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20 「불사」
「……누나, 괜찮아?」
소년은 조심스레 눈앞의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아니, 정말로 저게 「사람」일까?
멀지 않은 곳에 자신이 사는 마을이 있다고는 하나, 여기는 깊은 숲속이다.
짐승이나, 운이 나쁘면 요괴와 마주칠 수도 있는 장소다.
커다란 나무의 뿌리에서 그녀는 홀로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아 있었다.
머리 위로 걸쳐진 옷은 너덜너덜했으며, 그 밑으로 보이는 얼굴도 상당히 더러웠다.
더러운 것은 겉모습뿐이 아니었다. 그 눈동자 또한, 마치 진흙이 들어간 것처럼 탁했다.
도저히 살아있는 인간으로 보이진 않는다. 마치 무덤에서 기어 나온 죽은 사람 같았다.
그러나, 외관은 적어도 사람 같았다.
게다가 여자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희고 긴 머리카락이 옷의 틈으로 엿보인다.
더러워졌음에도 아름다움을 뽐내는 그녀의 모습에,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미아, 야……?」
대답은커녕 이쪽을 쳐다보지조차 않는 그녀를 걱정하고 있던 것은 소년만이 아니었다.
소년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소녀가, 소년의 그늘에 숨어 의문 담긴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슬슬 해가 질 거야?」
「밤이 되면 요괴가 나올지도 몰라」
소녀와 소년은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걱정을 담아 물었다.
여자는 잠시간 그 둘을 탁하게 물든 눈으로 바라봤지만, 얼마 안 가 흥미를 잃은 듯이 눈을 감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마디 말조차 하지 않는다.
「……어쩌지?」
소녀가 소년에게 물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하기에는 버거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그대로 내버려두지 못하겠다는 마음만은 같았다.
그때, 갑작스레 근처의 수풀이 흔들렸다.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 같은 기척에 위기감이나 불안감을 가질 틈도 없이 그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뛰쳐 나왓다.
짐승이었다.
어린 두 명은 그것이 어떤 짐승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송곳니와 손톱을 가진──그리고 피에 굶주린 짐승이었다.
「──컹!」
가장 간단해 보인다고 생각한 것일까, 말문이 막힌 아이들을 짐승이 포효를 내지르며 덮쳐든다.
당연하게도, 아이들에게는 그것에 저항할 방법도 여유도 없었다.
살이 찢기는 소리와 함께 선혈이 흩날린다.
「우……아아……앗!」
소녀는 말을 잃고, 소년 또한 겨우겨우 신음 소리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짐승의 송곳니는 목에 꽂혀 있었다.
단, 그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조금 전까지 주저앉아 있었던 여자의 목이었다.
여자의 입가에서 거품이 오르며 피가 흘러내린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처음 봤을 때와 똑같이, 어떤 감정도 없다는 듯이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목을 물고 있던 짐승이 점점 힘을 잃어갔다.
어느새 꺼낸 것일까, 여자가 쥔 칼이 짐승의 배를 꿰뚫고 있었다.
짐승이 두 명을 덮친 순간, 여자는 그 사선에 끼어들어 방패가 된 것이다.
목숨이 끊긴 짐승이 땅에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여자도 같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누나!」
소년이 당황하며 달려들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을 흘리는 소녀가 그 뒤를 따랐다.
쓰러진 여자는 흐르기 시작한 피로 새빨갰다.
아무리 아이라지만, 그것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
여자는 무어라 말을 하고 싶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마치 그것이 귀찮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고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여자는 숨을 거둿다.
「그런……」
소녀가 맥 빠진 신음 소리를 흘린다.
소년은 자신의 무력함에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변화는 얼마 가지 않아 일어났다.
여자의 목에 새겨진 상처가 갑자기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놀라서 비명을 내지르는 아이들의 존재는 상관없다는 듯, 정체불명의 불길이 상처를 가리듯이 타오르더니── 그것이 사라졌을 때엔 상처도 같이 사라져 있었다. 자국조차 남지 않았다.
상처가 사라진 여자는, 당연하다는 듯 눈을 떴다.
