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렐 5 ‘그래도 멈출 수 없어’
1학기 중간고사도 무사히 끝마쳐, 결과가 학생들에게 공개되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전체에 공개되는 건 각 학년 상위 50명 까지고, 그 이하의 학생들에 대해서는 개별적으로 통지된 것 뿐이지만.
공개 방법은 특별히 희귀한 방법도 아니고, 교무실 근처 게시판에 종이로 내붙이는 형태다. 그리고 지금, 그 게시판의 앞까지 유키 일행이 왔다는 거다.
이름이 걸리지도 않으리라는걸 알고 있으면서도 보러 와 버린 건, 사람으로서의 슬픈 습성일까, 아니면 단순한 구경꾼 근성일까. 혹시나하는 의미 없는 망상도 시원스레 박살나, 일단 누가 수석인지 눈을 향해 보자.
“오―, 톱은 아리스야. 혹시나가 역시나네.”
옆에서 발돋움하며 보고 있었던 코바야시가 말한다. 거기에 이끌리듯 유키도 그 쪽을 보자, 확실히 2학년 1위 위치에는 친구인 아리스 이름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아리스에 대해선 납득은 있어도 놀람은 없다. 오히려 1학년 쪽에 눈을 향하고, 유키는 경악했다.
당당히 톱에 이름을 싣고 있는 건, ‘니죠 노리코’. 게다가, 단독 톱이다.
보지 않은 시늉을 하고, 유키는 코바야시와 나란히 교실로 돌아가기로 했다. 결국에 2학년이 되어도 성적 상위권으로 이름이 걸린 인원은 1학년 때와 거의 변함 없다. 신경 쓰인 건 시마코의 이름이 3위에 들어간 걸로, 그녀는 머리가 좋았구나 하고 느낀 정도였다.
그리고, 교실에 가까워졌을 즈음.
“아, 요시노 쨩이랑 레이 선배.”
코바야시의 말에 내심 가슴이 철렁했다.
눈을 들어보면, 잘못볼리 없는 낯익은 소꿉친구 소녀 두 명의 모습. 하지만 지금은 얼굴을 마주치기 괴롭다.
“안녕하세요―, 레이 선배. 이야―, 역시나 대단해요. 레이 선배. 20위 이내에 들어 있었어요.”
“고마워, 코바야시 군. 그래도 우연이야.”
수줍은 듯이 웃지만, 레이가 노력가인 걸 유키는 알고 있다. 시험 결과도 노력에 상응한 결과다.
코바야시의 덕분에 자리의 분위기도 밝게 느껴져서, 유키는 과감하게 평소대로 너스레를 떨어 보였다.
“응, 레이 쨩은 역시 대단해. 그래도, 요시노는 역시, 이름 걸려있지 않았네. 하핫!”
하지만.
“………….”
돌아온 건 요시노의 차가운 눈빛과 레이의 어딘지 모르게 거북해 보이는 표정.
“유키도 걸려있지 않았잖아.”
얼음같이 차가운 요시노의 말에, 유키는 마른 웃음을 띄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의 사건을 머릿 속으로 떠올렸다.
드물게도 유키는 아침 일찍 눈이 뜨였다.
어제밤, 왠지 그냥 졸려서 이른 시간에 잠들어버린 탓인진 몰라도, 다시 자고 싶은 마음도 전혀 들지 않는 전에 없이 상쾌한 기상이었다.
소꿉친구들이 깨우러 오는 시간보다 훨씬 일러서, 오늘은 놀래켜 주겠다고 마음 속으로 혼자 웃으면서 얼굴을 씻기 위해 세면장 문을 열었다.
그러자, 시야에 들어온 건.
전라의 미소녀가 두 명.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전라에 가까운, 레이와 요시노의 모습.
샤워를 받고 있었는지, 두 사람의 피부는 촉촉하면서도 발그랗게 상기되어, 레이의 머리칼은 물기를 띠고 빛나고 있다. 땋은 머리를 푼 요시노의 긴 머리, 흐트러진 레이의 숏 헤어.
