, 엑스의 몸은 외부로 전혀 노출되지 않은 채 어스 아머의 중심부에 자리잡았다.
그것을 본 마그마 드래곤이 두 손을 움직였다.
두 손을 허리 근처에서 모으고, 그 사이에 열기와 에너지를 방출하여 압축시켜, '불'이 아닌 붉은 에너지의 집합체로 만든다.
「파동권」
승룡권과 함께 마그마 드래곤을 상징하는 필살기의 하나. 그것을 본 엑스는 왼팔보다 두배는 거대한 갑옷으로 감싸인 오른팔을 움직였다.
'어스'는 그 이름 그대로, 대지의 힘을 상징하는 아머. 지축을 흔드는 힘도 강철을 제련하는 힘도, 중력을 다루는 힘마저도 이 갑옷 안에 담겨있다.
"그라비티 팽!!"
중력을 압축시켜 만들어낸 강렬한 충격파를 담은 드릴 미사일이 날아간다.
이것은 터널 리노와 그라비티 비틀의 힘을 합친 기술. 물론 드릴의 재질은 터널 리노의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파동권과 그라비티 팽이 허공에서 부딪히고, 폭발을 일으켰다. 드릴의 파편이 불꽃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지며 잠시동안 공간의 일그러짐마저 일어났었다.
그것을 깨끗이 무시하고, 마그마 드래곤은 위로 뛰어올랐다.
밑을 향하게 한 오른발을 시작으로 그의 전신이 불길에 휘감겼고, 말그대로 '운석'과 같은 기세로 마치 창처럼 엑스에게 내리꽂힌다.
그것을 확인한 엑스는 아머 아르마딜로의 방패가 만들어진 왼팔을 들어올려 마그마 드래곤의 천마공인각을 막아낸다.
방패가 찌그러지고 엑스의 발 밑이 파헤쳐지고, 결국 마그마 드래곤의 발차기는 방패에 가로막혔다.
하지만.
[장갑 자체는 플레임 맘모스보다 단단한 것 같지만…]
방패에 가로막힌 왼발로 방패를 걷어차, 그 기세로 밑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눈깜짝할 사이에 엑스와의 거리를 좁히고 두 주먹을 움켜쥔다.
[어떤 재질이라도, 부서지지 않는 장갑따윈 없다!!]
두들긴다.
그 강맹한 오른주먹으로, 그 무쌍의 왼주먹으로.
번갈아가면서 엑스의 장갑을 개틀링과도 같은 기세로 두들겼다.
강철과 강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귀를 쉬게 할 틈도 없이 울려퍼진다.
1발, 2발. 10발, 20발.
확실히 그 정도까진 엑스의 장갑도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100발, 200발, 계속해서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
분명 어스 아머의 장갑은 강력하다. 그러나 마그마 드래곤이 말했던 것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질로 만들어진 이상 내구력이 무한할 리 없다.
불꽃까지 둘러서 공격력을 상승시킨 마그마 드래곤의 주먹에 의해, 마침내 복부 부분의 장갑이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윽…!!"
오른팔을 휘둘렀다. 물론 결코 느린 속도는 아니었지만, 조금전 다른 아머들을 착용했을 때와 비교하면─ 아니, 비교할 수도 없다.
마그마 드래곤은 그것을 피한 후 헬멧의 안면을 향해 장타(掌打). 어스 아머의 거체가 뒤로 날려간다.
'아무리 강화됐다곤 해도 이렇게까지…!'
하지만 지금 날려온 것은 오히려 잘된 일이다.
엑스는 날려가는 중 아머를 교체, 모습을 바꿨다.
「AQUA」
강철색의 아머가 사라지며 그 대신 물빛의 아머가 자리잡는다.
2m가 넘던 크기도 줄어들었고, 그 형태도 크게 바뀐다.
파이어, 스톰이 가진 거친 느낌이나 어스가 가진 육중한 느낌과도 다르고, 그렇다고 파이트 아머처럼 장갑을 필요최저한의 것들 이외엔 모조리 제외한 형태와도 다른 유선형이 강조된 푸른 빛의 아머. 이 아머는 그 이름처럼 '물'과 '얼음'의 힘을 다루게 해준다.
"프리즈 캐논!"