「……뭐야, 아직 남아 있었나?」
짐승에게 덮쳐졌을 때보다 갑절은 될 충격을 받은 소년과 소녀는 처음으로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너덜너덜한 외관과 분위기로는 알기 힘들었지만, 아직 소녀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나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 둘은 그런 사소한 것에까지 생각이 미칠 정도로 침착하지 못했다.
죽은 사람이 되살아났다는 상황에, 서로 감싸 안고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빨리 살던 곳으로 돌아가」
되살아난 여자의 반응은 변함없이 귀찮다는 듯 보였다.
탁하게 물든 눈은 바로 방금 목숨을 걸고 도와준 아이들에게서 떨어져 있었다.
아까 그 행동은 단순히 반사적인 행동이었던 것뿐일까 라는 생각이 들 만큼 관심 없다는 태도였다.
일어서서 앉아있던 나무의 뿌리에 다시 등을 기대 주저앉더니,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입을 닫아 버렸다.
내버려두면 그대로 굶어 죽을 때까지 그곳에 줄창 앉아 있기만 할지도 모른다.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죽어도 되살아나는 사람이 인간일리 없다.
바로 옆에 내버려진 짐승의 시체에서 흐르는 피의 냄새가 점차 강해지기 시작했다.
설령 어른이어도 꽁무니를 뺄 상황이다. 집으로 돌아가서, 지금 일어난 일은 그냥 악몽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윽고, 아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을 눈치챈 여자는 그제야 눈을 떴다.
떠나가는 두 아이의 무사함을 확인하려 했던 것이다.
「저기……」
「……응?」
그러나 눈에 들어온 것은, 이쪽으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온 두 아이의 모습이었다.
그 둘은 점차 창백해져가는 얼굴로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마워요……」
어느 쪽이 말한 건지 모를 말을 듣고서, 그녀는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간신히 이해했다.
◆
헤매임의 죽림에는 요 며칠간 일상이 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아침, 모코우는 냄새를 맡고 잠에서 깼다.
김과 함께 풍기는 된장 냄새.
볶은 소금 냄새.
──밥의 냄새.
「……아침인가」
눈을 뜨고, 의미 없이 허공을 향해 중얼거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못했던 호화로운 기상을 맛보며 이불 위에서 일어났다.
지금까지 사용해온 얼룩 가득한 더러운 이불이 아닌. 잘 때 기분이 좋은 새 이불이다.
똑같이 새로이 갖게 된 물병으로 목을 축이며 모코우는 바깥으로 나왔다.
며칠 전부터 개축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집은 폐허나 마찬가지였다. 방은 하나밖에 없는데다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조차 없다.
덕분에 요리는 언제나 바깥에서 하고 있었다.
「좋은 아침」
집에서 나와 얼굴을 내미니,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아침 식사 준비에 들어간 두 명이 보인다.
예전과 비교해보면 상당히 변한 아침 풍경이긴 하지만, 제일 큰 변화는 이 두 명이 있다는 것이다, 라고 모코우는 생각했다.
「좋은 아침이에요, 모코우」
「좋은 아침이다, 모코우」
케이네와 선대가 인사로 대답한다.
돌을 쌓아 만든 간이 부뚜막으로 물고기를 구우며, 된장국을 끓이고 있었다. 쌀은 저번의 그 주먹밥이었다.
두 명의 호흡도 잘 맞아, 움직임일 때마다 버팀목이 필요한 선대를 케이네가 타이밍 좋게 돕고 있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한 광경이네.
평화로운 아침을 온몸으로 느끼자, 모코우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우연한 만남 이후로 선대와 관계를 맺고, 약간의 계기로 재회의 약속을 했다.
당연하게도 그 약속은 다음날에 지켜졌으며, 거기에 더해 어째선지 케이네까지 함께하게 되어, 어느새 이런 일상이 시작되었다.
아직 당황스러움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렇지만──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즐겁다.
「모두 좋은 아침~. 불쌍한 아이에게 행운의 작은 토끼가 자비를 베풀러 왔답니다」
「……좋은 아침, 테위」
그런 일상 속에 당연하단 듯이 테위가 끼어들었다.
모코우는 경련하며 비틀어지려 하는 입을 억누르며 얌전하게 인사를 돌려줬다.