그리고 무엇보다 눈부셨던 건, 주욱 뻗은 요시노의 가냘픈 다리, 팔, 허리. 풍만하게 부푼 레이의 가슴팍, 드러난 쇄골, 목덜미.
“……에, 어라. 저기, 잠!”
유키도 당황했지만, 두 사람 쪽은 갑자기 일어난 일에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한동안 지나서.
“읏, 바보! 뭐, 뭐, 뭘 하는 거야, 이 바보 유키―――!!!”
요시노의 화난 목소리와, 있는 힘껏 내던진 세탁 바구니가 유키의 머리에 격돌했다.
왜 후쿠자와 집안의 세면장에 두 사람이 있었는지를 물어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된다.
레이의 집은 작게나마 검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도장에서 아침 훈련을 마친 레이가, 땀을 씻어내기 위해 요시노의 집을 방문한다. 이건 레이의 집에는 훌륭한 노송나무 목욕탕은 있지만, 샤워기가 없는 게 이유다. 하지만 찾아간 요시노의 집 샤워기가 마침 망가져 버렸었다.
곤란해진 레이는, 아무리 그래도 그대로 학교에 가고 싶진 않았다. 겉모습이 아무리 미소년이라고는 해도, 내면은 가련한 소녀인 거다. 아무리 뭐래도 땀냄새를 풍기는 채로 유키와 함께 등교할 수는 없다.
거기서 바로 요시노가 제안했다. 즉, 후쿠자와 저택의 샤워실을 빌리자고.
어릴 적부터 서로 오고가고 한 집들이니까, 곤란할 때는 사양 같은 걸 할 필요가 없다. 예상대로, 유키의 어머니는 쾌히 두 사람을 맞이해 주었다. 그래서, 레이가 들어가자 겸사겸사 요시노도 같이 들어가고 싶어져, 둘이서 샤워를 빌리게 되었다는 거였다.
하지만, 자기가 떠올려 놓고 얼굴이 새빨개지는 유키.
요철은 없지만, 가냘프고 아름다운 몸을 지닌 요시노.
한편 레이는 겉보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여성스러운 몸매로 자라서.
소꿉친구기에 평소에는 그리 의식할 일 없는, 두 사람의 여성스러움이라는 걸 실감하여 자연스럽게 고동이 빨라진다.
“……뭐야, 갑자기 얼굴 붉히고. 진짜, 최악이야!”
요시노의 분노와 부끄러움이 뒤섞인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눈앞에는 눈꼬리를 치켜 올린 요시노.
“어차피, 떠올리면서 이상한 걸 생각하고 있었겠지. 관둬, 정말.”
“머, 멍청아! 그런 거 아니라니까!”
“뭐야 뭐야. 유키치, 또 요시노 쨩 화나게 한거야? 요시노 쨩, 이번에는 이녀석 뭐 저질렀어? 바람기?”
사태를 재밌어하는 코바야시가 쓸데없는 말을 하며 끼어든다.
“그런 거 아니야. 훔쳐보기야, 훔쳐보기. 정말 차암, 야하고 짐승에다 변태라니까.”
“잠깐 기다려. 그래선 내가 일방적으로 나쁜 것 같잖아.”
“당연하잖아, 그치, 레이 쨩?”
“에, 아, 그래도…….”
“봐, 레이 쨩도 그렇게 말하잖아.”
“말 안했잖아. 애초에, 우리 집에서 둘 다 보인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거기다, 지금까지도 잔뜩 봤는데 이제와서 둘의 알몸을 엿보려고 하겠냐고!”
“뭐, 뭐라고―?!”
두 사람은 마주 노려봤지만.
문득, 주변의 공기가 바뀐 걸 느낀다.
“저기, 요는, 뭐야. 요시노 쨩과 레이 선배는 둘 다 유키치의 집에 있고…….”
“요시노와 레이 선배는 유키 군과, 유키 군에게 알몸을 보여도 어쩔 수 없는 짓을 하고 있고.”
어느샌가 나타난 츠타코가 코바야시와 맞추듯이 말을 이어간다.
