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 에피소드에서 묘사가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하려고 썼는데, 반대로 떡밥이 추가된 것 같은 편.
【오니들의 연회】
「이게 제일 처음 먹은 일격. 아직도 흉터가 사라지지 않고 있어.
방심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고. 그거. 뭐에 맞은 거지? 어쨌든 뼛속까지 울릴 정도였지.」
「오옷」
「그리고……여기가 무릎에 찍힌 상처다.
부서진 이빨이 아직도 낫지 않았어. 관절기 같았다만, 엄청난 위력이었지. 팔을 잡히자마자, 무릎이 호랑이가 물어뜯는 것처럼 덮쳐서 말이지. 오른 어깨도 부러졌고, 최근에서야 간신히 잔을 들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고.」
「괴, 굉장해—」
「그리고, 마지막이 이 녀석이지! 보라고, 이 가슴의 상처를. 당했을 때는 등까지 뚫려버렸다고.
아니, 그 때는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게다가, 내 오의를 정면으로 막아서, 그대로 당해버렸지. 이렇게 된 이상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잖아?」
「부러워—……부러워엇—!」
옛 지옥. 건축용 목재로 둘러싸인 공사 중인 건물의 옆에서, 오니가 둘이서 술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웃통을 제끼며 몸에 새겨진 생생한 흉터를 과시하며 자랑하듯 말하는 자는 호시구마 유우기.
그 흉터를 보며, 눈을 반짝거리며 뚫어질 듯 보고 있는 자는 또 다른 오니, 이부키 스이카였다.
「그리고, 이미 나아버렸다만 몸이 멍투성이가 됐었지.
어찌됐건 엉망진창으로 얻어맞은 데다, 그게 무지막지하게 아파서. 어느 쪽이 오니인건지 진지하게 궁금했다고, 정말이지.」
유우기는 자신이 선대무녀와 싸웠을 때의 일을, 스이카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입에서 내뱉는 말과는 반대로, 그 얼굴은 희색만면이었다.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도, 그 목소리는 마치 자랑하는 것처럼 호쾌했다.
그리고, 그것을 듣고 있던 스이카도 눈을 반짝이며 두근두근하고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내가 없을 때 그런 인간이 지저에 왔었다니……젠장, 심심풀이러 나가지 말걸!」
「듣자니, 천계까지 안개가 돼서 올라갔다고 했었지?
지상과의 조약을 무시하면서까지, 자극이 필요해서 갔을 텐데. 뭔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었어?」
「전혀! 죽을 만큼 시시한 장소인데다, 천인인지 뭔지도 죽을 만큼 시시한 녀석들이었어.」
그렇다곤 해도, 게으름만 피고 있던 주제에 어째서 너만 그렇게 재밌는 일을 겪었던 거야─! 라며 스이카는 술을 들이켰다.
지상에 품었던 기대가 허탕으로 끝나고, 실망해서 돌아왔더니 뭔가 재밌을 것 같았던 축제는 이미 끝나있었다.
불합리함을 한탄하는 것도 당연했다.
반나절 전쯤─오니의 보금자리인 지저로 돌아온 스이카는, 너덜너덜한 유우기가 똑같이 너덜너덜한 옛 지옥의 수리를 거드는 것을 보고는, 호기심을 품었다.
애초에 강력한 요괴인 오니가 중상을 입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사태다.
무슨 일이 있었다.
그것도, 특대의 사건이.
그렇게 확신한 스이카는, 유우기의 심부름을 도우며 지저에서 일어난 오니와 인간의 전대미문의 사투를 들은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거짓말처럼 재밌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하다니, 치사해─」
「거짓말이 아냐」
「오니니까 그 정도는 안다고. 그래서 쓸데없이 더 화나지만 말이지!
아아, 나도 그 인간과 싸워보고 싶다. 적어도, 어떤 녀석인지 한번 보고 싶었다고─!」
어린 외모에 어울리는 생떼를 부리며, 그것을 술과 함께 삼킨다.
한편, 유우기는 그 승부를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채워지는 더 없이 행복한 감정과 스이카의 반응을 보며 느껴지는 우월감을 즐기며, 우아하게 잔을 기울였다.
「쳇, 몸도 아직 엉망진창인 주제에 그렇게 맛있는 것처럼 마시다니……」
「아니, 실로 맛있다고. 이 쓰라린 고통도, 그 승부에서 얻은 거니. 약간이지만 아쉬움을 즐길 수 있어. 안주로는 최고야.」
「이쪽은 홧술이네요!」
스이카는 완전히 삐친 것같이 보였지만, 호기심은 참을 수 없는 듯, 유우기가 뒷이야기를 말하도록 끈질기게 졸랐다.
「──그래서, 그 인간은 어떤 녀석이었어?」
「여자. 젊어 보였지만, 딸이 있다고 했어. 그쪽은 지상에서 무녀를 하고 있고, 본인은 선대라고 하더군.
오니처럼 강한 주제에,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 있지. 하지만, 표정이 멋진 녀석이었다. 무인 특유의 날카로움이 있었어.
키는 여자 치고는 크고, 단련된 몸에 어울리는 체격이었어. 길고 윤기 있는 흑발이 아름다웠지. 단련의 흔적이 새겨진, 상처투성이의 양팔. 과묵하지만, 그 대신 의지가 확실히 담긴 주먹……」
거하게 취한 채, 유우기는 마치 애태우듯이 그 무녀에 대해 요염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오니가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감정을 깊게 담고 말하는 일은 오랫동안 없었다.
옛날은 동료인 오니가 만만치 않은 인간에게 도전받았을 때, 혹은 그런 인간에게 토벌당했을 때, 기쁨과 슬픔을 서로 나누기 위해 연회 중에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정말로, 먼 옛날 이야기다.
그래서, 유우기가 그 싸움 속에서 느낀 많은 것들을 조금이라도 공감해 보기위해. 스이카도 눈을 감고 속으로 선대무녀의 모습을 그렸다.
「좋은걸」
스이카는 숙연하게 중얼거렸다.
「그 녀석, 최고야……」
「그건, 멋진 여자야. 독차지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지.」
「그래서, 꽤 성대하게 차여서 이꼴이라는 거구나.」
「정말이지……목을 주겠다는데도 거절당해 버렸으니까 말이지. 이렇게 오래 살아볼 이유까지 선물 받아버렸으니. 만만치 않은 상대야」
「유우기가 이렇게까지 칭찬하는건 드문데.
역시, 한번 직접 만나보고 싶어. 그리고, 실제로 인간의 몸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솜씨를 시험해보고 싶어졌어.」
「너는 오니의「격」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묻는 거다만, 납득할 수 있겠어?」
「아니, 오히려 그래서야.
오니는 강해. 다른 요괴나 인간과는 격이 다르지. 오니에게 있어서 승부라는 건, 상대에게 승리를 양보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논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래선지, 갑자기 흥미가 생겨버렸어. 그 오니를 동등한 위치까지 끌어 내려서, 진검 승부로 몰아넣은 끝에 이겨버린 인간에게 말이지!」
스이카는 조금 전까지 띄우고 있던 순수한 동경과 기쁨으로 풀린 얼굴과는 확연이 틀린 흉포한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부키 스이카가 선대무녀와 만났을 때의 대응이, 이 술잔치와는 완전히 다른 열기로 불타오를 것은 명백했다.
그것이 오니다.
유우기는 스이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오니니, 자신도 입장이 반대라면 분명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 잠깐 지상에 다녀올게」
「하하하, 안 돼.」
재빨리 손을 흔들며 이별의 인사를 하는 스이카의 머리를 유우기가 덥석 잡아챘다.
「이, 이거 놔 이 짜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참을 수 있을까보냐─앗! 나도 그 녀석하고 승부할거야!」
「이이상 지상과의 약조를 어기면, 지저의 체면이 깎인다. 잠깐만 참으라고」
「천계에 갔다 온건 들키지 않았는걸!」
「지상에선 새로운 결투법이 퍼진 것 같더군. 이 지저에서도 퍼지기 시작하고 있어. 적어도, 그걸 배울 때까지 너를 밖으로 내보낼 순 없지.」
「에엣!?그러면 그 인간과 진지한 승부를 할 수 없잖아!」
「꼭 하고 싶다면, 그 녀석하고 친해져서 교섭이라도 할 수 있게 되라고.
어쨌든, 룰도 모르는 너를 지상에 내보내면 분명 쓸데없는 혼란을 일으켜버릴 테고. 그러면 그 무녀에게 면목이 서지 않아. 그러니까 안 돼.」
그 말에, 스이카는 입을 삐죽이며 불만을 삼켰다.
그런 의리는 인간을 상대로 패한 오니로서 그를 존중하는 일종의 약속이다.
패배한 몸인 유우기의 얼굴에 먹칠을 하다니, 같은 오니인 스이카로서는 할 수 없었다.
「……알았어. 그 새로운 결투법을 일단 배울게.
친하게 되기 전에, 오니가 인간과 이해하기 위해선 싸움 이외에 방도가 있을 리 없으니까. 우선은 한번 싸우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아.
규칙을 지킨 결투를 신청해서, 그 녀석과 사이가 좋아진 다음, 다시 진지한 승부를 부탁할게. 이걸로 됐지?
자, 빨리 가르쳐 줘. 시간이 아까워.」
「아, 그리고 또 하나. 그 녀석, 나와 싸워서 중상이야. 인간이니 아직 완치되진 않았을 테지」
「네, 네 녀석……그거까지 계산해서 나한테 이야기한 거지!? 자기 최고의 조건으로 싸우고, 그걸 자랑하다니 치사하잖아!!」
「크하하하핫! 아, 정말로 딴 녀석한테 자랑하고 싶었는데……딱 좋은 타이밍에 돌아왔구나, 너!」
「너, 취하면 성격 나빠지는 거 고치라고 했잖아! 그 꼴이니까 나 말고 술친구가 없지!」
「나도 지금까지 자중하고 있었다고? 단지, 이번엔 정말로 들떠서 말이지. 아─아, 재밌었다고 그 싸움.」
「크읏……! 저, 적어도 그 인간의 이름을 가르쳐 줘!」
「하하하, 이름을 대는 건 결투의 꽃이잖아. 스스로 알아보라고……」
「그. 그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잖아?」
「아니, 거절한다.」
「죽어버려 짜샤아앗──!」
겉모습으로는 배이상 차이가 나는 유우기를 스이카의 분노의 철권이 날려 버렸다.
공사 중이던 건물에 박혀서 다시 붕괴한다.
「아까워서 가르쳐 줄 수 없어. 나도 죽을 각오하고 들었다고, 너도 그렇게 해봐!」
주변에서 들리는 옛 지옥의 거주자들의 비명을 배경음으로, 유우기는 피를 토하며 웃음으로 답했다.
「나도 진지하게 싸워서 묻고 싶다고! 그걸 방해하는 건 너잖아─앗!」
「아아! 그 녀석에게 지켜야할 소중한 의리다. 다친 그 녀석과 그 딸이 있는 지상에 소동의 씨앗을 내보낼 수는 없지.」
「혼자만 재밌게 싸운 주제에, 치사하다고 이 짜샤! 이렇게 된 이상, 널 패고 나서 지상으로 나가주겠어!!」
「좋지, 덤벼! 지금의 나는 절호조다, 해볼 테면 해 보라고!」
「퇴치해주마앗!」
성대한 소리와 충격이 옛 지옥의 중심부터 울려 퍼지며 지저를 흔들었다.
오니의 사천왕끼리의 격돌이 시작된다.
싸움은 옛 지옥의 꽃. 그 말대로, 이 날 한층 더 큰 꽃이 지저에 피었다.
그 후 피해가 더욱 심대해진 마을의 사후 처리에, 사토리가 졸도할 뻔한 것은, 조금 뒤의 이야기──.
◆
【하쿠레이 신사의 인요들】
마리사가 하쿠레이 신사에 간신히 도착해 들어온 현관에는 몇 켤레의 구두가 진열되어 있었다.
안쪽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이건 대모임이네, 하고 쓰게 웃으며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간다.
「호오, 이래서야 영락없이 인외 악마의 주거지 아냐?」
침실의 문을 열어보니, 그다지 넓지도 않은 방 안에 인간과 요괴가 앉아있다.
기가 막힌 얼굴의 레이무와 방구석에서 정좌한 채 대기하고 있는 사쿠야.
메이링은 문지기의 일을 내던지고 온 듯 하다.
아직 해가 떠있을 텐데, 스칼렛 자매가 어색한 듯 어정쩡한 자세로 다다미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이불 속에서 상반신만을 일으키고 있는 선대무녀였다.
「너희들, 모두 병문안하러 온 거야?」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레이무가 쌀쌀맞은 말투로 말을 잇는다.
그 말을 들은 플랑도르가 발끈한 표정으로 답한다.
「틀려, 병문안이야!
