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IRREGULAR HUNTER - X


원작 | , ,


이 자리에서 싸우지 않는다면, VAVA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죽여가기 시작할 것이다.
이 자리에서 싸운다면, 도시 전체를 휘말리게 해버릴지 모르는 싸움을 벌이지 않으면 안된다.


어느 쪽을 택하건 간에 최악. 엑스에게 있어선 절대 고르고 싶지 않은 양자택일.
그것을, 이 이레귤러는 아무런 전조도 예고도 없이 들이밀어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별로 굉장한 생각같은 건 안하는데."


그렇게 말하며 VAVA는 여전히 미소를 띄웠다.
애초에 지금 이것은 그의 완전한 단독행동. 일레인은 물론이고 '사신'조차 모른다. 아예 말도 하지 않고 나온 거니까.
본래부터 그는 면밀한 계획같은 것을 세우고 움직이는 성격이 아니다. 행동의 대부분이 즉흥적이며,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움직이는 타입이니까.


"도대체……"
"응?"
"무엇때문에 이런 짓까지…!!"


이런 곳에서 시가전을 벌이게 된다면 VAVA에게도 좋을 리 없다.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지금의 VAVA는 혼자. 이런 곳에서 본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혼자서 이 세계를 향해 싸움을 걸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무리 VAVA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무모할 리는…


"이유를 묻는거냐. 그야, 이유라면 있지."


VAVA는 천천히, 미소의 종류를 바꾸기 시작한다.
─VAVA 자신의 본성이 묻어난, 잔혹한 미소로.


"100년 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내 목적은 오직 하나 뿐이야."


여전히 두 손은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한 걸음 한 걸음 엑스를 향해 다가온다.
어디까지나 천천히, 하지만 멈출 생각은 없어보인다.

 

 

 


"나는 말이지, 그냥 널 괴롭히고 싶은 것 뿐이야. 그것 뿐이라고."

 

 

 


IRREGULAR HUNTER - X



36화


 

 

 


VAVA가 가진 힘의 종류를 생각하면 시가전은 최악의 선택이다.
그의 기본적인 전투 타입은 '포격전'. 예전부터 그는 어깨에 장착한 숄더 캐논을 이용한 포격이 특기였고, 그때도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지난번에 잠깐 싸웠던 때를 생각하면 그때하고조차도 화력이 비교도 되지 않게 상승한 상태. 게다가 저 몸 안에 에너지 캐논이 몇개나 내장되어있는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전에 츠키무라 저택에서 선보였던 화력.
그것을 이 자리에서 단 한번 사용하는 것만으로, 이곳에 있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렇다고 내버려둘수도 없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사람만 해도 세자리수. 자신이 싸우지 않는다면 VAVA는 정말로 여기있는 사람들을 찢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니까.
생각하면 할수록 이빨이 저절로 갈렸다.


'원래부터 이런 놈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어떡할거냐. 안 덤비냐?"


두 사람의 목소리가 상당히 작았기 때문에, 이 상황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없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설령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냥 넘겨버리거나 픽션 속의 이야기라고 생각할테지만.


어떻게 할까.


자신은, 어떻게 해야─

 


<엑스. 들리나?>
<… 이글?!>

 


엑스의 회선을 통해 스톰 이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지금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야,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인파 앞에 모습을 드러내선 안되지만.


<지금 어디에?>
<네 좌측 옆에 있는 건물의 옥상이다. 단순히 지나가던 도중이었지만 표정이 나쁘길래, 뭔가 문제가 생긴건가 해서.>


과연 독수리의 레플리로이드. 저 거리에서 자신의 표정을 파악하다니, 시력만큼은 엑스 이상이다.
VAVA에게 들키지 않도록 고민하는 표정을 하며 스톰 이글에게 계속 통신을 걸어 설명했다. 잘하면, 이 상황도 어떻게든 해결될지도 모른다.
눈앞에 있는 이 인간 소년'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은 VAVA이고, 자신을 무슨 수로 불러냈고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를 걸어왔는지.


<…… 원래부터 그런 놈이었지만 오늘은 특히 더 심한데.>
<누가 아니래. 뭔가 좋은 생각있어?>
<글쎄, 없다고 할 것도 없지만… 일단 그 녀석이 빈틈을 보여야 될텐데.>


"… 슬슬 질리는데."
"……!!"


스톰 이글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VAVA가 오른손의 형태를 바꾼다.


─강철조차 가볍게 잘라버릴 듯한 손톱이 달린, 말그대로 죽이고 부수기 위한 기능에 특화된 손.


저것으로 사람을 붙잡고 손가락을 구부리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죽을 것이다.


