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흔들리지마, 바보.
가정교사 날이 찾아오자, 유키는 어쩐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가정교사가 약간 연상이고 굉장한 미인이라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만, 거기에 더해 에리코 씨는 때때로 자신을 지긋이 바라볼 때가 있다. 그것도 제자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기보다는, 어딘가 관찰하고 있는 것 같은 눈으로 보기 때문에 침착할 수가 없다.
“무슨 일이니, 유키 군. 손이 멈춰 있어.”
지금은 혼자 문제를 푸는 시간. 하지만, 다른 부분에 의식을 빼앗겼기 때문에 문제 쪽은 소홀해지고 있었다.
“모르는 부분 있니?”
“아, 에, 예, 여기가.”
다른 부분에 정신을 뺏기고 있었다고는 말하기 힘들어서, 바로 수긍한다.
“어디?”
에리코 씨가 참고서의 문제를 바라보듯 바로 옆에서 거리를 좁혀온다. 같이 공부를 하면서 알았지만, 에리코 씨는 언제나 좋은 향기가 난다. 에리코 씨의 냄새라는 걸까. 가까이 오면, 보다 강하게 느껴진다.
참고서를 바라보기 위해 앞으로 구부리고, 떨어져 내리는 머리칼을 손으로 바로 귀에 건다. 풍성하게 흔들리는 머리카락 끝이 뺨을 근질인다.
옆모습도 아름답지만, 그 눈은 지금까지 본 어떤 여성과도 달라서, 왠지 약간 나른하고, 거슴츠레한 것처럼 보인다.
숨이 바로 옆에서 목덜미에 걸린다.
몸이 밀착해 있기에 부드러움이, 따스함이 가까이서 전해져 온다. 겨울철이어서 옷도 두터워졌지만, 그래도 충분히 에리코 씨를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에리코 씨는 가르치는 데 집중하고 있는 만큼, 다른 뜻은 없겠지. 단지 유키가 과도하게 의식해 버린 것 뿐인 거겠지만, 유키라 해도 그맘때의 남자. 이걸로 의식하지 말라고 하는 쪽이 무리가 아닐까.
“……군, 유키 군, 듣고 있니?”
“에, 아, 예?!”
말을 걸어와서 옆을 바라보자, 비유도 뭣도 아니라 눈 바로 앞에 에리코 씨의 얼굴이 있었다. 약간 화난 것 같은 표정으로, 그런데도 아름다워서, 가까이선 화내게 한데 미안하다는 마음보다 먼저 아름다움에 두근거려 버린다.
“지금, 설명 한 거 듣고 있었어?”
“아, 아뇨……죄송해요.”
“무슨 일이니, 오늘은 굉장히 집중력이 없네.”
“죄, 죄송해요.”
이유를 말할 수 있을 리도 없어서, 유키는 오직 사과밖에 할 수 없다.
“……그럼, 잠시 쉬도록 할까.”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느낌으로 에리코 씨는 일어나고, 쭈욱 기지개를 편 뒤에 침대에 걸터앉았다. 떨어진 건 한숨 놓았지만, 이번에는 정면에서 마주보는 꼴이 되어서 긴장된다.
오늘 에리코 씨는 밴츠 스타일이었기에, 다리를 꼬아도 눈을 둘 곳이 곤란해지지는 않는다. 에리코 씨는 그대로 무릎 위에서 팔을 꼬고, 가볍게 고개를 기울인다.
“맞아, 딱 좋아. 조금 유키 군에게 묻고 싶은게 있었어.”
“하아, 어떤 건가요?”
차라도 가지고 올까 해서 몸을 일으킨 참에, 말이 걸려왔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에리코 씨를 보자, 왠지 굉장히 즐거운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기, 요시노 쨩하고는 어떤 관계니?”
유키는 머리를 감싸안고 싶어졌다.
“뭐, 뭔가요, 갑자기.”
“조금 신경 쓰여서.”
발을 다시 꼰다.
에리코 씨와는 아직 사귄 기간은 짧지만, 지금 그녀의 표정은 자신에게 그리 달갑지 않은 걸 생각하고 있을 때의 표정이라는 걸 깨닫는다.
“별 것 없어요. 하나데라와 릴리안의 학생회 임원이어서, 학원축제 준비로 교류한 것 뿐이에요.”
“좋아하지?”
“으!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건가요?”
“아, 표정 바뀌었다.”
“아, 안 바뀌었어요.”
“알기 쉽네~, 유미 쨩 같아.”
“그러니까, 아니라니까요.”