아주머님이 큰 부상을 입었다고 들어서, 서둘러서 왔으니까!」
「흡혈귀가 무녀의 문병을 온다니 어떻게 된 거야?」
「선대에겐 빚이 있으니까.
그리고, 집에선 부상을 입었단 걸 알고 두 명이나 소란을 일으켜서 말이지.」
「아하하……그게, 야쿠모 유카리가 직접 전하러 오다니 큰일이라고 생각해서 말이죠.」
레밀리아의 짖궂은 농담에 메이링은 쓴웃음을 지었다.
선대무녀가 중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마을에서도 소문거리지만, 일의 상세까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아는 자도 단편적인 정보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선대에게 주어진 야쿠모 유카리의 부탁이나, 봉쇄된 지저를 대대적으로 숨기기 위해서다.
즉, 홍마관의 당주와 그 여동생을 중심으로 한 그녀들은, 사정도 알지 못한 채 선대의 곁에 모인 것이다.
「덕망이 높다고나 할까……」
부상자인 선대를 걱정하며 옆에 들러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는 플랑도르와, 그 모습을 미소 지으며 지켜보는 언니. 거기에 그 광경을 지켜보는 종자들, 이라.
여러 의미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상황을 바라보며, 마리사는 뺨을 긁적였다.
오른손에 쥔 봉투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마리사도 문병하러 와준거니?」
어딘가 기쁜듯이 보이는 미소를 띄우는 선대를 보며, 마리사는 끄덕였다.
평상시의 무녀복이 아닌, 흰 잠옷과 그 아래에 감겨진 붕대의 탓에 꽤 인상이 바뀌었다.
「네, 저는 레이무에게 들었지만……이 녀석 심하다구요? 장보기 중에 만난 저한테 어머니가 다쳤다고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딱히 퍼트릴만한 일이 아니잖아.」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라고. 생각보다 심한 상처잖아.」
「그래도 꽤 편해졌다.」
「그래도 절대안정. 알겠죠 , 어머니?」
「그래그래」
다짐을 받아내며 자신을 쏘아보는 레이무에게, 선대는 어깨를 움츠리며 끄덕였다.
미소가 지어지는 광경이었지만, 그 안에는 그렇게 다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한 상처였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레이무의 머릿속은 어머니를 향한 걱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머리맡에 있던, 젖은 수건과 물이 들어간 통을 손에 들고는, 레이무는 마리사를 데리고 부엌으로 발을 옮겼다.
「열이라도 있었어?」
「잘 동안 열과 땀이 심해서, 괴로워하고 계셨어. 지금은, 확실히 꽤 나아진 편이야.」
「아직 방심할 순 없다는 건가」
「이 정도로 죽을 사람은 아니지만 말이지.」
레이무는 흥미 없다는 듯 답했지만, 마리사는 그 등을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가 피어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아질 때까지, 그녀는 모친을 걱정해 여태까지 줄곧 간병하고 있었을 것이다.
마을에서 장보는 도중 만났다고는 해도, 그때 서둘러 대화를 끝낸 이유도 지금 알았다.
하쿠레이 레이무라는 소녀에게는, 이런 기특한 면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마리사는 속으로 감동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레밀리아는 케이크를 가져왔는데, 혹시 너도 따로 가져온 거 있어?」
「과일을 약간 가져왔어. 아직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할거라고 생각해서 말이지.」
「그렇구나. 고마워」
둘이서 부엌에 들어서, 그대로 작업을 분담하며 가져 온 사과나 귤의 껍질을 벗겨 접시에 담는다.
「네 어머니, 겨울 동안 여기서 돌볼 예정이야?」
「진료소에선 독신 생활인데다. 주변의 도움에도 한계는 있고, 거기에 눈이라도 내리면 큰일이니까.」
「부상자인 만큼 주의를 기울인다는 거구나. 그 사람한텐 그런 걱정은 필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지만.」
「어머니도 인간인걸. 치료가 끝나있다고는 해도, 그 틈새 요괴가 옮겨온 것을 봤을 때는 아무리 나라도 놀랐다고.」
「……미안. 실수였어.」
「딱히 상관없어.」
마리사의 사죄에, 레이무는 평상시 대로와 변함없이 재미 없게 돌려주었다.
이 녀석의 이런 면이, 친구를 하는데 있어서 고마운 점이다, 라고 마리사는 생각했다.
때로는 차갑고, 몰인정하게도 느껴지는 담담한 반응이 이럴 땐 묘하게 믿음직하게 느껴진다.
레이무에게 맡겨 두면, 그 사람에 대한 일은 괜찮을 것이다.
「거기에, 어머니가 중상을 입었다는게 알려지면, 마을은 여러모로 위험하니까 말이지.」
갑자기 화두에 오른 불온한 화제에, 마리사는 미간을 찡그렸다.
「위험하다니……어째서? 어머님의 목숨을 노리는 녀석들이라도 있는 거야?」
「있어, 그런 녀석들이. 현역시절에 여러모로 미움을 산 것 같아서 말이지」
「마을까지 덮치러 오는 요괴라도 있어?」
「요괴도 그렇지만, 인간도 있어. 어머니에게 옛날에 당한 녀석들. 당연히, 악당뿐이지만」
「어이어이……마을의 수호자를 덮친다니. 그야말로 바보중의 바보구만, 그 녀석들」
「옛날은 요괴의 피해도 많았던 데다가, 지금보다 훨씬 살기 어려워서 마을도 여러모로 불온하고 혼란하고 있었다고 해. 그런 문제를 닥치는 대로 해결해버린 사람이 어머니. 당연히, 존경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원망도 받아버리고 말았어.」
「요괴퇴치의 다음은 사회개혁인가. 대단한걸, 어머님. 어떻게 생각해? 현역 하쿠레이의 무녀님」
「내가 알 바가 아니야」
「아, 그 뭐냐. 피해자나 피의자 양쪽 모두 피해만 입고 끝이라는 건가.」
「뭐 그럴지도」
「아니, 적어도 부정하라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재빨리 준비를 완료한다.
서로가 든 접시위의 과일을, 미리 짜놓은 것도 아닌데 동시에 집어먹고, 담담한 얼굴로 방으로 옮긴다.
「홍마관에는 틈새 요괴가 어머니의 부상을 알린 것 같은데, 의외로 그녀석도 그런 상황을 염려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
「거물 요괴인 흡혈귀가 눌러앉아있으면, 괜한 시비를 걸 인간은 없다는 건가.」
「조금 냉정하게 생각하면 알겠지만, 강력한 요괴와 인연이 있는 선대무녀에게 손 댈 생각을 하는 바보는 인간 중에도 요괴 중에도 그리 없겠지만 말야.」
「그러고 보니, 어머님은 인기녀구나. 주로 강한 요괴한테」
「어제는 어쩌다 알게 됐는지, 호수에 살고 있는 얼음 요정이 문병하러 왔었어. 치르노라는 이름의」
「그거, 네가 이변 때 쓰러뜨린 쓸데없이 강한 요정 아냐?」
「몰라, 기억에 없어」
「기억하라고……」
「뭐, 어쨌든 맨손으로 왔던 그 녀석한테는 얼음을 뜯어내고서 그대로 돌려보냈어.」
「너무하잖냐……일단, 병문안 온 걸 텐데」
「그리고, 카자미 유카라는 요괴도 위문품을 두고 갔어.」
「아앗, 그 녀석이라면 알아. 태양의 밭에 있다는 대요괴. 우와아……그런 녀석하고도 알는 사이였구나, 어머님」
「꽃은 없고 풀만 돋아난 화분이었어.」
「장난하나……상처 나빠진다고」
「그렇지만, 뿌리부분이 약이 되는 약초였지.」
「뭐야 그게─!? 알기 힘들어! 비뚤어졌잖아, 그 녀석. 대체 무슨 관계야.」
마리사는 마치 털어놓듯이 중얼거렸다.
호기심과 함께 탈진감도 주는 이야기다.
어쨌든, 단 한 명의 상처 입은 인간이 이렇게까지 주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 라고 감탄한 것만은 확실했다.
대화를 이어나가던 마리사는 문득 깨달았다.
「대요괴라고 해서 생각난 건데, 야쿠모 유카리는 병문안하러 오지 않았어? 뭔가 사이가 깊어 보였는데」
「응─, 어머니를 옮겨왔을 때는 곧바로 내쫓았고, 그 후로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네.」
「내쫓았다니……홍마관에서 대면했을 때도 생각한 거지만, 너 그 녀석 싫어?」
그 질문에, 레이무는 드물게 노골적인 혐오를 표정으로 드러냈다.
「그런 묘하게 수상한 녀석, 좋아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뭐, 기분 나쁘기는 했지만, 어머님과는 친한 것 같았지만 말이지. 거기다, 함께 레이무를 교육하고 있었다고……」
「마리사. 구역질이 날 것 같으니까 그 이상 말하지 마.」
갑작스럽게 레이무에게서 뿜어지는 진심 가득한 분노를 느끼고, 마리사는 말과 함께 숨을 삼켰다.
아무래도 지뢰를 밟은 것 같다.
단순한 궁합 차이를 뛰어넘는 벽을, 레이무는 그 야쿠모 유카리에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감이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어.」
허공을 노려보는 레이무의 시선 끝에는, 아마 야쿠모 유카리가 비치고 있을 것이다.
「그 요괴와는 생각이 맞을 것 같지 않아. 특히, 어머니와 관련된 것에는.」
레이무는 토해내는 것처럼 단언했다.
◆
【모리치카 린노스케의 추상】
인요와 함께 소란이 사라지고, 밤도 깊어질 무렵. 늦게 하쿠레이 신사를 방문한 것은 한 명의 남자였다.
낮이 익은 얼굴이란 것을 확인한 레이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맞아들인다.
「……린노스케씨, 그 가게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었구나」
「내가 그 가게 안에서 밖에 살 수 없는 생물이라고 생각하기라도 했나?」
「터무니없는 외출기피증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어.」
지당한 지적에, 린노스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환영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는데다, 레이무의 성격은 잘 알고 있다.
익숙한 몸놀림으로 린노스케는 어깨를 움츠렸다.
「병문안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란 건 사과하마. 소란스러운 건 싫어서 말이지.」
「와준 것만으로도, 그게 린노스케씨라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잘 알고 있어.」
「……나는 그렇게까지 몰인정하게 보이나?」
「담박하게는 보여. 자, 들어와. 분명, 어머니도 기다리고 있었을 거야.」
「어떠려나? 그녀도 나와 막상막하로 담박한 여인인데.」
린노스케는 선대무녀와는 오랜 친구다..
현역 시절의 그녀와 현재의 그녀 양쪽 모두를 알고 있으니, 레이무에게 그렇게 대답한다.
그녀가 아직 현역 하쿠레이의 무녀였을 무렵, 린노스케는 친구라기보다는 파트너라는 입장에 있었다.
지금의 레이무가 입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하쿠레이의 무녀복을 만든 것은 린노스케이며, 당시 요괴퇴치로 부상과 의복의 파손이 끊이지 않는 선대를 돌보던 적도 있었다.
오늘도 그때처럼, 넝마가 되버린 무녀복의 대신 새로 만든 물건을 가져왔다.
결코 얕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무녀를 은퇴하고 난 뒤부터는, 만날 이유가 없다는 것만으로 오랫동안 얼굴을 맞대지 않았다.
박정, 담백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두 사람의 성격 탓이다.
물론, 상대가 어찌돼도 좋다던가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옛부터 이어져온 기묘한 신뢰 관계 때문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속담을 그저 순수히 믿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두 명의 성격 탓이었다.
「여어, 병문안하러왔다」
「……린인가. 어서 와라」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오랜만이군. 변함없는걸」
방에 들어온 린노스케는, 선대의 의외라는 표정과 그리운 통칭에 무심코 쓴웃음 지었다.
너무나 거리낌 없는 애칭이지만, 그것을 허락할 정도로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
두 명 사이에 쌓여온 인연을 모르는 레이무는 조금 낙담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 두 명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거 본 적 없네.」
「그랬던가?」
린노스케는 짐을 옆에 두고, 자신도 선대의 옆에 주저앉았다.
두 명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매우 익숙해 보인다.
「너는 레이무에게 옛날 일을 말해주거나 하지 않는 건가.」
「하쿠레이의 무녀였을 무렵에 신세를 진 것은 이야기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 아이에게도 너를 의지하라고 말해뒀다.」
「레이무가 향림당-집-에 오게 된 이유는 그 때문인가……」
「신세를 지고 있는 것 같다만?」
「너, 레이무의 평소 행실을 알고 말하는 건가?」
「착한아이 아닌가.」
「너의 딸이야. 분명」
두 명의 대화를 들으며, 레이무는 어쩐지 근질거리는 듯한, 위화감과 자연스러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형용키 어려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자신이 존경심을 내보이는 상대라는 점으로 볼 때 두 명은 공통점이 있다.