지금까지 모코우의 생활환경 개선에 가장 공헌했던 그녀다.
식재료나 자재의 보급을 시작하더니 어디에서 익힌 건지 집의 개축까지, 테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과언이 아니었다.
왜 그녀가 이렇게나 협력적인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모르지만. 그런 고민을 하는 자신을 보며 즐기는 것 같았기에, 모코우는 고민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오늘은 조리 기구를 가져 온 것 같다. 짊어지고 있던 보자기를 땅에 내려놓으니, 철 소리를 내며 짐이 굴러 나온다.
「……항상 신경 쓰이던 건데, 이런 건 어디에서 가져오는 거야? 이런 이상한 주전자 처음 봤어」
「응─? 그렇게 돈 드는 건 아냐. 버려져 있던 걸 주워서 고치거나 닦아서 가져왔을 뿐. 그 주전자는 무연총에서 주운 거려나. 아마 바깥 세계의 물건일 거야」
모코우는 따르는 부분에 뚜껑이 있는 기묘한 생김새의 주전자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펴봤다.
지금, 케이네가 사용하고 있는 부엌칼도 테위가 가져온 것이다.
구멍이 뚫려 있어서 불량품인가 했지만, 이게 또 오이 같은 걸 자를 때 달라붙지 않아서 편리해──란다. 어째선지 선대가 설명해줬다.
선대와 케이네의 옆에서 모코우가 작은 심부름을 돕고, 테위가 그런 모코우를 놀리고 있자니, 마지막으로 치르노가 왔다.
「스승! 케이네! 모코우! 토끼! 좋은 아침─!」
「어서와라, 치르노」
「안녕. 오늘도 힘찬걸」
「좋은 아침이야. 여기까지 오는 길은 제대로 기억했나 보네」
「그것보다, 아직도 나를 토끼라고 부르다니. 이름은 좀 기억하란 말이야, 바보」
「누가 바보냐!」
「싸우지 마라. 곧 아침 식사 시간이다」
「네~에」
「예이예이……」
「테위. 대답은 「네」다. 그리고 한 번으로 끝내라」
「……네. 그런데, 선생님─. 나도 일단 당신보다 연상인데, 모코우 한테는 존댓말이면서, 왜 나는 애 취급인 거야?」
「신경 쓰지 마라. 그저 인상과 직업 탓이다」
「나는 성격 나쁜 꼬맹이 학생이라는 겁니까. 뭐─, 아니라고는 않겠지만─」
예전엔 단 혼자뿐이던 곳에, 인간과 요괴가 섞인 다섯이 모여 식탁을 장식한다.
이것이 최근 들어 일상이 된 광경이었다.
◇
「──과연. 사정은 알겠습니다, 내일부터 저도 동행하죠」
그날, 헤매임의 죽림에서 돌아온 내가 케이네에게 있었던 일을 전부 말해준 뒤에 들은 한마디다.
거부할 엄두조차 못낼 정도로 케이네의 한마디엔 박력이 가득했다.
영원정에서의 말썽도 있었기에 상당히 늦게 돌아온 탓도 있겠지만, 진료소로 돌아온 나를 마중 나온 케이네는 화가 나 있었다.
응…… 케이네가 왜 내 귀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는 일단 넘기자.
그 후, 밤늦게 돌아온 애한테나 설교를 당했지만, 이제 의문조차 가질 수 없다,
이 나이가 되서 「밤엔 위험하니까 빨리 돌아오세요! 」라는 말을 듣다니, 나란 녀석은 대체…….
아니, 케이네랑 내 나이를 비교하면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다만.
어쨌든, 몰래 나간 것이 화근이 된 듯, 화가 머리끝까지 난 케이네에게 변명하는 도중에 갔다 온 장소나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두 설명하고 말았다.
그래서 저런 대사가 나온 것이다.
위험하니까 그만두라며 말리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인걸까.
뭐, 모코우가 생명의 은인이라는 이야기도 했고, 내 감정이 들어간 설득 덕분이려나.
지금 와서 말하는 거지만, 의외롭게도 지금 케이네와 모코우는 서로 관계가 없다고 한다.
