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17 「풍신소녀」
나는 이 세계가 「게임」이 아닌 진짜 「현실」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실감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곳은 정해진 「스토리」라거나 「전개」, 혹은 「약속」같은 것들로 만들어진 세계가 아니다.
훌륭한 현실이다.
이야기의 흥을 돋굴만한 불합리한 전개 따윈 없으며, 그 앞에는 그저 변하지 않는 결과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면 「백식관음」 무쌍이다.
아니, 이유는 알고 있다고?
이 기술은 필요 없는 동작을 끝없이 생략하여 상대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용한 공격」이라는 점이 포인트다.
딱히 필요한 동작이라거나 힘을 모을 필요가 있는 필살기와는 완전한 반대위치에 놓인 기술이다.
이래봬도 내 비장의 카드니 모미지와의 싸움에서 쓰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뭐, 그 결과. 사용 할 기회를 놓치고, 결국 끝까지 사용하지 못했으니, 그건 내 판단 미스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비장의 카드이기에 더더욱,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숨겨둬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고쳐먹은 나는 나를 향해 달려든 세 초계텐구와 전투하게 됐을 때, 그 점을 반성하며 처음부터 전력을 내기로 결정했다.
3:1이라는 단순한 숫자의 차에 의한 불리.
어쨌든 수를 줄이기 위해 재빨리 쓰러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처음부터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그렇게 하니, 세 번 만에 결판이 나버렸다.
연이어 내뻗어진 백식관음에 아무 대항도 하지 못한 채, 적은 차례차례 쓰러져갔다.
맨 처음 당한 텐구가 처음 본 기술에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은 당연.
공격의 정체를 알지 못한 채 갑자기 쓰러진 동료를 보며 경악하는 다른 텐구의 뺨에 두 발 째 백식관음이 직격.
마지막 한명은 어떻게든 거리를 벌리고 대응하기 위해 행동했으나, 하늘을 난 순간 세 발 째 백식관음의 충격파로 떨궜다.
이 과정, 불과3초!
……아니, 진짜로 그 정도로 순살이었다.
반격을 우려하며 어찌됐던 빨랑빨랑 적을 쓰러뜨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던 나도, 이 결과엔 반대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을 정도다.
적이 약할 뿐이다, 같은 근거 없는 평가를 내릴 생각은 없다.
오히려, 모미지와 같은 일에 종사하는 동료이기에 전투에 관해선 다를 바 없는 전문가일 터다.
그런 그들이 온전히 싸우지도 못한 채 쓰러져버린 것이다.
너무 강하잖아, 이 기술…….
내가 익힌 기술이지만 경이로울 정도다. 밸런스 깨지는 소리가 나는걸.
수행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었으므로 기술의 성능 자체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우수할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말 그대로 흉악할 정도의 레벨이다.
이런 비장의 수라는 느낌이 풀풀 나는 기술은 여러 번 쓰면 바로 대항책이 나와 버리는 것이 만화의 약속된 전개지만, 현실 앞에선 그런 플래그 따위엔 어떤 의미도 없었다.
발동해버리면 그때는 이미 대항은커녕 반응하는 것조차 허락지 않는다.
원래대로라면 고전을 면치 못했을 전투가 전부 생략되어 버렸다.
상대가 감지할 수 없는 공격을, 상대보다 빠르게 가한다. 요컨대 「선빵」이라는 거지만, 아무래도 이건 꽤 유효한 전법인 듯하다.
인간이며, 전투경험도 부족한 내가 요괴와 정면으로 싸우기엔 불리하다는 것을 모미지와의 전투로 실감했으니 상대가 제대로 힘을 내기 전에 쓰러뜨리는 것이 중요하는 것을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이건 요괴와 싸울 때 필수적으로 지켜야할 철칙이다.
기억해 두자.
어쨌든, 예상외의 결과기는 해도, 좋냐 나쁘냐를 따지면 좋은 쪽이니 다행이라 치자.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납치된 아이의 구출」이니, 전투는 최대한 피하고 빨랑빨랑 끝내고 싶다.
쓸데없이 체력을 소모할 생각은 없다.
이 셋 말고 지원 병력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기에, 마침 잘됐다고 되뇌며 나는 1초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그 순간.
「이 텐구의 영역에 무단 침입이라니, 무엄하구나!」
「!」
갑자기, 옆쪽에서 불어온 돌풍에 날려갔다.
아니, 바람이라기보다, 거의 충격파 수준의 압력에 그대로 나무에 쳐 박힌다.
분명 자연의 바람이 아니다. 불기 직전까지 거의 바람도 불지 않았으니까!
나부에 부딪친 등도 아프지만, 충격 탓에 벌어진 상처에서 밀려들어오는 고통을 내심 눈물로 견디며, 나는 바람이 불어온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런? ……어머, 이건 무슨 일일까요. 침입자의 정체가, 하쿠레이의 무녀였을 줄이야!」
위험해. 속으로 상상하던 것 중 최악의 사태가 되어 버렸다.
상공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놀라고 있는 것은 샤메이마루 아야였다.
손에는 아까 그 바람을 일으켰을 때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텐구의 부채. 목에는, 나도 환상향에선 처음 보는 문명의 이기인 카메라가 늘어뜨려져 있었다.
이 모습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까마귀 텐구인 샤메이마루는 기자와 닯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
모미지처럼 침입자와 싸우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반응을 보아하니 놓쳐 줄 생각은 없어 보인다.
……묘하게 리액션이 과해보이는 건 내 기분 탓인가?
「이러면 안 된다고요, 무녀님.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초계 텐구들에게 위해를 가하다니. 그 만행, 큰 문제가 된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이란 말에 묘하게 악센트가 들어간 말투다.
그 강조에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 자체가 나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다.
샤메이마루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내 변명이 기대된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나쁜 쪽은 마음대로 들어온 나니까 「기분 나쁘다」같은 생각을 하면 안 되지.
저쪽 입장에서 보면 나는 모미지를 포함한 동료 텐구를 쓰러뜨리고 멋대로 자신들의 영역에 침입하려 한 불청객일 테니까.
확실히 그래서야 좋은 감정이 생길 리가 없다. 뭐라고 불평이라도 말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미안하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샤메이마루와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쿠레이의 무녀로서 취임한 직후, 그녀가 신사에 취재하러 온 적이 있었다.
사실은 그때 그 만남이, 내게 있어서 동방 캐릭터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처음 만난 유카리 다음으로 만날 가능성이 높았던 야쿠모 란과는 하쿠레이의 무녀로서의 수련이나 직무에 익숙해져갈 쯤 간신히 안면을 틀 수 있었다.
그러나 샤메이마루는 그런 란과는 반대로 내가 하쿠레이의 무녀가 되고, 그것이 마을에 발표 된지 며칠 만에 신사에 방문해왔다.
같은 인간 사이에서도 정보가 제대로 퍼지지 않은 시기였는데, 도대체 어떻게 알아낸 걸까, 수수께끼였다.
정보 입수 무지 빠르네.
혹시, 나 의외로 주목받고 있는 건가? 라고 정말 반 농담으로 그런 자만 섞인 생각까지 떠올랐을 정도다.
물론, 당연히 그럴 리 없었다. 오히려 취재 내용은 샤메이마루가 기사로 써줬을 텐데 아직도 내 인지도는 딱히 좋은 편은 아니다.
뭐, 그건 아마 하쿠레이의 무녀라는 것 자체가 게임에서 나오던 것처럼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사실, 난 내 기사가 적힌 신문을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다.
유카리라면 신문을 보고 있지 않을까 해서 가끔 조심스레 물어봤지만, 매번 말을 돌려버린다…… 뭐라고 쓰여 있는 건지 미묘하게 신경 쓰입니다.
어쨌든, 나와 샤메이마루는 서로 아는 사이다.
어떻게 들릴지는 몰라도 정말로 우리는 그냥「아는 사이」일 뿐, 슬프게도 친밀도는 0에 가깝다.
아니 오히려 인터뷰 할 때 말고는 대화조차 나눠 본적 없다.
거의 일방적으로 사진을 찍히고, 이미 아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처럼 묻고, 그 질문에 내가 대답하면 그럼 안녕이라는 느낌으로 매번 재빨리 떠나 버린다.
내 입장에선 당연히 사이가 좋아지고 싶지만, 실제로는 그냥「모르지는 않는」 사이.
그런고로 대화 없는 이해는 불가능에 가깝다. 나는 그저 고개를 깊게 숙일 수밖에 없었다.
심정적으로는 물론이요, 실력도 실력인 샤메이마루와 싸우고 싶진 않다.
「사죄에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걸요. 제 중요한 부하를 저런 끔찍한 모습으로 땅바닥에서 뒹굴게 만든 건 당신 아닌가요?」
아야가 가리키는 곳엔 기절한 모미지가 있었다.
역시, 2차 설정대로 모미지는 아야에게 중요한 캐릭터구나.
우읏……상대의 분노가 너무 정당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이대로 화내면서「여기서 나가」라고 말하면 어쩌지?
그대로 물러날 수는 없지만, 잘못은 내 쪽에 있다.
아까처럼 무리하게 지나갈 수는 없다.
나는 한 번 더 「미안하다」라고 사과한 뒤,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의를 굳히고 아야를 올려보았다.
「네 힘을 빌리고 싶다. 부탁한다, 도와다오」
「……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얼굴에 가득 번져있던 비웃음 같은 미소가 사라진 샤메이마루가 벙찐 목소리로 소리를 흘렸다.
뭐, 당연한가.
내가 봐도 뻔뻔하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아이가 큰일을 당하기 전에 어떻게든 구해내고 싶다.
텐구 중에서도 거물인 샤메이마루가 상대라면, 이야기가 어느 쪽으로 굴러가든 사태는 크게 진전된다.
이야기가 수틀리면 문제는 죽자고 커지겠지만, 반대로 협력을 얻을 수 있다면 단번에 호전된다.
