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구속영장 깎던 노인(팬픽&패러디 모음)


[반지의 제왕X드래곤 라자] 마지막 전투


절망의 대지 모르도르, 그 중심지인 요새 바랏두르. 전능의 눈 사우론이 재건한,  명실공히 중간계 최고의 요새. 그 땅에 몇천 년만에 대규모의 인간이 발을 디뎠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무거웠다.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시간을 끌기 위한 출동이었다. 자신들은 저 강대한 어둠의 군단의 발을 묶어야 하는 존재라는 사실이 병사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러왔다.

길고 긴 골짜기들을 지나 바랏두르의 정문 앞에 있는 넓은 평야에 도착하자 총사령관 아라곤은 더 이상의 진군을 중지하고 포진을 시작했다. 연합군의 병력은 다 해봐야 만이천 남짓, 그것도 거듭된 격전으로 피로가 채 가시지 않은 인원이었다. 이 인원으로는 바랏두르를 공략하기는커녕 저 평야를 가득 채우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그런 생각에 동조라도 하듯 바랏두르의 거대한 문이 열리면서 그 안에 득실대는 수많은 오르크들이 보였다. 그 숫자는 미나스 티리스에 쳐들어온 대군단의 수를 웃돌 정도였다. 암컷의 태내에서 태어나 십수 년이 지나야 한 몫을 할 수 있는 인간과 달리, 저들은 진흙 구덩이에서 탄생해 몇 시간이면 성인 개체로서의 전투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수만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도 사우론의 권능으로 금세 그 수를 복원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인지 오르크들은 방만하게 뛰쳐나오는 대신 오와 열을 맞추어 질서정연하게 행군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열세인 연합군을 비웃으며 차분하게 그들의 주위를 둘러쌌다.

평지에 포진한 것은 결코 좋은 수가 아니었다고 아라곤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런 후회를 할 필요는 없다는 걸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승리가 아니라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인 이상, 차라리 일부러 포위된 상태에서 방진을 짜 필사적으로 방어하는 것이 저 대군과 사우론의 시선을 확실히 끌 수 있다.

연합군은 오늘 이곳에서 전멸한다.

하지만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한다 해도 좋다.

저 어둠의 산맥에서 필사적으로 버둥거리고 있을 호빗들의 성공을 기원하며, 아라곤은 말을 박찼다. 부상을 당해 이 자리에 설 수 없었던 바이서스의 왕자 길시언의 말 선더라이더는 주인의 뜻을 충실히 수행해 그를 군의 선두에 세웠다.


아라곤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연합군이여! 오늘 우리의 목적은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걸 또 굳이 말해야 하나?"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안 그래도 사기가 뚝 떨어져 있는 판에 저런 말로 확인사살할 필요가 있나? 차라리 길시언이 있었다면 저런 말 대신 '아샤스의 가호가 임한다! 우어어어!' 하며 돌격했을 것이다. 나의 왕, 바이서스의 진정한 왕은 정녕 헬턴트의 피를 공유하는 거친 사내였으니까.

"야, 임마! 후치! 들리겠다!"

샌슨이 급히 팔꿈치로 내 가슴을 쳤다. 아니, 친다고 친 게 내 턱에 멋지게 명중해 버렸다. 아무리 OPG를 끼고 있다곤 해도 갑작스런 일격에 턱이 돌아가 버렸다. 이 자식! 저 녀석에게 복제 OPG를 주는 게 아니었는데! 도대체 오우거가 오우거 파워 건틀렛을 끼어서 어쩌겠다는 거야!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긴장하며 왕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섭정 정치를 펼쳐오던 곤도르에 돌아온 진짜 왕이란 사실이 모두의 지지를 얻었다고 했던가. 뭐, 바이서스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우리 길시언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다. 왕위는 닐시언 왕에게 맡기고 이렇게 유탄을 맞아 다칠 지경이 될 정도로 전장에서 날뛰어대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뼛속까지 모험가 체질이란 점에서 나와 샌슨 같은 헬턴트 사내들에겐 환영받을 수 있지만, 저 바이서스 왕실에서 환영받을 일은 아마 영원히 없지 않을까.
아아, 나의 어리석은 왕,
나의 경배를 받는 왕이시여.
아라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역시 저 자리는 길시언이 더 어울려 보인다.
내가 사춘기 소년답게 복잡미묘한 한숨을 내쉬자 샌슨이 느끼한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후치, 너, 이 와중에 제미니 생각하냐?"