“그래서, 유키치는 잔뜩, 두 사람의 그……아, 아, 알”
“잔뜩 알몸을 보고 있으니까, 이제 와서 엿보기 같은 건 하지 않는다고……요시노, 너 좀 아무리 뭐래도, 셋이서 무슨 난잡한……뭐어, 세 사람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셋이서 납득한다면 그게 제일 좋은 해결책일지도 모르겠지만.”
겁 없이 안경을 빛내며, 입가를 일그러뜨리는 츠타코.
“우와아아아아, 그야, 생각 안 했던 것도 아니지만, 설마 정말로 요시노 쨩과 레이 선배가, 그, 유키치랑?!”
이쪽은 머리를 안고 기절하려는 코바야시.
한편, 유키 쪽은 레이와 요시노의 얼굴에 번갈아 눈길을 향해, 둘의 얼굴이 급속도로 붉어져 가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먼저 폭발한 건 역시 요시노 쪽이었다.
“뭐뭐뭐뭐뭐, 뭘 영문을 모르는 소릴 하는 거야, 츠타코! 우리들, 그런, 그런 관계가 아니라니까!”
“어머, 아까 자신들이 말했었잖아. 엿보기라고 말해도, 유키 군의 집에서 그런 모습을 요시노가 하고 있었던 거잖아?”
“으, 그건 아냐, 츠타코 쨩. 그, 땀을 흘려버려서 샤워를 받으려고 해서.”
라고, 그때까지 얼굴을 붉히고만 있었던 레이가 말에 끼어들었지만, 최악의 타이밍에 최악의 이야기를 꺼내 버렸다.
“땀을 흘려버려서!”
“샤워를 받으려 했다!”
주변의 열기가 오른다.
“그건 즉, 땀을 흘릴 만한 행위를 했다는 소리지요?”
“에, 응. 오늘은 제법 격렬하게…….”
“아침부터 격렬하게! 우와~, 세 사람 다 젊음이 넘치네요.”
역시나 츠타코도 얼굴이 상기해 있다.
코바야시는 거품을 물고 있다.
“자, 잠깐 레이 쨩! 오해 받고 있어!”
“에, 오해? 뭐가?”
얼굴이 새빨개진 요시노가 발돋움을 해서 레이의 귀에 입을 대고, 작은 소리로 말하자.
그 순간, 레이는 귀에서 목까지 새빨개져서 허둥지둥거리기 시작했다.
“에에엣! 아, 아냐! 그, 그, 그런 게 아니니까!”
“음―, 그런 소리를 해도 이제와선 늦었다고 생각해요, 레이 선배. 지금까지 그 큰 소리로 야단법석이었고.”
“에.”
정신이 들어 주위를 살펴 보자.
교실의 입구 바로 앞에서 복도에 서 있는 유키 일행을 중심으로, 교실 안의 반 친구들은 물론, 옆반의 학생들이나 단순히 지나가려던 학생, 복도 반대편에서 모습을 살피는 학생 등, 상당한 사람들이 소동에 주목하고 있었다.
게다가.
“―――얘들아, 곧 수업 시작이야! 다들, 교실에 돌아가렴!”
소동을 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까지 찾아와서.
선생님이 나타남에 따라서 파도가 빠지듯이 학생들이 자기 반으로 돌아간다. 유키는 그 사이를 틈타려 했지만.
“잠깐 기다리렴, 유키 군.”
불려서 조심조심 뒤를 돌아보자.
“……좀 뒤에, 사회과 준비실에 와 줄래?”
공포를 느끼게 만드는 미소를 빙긋 띄운 요코가 버텨 서 있어서.
유키는 그 순간, 살아서 지옥의 광경을 봤다…….
요코의 고문을 어떻게든 넘어서, 하루의 수업이 끝날 무렵에 유키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큰 한숨을 내쉬고 피로를 온 몸으로 드러내며 교실을 나서자, 갑자기 눈 앞에 누군가가 뛰어왔다.
“Hi! 잠깐 실례, 네가 소문난 후쿠자와 유키군 이니?”
“에, 아, 예. 맞는데요.”
기세에 눌려서 대답해 버렸지만, 눈앞에 서 있는 건 유키가 모르는 여학생이었다.