「다른 텐구에게 이야기를 전해줬으면 한다. 이쪽의 문제가 정리되면, 너희들이 바라는 처벌은 반드시 받겠다. 보상도 하마」
나의 부탁에 샤메이마루는 묘하게 복잡해 보이는 표정을 띄우고는 입을 닫아버렸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역시……기막혀하고 있는 걸까?
그렇지만 부디 수락해줬으면 한다.
단칼에 거절되지 않고 생각이라도 해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만.
이윽고, 생각이 정리됐는지, 샤메이마루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얼굴 위로 떠오른 그 미소는 뭔가 속셈을 숨기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나쁜 미소였다.
「좋아요! 그쪽한테 뭔가 사정이 있다는 건 알겠습니다. 수치를 참고 사죄한 그 태도, 존중해드리죠!
단── 저도 입장 상 인간의 요구를 그냥 받아들일 수는 없답니다. 그 실력으로, 자신의 뜻을 증명해 보시죠.
소문으로만 듣던 하쿠레이의 무녀의 힘, 과연 텐구를 따르게 하기에 충분할지 아닐지, 이 몸으로 시험하겠습니다.
자, 손대중은 해드릴 테니 진심으로 덤비세요!」
역시나. 결국, 샤메이마루와의 대결은 피할 수 없다는 거군요. 압니다.
……나는, 매번 이런 결말뿐이냐! 그런 거 싫어─!
◆
하쿠레이의 무녀가 도움을 부탁했을 때, 아야는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애당초 그녀의 사정은 이미 알고 있는 데다 여기까지 온 과정도 봤다.
이렇게 끼어든 이유는 그저 장난과 변덕, 그리고 이런 상황을 즐기려는 악의 때문이었다.
사정을 알아도 도울 생각은 없다. 그저 적당하게 놀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아야는 그때 한순간이라고는 하나 고민하고 말았다.
──잠깐 기다려봐, 고민했다니 뭘?
그렇게 자문한 아야는 퍼뜩 제정신을 차렸다.
뭐에 대해서 고민한 건지는 자신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 자신은 망설였다.
눈앞의 소녀의 도움을 바라는 목소리를 듣고, 한순간이라 하나 갈등했다.
──안되겠네. 역시, 이 무녀를 상대하고 있으면 이상해져버려.
자기 자신도 모를 불가사의한 속마음과 의심을 머리 구석에 쑤셔 넣는다.
상대하지 마라. 처음 예정대로 이 인간으로 가볍게 놀기만 하면 된다. 어차피, 이 녀석은 신문의 소재다.
그렇게 기분을 다잡으며, 아야는 미소의 가면을 고쳐 썼다.
상대의 부탁을 들어줄 거라는 듯 속이며 싸움으로 이야기를 몰고 간다.
「소문으로만 듣던 하쿠레이의 무녀의 힘, 과연 텐구를 따르게 하기에 충분할지 아닐지, 이 몸으로 시험하겠습니다」
적당하게 겉치례가 붙은 말투긴 하지만, 그 안엔 아야의 진심이 그대로 들어가 있었다.
그 무력하던 아이가 성장하여, 크게 힘을 길렀다는 것은 알고 있다.
무엇보다, 아야는 아까 있던 전투까지 전부 봤다.
그 모미지와의 승부── 아니, 생명을 건 전투에서 이긴 것만으로도 굉장한 것이다.
그 힘의 한계를 보고 싶다는 흥미가, 아야의 가슴 속에서 솟아오르고 있었다.
또, 동시에 그녀를 꺾어버리고 싶다 생각하고 있었다.
모미지를 이겼다고는 해도 그 상처를 보아 그 다음 시작된 3대 1의 싸움에서는 고전하거나, 혹은 패배할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보는 대로 일방적인 무녀의 승리.
말단 텐구라지만, 무려 세 명을 순살.
아무리 그렇다지만 저건 예상외였다.
솔직히, 옆에서 보고 있던 아야조차 그 공격의 정체를 간파할 수 없었다.
그 인간에게 놀란 적이나 예상이 빗나갔던 적은 몇 번이고 있다.
하지만, 이 사태는 아야에겐 나쁜 의미로 다가왔다.
──주제넘게 나서도 곤란해.
다른 요괴라면 몰라도, 텐구를 상대로 인간 따위가 나대서는 곤란하다.
이대로 방치하면, 머지않아 주제를 알게 되겠지만, 그때를 기다릴 이유는 없다.
아야는 부채를 손에 쥐고, 그 자리에 착지해 무녀의 앞에 섰다.
첫 일격을 날렸을 때처럼 하늘 위에서 바람을 이용한 공격만을 날린다면 일방적으로 희롱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런 건 아야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격에, 자신이 한순간이나마 「위협을 느낀 것」을 부정 하듯이.
눈앞에 선 하찮은 인간을「경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웃어 넘기듯이.
아야은 강자로서의 자부심과 여유를 가지고, 하쿠레이의 무녀와 마주섰다.
「자, 손대중은 해드릴 테니 진심으로 덤비세요!」
단 한마디로 전투의 시작을 알린다.
눈앞의 무녀는, 자세도 취하지 않은 채 그저 서 있을 뿐이다.
이런 자세로 순식간에 세 명을 쓰러뜨린 상대다, 당연히 방심은 할 수 없다.
방심은 할 수 없다── 그러나, 아야는 굳이 방심했다.
전신을 이완시키고, 거기다 양손으로 카메라를 들어 무녀에게 내보인다.
처음 한 선언대로, 아야는 자신이 먼저 공격을 가하지는 않았지만──.
다음 순간, 예비 동작을 전혀 취하지 않고 뿜어져 나온 일격이, 아야의 머리를 목표로 섬광과도 같이 날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
「……뭐, 라고……?」
무심코 배틀 만화에서 자주 쓰이는 「놀라는 대사」를 말해버렸다.
그렇지만, 이거 개그가 아니고 진심으로 입에서 튀어나온 건데요.
──「백식관음」이, 빗나갔다.
실전에서 배운 선수필승의 철칙에 따라, 이번에도 처음부터 전력전개의 일격을 휘둘렀지만, 놀랍게도 아야는 그것을 피해낸 것이다.
어이……어떻게 된 거야, 비장의 카드가 갑자기 효과가 없어졌어!
이대로 전투를 계속하라는 겁니까, 뭐야 그 무리 게임!
반 착란 상태에 빠져있는 속마음을 숨기지 못한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눈앞의 현실에 식은땀을 흘렸다.
이 기술을 실전에서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비장의 수로 숨겨놓기는 했지만, 실제 위력을 시험해보기 위해 몇 번 정도 사용해 보기도 했다.
그 결과, 모두 예외 없이 일격에 적을 매장시켜왔다.
상대는 회피는커녕 반응마저 하지 못한 채, 일격으로 싸움을 끝낼 수 있었다.
참고한 만화에서 보여진 것과 같이, 이 기술은 그런 특성과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도 비장의 카드로 쓰고 있던 건데. 설마, 그걸 피할 줄은…….
「왜 그러시나요, 그렇게 굳으셔서는. 설마, 지금 그게 전력이었나요?」
아주 약간 스친 것 같은, 가볍게 자국이 난 뺨을 어루만지며, 아야가 여유를 내보이며 웃고 있었다.
당황하며 자세를 잡았지만, 솔직히 이게 단순한 허세라는 걸 간파 된 거 아닐까 불안하다.
상대의 말대로, 아까 그 공격이 더할 나위 없는 나의 전력이었던 것이다.
본래, 공격의 동작을 보이지 않는 기술인 백식관음은, 준비 자세가 필요 없다.
이렇게 자세를 잡고 있는 시점에서 이미 백식관음을 사용할 수 없다고 대놓고 떠벌리는 거나 마찬가지.
물론, 그 기술은 아직 몇 번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
주먹뿐만이 아니라 충격파를 발생시켜 사정거리를 늘리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딱히 MP 같은 녀석을 소모하는 것도 아니까.
그러나, 한 번 더 사용해봤자 빗나가버리면 무의미다.
아무리 백식관음이라도 두 번이나 보면 처음보다 훨씬 간단히 피해버릴 테니까.
그렇다고 한들, 이 이상의 기술이 지금의 내게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전투를 시작한지 얼마 안 되기는 했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꽤 날카로운 공격이었지만, 텐구를 따라잡으려면 아직 부족하답니다」
이미 상당히 불리한 상황이지만, 싸움이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가만히만 있던 아야가 드디어 공격 준비에 들어갔다.
라고는 해도 양손은 아직도 카메라를 든 채, 몸을 약간 앞으로 숙였을 뿐이다.
시선은 이쪽을 향해 있으므로, 공격을 할 생각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샤메이마루 아야는 게임 설정에서도 특히 스피드가 강조된 강력한 텐구다.
그녀의 공격에 반응할 수 있을지 어떨지가 전투의 열쇠가 된다.
멀찍이 떨어져서 탄막 같은 공격으로 니가 와 플레이라도 한다면 정말로 어쩔 수 없지만, 접근전을 시도할 생각이라면 아직 이길 기회는 있다.
아마, 자세를 보건데 「발차기」가 나올 것이라 예측한 뒤, 나는 최대한 집중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엄청난 충격에 머리가 옆으로 꺾이며 나는 땅바닥에 쳐 박혔다.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그 충격의 정체가 뭔지, 흐릿해서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육안으로는 전혀 파악할 수 없었다.
반 정도 날아간 의식을 다잡으며 땅바닥을 구른 뒤 거리를 벌린 뒤 일어선다, 높게 올라간 아야의 오른다리를 보건데, 역시 「발차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응, 뭐 그렇구나.
방심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든 한계라는 건 있는 법이구나.
사면초가, 라고나 할까.
어쨌든 집중만 하면 모르긴 몰라도 공격의 잔상 정도는 잡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했건만──.
요만큼도, 잡아낼 수 없잖아아아───!
◆
──……이건, 대체……!
아야는 자신의 경악에 절어 죄여든 얼굴이, 상대에게 대담한 미소로 보이기를 바랐다.
약한 면을 드러낼 수는 없다.