엑스의 전신에서 청백색의 빛이 뿜어지고, 곧 마그마 드래곤을 향해 커다란 냉동 광선이 발사된다.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을 동결시켜버리는 '차가운 빛'을 바라보던 마그마 드래곤은 곧바로 다시 한번 라이징 파이어를 뿜어냈고, 이번에는 불과 냉기라는 정반대의 힘이 충돌해 엄청난 수증기를 내뿜었다.
'빛'이 녹아내리고.
'불'이 타오르던 그대로 얼어붙고.
'냉기'와 '열기'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주변의 온도마저 좌지우지해버린다.
곧 광선과 불꽃이 동시에 사라지고, 엑스가 마그마 드래곤의 머리 위를 향해 뛰어올랐다.
"프로스트 타워!!"
공중에 떠오른 엑스의 주변이 얼음의 기둥들로 채워진다.
곧이어 엑스의 손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얼음 기둥들이 전부 마그마 드래곤을 향해 떨어져내렸고, 마그마 드래곤 역시 또 한번 불을 뿜는다. 단, 조금 전처럼 화염 줄기를 뿜어낸 것이 아니라 구체형의 화염탄 형태로.
화염탄과 얼음 기둥이 공중에서 부딪혀 폭발을 거듭했고, 대부분의 얼음 기둥들이 불꽃탄에 의해 녹거나 파괴된다. 그 중에서는 불꽃탄이나 얼음 기둥이 부딪히지 않고 통과하여 서로의 주인들을 향해 날아가기도 했지만, 마그마 드래곤은 주먹으로 기둥을 부수고 엑스는 물의 장막으로 불꽃탄을 막아낸다.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엑스가 지면에 착지하고, 마그마 드래곤은 몸 속에 쌓인 열기를 한숨을 토해내 뱉어낸다.
잠시 동안의 대치.
하지만, 두 사람은 물론이고 아리사조차도 알고 있다.
─지난번과 달리, 이 싸움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역시… 굉장해…!'
예전에 봤던 때도 느꼈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도 훨씬 더하다.
아마도 그때 폐건물 안에서 싸웠을 때와는 달리 장소도 넓고, 무엇보다도 주변에 걸리적거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겠지.
그때보다 빠르고, 그때보다 강하며, 그때보다 다양하고, 그때보다 격렬하다.
가슴에 손을 올리고, 자신의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묘하게 숨이 찼다. 두 사람의 싸움에 넋을 잃어버려, 잠깐이지만 숨쉬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이것을 느끼고 싶어서, 이 두 사람과 관계를 맺으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 아니, 이제와서 부정하진 않겠다. 처음에는 분명 그런 가벼운 기분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 그녀는 정확하게 알진 못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가진 각오의 깊이는 이해하고 있었다.
동료였던 이들이 서로 갈라섰고, 동료였던 이를 죽이기 위해 저런 힘을 사용한다. 그야말로 인간끼리의 싸움같은 것은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대무비한 힘을.
그것이, 어느 정도의 것인가 상상해보았다.
만약 자신이 자신의 친구들을 죽여야 한다면, 저렇게도 단호하게 망설이지 않고 싸울 수 있을 것인가.
─할 수 없다. 자신에게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은, 지극히 물렁하고 어설픈 각오로 이들과 관련되려 했다.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각한 지금, 아리사 버닝스는 새로운 각오로 이 자리에 서있다.
아리사의 심정으로는 어느 쪽도 응원할 수 없었고, 어느 쪽이 죽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심정과 이 싸움은 아무런 상관도 없을 거고,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간에 이번에는 반드시 결판이 날 것이다.
그렇기에 하다못해, 지켜봐주고 싶었다.
이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지만.
그래도, 이 두 사람의 '각오'와 그 끝을 눈에 담아두고 싶었다. 담아두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숨을 가다듬으며, 아리사는 싸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렇게, 소녀의 마음은 더욱 성장했고.
그 와중에도, 싸움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주먹을 휘두르고 발을 날린다.
몸을 휘둘러 팔꿈치로 내리찍고, 날아오르는 것과 동시에 무릎을 휘두른다.
하나하나가 인간같은 것은 가볍게 분쇄해버릴 정도의 힘을 담고 있었음에도, 두 사람의 싸움은 아직까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FIGHT」
엑스의 아머가 처음의 파이트로 돌아온다.