그런 두 명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아이취급하고 있다는 것은, 당사자 본인으로서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거기에, 어머니가 남자와 친하게 대화하고 있는 상황이 어째선지 초조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런 관계에 이르기까지의 경위가 레이무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 또한, 그 초조함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애초에「린」이라거나 타인을 별명으로 부르는 건 처음 봤다.
도대체, 어머니는 무슨 생각으로 그를 그런 호칭으로 부르며, 거기에 어떤 뜻을 품고 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주체할 수가 없다.
두 명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 묘하게 있기가 불편했다.
평상시는 항상 냉정한 태도의 레이무였지만, 그것은 부친을 모르는 소녀이기 때문에 더욱 앓을 수밖에 없는 고뇌였다.
「레이무, 잠깐 자리를 비켜 주지 않겠니?」
그런 레이무의 마음을 간파한 듯, 선대가 말한다.
린노스케가 짐 속에서 진료기구를 꺼내고 있었다.
「……린노스케씨는, 의사였어?」
「아니, 단순한 고물상의 점주다.
단지, 집에서 취급하고 있는 결계 밖에서 오는 물건 중엔 의료에 관련된 물건도 있어서. 낡은 의학서를 읽을 때 자연스레 그런 지식을 몸에 익혔다」
「내가 현역으로 뛸 무렵엔, 그 지식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지.」
기습적으로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자, 레이무는 몹시 놀랐다.
그 시절에는 요괴 퇴치 중에 죽을 뻔한 위기도 많았다고 들었다.
그렇게 다친 어머니를 구해주던 생명의 은인이, 실은 린노스케였던 것이다.
신세를 졌다고는 들었지만, 그렇게까지 깊게 관련 됐었다는 것을 아니 감사함보다 경악이 앞선다.
「그거 말이다만, 어째서 넌 평범한 의사에게 진찰받지 않는 거냐. 지식만 있는 아마추어라고, 나는」
「하지만, 이미 익숙해졌지?」
「덕분에 말이지.」
멍하니 서있는 레이무를 신경에 두지도 않은 채, 선대는 린노스케의 앞에서 극히 자연스럽게 잠옷을 벗었다.
「잠깐……, 어머니!?」
「어? 아, 옆에서 보고 있어도 딱히 재미있지도 않을 거다.」
「몸을 차게 할 테니, 따뜻한 차라도 준비해 주겠나? 하는 김에 내 몫도 있으면 고맙겠는데.」
지금, 이 장소에서 동요하고 있는 것은 레이무 뿐이었다.
린노스케는 선대의 맨살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선대는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해 받아들이고 있다.
완전히 나만 빠져 있네, 라고 레이무는 실감했다.
지쳐서 한숨이 새나온다.
「……린노스케씨. 어머니에게 이상한 짓이라도 하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 관계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면, 벌써 옛날에 되어 있을 거다.」
담담하게 대답하는 린노스케에게, 오히려 레이무 자신이 자신의 말에 수치심을 느끼고 뺨을 붉게 한다.
두 명의 시선에서 도망치듯이 방을 나선다.
남겨진 린노스케와 선대는, 그대로 아무런 변화도 없이 담담히 진찰하는 사람과 진찰받는 사람이 주고받을 만한 사무적인 대화만을 나눴다.
몸에 새겨진, 새로운 상처와 그 치료 자국을 진찰해 나간다.
「다친 이유는, 역시 전투인가? 네게 이렇게까지 깊은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상대가, 아직 있었다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말이지.」
「오니다」
「오니? 옛날이야기 속에서 밖에 나오지 않는 요괴일텐데.」
「그래. 실재하더군.」
선대는 시원스럽게 진실을 말했다.
두 명에게는 그런 비밀사항을 이야기해도 용서될 수 있을 정도의 관계가 있었다.
린노스케는 꾸짖는다기 보다 기가 막히다는 말투로 답했다.
「터무니없는 일을 벌였군. 그런 점도, 옛날과 변함없는걸.」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래, 그러니까 변함없다고 한 거다. 현역을 물러난 몸으로, 점점 문제에 휘말리다니.」
「……옛날부터, 그랬던가?」
「자각하지 못했나?」
「……」
「너는, 뭔가 항상 소란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걸.」
이런 대화를, 옛날에도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린노스케는 그리움과 동시에 애수도 느끼고 있었다.
인간이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은, 늙었을 때뿐이다.
린노스케는 인간과 요괴의 하프이며, 인간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긴 수명을 가지고 있다.항상 젊으면서도, 항상 늙은 몸이다.
선대무녀에게 있어서, 자신의 현역시절의 기억은 이미 먼 과거의 것이 되어 머리의 한 구석에 박혀 있을 것이다.
레이무라는 딸을 얻고, 싸움에서 물러난 몸이 되어 새로운 생활을 얻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계속 변화해가는 세계를 보는 린노스케 쪽이었다.
「──진찰 종료다」
잠깐의 침묵 뒤, 린노스케는 도구를 정리하며 엄숙하게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딱딱함이 있었다.
「상처는 어떤가?」
「꽤 심각하다. 완치는 겨울이 지났을 쯤이 되겠지. 뭐, 네 회복력을 일반인의 범주로는 측정할 수 없겠지만.」
「다리는?」
선대의 구체적인 질문에, 린노스케는 한순간 숨을 삼켰다.
「……역시, 알고 있었나?」
「자신의 몸이다. 잘 알고 있어」
그래서, 네 진단은 어때? 라고 선대는 린노스케의 동요를 무시하는 듯 물었다.
이래서야 어느 쪽이 충격을 먹었는지 모르겠는걸, 이라며 조금 기가 막히면서도, 결의를 굳히고 또박또박 말했다.
「이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요로 뒤덮인 방안에서, 그 한마디가 몸속으로 스며들듯 울려 퍼졌다.
「허리까지라면 양호하다만, 무릎이나 발목을 전혀 움직일 수 없을 거다. 아마, 상처가 나아도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팡이 같은 물건의 보조를 받아 균형을 잡고, 허리나 골반을 잘만 움직인다면, 걷는 정도는 가능하다.
하지만, 자력으로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이상 일어서는 것조차 어렵고, 격렬한 운동이나 싸우는 것은 불가능할 테지.
치료는, 적어도 내게는 무리다. 그야말로, 신들린 명의라도 오지 않는 이상 희망은 없어」
린노스케는 그저 담담하게 설명했다.
주저나 동정은 사이에 두지 않는다.
그런 감정과는 연관이 없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긴 친교를 맺어온 눈앞의 인물에게 서투른 걱정 따위가 소용없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 확실히 그것이 증명되고 있다.
자신에게 닥친 비극적인 진실에 대해서, 선대는「그런가」라며 한번 끄덕이고는 모든 감상을 끝마쳤다.
「……고칠 방법이라도 있나?」
「응? 아니, 특별히 없다만」
「너는 정신적으로 강한 건지 아니면 둔한 건지, 어느 쪽인 거냐.」
「뭐냐 갑자기, 무례한 녀석.」
선대는 낙담한 표정이 되버린 린노스케를 가볍게 노려봤다.
그 모습이나 행동에는 평상시에서 별다른 변화가 없다.
이미 거의 확정된 자신의 양다리의 불능을 받아들였음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다.
린노스케가 그런 선대를 보며 하나, 생각하는 것이 있다.
여성이 약한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심신에는 성별은 물론 인간이라는 종조차 초월한 무언가 엄청난 힘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그녀가 가지는 불굴의 정신은 대체 어딘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옛날부터 린노스케가 의문으로 생각해왔으며, 줄곧 감탄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녀가 자신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변화는 없다.
이럴 때 조금이라도 약함을 보이는 덧없음을 가진 여성이었다면, 남자인 자신이 품은 감정도 변했을까, 라는 별 이득 없는 상상이 떠올랐다.
그야말로, 레이무가 말한 것처럼 두 명의 관계가 바뀌는 분기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선대는, 정말로 기막힐 만큼 옛날 그대로였다.
이상한 안심감을 품은 린노스케는, 그 마음을 자각하고는 혼자서 쓴웃음을 띄웠다.
「……정말이지, 왜 혼자 웃고있는거냐?」
「아니, 미안하군. 정말로, 뭐랄까 옛날같이……남자답다고 생각해서 말이지」
불쾌하진 않지만 약간 놀리는 감이 있는 말에, 선대는 생긋 웃으며 답했다.
「칭찬이다」
린노스케는 드물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정말로, 옛날부터 변하지 않는 남자다움이라고 생각했다.
◇
【오늘의 선대】
감기에 걸렸을 때라던가, 괜히 두근두근하지 않아?
엄마한테 극진하게 간호 받는다거나, 학교 쉰다거나, 평소에 먹지 못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다거나 해서.
나는 환자니까 응석을 부려도 돼? 같은 느낌으로 말이지.
그렇지─? 그런 적 있지!
……아니, 수행으로 죽을 뻔 했을 때라던가 딱히 아무도 걱정해 주지 않았지만 말이지, 자업자득이니 당연하다지만. 그런 경험 전혀 없다, 나.
네, 생전의 기억에서 그런 경험이 있는 것 같아서 말해 봤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지!
지금의 나는 다르다.
리얼타임으로 그런 체험을 하고 있다.
지저로부터 옮겨져 벌써 몇 번째 들려보는 유카리의 집에서 긴급치료를 받은 나는, 그 후 하쿠레이 신사에서 간호를 받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달력만 보자면 벌써 겨울이다.
추워지거나 눈이 내리거나 건강한 때라도 여러모로 고생이 많은 겨울을 이런 중상으로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진료소에 방치되면 최악의 경우 동사체로 발견될지도 모르는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유카리는 레이무에게 날 돌봐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었다.
미안함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고마웠다.
어차피 겨울이 되면 진료소도 기본적으로 폐점하니까 걱정은 없다.
나의 치료는 지압이나 마사지에 의한 거니까, 얇게 입거나 알몸으로 진찰한다. 문명의 이기인 난방기구가 충실하지 못한 진료소에서 겨울날 그런 차림을 하기엔, 좀 힘들다.
그래서 집에 아무도 들르지 않는 이 기간 동안, 나는 하쿠레이 신사에서 레이무의 간호를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지만…….
──어머니, 물 마실래요?
──어머니, 몸 닦을게요.
──어머니, 뭔가 원하는 거 있어?
뭐야 이거.
레이무, 너무 과보호 아니니?
역시, 내 딸 무지 착한 아이?
혹시, 천사 아냐?
옮겨진 지 얼마 안됐을 땐 열로 매일 밤 시달리는 중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깨있는 동안 그런 일만 생각하고 있는 나. 너무 여유부리고 있는 거 아닐까.
그렇지만, 정말로 기쁜데다 고마워서 속으로는 텐션이 마구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평상시의 레이무가 쌀쌀맞다니 한 치도 생각했던 적 없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기특한 면이 있었다니 엄마 처음 알았어요.
가능한 자중했지만, 몸을 닦아지거나 밥까지 먹여 지거나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한들 너무 응석부려 버렸다.
그렇지만, 정말로 무지 기쁘다.
게다가, 모두들 병문안도 와 주었다.
뭐랄까, 밖은 추운데 어째선지 따뜻한 느낌이 든다.
거기에, 밤에는 뜻밖의 인물까지 와 주었다.
「여어, 병문안하러왔다」
린짱이다아─.
덧붙여서 이「린」이라는 발음은「좀 봐줘, 쿠도짱─」같은, 아저씨가 아저씨를 거리낌 없이 부르는 느낌으로.
뭐, 요점은 이 모리치카 린노스케와는 내가 현역이었던 시절 일의 파트너로서 여러모로 도움을 받아온 관계다.
꽤 오래전부터 만나온 지라, 린노스케가 키리사메 만물상에서 근무하며 수행중이던 시절엔 이미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대로 관계는 길게 지속 되서, 서로 묘하게 거리낌 없는 사이가 되었다.
적어도 성별적으로 남자와 여자면서, 조금 너무 쌈박하지 않아? 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듣기도 했었지만, 우리들의 거리감은 특별히 바꾸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계속 되고 있다.
역시 이것도 전생이 영향을 주고 있는 걸까. 마치 동성친구 같은 감각이다.
아니면「콤비」라는 단어로도 느낌이 꽂힌다.
옛날엔 마을도 지금처럼 치안이 좋지 않았으니까, 사사건건 다양한 사건에 깊이 관여해왔다.
요괴 퇴치만큼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서, 기본적으로 육체파인 나를 대신해 두뇌노동을 한 것이 린노스케였다.
영화의 울퉁불퉁 콤비 같은 느낌이었다─. 그 때는 물론, 내가 몸빵 흑인 역할로 말이지.
그 외에도, 수행이나 요괴 퇴치로 큰 부상을 입었을 때는, 자주 치료를 받았다.