그 손을 움직인다.
목표는…… 알 수 없다. VAVA로서는 누가 손에 걸려도 좋았을 것이다. 엑스가 보는 앞에서 머리를 깨고 죽일 수만 있다면.

 


─그 손을, 엑스가 붙잡았다.

 


"그만둬…!!"
"호오."


VAVA가 미소를 더욱 짙게 하는 것과 동시에, 지면에 뚝뚝하고 핏빛의 액체가 떨어진다.
장갑조차 꺼내지 않고, 맨손으로 VAVA의 손을 붙잡는 것으로 피부가 찢어진 탓이다.


손이 찢어지고 피가 흘러내리며 상당한 통증이 왼손에서 팔을 타고 전해지는데도, 엑스는 VAVA의 손을 붙잡은 채 놓지 않았다.
그런 엑스를 보며, VAVA는 말했다.

 


"이건 싸움 거는 거라고 봐도 되는 거겠지."

 


VAVA의 어깨에서 에너지 캐논이 모습을 드러낸다.


"윽?!"


소형의 캐논이 엑스에게로 겨눠진 채, 에너지를 차지한다.


하지만 소형이든 대형이든 이런 곳에서 터졌다간 분명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나온다.
순간적으로 주변을 살핀다. 역시 아직까지 이변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오른손을 뻗어 에너지 캐논을 덮었다.

 


「AQUA」

 


오른손바닥만을 장갑으로 감싸고, 그대로 얼음의 힘을 방출한다.
VAVA의 에너지 캐논은 에너지를 충전하던 그대로 얼어붙었고, 포격은 멈춰졌다.


"제법인데."
"… 하지 말라고 했을텐데."
"내가 그걸 들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오른쪽 어깨의 에너지 캐논이 체내로 수납되버리고, 다른 캐논이 생겨난다.
그것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하나가 아니라 VAVA의 몸 여기저기에서 새로운 캐논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식…!!"


"어디 한번 막아보시지, '용사'."


광기.
지금의 VAVA에게선, 오직 그것밖엔 느낄 수 없었다.
오직, 그 하나의… 최악의 감정만이 VAVA에게서 흘러나왔다.

 

 

 


「스톰 토네이도 Full power : “God Breath”」

 

 

 


한순간.
광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 하늘을 향해 쏠렸다.


─하늘 위에서 춤추는, 거대한 바람.
─그에 의해, 쉴새 없이 형태를 변해가는 구름.


최종적으로 구름은,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거인과도 같은 형상이 된다.

 


사람들의 반응은 가지각색.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고, 멍하니 올려다보는 사람도 있으며, 휴대폰의 카메라를 높이 들어올리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아래를 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FLASH」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서야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내려 아래쪽을 바라본다.
하지만 고개를 올리기 전과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자, 다시 고개를 올렸다.

 

 

 


엑스가 가진 이레귤러 「스팅 카멜레온」의 힘.
그것은 자기 자신은 물론, 그에게 닿은 물체조차 투명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또다른 이레귤러 「부멜 쿠완거」의 힘.
그것은, 자기 자신과 함께 붙잡은 물건을 단거리지만 텔레포트 시키는 능력이다.


스팅 카멜레온의 힘으로 VAVA와 함께 모습을 감추고, 부멜 쿠완거의 힘으로 연속적인 공간도약. 그로 인해 간신히 인파에서 벗어난 엑스는 인근의 산까지 들어갔다.
그는 몰랐지만, 이곳은 예전에 아리사가 알프를 만났던 곳이기도 했다.


"하아… 하아… 하아…"


이곳까지 이동한 후 VAVA와 떨어져서는, 연속적인 힘의 사용에 지쳐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아무리 엑스라고 해도, 단거리 텔레포트의 연속 사용은 버겁다. 이 능력의 원래 주인인 부멜 쿠완거조차 한번 사용하고 나서는 상당한 휴식을 취해야 했었는데, 그런 것을 여기 올 때까지 사용했으니까.


그런 엑스를 보며, VAVA는 손바닥을 부딪힌다. 이른바, '손뼉'이다.
챙, 챙, 챙하고 금속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엑스의 귀에 들려왔다.


"참 잘했어요~. 여기라면 사람들이 다칠 일도 없고 목격자를 걱정할 필요도 없지. 여기까지 이동해왔으니 너한테는 좋은 결과겠군. 해피 엔딩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이르지만."
"왜…"
"응?"
"도대체… 무슨 생각인거야…!!"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금 전 엑스가 VAVA를 붙잡고 텔레포트를 하던 순간.
엑스의 귀는, VAVA가 꺼내놓은 에너지 캐논들을 회수하는 소리를 포착했다.