긴 머리카락을 뒤로 묶고 있는, 흔히 말하는 포니 테일이란 모습으로, 여학생이 달려 온 기세를 나타내듯 흔들리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에, 손에 든 메모장과 펜을 보고, 유키는 나쁜 예감을 느꼈다.
“저에게 뭔가 용무가 있나요?”
“예. 아, 실례. 저는 교내 신문, ‘릴리안 학보’의 편집장이자 신문부 부장인 츠키야마 미나코야. 잘 부탁해.”
이름만은 들은 적 있었다.
예전의 ‘릴리안 학보’는 교내 신문의 범위를 넘지 않았었는데, 현 부장, 즉 츠키야마 미나코가 편집장이 된 순간 급격히 바뀌었다고. 마치 가십 기사 같은 걸 싣거나, 독자의 흥미를 부질하는 듯한 기획을 게재하거나, 학생회, 교사를 말려들게 하며 하나의 명물이 되어가고 있다고.
그 장본인이 눈앞에 있다는 거다. 나쁜 예감을 느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거겠지.
“쫌 취재시켜줬으면 싶은데, 괜찮을까?”
미나코는 윙크를 해 오지만, 두근거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불안만이 늘어간다.
“취재라니, 뭘 말인가요? 저, 별로 취재받을만한 건…….”
“아니아니, 여하튼 두 명의 여학생이 아내라는 걸 공언하고, 게다가 그 두 사람의 여학생이 릴리안에서 인기 높은 미소녀 두 사람쯤 되면, 조용히 있을 수도 없잖아?”
“아뇨아뇨아뇨, 좀 기다려 달라니까요.”
고개를 흔드는 유키.
애초에, 요시노와 유키의 일로는 1학년 때부터 여러 가지로 놀림 받고 있었다. 그게 이제와서 신문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건, 오늘 낮의 소동이 전해진 거겠지. 과연 어떻게 왜곡되어서 전해졌을까.
“……저기, 소문이 어떤 식으로 츠키야마 씨에게 전해진 건가요?”
“에에, 후쿠자와 군과 하세쿠라 레이 양, 시마즈 요시노 양은 이미 같은 지붕 아래서 숙식을 하고 있고, 매일 밤일을 하고 있다고.”
“이제 됐어요.”
“안 됐어. 오늘은 별로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취재시켜줘.”
유키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 주변 학생들도 미나코를 알고 있는 탓인지, 보고도 못 본채를 하고 있다.
“에에, 그게……어라? 츠키야마 선배, 저기에 뭔가 소동이 일어난 것 같은데, 뭘까요?”
“에? 어디어디?”
“봐요, 안뜰 구석에서.”
“에―, 어디야, 모르겠어.”
“저쪽이에요, 저기…….”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미나코는 의심하는 법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기사 소재를 쫓아다니는 기자의 본성 때문인지, 유키가 가리킨 쪽을 필사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유키는.
‘죄송해요, 실례하겠습니다!!’
라고 마음 속으로 사과하면서 미나코를 놓고 도망간 거였다.
학교를 나서서, 거리까지 와서야 간신히 한숨을 돌린다.
유키도 꾸물거릴 시간은 없었다. 여하튼 오늘은,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첫날이니까.
한때는 아르바이트가 금지였던 릴리안도 공학화에 따라 교칙도 얼마간 느슨해져, 학교의 허가를 받으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첫날부터 지각하는 건 곤란하지.”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알바하는 곳을 향해서, 도착한 건 번화가에서 주택가로 접어드는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찻집. 마스터가 유키의 아버지랑 아는 사이여서 소개받았는데, 흑자가 날지가 수상쩍은 가게다. 마스터의 취미로 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가게라고 들었으니까, 아마 흑자는 아니겠지.
사전에 들었던 뒷문으로 들어가자, 바로 사람 좋아 보이는 마스터가 환영해 준다.
“오오, 유키 군. 오늘이 첫 날이었구나. 음―, 그래도 곤란하네, 알바 할 애 한 명이 아직 안 왔는데.”
“하아.”
“난 잠시, 장을 보러 가야 하는데……아, 왔나?”
마스터가 말한 뒤에 가게 밖을 쿵쾅쿵쾅 달리는 발소리가 들리고, 있는 힘껏 가게 문이 열렸다.
