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놈. 쓸데없는 짓을 하다니.'
이를 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다.
이곳은 레플리로이드의 감정을 진정시키는 효과를 가진 특수 용액으로 채워진 수조.
이른바, 오직 VAVA만을 위해 준비된 쿨 다운 풀(cool down Pool)이다.
설령 특A급의 이레귤러라고 하더라도 들어가는 즉시 긴장이 풀려버리고, 수십분 정도 들어가있으면 잠에 빠져들 정도의 효능을 가진 풀로서, 시그마가 연결해놓은 강제 전이 장치는 VAVA를 이곳으로 곧바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었다.
시그마가 말한 '머리 좀 식히라'는 건 이걸 말하는 거였나.
─VAVA는 4시간 째 담겨있는 거였지만.
보통의 이레귤러라면 단번에 조용히 만들고, 상위의 이레귤러라고 해도 1시간 정도면 발버둥을 멈추고 잠에 빠져들 이 풀조차도.
VAVA에게는 '지금 당장 움직일 의욕'을 중화시키는 정도의 효과밖에 발휘하지 못했다.
[… 뭐, 됐어.]
꽤 날뛰었고, 수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여러가지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머리는 좀 식은 모양이군.>
[오, 왔냐.]
수조 안에서 손까지 흔드는 여유를 보이는 VAVA를 보며, 머리를 감싸고 싶은 기분을 억눌러야했다.
그야말로 이 녀석은 훌륭하기까지 한 이레귤러의 견본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다루기가 어렵다. 지나치게 '이레귤러다운' 녀석이니까 자유분방함이 도를 넘어서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번의 경우처럼.
[너무 그러지 말라고. 미안하다고 했잖아. 반성도 하고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시그마를 보며, VAVA가 수조 너머로 지껄인다.
엑스가 알고 있는 VAVA라면 상대가 누가 됐든 절대 하지 않을 소릴 들으면서도 시그마는 심드렁한 태도다.
<사기치지마. 네놈이 반성따윌 할 리가 없잖아.>
[하고 있어, 제대로. 다음번엔 걸리지 않게 조심해야지, 라고.]
<…… 네놈처럼 요란하게 놀면 내가 아니라도 눈치챈다, 멍청아.>
이해득실에 상관없이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고 브레이크를 걸려고 하면 망설이지 않고 액셀을 밟아버리는 데다 장애물이 있으면 피하지 않고 뚫어서 지나간다. 실로 '이레귤러란 이래야 한다'고 온 몸으로 말하는 것 같은 녀석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많고 많은 이레귤러 중에서 이 녀석을 고른 거지만, 아주 가끔은 이 녀석말고 다른 녀석을 데리고 오는 게 낫지 않았을까 후회하기도 한다.
[근데 말야, 너. 언제 나 몰래 그런 거 달아놓은 거야? 전이장치.]
<네놈을 복구할 때. 이래서 앞날을 내다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하지. 내가 안불러들였으면 넌 틀림없이 계획이고 뭐고 머리 속에서 지워버린 다음 결판날 때까지 싸웠을걸.>
[…… 부정은 안하겠지만 말야.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건데? 난 여기에 계속 쳐박아둘거냐?]
그것도 딱히 상관은 없지만, 이 좁은 수조에 오래 박혀있으면 몸이 뻐근해지니까 그게 걱정이다.
<아니. 너에게는 따로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다.>
[… 호오?]
이 녀석이 자신에게 부탁씩이나 할 정도의 일이라는건가. 그 말을 듣자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VAVA가 귀를 기울이는 느낌이 들자, 시그마는 곧 본론으로 들어갔다.
<너도 알고 있는 녀석과 관련된 일이다. 지루하진 않을거야.>
그리고, 시그마가 말한 이름은─
IRREGULAR HUNTER - X
37화
"정말로… 괜찮은거야?"
"이야~ 참말로 미안하데이. 쓸데없이 걱정끼치가."