즉, 이 녀석은 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엑스에게서 벗어날 수도 있었거니와 방금까지 떠들어댄 것처럼 끔찍한 테러를 저지를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굳이 하지 않고, 엑스가 이끄는대로 여기까지 왔다.


"처음부터 나와 싸우는 게 목적이었다면… 이런 곳으로 불러내도 됐을텐데…?"
"그건 아니지. 그건 네가 멋대로 그렇게 생각한 거고."


엑스의 말을 딱 잘라 부정한다.


"확실히 나는 네놈만은 내 손으로 찢어죽이길 바라지만 말야… 별로, 나는 "너를 죽인다"는 결과만 있으면 되거든? 과정같은 건 아무래도 좋고."
"…… 뭐라고…?"
"나는 마그마 드래곤과 다르다고 말하는거다."


VAVA는 오른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여, 검지 손가락의 손톱으로 볼을 그어내린다.
혈액과 같은 의사체액이 흘러나오며, VAVA는 손가락에 묻은 그것을 혀로 핧아낸다.

 


"정정당당히가 아니라도 상관없어. 아무한테도 방해받지 않는 1 : 1이기만 하다면, 내 손으로 네놈을 어둠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좌절과 절망을 안겨준 다음 얼굴을 뭉개고 사지를 부수고 심장을 끄집어내고 척추를 들어내고 목을 뽑아낸 후 이 손으로 남은 조각들까지 모조리 갈기갈기 찢어발겨줄 수만 있다면 수단도 방법도 상관없다. 인질을 잡든 기습을 하든 그보다 더 추잡한 수를 쓰든 그 외의 뭘 하든, 네놈을 쳐죽일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단 말이다, 나는."

 


그것이, VAVA와 마그마 드래곤의 가장 큰 차이점.
VAVA 역시 마그마 드래곤처럼 엑스를 자신의 손으로 쓰러트리고 싶어했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마그마 드래곤은 서로가 같은 조건에서 정당한 결투를 벌여 쓰러트리길 원했고.
VAVA는 엑스를 괴롭히며 나락의 끝까지 절망시키고 그 최후에 자신의 손으로 죽이길 원한다.


엑스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없이 많은 이레귤러들과 만나고 싸우고 파괴해왔지만.

 


여기까지 미쳐버린 이레귤러는, 역시 이 녀석밖에 없다.

 


[언제봐도 구역질밖에 치밀어오르지 않는구나, 네놈은.]


그때, 날개가 펄럭이는 소리와 함께 스톰 이글이 엑스의 옆에 내려섰다.


"이글…"
"과연. 아까의 구름은 네놈 짓이었나."


스톰 이글이 나타났는데도 VAVA는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반면, 스톰 이글은 평소와는 달리 '경멸'을 숨기지 않고 표정에 드러내고 있었다.


"네놈치고는 파워가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쥬얼 시드로 부활하고 얻은 힘이었던 모양이군."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을텐데. 네놈같은 광견에게 있어서는.]


마치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스톰 이글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은 태세를 취했다.
아니, 엑스가 어깨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실제로 달려들었을 것이다.


VAVA가 이레귤러 헌터였던 시절.
VAVA는 다른 헌터들과의 충돌도 잦았는데, 특히 심했던 것이 이 스톰 이글이었다.
스톰 이글은 VAVA가 가진 특유의 잔혹함과 그 행동을 여과없이 비판하며 경멸하는 태도를 취했고, VAVA는 그런 스톰 이글을 "명령에만 복종하는 날개달린 개"라고 매도하며 대응했다.


그대로 내버려뒀더라면 무력 충돌로 이어질 수도 있었을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험악했지만, 이후 VAVA가 대형 사고를 치고 붙잡혀 유폐됨으로 인해 결국 직접적인 싸움까지 벌어지진 않았었다.
그런 두 사람이었으니, '헌터'와 '이레귤러'로 확정된 지금은 가릴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놈들 중 둘이 모였군. 여기에 그 놈까지 있었더라면 쳐죽이고 싶은 순위 BEST 3가 다 모이는건데 말야."


그렇게 말하며, VAVA는 그 모습을 완전히 바꾸었다.
일전에 츠키무라 저택에서 보였던 것과 같은, 완전 전투형의 모습으로.


[우리 둘을 상대로 혼자서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참새 한마리가 날아왔다고 변하는 게 있을 것 같으냐. 둘 다 싸잡아서 죽여주지.]


그렇게 말하며, VAVA는 전신에서 에너지 캐논을 뽑아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범님!"


인사를 한 후 도장에서 나가는 학생들을 보며, 시그넘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그녀가 임시 사범으로 일하고 있는 검도장. 처음에는 싸우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자신이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진 그리 큰 문제가 없었다. … 그렇다기 보다는, 다른 사범들에게도 학생들에게도 호평이었다.