물론 마을에도 의사는 있으며 그들이 훌륭한 기술을 지닌 전문가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맡길 수 있다는 안심감이 달랐다.
린노스케가 지닌 기술이나 지식은 현대의 그것과 비슷해서, 전생의 기억을 가진 내게는 아무래도 그쪽이 더 의지할 수 있다고 느껴버리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볼 때, 나는 신이나 부처보다 과학을 신앙하는 현대인이라고 실감한다.
현역을 은퇴하고 난 뒤로는 그런 도움도 꽤 받지 않았지만, 이번엔 큰 부상을 입어서, 문병할 겸 자연스레 진찰 받는 흐름이 됐다.
그리고, 뭐 대충 예상은 했었지만──.
「이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양다리는 이제 회복 불가능이란다.
열이 식고, 의식이 뚜렷해지니, 자신의 몸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다리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하반신불구 정도는 아니지만, 허벅지부터 그 아래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다가, 감각도 거의 없다.
린노스케의 말대로, 이래서야 상처가 나아도 걷는게 최선이다.
「……고칠 방법이라도 있나?」
「응? 아니, 특별히 없다만」
「너는 정신적으로 강한 건지 아니면 둔한 건지, 어느 쪽인 거냐.」
갑자기 무슨 소리냐, 무례한 녀석인걸. 정말이지.
솔직히 말해, 물론 충격은 받았다.
하루아침에 앉은뱅이가 됐다는데 슬프지 않을 리 없다.
그렇지만, 절망에 빠져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훌쩍훌쩍 대성통곡이라도 할 정도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으니까.
우선 냉정하게 생각해서, 내 신체능력이 저하했다고 한들 지금은 딱히 곤란하지 않다.
지금이 현역시절이라면 일에 지장이 생기므로 꽤 심각한 사건이 되겠지만, 나는 이미 전 무녀. 일도 마을의 진료소 근무뿐이고.
일상생활에 다소 불편함은 생기겠지만, 그것도 역시「다소」로 끝나는 이야기다.
그리고, 고칠 전망이 없다고는 해도 가능성 자체가 없다는 건 아니다.
어쨌든, 이곳은 비상식이 상식으로 통하는 환상향. 슈퍼파워가 나오거나 내가 알아서 뿜어내거나 해서「인체는 대단한걸」같은 느낌으로 나아버릴지도 모른다.
뭐, 사실 조금 너무 희망적인 관측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가능성이 전무 한 것도 아니고. 희망이 있는 것만으로 훨씬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린노스케가 말한「명의」이미지랑 알맞은 캐릭터도 있고..
그렇지만…… 지금은 접점조차 없는데다, 지식으로 밖에 모르니 실제로 어떤 인물인지조차 모른다.
작은 가능성 중의 하나로서, 머리 한쪽 구석에 박아두자.
그리고, 이게 제일 큰 이유다만── 나는, 이런 역경도 이겨낸 인물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나 자신도 그 인물들을 따라서 노력할 수 있다.
그래, 만화속의 캐릭터들은, 다리가 움직이지 않기는커녕, 하반신불수가 되거나 맹인이 되거나 팔이 잘려나가도, 불굴의 마음으로 다시 일어섰다.
나도 그것을 본받아, 강하게 마음먹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거 만들어진 이야기잖아? 라는 당연한 의문도 솟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지저에서 사토리와 이 세계에 대해 대화한 나는, 지식에서는 창작물이라고 인식하고 있던 동방의 세계가 확고한 현실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재차 실감했다.
그래서 떠올렸다.
다른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세계가, 어딘가 다른 세계에서 현존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속의 처참한 상황이나 압도적으로 불리한 궁지를 뛰어넘어온, 내가 존경하는 인물들이, 현존해서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타오른다.
부정적인 생각은 날아가고, 어떤 불리한 상황이라도 질 수 없다는 감정이 솟구친다.
비행기가 그토록 높이 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공기의 저항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이 명언을 말한 캐릭터가 실제로 그것을 직접 증명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중압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평상시대로의 태도로 린노스케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오히려 반대로 타오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움직이지 못하게 된 다리에 연연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더욱 강해지기 위한 수행을 시작하자.
그를 위해선, 역시 새로운 수행은 지저에서 힌트를 잡은「황금의 회전」일까.
그 기술을 사용하는 주인공중 하나도 하반신불구라는 핸디캡을 이고, 더욱더 성장했으니.
일단, 지금은 상처 덕에 제대로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하니 당분간은 얌전히 안정을 취하며 물건을 회전시키는 연습과 바깥의 풍경에서「황금장방형」을 찾아내는 수련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우와, 새로운 수련에 도전해보는 건 오랜만이라 조금 두근두근하다.
중상인데 너무 적극적인 건가? 나.
생명을 건 싸움에서 중상을 입고 아픈 꼴을 당해도, 여러 아이들이나 친구들에게 걱정받고 행복한 기분이 되도, 결국 나라는 인간의 뿌리는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을 실감했다.
에휴, 아무리 나라지만 정말이지 구제불능인걸.
그렇지만, 그게 나니까
끝까지 지켜내 보이겠어, 마지막까지.
──그런데, 위문품들을 확인하고 있자니, 하나 떠오른 것이 있다.
유카가 나와 할 진지한 승부를 무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 위문품도「빨리 상처 치료해서 죽도록 싸워보자」같은 의지가 무지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내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알면, 어떻게 반응하려나?
응……대충 떠올랐어─.
분명 무지 화낸 다음. 문답무용으로 죽이러 올지도.
사실 이 새로운 수행의 성과가, 내 생사에 깊게 관련되어 있는 거 아닐까?
우선 다리의 치료는, 아무리 가능성이 적다해도 할 수 있는 건 전부 시험해봐야 할 것 같다. 응 그렇지 않으면 죽을지도 몰라.
◆
【생자필멸의 이치】
「──그래. 큰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네」
「파췌도 오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까지 그 무녀한테 깊은 감정은 없어.」
「굳이 말하자면, 그 마법사 쪽에 더 마음이 있다는 거야?」
「우문이야」
살짝 노려보는 파츄리의 시선을 받으며, 레밀리아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사쿠야와 소악마. 서로의 종자를 옆에 대동하고, 두 명은 도서관의 한쪽에서 친구사이에 오갈만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가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야. 쓸모없는 녀석까지 따라올 테니까」
「어머나, 그건 저를 말하는 건가요?」
소악마가 기분나쁜 미소를 띄우며 왜 그러냐는 듯 시치미를 뗐다.
「그 성격이 썩어빠진 악마 녀석, 이번엔 선대를 노리고 있는 거야?」
「그래,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작은 아가씨에게 장난을 치고 있었고 말이지.」
「그렇지만 그 선대에게 도움 받아 버렸으니까요. 아가씨에게도 종종 엉망진창으로 당하고 있으니, 이제 작은 아가씨에게는 아무 짓도 안할 거에요」
레밀리아의 날카로운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며, 소악마는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악마라는 괴물의 성격이며 본질이다.
정말이지 골머리를 앓게하는 존재였지만, 파츄리의 보좌로서 유능하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실익과 실해의 균형을 따져서, 이 홍마관에 있어도 괜찮다고 이미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혹은, 소악마 본인이 거기까지 계산해서 행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레밀리아에게 있어 이 소악마라는 존재는 상대하기 꺼림칙한 상대였다.
「그래서, 그 작은 아가씨는 벌써 주무시고 계시는 건가요?」
「……어제는 꽤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으니까. 선대와 만나서, 안심한 것 같아.」
「작은 아가씨는 정말이지, 귀여워지셨어요. 뭐랄까, 흐뭇하다는 느낌이네요. 전이랑은 다른 의미로 매력적이에요」
「아가씨, 역시 이 녀석은 죽여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괜찮으니까, 그 나이프는 집어넣어. 사쿠야」
소악마의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보내진 도발을 받아들이려고 하던 사쿠야를 레밀리아가 말린다.
최근의 소악마는 절호조였다.
물론, 그것은 주변 인요들에게는 나쁜 소식 밖에 되지 않는다.
선대무녀라는 새로운 사냥감에 집념을 불태우는 소악마는, 자신의 일에 한층 더 유능함을 발휘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런 일상 속에 악의를 흩뿌리는 날도 늘어나고 있다.
오랜만에 하는 친구와의 담화였지만, 당분간은 종자 없이 적막하게 하는 편이 좋으려나, 하고 레밀리아는 홍마관의 주인이면서도, 묘하게 위축되고 있었다.
어쨌든 이 분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레밀리아는 티컵 안의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 때, 힘차게 도서관의 문이 열렸다.
「……플랑?」
「언……니……」
잠옷차림의 플랑도르가, 어째선지 울면서 서있었다.
뭔가를 참아내듯, 한쪽 손에는 선대에게 받은 봉제인형을 힘차게 쥔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레밀리아는 당황해서 그런 여동생의 곁으로 달려갔다.
「왜 그러니? 뭔가 무서운 꿈이라도 꿨니?」
「아냐……그게 아니라. 자려고 했는데……그랬는데, 아주머님이……생각나서」
「선대를? 오늘, 병문안 다녀왔잖니. 상처는 심했지만,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단다. 겨울을 넘길 무렵에는 나을 테니까.」
레밀리아는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플랑도르에게 천천히 타이르듯이 말했다.
딱히 거짓말로 위로하려 하는 것은 아니다.
말한 내용은 모두 진실이다.
그러나, 플랑도르는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어……그렇지만, 잘 모르겠어.
그땐, 아주머님과 만나서, 무지 안심할 수 있었는데……혼자가 되니까, 왠지 엄청 슬퍼져서…….모르겠어, 왜 이러는 거야? 언니……!」
플랑도르의 이야기는 정말로 뜬금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레밀리아에겐 여동생이 품은 감정에 공감되는 것이 있었다.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플랑도르가 품고 있는 슬픔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기분을, 레밀리아 자신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렇구나……나는 알 수 있어. 아마, 플랑이 느끼고 있는 불안함을, 나는 알고 있단다」
「어떻게 해야 해? 왠지 무지 슬퍼져서, 눈물이 멈추지 않아. 어떻게 하면, 이걸 멈출 수 있는 거야?」
「그 감정을 억지로 멈출 수는 없단다. 어떻게 할 수도 없어.
사소한 일로,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 뒤엔 매우 슬픈 감정이 들어.
이만 자렴, 플랑. 오늘 밤은 내가 옆에 있어 줄게. 자고, 일어나면, 분명 어째서 슬펐었는지 잊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대답해주며, 레밀리아는 플랑도르를 꼬옥 껴안았다.
자신의 안에서 느껴지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를 덮어 버리듯이, 플랑도르도 언니에게 안겨들었다.
그런 두 명의 모습을 보는 사람중,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사쿠야 뿐이었다.
파츄리는 플랑도르를 슬픔이 깃든 눈동자로 응시하고 소악마는 변함없는 미소로, 그러나 어딘가 미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띄운 시선으로 둘을 바라봤다.
「사쿠야, 오늘 밤은 플랑과 잘게. 침실의 준비는 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 예……」
무심코 대답한 사쿠야를 뒤돌아보지도 않고, 레밀리아는 플랑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서 나갔다.
남겨진 사쿠야는, 역시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파츄리를 보았다.
「작은 아가씨는, 어째서 저러시는 건가요? 아가씨는 뭔가 알고 계시는 듯이 보였습니다만」
「사쿠야씨는 분명 모를 거에요」
「네게 묻지 않았어.」
싹싹한 미소로 대답한 소악마를 노려본다.
파츄리는 두 명을 말리듯이 가볍게 손을 든 채 사쿠야를 응시했다.
「소악마의 말도 어떤 의미 맞아. 너로선 이해하기 어려울 거야.」
「파츄리님까지……」
「어쩔 수 없는 거야. 플랑 본인과, 레밀리아에게 맡겨 두렴.
그리고 오늘은 메이링에게 가지 않는게 좋을 거야. 메이링도 울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건, 작은 아가씨와 같은 이유일까요?」
「분명히」
──그럼, 파츄리님은 어떠신가요?
그렇게 묻는 것은, 사쿠야에겐 불가능했다.
대체, 뭐가 그렇게 슬펐던 걸까?
사쿠야에게는 플랑도르가 눈물 흘리던 이유를, 아무리 고민해도 알 수 없었다.
지금, 이 장소에서 자신만이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반성하고, 어딘지 모르게 종족의 차이라는 벽을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요괴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사람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막간 「지령선대록」
【오니들의 연회】
「이게 제일 처음 먹은 일격. 아직도 흉터가 사라지지 않고 있어.
방심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고. 그거. 뭐에 맞은 거지? 어쨌든 뼛속까지 울릴 정도였지.」
「오옷」
「그리고……여기가 무릎에 찍힌 상처다.
