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미칠 것 같아, 바보.
레이 쨩의 상태가 이상한 걸, 요시노는 알아차리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레이 쨩은 솔직하고, 뭘 숨기는 게 서투른 타입이어서 옛날부터 무슨 일이 있으면 요시노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성장해나감에 따라 예전보다 차분해지고, 어린애도 아닌 만큼 서로에게 모든 걸 보여주지도 않게 되고, 필요해서 하는 거짓말 같은 것도 있다보니 모든걸 싸그리 알 수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나 알 때는 안다. 특히, 레이 쨩 자신에 대한 것보다도, 요시노에게 깊게 얽혀있는 일에 대해선 알기 쉽다.
심장에 병을 안고있었을 때도 그랬다.
상냥한 레이 쨩이, 요시노를 위해서 상냥한 거짓말을 수도 없이 해 줬던 걸 알고 있다. 그 때 요시노는 부루퉁해지거나, 화내거나, 말도 안되는 소리를 말해서 레이 쨩을 곤란하게 만들었었지만.
뭐어, 그런 이유로.
“……무슨 일 있었어, 레이 쨩?”
“무, 무슨 일이라니, 뭐가?”
여기는 요시노의 방.
수험공부중인 레이 쨩을 억지로 불러내서 심문중이라는 거다. 레이 쨩은 새치름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조그만 동요가 엿보인다.
“시치미떼도 안돼. 유키 군 일이지?”
넘겨짚어 봤는데, 제대로 맞았던 것 처럼 레이 쨩의 표정이 굳는다. 뭐어, 요즘 둘 사이에서 뜨거운 문제라고 하면 이 정도밖에 없지만.
“아니, 그…….”
“레이 쨩. 저번에 이야기했던 걸 잊은 건 아니지? 그야, 싫다면 억지로 말하라고까진 하지 않겠지만……요시노는 별로 무슨 소리를 들어도 화 안 낼거야.”
저번이라는 건, 릴리안 학원축제에서 유키 군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 뒤에, 레이 쨩과 둘이서 밤새 이야기한 날.
여러가지 것들을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뭐든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아직 서로 잘 모르는게 잔뜩 있었고.
“유키 군과, 뭔가 있었니?”
“뭔가 있었다고 할까……이젠 왠지, 나 잘 모르게 되어 버려서.”
이마를 누르는 레이 쨩.
그리고 천천히 꺼낸 이야기는, 까놓고 말해서 두서가 없고 영문을 알 수 없는데다 뭘 말하고 싶은지조차 불명이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전해져 오는 게 있었고.
“그랬구나. 레이 쨩은, 역시 유키 군을 좋아하는 거네.”
신기하게도, 정말 자연스럽게 그런 말이 나왔다. 좀더 놀라거나 당황하거나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요시노는 그 사실을 곧게 받아들였다.
“그런……걸까.”
“그런 거야.”
“나 스스로도 모르겠어. 이런 거, 처음이니까.”
“틀림 없다니까. 내가 말하는 거니까.”
“나도 모르는데, 요시노는 알 수 있는 거구나.”
“알고말고. 그도 그럴게, 레이 쨩 일인걸.”
자신에 대해서는 모르더라도, 상대에 대해서라면 알 수 있다. 요시노랑 레이 쨩의 사이에선 그런 일들도 잔뜩 있다. 오히려 자신에 대한 일이 아니니만큼 더욱 잘 알 수 있다.
“레이 쨩, 사랑하는 소녀의 표정 짓고있어.”
“그, 그만둬.”
얼굴을 붉히며 뺨을 누르는 레이 쨩은, 평소의 늠름한 레이 쨩과 다르게 확실히 귀여웠다. 이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건 분명히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일게 틀림없다.
“그래도……요시노는 그걸로 괜찮아?”
약간 진정된 뒤에, 레이 쨩이 물어봤다.
괜찮아? 라는 건 물론 유키 군 이야기겠지.
“요시노도……유키 군을 좋아하지 않아?”
“음―, 어째설까. 나도 모르겠어.”
좋아하냐 싫냐를 물으면, 좋아하는 쪽에 들어가겠지. 하지만 그게 연애감정인지 어떤지는 역시 모르겠다. 레이 쨩과 마찬가지로, 지금까지 그런 경험이 없으니까.
“그래도, 혹시나 나도 유키 군을 좋아한다면, 레이 쨩은 어떻게 할거야?”
그게 제일 걱정되는 사태. 사랑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아무리 사이가 좋았던 두 사람이라도, 같은 사람을 좋아하게 된 순간에 관계가 험악해진다거나 싸우고 헤어진다거나 하는 일은 책이나 잡지에서 자주 보이는 일이다. 설령 요시노와 레이 쨩 두 사람이라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곤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러면……그렇네, 물론 지지 않을 거야. 설령 요시노가 상대라도.”
“그렇구나. 나도 마찬가지야. 레이 쨩에게는 지지 않을 테니까.”