나타난 건.
“안녕하세요! 죄송해요, 약간 늦었습니다!”
“안녕, 미나코 쨩. 여러번 말하지만, 점원이니까 일단 뒷문으로 들어오도록 해 주렴.”
포니 테일을 휘날리며 입구에서 버텨서 있는 건, 릴리안 학원 신문부 부장인 츠키야마 미나코,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런 연유로, 갑자기 미나코와 단 둘이 가게에 남겨진 유키. 마스터에 따르면 ‘괜찮아, 이 시간이라면 거의 손님도 없고, 커피랑 홍차는 미나코 쨩이 낼 수 있고 케이크는 자르기만 하면 괜찮으니까’라는 이야기였다.
확실히, 점내에 손님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지만, 그래도 알바(그 중 한 사람은 갓 들어온 신입)에게만 맡겨둬도 괜찮은 걸지 유키는 고민한다.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어쩔 수 없잖니, 후쿠자와 군.”
유키의 생각을 깨부순 건 알바 제복으로 갈아입은 미나코.
소매 긴 하얀 블라우스 위에 빨강과 검정의 타탄체크 조끼, 아래는 검은 주름 치마로, 발은 검은 샌들에 양말.
기장이 짧은 스커트에, 블라우스의 가슴팍 버튼이 풀려 있는 건 남자로서는 신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제복 차림을 보게 되어, 유키는 미나코가 스타일이 좋고 귀엽다는 걸 처음으로 인식했다.
“아니, 하지만요……그러고 보면, 취재는 이어서 안 하나요?”
어쩐지 정면에서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옆을 향하며 입을 연다.
“공사는 구분해야지. 거기에 일도 가르쳐 줘야 할 것이 잔뜩 있으니까. 시간은 쏜살같이 빠른 법이니까, 낭비하면 안 돼.”
즐거운 듯 유키에게 일을 설명하는 미나코.
학교에서 속여버린 건 별로 마음에 담아두지 않은 모습이어서, 유키도 그 점에 대해서는 약간 안심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알바를 그만두지 않는 한 미나코에게서 달아날 수 없다는 소리니 미나코 입장에선 서두를 필요는 없는 거였다.
“괜찮아, 취재할 시간이라면 이 뒤에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예상했던 말에 유키가 머리를 싸안고 싶어졌을 즈음.
“아, 어서오세요!”
미나코의 밝은 환영 인사말. 입구에 눈을 향하자, 안에 들어온 건.
“안녕하세요……아, 유키 오빠, 오늘이 첫 날이지? 놀러 왔어―.”
손을 흔들면서 꽃밭이 주위에 떠오르는 것 같은 미소를 내보이는 쇼코였다.
“쇼코. 이쪽은 업무 중이니까, 놀러 왔다는 건 조금.”
짐짓 점잔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자, 쇼코도 다시 입을 빼죽인다.
“아, 그런 거 말해도 괜찮으려나. 제대로 손님으로 온 건데. 게다가, 친구도 데려왔는걸?”
“친구?”
그 말을 듣고 설마 노리코는 아닐까 불안해진다. 일단, 그 소녀와는 굉장히 상성이 나쁘다.
“응. 반 친구인 히데미 쨩.”
“아, 안녕하세요. 타카치 히데미예요.”
쇼코에게 떠밀리듯이 앞에 밀려나온 건, 약간 표정이 굳어있는 여자애. 일단 노리코가 아니라는데서 한숨 돌리고, 유키도 인사를 돌려준다.
“우와, 귀, 귀여워―! 후쿠자와 군의 여동생?”
“아뇨, 후배예요. 앗, 츠키야마 씨, 일해요.”
“아, 예이예이.”
일단 유키가 적당히 두 사람을 테이블로 안내하고, 어색하게 주문을 받는다. 쇼코가 중간에 쿡쿡 웃고 있는 건 무시해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주문을 들은 미나코가 두 사람이 주문한 케이크와 홍차를 준비하고, 유키가 쟁반에 올려서 가지고 가자,
“헤―, 제대로 일 하고 있네.”