"수고했네."
"아, 오셨습니까."


자신을 이곳에서 일하게 해준 도장주인 노인이 인사를 하며 다가오자, 시그넘도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젊은 처자가 고생이 많구만."
"아니오, 문제없습니다. 아이들도 지시를 잘 따르는 편이고."


물론 이 아름다운 여사범에게 반항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런 녀석은 안팎으로 철저하게 두드려줬다. 그 이후부터는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 잘 따르고 있고.


"그건 자네가 잘 가르치기 때문이야.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거든."
"과찬이십니다."


정말로, 과찬이다.


시그넘 자신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생활을 하게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오직 어둠의 서의 주인을 위해서 싸우고 싸우고 싸우고 싸우고, 오직 싸우기만 하며 살아왔으니까.


그런 자신들을 인간으로서 대해주고, 인간으로 만들어준 것이 지금의 주인인 '야가미 하야테'.
그리고, 그녀의 소중한 가족인 소년 엑스다.


그 두 사람에게는, 아무리 감사해도 모자라고 어떤 보상을 해도 부족할 것이다.


"그러고보니."


생각에 잠긴 시그넘을 인자한 미소로 지켜보던 노인이 다시 말을 걸어온다.


"지난번에 겨뤄본 내 아들 놈은 어땠나?"
"자제분 말씀이십니까. 확실히 그 나이대의 청년치곤 훌륭한 솜씨였습니다만."


아마도 올해 스물 다섯이었던가.
그 또한 이 도장의 사범 중 한명이었으며, 시그넘을 제외하면 도장 제일의 실력가였다.
또한 그런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자만하지 않고 정진하는,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인물이었고.
시그넘의 이야기를 듣던 노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이 노인네의 몇안되는 자랑거리 중 하나라네."
"네. 자랑스러운 아드님을 두셨습니다."


확실히 요즘 시대에는 보기 드문 청년일 것이다.
시그넘이라고 해서 '요즘 시대'를 잘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하는 말은 아니네만…"
"……?"


괄괄한 성격의 이 노인치고는 드물게 말을 더듬고 있다.
하지만 곧 결심을 굳힌 듯이 말을 잇는다.


"나도 이제 늙었고, 슬슬 아들놈한테 도장을 물려줄까해서 말일세."
"… 네."


… 확실히 나이가 있다곤 생각했지만, 은퇴를 생각할만큼 늙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자랑처럼 들리겠지만, 내 아들은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게 키웠다고 자부한다네."
"……"
"그래서 말인데, 자네만 좋다면─"

 


─그 순간, 의자 위에 올려둔 시그넘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 죄송합니다."
"아니아니, 괜찮네. 내 이야기는 그리 급한 게 아니니까."


… 타이밍 나쁘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노인은 시그넘에게 신경쓰지말라고 이야기했다.
시그넘은 한차례 고개를 숙인 후, 의자로 다가가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이 번호는…… 집에서 온건데. 주인 하야테인가 아니면 비타인가…'


그렇지만 무슨 일로 자신에게 전화를 건걸까. 조금 있으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는 걸 알텐데.
의문을 품으면서도, 시그넘은 전화를 받았다.

 

 

 


"오늘의 분량은 이게 전부다."


─그릉그릉그릉.


"… 그렇게 봐도 소용없어. 지금의 네 체중은 적정량을 초과했다. 적당히 먹지 않으면 살이 쪄서 나중에 괴롭게 될거다."


─키유우우웅…


"달라붙지마라. 그래도 안 주는 건 안 주는 거니까."


그릉거려도 안되고, 바지 끝을 살짝 물어 달라붙어도 안되자 마지막에는 아예 바닥에 배를 드러내고 누워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는 거대한 사자를 가볍게 무시했다. 이런 걸 일일이 받아주면 버릇이 나빠지니까.
쟈피라는 먹이가 들어있던 통을 들고 우리에서 나왔고, 사자는 그런 쟈피라를 슬픈듯이 쳐다보다가 결국 포기한 듯이 배정받은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언제봐도 굉장하네요, 선배님은. 사자가 그렇게 따르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그런 쟈피라에게 그가 맡은 견습생이 다가온다.
글쎄, 따르는 게 아니라 겁을 먹고 복종하는 걸텐데. 쟈피라는 속으로 그렇게 대답해주었다.


체구가 작고, 안경을 쓴 땋은 머리의 여성. 여성의 몸인데도 이쪽 우리를 맡게 되었기에, 쟈피라가 일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는 그녀를 얕보고 달려들려고 하던 맹수들도 있었지만, 그녀의 뒤에서 쟈피라가 소리없이 으르렁거리자 완전히 압도당해 물러났다. 그 이후부턴 그녀도 맹수들과 무리없이 친해지기 시작했고.