맹세한 거다.
정정당당하게 사랑의 승부를 펼치자고. 어떤 결말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싸우자고. 그 정도로 망가질 만큼 두 사람의 연이 약하지 않다는 강한 확신과 신뢰를 안고 있기에, 더더욱 싸우자고.
하지만, 그 전에.
“……나도 자신의 마음을 몰라서야.”
싸우기 이전의 문제다.
가을에 유키 군에게 느꼈던 두근거림은, 과연 진짜였는지 어땠는지.
“꾸물꾸물 거리고 있으면 내가 바로 낚아챌 거다?”
“겁쟁이 레이 쨩이 그럴 수 있을 리 없잖아.”
“아, 그러기야?”
웃는 얼굴로 주먹을 맞댄다.
그래, 우선은 자신의 마음을―――
그리고 요시노는 지금 다시, 하나데라 학원에서 잠복을 감행하고 있다.
이번은 정문의 바로 앞에서 기다리는 듯한 짓은 하지 않는다. 저번에 유키 군이 나올 때까지 굉장히 기묘한 시선을 받았으니까, 그걸 피하려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모습을 살핀다.
교문에서는 검은 남학생들이 줄줄 튀어나온다. 왠지 다들 비슷비슷한 차림이라서 모두 똑같이 보인다고 느꼈지만, 혹시나 역으로 릴리안의 학생도 그런 식으로 보이고 있는 거려나.
“……그보다, 후딱 나오라고.”
홀로 불만을 흘린다.
원래 기다리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 거다.
초조하게 조바심 나는 시간이 흘러가길 십수분.
“……뭐 하고 있는 거야, 요시노 양?”
“우와앗?!”
뒤돌아보자 녀석이 있었다.
거기에는 눈을 크게 뜬 유키 군이 서 있었고. 요시노는 깜짝 놀라서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며, 입을 빼쭉인다.
“가, 갑자기 뒤에서 놀래지 마……그보다, 어느새? 정문에서 나온 거 아니야?”
“아아, 좀 볼일이 있어서 뒷문에서 돌아왔어.”
“아, 그래.”
말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킨다.
그래, 진정해라. 나는 뭘 하려고 이 추위 속에서 일부러 하나데라까지 온 거냐. 냉정하게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일단, 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춥기에 나란히 걸어나간다. 유키 군은 요시노가 뭘 하러 왔는지 신경 쓰이는 것 같지만, 가르칠 수 있겠냐, 그런 거.
슬쩍 옆을 걷는 유키 군에게 눈을 향해 보자,
딱 같은타이밍에 요시노의 얼굴에 눈길을 향한 유키 군과 눈이 마주쳐, 그 눈동자에 무심코 가슴이 철렁거려, 그걸 피하려는 듯 고개를 앞으로 돌린다.
‘아―, 뭐야 이거. 왜 빨개지는 거야! 이래선, 내가 의식하고 있는 게 대놓고 보이잖아……!’
속으로 한마디 불만을 토한다.
하지만 이래 보고 깨달은 건 역시 자신이 유키 군을 약간 의식하고 있다는 것.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호의는 확실히 가지고 있다.
특별히 잘 생겼다는 것도 아니지만, 귀여운 생김새에 유미 양과 비슷한 부드러운 표정. 약간 우유부단해 보이지만, 상냥하고 의지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있으면 어깨가 가볍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있을 수 있는 건, 유키 군에게서 풍기는 분위기 때문인 걸까.
하지만 그런 걸 얼굴을 마주보고 말할 수 있을리도 없다. 요시노는 입을 오므리고, 자국눈처럼 숨을 내쉰다.
“여기선 추우니까, 일단 어디 들어갈까?”
당연한 듯이 말한다. 릴리안에서는 귀갓길에 다른데 들리는 게 금지되어 있지만, 하나데라는 다른 걸까. 역시나 남고생에게 굳이 그런 교칙은 만들지 않는 거겠지.
일단 다른 학생의 눈을 고려해서, 역 앞에서 좀 떨어진 패스트 푸드점에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두 사람과 나잇대가 비슷한 남녀 그룹도 잔뜩 있어서, 눈에 띌건 없다.
각자가 산 음료수와 포테이토를 가볍게 집은 참에,
“그래서, 그, 오늘운 무슨 일이야?”
라며 유키 군이 물어왔다.
곤란한데. 당연한 질문이긴 하지만, 딱히 설명할 수 있을만한 이유가 없다. 별로 깊게 고민하지 않고 돌격했으니까 만난 뒤의 전개도 예상하지 못하고, 가기만 하면 될대로 되겠지 하는 마음이었던 거다. 애초에 고민할 정도라면 행동해 버리자는 성격이니까.
어떡할까. 뭔가 좋은 이유는 없는지 천연스레 가게 안에 눈길을 돌려 봤을 때, 딱 눈에 들어온 게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뭐 하면서 보내?”