부서진 이빨이 아직도 낫지 않았어. 관절기 같았다만, 엄청난 위력이었지. 팔을 잡히자마자, 무릎이 호랑이가 물어뜯는 것처럼 덮쳐서 말이지. 오른 어깨도 부러졌고, 최근에서야 간신히 잔을 들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고.」
「괴, 굉장해—」
「그리고, 마지막이 이 녀석이지! 보라고, 이 가슴의 상처를. 당했을 때는 등까지 뚫려버렸다고.
아니, 그 때는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게다가, 내 오의를 정면으로 막아서, 그대로 당해버렸지. 이렇게 된 이상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잖아?」
「부러워—……부러워엇—!」
옛 지옥. 건축용 목재로 둘러싸인 공사 중인 건물의 옆에서, 오니가 둘이서 술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웃통을 제끼며 몸에 새겨진 생생한 흉터를 과시하며 자랑하듯 말하는 자는 호시구마 유우기.
그 흉터를 보며, 눈을 반짝거리며 뚫어질 듯 보고 있는 자는 또 다른 오니, 이부키 스이카였다.
「그리고, 이미 나아버렸다만 몸이 멍투성이가 됐었지.
어찌됐건 엉망진창으로 얻어맞은 데다, 그게 무지막지하게 아파서. 어느 쪽이 오니인건지 진지하게 궁금했다고, 정말이지.」
유우기는 자신이 선대무녀와 싸웠을 때의 일을, 스이카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입에서 내뱉는 말과는 반대로, 그 얼굴은 희색만면이었다.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도, 그 목소리는 마치 자랑하는 것처럼 호쾌했다.
그리고, 그것을 듣고 있던 스이카도 눈을 반짝이며 두근두근하고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내가 없을 때 그런 인간이 지저에 왔었다니……젠장, 심심풀이러 나가지 말걸!」
「듣자니, 천계까지 안개가 돼서 올라갔다고 했었지?
지상과의 조약을 무시하면서까지, 자극이 필요해서 갔을 텐데. 뭔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었어?」
「전혀! 죽을 만큼 시시한 장소인데다, 천인인지 뭔지도 죽을 만큼 시시한 녀석들이었어.」
그렇다곤 해도, 게으름만 피고 있던 주제에 어째서 너만 그렇게 재밌는 일을 겪었던 거야─! 라며 스이카는 술을 들이켰다.
지상에 품었던 기대가 허탕으로 끝나고, 실망해서 돌아왔더니 뭔가 재밌을 것 같았던 축제는 이미 끝나있었다.
불합리함을 한탄하는 것도 당연했다.
반나절 전쯤─오니의 보금자리인 지저로 돌아온 스이카는, 너덜너덜한 유우기가 똑같이 너덜너덜한 옛 지옥의 수리를 거드는 것을 보고는, 호기심을 품었다.
애초에 강력한 요괴인 오니가 중상을 입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엄청난 사태다.
무슨 일이 있었다.
그것도, 특대의 사건이.
그렇게 확신한 스이카는, 유우기의 심부름을 도우며 지저에서 일어난 오니와 인간의 전대미문의 사투를 들은 것이다.
「그렇다곤 해도……거짓말처럼 재밌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하다니, 치사해─」
「거짓말이 아냐」
「오니니까 그 정도는 안다고. 그래서 쓸데없이 더 화나지만 말이지!
아아, 나도 그 인간과 싸워보고 싶다. 적어도, 어떤 녀석인지 한번 보고 싶었다고─!」
어린 외모에 어울리는 생떼를 부리며, 그것을 술과 함께 삼킨다.
한편, 유우기는 그 승부를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채워지는 더 없이 행복한 감정과 스이카의 반응을 보며 느껴지는 우월감을 즐기며, 우아하게 잔을 기울였다.
「쳇, 몸도 아직 엉망진창인 주제에 그렇게 맛있는 것처럼 마시다니……」
「아니, 실로 맛있다고. 이 쓰라린 고통도, 그 승부에서 얻은 거니. 약간이지만 아쉬움을 즐길 수 있어. 안주로는 최고야.」
「이쪽은 홧술이네요!」
스이카는 완전히 삐친 것같이 보였지만, 호기심은 참을 수 없는 듯, 유우기가 뒷이야기를 말하도록 끈질기게 졸랐다.
「──그래서, 그 인간은 어떤 녀석이었어?」
「여자. 젊어 보였지만, 딸이 있다고 했어. 그쪽은 지상에서 무녀를 하고 있고, 본인은 선대라고 하더군.
오니처럼 강한 주제에, 예쁘장한 얼굴을 하고 있지. 하지만, 표정이 멋진 녀석이었다. 무인 특유의 날카로움이 있었어.
키는 여자 치고는 크고, 단련된 몸에 어울리는 체격이었어. 길고 윤기 있는 흑발이 아름다웠지. 단련의 흔적이 새겨진, 상처투성이의 양팔. 과묵하지만, 그 대신 의지가 확실히 담긴 주먹……」
거하게 취한 채, 유우기는 마치 애태우듯이 그 무녀에 대해 요염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오니가 인간에게 이렇게까지 감정을 깊게 담고 말하는 일은 오랫동안 없었다.
옛날은 동료인 오니가 만만치 않은 인간에게 도전받았을 때, 혹은 그런 인간에게 토벌당했을 때, 기쁨과 슬픔을 서로 나누기 위해 연회 중에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정말로, 먼 옛날 이야기다.
그래서, 유우기가 그 싸움 속에서 느낀 많은 것들을 조금이라도 공감해 보기위해. 스이카도 눈을 감고 속으로 선대무녀의 모습을 그렸다.
「좋은걸」
스이카는 숙연하게 중얼거렸다.
「그 녀석, 최고야……」
「그건, 멋진 여자야. 독차지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지.」
「그래서, 꽤 성대하게 차여서 이꼴이라는 거구나.」
「정말이지……목을 주겠다는데도 거절당해 버렸으니까 말이지. 이렇게 오래 살아볼 이유까지 선물 받아버렸으니. 만만치 않은 상대야」
「유우기가 이렇게까지 칭찬하는건 드문데.
역시, 한번 직접 만나보고 싶어. 그리고, 실제로 인간의 몸으로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솜씨를 시험해보고 싶어졌어.」
「너는 오니의「격」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묻는 거다만, 납득할 수 있겠어?」
「아니, 오히려 그래서야.
오니는 강해. 다른 요괴나 인간과는 격이 다르지. 오니에게 있어서 승부라는 건, 상대에게 승리를 양보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논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래선지, 갑자기 흥미가 생겨버렸어. 그 오니를 동등한 위치까지 끌어 내려서, 진검 승부로 몰아넣은 끝에 이겨버린 인간에게 말이지!」
스이카는 조금 전까지 띄우고 있던 순수한 동경과 기쁨으로 풀린 얼굴과는 확연이 틀린 흉포한 미소를 지었다.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부키 스이카가 선대무녀와 만났을 때의 대응이, 이 술잔치와는 완전히 다른 열기로 불타오를 것은 명백했다.
그것이 오니다.
유우기는 스이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오니니, 자신도 입장이 반대라면 분명 똑같이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 잠깐 지상에 다녀올게」
「하하하, 안 돼.」
재빨리 손을 흔들며 이별의 인사를 하는 스이카의 머리를 유우기가 덥석 잡아챘다.
「이, 이거 놔 이 짜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참을 수 있을까보냐─앗! 나도 그 녀석하고 승부할거야!」
「이이상 지상과의 약조를 어기면, 지저의 체면이 깎인다. 잠깐만 참으라고」
「천계에 갔다 온건 들키지 않았는걸!」
「지상에선 새로운 결투법이 퍼진 것 같더군. 이 지저에서도 퍼지기 시작하고 있어. 적어도, 그걸 배울 때까지 너를 밖으로 내보낼 순 없지.」
「에엣!?그러면 그 인간과 진지한 승부를 할 수 없잖아!」
「꼭 하고 싶다면, 그 녀석하고 친해져서 교섭이라도 할 수 있게 되라고.
어쨌든, 룰도 모르는 너를 지상에 내보내면 분명 쓸데없는 혼란을 일으켜버릴 테고. 그러면 그 무녀에게 면목이 서지 않아. 그러니까 안 돼.」
그 말에, 스이카는 입을 삐죽이며 불만을 삼켰다.
그런 의리는 인간을 상대로 패한 오니로서 그를 존중하는 일종의 약속이다.
패배한 몸인 유우기의 얼굴에 먹칠을 하다니, 같은 오니인 스이카로서는 할 수 없었다.
「……알았어. 그 새로운 결투법을 일단 배울게.
친하게 되기 전에, 오니가 인간과 이해하기 위해선 싸움 이외에 방도가 있을 리 없으니까. 우선은 한번 싸우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아.
규칙을 지킨 결투를 신청해서, 그 녀석과 사이가 좋아진 다음, 다시 진지한 승부를 부탁할게. 이걸로 됐지?
자, 빨리 가르쳐 줘. 시간이 아까워.」
「아, 그리고 또 하나. 그 녀석, 나와 싸워서 중상이야. 인간이니 아직 완치되진 않았을 테지」
「네, 네 녀석……그거까지 계산해서 나한테 이야기한 거지!? 자기 최고의 조건으로 싸우고, 그걸 자랑하다니 치사하잖아!!」
「크하하하핫! 아, 정말로 딴 녀석한테 자랑하고 싶었는데……딱 좋은 타이밍에 돌아왔구나, 너!」
「너, 취하면 성격 나빠지는 거 고치라고 했잖아! 그 꼴이니까 나 말고 술친구가 없지!」
「나도 지금까지 자중하고 있었다고? 단지, 이번엔 정말로 들떠서 말이지. 아─아, 재밌었다고 그 싸움.」
「크읏……! 저, 적어도 그 인간의 이름을 가르쳐 줘!」
「하하하, 이름을 대는 건 결투의 꽃이잖아. 스스로 알아보라고……」
「그. 그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잖아?」
「아니, 거절한다.」
「죽어버려 짜샤아앗──!」
겉모습으로는 배이상 차이가 나는 유우기를 스이카의 분노의 철권이 날려 버렸다.
공사 중이던 건물에 박혀서 다시 붕괴한다.
「아까워서 가르쳐 줄 수 없어. 나도 죽을 각오하고 들었다고, 너도 그렇게 해봐!」
주변에서 들리는 옛 지옥의 거주자들의 비명을 배경음으로, 유우기는 피를 토하며 웃음으로 답했다.
「나도 진지하게 싸워서 묻고 싶다고! 그걸 방해하는 건 너잖아─앗!」
「아아! 그 녀석에게 지켜야할 소중한 의리다. 다친 그 녀석과 그 딸이 있는 지상에 소동의 씨앗을 내보낼 수는 없지.」
「혼자만 재밌게 싸운 주제에, 치사하다고 이 짜샤! 이렇게 된 이상, 널 패고 나서 지상으로 나가주겠어!!」
「좋지, 덤벼! 지금의 나는 절호조다, 해볼 테면 해 보라고!」
「퇴치해주마앗!」
성대한 소리와 충격이 옛 지옥의 중심부터 울려 퍼지며 지저를 흔들었다.
오니의 사천왕끼리의 격돌이 시작된다.
싸움은 옛 지옥의 꽃. 그 말대로, 이 날 한층 더 큰 꽃이 지저에 피었다.
그 후 피해가 더욱 심대해진 마을의 사후 처리에, 사토리가 졸도할 뻔한 것은, 조금 뒤의 이야기──.
◆
【하쿠레이 신사의 인요들】
마리사가 하쿠레이 신사에 간신히 도착해 들어온 현관에는 몇 켤레의 구두가 진열되어 있었다.
안쪽에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이건 대모임이네, 하고 쓰게 웃으며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간다.
「호오, 이래서야 영락없이 인외 악마의 주거지 아냐?」
침실의 문을 열어보니, 그다지 넓지도 않은 방 안에 인간과 요괴가 앉아있다.
기가 막힌 얼굴의 레이무와 방구석에서 정좌한 채 대기하고 있는 사쿠야.
메이링은 문지기의 일을 내던지고 온 듯 하다.
아직 해가 떠있을 텐데, 스칼렛 자매가 어색한 듯 어정쩡한 자세로 다다미 위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소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이불 속에서 상반신만을 일으키고 있는 선대무녀였다.
「너희들, 모두 병문안하러 온 거야?」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레이무가 쌀쌀맞은 말투로 말을 잇는다.
그 말을 들은 플랑도르가 발끈한 표정으로 답한다.
「틀려, 병문안이야!
아주머님이 큰 부상을 입었다고 들어서, 서둘러서 왔으니까!」
「흡혈귀가 무녀의 문병을 온다니 어떻게 된 거야?」
「선대에겐 빚이 있으니까.
그리고, 집에선 부상을 입었단 걸 알고 두 명이나 소란을 일으켜서 말이지.」
「아하하……그게, 야쿠모 유카리가 직접 전하러 오다니 큰일이라고 생각해서 말이죠.」
레밀리아의 짖궂은 농담에 메이링은 쓴웃음을 지었다.