하야테는 겸연쩍게 웃으며 머리를 숙였다.
지금 막, "단순히 과로해서 의식을 잃었던 것 뿐"이라는 판정을 받고 나오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 쓸데없지 않아."
"… 에? 무슨─"
엑스의 낮은 중얼거림에 하야테가 반문한다.
"아무것도, 쓸데없지 않아…!"
"엑스 군…"
걱정했었다. 진심으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하고, 하야테의 옆에 있어주지 못했던 자신을 저주하고 싶어졌을 정도로. 그리고 그 원인이 됐던 VAVA를 찾아내서 때려부수고 가루로 만들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렇지만 다행히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신은 얼마나 안도했던가.
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에, 얼마나 감사했던가.
쓸데없지 않다.
그녀에 대한 걱정이라면, 어떤 것도 '쓸데없는 걱정'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지마… 정말로, 걱정했으니까."
"… 응. 고맙데이."
이토록 직설적인 이야기를 듣자, 하야테는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
뭐라고 해도, 병원 안에서 하기엔 부끄러운 이야기고.
그렇지만, 그만큼.
이 소년이 자신을 얼마나 생각해주고 있는지, 확실히 전해져왔다.
"걱정하지 말그라. 괘안타카니께."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러니까, 집으로 돌아가서 평소의 생활로 돌아가면 된다.
그래.
언제나와 똑같이.
모두와 함께하는 '평소'대로.
하지만.
그녀의 바램은─
"생명의… 위험?!"
그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경악과 불신, 그리고 절망이 섞인 시그넘의 말에, 이시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야테 짱의 다리는 원인불명의 신경성 마비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 마비가 조금씩 위쪽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이 2개월은 특히 현저하게… 이대로는 내장 기능 마비로 발전할 위험성이 있습니다."
한순간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시다의 말을 이해하는 순간, 몸이 저절로 비틀거렸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하야테 짱과 엑스 군에게도 전해주세요. 지금까지처럼 통원 치료가 아니라, 입원해서 집중 치료를 해야할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말하고, 이시다는 침통한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몸을 돌렸다.
시그넘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주인을 살폈다.
아무것도 모른채, 비타와 엑스와 함께 웃고 떠들고 있다.
내장 기능의 마비.
그것은 곧, 사망을 의미한다.
… 어째서지.
어째서인가.
왜 하필 저 아이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왜 알아차리지 못한걸까.
왜 지금까지 알아차리지 못한걸까.
움켜쥔 주먹에서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피가 흘러나오지만, 고통을 느낄 틈같은 건 없다.
주인 하야테의 '그것'은, '병'이 아니다.
어둠의 서의 저주.
주인 하야테가 태어날 때부터 함께 있던 어둠의 서는 주인의 몸과 밀접하게 이어져있었다.
억압된 거대한 마력은, 아직 링커 코어가 미성숙한 주인의 몸을 갉아먹어, 건전한 육체 기능은 물론이고 생명 활동까지 저해하고 있다.
그리고.
하야테가 첫번째 각성을 하고.
자신들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그 속도는, 더욱 가속되었다.
그것은, 자신들 4명의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아주 약간이라고 해도, 주인의 마력이 사용되고 있는 것도.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저녁 때의 강변.
볼켄리터 네 사람은 하야테와 엑스가 듣지 못하도록 이곳에 모였고, 시그넘은 낮에 이시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그녀들에게 전달하는 것과 동시에 지금의 이야기까지도 털어놓았다.
자신들이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소중한 주인의 생명이 줄어간다.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정신이 아득해져간다.
"… 구해야 돼…"
지금까지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시그넘의 말을 듣고 있던 비타가, 고개를 들어올리며 외친다.
"하야테를 구해야 돼!! 샤멀!! 샤멀은 치료계가 특기잖아!! 그런 병같은 거 낫게 해버려!!"