"푸칵! 샌슨! 이 진지한 순간에 무슨! 잘도 내 생각을!"

...아라곤의 검붉은 머리보다 제미니의 불타는 듯한 머리카락이 훨씬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 어떻게 알았지?
그때 우리 옆에 서 있던 엑셀핸드가 불편한 듯 헛기침을 했다.

"크흠, 흠! 이거 드워프 역사에 있어서 꽤나 불미스러운 일이 될지도 모르겠군. 노커인 이 엑셀핸드가 엘프와 함께 최후를..."

"엑셀핸드."

이루릴이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그의 말을 잘랐다.

"음?"

"우리, 친구 맞지요?"

"......"

"친구 맞지요?"

"......그, 그런 낯뜨거운..."

"친구 맞지요?"

"맞다, 맞아! 그만해!"

엑셀핸드가 얼굴을 붉히며 입을 다물었다. 과연 이루릴!
이곳의 모두가 살인적인 더위와 습기로 땀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이루릴만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느긋하게 서 있었다. 엘프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죽음의 대지에까지 적응할 줄은 몰랐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저 산을 오르는 중이라는 프로도란 호빗 대신 이루릴이 가는 게 더 빨랐을지도 모르겠다. 잿빛 대지를 싱그럽게 적시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샌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루릴, 정말 피곤하지 않습니까?"

"피곤해요. 숲이 없는 대지를 계속 걷다 보니 체력이 많이 빠져 있고, 지난번 전투로 인한 피로도 아직 회복되지 않았어요. 그리고 사우론이 친 마술 역장도 저를 괴롭히는군요. 이곳은 이미 세이크리드 랜드 화 되었어요. 여러분은 갈수록 피곤해질 테고, 전 강한 마법을 쓸 수 없겠지요."

"아, 네."

저런 상큼한 얼굴로 피곤해 죽겠다는 말을 솔직하게 할 수 있는 게 이루릴이었지. 아무튼 상황이 많이 암울하단 소리다. 아프나이델은 미나스 티리스에서 길시언과 함께 뻗어 있는 상태이고, 아라곤 왕의 옆에 있는 저 하얀 할아버지는 사정상 마법을 쓸 수 없다고 하니 믿을 건 이루릴뿐인데 그녀조차 이곳에서 마법을 쓰기엔 제약이 많이 따르는 것이다. 나의 여신 제미니에 맹세코, 저 루트에리노 대왕과 핸드레이크, 드래곤 로드와의 전투에서도 이 정도로 위기는 없었을 것이다.
아라곤 왕의 연설은 어느새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죽는다 해도! 그것이 인간의 마지막은 아니다! 우리의 꿈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왕이 부르짖었지만 병사들은 반쯤 체념한 듯 힘없이 호응했다. 역시 패배를 기정사실화해놓은 내용으로 기가 살 리 없었다. 더군다나 좌, 우, 앞, 뒤, 하늘에까지 어둠의 군단이 득실거리는 상황이다. 그나마 사기가 충천한 것은 나와 이루릴, 엑셀핸드, 샌슨, 그리고 아무르타트가 사라진 후 길시언의 입김으로 지원군에 차출된 헬턴트 경비대 정도였다.

"한 칼에 오크 셋은 썰 수 있겠군."

"지금에야말로 최강의 검술 '헬턴트의 지평선'을 완성시킬 때다."

"오우거는 없냐? 저 녀석들로는 너무 작아서 상대가 안 돼!"