믿지 않는 건지, 싱글싱글 미소를 멈추지 않는 에리코 씨. 대체 무슨 셈인 걸까. 확실히 요시노 양은 귀엽다고 생각하고, 좋아하냐 싫어하냐를 물으면 좋아하는 쪽이 되겠지만, 묻고 있는 건 그런 건 아닐 거고, 잘못 대답했다간 까다로운 일이 될 것 같아서 유야무야하게 만드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슬슬 공부 다시 하지 않을래요?”
“도망갈 셈이네.”
침대에서 일어나, 다가온다.
“정말로 좋아하지 않니?”
“그래요.”
눈을 마주치지 않도록 하며, 참고서와 공책을 펴고 샤프를 손에 쥔다. 주변에 감도는 에리코 씨의 향기에 현혹되지 않도록 정신을 집중시킨다.
“그럼, 사양 안 해도 괜찮으려나.”
하지만, 에리코 씨는 바로 유키의 마음을 뒤흔든다. 뺨을 괴고, 독특한 퇴폐적인 색기를 실은 눈길로 유키를 바라보며, 말을 한 마디 더했다.
“……유키 군, 내 애인이 되지 않을래?”
“에?!”
놀라서 고개를 든다.
바로 정면으로 에리코 씨와 마주본다.
“어, 어째서 그렇게 되는 건가요?”
“그치만, 별로 요시노 쨩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잖니?”
“그거랑 이거랑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잖아요!”
몸을 내미는 에리코 씨에게서 거리를 벌리듯, 앉은 채로 물러난다.
에리코 씨는 상관하지 않고 미소를 지어온다.
마치 뱀이 쏘아보는 개구리라도 된 것처럼 그 미소에 몸이 굳는다.
“가정교사 시간 외에는 애인사이. 어때? 뭔가, 멋지지 않아?”
진담인지 농담인지도 알 수 없는 말투로, 에리코 씨는 그렇게 말했다.
유키 군의 이야기를 대강 듣고, 레이는 마음속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들떠 있었는지, 마음이 풀어져 있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걸 생각하고 있었는지. 지금이 되어서는 더 이상 알 방법도 없지만, 자신이 이상한 기대를 품고 있었던 건 확실한 모양이라고 레이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찻집의 안쪽 깊은 자리에서 코트를 벗고, 니트에 세미 타이트 팬츠라는 차림으로 마주보는 자신이, 어딘가 웃겼다.
원인을 말하자면, 어제 밤에 걸려온 전화였다.
유키 군의 전화는 운 좋게, 레이가 직접 받을 수 있었다. 혹시 엄마가 받아 버렸다간 또 무슨 소리를 들을지 감도 안 온다.
약간 높아지는 가슴 고동을 억누르며, 말투가 평소와 달라지지 않도록 주의한다. 잡담을 잠시간 한 뒤에 유키 군이 꺼낸 말은, ‘내일, 만날 수 없을까요’라는 것.
일부러 전화를 걸어서 만날 수 없냐고 말을 해 온 건, 분명히 또 뭔가 상담 거리가 있기 때문일 거로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희미한 기대를 안아 버리는 건 어째설까.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부른 건 아닐지 약간이라도 기대해 버리는 자신이 나쁜 걸까.
그렇게 해서, 희미한 기대를 숨겨 나가 보자 예상대로 이야기라고 하는 건 상담거리여서, 안심한 듯한 유감인 듯한, 어느쪽인지 알 수 없는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동시에 역시 자신은 이런 역할이 어울린다고 체념에 가까운 쓴웃음이 솟아오른다.
“……저기.”
유키 군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아무래도 생각에 깊게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아아, 미안 미안. 그래서, 뭐였지?”
마음을 바꿔서 유키 군의 상담을 들으려 했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잘 진정되지 않는다. 언니와 여동생에 대해서 상담받아서 차분히 있을 수 있을리 없다. 게다가, 언니의 발언을 들은 뒤로는 특히 동요하고 있었다.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걸까.
단순히 요시노가 얽혀있어서 재밌을 것 같으니까, 놀림 반으로 말해 본 것뿐일까. 아니면 반은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 걸까. 언니의 진의는 여동생인 레이조차도 추측하기 너무 어려웠다.
“언니와 요시노, 였었지…….”
예전에도 요시노에 대해서 상담을 받은 적이 있어서, 두 번째니까 이야기를 꺼내기 쉬웠던 것도 있겠지.
그래도, 이래선 나는―――.
“요시노 양도, 에리코 씨도,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뭐가 있었는지 모르겠어서, 둘에게 어떻게 접하면 좋을지.”