철퇴의 기사는 울음을 터트리며, 호수의 기사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 미안. 내 힘으로는, 도저히…"
돌아온 것은, 잔혹한 '현실'.
어둠의 서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그녀의 힘으로는, 어둠의 서에 의한 침식을 막을 방법도 그럴 힘도 없다.
─그 사실에 대해, 누구보다도 자책하고 있는 것은 샤멀 본인이었다.
그녀의 전문은 치유와 지원.
그럴 터인데, 정작 가장 소중한 주인에게는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한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주인에게 해가 되는데, 그녀를 고쳐줄 수도 없다.
그 무력감.
그 비참함.
"어째서야… 어째서 이렇게 된 거냐고…!"
샤멀을 붙잡은 손을 놓아버린다.
그리고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 높여 울었다.
샤멀 역시,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 엑스에게는, 말하지 않았나?"
쟈피라가 질문을 던져왔다.
하지만 시그넘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그 상냥하고, 마음 약한 소년에게.
과거를 떨치고, 간신히 다시 일어서려고 하는 소년에게.
슬픔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소년에게.
어떻게 이런 잔혹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까.
"이것은 우리들로 인해 일어난 일이다… 그에게까지 알릴 이유는 없어…!"
알릴 수 없다.
알려서도 안된다.
이런 이야기를 알렸다간, 그는 이번에야말로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 시그넘."
"… 아아.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적다… 하지만…"
열화의 장은 목걸이를 움켜쥔다.
대기 상태에 있는 그녀의 전우, 암드 디바이스 「레반틴」.
언제까지고 괴로워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자신들에게는,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생겼으니까.
볼켄리터들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그런가… 유감이로구만."
"죄송합니다."
"아니, 신경쓰지 말게."
시그넘은 도장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지금 막, 그녀는 이곳의 사범일을 그만둔다고 말을 한 참이다.
"안쓰러운 얼굴이로구만."
"… 네?"
"노인네를 우습게 보지 말게. 살아온 날이 긴만큼, 젊은이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능력만큼은 꽤 있거든."
끌끌거리며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노인의 깊은 눈동자는 시그넘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 저는─"
"아무 말 말게. 확실히 아쉽다고 생각은 하지만… 큰일을 하려고 결심하고 있는 젊은이를 붙잡을만큼 속이 좁진 않네."
시그넘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그 일로 인해 어떤 결심을 했는지.
이 노인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눈앞에 있는 이 여검사는, 중요한 결심을 했다.
아마 앞으로의 인생을 뒤바꿀지도 모를 정도의 커다란 결심을.
흔들림없는 눈빛은, 그 결심이 얼마나 굳은 것인지 나타내는 증거.
노인이 아니라 그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하려는 일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을 알고 있는데도, 어떻게 말릴 수 있을까.
"…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시그넘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몸을 돌리고 한걸음 한걸음 옮겨가는 그녀의 등 뒤에서.
"사범 자리 하나는 비워놓고 있을테니 언제든지 돌아오게. 애들도 기다릴테니."
그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시그넘은 손을 움켜쥔다.
지금의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따뜻하고─ 또한 슬픈 이야기.
"… 지금의 일이 끝나면, 입니다만."
돌아오진 못할 것이다.
아마 자신이 이 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두번 다시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혹시, 만의 하나라도.
이곳으로, 이 도시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인사 정도는 하러 오도록 하자.
적어도 그 정도는, 자신에게도 허락되어있을테니.
"선배!!"
견습생이 숨을 거칠게 쉬면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곳에 두었던 짐을 정리하고 있던 자피라는 약간 눈을 가늘게 떴지만, 곧 몸을 일으켰다.
바로 옆에까지 다가온 견습생은 숨을 몰아쉬며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것이 끝나자, 안경을 고쳐쓰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오늘… 그만두신다고요…?"
"… 아아."
