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려운 리포트를 쓰게 되었습니다 삽화
-이것은 먼 옛날, 이 땅에 아직 인간이 아닌 자들이 살고 있었을 무렵의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작고 약했으며, 그들은 강하고 큰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인간의 꿈은 그들 모두를 쫓아내고, 인간만의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군대를 만들고, 나라를 만들고, 모두의 신을 인간만의 신으로 만들었습니다.
산으로 둘러싸여 주변과의 소통이 없는 작은 마을 근처에 한 동굴이 있었습니다.
동굴이라고 해도, 수직에 가까운 깊은 구덩이라 하는 편이 더 적당할 것입니다.
그곳에는 용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있었습니다.
동굴은 깊고 깊어, 아무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빛조차 바닥을 비출 수 없는 그 심연에 공포를 느낀 사람들은, 언젠가 왕국에서 강한 군대를 보내 용을 퇴치해 줄 거라 믿었습니다.
동굴에 정말 용이 있는지 확인해보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지원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작은 마을에는 고아 소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부모가 언제 죽었는지 소년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소년의 부모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소년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일을 도와주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항상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소년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소년은 자신이 절망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게 된 건지,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해서 자신이 절망하게 된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는 차츰 자신이 살아있다는 실감이 사라져 갔습니다.
이건 현실이 아니라 환상 아닐까, 하는 생각만이 그를 지탱해 주는 무기였습니다.
-소년이 자신을 열네 살쯤 먹었다고 느꼈던 날,
그는 밧줄과 빵 여섯 개, 물 한 병을 갖고 구덩이 앞에 섰습니다.
눈앞에는 거대한 심연이 뻐끔히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갔고,
사람들은 아무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동굴의 탐사를 자원했던 것은 소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소년조차도, 자신이 살아 돌아오리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는 희망이 없는 삶을 창의적인 방법으로 끝내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동굴은 빛은 거부했지만 소년의 몸을 받아들였습니다.
밤보다 더 어두운, 까만 물이 몸에 배는 것 같은 어둠 속에서 소년은 계속 내려갔습니다.
암벽은 거칠고, 발 디딜 곳은 점점 줄어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는 절대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건 살아있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었습니다.
힘이 모두 빠졌을 때, 자기도 모르게 손이 미끄러져 굴러떨어질 때, 그때까진 그저 버티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자신에 대해 처음으로 보인, 최소한의 애정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 시간이 지나서 상처투성이가 된 그의 몸이 마침내 지지대 없이 둥실 떠올랐을 때, 소년은 소소한 행복을 느꼈습니다.
역시, 이 세상엔 기적 따윈 없다는 냉소를 흘리면서.
-추락하던 소년은 마침내 동굴의 바닥을 보았습니다.
바닥에선 희끄무레한 빛이 은은하게 깔려 있었습니다.
그 빛에 몸이 닿는 순간, 그의 몸은 그 빛 속을 파고들어갔습니다.
온몸을 감싸는 부드러움이 느껴진 순간,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빛이 깨졌습니다.
부드러운 액체, 그리고 미끈한 무언가에 부딪치면서 소년은 의식을 잃었습니다.
자신의 뺨을 핥는 꺼끌꺼끌한 느낌 때문에 소년은 정신을 차렸습니다.
하얀 빛이 아직 있었기에 소년은 자신의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그 빛은 커다란 알의 껍데기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알의 내용물은 지금 열심히 소년을 핥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여섯 배는 됨직한, 뒷다리로 일어서 있고 등뒤에 날개가 달린 동물의 모습을 소년은 책에서 본 적 있었습니다.
그건 드래곤의 새끼였습니다.
-자신이 추락한 충격으로 알이 깨어나 드래곤이 부화한 것 같다고 소년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파충류의 알은 껍질이 말랑하기 때문에, 추락하는 소년을 큰 충격 없이 받아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왜 이 알만 여기 덩그러니 놓여 있는지, 언제부터 놓여 있었는지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표정이었습니다.
다소 난감한 기분으로, 그는 드래곤이 자신의 맛을 보고 있는 건지를 의심해야 했습니다.
드래곤은 소년을 잡아먹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소년의 따스한 몸에 찰싹 붙어 뀨우뀨우 거리고 몸을 비비며 친근감을 표시했습니다.
소년은 알에서 갓 깨어난 새끼는 처음 본 물체를 어미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경악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이 드래곤이 혼자서 부화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눈을 떠보니 아무도 없는, 캄캄한 어둠 속이라면,
아무리 말해도 자신의 목소리만 메아리쳐 돌아오는 그런 공간에 남겨진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소년은 그런 기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상에서 인정받지 못할 자신과 드래곤이 이런 동굴에서 힘을 합쳐 사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소년과 드래곤의 만남이 과연 기적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소년 자신은 여전히 기적은 없다고 고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동굴 바닥은 꽤 넓은 편이었습니다.
소년은 바위에 낀 버섯, 바위 틈새로 흐르는 물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반면 드래곤은 자신과 소년이 부순 알껍데기만 먹었습니다.
먹는 속도는 매우 느렸지만, 이대로 가면 언젠가 다 먹으리란 건 확실했습니다.
과연 드래곤이 자신의 먹이가 없어진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그때야말로 소년을 향해 이를 드러내지 않을까요?
그것도 좋을 것 같은데, 라고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드래곤이 자신을 한 점도 남기지 말고 아작아작 먹어준다면, 그래서 그의 피와 살이 된다면 마지막으로 보람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드래곤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좋아해 준 최초의 생명체였으니까요.
드래곤이 알껍데기를 먹을수록 동굴의 빛은 줄어들었습니다.