그 한순간, 진심으로 「죽음을 느꼈다」라고.
조금의 움직임조차 없이 뻗어져 나온 일격.
아마 주먹을 쓴 것이라 생각되는──주먹인지 아닌지조차 확실치 않다──공격을 아야가 피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 자신의 능력 덕분이었다.
샤메이마루 아야 대응할 수 있던 것일 뿐, 아야가 아닌 다른 자가 그 불가피한 공격에 대응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야로서는 알 수 없었다.
하쿠레이의 무녀가 가진 정체 모를 공격을 사전에 봐 두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아야는 부정하고 있지만, 그것을 보고 눈앞의 인간을 「위험」하다 판단, 「경계」하고 있었던 덕분에 방심이나 자만심이 자기도 모르게 희미해져 있었던 것이다.
힘과 연륜이 쌓인 강대한 요괴에게 저절로 뿌리내린 자존심보다, 자각 없는 소시민 근성이 그녀를 구했다.
그리고, 아야는 무술가가 아니다.
기척이나 움직임의 예측 같은 기술은 가지지 못했으며, 그저 뛰어난 감각만으로 적과 싸워왔다.
거기다가 지닌 능력의 응용으로 「바람의 움직임」을 읽을 수가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기의 움직임」이지만.
촉각에 의한 감지는 아니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능력으로 감지할 수 있다. 제6감이라고 해도 좋다.
그 감각이, 육안으로는 에측조차 불가능한 무녀의 미세한 움직임을 읽어냈다.
무녀의 움직임에 맞춰서 주위의 공기가 아주 조금이지만 흐트러졌고, 자기도 모르게 집중하고 있던 아야는 그 흐트러짐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던 경계심이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결과, 아야는 하쿠레이의 무녀가 뻗어낸 불가피의 일격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꽤 날카로운 공격이었지만, 텐구를 따라잡으려면 아직 부족하답니다」
거의 반절 이상 우연으로 일어난 결과를, 마치 당연하다는 듯 여유 담긴 대사를 내뱉는다.
사실은 예상하지 못했던 긴장감에 심장 박동이 빨라져 있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텐구인 자신을 위협한 인간의 존재를 향한 강한 분노도 솟아오르고 있었다.
──옛날에는 그렇게 약했던 주제에.
확실히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기는 했지만, 대등한 존재라고는 인정하지 않았다.
하물며, 자신을 조금이라도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그 꼬마는 보호 받는 입장이었으니까.
단 5년 만에 그 관계가 바뀔 리가 없다.
아야는, 그 꼬마가 자신의 곁을 떠난 뒤부터 보낸 5년을 완전히 부정했다.
──나대지 말라고, 꼬맹이. 연륜의 차이라는 걸 알려 주겠어!
텐구로서의 자존심을 다지며, 아야는 무녀에게 덤벼들었다.
바로 정면에서 상대의 눈앞까지 접근, 칼로 베어내는 것처럼 발을 휘두른다.
어떤 책략도 없는, 단순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빠르다.
무녀는 서 있던 자리에서 차여 날아갔다.
회피는 물론이요 방어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
아야는 오른다리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반응에 긴장을 풀었다.
휘둘러진 한쪽 발을 들어 올린 채, 일어선 무녀를 향해 셔터를 누른다.
「좋은 얼굴이에요. 꾸민 얼굴은 필요 없답니다, 제가 진짜 표정을 짓게 만들어드리죠!」
그 강한 의지를 내보이는 것 같은 철면피가 무너지고 경악하는 무녀를 보고서야 간신히 여유가 돌아온다.
자신과 상대의 힘의 차이를 재차 확인하고, 서로의 관계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내가 위, 네가 아래다.
카메라에서 손을 떼지 않고, 아야는 다시 발을 휘두른다.
기술이라 부를 정도의 움직임은 아니다.
그저 간략하게 휘두르거나 밀쳐내는 것 같은 설렁설렁한 공격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마치 채찍과도 같이 휘어지며, 예리함과 무게를 겸비하여 연달아 덮쳐온다.
무녀는 방어를 굳히고 견딜 수밖에 없었다.
발차기의 스피드가 너무 빨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회피는 물론, 쳐내는 것도, 흘려내는 것도 할 수 없다.
텐구의 속도에 강력한 힘까지 갖춰지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방어하는 팔이 통째로 부러져 당했을 것이다.
양팔로 머리를 가려 막았지만, 그 틈을 꿰뚫듯이 정면에서 곧게 뻗은 발이 명치에 박혀들었다.
폐의 산소와 위액을 내뱉으며, 몸이 뒤로 날아간다.
뼈를 부술 정도의 위력은 없으나, 상식을 초월한 인외의 각력은 그야말로 무지막지했다.
「자. 고개 올리고 이쪽을 보세요─?」
배를 움켜쥐고 주저앉은 무녀에게 다가가며, 아야가 도발을 반복한다.
숙이고 있던 얼굴을 겨우겨우 위로 올리는 무녀의 눈동자엔 날카로운 빛이 서려 있었다.
아슬아슬한 거리까지 재빠리가 발을 디디고 들어가 정권을 내뻗는다.
단련되고 또 단련된 무쇠와도 같은 주먹이, 허무한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른다.
「아아, 무섭다 무서워~」
아야는 이미 등 뒤에 서 있었다.
무녀는 단 한순간에 벌어진 일에 경악하며 눈을 크게 치켜뜨면서도, 그 자리에서 바로 맹렬한 회오리가 연상되는 뒤돌려 차기를 내뻗었다.
그것을 아야의 발차기가 막아낸다.
살로 이루어진 육신이 부딪친 것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격돌음이 울린다.
위력은 호각.
한쪽이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결과다.
하지만, 이것이 승부인 이상 그런 칭찬은 어떤 의미도 없다.
아야는 한쪽 발로 재주 좋게 균형을 잡으며, 서로 맞물린 다리를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에 끼워 넣었다.
상대의 움직임을 막아낸 채, 그대로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댄다.
「그런 무서운 표정 하지 말고 웃어요∼?」
아야는 이미 평소 컨디션을 되찾았다.
인간에게도 텐구에게도 악명 높은 썩은 근성에 어울리지 않는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찰칵, 하며 또 한 장.
파인더로 비치는 무녀의 얼굴은, 날카롭게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초조함이나 분노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전사로서의 딱딱함이 있을 뿐.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아야의 다리를 꺾기 위해 주먹이 내리쳐진다.
당연하게도, 아야는 그 자리에서 다리를 풀어주며 거리를 벌린다.
그 직후, 눈이 깜박일 시간도 없이 땅을 박찬 아야가 초고속의 히트&어웨이를 실행한다.
다가오는 아야의 모습을, 이번엔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접근하는 적의 동선에 끼워 넣듯이 주먹을 내지른다.
평범한 공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무녀는, 카운터를 노리고 있었다.
「전부 다 읽히고 있답니다」
「──!」
혼신이 담긴 카운터는, 지금까지 일어난 결과대로 끝나고 말았다.
공격이라 생각된 아야의 돌진은, 그대로 무녀의 옆을 지나갈 뿐이었다.
카운터를 실시하는 동작을 보자마자 궤도를 바꾼 것이다. 무서운 반응속도였다.
주먹은 허무하게 빗나가고, 공격 직후에 무방비해진 무녀의 몸을 늦게 쫒아온 충격파가 강타했다.
바람을 휘감은 초고속의 이동. 그저 그뿐일 행동이 엄청난 충격파를 발생시킨 것이다.
무녀의 몸이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처럼 튕겨 날아오르더니, 땅바닥에 쳐 박힌다.
우아하게 몸을 돌린 아야가, 너덜너덜하게 된 그녀를 웃으며 내려다본다.
「네, 그러면 기념으로 한 장」
찰칵하고 셔터 소리가 울린다.
전신에 든 멍에 오른팔과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음에도 일어서는 무녀의 모습을 필름에 새길 수 있었다.
전황은, 이미 분명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힘의 차이를 깨달았나요?」
모미지와의 전투 중에 입은 부상이 아픈 듯, 무녀는 옆구리를 누르며 난폭하게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이제 끝난 건가, 라고 생각하며 아야는 싱글벙글 미소 짓는다.
결판이 난 것 같다.
「제가 봐주고 있었다는 건 잘 알고 있겠죠?
이것이 인간과 텐구의 차이입니다. 하쿠레이의 무녀라고 해도, 당신의 힘이 닿는 영역은 겨우 이 정도.
자, 이해했다면 이만 돌아가세요. 자신의 영역, 인간의 영역으로 돌아가 앞으로는 주제를 알고 활동하시길 바랍니다」
아야는 말로는 설득하듯이, 그러나 얼굴로는 놀리는 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속으로는 진실이 반. 나머지 반은, 앞으로 이런 소동을 「적당히」일으켜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텐구 사회의 기반을 부수지 않고, 새로운 바람이나 자극을 갖고 싶다.
텐구 중에서는 드문, 멈출 수 없는 탐구심과 호기심을 가졌지만, 그와 함께 귀속되어 있는 사회의 붕괴까지는 바랄 수 없는 소시민 근성이 뒤섞인 말이었다.
그러나, 이미 승부가 결판났다고 생각한 아야의 심정과는 정반대로, 무녀의 눈동자에서는 전의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호흡을 진정시키듯, 한 번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그리고, 그대로 그 자리에 정좌했다.
「……무슨 짓이죠?」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아야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좌했어? 라고 생각했지만, 자세가 묘하다.
무릎을 땅에 붙였으면서도 무녀의 표정은 아직 전투 중인 것처럼, 날카롭게 표적을 노려보고 있다.
정좌한 자세도 무릎을 모으지 않고 크게 벌려, 일어서기 쉽게 엉덩이 밑에 다리의 엄지를 세웠다. 거합도에서 사용되는 정좌 자세다.
그렇다. 눈앞의 무녀는 아직 싸울 생각인 것이다.
「함정입니까. 뻔하네요」
아야는 상대의 심중을 알고 비웃었다.