"뭘. 너도 언젠가는 할 수 있게 될거다."
"암만 생각해도 아직 멀었는데요, 저는…"


슬슬 퇴근 시간이었기에, 쟈피라는 본관 건물로 향했고 견습생도 그런 그의 뒤를 따라갔다.


"중요한 건 녀석들이 뭘 원하고 뭘 싫어하는지 빨리 알아차리고 그에 따른 대응을 해주는거다. 결국 녀석들과 얼마나 마음이 통하느냐가 관건인거지. 아무리 사나운 녀석이라고 해도, 이유없이 달려들진 않아. 사육사를 하려면 그 정돈 빨리 구분할 수 있게 되는 게 좋을거다."
"네에!"


쟈피라의 경우엔 마음이 통하는 걸 넘어서 완전히 겁을 먹게 해서 압도해버렸지만.


"선배는 오늘 일 이걸로 끝이죠?"
"아아. 그렇지."


무표정이었지만, 이래뵈도 쟈피라는 꽤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누가 뭐라고 해도, 소중한 가족 중 한 사람이 원래대로 돌아왔으니까.
게다가, 그 경악스럽던 요리 실력도 그렇고 균형 못잡고 넘어지는 것도 그렇고, 몰라보게 나아진 상태다. 기뻐하지 말라는 게 무리다.


그런 속을 모른 채, 견습생은 우물쭈물거리다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기, 선배… 그러면 오늘…!"

 

 

"어어어어이!! 쟈피라 씨!! 집에서 전화왔어!!"

 


용기있게 고백의 첫발을 내딛으려는 찰나.
본관 쪽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오고, 견습생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전화…?"


"상~당~히~ 급해 보이는 목소리더라고!! 빨리 와서 받아봐!!"


집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쟈피라는 조금 발걸음을 빨리 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교대 시간에 딱 맞추셨네요."
"네에. 오늘 길이 막혀서 하마터면 늦을 뻔 했지만요."


샤멀은 지금 막 도착한 직원과 자리를 교대했다.
자신이 오늘 해야할 일은 이걸로 끝.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씻고 식사하고 모두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과거의 주인들은, 그녀들을 '도구' 이외의 것으로는 다루지 않았다.
자신을 지킬 도구.
자신의 적을 치기 위한 도구.
언제 어느 때건 부려먹을 수 있는 편리한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존재. 간혹 성적 봉사를 강요당했을 때의 일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끔찍한 기억이다.


하지만 지금의 주인인 야가미 하야테와 그녀의 가족은, 그런 과거들을 잊어버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만큼 지금의 그녀는 즐겁고 행복했다.


지금의 이 생활이, 언제까지고 계속 되도록.


"아, 샤멀 씨. 지금 끝난거지?"
"네, 점장님. 점장님도 지금 돌아가시는 길인가요?"


이 편의점의 점장을 맡고 있는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상당한 호인인 듯한 인상에, 인상 그대로의 성격을 가진 호청년.
생각해보면 상당히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도 아직까지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었다.


"저기 말야, 예정이 없으면 지금부터 나하고 식사라도 하러 가지 않겠어? 요 근처에 좋은 곳을 알거든."


밖에서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제안들에 대해, 샤멀은 언제나 같은 대답을 해왔다.


"죄송해요. 가족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그런가… 그렇지. 동생들이 많다고 그랬지."


그런 사정이면 어쩔 수 없지. 아쉽게 생각하면서도, 그녀의 사정을 대략이나마 들은 점장은 순순히 물러났다.
덧붙여 이시다에 의해 이 편의점내에 왜곡되어 알려진 샤멀의 이미지는 "동생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젊은 처녀가장"이다. 사실과는 상당히 빗나가있지만, 편의점 직원들은 샤멀의 외모와 성격에 반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 어라?"


그때, 편의점의 전화가 울린다.
번호는… 그녀의 집이다.


"이거, 샤멀 씨 집 번호지?"


몇번인가 샤멀이 자리를 비웠을 때 대신 받아서 전해준 적이 있는 직원이 말했다.


"네. 말하기 무섭게 연락이 오네요."


이렇게 닥달하지 않아도 곧 갈텐데도.
샤멀은 그렇게 생각하며 미소를 지운 채,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정확히 10초 후.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가 깨끗이 지워졌다.

 

 

 


「EARTH」


대지의 갑옷을 두른 엑스가 돌진한다.
그런 엑스를 향해, VAVA는 캐논들을 끄집어내고 일제히 발사를 시작했다.