선대무녀가 중상을 입었다는 사실은 마을에서도 소문거리지만, 일의 상세까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아는 자도 단편적인 정보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선대에게 주어진 야쿠모 유카리의 부탁이나, 봉쇄된 지저를 대대적으로 숨기기 위해서다.
즉, 홍마관의 당주와 그 여동생을 중심으로 한 그녀들은, 사정도 알지 못한 채 선대의 곁에 모인 것이다.
「덕망이 높다고나 할까……」
부상자인 선대를 걱정하며 옆에 들러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는 플랑도르와, 그 모습을 미소 지으며 지켜보는 언니. 거기에 그 광경을 지켜보는 종자들, 이라.
여러 의미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상황을 바라보며, 마리사는 뺨을 긁적였다.
오른손에 쥔 봉투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다.
「마리사도 문병하러 와준거니?」
어딘가 기쁜듯이 보이는 미소를 띄우는 선대를 보며, 마리사는 끄덕였다.
평상시의 무녀복이 아닌, 흰 잠옷과 그 아래에 감겨진 붕대의 탓에 꽤 인상이 바뀌었다.
「네, 저는 레이무에게 들었지만……이 녀석 심하다구요? 장보기 중에 만난 저한테 어머니가 다쳤다고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딱히 퍼트릴만한 일이 아니잖아.」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라고. 생각보다 심한 상처잖아.」
「그래도 꽤 편해졌다.」
「그래도 절대안정. 알겠죠 , 어머니?」
「그래그래」
다짐을 받아내며 자신을 쏘아보는 레이무에게, 선대는 어깨를 움츠리며 끄덕였다.
미소가 지어지는 광경이었지만, 그 안에는 그렇게 다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한 상처였다는 사실이 존재한다.
레이무의 머릿속은 어머니를 향한 걱정으로 가득차 있었다.
머리맡에 있던, 젖은 수건과 물이 들어간 통을 손에 들고는, 레이무는 마리사를 데리고 부엌으로 발을 옮겼다.
「열이라도 있었어?」
「잘 동안 열과 땀이 심해서, 괴로워하고 계셨어. 지금은, 확실히 꽤 나아진 편이야.」
「아직 방심할 순 없다는 건가」
「이 정도로 죽을 사람은 아니지만 말이지.」
레이무는 흥미 없다는 듯 답했지만, 마리사는 그 등을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가 피어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나아질 때까지, 그녀는 모친을 걱정해 여태까지 줄곧 간병하고 있었을 것이다.
마을에서 장보는 도중 만났다고는 해도, 그때 서둘러 대화를 끝낸 이유도 지금 알았다.
하쿠레이 레이무라는 소녀에게는, 이런 기특한 면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마리사는 속으로 감동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레밀리아는 케이크를 가져왔는데, 혹시 너도 따로 가져온 거 있어?」
「과일을 약간 가져왔어. 아직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할거라고 생각해서 말이지.」
「그렇구나. 고마워」
둘이서 부엌에 들어서, 그대로 작업을 분담하며 가져 온 사과나 귤의 껍질을 벗겨 접시에 담는다.
「네 어머니, 겨울 동안 여기서 돌볼 예정이야?」
「진료소에선 독신 생활인데다. 주변의 도움에도 한계는 있고, 거기에 눈이라도 내리면 큰일이니까.」
「부상자인 만큼 주의를 기울인다는 거구나. 그 사람한텐 그런 걱정은 필요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지만.」
「어머니도 인간인걸. 치료가 끝나있다고는 해도, 그 틈새 요괴가 옮겨온 것을 봤을 때는 아무리 나라도 놀랐다고.」
「……미안. 실수였어.」
「딱히 상관없어.」
마리사의 사죄에, 레이무는 평상시 대로와 변함없이 재미 없게 돌려주었다.
이 녀석의 이런 면이, 친구를 하는데 있어서 고마운 점이다, 라고 마리사는 생각했다.
때로는 차갑고, 몰인정하게도 느껴지는 담담한 반응이 이럴 땐 묘하게 믿음직하게 느껴진다.
레이무에게 맡겨 두면, 그 사람에 대한 일은 괜찮을 것이다.
「거기에, 어머니가 중상을 입었다는게 알려지면, 마을은 여러모로 위험하니까 말이지.」
갑자기 화두에 오른 불온한 화제에, 마리사는 미간을 찡그렸다.
「위험하다니……어째서? 어머님의 목숨을 노리는 녀석들이라도 있는 거야?」
「있어, 그런 녀석들이. 현역시절에 여러모로 미움을 산 것 같아서 말이지」
「마을까지 덮치러 오는 요괴라도 있어?」
「요괴도 그렇지만, 인간도 있어. 어머니에게 옛날에 당한 녀석들. 당연히, 악당뿐이지만」
「어이어이……마을의 수호자를 덮친다니. 그야말로 바보중의 바보구만, 그 녀석들」
「옛날은 요괴의 피해도 많았던 데다가, 지금보다 훨씬 살기 어려워서 마을도 여러모로 불온하고 혼란하고 있었다고 해. 그런 문제를 닥치는 대로 해결해버린 사람이 어머니. 당연히, 존경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원망도 받아버리고 말았어.」
「요괴퇴치의 다음은 사회개혁인가. 대단한걸, 어머님. 어떻게 생각해? 현역 하쿠레이의 무녀님」
「내가 알 바가 아니야」
「아, 그 뭐냐. 피해자나 피의자 양쪽 모두 피해만 입고 끝이라는 건가.」
「뭐 그럴지도」
「아니, 적어도 부정하라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재빨리 준비를 완료한다.
서로가 든 접시위의 과일을, 미리 짜놓은 것도 아닌데 동시에 집어먹고, 담담한 얼굴로 방으로 옮긴다.
「홍마관에는 틈새 요괴가 어머니의 부상을 알린 것 같은데, 의외로 그녀석도 그런 상황을 염려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
「거물 요괴인 흡혈귀가 눌러앉아있으면, 괜한 시비를 걸 인간은 없다는 건가.」
「조금 냉정하게 생각하면 알겠지만, 강력한 요괴와 인연이 있는 선대무녀에게 손 댈 생각을 하는 바보는 인간 중에도 요괴 중에도 그리 없겠지만 말야.」
「그러고 보니, 어머님은 인기녀구나. 주로 강한 요괴한테」
「어제는 어쩌다 알게 됐는지, 호수에 살고 있는 얼음 요정이 문병하러 왔었어. 치르노라는 이름의」
「그거, 네가 이변 때 쓰러뜨린 쓸데없이 강한 요정 아냐?」
「몰라, 기억에 없어」
「기억하라고……」
「뭐, 어쨌든 맨손으로 왔던 그 녀석한테는 얼음을 뜯어내고서 그대로 돌려보냈어.」
「너무하잖냐……일단, 병문안 온 걸 텐데」
「그리고, 카자미 유카라는 요괴도 위문품을 두고 갔어.」
「아앗, 그 녀석이라면 알아. 태양의 밭에 있다는 대요괴. 우와아……그런 녀석하고도 알는 사이였구나, 어머님」
「꽃은 없고 풀만 돋아난 화분이었어.」
「장난하나……상처 나빠진다고」
「그렇지만, 뿌리부분이 약이 되는 약초였지.」
「뭐야 그게─!? 알기 힘들어! 비뚤어졌잖아, 그 녀석. 대체 무슨 관계야.」
마리사는 마치 털어놓듯이 중얼거렸다.
호기심과 함께 탈진감도 주는 이야기다.
어쨌든, 단 한 명의 상처 입은 인간이 이렇게까지 주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구나 라고 감탄한 것만은 확실했다.
대화를 이어나가던 마리사는 문득 깨달았다.
「대요괴라고 해서 생각난 건데, 야쿠모 유카리는 병문안하러 오지 않았어? 뭔가 사이가 깊어 보였는데」
「응─, 어머니를 옮겨왔을 때는 곧바로 내쫓았고, 그 후로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네.」
「내쫓았다니……홍마관에서 대면했을 때도 생각한 거지만, 너 그 녀석 싫어?」
그 질문에, 레이무는 드물게 노골적인 혐오를 표정으로 드러냈다.
「그런 묘하게 수상한 녀석, 좋아할 수 있을 리 없잖아.」
「뭐, 기분 나쁘기는 했지만, 어머님과는 친한 것 같았지만 말이지. 거기다, 함께 레이무를 교육하고 있었다고……」
「마리사. 구역질이 날 것 같으니까 그 이상 말하지 마.」
갑작스럽게 레이무에게서 뿜어지는 진심 가득한 분노를 느끼고, 마리사는 말과 함께 숨을 삼켰다.
아무래도 지뢰를 밟은 것 같다.
단순한 궁합 차이를 뛰어넘는 벽을, 레이무는 그 야쿠모 유카리에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감이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어.」
허공을 노려보는 레이무의 시선 끝에는, 아마 야쿠모 유카리가 비치고 있을 것이다.
「그 요괴와는 생각이 맞을 것 같지 않아. 특히, 어머니와 관련된 것에는.」
레이무는 토해내는 것처럼 단언했다.
◆
【모리치카 린노스케의 추상】
인요와 함께 소란이 사라지고, 밤도 깊어질 무렵. 늦게 하쿠레이 신사를 방문한 것은 한 명의 남자였다.
낮이 익은 얼굴이란 것을 확인한 레이무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맞아들인다.
「……린노스케씨, 그 가게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었구나」
「내가 그 가게 안에서 밖에 살 수 없는 생물이라고 생각하기라도 했나?」
「터무니없는 외출기피증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었어.」
지당한 지적에, 린노스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환영 따위는 기대하지 않았는데다, 레이무의 성격은 잘 알고 있다.
익숙한 몸놀림으로 린노스케는 어깨를 움츠렸다.
「병문안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란 건 사과하마. 소란스러운 건 싫어서 말이지.」
「와준 것만으로도, 그게 린노스케씨라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잘 알고 있어.」
「……나는 그렇게까지 몰인정하게 보이나?」
「담박하게는 보여. 자, 들어와. 분명, 어머니도 기다리고 있었을 거야.」
「어떠려나? 그녀도 나와 막상막하로 담박한 여인인데.」
린노스케는 선대무녀와는 오랜 친구다..
현역 시절의 그녀와 현재의 그녀 양쪽 모두를 알고 있으니, 레이무에게 그렇게 대답한다.
그녀가 아직 현역 하쿠레이의 무녀였을 무렵, 린노스케는 친구라기보다는 파트너라는 입장에 있었다.
지금의 레이무가 입고 있는 것도 그렇지만, 하쿠레이의 무녀복을 만든 것은 린노스케이며, 당시 요괴퇴치로 부상과 의복의 파손이 끊이지 않는 선대를 돌보던 적도 있었다.
오늘도 그때처럼, 넝마가 되버린 무녀복의 대신 새로 만든 물건을 가져왔다.
결코 얕은 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무녀를 은퇴하고 난 뒤부터는, 만날 이유가 없다는 것만으로 오랫동안 얼굴을 맞대지 않았다.
박정, 담백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두 사람의 성격 탓이다.
물론, 상대가 어찌돼도 좋다던가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옛부터 이어져온 기묘한 신뢰 관계 때문이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란 속담을 그저 순수히 믿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두 명의 성격 탓이었다.
「여어, 병문안하러왔다」
「……린인가. 어서 와라」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오랜만이군. 변함없는걸」
방에 들어온 린노스케는, 선대의 의외라는 표정과 그리운 통칭에 무심코 쓴웃음 지었다.
너무나 거리낌 없는 애칭이지만, 그것을 허락할 정도로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
두 명 사이에 쌓여온 인연을 모르는 레이무는 조금 낙담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 두 명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거 본 적 없네.」
「그랬던가?」
린노스케는 짐을 옆에 두고, 자신도 선대의 옆에 주저앉았다.
두 명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이 매우 익숙해 보인다.
「너는 레이무에게 옛날 일을 말해주거나 하지 않는 건가.」
「하쿠레이의 무녀였을 무렵에 신세를 진 것은 이야기했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 아이에게도 너를 의지하라고 말해뒀다.」
「레이무가 향림당-집-에 오게 된 이유는 그 때문인가……」
「신세를 지고 있는 것 같다만?」
「너, 레이무의 평소 행실을 알고 말하는 건가?」
「착한아이 아닌가.」
「너의 딸이야. 분명」
두 명의 대화를 들으며, 레이무는 어쩐지 근질거리는 듯한, 위화감과 자연스러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형용키 어려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자신이 존경심을 내보이는 상대라는 점으로 볼 때 두 명은 공통점이 있다.
그런 두 명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아이취급하고 있다는 것은, 당사자 본인으로서는 복잡한 심경이었다.