정말로 알기 쉽다.
저렇게 주저앉은 것 자체가 이쪽의 공격을 기다리려는 속셈이라는 것을 간단히 알 수 있다. 아니, 그 외의 수단이 없다.
조금 전의 전투로 인간이 텐구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은 증명되었다.
언뜻 보기에 공격을 위한 자세로는 보이지 않는 정좌를 보이는 것으로 공격을 유도하고, 거기에 무언가의 함정을 장치── 이런 속셈이겠지.
가장 중요한 「무언가의 함정」에 대해 아야는 깊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저 이것저것 예측하는 것이 귀찮았을 뿐이다.
「그럼, 여기서 바람을 일으켜 날려버릴까요? 아니면 하늘 위에서 강습?」
아야는 히죽히죽 웃으며, 그 작전의 결점을 찔렀다.
지금 말한 방법으로 공략하면, 무녀는 이도저도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결국, 궁지에 몰린 적의 발버둥질이다.
아야가 진지한 대응을 포기해버린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방심이 아닌, 여유다.
그러나, 동시에 입에 올린 수단을 자신이 쓸 리 없다는 것 또한 안다.
자신의 자부심과 이미 결판이 났다고 확신한 승부에 아주 조금의 의심이나 경계 같은 약한 생각 따위는 가질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자기 자신이 용서하지 않는다.
강대한 요괴가 지닌──특히 텐구라는 종족에게는 보다 심한──고유한 힘의 패러독스 탓이다.
「……아니요, 정면에서 차날려 마을까지 보내 드리죠!」
아야는 자신의 말대로 곧게 무녀에 마지막 공격을 가한다.
혹, 이것은 저 인간의 깜찍한 책략에 걸려든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것은 진정한 승패완 상관없다는 것이 지금 증명될 것이다.
그렇게 확신하며, 아야는 최고 속도의 발차기를 무녀의 뺨을 향해 휘둘렀다.
◇
저렇게 하얗고 아름다운 발에 밟히고 싶다고 생각하는 녀석은 많겠지, 라며 연달아 나를 덮쳐오는 강렬한 발차기의 폭풍을 맞으며 현실 도피.
우리 업계에서는 포상입니다! 같은 말로 얼버무릴 여유도 없다. 게다가 그런 성벽은 없고.
한 번이라도 맞아보면 알 수 있을 거다. 농담이 나올 만한 위력이 아니다.
그 부드러워 보이는 살결을 가진 다리에 맞으니, 마치 강철 채찍에 맞은 것 같은 충격과 고통이 느껴진다.
특히 부상당한 오른팔은 방어할 때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격통입니다. 레알 찍고.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지만, 샤메이마루가 너무 강해서 울었다.
대강 전력비를 따져 간신히 이긴 모미지가 내퍼라고 한다면 샤메이마루는 베지터 아닐까 하던 내 상상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명확한 차이를 꼽자면, 역시 스피드였다.
상대의 공격은 하는 족족 들어맞는 반면, 이쪽의 공격은 명중하질 않는다.
이런데도 전력이 아니라니, 승부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은 나라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약간이나마 전투가 가능한 이유는 상대가 이쪽에 맞춰 싸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카운터를 시도했을 때처럼 샤메이마루가 제대로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그 이동만으로 나 같은 건 쓰레기처럼 튕겨 날아간다.
뭐야 그거, 충격파?
제대로 된 공격도 하지 않고 저렇게 돌아다닐 뿐인데 상대를 넝마를 만들 수 있다니, 사기 아냐?
거기다 그때 전신을 덮친 충격 탓에 부상이 악화된 것 같다.
오른팔은 격통을 넘겨 서서히 아픔이 사라져가고 있다. 즉, 감각이 없어지고 있다.
그 대신 부러진 늑골의 아픔이 심해지더니, 드디어 호흡까지 방해하기 시작했다. 숨을 들이킬 때마다 욱신거린다, 안 그래도 지쳤는데 제대로 숨 쉴 수조차 없다니.
그러나, 모미지와의 전투로 입은 상처와 피로는 지금 내가 궁지의 몰린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저 실력차이일 뿐이다.
어쩌지……솔직히, 이렇게 까지 발려버리면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만.
「제가 봐주고 있었다는 건 잘 알고 있겠죠?
이것이 인간과 텐구의 차이입니다. 하쿠레이의 무녀라고 해도, 당신의 힘이 닿는 영역은 겨우 이 정도.
자, 이해했다면 이만 돌아가세요. 자신의 영역, 인간의 영역으로 돌아가 앞으로는 주제를 알고 활동하시길 바랍니다」
차라리 샤메이마루의 말에 동의하고 싶다. 그냥 사과하고 이대로 돌아가 버리고 싶은 욕구가 마음속에서 솟아오른다.
아직 하쿠레이의 무녀로서의 사명감과 아이의 어머니와 한 약속이 나를 지탱해주고 있지만, 눈앞의 압도적인 현실이 그 이상의 압력을 가하며 나를 포기시키려 하고 있다.
전력차는 압도적.
제대로 싸우면 백전백패의 결과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당연한 결과에 그런 생각밖에할 수 없었다.
나란 녀석은 정말로 사서 고생하는구나.
이 끈질긴 성질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구제불능에, 이해불가다.
그저, 싸울 힘이 남았는데도 포기하는 것이, 내게는 아무래도 불가능했다.
이 생각이, 사명감이나 타인을 위한 정 때문은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다.
아마, 이미 내 마음속에 뿌리 내려 버렸으니까 말이다.
──난, 이 요괴의 산에서 매일매일 구사일생을 반복했다.
행운과 우연으로 생명을 쟁취해온 나날이었다.
그런 터무니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도리를 안다 해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무리.
무모.
한계.
모두, 어릴 적에 몇 번이고 넘어오지 않았는가.
현 상황이나 지금 몸의 상태, 그 모든 것을 무시하며 나는 결의했다.
각오는 되어있다. 그 옛날, 이 요괴의 산에서 한 번 죽으려고 했던 그때, 이미 하고 있었으니까.
하핫, 사지에 들어설 각오가 있으면 이럴 때 편리하다.
「함정입니까. 뻔하네요」
충고를 거절하고 자세를 잡은 나를 본 샤메이마루가 내 의도를 빨리도 알아차리고 말았다.
뭐, 알기 쉽긴 하구나.
내가 그 자리에서 정좌를 한 이유는 당연히 상대의 공격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공격은 물론, 움직임마저 좇을 수 없는 샤메이마루에게 유효한 전법이라곤 이렇게 기다리며 저쪽에서 접근해 주기를 기다리는 수박에 없다.
그래서 왜 「정좌」인가 하면── 사실 그렇게 깊게 생각하고 행동한 게 아니라 나도 모르겠다.
아니, 조금 전에 말한 「웃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던 건 농담이 아니었다니깐.
이 상황에서 기사회생이 가능할만한 작전이나 새로운 힘의 각성 같은 건 바랄 수도 없다.
그렇기에, 나는 결국 위대한 선구자 분들을 흉내 낼 수밖에 없었다.
반격을 목표로 한 작전이라지만 카운터를 제대로 맞출 수 없다는 것은 아까 전투로 실감했다.
샤메이마루의 공격에 카운터를 시도해도, 그조차 반응하여 피해버린다.
애당초 서로의 반응 속도와 실제 속도 자체가 너무 차이난다.
상대의 접근하는 시점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내 쪽은 늦지만, 샤메이마루는 내가 움직인 뒤에 판단해도 충분히 여유가 있다.
공격을 멈추고 움직임의 궤도를 바꿔 지나쳐가기만 하면 회피 성공이다. 덤으로 진심이 담긴 이동이라면, 그 여파만으로 오히려 이쪽만 데미지를 받고 끝난다.
──상대의 공격을 예측하고 반격하는 카운터로는 맞지 않는다.
──상대의 공격에 맞으면서, 혹은 맞자마자 반격해야 한다.
즉 직격이 전제조건.
응, 이 작전 생각한 녀석 바보다. 그 바보가 나다.
그러나,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샤메이마루의 움직임을 간파해낼 수 없다는 것은 충분히 실감했다.
공격하는 순간의 빈틈을 찌른다, 그런 작전으로는 안 된다.
공격에 맞는 순간 샤메이마루가 무방비해졌을 때, 말 그대로 「잡는다」. 살을 내주고 뼈를 꺾는 수밖에 없다.
물론, 이것은 만약의 가능성이며, 실제로 실시하자면 극히 어려운 행동이다.
역시 샤메이마루의 속도가 문제다.
전투 개시부터 지금까지, 내 동체시력은 그녀의 움직임을 전혀 따라잡지 못했고, 지금도 그것은 변함없다.
그저, 몇 번이고 공격에 노출되다 보니 몸이 먼저 익숙해져 버렸다.
그녀의 공격은 빠르지만, 패턴이 단조롭다. 리듬이 일정한 것이다.
아마 나를 완전히 얕보고 있기 때문이겠지. 이쪽이 반응할 수 없기에 공격에 변화를 더할 가치를 찾지 못한 것이다.
남은 건 불확실한 공격의 타이밍을 재고, 그것을 감으로 어떻게든 보정할 수밖에 없다.
정좌를 한 것도, 그 순간 자신의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만화에서 그려져 있었기에 상상하기 쉬웠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격 수단을 한정하고, 스스로 배수의 진을 치고,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카운터── 강렬하게 뇌리에 남아있는 장면이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만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눈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연하지만, 불리한 도박이다.
이렇게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만약 실패하면 이길 방도가 없는 작전이라니.
그러나, 나에게는 단 하나,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 점이 있다.
──불리한 도박은 싫어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 마음속엔, 수많은 선구자 분들의 졸라 멋진 명대사, 명장면이 잔뜩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이런 역경……오히려 힘이 솟아오르는 것 같다!
불타올라라, 나의 코스모!
궁지에 몰린데 반해, 오히려 극한까지 높아진 자신의 집중력이 놀랍다.