이젠 반토막난 양초의 불빛 정도의 광량만 유지되었습니다.
캄캄한 하늘을 바라보며 드래곤의 배 위에 누워있던 소년에게 문득 중요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소년이 드래곤의 차가운 비늘에 손을 대고 그대로 등을 밀었습니다.
드래곤은 달려가며 날개를 파닥파닥 저었습니다.
몸이 약간 떠올랐지만, 아직 힘에 부치는지 다시 착지했습니다.
소년이 생각한 것은 드래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드래곤에게 먹히는 건 상관없지만, 그 뒤에 드래곤이 혼자 남을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소년은 드래곤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만은 막고 싶었습니다.
자신은 여기서 죽어도 좋으니, 드래곤은 어둠을 뚫고 날아가 지상의 햇빛을 보게 하고 싶었습니다.
희미한 불빛 아래 소년은 계속 달렸습니다. 힘차게 팔을 휘저으며 뛰고, 점프해서 솟구치고, 어떨 때는 암벽에 기어올라가 파닥거리며 추락하기도 했습니다.
소년의 몸에 상처가 늘어날수록, 드래곤의 날갯짓은 조금씩 능숙해졌습니다.
-드래곤은 이제 자기 키의 몇 배만큼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드래곤이 소년의 시야를 벗어나는 적은 없었습니다.
소년은 드래곤이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무서워한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좋을지는 그도 알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그 또한, 드래곤이 자기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알 껍데기는 이제 거의 남지 않았습니다.
소년과 드래곤은 이제 결심해야 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저 어둠을 향해 있는 힘껏 날아오를까,
아니면 마지막 빛이 사라지고 서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닥에 웅크리고 있을까.
소년은 아직 드래곤의 먹이가 남아있을 때 이곳을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이곳에서 죽으려 했던 생각을 바꿔서, 드래곤과 함께 죽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소년이 먼저 죽든, 드래곤이 먼저 죽든 다른 하나도 죽을 게 확실하다면,
차라리 둘이 함께 힘껏 날아오르다 죽고 싶었습니다.
-소년의 몸은 가벼웠기에 드래곤은 별 무리없이 그를 태울 수 있었습니다.
소년이 드래곤의 목을 끌어안자, 드래곤의 등이 가볍게 들썩거렸습니다.
마지막 남은 알 껍데기를 등불 대신 자신의 머리에 쓰고,
소년은 드래곤의 등에 난 돌기를 잡아당겼습니다.
드래곤은 날갯짓을 시작하더니 곧 하늘로 솟구쳤습니다.
동굴의 공기가 술렁거리고, 어둠에 작은 균열이 생겨났습니다.
드래곤에게는 등불이, 소년에게는 날개가 있었습니다.
어둠을 찢으며 소년과 드래곤은 날아올랐습니다.
소년은 끊임없이 드래곤의 목을 끌어안으며
괜찮다고,
자신은 여전히 여기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드래곤은 그때마다 힘차게 울부짖으며 속도를 높였습니다.
어쩌면 이 동굴은 허상이고, 자신들은 스스로가 만든 어둠의 벽을 뛰어넘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소년은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어둠은 둘의 현실감각을 망가뜨리고 있었지만, 더 높이 날고자 하는 둘의 의지를 건드리진 못했습니다.
영겁처럼 긴 시간을 비행한 끝에, 마침내 둘에게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늘구멍처럼 작던 빛이 점차 접시처럼 커지는 걸 보며, 소년은 서서히 불안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드래곤을 보면 바로 죽이려 달려들 거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드래곤의 울부짖음이 들렸다면, 사람들은 저 위에 대기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멈출 수 없었습니다.
-눈부신 빛이 다가온 순간 둘은 눈을 감았고,
다음 순간 몽둥이와 돌멩이들이 쏟아져내렸습니다.
둘은 그것들을 견디며 대지 위로 솟구쳤습니다.
돌아보지 않고, 그들은 수직으로 날았습니다.
그들을 향해 화살 몇 대가 날아갔고, 둘의 몸에 꽂혔습니다.
소년은 등에 화살이 박힌 걸 확인하고 그제야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저 아래, 순식간에 점으로 변해가는 자그마한 무리들이 와글와글 떠들어대고 있었습니다.
소년은 그를 괴롭히던 사람들의 머리 위, 그들이 결코 닿을 수 없는 하늘 위에 있었습니다.
여태껏 그를 속박하던 그 어둠도, 지금은 동굴 안에 남아 으르렁댈 뿐이었습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날개는 찢어지고, 화살이 박힌 몸은 끊임없이 고통을 호소했지만, 드래곤은 계속해서 날았습니다.
드래곤은 어둠뿐이었던 세계가 빛에 물들고, 세상의 빛과 바람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것을 지금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짓누르는 듯한 어둠은 이제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어둠이란, 결국 빛과 자신 사이에 있는 장애물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드래곤은 그제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소년과 드래곤은 마을을 넘어, 산맥을 넘어, 발아래의 세상이 지평선으로 고정될 때까지 솟아올랐습니다.
누가 먼저 힘이 다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희박한 공기와 냉기, 그리고 정적이 지배하는 하늘의 중심,
그림자가 없는 눈부신 빛의 세계에서, 이들도 빛이 되어 지상으로 낙하하기 시작했습니다.
환상,
기적,
대낮에 나타난 유성에 대해 훗날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소년과 드래곤에게 그것은 환상도, 기적도 아니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끌어안을 수 있었던 두 개의 생명,
그것을 남김없이 불살라,
동굴 밖의 세상을 보았다는 사실일 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