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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미 연애 광상곡

黄薔薇恋愛狂想曲


원작 |

역자 | 淸風

4. 은빛 달 아래서


 유키는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설마 첫 과외가 있고 하루밖에 안 되어 학교까지 찾아올 거라곤 상상할 수 있었을 리 없다.
 물론 교문 앞의 눈에 띄는 곳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유키가 정문을 나와서 걷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걸어온 걸 생각하면, 잘 보이는 곳에서 관찰하고 있었으리란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하~이, 유키 군.”
“에, 에리코 선생님? 이, 이런 곳에는 무슨 일인가요.”
“어머, 정말. 우연이네……응, 다시 한 번 말해주지 않을래, 유키 군?”
“에?”
“그러니까, 지금 말했던 거.”
“에에……에리코 선생님, 이런 곳에는 무슨 일인가요.”
 부탁받은 대로 되풀이해 보자, 에리코 씨는 뺨에 손을 대고 뭔가를 홀로 중얼거리며 끄덕이고 있다.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에리코 선생님, 응, 좋은 소리네.”
 아무래도 ‘선생님’이라는 경칭이 붙은 것에 감동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우연 같은 거 아니죠?”
 하나데라 학원 통학로의 중간이자 그 외에는 특별히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 우연히 왔다는 이야기는 믿기 어렵다. 가정교사 첫날은 어제 마친 참이어서, 다음 번은 수요일 밤 예정이다.
“대학의 오후 강의가 휴강이 되어서. 그래서 모처럼 시간이 비었으니까, 제자에 대해서 좀 알아둘까 해서.”
 머리띠로 한 대 모은 살랑살랑한 머릿결을 문지르며, 속마음을 읽기 힘든 표정으로 에리코 씨는 유키를 바라보고 있다.
 이렇게 다시금 바라봐도, 정말 예쁜 사람이라고 느껴 버린다. 어제는 방 안이었는데, 밖에서 보면 인상 또한 바뀐 것처럼 느껴진다. 아니면 복장이 다른 탓인 걸까. 오늘은 털이 달린 하얀 다운 재킷에 청바지를 갖춘 스타일. 어제는 가정교사라는 입장이었던 탓인지, 블라우스에 치마로 제대로 갖춰 입은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캐주얼하고 움직이기 쉬워 보이는 느낌. 어른스레 보였던 어제보다 상당히 유키에게 가깝게 느껴졌다.
 학원에서 어느 정도 떨어졌다고는 해도, 통학로 중간이기에 학원생이 많이 있다. 그들은 흘끗흘끗 유키와 에리코 씨에게 눈길을 향하고 있다. 남학교인 만큼 여성과 함께 있으면 굉장히 눈에 띈다. 게다가 상대가 어마어마한 미인이라면 한층 더 그렇다.
“일단, 역 쪽으로 가 볼까요?”
 선도해서 걸어나간다.
 역을 향하는 중에 들려온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가라사대, 어제 과외 중에 느꼈던 건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 있는 도랑같은 것. 첫날이니 어쩔 수 없지만, 그 도랑을 메우지 않으면 제대로 된 소통을 할 수 없기에, 결국에는 적확한 교육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이렇게 수업이 없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만나러 온 거라고.
 물론 유키는 그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어제 유미에게서 들은 에리코 씨의 성격, 그리고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도중 에리코 씨가 지은 표정. 모두가 거짓말인 것 같지는 않지만 아마 ‘재미있는 것’을 바라고 온 부분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역에 도착한 뒤에 어떡할지 고민한다. 혼자라면 집으로 돌아가든 어디 들렀다가 가든지 별 상관없겠지만.
“그래서, 어디로 에스코트해 줄 거니, 유키 군?”
 옆에 서 있는 에리코 씨는 새침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꺼냈다.
“에?”
“역에 가자고 말한 건 유키 군이잖아. 그리고 역시 데이트를 한다면 남자가 리드 해 주는 쪽이 기쁘겠는데.”
“데, 데이트라뇨?!”
“모처럼 이런 기회니까, 오늘은 이대로 데이트해 버리자. 서로를 알 좋은 기회잖아. 아니면, 뭔가 다른 용무라도 있니?”
“아뇨, 그런 건 아닌데요.”
“아, 알겠다. 여자친구한테 들키면 곤란하다거나.”
“그, 그런 사람 없으니까요.”
“그럼 문제없잖아. 자, 가자.”
 정말 자연스럽게 에리코 씨는 팔짱을 끼어왔다.
“이 정도쯤 괜찮잖아, 서비스야 서비스.”
​“​스​비​스​라​니​…​…​.​”​
“괜찮으니까. 자, 어디로 데려가 줄 거니? 남자애가 잘 가는 곳이라거나, 가르쳐 줘.”
 두근두근거리는 표정으로 물음을 꺼내는 에리코 씨를 보고 있자, 역시 선생님과 학생의 소통 운운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구실이고 실제로는 재밌는 걸 찾고 있을 뿐이지 않나 느껴 버린다.
 그래도 어제는 굉장히 어른스럽게 보였는데, 이렇게나 어려 보인다 해야 할지 귀엽다고 해야 할지 하는 표정도 보이는구나 싶어서 가슴이 두근 뛰는 것도 확실했다.
 그래서 유키는 일단 바라는 대로 마을 안을 걷기로 했다.