「……아니요, 정면에서 차날려 마을까지 보내 드리죠!」
됐다. 여기까지는 예상대로.
아무리 나라지만 아무 생각도 없이 만화를 흉내 내기 위해 정좌한 게 아니다. 약간의 책략 정도야 있다.
샤메이마루가 실력을 발휘하여, 조금이라도 전략적이게 싸운다면 나를 순살 할 수 있다는 것은 안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지금도 증명되고 있는 서로의 실력 차이 같은 여러 요인에서 비롯된 여유나 즐기고 싶은 마음 때문이겠지.
그녀는 수준 낮은 자를 상대로는 너무 즐기려 하는 편이니까 말이다.
이쪽이 뭘 하든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간단한 도발에도 정면으로 덤벼올 것이라 예측했었다.
그리고, 그 예측이 적중했다.
샤메이마루가 움직인다.
정확하게는 움직이기 전의 동작. 거기까지라면 내 눈으로도 좇을 수 있다.
여전히 카메라를 양손에 들고 있다. 여태까지 했던 것처럼 발차기로 온다. 이것도 예상대로.
속도는 어떨까? 조금 전까지 해왔던 공격보다, 발차기의 속도가 빠르던 늦던 타이밍이 어긋난다. 확인할 방도는 없다.
어디를 노리고 있을까? 머리다. 정좌한 나와 서있는 샤메이마루의 높낮이를 따져볼 때, 거기가 제일 차기 쉽다. 그렇게 유도했다. 제발 맞기를 빌 수밖에 없다.
눈으로 보고 반응하면 늦는다.
시각은 어디까지나 보조. 몸에 기억된 감각만으로 움직이는 타이밍을 잰다.
굳이 필요한 감각이라면 촉각 쪽이다. 발차기에 맞은 순간을 피부로 느끼면, 조금은 반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엉뚱한 논리.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논리를 의심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완성된 흐름을 그저 충실하게 실시할 수밖에 없다.
시야에 비치던 샤메이마루의 모습이 사라졌다.
온다.
지금.
──여기다아아!!!!!
◆
발차기를 내지른 순간, 둔탁한 소리와 충격이 울려 퍼졌다.
이상한 반응이었다.
오른발이 상대의 뺨에 때려 박히는 감촉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지만, 다음 순간 다리 전체가 진동하는 것 같은 충격이 내달린다.
아야는 한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제정신이 들어 눈을 뜨니, 자신이 땅에 누워 있다는 것을 간신히 깨달았다.
설마, 공격을 실패한 건가.
힘을 주체 못하고 넘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위화감이 도는 오른다리에 시선을 옮긴다.
아야의 오른다리는, 무릎 관절 부위에서 옆으로 꺾여 있었다.
「──에?」
아야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이해했다.
확실히 발차기는 맞았을 터. 뺨에 붉은 자국과 입에서 분수처럼 피가 쏟아져 내리는 무녀를 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야의 발차기를 맞고 날아갔어야 할 의식은 날카로운 눈빛과 함께 눈의 안에 남아 있다.
무녀는 아야의 다리를 잡은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차기가 직격하는 순간, 오른손으로 발목을 붙잡고, 왼손을 무릎에 올린 뒤 그대로 꺾어버린 것이다.
「아……」
파괴된 관절에서 뇌로, 그제서야 아픔이 전달됐다.
「……크, 아, 아아아아악……!」
밀어닥친 격통이 아야의 이성과 사고를 삼킨다.
비지땀이 솟아오르고, 입은 말을 이루지 못하고 그저 의미 모를 비명만을 흘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이를 악물지도 못한 채, 마치 이 비명을 지르면 격통이 조금이라도 편해진다고 믿는 것처럼, 입을 연 채 아야는 허덕였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말이었다.
이미 속으로 결판이 났다고 생각하고 있던 아야는, 지금 사태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반격은 물론, 저항조차 하지 않는 아야에게, 무녀는 곧바로 추격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마운트 포지션을 잡고, 절대적으로 우위인 자세를 확보한 뒤, 주먹을 치켜든다.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다.
무녀가 주먹을 머리에 꽂아 넣기만 하면, 승부는 끝난다.
아니, 그녀의 공격력이라면 생명을 앗아가는 것 또한 가능할 것이다.
「아……에……?」
눈물을 흘리던 아야도,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이성과 냉정한 사고력 덕분에 간신히 상황을 파악했다.
파악만 했을 뿐, 이해할 수는 없었다.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 차있다.
싸움을 끝내기 위해 공격한 직후 격통에 덮쳐지고, 겨우 제정신을 차리고 보니 생명의 위기다.
혼란과 공포만이 가슴 속에서 흘러넘치고 있었다.
「……」
「……아니……그……」
주먹을 치켜들고 내려치기 직전에 멈춘 무녀의 의도를 알지 못하여, 동요가 늘어만 간다.
……왜 그러는 거야?
그대로 내려찍어 죽일 생각 아니었어?
혹시, 지금 자신을 죽이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쿠레이의 무녀에게도 입장이란 것이 있다. 텐구라는 종족과 적대하기 싫어서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젠장, 아프다. 추측하는 것도 귀찮다. 모른다. 그러나, 찬스였다.
땀이 비오듯 흐르고, 심장이 경종을 친다. 그 움직임과 동조하여 쑤셔오는 무릎이 참지 못할 만큼 아팠다.
모든 의심을 뒷전으로 돌리며, 아야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고민했다.
타파가 아니다.
다리가 부러진 데다 한 번만 더 맞았음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역습을 꾸밀 정도의 근성은 아야에겐 없었다.
소시민 근성이, 그저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강요한다.
──어떻게 하지, 뭐라고 해야 하는 거야?
모든 움직임을 봉쇄된 자신이, 지금 유일하게 가능한 것은 말하는 것 뿐이다.
마지막 일격을 주저하는 무녀를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기울이기 위한 말이 필요했다.
대략 한 두 마디 정도. 겨우 그 정도의 말에 결과가 정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뭐라고 해야 되지?
마지막 순간에, 뭔가 멋진 대사를 생각해 낼 수 없었다.
「……」
완전히 위축돼버린 아야는, 죄여든 웃음을 지으며, 그럼에도 어떻게든 목소리를 냈다.
「훌륭……합니다」
그런 맥 빠진 찬사만이, 불쑥 흘러나왔다.
끝났다, 라고 아야는 속으로 포기했다.
현실에서 도피할 용기조차 없어, 조심조심 무녀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올려다본다.
놀란 것 같은, 멍한 표정이 얼굴 위로 떠올라 있었다.
어떤 곤경에 빠져도 날카로움을 잃지 않았던 눈빛이 사라지고 아이가 놀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무녀가 가만히 아야를 바라보고 있다.
거기에 이끌린 아야 또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묘한 공기가, 두 명의 사이에 흐른다.
팽팽하던 기세가, 어느새 사라졌다.
무녀가 천천히 주먹을 풀더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갑자기 뒤바뀐 상황에 사고가 따라잡지 못한 아야는 멍하니 무녀를 올려볼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전의를 잃은 무녀는, 아야의 말에서 여운을 느끼듯 잠시 서있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맙다」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그녀에게, 아야는 넋을 잃고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
벙 쪄있는 샤메이마루를 뒤로 하고, 나는 요괴의 산을 타기 시작했다.
부상당한 그녀를 두고 가자니 마음이 괴롭지만, 서로 적이니 이제 와서 뭘 어쩔 수도 없다.
뭐랄까, 내가 지나간 뒤에는 죄다 시체 투성이구만. 한명도 안 죽였는데 말이지.
절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다, 휘말리기 쉬운 상황 탓이라고.
어떻게든 궁지에서 벗어나고 냉정하게 생각하자니 방금까지 내가 처했던 상황이, 이제야 현실감이 들며 뇌리에 떠오른다.
과연 그걸 승부라고 말해도 괜찮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승부에 이겼다.
그곳에서 쓰러지지 않고, 목적을 위해 계속 행동할 수 있다.
상대의 방심이라거나, 여러 우연 덕에 나온 결과긴 하나, 결판임에는 틀림없다.
만약이란 없다.
아랑전에서도 그랬고.
그러나, 그 순간 승부를 낼 수 있었던 건, 솔직히 내 자신도 믿을 수 없었다.
상상하던 대로, 아니. 그 이상의 결과였다.
원래대로라면 제대로 한 방 먹을 작정이었지만, 그 공격에 맞는 순간, 나는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발끝이 뺨에 닿은 감촉을 느끼고, 그에 맞춰 머리를 돌려 위력을 죽였다.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지금 이렇게 일어서서 걷는 것조차 불가능 했을 것이다.
턱이 부숴지고 최악의 경우 반격조차 못한 채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뺨이 새빨갛게 부어올랐고, 입 안쪽은 부러진 이빨 때문에 크게 베여 갈기갈기 찢겨 있다. 게다가, 아까부터 피 구역질이 멈추질 않는다.
전투의 긴장이 풀려서 그런 건지, 오른팔과 옆구리의 아픔이 더 심해졌다.
팔의 출혈이 심해서일까, 의식도 몽롱하다.
데미지는 깊고, 피로도 크다.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실전을 연속으로 경험한 결과인가──.
아직 목적도 이루지 못했으면서 한계 직전의 상태지만, 이상하게 기분만은 밝았다.
샤메이마루 아야라는 강적에게 이겼다는 달성감이나 상쾌함, 때문일 것이다.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비슷하긴 하지만, 역시 조금 다를지도.
내 가슴 속엔, 아까 들은 그 말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
「훌륭……합니다」
나도 놀랄 만큼 작전이 제대로 맞아 떨어지고, 그 즉시 추가타를 넣기 직전 제정신을 차리고 우뚝 멈춰버린 내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이대로 전력으로 주먹을 내려찍을 수 있을 만큼 냉혈한도 아니고, 이대로 풀어줘 해방하면 반격 당하는 거 아닐까 하는 불안도 있어, 어째야 할지 우왕좌왕 헤맸다.