어스로는 속도를 따라갈 수 없고, 다른 아머들로는 전투 기술과 감각이 따르질 못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통용되었을 터인 속성 공격조차도, 지금의 마그마 드래곤에게는 거의 통용되지 않았다. 심지어는 더블 사이클론조차도 통상 공격 이상의 데미지를 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남은 것은 자신이 지난 세월동안 쌓아왔던 '경험'과 '기술'. 그것들로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
격투 전용의 아머로 교체한 엑스는 이번에는 자신 쪽에서 공격에 나섰다.
마그마 드래곤에 비하면 훨씬 작은 체구지만, 거기에 담겨있는 힘은 결코 마그마 드래곤에게 떨어지지 않았다.
점프하여 발뒤꿈치 내려찍기.
마그마 드래곤은 왼손으로 그것을 붙잡아 막아냈지만, 그의 발밑이 지면을 파고 들어간다.
하지만 끝끝내 엑스의 발을 놓치지 않았던 마그마 드래곤은, 엑스의 발을 움켜쥐고 그대로 휘둘러 내던졌다.
─날려간 곳에 있던 나무를 밟고 돌진하며, 공중 4연속 대쉬.
그 충격만으로 나무가 부러져 꺾여버리고, 엑스는 마그마 드래곤과의 거리를 좁혔다.
급속도로 접근한 후 자세를 낮춰서 다리 후리기. 마그마 드래곤이 그것을 피하자, 연이어서 계속 공격한다.
엑스의 두 손에 빛으로 만들어진 클로가 만들어진다. 과거의 적 중 하나였던 네온 타이거의 무기인 레이 클로(Ray Claw). 그것을 휘둘러, 마그마 드래곤의 어깨를 벤다.
[타이거의 무기냐. 과연, 나쁘지 않은데!!]
그렇게 말하며 마그마 드래곤은 오른주먹으로 강권을 날린다.
엑스는 레이 클로를 교차시켜 방패처럼 만들며 그것을 막아내지만, 워낙에 힘이 강했던 터라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인 엑스의 몸은 뒤로 날려간다.
하지만 날려가면서도 또 하나의 무기를 만들어낸다.
시그마의 통제 하에 있던 이레귤러 제조 공장에서 만들어진 이레귤러인 와이어 스폰지. 그가 사용했던 스트라이크 체인(Strike Chain). 본래 채찍처럼 사용되는 무기였지만, 지금의 이것은 미리 만들어두었던 레이 클로와 합쳐져 새로운 무기가 된다.
쇠사슬의 끝에, 레이 클로가 장착되어 엑스의 손에서 발사된다. 목표는 물론 마그마 드래곤이다.
엑스를 날려보내자마자 추격하려고 했던 마그마 드래곤은 그것을 피하느라 움직임이 멎고 말았고, 그 덕분에 엑스는 몸을 바로잡은 후 다시 한번 공세를 이어나갔다.
마그마 드래곤에게로 날려보냈던 레이 클로를 회수하여 다시 손에 장착. 달려나가면서 X자 형태로 베어가른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X자 형태의 충격파가 마그마 드래곤을 강타한다.
호랑이를 모티브로 한 네온 타이거의 무기인 레이 클로.
거기에 더해, 슬래시 비스트가 사용하던 초승달 모양의 참격파 트윈 슬래셔(Twin Slasher).
사자와 호랑이, 두 맹수왕의 힘을 하나로 합쳐서 만들어낸 기술이, 폭염의 용의 가슴을 갈랐다.
[크우오오오오!!]
열기로 녹여서 붙였던 장갑이 갈라지며, 다시 한번 체액이 쏟아진다.
거기를 다시 한번 손으로 움켜쥐고 열기를 방출하여, 붙인다.
물론 그렇게 하면 할수록 장갑이 얇아지고 내구도도 떨어지지만 마그마 드래곤에게는 상관없는 문제였다. 이 싸움을 끝으로 몸이 완전히 망가져버린다고 해도 그는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바라는 바겠지.
[카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참격파를 사용하기 위해 자신의 바로 밑에까지 다가왔던 엑스를 발로 걷어차 공중으로 띄운다.
그리고 몸을 한껏 낮춘 다음, 오른 주먹에 지금까지 사용해온 어떤 불꽃보다도 강한 불을 두른다.
지난번 엑스와의 싸움에서도 사용했던, 그의 필살기 중 하나.