“당연하잖아. 쇼코야 말로, 집에 안 가고 중간에 들러도 괜찮냐?”
“어라, 손님한테 그런 말투 써도 괜찮아?”
“아―정말, 말만 능숙해 져서는.”
가게 안에 다른 손님이 없기도 해서 허물없는 분위기로 이야기하고 있자, 다시금 가게 문이 열렸다.
거의 손님이 안 온다는 건 거짓말이 아니었는지 고민하면서 입구에 눈을 향해보자.
“어서오세요―. 어머, 레이잖아.”
“안녕, 미나코.”
들어 온 건 낯익은 두 사람, 레이와 요시노였다.
여전히 요시노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마음에 담고 있는 건지 척 보기에도 심기가 언짢아 보여서, 유키와 눈이 맞을 때마다 바로 고개를 옆으로 돌려버린다.
“오늘 검도부는 어떡하고? 드문 일이잖아, 여기 오는 건.”
“응, 오늘은 빨리 끝나는 날이니까. 거기에, 오늘부터 유키 군이 알바 하니까 요시노가”
“레이 쨩, 쓸데없는 거 말하지 마!”
“아아, 미안, 미안.”
요시노의 목소리에 레이는 얼버무리듯 미소를 짓는다.
요시노와 레이는 쇼코와 히데미가 앉아있는 테이블을 슬쩍 살펴보며, 미나코에게 안내받아 테이블에 몸을 기대고 오믈렛과 커피를 주문한다.
“어머, 이 시간부터 오믈렛 먹는 거니? 저녁 , 못 먹게 될거야.”
“아하하, 동아리로 좀 배가 꺼져서.”
“OK. 그럼, 잠시 기다려줘.”
팔짝 뛰듯 부엌으로 돌아온 미나코를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는 유키. 미나코에게만 들리도록 작은 소리로 물어본다.
“저기, 제대로 만들 수 있나요?”
“맡겨 둬. 넌 서포트, 잘 부탁할게.”
“하아…….”
팔을 걷어붙일 기세로 미나코는 조리를 시작한다.
“우선, 계란을 깨고……와앗, 실패.”
“제, 제, 제가 할게요!”
“미안해―, 우와, 손이 질척질척. 손을 씻고, 자……그럼 나는 프라이팬을.”
“손, 말린 뒤에 해 주세요. 그리고 프라이팬도 젖었어요.”
“에에, 접시는 이걸까―.”
“그거, 파스타 용이라고 쓰여 있어요. 그쪽 오른 구석에 있는 거 아닌가요?”
“에―, 이 접시 쪽이 디자인 귀엽지 않아?”
“그런 문제가 아니라요.”
“그치만 나, 이쪽이 좋은걸. 아, 봐, 불 위험해.”
“으아?! 잠깐만, 왜 제가 만들고 있는 건가요!”
“어머, 그럼 자, 프라이팬 넘겨줘.”
“우와, 갑자기 그러면 위험하다니까요!”
“아아, 미, 미안! 화, 화났어?”
“안 화났으니까요, 저기, 그래서, 다음은?”
“그러니까…….”
여하튼 떠들썩한 부엌 모습.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어딘가 신경이 곤두선 듯한 분위기로 바라보는 요시노, 레이, 쇼코 세 사람. 하지만 히데미만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어서.
“……저기, 쇼코 쨩. 혹시나 저 두사람, 사귀고 있는 걸까?”
라고 솔직히 생각한 걸 입에 담았다.
그러자 그 순간.
“““그럴 리 없잖아!!””
기이하게도 세 사람의 목소리가 겹쳤다.
약간 놀라면서도 히데미는 다시 말을 잇는다.
“에, 그래? 그래도 왠지 굉장히 흐뭇해 보여서, 신혼부부의 가게 같은 느낌이…….”
“““안 들어!!!”””
“죄, 죄송해요!”
세 사람의 시퍼런 기세에 무심코 사과해 버린 히데미.
단지, 당사자인 유키 쪽은 요리와 미나코의 상대로 분투하느라 가게 안의 모습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유키가 신경 쓰지 못하는 쪽에서 긴박했던 아르바이트도 끝나고, 가게를 정리하고 나갈 즈음에는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그럼, 또 봐.”