그렇게 가벼운 혼란에 빠져 있던 내 마음에, 그 한 마디는 기묘할 정도로 깊게 뿌리를 내렸다.
그 말이 난처한 나머지 어쩌다 내뱉은 거라는 것 정도야 나라도 안다.
샤메이마루 입장에서 보면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
어떻게든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입에 담은, 그런 의미 없는 말이겠지.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그때, 나는 분명 기뻤다.
모미지에게 칭찬 받았을 때와 비슷한 따스한 느낌을 느꼈다.
아니, 그때보다 좀 더 강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무심코 얼굴에서 웃음이 나올 정도로.
……왜 그런 거지? 샤메이마루라는 캐릭터가 더 유명해서?
그렇다지만 단 한마디에 함락되다니, 역시 나 방어력 너무 약한 거 아냐?
그나저나──…… 의외였다고나 할까, 나도 잘 모르겠다.
주체 할 수 없는 정체 모를 감정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생각할 때마다 웃음이 튀어나오는 걸 멈출 수 없다.
몸은 피로에 절어 있는 게 분명한데, 발이 묘하게 가볍다. 이대로 산을 꼭대기까지 왕복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산을 올라가는 목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 목적은 납치당한 아이를 찾는 것이다. 명확한 목적지는 없다.
그러고 보니, 승부에 이기면 아야가 도와준다고 약속했었지. 이제야 생각났네.
그렇지만, 약속이었다고는 해도 내가 다리를 부러뜨려버린 상대에게 「약속 대로 협력해라. 어이, 얼른 일어서」같은 말을 할 수도 없고…….
남은 체력은 얼마 없지만, 이대로 산을 닥치는 대로 탐색할까, 협력자를 찾을까.
이 둘 중에 현실적인 수단을 따지면, 어라──?
「멈춰라 하쿠레이의 무녀여」
열심히 고뇌하고 있었던 탓도 있겠지만, 역시 피로가 심한 것 같다.
나는 그들의 접근을 눈치챌 수 없었다.
「취락을 지키는 초계 텐구를 쓰러뜨리고, 나름대로 지위가 있는 샤메이마루 아야를 꺾은 네 행위는, 이미 무시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백랑 텐구인 모미지나 까마귀 텐구인 샤메이마루와도 다른, 묘하게 주렁주렁 거리는 모습의 대텐구 다섯 명이 앞에 서있었다.
모두가 평범한 녀석들이 아니라는 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지금 내 심정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비유가 있었던 건, 약간의 행운이었다. 응.
「따라와라. 우리들 텐구의 장, 천마님이 너를 직접 만나보겠다 하신다」
──절벽 위쪽에서 메탈 쿠우라 떼거리가 나타났을 때의 절망감.
정말로, 싫다고 이런 거!!!
◆
──호오.
하쿠레이의 무녀를 본 천마는 내심 감탄했다.
역대의 무녀들은 모두 주시해왔으나, 그 중에서 자신과 얼굴을 마주한 자는 적다.
거의 대부분 천마가 일방적으로 알고 있을 뿐. 그나마도 요괴 입장에서 보면 얼마 되지도 않아 대가 바뀌어 버린다.
따라서, 지금까지 천마가 가져온 하쿠레이의 무녀 개인에 대한 인상은 상당히 옅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서로 마주하고 있는 무녀는 천마의 하쿠레이의 무녀에 대한 인식을 뒤바꿔버릴 정도로 강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이렇게 텐구의 대장인 자신과 대등하게 마주 보는 것 자체가 놀랍다.
상하 관계를 중요시하는 텐구 사회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같은 텐구조차 천마와 한 방에서 서로 마주하면 위축된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이 무녀는 평범한 텐구 이상으로 간이 컸다.
게다가, 그녀에게 있어선 적에게 포위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이 상황에서 한치도 기죽지 않은 그 모습에도 감탄이 흐른다.
초계 텐구의 보고부터 시작해, 샤메이마루 아야의 접촉까지 전부 천마의 귀에 닿아 사태가 되고, 그 샤메이마루를 쓰러뜨렸다는 사실이 이야기를 키웠다.
하쿠레이의 무녀가 어떤 목적으로 요괴의 산에 방문했는지는 아직 수수께끼이나, 일으킨 행동만으로도 이미 문제 덩어리다.
심부름 보낸 텐구들을 따라 취락까지 얌전하게 따라온 것을 보아 쌍방의 전력차는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지금, 천마와 하쿠레이의 무녀는 단 둘이서 마주하고 있으나, 그것은 천마 자신이 장난스레 흥미를 품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바깥에는 물론이요, 천마의 저택 주변에는 이미 텐구중에서도 정예로 꼽히는 병사들이 배치되어 있다.
어딜 어떻게 따지던 무녀 입장에선 압도적으로 절망적인 상황.
그것을 이해하고, 이미 온몸이 넝마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티끌만큼의 두려움조차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에, 천마는 감탄한 것이었다.
「풍문으로 들어오던 것과 다르지 않은 강한 인간이군……」
작은 혼잣말이었지만, 그것은 텐구의 장이 인간에게 표하는 최대의 칭찬이었다.
당대의 무녀가, 역대의 하쿠레이보다도 한층 더 뛰어나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다.
그 말엔 여러 의미가 숨겨져 있었지만, 천마는 그런 사실을 지금 실감하며 재차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 자신의 영역을 너무 넘어섰구나」
천마는 자세를 바꿔 무녀를 노려봤다.
명백한 위협이었다.
게다가, 위협하는 장본인이 텐구 중에서도 제일의 실력자. 효과는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온몸을 추로 눌리는 착각마저 느껴지는 압력이 주위 일대를 둘러싼다.
벽 너머에서 대기하고 있던 텐구들이 위축당할 정도의 위압감이었다.
무녀는 그제서야 표정을 굳혔다.
그뿐이었다.
「……물러서지 않을 셈이구나, 그대는」
이 얼마나 강한 의지인가.
천마는 말없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장소에서 그대를 처리하는 것은 간단하다. 텐구의 영역을 침범하고, 동포에게 위해를 가했다. 명분은 충분하지.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서로의 입장이 있다. 이날까지 쌓아온 두 종족의 관계를 무너뜨리지 않고서야 극단적인 결단을 내릴 수는 없다. 그것은 그대도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겠지.
무녀의 날카로운 시선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하쿠레이의 무녀라는 중책을 맡은 인간이다. 그런 당연함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런 당연함을 짓밟고 자신의 의지를 지켜내려 하는 것이다.
젊다.
그리고, 그러므로 바람직하다.
부모가 아이에게 그런 감정을 품듯이, 천마는 눈앞의 인간에게 한결같은 사랑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천마에게는 입장이 있었다.
너무나도 안이한 그 판단을, 자신의 입장이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은 물러서고. 마을로 돌아가라.
이번 사건을 불문으로 붙일 수는 없지만 이쪽도 다소 양보하마. 그것이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기에 필요한 결단이다」
천마는 딱딱한 어조가 아닌, 생각도 못한 상냥한 말투로 무녀를 설득했다.
다른 텐구들은 불만을 가지겠지만, 이것이 제일 원만한 끝맺음이라고 판단했다.
도리를 모르고 감정만으로 움직이는 바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무녀도 이 정도면 물러날 것이다.
천마는 아직도 딱딱한 표정을 한 무녀가 흐트러진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 살그머니 눈을 감았다.
──여기서 하나의 큰 오차가 있다면, 그것은 서로가 가진 「전제」였다.
바로 옆에서 엄청난 위협이 갑작스레 출현한 것을 감지한 천마는 무심코 눈을 크게 떴다.
「무슨……!」
시선 저편에는 그 누구도 아닌, 아직까지 변함없이 서있는 하쿠레이의 무녀만이 있었다.
외모가 변한 것도 아니고, 어떠한 행동을 일으킨 것도 아니다.
허나,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인상만이 완전히 변해버렸다.
젊고, 미숙한 하쿠레이의 무녀.
인간 치고는 용감하며 기백 있는 뛰어난 자.
경의를 표하기에 적합한 존재.
그 모든 칭찬에 이르기까지 가져온 「전제」가, 지금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다.
──다르다. 이 녀석은…….
천마의 설득하는 것 같은 말에는 모두 여유가 배어 있었다.
자신이 강자이며, 눈앞의 인간은 약자.
자신이 주고 눈앞의 인간이 받는다.
이끌고, 이끌린다.
그 모든 전제가 되어오던 인식이, 실수라 깨달았다.
──「적」인가!
깨닫았을 때에는 늦었다.
무녀의 몸에서 한순간 무언가의 힘이 뿜어져나오고, 이상하리만치 붉게 충혈된 눈이 번쩍거리며 빛난다.
천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안쪽에서 가다듬고 있던 혼신의 일격을 무녀가 해방했다.
◇
텐구의 대장인 천마님.
대면했을 땐 상상했던 것보다 엄청난 위압감을 뿜어 대서 경탄했다.
게임에선 등장하지 않은 설정밖에 없는 존재니 인상이 얕았지만, 이 요괴가 샤메이마루 아야의 상사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모습이 거의 「남자 훈련소 3학년 회장·다이고인 자키 선배」라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세기말 패자 권왕이라던가.
정말로 굉장한 위압감이다. 물리적으로도 말이지.
동방 캐릭터의 원칙에 따라 어른스러운 미녀를 약간이나마 기대하고 있었다만, 실제로는 남자. 게다가 앉아 있는데 이쪽이 올려봐야 하는 거구였다.
농담이 아니라 북두의 권에서 나오던 일반 캐릭이랑 라오우님 정도의 차이다.
이 사람이 텐구의 장이라니, 진짜로 설득력 쩌네요.
샤메이마루와는 다른 의미로 격이 높은 상대라는 것을 깨달아 버렸다.
아니, 싸우는 것을 전제로 분석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거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나를 여기로 데려온 텐구 분들은 전부 말없이 살기 같은 걸 날리고, 처음 방문한 텐구의 취락에서는 감동할 여유마저 잊을 정도로 적의 담긴 시선을 받고 있었다.