그렇게 됐다. 어찌되었건 이제부터 자신은 이곳에서 일하게 될 틈같은 건 없을테니까.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왜 갑자기…"
일이라. 일이라면 있다. 그것도,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일어나버렸다.
"… 가족을 지키러 가는 거다. 그것 뿐이야."
가족.
설마 자신이, 이런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을 때가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옛날, 방패의 수호수라고 불리며 어둠의 서의 주인을 노리는 적들을 쳐부술 때만 해도, 그는 단순한 맹견이었으니까.
그런 자신을 가족으로 받아들여준 것이 그 소녀 하야테다.
그녀의 목숨이 걸려있는데, 다른 사람들까지 돌보고 있을 여유는 없다.
"지금의 너라면 녀석들을 돌보는데엔 아무 문제가 없을거다. 정 불안하다 싶으면 키타야마 씨한테 물어보도록 하고. 내가 가르쳐준 것들을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어려울 것도 없겠지."
잠깐이나마, 그녀는 자신의 제자였다.
그리고 그런 제자를 두고 가는 스승으로서의 마지막 충고.
그것을 남기며, 짐을 들쳐맸다.
"그, 저기…!!"
그런 쟈피라의 등을 향해, 견습생이 소리쳤다.
아마 그녀 자신도, 자신이 무엇때문에 불렀는지 모르고 있겠지.
쟈피라가 고개만을 뒤로 돌리자, 견습생은 한참동안 우물쭈물하다가 곧 표정을 고치고 말했다.
─억지지만, 웃는 얼굴로.
"지금까지,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 아아. 잘 지내라."
아마 앞으로, 두번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갑작스럽게 죄송한 이야기입니다만… 오늘 부로 그만두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점장과 직원들의 표정은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
한참동안 굳어있던 점장이 입을 열었다.
"저기… 뭔가 불만이라도 있으셨던 겁니까? 이곳에."
"아니오… 어디까지나 일신상의 이유입니다."
정말로, 개인적인 이유다. 가족과 관련된 일이지만.
"그렇습니까… 뭐, 사람마다 사정이라는 건 있는 법이니까요."
안색이 파랬지만, 점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해주었다.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일하는 것도 나쁠 것은 없었다.
점장도 친절했고, 여성 직원들도 그녀에게 잘해주었으며 일도 즐거웠고.
단순히 카운터에 서서 손님을 받고 계산하는 일 뿐이었지만, 지난 세월이 오직 '도구'로서의 인생 뿐이었던 그녀에게는 그 단순한 작업조차도 놀라움과 신선함의 연속이었으니까.
그래서 즐거웠다.
이곳에 서서, 많은 사람들과 접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좁고 어둡기 짝이 없었던 자신의 세계가, 점점 넓어져가는 것이.
─그것도, 오늘로 끝이지만.
"그, 외람됩니다만… 혹시 무언가 일이 있으신 거라면, 저희들이 도와드릴 건 없습니까?"
"그래요! 혹시 나쁜 녀석 때문에 쫓긴다던가 하면 우리가 혼내줄테니까! 사채업자라면 틀림없이 이런저런 사람 많이 데리고 오겠지만, 저희들도 아는 사람들한테 도움을 청하면 그딴 녀석들 얼마든지 뭉갤 수 있어요!"
"어이, 유리코. 그런 험한 소리 하지마. 심정적으론 100% 동감이지만."
"그보다, 그런 거라고 정해진 것도 아니잖아."
"그럼 넌 안하겠단 소리냐!!"
"그런 소리도 하지 않았어!! 그야!! 샤멀 씨한테 해를 끼치는 놈이라면 감방에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안면에 스트레이트 한방 정도 먹여주겠지만!!"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물건을 고르던 손님들마저 작게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샤멀 역시, 잠깐이지만 웃을 수 있었다.
"모두들 고마워요… 하지만 그런 일이 아니니까요."
그래.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와 그녀의 동료들의 이야기.
그것도, 다른 두 사람의 가족에게는 결코 알릴 수 없는 이야기.