강철을 부수는 에너지탄, 암석도 녹여버리는 열선, 불과 열을 동반한 폭탄, 그 이외의 무수한 종류의 탄환들과 미사일들이, 현재 꺼내어져있는 36문의 캐논들에 의해 셀 수 없이 엑스를 향해 발사되었다.


"크, 으윽…!!"


그것을 장갑으로 막아가며, 앞으로 전진한다.
어스 아머는 2m가 넘는 대형의 아머. 엑스의 몸은 손끝에서 발끝은 물론 안면부와 눈마저도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게 되어있다. 거기에 더해, 엑스가 가지고 있는 아머 중 가장 높은 방어력까지 보유한, 말그대로 움직이는 강철의 요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VAVA의 포격력은 심상치 않은 수준. 아무리 어스 아머라고 해도 이렇게 한도 끝도 없이 맞아주다간 깨지고 만다.


[잡았다!!]


VAVA의 포격이 엑스를 공격하는 동안, 스톰 이글은 하늘 높이 날아올라 VAVA의 뒤로 돌아간 다음 그대로 한 자루의 창과도 같은 기세로 돌진했다.
VAVA는 현재 완전히 엑스에게 집중하고 있는 상황. 스톰 이글 쪽은 보지도 않고 있다.
이대로라면 기습하는 것도─

 


[그냥 그대로 죽어라, 멍청한 새대가리.]

 


뒤도 돌아보지 않은 VAVA에게서, 그런 말이 들려왔다.
스톰 이글이 그 말을 이해하는 순간.

 


─엑스를 공격하는 앞쪽의 캐논들과 똑같은 숫자의 캐논들이 VAVA의 등과 어깨 뒤쪽에서 나타난다.

 


[뭐?!]


그리고는 일제히 포격 개시.
스톰 이글은 몸을 급히 정지시키고 팔을 교차시켜 가드 자세를 취한 다음 그 위를 날개로 덮어 방패로서 사용한다.


그 위로, VAVA의 포격이 무자비하게 떨어진다.

 

1발, 10발, 20발, 30발─
끊임없이 끊임없이 끊임없이, 계속해서 발사된다.
그러는 동안 스톰 이글의 날개가 부서져가고, 엑스의 갑옷도 점점 금이 간다.


[뭐하는 거냐! 둘이 합쳐서 고작 이거냐! 이대로라면 아무것도 못한 채 ​박​살​나​버​릴​텐​데​!​!​]​


「SPIRIT : 휠 게이터」


위로 뛰어올라 일시적으로 포격의 범위에서 벗어난 엑스가 스피릿 아머로 교체했다.
그 직후 엑스는 휠 게이터의 데이터를 리얼라이즈. 모습을 드러낸 흉아(凶牙)의 중전차가 몸을 둥글게 말고 VAVA를 향해 돌진한다.


​[​■​■​■​■​■​■​■​■​■​■​■​■​■​■​!​!​]​
[이제와서 그런 놈의 기술이 통할 거 같냐!!]


VAVA의 캐논포들과 휠 게이터의 스핀 휠이 부딪힌다.
휠 게이터의 껍질과 칼날들은 VAVA의 포격을 뚫고 전진해갔지만, 그 직후 72문으로 늘어난 포문의 끝없는 포격에 의해 결국 파괴되어 사라졌다.


[리얼라이즈따윈 어차피 뒈져버린 놈들의 데이터 찌꺼기를 일시적으로 구현화한 것 뿐. 본래의 그 놈들에겐 미치지 못하지. 물론, 진짜 게이터가 나한테 덤볐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지만.]


그 말대로였다.
엑스가 스피릿 아머로 만들어내는 "레플리로이드 리얼라이즈"는 어디까지나 엑스의 AI에 기록된 이레귤러들의 데이터를 구현화시키는 것이다. 정말로 죽은 자들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고, 포효를 한다던가 특이한 행동을 취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데이터에 기록된 이레귤러라면 이렇게 행동할 것이다"라는 반사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리 그들의 모습을 하고, 그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그들의 기술을 사용한다고 해도.
리얼라이즈는 결국 리얼라이즈.


… 아무리 이것으로 웹 스파이더와 마그마 드래곤의 모습을 재현해본들, 그것은 녹화된 비디오를 트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스톰 토네이토」


스톰 이글이 오른팔에서 회오리를 발사하고, 그에 맞춰 VAVA도 오른팔을 버스터의 형태로 바꾼다.


─그 버스터의 위쪽, 아래쪽, 좌측, 우측에는 또다른 캐논들이 나타나, 버스터와 함께 이쪽으로 겨눠지고 있었지만.


[죽어라!!]