여기는 내 입장으로 보자면 완전히 적진 중심이다.
물론, 만약 이곳의 텐구들을 상대로 전투라도 하게 된다면 승산은커녕 살아남을 가능성조차 전무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한들, 두루뭉술한 결말은 다른 텐구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 본래의 목적도 상황이 이래서야 절대로 달성할 수 없다.
텐구의 장과 직접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일말의 희망을 가져 봤지만── 보는 대로 이 꼴이다.
응, 막혔어.
역시 확신할 수밖에 없다.
텐구 쪽이 양보할 이유 같은 건 없지만, 나 정도는 손가락 하나로 이 세상에서 없애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은 충분할 만큼 있다.
덤으로, 드디어 본격적으로 의식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시야는 희미해지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상처의 고통만이 생생해서, 오히려 다른 감각들이 무뎌지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다.
하물며, 상대가 이런 요괴여서야 더욱 그럴 것이다. 승부조차 안 되겠지.
──그럼, 포기할건가?
반대, 다.
심지가 굳건한 건지 바보 같은 건지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에 처했으면서도 내 안에 뿌리 내린 무언가가 포기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것은 고집일지도 모른다.
운이 좋았다고는 해도, 나는 그 샤메이마루 아야에게 이겼다.
그리고, 인정받았다.
그 사실이, 내게 자부심을 새겨 넣었다.
──이런 곳에서, 쓰러질 수 있을까보냐.
일단 설정 상으로는 상사라고 해도, 원작에서는 등장하지도 않은 녀석한테 질 수는 없다는 거다.
왠지 나도 내가 터무니없는 걸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잡생각을 하며, 그 고집을 버팀목 삼아 나는 마지막 힘을 쥐어짰다.
나와 마주한 천마가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면서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었지만, 의식을 집중하여 견뎌낸다.
감각이 무뎌져 있던 것이 다행이었다.
몸의 아픔에 약해질 것 같은 의식을 어떻게든 깨운다.
어차피, 제대로 싸울 수도 없다.
텐구의 장이라고 할 정도니까, 그냥 싸워도 최종보스다운 능력이나 기술을 가지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렇지만, 유감입니다. 저, 이제 그렇게 싸울 생각 없거든요.
단 한발 뿐.
시작부터 지금의 내게 남은 모든 것을 건다!
그 후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 거 알까보냐! 불발이든, 피하든, 아니면 효과가 없든 결과는 변함없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남은 것 전부를!
으랏차아아아아!!!! 리미터 해제! ──기분만.
그런 느낌으로 텐션만을 끝없이 높이고 있자니 두근, 하고 심장이 이상할 만치 큰 고동을 일으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슨……! 」
눈치챘나. 에이잇, 나무삼!
한계를 넘은(것 같은 느낌이 든) 나는, 일찍이 나 자신도 보지 못했을 정도의 힘을 담은 「백식관음」을 천마에게 사용했다.
혼신의 일격이 맞았는지 맞지 않았는지.
그조차도 확인하지 못한 채, 나는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무슨 일이십니까!」
대텐구를 앞세워 알현실로 눈사태가 밀려오듯 들이닥친 텐구들은 처음 눈에 들어온 광경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전투로 일어났음이 분명한 굉음과 충격이 저택 전체를 뒤흔든 것이다.
당연히, 싸움의 흔적이 생겼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오른팔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인 상태로 쓰러져있는 하쿠레이의 무녀. 그것을 봤을 때 모두가 「역시나」라고 생각했다.
이 인간은 제재를 받을 만큼의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장은 대화를 바랬던 것 같지만, 결국 말로는 끝내지 못했던 것이겠지, 라고 납득했다.
그러나, 그 뒤로 펼쳐진 광경엔 모두가 눈을 의심했다.
무녀와 마주선 위치에, 똑같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천마의 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그 거체는 벽에 박히고, 몸의 중앙에는 주먹의 자국이 선명히 새겨져 있다.
이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할 만큼, 이곳에 모인 텐구의 정예들은 어리석지 않았다.
믿을 수 있을 법한 상황은 아니다.
그러나, 틀림 없는 현실이다.
텐구의 장이, 인간에게 진 것이다.
「……주, 죽여라」
재빨리 제정신을 차린 대텐구는, 겨우겨우 말을 짜냈다.
「녀석을……하쿠레이의 무녀를, 빨리 죽여라! 숨통을 끊어라! 시체는 천에 싸서 강에 던져버려라! 흔적 하나라도 남기지 마라!」
무서운 기세를 뿜어내는 표정이었다.
마치 무녀의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 같은 외침.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당황하면서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쓰러진 채 꿈쩍도 하지 않는 무녀를 포위하고, 칼을 뽑아 들었다.
「죽여라!」
대텐구가 비명을 내뱉듯이 외치고, 그 명령에 부하가 따르는 것보다도 빠르게, 찰칵, 하는 낮선 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그 자리에 모인 전원이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스쿠프」
시선의 끝. 열어진 창문의 창틀에 앉아 있는 자가 있었다.
카메라를 한 손에 들고 등 뒤에는 어째선지 인간의 아이를 업고 있다.
아이는 자신들을 노려보는 텐구의 박력에 위축되어 얼굴을 업혀 있는 자의 등 뒤에 묻었다.
「뜻을 아시나요? 이 바깥 세계의 말」
「히메카이도 하타테!」
이름을 불린 것에 만족하며, 하타테는 미소 지었다.
「대텐구님이 이름을 기억해주시다니, 더할 나위 없이 영광입니다」
「……네 녀석, 무슨 짓이냐?」
「어머, 이 물건을 모르시나요? 카메라라고 하는──」
「필름을 이쪽으로 넘겨라!」
하타테의 농담을 무시하며, 대텐구는 큰 목소리로 명령했다.
상태가 불온한 방향으로 기울어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부하 텐구들이 표적을 하타테로 바꾸고 칼을 쥔다.
텐구로서의 상식을 가진 자라면,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를 이해했을 것이다.
천마의 저택에서, 직속 부하인 대텐구의 적의를 받고 이렇게 병사들에게 포위당했다.
이 장소가 언제 처형장으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다.
텐구 사회에 사는 자로서 그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하타테는 태연자약한 표정으로 창틀에서 내려왔다.
본래, 천마의 저택에 출입을 하려면 높은 지위를 가진 텐구의 허가가 필요하다. 하타테는 물론 그것을 알고 있다.
「불경스러운 것에도 도가 있다. 히메카이도 하타테!」
「……무슨 짓이냐, 하타테!」
대텐구의 부하인 다른 텐구들에게서도 하타테의 만행을 비난하는 말이 나온다.
하타테가 내려선 창문의 뒤쪽에서, 아야가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그 옆에는, 다리를 부상당한 그녀를 지지하듯이 모미지가 부축하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무녀에게 당한 상처가 남아있지만,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사, 샤메이마루 아야! 네 녀석까지……!」
눈매를 세우는 대텐구의 얼굴에 숨기지 못한 초조함이 떠올랐다.
하타테와 아야. 두 명의 이름을 알고 있던 이유는 간단했다.
텐구 안에서 그녀들의 존재가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야 같이 나쁜 평판 탓에 몰리는 시선 탓도 있지만──무엇보다도 한 마리의 요괴로서 가진 실력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들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자각이 있을까.
적어도, 대텐구에게 있어 지금 이 사태는 단순한 말단 텐구가 대들 뿐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에엣! 아…… 아아아, 아닙니다! 뭔가 오해하고 계세요, 대텐구님!」
안 그래도 미쳤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 친구의 행동에 넋을 잃고 있는데, 이번엔 상사에게서 살기 섞인 시선을 받은 아야는 더욱 더 안면이 창백해졌다.
무녀에 지고 잠시 뒤, 어느새 모미지와 인간의 아이를 업은 하타테가 달려와 아야를 치료하고 있었다.
인간에게 진 꼴사나운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할까 하며 전심전력으로 경계하던 아야를 그대로 놔두고, 하타테는 취락으로 가자마자 망설임 없이 천마의 저택을 향해 날았다.
아이는 어쨌든, 모미지는 무언가 사정을 알고 있는 건지 입을 다문 채 하타테를 따랐다.
저절로 모미지에게 부축 받던 아야도 그 뒤를 따라가고 있자니, 점점 싫은 예감이 든다 했더니만, 보는 대로 하타테가 미친 짓을 하고 있다.
시야엔 살기를 띈 대텐구에, 쓰러진 채 하쿠레이의 무녀처럼 정신을 잃은 텐구의 장──뇌의 처리 용량을 뛰어 넘는 광경이었다.
그 결과, 영문도 모르는데 사태에 말려 들어간 것 같다.
아야의 혼란은 절정에 치닫고 있었다.
「하쿠레이의 무녀의 목적은, 이 아이입니다」
재빨리 변명한 아야와는 대조적으로, 하타테는 기묘할 정도로 침착하게 아이를 내보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을에서 요괴에게 납치된 아이를 돕기 위해, 산으로 침입한 겁니다. 맨 처음 그 무녀와 대립한 이누바시리 모미지가 본인에게서 들은 사실입니다」
그 말을 들은 모미지가 긍정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도 텐구의 권위자를 눈앞에 뒀으면서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그런 두 명 사이에 낀 아야의 당연한 반응이,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기묘한 광경이었다.
「바로 방금, 아이를 구출했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요괴는 잡아뒀습니다」
「……그러니까, 뭐냐? 그대로 무녀와 함께 마을에 돌려주기라도 하라는 거냐」
하타테의 진의를 눈치채고 마음을 진정시킨 대텐구는 당황한 표정을 털어내고 본래의 위엄을 되찾았다.
천마의 뒤를 잇는 존재로서 부끄럽지 않은, 강렬한 위압감이 하타테 일행을 덮친다.
보통의 텐구라면,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다.
그만큼 쌓아올린 권위와 힘이 있다.