“크리스마스? 딱히 별 것도 없는데. 요시노 양은?”
“나는 이브날에 산백합회 애들과 파티가 있는데.”
“헤에, 즐겁겠네.”
“응, 수제 케이크를 먹으면서 게임도 하고. 즐거워.”
“크리스마스 파틴가. 역시 우리 임원끼리만 해봐야 꽃도 없고~.”
“아―, 겨울인데 후텁지근할 것 같네.”
“뭐어.”
이제 크리스마스도 가깝다. 가게 안에는 크리스마스 페어나 특제 팩등을 홍보하는 포스터같은 게 더덕더덕 붙어있고, 쟁반 위에도 광고지가 놓여있다.
“맞아, 유키 군. 별로 용무가 없다면, 어디 놀러갈래?”
“에, 그래도 파티가 있지 않아?”
“이브는. 크리스마스 당일은 비어있어.”
“음―.”
“그래, 역 앞에 6시까지 집합이라는 건 어때?”
“그건, 단둘이서, 라는 거야?”
“물론…….”
까지 말했을 때, 자신이 터무니없는 소리를 선뜻 입에 담았다는 걸 이해했다.
단둘이서 놀러간다는 건 거의 데이트고, 게다가 크리스마스 날이라니, 애인사이 같지 않은가. 그렇지 않더라도,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뒤늦게 말을 바꿔도 부자연스럽고, 뭔가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요시노는 계속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기로 했다.
“벼벼, 별로, 트,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니까!”
대놓고 부자연스러웠다.
“아니, 그…….”
유키 군도 약간 얼굴을 붉히고, 손가락으로 뺨을 긁거나 하고 있다. 덧붙여서 요시노 자신도 약간 빨개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끝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며, 오기로 버틴다.
“마침 먹고싶은 케이크 세트가 있어서. 크리스마스까지 한정인데, 굉장히 맛있어 보여.”
“헤, 헤에.”
“그래서 그런 건데, 어때? 아까도 말했지만, 6시에 역앞에서.”
왠지 처음의 목적과 취지가 달라져 버렸지만, 별 상관 없지.
크리스마스에 데이트라니, 제법 로맨틱하잖아. 레이 쨩이라면 기뻐할 듯한 시추에이션이다.
“그랬었지, 에에…….”
유키 군은 부끄러움에 체온이 오른 건지, 아니면 단순히 가게 안이 더운 건지, 셔츠 버튼을 하나 풀고 손부채질을 했다.
“―――어라, 유키 군. 뭐 묻었어.”
“에?”
슬쩍 보인 붉은 자국.
고개를 기울이는 유키 군에게, 가볍게 몸을 내밀며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인다.
“봐, 여기. 목 좀 아래에.”
“아니, 그건 아니야. 그건 에리코 씨에게―――.”
거기서 입을 딱 다물었지만, 요시노가 그걸 흘려들을 리 없다.
“에리코 님이……?”
“아니아니, 아, 이건 그, 이상한 벌레에라도 물린 것 같아서.”
확실히 거짓말을 하는 걸로만 보이는 동요. 이런 추운 겨울에, 어떤 벌레한테 물렸다는 걸까.
에리코 님. 목덜미의 붉은 자국. 동요하는 유키 군.
어지럽게 뛰돌던 생각이 어느 가설에 도착한다. 설마라곤 생각하면서도, 그 결론을 부정할 수 없다.
“키스 마크……?”
입에서 그만 튀어나온 말.
“아냐! 이건 에리코 씨에게 억지로……아니, 그, 그런게 아니라!”
고개를 옆으로 돌리지만, 완전히 자폭하고 있다.
그렇구나, 그건 에리코 님이 남긴 키스마큰가……잠깐, 뭐, 뭘 하고 있는 거야, 그 여자는?!
아니, 그보다.
“불결해, 그, 그런 짓을 하고 있다니, 추잡해!”
요시노 자신도 동요하고 있었다. 키스마크라는 건 뭐야. 에리코 님과 유키 군이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고 할까 오히려 그 이상이라고 할까. 나, 나, 나, 남자랑 여자의 관계가 되기라도 했다는 걸까.
상상만으로 머리에 열이 올라, 분노로 머리에 피가 솟구친다.
“아냐, 이, 이건 에리코 님이 장난으로.”
“시끄러, 다물어, 이 변태!”
“으아, 요시노 양, 잠깐.”
소란을 떨기 시작하는 요시노를 멈추려고 하지만, 멈출 리도 없고.
“유키 군, 바보――――――――――――!!!!!”
주위의 이야기가 딱 멈춘다. 호기심 섞인, 경탄하는, 당황하는 눈길이 향해오는 걸 느꼈지만, 그런 건 알 것 없다.
유키 군의 뺨을 손바닥으로 때리고, 요시노는 거친 발소리를 내며 가게를 뛰쳐나갔다.
밖에 나가자 밤의 장막이 완전히 내려와, 주위는 어둠에 감싸여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