즉, 나와 함께 가기로 한 때가 첫만남이라는 소리다.
2차 설정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역시 모코우와 케이네가 세트라는 이미지가 강한 나로선 이 둘의 만남을 위해서라도 헤매임의 죽림에 들리겠다는 약속은 양보할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존재를 숨기고 싶어 하다니──조금 수상한 낌새는 있습니다만.
지금의 당신에게 가만히 있기를 강요할 수는 없겠죠. 저도 되는 대로 협력하겠습니다」
결국, 서당이 쉬는 날 같이 케이네가 시간이 나는 날에 협력해주기로 했다.
바깥 세계와는 달라서 의무 교육도 아닌데다, 애당초 수업도 부정기적으로 열렸었으니 시간의 여유는 있는 듯 하지만, 왠지 케이네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서 마음 아프다.
케이네는 오히려 자진해서 내 힘이 되어주려 하고 있으니, 사양은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건 알겠지만.
내가 걱정돼서 동행을 부탁한 것이기는 하나, 케이네와 모코우의 만남은 무난하게 이루어졌다.
뭐, 서로 잘 알지 못했던 탓도 있는데다 모코우의 태생을 알게 되자 저절로 말투가 경어로 바뀌게 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저 둘이 조금 더 거리낄 거 없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지.
여기서는 나중에 사귀어가는 동안 아줌마가 이래저래 다리를 놔줘야겠지. 글체, 이 사람 좋은 사람이잖여?
그런 느낌으로 처음의 목적을 완전히 잊어버린 나.
이래서야 중매에 안달 난 이웃집 아줌마 같은 느낌이다.
우선, 이런 흐름 뒤에 「내가 모코우를 단련시킨다」라는 이야기는 케이네를 더하여 치르노와 어째선지 테위도 어울려 주게 되어, 이렇게 다섯 명이 모여 시작되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하쿠레이 단기간 훈련소 시작이다!
좋아, 우선 트레이닝을 시작하기 전에 중요한 것부터 해볼까.
「먹어라」
수행 첫날. 즉, 케이네가 모코우와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가 어느 정도 일단락 된 점심 시간.
나는 챙겨온 도시락을 펼치고, 모코우를 재촉했다.
「……이걸, 전부?」
「그렇다」
「아니, 맛있어 보이긴 하는데……이렇게나?」
「먹어라」
내 대답은 레츠 카이오 레벨의 즉답이었다.
지금 차려놓은 음식들은 모두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만든 것들이다.
다른 입들도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상당한 양이다.
후후후, 오랜만에 솜씨를 발휘했다고.
「아싸─! 스승의 요리다─!」
「선대님의 요리라……오랜만이군요」
「이야, 미안한걸. 나까지 끼어들어 버려서. 오, 맛있는데」
당황하는 모코우를 제외한 다른 셋은 기뻐하며 식사를 시작했다.
자, 잔뜩 있단다.
괜찮단다? 사양하지 말고 먹으렴?
내가 요리를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친한 사람이 먹으며 기뻐해주는 것은 정말 좋아한다.
최근 남 돌보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자각한 내가 놀랍다. 나이를 먹어서 그럴까? 옛날에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을 텐데.
「모코우도, 먹어라」
「아, 응. 그럼, 고맙게 먹을게. ……그냥 연습을 봐달라는 약속이었을 텐데, 어째서 식사까지 해준 거야?」
모코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요리에 젓가락을 옮기기 시작했다.
……흠, 맛은 괜찮다.
이 틈에 식사를 하며 이번 트레이닝 계획을 모두에게 설명해주기로 했다.
「그 이야기 말이 다만, 우선 기초 체력을 기를 필요성이 있다」
「체력을 기른다고?」
「그렇다. 모코우, 너는 확실하게 말해서 빈약하다」
「……큿!」
「풉!」
「테위, 웃지 마!」
응, 좀 너무 확실해서 말이 지나쳤을지도.
미안해, 부드럽게 돌려 말해줄 수 없어서. 나, 언어기능에 조금 문제가 있는지라.
그러나 내 말은 더할 나위 없는 사실이었다.
나이를 먹지 않는 봉래인의 특성 탓일까, 모코우는 젊다.