...이런 소리들을 하는 작자들이니 말 다했지.
이 사내들의 기를 조금이라도 북돋워주자.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사기충천한 이 녀석들과 함께라면, 아무르타트라도 오지 않는 한 저런 조무래기들 정도에 지지 않을 것이다. 이곳, 사방이 잿빛인 재수없는 대지를 오르크들의 피로 적시고 의기양양하게 돌아가자. 그리고 제미니와 함께 즐겁고 단란한 가정을 차릴 테다! 후치 네드발, 17세. 이런 곳에 뼈를 묻기엔 아직 87년 정도 이르지!

"좋아, 제군들! 이쯤에서 그거다!"

"오오, 그거 말인가?"

"드디어 듣는 거냐?"

에라, 모르겠다! 난 목청을 가다듬고 전군에 들리도록 악을 써가며 노래했다.

"아니, 누구를 원망하랴. 그 밤에 물레방앗간으로 나오라는 말에 왜 아무런 경계심 없이 나갔더냐. 그 날 이전까지 청년은 처녀의 것이었지만, 그 날 이후로는 처녀는 청년의 것 되었도다..."

"오오!"

그러고보니 이거, 저번 전투에서 한 번 써먹은 거라 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왕의 연설에도 시큰둥했던 병사들이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나를 주목했다. 흰 할아버지가 날 쏘아보았지만, 아라곤 왕은 오히려 기대하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니 저 왕도 모험가 출신이었지? 그럼 기대에 부응하는 수밖에! 날뛰는 샌슨을 헬턴트 경비대원들이 신속하게 제압하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난 노래를 계속했다.

"달빛도 붉게 물들일 청년의 애타는 고백이여. 청년은 거부의 말도 못하도록 처녀의 입술에 감미로운 자물쇠를 채웠으니, 아아, 애닯도다. 애처롭다. 그 입술을 도둑맞음으로써 처녀의 자유는 이미 잃었으니, 새장에 갇힌 새요, 고삐채운 ​야​생​마​.​.​.​.​.​.​"​

"후치 ​네​드​바​아​아​아​아​아​알​~​~​!​!​!​!​ 더 이상 말하면 죽일 테다!"

아차! OPG! 순식간에 헬턴트 경비대원의 1/3을 전투불능 상태로 만든 샌슨이 포효하며 내게 다가왔다. 큭! 저 눈은 궁지에 몰린 오우거의 그것! 오우거의 육체와 오우거의 두뇌, 덤으로 이젠 오우거의 힘까지 손에 넣은 전사 샌슨은 사랑의 요정 후치를 때려잡기 위해 걸음마다 살기를 뿜으며 다가왔다. 머리에서 김을 뿜으며 다가오는 녀석을 진정시키기 위해 난 급히 이루릴 뒤로 숨었다.

"어떠냐! 이루릴 배리어!"

"이루릴! 비켜요! 사우론을 쳐부수기 전에, 불안한 후방부터 ​정​리​해​야​겠​습​니​다​!​"​

연합군 전체의 시선을 받는 멋진 남자가 된 샌슨이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 포효했다. 하지만 여기서 피하면 내 목숨이 위험할 노릇이다. 난 차마 노래를 더 부르지 못하고 어떻게든 녀석의 시선을 피하려 이루릴과 함께 이리저리 움직여댔다. 내게 붙잡혀 난폭하게 움직여지던 이루릴이 당황한 듯 물었다.

"후치? 샌슨은 당신을 죽일 의도가 없어요. 당신들은 친구잖아요?"

"친구지만, 때론,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파앗! 갑자기 눈부신 빛이 나와 이루릴, 샌슨을 엄습했다. 온 몸이 마비되는 듯한, 전신을 파고드는 붉은 빛의 정체가 사우론의 눈에서 뿜어져나온 것이란 걸 조금 뒤늦게 깨달았다. OPG 덕분인지 나와 샌슨은 곧 정신을 차릴 수 있었고, 이루릴은 원래 저런 빛에 저항력이 강한 편이라 무사했지만 잠시나마 빛에 쬐인 병사들은 땅을 구르며 괴로워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 나 - 도 -

"음?"