손을 흔들고 포니테일을 나부끼며 떠나가는 미나코를 눈으로 배웅하며, 유키 자신도 돌아가려고 집 쪽으로 발을 돌린다. 학교도 그렇고, 아르바이트도 그렇고, 정말로 피곤한 날이었기에 빨리 집에서 쉬고 싶은 상황이다.
“……어라?”
하지만 돌아본 곳에서 눈에 들어온 건, 길게 땋은 머리를 한 소녀.
저녁에는 카페를 떠났을 텐데, 왜 아직껏 이런 곳에 있는 건가 싶어서 유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시노는 옆을 향한 채로, 그러면서도 눈길은 유키 쪽을 향하면서 입을 연다.
“우, 우연히 쇼핑하다가 늦어져서.”
“……이 근처에 그런 가게, 있었나?”
“별로 이 주변에만 있었던 건 아니야. 돌아가는 중에 좀 들러본 것 뿐이야.”
“흐응.”
“뭐, 뭐야.”
“아무것도. 그보다 벌써 어두워졌으니까 위험하고, 같이 돌아가자.”
“으, 응.”
“………….”
“………….”
말없이 밤의 거리를 걷는 두 사람.
“……저기, 아침은 미안.”
“……변태.”
“그러니까, 미안하다니까. 어쩔 수 없잖아. 자기 집에서 둘이 거기에 있으리란 건 예상도 못했고. 그래도, 갑자기 일어난 거라, 그, 별로 잘 못봤으니까.”
“어차피 레이 쨩 쪽만 홀딱 바라본 거지?”
“에?”
“어차피 나 같은 건 초라하고, 레이 쨩처럼 스타일도 좋지 않은 걸.”
“아니……그래도, 요시노도 피부 하얗고, 몸 가냘프고, 예뻤었어.”
이야기 방향이 바뀌어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심코 그런 걸 입에 담아 버린다.
“뭐, 뭐야. 그, 그래도, 그, 그래?”
아직 화내고 있나 했지만, 요시노의 리액션은 예상 밖이었다. 약간 부끄러운 듯 곁눈질로 유키를 올려다본다.
밤의 어두운 길, 거리의 빛에 떠오른 요시노의 모습이 갑자기 굉장히 귀엽게 보여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으, 응. 그래도.”
“그래도?”
요시노의 눈길을 뺨에 느끼면서, 유키는 입을 열었다.
별이 보이는 밤하늘에 눈을 향하면서.
“……역시 쫌만 더, 굴곡이 있으면 싶을까.”
“―――뭐?”
“뭐랄까, 그, 색기가 느껴지지 않는 몸이라고 할까. 유아체형은 조금 더 어찌저찌 했으면 싶은~”
웃어 보이자.
“……이, 이…….”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는 요시노.
그리고.
“유키, 멍텅구리―――――――!!!”
“그허헉!!”
작렬하는 요시노의 펀치.
힘은 그리 세지 않지만, 각도 좋게 턱에 들어갔기에 뇌가 흔들려서, 한 순간 시야가 흔들린다.
“너, 너, 주먹은 너무하잖아.”
“시끄러워, 유키 같은 거 몰라, 바보!”
뾰로통 화내면서 빠르게 걷는 요시노의 뒤를 쫓아간다.
“요시노, 혼자서는 위험하다구.”
“어차피 나는 색기같은 거 없으니까, 괜찮잖아.”
“그래도 일단, 여자애고.”
“일단은 뭐야, 일단은!”
다시금 요시노의 옆에 나란히 서서, 평소처럼 농담과 악담을 나누며 한숨 놓는 유키.
역시 요시노하고는 스스럼없는 사이고 싶다. 분명, 무의식 중에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겠지.
두 사람의 모습은 사이좋게 나란히 거리 풍경에 녹아 들어갔다.
<판명 스테이터스>
츠키야마 미나코 (new) ··· 선배
타카치 히데미 (new) ··· 후배
<발생 이벤트>
요시노&레이 ‘이른 아침의 눈보신’
미나코 ‘돌격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