 물론 그런 두 사람의 뒤에 누군가의 눈길이 따라오고 있다는 것 따위, 알 리 없었다.



 마주본 자리에서 에리코 씨가 배꼽을 잡고 웃음을 참고 있었다. 아니, 얼마 전에는 참지도 않고 폭소하고 있었지만.
 눈가를 눈으로 누르며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걸 닦고 있다. 여성의 눈물은 아름답다는 말은 흔히 듣지만, 이 자리의 눈물은 뭔가 다른 것 같다고 별 의미 없이 생각한다.
“……아, 아니, 설마, 그런 곳에 데려갈 거라곤 생각도 못 해서.”
“말해 두겠지만, 저는 그만두자고 말했었어요. 가고 싶다고 말한 건 에리코 선생님이니까요.”
 결국에 데려간 건 오락실과 만화방. 양쪽 다 약 1시간 정도 머물렀었다.
 왜 그런 곳에 갔나 하면, 에리코 씨에게 자주 가는 데가 어딘지 대답한 곳 중에서 그 두 곳에 에리코 씨가 특히 흥미를 내보이며,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결코 유키가 먼저 꺼낸 말이 아니다. 아무리 유키라고 해도 첫 데이트(?)에서 갑자기 그런 곳에 여성을 데려 가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첫 데이트에서 여자를 만화방에 데려갈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아아, 웃겨.”
“아니, 그러니까 에리코 선생님이 제가 자주 가는 곳으로 가겠다고 하니까.”
“그래도 그리도 정직하게 그런 곳을 말할 줄은……그보다 뭔가, 남자애들 여럿이서 모여서 만화방에 가는거니? 풋……푸푸푸.”
“저번에 어쩌다 간 적 있어서 생각난 것뿐이지, 평소에는 오락실이나 패스트 푸드점 쪽에 자주 가요. 만화방은 정말, 우연히 최근에 갔던 것뿐이에요.”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웃음이 터진 모양이어서, 에리코 씨는 유키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몸을 떨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파악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데려간 오락실에서는 신기하다는 듯 이러저런 게임기를 보며 돌아다니고, 갑자기 탈의마작을 하고 싶다고 한다거나, 만화방에서도 “남자애는 이런 걸 좋아하니?”라고 말하면서 약간 야한 청년만화를 손에 집으려 하고. 같이 움직히고 있는 유키 쪽이 창피해서 멈추는데 고생했었다.
“아아, 즐거웠어.”
“정말인가요?”
 만화방을 나가서 가까이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장소를 옮겨 가볍게 식사를 하며 둘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역시나 에리코 씨의 진의는 파악하지 못했다.
“후후, 정말이야. 아―, 그래도 놀고 있었던 탓인지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못했네. 모처럼 자리에 앉았으니 조금 이야기 할까?”
“하아.”
“유키 군은 여자친구 없니?”
“없어요.”
“어머……정말로? 유키 군, 인기 있을 것 같은데.”
“남학교고, 기회같은 것도 없어서.”
“하나데라라면 릴리안과 교류가 있잖아? 학생회장이라면 더욱이 학원 축제의 도움 같은 것도 있고, 고백 받거나 하지 않았니?”