거기에, 어머니가 남자와 친하게 대화하고 있는 상황이 어째선지 초조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런 관계에 이르기까지의 경위가 레이무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것 또한, 그 초조함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애초에「린」이라거나 타인을 별명으로 부르는 건 처음 봤다.
도대체, 어머니는 무슨 생각으로 그를 그런 호칭으로 부르며, 거기에 어떤 뜻을 품고 있을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주체할 수가 없다.
두 명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 묘하게 있기가 불편했다.
평상시는 항상 냉정한 태도의 레이무였지만, 그것은 부친을 모르는 소녀이기 때문에 더욱 앓을 수밖에 없는 고뇌였다.
「레이무, 잠깐 자리를 비켜 주지 않겠니?」
그런 레이무의 마음을 간파한 듯, 선대가 말한다.
린노스케가 짐 속에서 진료기구를 꺼내고 있었다.
「……린노스케씨는, 의사였어?」
「아니, 단순한 고물상의 점주다.
단지, 집에서 취급하고 있는 결계 밖에서 오는 물건 중엔 의료에 관련된 물건도 있어서. 낡은 의학서를 읽을 때 자연스레 그런 지식을 몸에 익혔다」
「내가 현역으로 뛸 무렵엔, 그 지식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지.」
기습적으로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자, 레이무는 몹시 놀랐다.
그 시절에는 요괴 퇴치 중에 죽을 뻔한 위기도 많았다고 들었다.
그렇게 다친 어머니를 구해주던 생명의 은인이, 실은 린노스케였던 것이다.
신세를 졌다고는 들었지만, 그렇게까지 깊게 관련 됐었다는 것을 아니 감사함보다 경악이 앞선다.
「그거 말이다만, 어째서 넌 평범한 의사에게 진찰받지 않는 거냐. 지식만 있는 아마추어라고, 나는」
「하지만, 이미 익숙해졌지?」
「덕분에 말이지.」
멍하니 서있는 레이무를 신경에 두지도 않은 채, 선대는 린노스케의 앞에서 극히 자연스럽게 잠옷을 벗었다.
「잠깐……, 어머니!?」
「어? 아, 옆에서 보고 있어도 딱히 재미있지도 않을 거다.」
「몸을 차게 할 테니, 따뜻한 차라도 준비해 주겠나? 하는 김에 내 몫도 있으면 고맙겠는데.」
지금, 이 장소에서 동요하고 있는 것은 레이무 뿐이었다.
린노스케는 선대의 맨살을 보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며, 선대는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해 받아들이고 있다.
완전히 나만 빠져 있네, 라고 레이무는 실감했다.
지쳐서 한숨이 새나온다.
「……린노스케씨. 어머니에게 이상한 짓이라도 하면,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그런 관계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면, 벌써 옛날에 되어 있을 거다.」
담담하게 대답하는 린노스케에게, 오히려 레이무 자신이 자신의 말에 수치심을 느끼고 뺨을 붉게 한다.
두 명의 시선에서 도망치듯이 방을 나선다.
남겨진 린노스케와 선대는, 그대로 아무런 변화도 없이 담담히 진찰하는 사람과 진찰받는 사람이 주고받을 만한 사무적인 대화만을 나눴다.
몸에 새겨진, 새로운 상처와 그 치료 자국을 진찰해 나간다.
「다친 이유는, 역시 전투인가? 네게 이렇게까지 깊은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상대가, 아직 있었다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말이지.」
「오니다」
「오니? 옛날이야기 속에서 밖에 나오지 않는 요괴일텐데.」
「그래. 실재하더군.」
선대는 시원스럽게 진실을 말했다.
두 명에게는 그런 비밀사항을 이야기해도 용서될 수 있을 정도의 관계가 있었다.
린노스케는 꾸짖는다기 보다 기가 막히다는 말투로 답했다.
「터무니없는 일을 벌였군. 그런 점도, 옛날과 변함없는걸.」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다」
「그래, 그러니까 변함없다고 한 거다. 현역을 물러난 몸으로, 점점 문제에 휘말리다니.」
「……옛날부터, 그랬던가?」
「자각하지 못했나?」
「……」
「너는, 뭔가 항상 소란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걸.」
이런 대화를, 옛날에도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린노스케는 그리움과 동시에 애수도 느끼고 있었다.
인간이 옛날을 그리워하는 것은, 늙었을 때뿐이다.
린노스케는 인간과 요괴의 하프이며, 인간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긴 수명을 가지고 있다.항상 젊으면서도, 항상 늙은 몸이다.
선대무녀에게 있어서, 자신의 현역시절의 기억은 이미 먼 과거의 것이 되어 머리의 한 구석에 박혀 있을 것이다.
레이무라는 딸을 얻고, 싸움에서 물러난 몸이 되어 새로운 생활을 얻고 있다.
변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계속 변화해가는 세계를 보는 린노스케 쪽이었다.
「──진찰 종료다」
잠깐의 침묵 뒤, 린노스케는 도구를 정리하며 엄숙하게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딱딱함이 있었다.
「상처는 어떤가?」
「꽤 심각하다. 완치는 겨울이 지났을 쯤이 되겠지. 뭐, 네 회복력을 일반인의 범주로는 측정할 수 없겠지만.」
「다리는?」
선대의 구체적인 질문에, 린노스케는 한순간 숨을 삼켰다.
「……역시, 알고 있었나?」
「자신의 몸이다. 잘 알고 있어」
그래서, 네 진단은 어때? 라고 선대는 린노스케의 동요를 무시하는 듯 물었다.
이래서야 어느 쪽이 충격을 먹었는지 모르겠는걸, 이라며 조금 기가 막히면서도, 결의를 굳히고 또박또박 말했다.
「이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요로 뒤덮인 방안에서, 그 한마디가 몸속으로 스며들듯 울려 퍼졌다.
「허리까지라면 양호하다만, 무릎이나 발목을 전혀 움직일 수 없을 거다. 아마, 상처가 나아도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팡이 같은 물건의 보조를 받아 균형을 잡고, 허리나 골반을 잘만 움직인다면, 걷는 정도는 가능하다.
하지만, 자력으로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이상 일어서는 것조차 어렵고, 격렬한 운동이나 싸우는 것은 불가능할 테지.
치료는, 적어도 내게는 무리다. 그야말로, 신들린 명의라도 오지 않는 이상 희망은 없어」
린노스케는 그저 담담하게 설명했다.
주저나 동정은 사이에 두지 않는다.
그런 감정과는 연관이 없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긴 친교를 맺어온 눈앞의 인물에게 서투른 걱정 따위가 소용없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 확실히 그것이 증명되고 있다.
자신에게 닥친 비극적인 진실에 대해서, 선대는「그런가」라며 한번 끄덕이고는 모든 감상을 끝마쳤다.
「……고칠 방법이라도 있나?」
「응? 아니, 특별히 없다만」
「너는 정신적으로 강한 건지 아니면 둔한 건지, 어느 쪽인 거냐.」
「뭐냐 갑자기, 무례한 녀석.」
선대는 낙담한 표정이 되버린 린노스케를 가볍게 노려봤다.
그 모습이나 행동에는 평상시에서 별다른 변화가 없다.
이미 거의 확정된 자신의 양다리의 불능을 받아들였음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다.
린노스케가 그런 선대를 보며 하나, 생각하는 것이 있다.
여성이 약한 존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 심신에는 성별은 물론 인간이라는 종조차 초월한 무언가 엄청난 힘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
그녀가 가지는 불굴의 정신은 대체 어딘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옛날부터 린노스케가 의문으로 생각해왔으며, 줄곧 감탄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녀가 자신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인간이라는 사실에 변화는 없다.
이럴 때 조금이라도 약함을 보이는 덧없음을 가진 여성이었다면, 남자인 자신이 품은 감정도 변했을까, 라는 별 이득 없는 상상이 떠올랐다.
그야말로, 레이무가 말한 것처럼 두 명의 관계가 바뀌는 분기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선대는, 정말로 기막힐 만큼 옛날 그대로였다.
이상한 안심감을 품은 린노스케는, 그 마음을 자각하고는 혼자서 쓴웃음을 띄웠다.
「……정말이지, 왜 혼자 웃고있는거냐?」
「아니, 미안하군. 정말로, 뭐랄까 옛날같이……남자답다고 생각해서 말이지」
불쾌하진 않지만 약간 놀리는 감이 있는 말에, 선대는 생긋 웃으며 답했다.
「칭찬이다」
린노스케는 드물게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정말로, 옛날부터 변하지 않는 남자다움이라고 생각했다.
◇
【오늘의 선대】
감기에 걸렸을 때라던가, 괜히 두근두근하지 않아?
엄마한테 극진하게 간호 받는다거나, 학교 쉰다거나, 평소에 먹지 못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된다거나 해서.
나는 환자니까 응석을 부려도 돼? 같은 느낌으로 말이지.
그렇지─? 그런 적 있지!
……아니, 수행으로 죽을 뻔 했을 때라던가 딱히 아무도 걱정해 주지 않았지만 말이지, 자업자득이니 당연하다지만. 그런 경험 전혀 없다, 나.
네, 생전의 기억에서 그런 경험이 있는 것 같아서 말해 봤을 뿐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지!
지금의 나는 다르다.
리얼타임으로 그런 체험을 하고 있다.
지저로부터 옮겨져 벌써 몇 번째 들려보는 유카리의 집에서 긴급치료를 받은 나는, 그 후 하쿠레이 신사에서 간호를 받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달력만 보자면 벌써 겨울이다.
추워지거나 눈이 내리거나 건강한 때라도 여러모로 고생이 많은 겨울을 이런 중상으로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다.
진료소에 방치되면 최악의 경우 동사체로 발견될지도 모르는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유카리는 레이무에게 날 돌봐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었다.
미안함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나는 고마웠다.
어차피 겨울이 되면 진료소도 기본적으로 폐점하니까 걱정은 없다.
나의 치료는 지압이나 마사지에 의한 거니까, 얇게 입거나 알몸으로 진찰한다. 문명의 이기인 난방기구가 충실하지 못한 진료소에서 겨울날 그런 차림을 하기엔, 좀 힘들다.
그래서 집에 아무도 들르지 않는 이 기간 동안, 나는 하쿠레이 신사에서 레이무의 간호를 받으면서 생활하고 있지만…….
──어머니, 물 마실래요?
──어머니, 몸 닦을게요.
──어머니, 뭔가 원하는 거 있어?
뭐야 이거.
레이무, 너무 과보호 아니니?
역시, 내 딸 무지 착한 아이?
혹시, 천사 아냐?
옮겨진 지 얼마 안됐을 땐 열로 매일 밤 시달리는 중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깨있는 동안 그런 일만 생각하고 있는 나. 너무 여유부리고 있는 거 아닐까.
그렇지만, 정말로 기쁜데다 고마워서 속으로는 텐션이 마구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평상시의 레이무가 쌀쌀맞다니 한 치도 생각했던 적 없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기특한 면이 있었다니 엄마 처음 알았어요.
가능한 자중했지만, 몸을 닦아지거나 밥까지 먹여 지거나 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한들 너무 응석부려 버렸다.
그렇지만, 정말로 무지 기쁘다.
게다가, 모두들 병문안도 와 주었다.
뭐랄까, 밖은 추운데 어째선지 따뜻한 느낌이 든다.
거기에, 밤에는 뜻밖의 인물까지 와 주었다.
「여어, 병문안하러왔다」
린짱이다아─.
덧붙여서 이「린」이라는 발음은「좀 봐줘, 쿠도짱─」같은, 아저씨가 아저씨를 거리낌 없이 부르는 느낌으로.
뭐, 요점은 이 모리치카 린노스케와는 내가 현역이었던 시절 일의 파트너로서 여러모로 도움을 받아온 관계다.
꽤 오래전부터 만나온 지라, 린노스케가 키리사메 만물상에서 근무하며 수행중이던 시절엔 이미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대로 관계는 길게 지속 되서, 서로 묘하게 거리낌 없는 사이가 되었다.
적어도 성별적으로 남자와 여자면서, 조금 너무 쌈박하지 않아? 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듣기도 했었지만, 우리들의 거리감은 특별히 바꾸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계속 되고 있다.
역시 이것도 전생이 영향을 주고 있는 걸까. 마치 동성친구 같은 감각이다.
아니면「콤비」라는 단어로도 느낌이 꽂힌다.
옛날엔 마을도 지금처럼 치안이 좋지 않았으니까, 사사건건 다양한 사건에 깊이 관여해왔다.
요괴 퇴치만큼 단순한 문제는 아니라서, 기본적으로 육체파인 나를 대신해 두뇌노동을 한 것이 린노스케였다.
영화의 울퉁불퉁 콤비 같은 느낌이었다─. 그 때는 물론, 내가 몸빵 흑인 역할로 말이지.