버스터와 캐논들이 동시에 빛을 뿜어낸다.
총 다섯줄기의 빛이 하나로 뭉쳐진 거대한 광탄이 스톰 토네이도를 찢어부수고, 스톰 이글을 향해 날아간다.


[큭…!!]


스톰 이글은 곧바로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고, 광탄은 스톰 이글에게서 빗나가 바닥에 착탄.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원거리 전투가 안된다면…!!'
「FIGHT」


경량형의 파이트 아머로 바꾸고, 몸을 낮춘 후 돌진한다.
그것을 확인한 VAVA가 다시 몸에서 새로운 캐논들을 끄집어내, 달려오는 엑스를 향해 발사했다.


'또 새로 꺼냈어…! 도대체 몇개나 되는 무기를 갖고 있는거야…!'


이를 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많은 캐논을 갖고 있고, 아무리 많은 포격을 동시에 행할 수 있다고 해도.
결국 그 모든 공격을 행하는 것은 VAVA 자신.


'혼자서 저 많은 포격에 대한 연산을 동시 처리하고 있다면, 틀림없이…!'


빈틈이 생기게 되어있다.
엑스는 최저한의 움직임으로 포격을 피해나가며, VAVA와의 거리를 좁혀가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그런 방법이라면…!!'


그리고 엑스의 생각을 알아차린 스톰 이글도 그것을 지원하기 위해 깃털 폭탄을 뿌리고, 철구와 함께 버드 메카들을 뱉어내 VAVA를 공격했다.
앞과 뒤, 양쪽에서 공격을 받는 VAVA는 이미 120문이 넘는 캐논들을 동시에 운용해, 엑스와 스톰 이글을 공격하고 있었다.


등 뒤에서 나타난 포구들이 깃털과 철구, 메카들을 부수고.
가슴을 비롯한 앞쪽의 포구들은 달려오는 엑스를 향해 불과 빛을 뿜는다.


─그 모든 것을 피하고 쳐내가며, 엑스가 거리를 좁힌다.


'이대로 안쪽으로 파고 들기만 하면…!'

 

 


[내가 그런 것도 생각못했을 것 같냐!!]

 

 


VAVA의 오른쪽 어깨가 크게 들썩거린다.
그 순간 그곳에서, 지금까지 바깥으로 드러난 캐논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커다란 대형의 포구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옛날, VAVA가 사용하던 것과 같은 형태의.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흉악하게 변한, 대형의 캐논포.


VAVA는 앞쪽을 향한 포격을 멈추고, 그것을 붙잡아 엑스에게 겨누었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20m.
엑스라면 0.3초 안에 좁힐 수 있는 거리지만, 포격은 0.2초 안에 이루어진다.

 


「버스터 캐논」

 


바로 앞까지 다가온 엑스를 향해서.
츠키무라 저택에서 사용되었던 광탄형이 아니라.
거대한 열선포의 형태로, 캐논이 빛을 뿜어낸다.

 

 

 


「BLAST」

 

 

 


빛을 뿜기 직전.
엑스의 몸이 푸른 빛을 뿜어내고.
그 속도가, 더욱더 빨라진다.

 


[이 자식…!!]

 


VAVA가 분노에 찬 외침을 터트린다.

 


─VAVA가 발사한 버스터 캐논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포격이 발사되는 것보다도 빨리 거리를 좁힌 엑스가, 캐논을 붙잡고 밀어올린 탓이다.

 


"내가… 이겼다!!"

 

 

「FIGHT FULL CHARGE」

 

 


포격이 빗나가 크게 빈틈을 드러낸 VAVA를 향해.
엑스의 주먹이, 푸른 빛을 담고 작렬한다.

 


「승룡권 : EX」

 


엑스의 주먹이 VAVA의 복부에 닿고.
한순간에 터져나온 푸른 섬광과 함께.


VAVA의 몸이 뒤로 날려간다.

 

 

 


─그리고, 버텨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등에 부딪히는 나무들을 부수고, 바위를 부수고.
발톱이 붙잡은 지면을 계속해서 갈라가며.


50m가 넘는 거리까지 밀려났지만.


VAVA는, 쓰러지지도 파괴되지도 않았다.


[…………]


복부를 맞아 직각으로 꺾였던 몸을, 천천히 일으킨다.

 


─그 순간, 그의 가면 아래로 의사 체액들이 쏟아져내린다.

 


[크, 학…!! 크하아악…!!]

 


그때처럼 인간이 피를 토하듯이, VAVA는 의사 체액을 토해냈다.
그리고 결과 역시 그때와 마찬가지.

 


마그마 드래곤을 침몰시켰던 공격을 직격으로 받고도.
VAVA는 버텨냈다.