“아니―, 없다니까요 정말.”
“그럼, 좋아하는 애같은 건 없니?”
“음―, 지금은…….”
 굉장히 끈질기게 에리코 씨가 캐물어 온다. 역시 이런 건 여자인 모양인지, 다른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흥미진진하다 할 수 있는걸까.
“요시노 쨩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니?”
“웁?!”
 갑자기 특정한 사람의 이름이 나와서 유키는 마침 마시려고 입을 대고 있던 아이스 티를 멋지게 뿜어 버렸다.
“어, 어째서 갑자기 요시노 양의 이름이 나오는 건가요?”
“동요해 버렸는데, 정답일까?”
“아니에요. 요, 요시노 양과는 친구니까요.”
“친구, 구나.”
 에리코 씨는 팔을 괴며 즐거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 눈이 마치 유키의 속마음을 꿰뚫어보려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아무래도 불안하다.
“그럼, 산백합회 안에서는 누가 좋아하는 타입이니?”
“그건……저기, 이제 봐주세요, 정말.”
 유키는 고개를 숙여가며 어떻게든 빠져나갈 수 없나 시도해 본다. 조금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한 번 달라붙으면 떨어지지 않는구나 하고 머릿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한편 맞은편의 에리코 씨는, 고민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면서도.
“어쩔 수 없구나, 오늘은 이 정도로 해 둘까. 즐기게 해 줬고, 괜찮은 걸로 할게.”
“…………휴.”
 마음속 깊숙이 안도한다.
 하지만.
“아,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뭐, 뭔가요.”
“요시노 쨩과 나라면, 어느 쪽이 취향?”
“에엣, 아니, 그건, 그!”
 조금 전에 물었던 것보다도 더더욱 답변 난이도가 올라갔다. 누구라고 대답하든 유키에게 좋은 미래가 찾아올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유키는,
“아니―, 어느 쪽도 저같은 거에게는 아까워서 그런 선택은 할 수 없어요.”
 라고 하는, 도망치는 답변을 고를 수 밖에 없었다.
“우와, 재미없는 대답이네.”
 아니나 다를까, 에리코 씨는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지만,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걸까.
“본인이 눈 앞에 있으니까, 이럴 때는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물론, 에리코 선생님 쪽이 훨씬 멋져요.’정도로는 말할 수 있어야지.”
“말하면, 진심이라고 생각할 건가요?”
“그럴 리 없잖아, 진심으로 말하고 있나 아닌가는 알 수 있어. 그래도 뭐어, 진심이 아니어도 유키 군이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 괜찮지만.”
 빙긋, 하고 마성의 미소를 띄운다.
“괘, 괜찮지 않으니까요! 그 이전에, 애초에 말하지 않았으니까요?!”
 유키는 정말로, 절대 어설프게 말실수를 해선 안 되겠다고 땀이 한가득 등을 타고 내려오는 걸 느끼며 생각했다.