"사우론이, 직접 말하는 건가?"

말을 하는 건 좋은데, 왜 이쪽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하는 거냐! 게다가 지금, 저 눈깔이 조금 일그러졌어! 뭔가 비웃는 것 같아! 외눈박이 주제에!

- 나 - 도 - 알 - 고 - 있 - 다 -

"......"

"......"

"......"

연합군 전체가 침묵했다.

뭘 알고 있다는 거야?

오르크 군단이 '전능의 눈!'을 외치며 환호한다.

아.

설마.

그거?

.
.
.
.

"으 ---- 아 ----- 아 ---- 아 ​-​-​-​-​!​!​!​!​!​"​

샌슨이 괴성을 질렀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듯한, 마치 새벽을 깨우는 닭의 소리 같은 그 고함에 연합군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자신의 검을 움켜쥐고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오만한 눈동자를 겨누었다. 눈동자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그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 빛이 분명 샌슨의 몸을 침식하고 있을 텐데도, 그는 아무 일 없다는 듯 강맹하게 소리쳤다.

"가자! 개 좆 같은 적들이 저기에 있다! 헬턴트 경비대~~!!!"

"오, 오오!"

"나를 따르라! 개 좆 같은 저 눈깔을 후벼파서 입을 닥치게 만들자!"

샌슨은 마치 한 줄기의 불꽃처럼, 수만의 오르크 무리를 향해 돌격해 나갔다.

 

...그리하여 저 용맹무비하며 동시에 비할 데 없는 지혜로움을 동시에 갖춘 전사이자 현자인 샌슨 퍼시발의 돌격으로 기세를 탄 연합군은 마침내 저 악의 무리의 심장에 단검을 꽂을 수 있었다. 물론 화염의 산에 반지를 던져 사우론의 마술 역장과 세이크리드 랜드를 파쇄하여 엘프 이루릴이 메테오를 시전할 수 있게 한 호빗, 프로도의 활약도 중대한 변수였지만, 그가 없었다 해도 샌슨이 지휘하는 연합군만으로도 충분히 사우론의 군세를 모르도르 바깥으로 내동댕이칠 수 있었다고 하는 데 대부분의 사가가 동의하는 바이다. 그를 이토록 격분시키게 만든 것은 사우론의 조롱 때문이라고 하지만, 오늘날 그 조롱의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단지 그의 어리석은 시종인 후치 네드발의 노래의 일부가 현재 전해져 올 뿐이다. 이는 한낱 평범한 소년에 불과했던 후치 네드발이 세상에 그 이름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 위대한 샌슨 퍼시발이 그 노래를 널리 퍼뜨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단, 이 노래가 후치 네드발의 이름만을 빌린 후세의 개작이라는 설도 있다.
전문이 확인되지 않은, 현전하는 그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밖 모르도르에는 메테오 소리 ​요​란​한​데​.​.​.​.​.​.​ 잿빛 대지도 붉게 물들일 청년의 애타는 검이여. 청년은 빌어먹을 메테오란 말도 못하도록 사우론의 눈에 실버 소드를 쳐넣으니, 아아, 애닯도다. 애처롭다. 그 눈을 잃음으로써 제왕의 자유는 이미 잃었으니, 새장에 갇힌 새요, 고삐채운 ​야​생​마​라​.​.​.​.​.​.​


[품위 있고 고상한 켄턴 시장 말레스 츄발렉의 도움으로 출간된, 믿을 수 있는 바이서스의 시민으로서 켄턴 사집관으로 봉사한 현명한 돌로메네 압실링거가 바이서스의 국민들에게 고하는 신비롭고도 가치 있는 이야기]
                                                                                             제 35 권. P. 28 (770년 돌로메네 作)

 
언젠가 쓸 장대한 크로스물...이긴 한데,
엔딩부터 써 버려서 의욕상실 orz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