그렇기에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오늘까지, 신세 많이 졌습니다. 여러분들과 같이 일한 거, 잊지 못할 거예요."
그녀에게 있어서는.
이곳과 이곳의 사람들 역시, 지키고 싶은 소중한 '일상'이었으니까.
한 사람, 한 사람.
볼켄리터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이 세계에 존재했었다는 증거.
자신들이, '인간'으로서 이 도시에 머물렀었다는 증거.
그것들을.
하나하나, 남김없이.
스스로의 가슴에 새기면서.
어떤 빌딩의 옥상.
밤 하늘의 아래에, 4명의 기사들이 모였다.
이 도시에서 살아오며 쌓아올려왔던 소중한 일상들.
그 추억 하나하나를 정리하고 이곳에 모였다.
─이미, 결심은 섰다.
─남은 것은 행동으로 옮기는 것 뿐.
'주인의 몸을 갉아먹고 있는 것은, 어둠의 서의 저주."
열화의 장이 불꽃의 마검을 들어올려 앞으로 내민다.
'하야테 짱이 어둠의 서의 주인으로서 진정한 각성을 하면…'
호수의 기사가 손을 들어올려, 두개의 반지를 앞으로 내민다.
'우리 주인의 병은 멈춘다. 적어도… 더 심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방패의 수호수가 푸른 늑대의 모습으로 걸어나온다.
'하야테의 미래를 피로 더럽힐 순 없으니까, 살인은 하지 않아. 하지만… 그 이외의 것이라면, 뭐라도 하겠어!!'
철퇴의 기사가 강철의 남작을 위로 들어올렸다가 앞으로 내린다.
4명의 기사. 그들의 머리 속으로, 소중한 주인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그녀의 상냥한 말. 상냥했던 마음.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떠올랐다.
"죄송합니다, 우리들의 주인…"
이 자리에는 없지만, 그녀를 향해 진심을 담아 사죄의 말을 입에 올린다.
왜냐하면.
"단 한번… 당신과의 맹세를 깨트리겠습니다!!"
지금부터 자신들이 하려는 일은, 소중한 주인과의 약속을 짓밟는 일.
아무리 그것이 그 주인을 지키기 위한 일이라고 해도, 이 일을 그녀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지.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런 '뒤의 이야기'따윈 아무래도 좋다.
미래따위, 아무렴 어떨까.
자신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현재. 바로 지금 이 순간.
자신들의 소중한 주인을 되살리는 것.
시그넘이 검을 휘두르는 것에 따라, 네 사람의 발 밑에 흑보라빛의 마법진이 떠오른다.
그에 따라 하야테의 수호기사들은 각자의 마력의 빛깔에 휩싸였다.
샤멀의 연두색.
비타의 주황색.
쟈피라의 회색.
시그넘의 적색.
그 빛들이 사라져가면서.
그녀들의 모습이 바뀐다.
하야테가 이미지하고 만들어준, '기사'로서의 복장으로.
"우리들을…… 부디 용서해주세요."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
당신과의 약속을 깨트리는 우리들을.
4명의 기사들이 만들어낸 마력의 빛이, 밤 하늘 위로 올라간다.
이것은 벌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인간이 아닌 주제에, 인간처럼 살아가며 인간처럼 느끼려 하는 자신들에게의 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좋다.
이것이, 자신들이 주제넘게도 주인의 가족으로서 살아가려고 한 것에 대한 대가라면.
그로 인해, 자신들의 주인이 목숨을 잃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이라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은, 자신들이 아니면 안된다.
이 잔혹한 운명을 뒤집어씌운 것이, 신이 됐든 이 세계가 됐든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신을 죽여야 한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세계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반드시 그 소녀를, 살려낼테다.
그것이, 그들의 새로운 결심.
야천의 왕의 발 밑에 모이는 구름들이, 자신들 스스로에게 건 맹세였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