「어차피, 이곳에 도달할 때까지의 사정은 알 필요 없다, 문제는 지금이다. 무녀는 죽인다. 그 아이도 죽인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대텐구의 살기에 노출된 등 뒤의 아이가 한층 더 움츠러들었다.
그럼에도 정신을 잃지 않은 것은, 하타테가 그런 위압감에지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황의 지켜보고만 있는 아야조차 위축하고 있음에도, 당사자인 하타테는 오히려 평소보다도 당당한 태도로 미소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아야의 눈엔 즐거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친구의 의외인 일면을 엿본 아야는 놀라기보다 먼저 두려워하고 있었다.
뭐야, 이렇게 위험한 녀석이었나?
「지울 수 없어요」
「뭐?」
「목격자를 몰살하든, 기록 하나 남김없이 말소하든, 사실은 지울 수 없습니다.
텐구의 장인 천마님이, 고작 인간에 불과한 하쿠레이의 무녀에게 패배했다는 사실. 어떻게 처리한들 변명 할 수 없죠」
「닥쳐라! 불경을 저지른 죄를 처벌할 뿐이다, 이 무녀는 천마님의 배려를 짓밟았단 말이다!」
「사정 따윈 알 필요 없다, 아니었나요?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을 어떻게 속일 셈인가요.
천마님에겐 싸울 생각이 없었는데 빈틈을 찔렸으므로 안 된다. 정정당당하지 못했으니 무녀에게── 인간 따위에게 당해 버렸습니다. 기사는 그렇게 쓸까요?」
「네, 네 녀석도……죽을 셈이냐!」
하타테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불경 불손한 말에, 대텐구의 얼굴이 분노로 새빨갛게 물든다.
모미지를 제외한 모든 텐구의 눈이 뒤집혀버릴 것 같은 언동이었다.
「보시는 대로, 아무리 숨기려 한들 사실을 세상에 알리면 텐구의 권위는 땅에 추락합니다.
이미 피할 수 없어요, 요괴의 산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권위」의 위기죠. 작게 다스릴까, 보다 크게 망칠까. 선택해주셨으면 합니다만?」
여봐란 듯이 카메라를 내밀며 하타테는 선택을 강요했다.
사실을 아는 무녀를 살려두면, 이번 사건은 외부에 알려진다. 하지만, 하쿠레이의 무녀가 하쿠레이의 무녀인 이상 환상향 전체의 혼란을 바라고 있을 리는 없다. 텐구를 세력의 일단으로서 필요하다 생각하는 야쿠모 유카리도 배후에 있다.
이번 사건이 알려져도, 이야기가 퍼지지 않고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다 확실하게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무녀를 죽인다면, 이쪽이 이 사실을 세상에 퍼뜨린다며 하타테는 텐구를 협박하고 있는 것이다.
텐구가 자신들의 패배를, 스스로 인정하고 스스로 공표한다── 최악의 사태가 될 것이라는 건 명백하다.
「네 녀석도, 같은 텐구일 터……!」
대텐구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하타테를 노려봤다.
「손수 기른 아이는, 피가 연결되지 않아도 귀여운 거에요」
의미심장한 대답에, 사정을 모르는 자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한편, 하타테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재빠르게 눈치챈 아야는 당황했다.
「잠깐, 하타……」
「이 무녀는, 일찍이 우리들이 기르고 있었습니다」
「뭐라고!」
대텐구를 중심으로, 주위에서 경악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런 큰 사건의 원흉이 된 인간을, 기른 것이 하필이면 텐구다.
그녀들이 텐구의 상식을 뒤엎고, 금기에 접했다는 사실을 안 텐구들에게 일찍이 느껴보지 못한 동요가 달린다.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자는, 하타테와 모미지 뿐이었다.
아야는 이미 안색이 반쯤 죽을 상이 되어 있었다.
「맨 처음 요괴의 산에서 이 아이를 찾아낸 것은 아야이며, 그녀를 중심으로 우리들은 하쿠레이의 무녀가 될 때까지 몇 년 동안 은밀히 이 무녀를 길러왔습니다」
「잠깐, 잠깐, 이봐! 거기서 내 이름 꺼내지 마! 너,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서──」
「역시, 네 녀석도냐! 샤메이마루 아야!」
「히익!」
증오의 시선을 받으며 이미 오리발을 내밀 순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야는 절망감에 눈물을 흘렸다.
──끝났다…… 텐구로서의 생활, 전부 끝났다!
뇌리에는, 최악의 광경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취락에서의 추방. 아니면 이대로 처형이다.
그러나, 아야의 생각과는 반대로, 집행자인 대텐구는 내심 불안을 안고 있었다.
저 하타테와 대등한 샤메이마루 아야까지 적이 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최악의 사태였던 것이다.
「이……이누바시리, 그 두 명을 잡아라!」
아야마저 적이 되어버린 이 상황에, 난처한 나머지 대텐구는 모미지에게 명령을 내렸다.
이 장소에서 오직 그녀만이, 위협으로서 인지되고 있지 않다.
일개 초계 텐구라면, 대텐구의 권위에는 절대로 거역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백랑텐구는 대텐구에게 경의를 가진 자들 뿐이다.
「──거절하겠습니다」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들려온 대답에, 또 다시 주위가 말문이 막혔다.
옆에 선 하타테와 한 번 시선을 나눈 모미지는 그때까지 부축하고 있던 아야의 몸을 살그머니 떼어 놨다.
얼굴을 들이대고 똑바로 눈을 바라보며, 아야에게만 들리게 속삭인다.
「반드시 지키겟습니다」
「……응? 뭐, 뭐야? 누구를?」
아야가 그 말의 진의를 확인하기보다 먼저, 모미지는 대텐구 일행과 대립하듯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시야의 끝에 있는 자들은 전원 모미지보다 격이 높은 자들 뿐. 복종해야할 상사 밖에 없다.
그런 그들을 향해, 모미지는 주저 없이 검을 뽑았다.
「네 녀석마저……」
전대미문의 사건에, 이미 대텐구는 할 말이 없었다.
「명령도 완수하지 못한 잡견이……. 검을 든다고 뭐가 가능한가? 네 녀석의 검 따위, 설령 일격이라도 내 목에 닿을 것이라 생각하는 거냐!」
튕겨 날아갈 것 같은 살기가 전신을 때린다.
그러나, 결국은 살기.
각오를 다진 자에게는 어떤 영향도 없다.
이미 모미지는 각오를 끝마쳤다.
오늘, 이곳에서 죽을 각오를.
「──그렇다면, 팔 한 짝」
「뭐라고?」
「혹은, 손가락 하나라도」
「……」
「목숨을 건 일격으로, 몸의 일부를 가져가겠다. 시험이라도 해보시지」
제정신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완고한 결의를 품은 눈빛이, 대텐구에게 향한다.
「……크윽……」
한순간, 대텐구는 압도되고 있었다.
손을 깨무는 정도가 아닌, 그보다 훨씬 위험한 개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말단 텐구 한명이, 대텐구를 포함한 전원과 대적한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이미 반쯤 정신줄을 놓고 있던 아야는 어깨를 얻어맞았다.
제정신을 차린 아야의 시야에 비친 것은, 이 상황의 원흉인 하타테였다.
눈앞의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던 누군가에게, 일찍이 느껴보지 못한 분노와 살의가 넘쳐 흐른다.
「너, 너 말이지……」
「이걸로, 뭘 어쩌든 도망갈 수 없는 상황이 되버렸네」
하타테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야, 넌 어쩔 거야?」
「죽어! 일단 너부터 죽어!」
「이대로라면 확실히 죽을 거야. 너랑 같이」
「이런 상황이 된 건 너 때문이잖아!」
「그렇네. 그렇지만, 이건 「너 때문」이기도 해」
「……!」
──잘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구나───!
속에서 그런 한 마디를 내뱉고 싶었지만, 분노가 너무 쌓였는지 아야는 입을 뻐끔뻐끔 거리며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똑같은 상황에 처한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침착한 표정으로 하타테는 미소 지었다.
그 미소에서 상냥함조차 느껴질 정도다.
「나는 여태까지 사실밖에 말하지 않았어.
그 아이를 찾아낸 것도, 기른 것도 너. 나와 모미지는 자의로 그 일에 협력했을 뿐이야. 후회는, 절대로 하지 않아」
이야기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 라고 말을 끊으려던 아야는 말문이 막혔다.
하타테가 지금 있는 장소가 착각될 만큼 따스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아이를 포함한, 이 장소의 전원을 도울 수 있는 방법. 아야라면 이미 눈치챘지?」
「아니……그건, 무리……」
「도망갈 장소는 없어」
「…………」
「어째서, 문답무용으로 살해당하지 않는 건지. 자신의 입장과 실력은 알고 있는 거지?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배짱을 가지는 거야」
「상사를, 위협하라는……!」
「괜찮아」
고뇌하는 아야를, 하타테는 상냥하게 설득했다.
「지옥에 떨어질 때는 같이 떨어질 테니까」
「너 혼자 떨어져어어어────!!!!」
아야의 절규가, 긴박한 분위기를 강제로 박살냈다.
전원의 시선이 집중되고, 눈물을 흘리며 웃는다는 기괴한 얼굴로 아야가 하늘을 가리킨다.
주목하라는 뜻이었다.
「─여러분! 깨끗하고 올바른 샤메이마루 아야가 말합니다!」
자포자기하며 소리를 내지른다.
「이 하쿠레이의 무녀는, 내가 길렀다아아아!!!!!」
◆
마지막 대사를 한토씨도 틀리지 않고 말을 끝낸 아야는 선대의 과거에 관련된 이야기를 마쳤다.
그 후에 과연 어떻게 됐을까?
지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야기를 듣고 끝내 이젠 못 견디겠다는 듯이, 유우기가 뿜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 오니님은, 자신의 옛날이야기가 마음에 드신 것 같다.
아야는 잘 넘어갔다는 안심과 함께, 기묘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속이듯이 웃었다.
그 날. 지령전에서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유쾌한 오니의 웃음소리가, 성대하게 울려 퍼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