「승룡권」
마그마 드래곤의 주먹이 엑스의 복부를 강타한다.
물론 두 사람의 크기 차이가 워낙에 심하기 때문에 복부를 강타했다기 보다는 가슴과 배를 포함한 상반신 전체를 때렸다고 보는 것이 좋겠지만.
─그것을, 엑스는 막아냈다.
[……!!]
두 손을 겹치고 밑으로 뻗어.
클로와 체인은 물론 그 사이에 만들어낸 또 하나의 무기인 크레센트 그리즐리의 크레센트 샷까지 방패로 써서.
"같은 기술에… 몇번이나 당하지는 않아…!!"
승룡권의 기세와 화력이 사라진다.
그러자 엑스는 두 손을 움직여 마그마 드래곤의 오른주먹을 붙잡고, 그를 끌어당기듯이 안쪽으로 파고 들어간다.
파고 들어가면서 몸을 회전시켜, 발뒤꿈치를 마그마 드래곤의 어깨에 박아넣는다.
그의 어깨 장갑이 파괴되고, 마그마 드래곤의 거체가 땅에 쳐박힌다.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대로 조용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녀석들과 노닥거리며 지낸다는 선택도 하려고 하면 가능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도 그 생활이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맞이한 '평화'.
두번 다시 얻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동료'.
그들과의 사이에서 새로 생겨난 '우정'.
그런 것들을 느끼고, 그런 것들을 즐기면서 보낸다.
… 좋은 삶이다. 나쁘지 않기는 커녕, 아주 좋은 삶이었을 것이다.
기한이 좀 짧다는 게 유감이긴 하지만, 그처럼 좋은 삶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엑스나 스톰 이글이 그런 삶을 바라고 있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그에게도 그런 삶은 매력적이었으니까.
싸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상처입힐 일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생활.
생각하면 할수록.
멋지고 훌륭한 일이다.
부정할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나한테는 필요없다!!]
크레이터를 뚫고 튀어나오며 마그마 드래곤이 외친다.
전신에서 불길을 뿜어내며, 이빨을 벌리며 엑스를 향해 떨어진다.
엑스가 그것을 피하자, 그대로 지면에 충돌. 하지만 곧바로 다시 엑스를 향해 돌진한다.
[그런 생활도 있을 수 있었겠지!! 싸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생활!! 훌륭한 거지!! 부정할 생각따윈 없다!! 평화! 동료! 우정! 마찬가지다!! 그런 것을 가진 자라면 그런 것을 가지지 못한 자보다 훨씬 보람있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겠지!!]
마그마 드래곤의 몸을 감싸고 있는 불꽃의 온도가 끝없이 올라가고, 그의 몸 자체가 적열화된다.
그 표면 온도는 이미 높아질대로 높아진 상태. 아리사와 마그마 드래곤의 거리가 상당히 멀었던 것이 다행이다. 만약 지난 번처럼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있었더라면 순식간에 흔적도 남지 않게 됐을테니까.
[그러나, 나에게는 필요없다!! 내가 원하는 건 오직 한 가지, 나에게 어울리는 것도 오직 한 가지!! 최강의 적과의 싸움에서 얻을 수 있는 희열 뿐이다!!]
10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오직 그것만을 위해서, 모든 걸 버렸다.
이레귤러 헌터로서 누리던 모든 영광과 명예도 버리고.
수만명의 인간과 레플리로이드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그때까지 함께 해왔던 동료들마저 배신하고 적으로 돌렸다.
오직, 한가지의 소망.
전사로서 엑스와, 그리고 또 한 사람과 싸워보고 싶었다는 그 한가지만을 위해서.
[외도 중의 외도로 떨어진 나에게 허락된 것은 수라처럼 싸우다 시체조차 남기지 않고 죽는 것 뿐!! 그 이외의 어떤 것도, 나에게는 필요없다!! 다른 것을 누릴 자격조차도 나한테는 없어!! 내가 내 손으로 그런 것들을 스스로 버려왔으니까!!]
필요하다면.
그것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자신은, 리니스와의 인연조차도 내버릴 수 있다.
마그마 드래곤은 포효하며, 계속해서 엑스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몸에 부딪혀도, 이빨에 물려도, 손톱에 찢겨도 틀림없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하다.
[어차피 이겨도 져도 죽는다!! 그렇다면, 나는 최강의 전사에게 이겼다는 자부심을 갖고 저세상으로 가겠다!!]