 다음 날, 학교에 가자 예상대로 에리코 씨에 대한 일이 화제가 되어 있었다. 이럴 때 학생회장이라는 직무가 성가시게 느껴진다. 일반 학생이라면 기껏해야 반 친구나 동아리 동료에게 보였을 때 곤란한 정도지만, 학생회장일 경우에는 역시나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설령 유키가 상대를 모른다고 해도, 상대는 유키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에리코 씨가 말을 걸어왔을 때도 주위의 학생들 중에 특별히 친한 사람은 없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안심할 수 없는 거다.
“어이 유키치, 소문이 났어. 너를 기다리고 있던 미소녀라는 건 누구야? 대체, 무슨 용건으로 온 거냐?”
 흥미 반, 걱정 반이라는 표정으로 코바야시가 오자마자 물음을 꺼냈다.
“가정교사 선생님. 다음 수업에 관해 이야기하러 온 것뿐이다.”
 귀찮다는 듯 유키는 대답했다. 어떻게 말하건 이상한 식으로 받아들일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거짓말과 진실을 적당히 섞어서 적당히 별 탈 없는 대답을 했지만, 코바야시가 그것만으로 납득해줄 리 없다.
“그런 용건으로 일부러 하나데라까지 오냐?”
“실제로 왔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나도 예상 못 했었어.”
 실제로는 유키를 더욱 자세히 알고 싶어서 온 모양이라는 것 같은 소리를 했다간 쓸데없는 오해를 낳을 것 같으니 입 다물어 둔다.
“하지만, 미인 가정교사라니 너, 혹시나 공부 외의 것들도 배운다거나…….”
“멍청아. 야설 너무 읽었어.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겠냐?”
 물론 실제로 밀어 넘어뜨려 가슴을 만져 버렸다거나, 속옷이나 가슴의 계곡이 보여 버렸다거나 하는 건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그 상황이 선명하게 떠올라 버려 얼굴이 빨개질 것 같다. 잊으려 해도 당분간은 잊을 수 없는 영상과 감촉이었다.
“……왠지 얼굴이 히죽거리고 있는데.”
“그, 그런 일 없어!”
 얼굴을 돌리고 헝겊지겁 수업 준비를 시작한다.
“어이, 수상하다고.”
 코바야시는 좀 더 추궁해 오려고 했지만, 마침 교실에 들어온 선생님 덕에 살았다. 그 날은 결국 온종일 코바야시에게 추궁을 받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간신히 하루가 끝났다.
 코바야시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도망 다녀, 인기척이 적어지는 걸 기다린 뒤에 학교를 나섰기에 굉장히 시간이 늦어졌다. 겨울은 해가 지는 것도 빨라, 이미 주위는 컴컴해져 가고 있었다.
 초봄의 황혼은 어딘가 무기질적인 투명감에 휩싸여, 단순한 풍경마저 우아한 아름다움을 띄어 매우 아름답게 보인다. 그런 겨울 하늘을 생각하고 있으면 어쩐지 자신이 굉장히 고독한 존재인 것처럼 느껴져서, 그게 단순한 착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구슬픈 기분이 든다.
 정신을 차리자 어느샌가 하늘에는 달이 무기질적인 빛을 내뿜어 존재감을 고요히 어필하고 있었다.
 걸어나간다.
 주위에 얼마간 사람이 보이기는 하지만, 어둠 때문인지 얼굴까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통학로로밖에 쓰이지 않는 길이어서 가로등 아래라도 가지 않으면 모습은 확실히 볼 수 없다.

 그 가운데서.

 달을 등진 소녀가 푸르스름한 빛을 받은 모습을 드러내며 서 있었다.
 원래 투명하게 느껴지는 얇은 피부는 달빛을 받아서 한층 더 움츠러들 만치 아름답고 하얗게 빛나고, 커다란 눈은 마치 유리구슬처럼 신비한 빛을 내보이고 있다.
 진심으로 겨울의 요정이라는 게 혹시 있다면 분명 눈앞의 소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지 상상한다.
 하지만 물론, 눈 앞의 소녀는 요정도 뭣도 아니었고.

“――평안하세요, 유키 군. 약간 이야기하고 싶은게 있는데, 괜찮을까?”

 땋은 머리를 흔들며, 소녀는 귀엽게 고개를 기울인다.
“요시노, 양?”
 어제의 에리코 씨에 이어, 오늘은 요시노 양의 매복.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유키는 고개를 끄덕인다.

 어제에 오늘.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요시노 양이 입에 담은 말은 유키를 놀라게 함과 동시에 당황하게 한다.

“―――에리코 님과는 어떤 관계니?”


 곧은 눈빛과 말투로, 요시노 양은 그렇게 물음을 꺼내왔다.

 
계속
~가운데말~
 아수라장? 이런 이런.

역자의 말:
 요시노가 올 줄 알았습니다! 파이팅 파이팅 요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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