그 외에도, 수행이나 요괴 퇴치로 큰 부상을 입었을 때는, 자주 치료를 받았다.
물론 마을에도 의사는 있으며 그들이 훌륭한 기술을 지닌 전문가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맡길 수 있다는 안심감이 달랐다.
린노스케가 지닌 기술이나 지식은 현대의 그것과 비슷해서, 전생의 기억을 가진 내게는 아무래도 그쪽이 더 의지할 수 있다고 느껴버리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볼 때, 나는 신이나 부처보다 과학을 신앙하는 현대인이라고 실감한다.
현역을 은퇴하고 난 뒤로는 그런 도움도 꽤 받지 않았지만, 이번엔 큰 부상을 입어서, 문병할 겸 자연스레 진찰 받는 흐름이 됐다.
그리고, 뭐 대충 예상은 했었지만──.
「이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양다리는 이제 회복 불가능이란다.
열이 식고, 의식이 뚜렷해지니, 자신의 몸 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다리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하반신불구 정도는 아니지만, 허벅지부터 그 아래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데다가, 감각도 거의 없다.
린노스케의 말대로, 이래서야 상처가 나아도 걷는게 최선이다.
「……고칠 방법이라도 있나?」
「응? 아니, 특별히 없다만」
「너는 정신적으로 강한 건지 아니면 둔한 건지, 어느 쪽인 거냐.」
갑자기 무슨 소리냐, 무례한 녀석인걸. 정말이지.
솔직히 말해, 물론 충격은 받았다.
하루아침에 앉은뱅이가 됐다는데 슬프지 않을 리 없다.
그렇지만, 절망에 빠져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훌쩍훌쩍 대성통곡이라도 할 정도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도 않으니까.
우선 냉정하게 생각해서, 내 신체능력이 저하했다고 한들 지금은 딱히 곤란하지 않다.
지금이 현역시절이라면 일에 지장이 생기므로 꽤 심각한 사건이 되겠지만, 나는 이미 전 무녀. 일도 마을의 진료소 근무뿐이고.
일상생활에 다소 불편함은 생기겠지만, 그것도 역시「다소」로 끝나는 이야기다.
그리고, 고칠 전망이 없다고는 해도 가능성 자체가 없다는 건 아니다.
어쨌든, 이곳은 비상식이 상식으로 통하는 환상향. 슈퍼파워가 나오거나 내가 알아서 뿜어내거나 해서「인체는 대단한걸」같은 느낌으로 나아버릴지도 모른다.
뭐, 사실 조금 너무 희망적인 관측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지만 가능성이 전무 한 것도 아니고. 희망이 있는 것만으로 훨씬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린노스케가 말한「명의」이미지랑 알맞은 캐릭터도 있고..
그렇지만…… 지금은 접점조차 없는데다, 지식으로 밖에 모르니 실제로 어떤 인물인지조차 모른다.
작은 가능성 중의 하나로서, 머리 한쪽 구석에 박아두자.
그리고, 이게 제일 큰 이유다만── 나는, 이런 역경도 이겨낸 인물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러니까, 나 자신도 그 인물들을 따라서 노력할 수 있다.
그래, 만화속의 캐릭터들은, 다리가 움직이지 않기는커녕, 하반신불수가 되거나 맹인이 되거나 팔이 잘려나가도, 불굴의 마음으로 다시 일어섰다.
나도 그것을 본받아, 강하게 마음먹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거 만들어진 이야기잖아? 라는 당연한 의문도 솟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지저에서 사토리와 이 세계에 대해 대화한 나는, 지식에서는 창작물이라고 인식하고 있던 동방의 세계가 확고한 현실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재차 실감했다.
그래서 떠올렸다.
다른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세계가, 어딘가 다른 세계에서 현존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속의 처참한 상황이나 압도적으로 불리한 궁지를 뛰어넘어온, 내가 존경하는 인물들이, 현존해서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타오른다.
부정적인 생각은 날아가고, 어떤 불리한 상황이라도 질 수 없다는 감정이 솟구친다.
비행기가 그토록 높이 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공기의 저항이 있기 때문이다! ……라고, 이 명언을 말한 캐릭터가 실제로 그것을 직접 증명해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중압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평상시대로의 태도로 린노스케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었다.
오히려 반대로 타오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움직이지 못하게 된 다리에 연연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더욱 강해지기 위한 수행을 시작하자.
그를 위해선, 역시 새로운 수행은 지저에서 힌트를 잡은「황금의 회전」일까.
그 기술을 사용하는 주인공중 하나도 하반신불구라는 핸디캡을 이고, 더욱더 성장했으니.
일단, 지금은 상처 덕에 제대로 움직이는 것도 불가능하니 당분간은 얌전히 안정을 취하며 물건을 회전시키는 연습과 바깥의 풍경에서「황금장방형」을 찾아내는 수련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우와, 새로운 수련에 도전해보는 건 오랜만이라 조금 두근두근하다.
중상인데 너무 적극적인 건가? 나.
생명을 건 싸움에서 중상을 입고 아픈 꼴을 당해도, 여러 아이들이나 친구들에게 걱정받고 행복한 기분이 되도, 결국 나라는 인간의 뿌리는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을 실감했다.
에휴, 아무리 나라지만 정말이지 구제불능인걸.
그렇지만, 그게 나니까
끝까지 지켜내 보이겠어, 마지막까지.
──그런데, 위문품들을 확인하고 있자니, 하나 떠오른 것이 있다.
유카가 나와 할 진지한 승부를 무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 위문품도「빨리 상처 치료해서 죽도록 싸워보자」같은 의지가 무지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내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알면, 어떻게 반응하려나?
응……대충 떠올랐어─.
분명 무지 화낸 다음. 문답무용으로 죽이러 올지도.
사실 이 새로운 수행의 성과가, 내 생사에 깊게 관련되어 있는 거 아닐까?
우선 다리의 치료는, 아무리 가능성이 적다해도 할 수 있는 건 전부 시험해봐야 할 것 같다. 응 그렇지 않으면 죽을지도 몰라.
◆
【생자필멸의 이치】
「──그래. 큰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네」
「파췌도 오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까지 그 무녀한테 깊은 감정은 없어.」
「굳이 말하자면, 그 마법사 쪽에 더 마음이 있다는 거야?」
「우문이야」
살짝 노려보는 파츄리의 시선을 받으며, 레밀리아는 즐겁다는 듯 웃었다.
사쿠야와 소악마. 서로의 종자를 옆에 대동하고, 두 명은 도서관의 한쪽에서 친구사이에 오갈만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가지 않는 편이 나았을 거야. 쓸모없는 녀석까지 따라올 테니까」
「어머나, 그건 저를 말하는 건가요?」
소악마가 기분나쁜 미소를 띄우며 왜 그러냐는 듯 시치미를 뗐다.
「그 성격이 썩어빠진 악마 녀석, 이번엔 선대를 노리고 있는 거야?」
「그래,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작은 아가씨에게 장난을 치고 있었고 말이지.」
「그렇지만 그 선대에게 도움 받아 버렸으니까요. 아가씨에게도 종종 엉망진창으로 당하고 있으니, 이제 작은 아가씨에게는 아무 짓도 안할 거에요」
레밀리아의 날카로운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며, 소악마는 능글능글하게 웃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악마라는 괴물의 성격이며 본질이다.
정말이지 골머리를 앓게하는 존재였지만, 파츄리의 보좌로서 유능하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실익과 실해의 균형을 따져서, 이 홍마관에 있어도 괜찮다고 이미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혹은, 소악마 본인이 거기까지 계산해서 행동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레밀리아에게 있어 이 소악마라는 존재는 상대하기 꺼림칙한 상대였다.
「그래서, 그 작은 아가씨는 벌써 주무시고 계시는 건가요?」
「……어제는 꽤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으니까. 선대와 만나서, 안심한 것 같아.」
「작은 아가씨는 정말이지, 귀여워지셨어요. 뭐랄까, 흐뭇하다는 느낌이네요. 전이랑은 다른 의미로 매력적이에요」
「아가씨, 역시 이 녀석은 죽여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괜찮으니까, 그 나이프는 집어넣어. 사쿠야」
소악마의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보내진 도발을 받아들이려고 하던 사쿠야를 레밀리아가 말린다.
최근의 소악마는 절호조였다.
물론, 그것은 주변 인요들에게는 나쁜 소식 밖에 되지 않는다.
선대무녀라는 새로운 사냥감에 집념을 불태우는 소악마는, 자신의 일에 한층 더 유능함을 발휘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런 일상 속에 악의를 흩뿌리는 날도 늘어나고 있다.
오랜만에 하는 친구와의 담화였지만, 당분간은 종자 없이 적막하게 하는 편이 좋으려나, 하고 레밀리아는 홍마관의 주인이면서도, 묘하게 위축되고 있었다.
어쨌든 이 분위기에서 빨리 벗어나기 위해, 레밀리아는 티컵 안의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그 때, 힘차게 도서관의 문이 열렸다.
「……플랑?」
「언……니……」
잠옷차림의 플랑도르가, 어째선지 울면서 서있었다.
뭔가를 참아내듯, 한쪽 손에는 선대에게 받은 봉제인형을 힘차게 쥔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레밀리아는 당황해서 그런 여동생의 곁으로 달려갔다.
「왜 그러니? 뭔가 무서운 꿈이라도 꿨니?」
「아냐……그게 아니라. 자려고 했는데……그랬는데, 아주머님이……생각나서」
「선대를? 오늘, 병문안 다녀왔잖니. 상처는 심했지만,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단다. 겨울을 넘길 무렵에는 나을 테니까.」
레밀리아는 흔들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플랑도르에게 천천히 타이르듯이 말했다.
딱히 거짓말로 위로하려 하는 것은 아니다.
말한 내용은 모두 진실이다.
그러나, 플랑도르는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어……그렇지만, 잘 모르겠어.
그땐, 아주머님과 만나서, 무지 안심할 수 있었는데……혼자가 되니까, 왠지 엄청 슬퍼져서…….모르겠어, 왜 이러는 거야? 언니……!」
플랑도르의 이야기는 정말로 뜬금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레밀리아에겐 여동생이 품은 감정에 공감되는 것이 있었다.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플랑도르가 품고 있는 슬픔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기분을, 레밀리아 자신도 경험한 적이 있다.
「그렇구나……나는 알 수 있어. 아마, 플랑이 느끼고 있는 불안함을, 나는 알고 있단다」
「어떻게 해야 해? 왠지 무지 슬퍼져서, 눈물이 멈추지 않아. 어떻게 하면, 이걸 멈출 수 있는 거야?」
「그 감정을 억지로 멈출 수는 없단다. 어떻게 할 수도 없어.
사소한 일로,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르고. 그 뒤엔 매우 슬픈 감정이 들어.
이만 자렴, 플랑. 오늘 밤은 내가 옆에 있어 줄게. 자고, 일어나면, 분명 어째서 슬펐었는지 잊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대답해주며, 레밀리아는 플랑도르를 꼬옥 껴안았다.
자신의 안에서 느껴지는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파도를 덮어 버리듯이, 플랑도르도 언니에게 안겨들었다.
그런 두 명의 모습을 보는 사람중,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은 사쿠야 뿐이었다.
파츄리는 플랑도르를 슬픔이 깃든 눈동자로 응시하고 소악마는 변함없는 미소로, 그러나 어딘가 미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띄운 시선으로 둘을 바라봤다.
「사쿠야, 오늘 밤은 플랑과 잘게. 침실의 준비는 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 예……」
무심코 대답한 사쿠야를 뒤돌아보지도 않고, 레밀리아는 플랑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서 나갔다.
남겨진 사쿠야는, 역시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파츄리를 보았다.
「작은 아가씨는, 어째서 저러시는 건가요? 아가씨는 뭔가 알고 계시는 듯이 보였습니다만」
「사쿠야씨는 분명 모를 거에요」
「네게 묻지 않았어.」
싹싹한 미소로 대답한 소악마를 노려본다.
파츄리는 두 명을 말리듯이 가볍게 손을 든 채 사쿠야를 응시했다.
「소악마의 말도 어떤 의미 맞아. 너로선 이해하기 어려울 거야.」
「파츄리님까지……」
「어쩔 수 없는 거야. 플랑 본인과, 레밀리아에게 맡겨 두렴.
그리고 오늘은 메이링에게 가지 않는게 좋을 거야. 메이링도 울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건, 작은 아가씨와 같은 이유일까요?」
「분명히」
──그럼, 파츄리님은 어떠신가요?
그렇게 묻는 것은, 사쿠야에겐 불가능했다.
대체, 뭐가 그렇게 슬펐던 걸까?
사쿠야에게는 플랑도르가 눈물 흘리던 이유를, 아무리 고민해도 알 수 없었다.
지금, 이 장소에서 자신만이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반성하고, 어딘지 모르게 종족의 차이라는 벽을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요괴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사람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