마그마 드래곤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을 때 엑스는 몸을 뒤로 눕히고, 아슬아슬하게 그 위로 마그마 드래곤이 지나가는 틈을 노려 발로 그를 올려차 날려보냈다.
─그와 함께, 강렬한 열기와 고통을 함께 느낀다.
마그마 드래곤의 몸이 계속해서 뜨거워졌다.
용암조차 견뎌내는 그의 장갑이 버티지못하고 점차 녹아내려갈 정도로.
바닥에 몸을 눕혔던 엑스가 몸을 일으키고, 날려간 마그마 드래곤 역시 그곳에서 착지한다.
장갑이 녹아내리고 있음에도, 마그마 드래곤의 열기는 끊임없이 그 힘을 더해갔다. 마침내 적열이 아닌 백열이 되버렸을 정도로.
─그리고 그 열기가, 마그마 드래곤의 오른손에 모여 방출된다.
손에서 방출된 열기는 그대로 흩어지지 않고 한군데 모여, 작은 '태양'과도 같은 빛을 뿜어낸다.
플레임 맘모스를 소멸로 이끈 그의 최대 비기.
그러나 그 안에 담긴 힘은, 그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싸움이 시작되고, 어느덧 4분 30초가 지났다.
그에게 있어서는 이것이 마지막 공격.
[간다, 엑스. 내 차례는… 이걸로 마지막이다.]
이것을 버텨내면, 엑스의 승리.
견뎌내지 못하면, 자신의 승리.
모든 열기와 모든 에너지와 모든 집념을, 이 공격에 담는다.
「염열옥炎熱玉」
믹스 포르테조차 받아낸다면 한순간에 녹아내릴 공격.
그것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며, 엑스는 마음을 굳혔다.
지금이라도 스톰 아머로 바꾼다면 아슬아슬하게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저런 것이 지면에 착탄되면 어떤 대참사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또 한가지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저것은, 그의 신념.
─저 빛은, 그가 가진 생명이 발하는 마지막 빛.
─그는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버려가며, 자신과 싸우려 하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BLAST」
엑스의 파이트 아머를 청백색의 빛과 스파크가 휘감는다.
다른 아머의 위에 덮어씌워져, 그 힘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는 능력증폭형의 아머.
─그것이, 점점 커져간다.
엑스의 몸을 감싼 파이트 아머.
그리고 그 파이트 아머를 감싼, '빛'과 '스파크'만으로 이루어진 블래스트 아머.
그 모습은 마치, '빛의 거인'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싸움은 끝을 향하고 있었다.
아리사에게도 그것은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시간이 다 되고 있었으니까.
아까 마그마 드래곤이 말했다. 엑스가 싸울 수 있는 시간은 5분뿐이라고.
그리고 마그마 드래곤은 그에 맞추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파괴했다.
싸움이 시작된지 5분이 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폭염의 마룡이 던진 것은 작은 태양과도 같은 빛의 구체.
유성의 용사가 만든 것은 하얗고 푸른 빛으로 이루어진 거인.
두 힘과 힘이 부딪히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소녀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태양과 빛의 거인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날아오는 태양을 향해 두 손을 뻗은 거인이, 그대로 태양을 감싸안아 부수려고 든다.
하지만 태양은 그런 거인을 열기로 일그러뜨리며, 오히려 집어삼키려고 했다.
'빛'과 '열기'가 서로를 먹고 서로에게 먹힌다.
그 와중에 생겨난 폭풍과 전격과 불꽃이 사방으로 퍼졌고, 나무가 꺾이고 바위가 부서지며 땅이 갈라졌다.
아리사가 무사할 수 있었던 원인은 단 두가지.
두 레플리로이드가 싸우면서 자리를 옮겼기에 애초부터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 첫번째.
그리고, 애초에 두 가지의 거대한 힘이 부딪히면서 생겨난 '힘의 파장'. 그 방향에서 떨어져있었다는 것이 두번째였다.
다른쪽으로는 온갖 재해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그녀가 있는 곳과 그 외의 몇몇 군데에는 약간의 강풍을 제외하면 어떠한 손상도 없었다.
정말로 우연의 일치였지만, 아리사가 있는 곳은 말그대로 '안전지대'였던 것이다.