 


[후, 후후, 후후후후후후…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손으로 얼굴을 붙잡고 웃음을 터트린다.
하지만 그 웃음이 즐거워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이 자리엔 아무도 없다.

 

[모자라…]

 

웃음을 멈추고.
그 한마디를 내뱉았다.


"뭐…!!"
[아직!! 모자란다고!!]


VAVA가 오른발을 구르자, 지면이 흔들렸다.
그토록 에너지를 쏟아내고, 풀 차지의 공격을 받았는데도.


'아직도 저런 힘이 남아있다고…?!'


[너희들도 그렇겠지? 그렇잖아?! 모처럼의 전투다!! 더 쏟아내라!! 갖고 있는 힘이 있다면, 남은 것들도 모조리!! 그리고 나는 그걸 이겨내고, 네놈들을 전부 부숴버릴테다!! 그러기 위해서 여기에 온거니까!!]


가면의 틈새로, 붉은 안광이 터져나온다.


─광기와, 희열.


그 두 가지의 감정으로 가득한 눈.


[자, 와라. 둘이서 한꺼번에. 쳐부숴주지.]

 

 

 


<안됐지만, 그 쯤 해둬.>

 

 

 


[……!!]


그 순간, VAVA의 귀에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겹도록 들어온, '사신의 목소리'가.


<한창 즐거워하는데 미안하지만, 돌아와라.>
[무슨 헛소리냐!! 이건 내 싸움이다!! 이 두 놈은 내 먹이다!! 내 즐거움이다!! 내 희열이라고!! 이 놈들은 나의, 나만의…!!]


두 사람에게는 '사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에겐 VAVA가 느닷없이 혼자 고함을 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설령 네놈이라고 해도, 나를 막진 못해…!! 나를 막겠다고 내 앞에 나타난다면 네놈이라고 해도 쳐부셔 죽여줄테다!!]


<그래, 그렇겠지.>


[… 뭐?!]


VAVA의 말에, '사신'이 간단하게 수긍했다.


<네놈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지. 그런 소리를 지껄일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걸 잊고 있는 것 같은데. 너 같은 맹수를 그냥 풀어둘 리가 없잖아.>
[무슨 소리를…!]


<이렇게 말해도 모르겠나. 네놈이 멋대로 폭주해서 날뛸 때를 대비해서 강제 전이 장치를 심어뒀다는 거다. 잠시 쳐박혀서 머리 좀 식히고 있어.>


[이 자식?!]


VAVA의 몸이 빛에 휩싸인다.
예전 부멜 쿠완거들이 전이했을 때와 같은 현상.


[빌어먹을…!! 두고 봐라!! 이 일은 기억해두겠다, ​시​그​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광란의 반역자는 분노와 증오로 가득한 포효를 터트리며, 모습을 감추었다.

 

 

 


"…… 이글."
[… 그래. 대충 상황은 이해할 수 있겠는데.]


VAVA에게 저런 말을 하게 만들고.
VAVA에게 저런 짓을 할 수 있는 자라면.
엑스도 스톰 이글도, 단 하나밖에 떠올릴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VAVA 역시 그 이름을 외쳤었다.


"…… 시그마."


그, 저주스러운 악마가 이 세계에 있다.
그것만으로도, 엑스와 스톰 이글은 전신이 한기에 휩싸이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상대는, 시그마와 VAVA의 연합.

 

─져서도 안되고, 질 생각도 없지만.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군.]


스톰 이글의 말은, 엑스의 기분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엑​스​!​!​!​!>​

 

 

 


"…… 비타?"


그렇게 생각한 직후, 엑스에게 통신이 들어왔다.
번호는 하야테의 집. 그리고 들려온 목소리는 비타였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의 그녀라곤 생각도 못할만큼 참담했다.


마치, 지금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무슨 일… 이야?"


일말의 불안함을 느끼며, 엑스는 비타에게 말했다.

 

 

 


<빨리…! 빨리 와줘…! 하야테가… 하야테가 ​쓰​러​져​버​렸​어​!​!>​

 

 

 


───to be continue

 

NAME : 휠 게이터
이명은 "흉아의 중전차".
이레귤러 헌터 제 6 함대의 전 부대장을 역임했다. 그 흉폭함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임무 도중에 동료 헌터를 상처 입히는 바람에 역으로 자신의 동료들에게 쫓기는 입장이 됐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특유의 흉악한 취향으로 부하들이나, 자신보다 약한 레플리로이드를 괴롭히던 플레임 맘모스급으로 대장직을 역임하기엔 상당히 큰 문제가 있던 인물.
시그마의 반란에 참가했던 건 그 특유의 파괴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X2 시점에서는 인상깊게 생긴 공룡형 이동 요새를 타고 도시를 마음껏 유린했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