난처한 표정을 띄우는 유키 군.
이렇게 단둘이 있으면, 아무래도 가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 버린다. 다리에 부상을 입은 자신, 유키 군이 핸들을 잡은 자전거의 뒷자석에 타서 땅거미가 지고 있는 거리를 바라보며 둘이서 달렸던 그날.
테이블에 문득 눈을 떨궈보면, 찻잔에 우려낸 홍차의 표면이 약간 흔들리고 있어서 레이 자신의 마음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래, 레이는 흔들리고 있다.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마음은 말하는 걸 들어주지 않고 흔들려댄다.
“어째서 요시노는 그렇게나 화가 났던 걸까?”
그건 요시노가 유키 군을 좋아하니까. 친구에 대한 ‘좋아함’에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좋아함’사이에 있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에리코 씨는 단지 나를 놀리고 있는 걸까? 그래도 혹시나 그렇지 않다면, 무책임한 태도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모른다.
언니니까 정말로 재밌을 것 같다는 이유도 있을 법하고, 역으로 정말로 좋아하게 되어 버렸다는 것도 있을 수 있다.
단지 한 가지 분명한 건, 그만큼 유키 군이 언니에게 있어 흥미진진한 상대라는 것.
그래도, 그렇다면, 나는―――.
“레이 씨라면 요시노 양과도 에리코 씨와도 사이가 좋고, 두 사람이 어떤 걸 생각하고 있는지 알지 않을까 해서―――.”
그야, 아는 것도 많다.
유키 군이 모르고 있는 것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이 씨라면 두 사람 사이에서 냉정한 눈으로 봐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건.
그건, 즉.
“……유키 군은.”
말하면 안된다. 이 이상, 입을 열었다간 쓸데없는 소리를 해 버린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한 번 입을 닫고, 생각하는 척을 해서 마음을 진정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미묘하게 톱니바퀴가 맞물려 버린 자신의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언니……에리코 님과 요시노에 대한 고민을 나에게 상담하는 거구나.”
“에.”
테이블 위에서 깍지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고개를 들지도 못해 계속 숙이고 있으면, 드리운 앞머리가 약간 눈에 걸린다.
“신뢰받고 있다, 는 거기도 하겠지만.”
안돼, 더 이상 멈출 수 없어.
둘이서 만나서 유키 군의 입으로 언니나 요시노에 대해 이것저것 들은 마음이 웅성대는 내가 있었고.
자신이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후쿠자와 유키라는 남자애에게 사로잡혀 버렸다는 것도 깨달아서.
“나에 대해선, 요시노나 언니처럼 봐 주지 않는 걸까?”
눈앞에서 유키군이 당황하고 있는 걸 안다.
갑자기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를 꺼낸 레이에 대해, 어떤 태도를 하면 좋을지, 어떤 말을 걸면 좋을지 모르는 채로 그저 당황하고 있다.
미안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치만, 당신이 나쁜 거니까.
“나도, 여자애야? ……유키 군……바보…….”
천천히 고개를 들고, 레이는 살며시 속삭였다.
집에 돌아가서 도망치듯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가, 레이는 머리를 안고 침대에 쓰러졌다.
“아아아, 나 바보멍청이똘꾸―――!!! 어째서 그런 걸 말해 버린 거야――?!!”
구멍이 있다면 들어가고 싶다, 아니, 오히려 사라져 버리고 싶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지고, 얼굴에 열이 모이고, 머리가 빙글빙글 돈다. 그런 걸 말해 버린 거다. 아무리 유키 군이 둔하다고 해도, 약간은 느끼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솔직히 그 때 자신이 뭘 말하고,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단지 유키 군도 어딘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레이를 보고 있었던 기분이 든다.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가슴의 구동이 굉장히 빨라졌다는 것 정도.
뒤치락거리는 동안 위로 눕게 되어서 천장을 바라본다.
“아아……그래도.”
팔을 뻗는다.
자신의, 여자애로써는 너무나 큰 손이 눈에 비친다.
“역시 나, 유키 군을…….”
모르겠다.
확신이 있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계속 릴리안이라는 아가씨의 동산에서 자라왔다. 도장에는 동년배, 혹은 연상의 남자도 많이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같은 ‘문하생’이라는 눈으로밖에 본 적 없었다.
그러니까 연애같은 건 책 안에서밖에 모르고. 이야기의 헤로인 기분에 동조해서 멋진 스토리에 가슴 설레는 건 있었지만, 현실이 되면 그것만이 아니어서.
“뭘까……가슴이 괴로워.”
레이는 홀로 중얼거리는 거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