이곳에서 한발짝이라도 벗어나면 무참한 일을 당하게 될 것은 분명한 일.
그럼에도 아리사의 몸은 더이상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녀가 느끼고 있는 것은 그저, '슬픔'과 '안타까움'.
그리고… 이 자리에서 그녀의 가슴 속에 새로이 태어난, 또 하나의 '감정'.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기에는, 그녀는 아직 너무 어렸다.
염열옥이 블래스트 아머를 집어삼켜간다.
거리는 떨어져있었지만, 마그마 드래곤이 몸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를 계속해서 염열옥에 주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대가는 결코 적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그마 드래곤의 장갑은 녹아내리고 있었고, 앞으로 내뻗고 있는 오른손의 경우에는 골격마저 드러나있었다. 왼쪽 눈도 녹아내렸고, 오른쪽 눈도 언제 녹아버릴지 모른다.
그 이외에 몸 여기저기에도, 장갑이 녹아내려 안의 구조가 드러나버린 곳이 있었다.
─당연히, 고통도 있다.
인간으로 본다면, 산채로 뼈만 남긴 채 녹아내리는 고통.
보통이라면 참을 수 있을 리 없다. 아니, 아무리 단련된 전사라고 해도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마그마 드래곤이라고 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할 리 없다. 오히려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느껴오고 있었다.
그것을 억누르고 있는 것은, 100년 동안 이어져온 무시무시하기까지 한 그의 집념.
죽음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과 함께, 그의 집념도 강해졌다. 아니, 지금도 강해져가고 있다.
고통이 느껴지고 몸이 녹아갈수록, 그의 힘은 상승하기만 하고 있었다. 이 세계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 아니, '저쪽'을 기준으로 해도 이런 일은 없는 것이 정상이다.
기계로서 정해진 한계를, 자신의 의지로 넘어선다.
마그마 드래곤은 지금, 레플리로이드로서의 '벽'이라고 하는 장애물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염열옥이, 블래스트 아머를 완전히 집어삼키고 지면에 떨어진다.
솟아오르는 용암 기둥.
이미 염열옥은 땅에 떨어지기 직전, 처음 던질 때와 비교해서 2배 이상 커져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솟아오르는 용암 기둥의 규모도 격이 다르다.
열기의 주입을 멈춘다.
그리고 손을 내렸다.
「BLAST FULL CHARGE」
용암의 기둥을 둘로 쪼개버리며, '푸른 빛'이 뿜어져나온다.
염열옥이 만들어낸 용암이, '푸른 빛'에 의해 집어삼켜진다.
「FIGHT FULL CHARGE」
용암을 뚫고 밖으로 나온 엑스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 하지만 상관없다. 이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으니까.
─아아, 그런가.
염열옥을 쪼개고, 용암을 집어삼키고.
그러고도 남아서 엑스의 몸을 감싸고 있던 블래스트의 빛이 엑스의 오른주먹 하나에 집중된다.
저게 한번에 터져나오면 어느 정도의 힘이 나올까. 이제 곧 알게 되겠지.
─이것이.
자신의 바로 앞에서 정지하고, 몸을 낮춘다.
체격은 다르지만, 이 자세는 아까 전 자신이 사용한 기술과 똑같다.
피하려고 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뒤늦게 막으려고 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애초에 피할 생각도 막을 생각도 없지만.
─그렇게도 싸우고 싶었던, 이레귤러 헌터 엑스의 진짜 힘.
「승룡권 : EX」
엑스의 주먹이 마그마 드래곤의 가슴에 닿는다.
그와 함께 푸른 빛의 기둥이 마그마 드래곤의 가슴을 꿰뚫고, 등까지 관통하고, 지면을 가르며 날아가 그 뒤의 숲까지 일부 소실시킨다.
마침내.
모든 힘도, 모든 기력도 잃어버린 폭염의 용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 내가… 이겼어."
[… 아아. 네가 이겼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쓰러진 채 엑스의 품에 안겨있었다.
고개만이라도 움직여보려고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 상관없지 않을까. 어차피 가슴 아래 쪽으로는 감각이 안느껴지고.
엑스를 올려다본다.
자기 입으로 이겼다고 말했지만, 아무리 봐도 승리자의 얼굴이 아니다.
[… 왜 우는거냐.]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딱히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했고, 원래라면 할 수 없었던 것들까지 해냈다. 모든 수단, 모든 무기, 모든 기술을 사용해서 싸웠고, 그리고 졌다.
졌는데도 미련이 남지 않은 건 처음이다. 철저하고, 완벽한 패배.
엑스를 앞으로 일보직전, 이라는 시점까지 몰아넣었지만 결국 쓰러트릴 수는 없었다.
이것이 자신의 한계라고 하는 거겠지.
[100년인가… 그렇게 오래 꿈꿔왔는데, 간신히 이루어졌군.]
"…… 뭐가 꿈이야…"
엑스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이 마음여린 이레귤러 헌터는 여전히 울고 있었지만, 그런데도 말은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싸우고 이렇게 죽는 게… 무슨 꿈이라는 거야…!!"
[하긴. 너는 이해못할지도 모르겠군. 그런 녀석이었으니까. 하지만… 정말로 이젠 됐어. 하고 싶었던 일도, 해야할 일도 전부 다 했으니까.]
엑스는 여전히 울고 있다.
저 멀리서 꼬마가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도망치라고 했는데 보고 있었던건가. 용케도 무사했군.
입에서 의사체액이 뿜어져나온다.
아무래도, 이젠 정말로 끝인 모양이다.
─미련은 없지만, 아직 해야할 말이 있다.
[조심해라……]
"…… 뭐?"
[다른 놈들은 눈치 못챈 것 같지만… 너도 눈치 못챈 모양이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말을 내뱉는 것조차 힘겨워졌다.
적어도 말조차 못하게 되기 전에, 할 말은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스톰 이글, 부멜 쿠완거, 플레임 맘모스, 차일 펭귄, 스파크 맨드릴.
이 녀석들은 '그 날'의 반란 직후에 파괴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된 그 자'를 직접 본 적이 없다. 웹 스파이더도 마찬가지다. 파괴되진 않았지만, 이레귤러 헌터를 빠져나간 다음에 반란이 일어났으니까 역시 '그렇게 된 그 자'를 본 적 없다.
슬래시 비스트에 이르러서는, 아예 '그 자'를 만난 적 자체가 없고.
자신 역시 이 세계에 오고부터 느껴진 그 '느낌'에 반신반의라 말하지 않았지만.
얼마 전 그 '반역자'에게서 '그 자'의 전파가 얽혀있는 것을 느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다른 놈들과 달라…!! 놈에게 한번… 직접 감염되봤으니까…!! '그런 모습'이 된 '그 자'를 본 적이 있으니까…!! 그런 나이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도 있다…!!]
"무슨 소리를…?!"
[이 세계에, 있어…!! 우리들을 망가뜨린 그 녀석이… 그 '사신'이…!!]
엑스의 감정이 전해져온다.
눈물은 계속 흘리고 있었지만, 표정은 망연한 채다.
이젠 그것도 잘 보이지 않지만.
[아직까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가까진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있어…!! 그리고… 녀석이 이 세계에 있다면… 녀석은 분명 너를 노려오겠지…!!]
놈이 무엇을 노리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다름아닌 그 놈이니까, 좋은 일일리 없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건 이 녀석 뿐일거고.
[내 죽음따위에… 신경쓰지마라… 스카이라군을 떨어뜨린 그 날부터… 나는…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 다시 살아났다고 해도… 내 죄는… 씻겨지지 않아… 나는 그 대가를… 치룬 것… 뿐… 네가… 해야할… 일을… 잊으면… 안…]
더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더이상,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엑스가 뭐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조차 이젠 희미하게밖에 들리지 않았다.
…… 신기하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인데도 네 모습만은 똑똑히 보이고 있어, 리니스.
이 세계에 있을 리 없는 네가.
결국, 거짓말을 해버린 채 그대로고 약속은 못 지키게 됐지만.
사과할 생각은 없지만, 고맙다는 말 정돈 하고 싶었는데.
너는 나한테 도움을 받은 게 고맙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도움을 받은 건 내 쪽일지도 몰라.
너하고 보낸 시간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 버티지 못했을 지도 몰라.
그 동안 고마웠어. 넌 건강하게 오래 살라고.
서서히, 서서히.
생각하는 것조차도 힘겨워졌다.
그리고, 끝없이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100년 전에도 느껴봤던 감각.
그 때는 느끼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지만, 이제는 이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겠다.
그렇구나.
이게, '죽음'이군.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