……평범하게 젊다면 몰라도, 너무 젊다는 것이 문제다.
아마 봉래의 약을 마셨을 당시의 나이에서 고정됐기에 그런 듯, 채 크지도 못하고 성장이 멈추고 말았다.
이것은 단순한 신체 능력 면에서도 불리한 상태다.
실제 연령이 얼마나 됐든지 간에, 신체적으로 몸집이 작은 소녀인 채로서야 모코우의 체력은 표준 이하일 뿐이다.
본래 가지고 있던 체격이나, 여성이라는 것 또한 영향이 크다. 나처럼 키가 큰 여자는 드무니까.
이런 점들이 미지의 봉래파워니 뭐니 하며 체격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저번에 깔아뭉갰을 때 저항하던 것을 보아 겉모습에 알맞은 정도의 근력밖에 없는 것 같다.
반대로, 상대인 카구야는 천장을 내던질 수 있을 만큼 힘이 세다.
천장을 던진다니 뭔 힘이 그따구야.
「어떻게 불을 다룰 수 있는 것 같다만, 그 능력을 제외한다면 모코우의 전투력은 단번에 하락한다」
「……뭐, 확실히 그렇지. 이 힘이 너무 편리해서 그냥 싸우는 방법은 몰라」
손바닥에 불을 만들어내며 모코우가 신기하다는 듯 끄덕였다.
의외도 뭣도 아니지만, 원작 게임에서 EX보스였다고 한들 전투력이 높다고 보증된 것은 아니다. 불사신인 것뿐, 모코우는 인간이니.
덧붙여 「모코우 빈약설」은 원작의 고찰에서도 예상할 수 있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마구 리저렉션 하는 이유가 약해서라든가.
어쨌든, 연습에 대해 따지기 전에 우선 모코우에게 어느 정도 체력을 길러줄 필요가 있다.
따라서──일단 먹어라! 그리고 움직여라! 그 결과 일어나는 초회복!
나는 그런 흐름을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밥을 먹고 몸을 움직인다」라니, 그냥 건강하게 생활하기만 해도 되지만, 모코우는 그 기준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체력을 길러봤자 의미 없을지도……」
모코우가 뭐라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다──만, 문제없다. 모코우가 걱정하는 점은 대체로 예상이 간다.
「한 번 부활할 때마다 상태가 리셋 되기 때문인가?」
「──윽! 어, 어떻게 그걸……!」
나의 지적에 모코우는 눈을 크게 치켜뜨며 놀랐다.
아무래도 적중인 듯하다.
이럴 때엔 전생의 지식에 고마움을 느낀다.
부활 능력이라는 것은 의외로 많은 만화에서 그려졌지만, 같은 부활이어도 어떤 과정을 거쳐 그것이 이루어지는지에 따라 몸에 가는 영향이 바뀐다. 예를 들자면 높은 재생력 때문에 결과적으로 불사신이 됐다면, 그것은 생명 활동의 연장선에 있는 능력이다. 단순하게 몸을 단련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봉래인의 경우엔 영혼을 기준점으로 한 부활을 실시한다.
사망한 육체는 빈 껍질이 되고, 그렇게 되자마자 소멸한다. 즉, 소생할 때마다 모코우는 새로운 육체를 얻게 되는 것이다.
리셋이라는 말은, 전의 육체가 이루었던 성과들 또한 함께 잃는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근거 없는 예상이었지만, 모코우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 생각은 정답인 듯하다.
「……솔직히 말해서, 당신은 바닥이 얼마나 깊은지 몰라서 무서워.
하지만 알고 있다면 이야기는 빨라. 아무리 몸을 단련하든지 한 번 죽으면 전부 망쳐버릴 뿐이야. 몸을 단련하기 전의 빈약한 신체로 돌아간다는 거지. 그러니 단순히 체력을 키우는 건 무의미해」
「그럼, 모코우. 당신은 선대님에게 어떤 수련을 바라는 건가요?」
케이네가 옆에서 말참견하며 물었다.
「기억이라면 계승할 수 있으니까 말이지, 적어도 기술 몇 개 정도만이라도 배울까했어. 방법만 알려주면, 그 뒤는 적당하게……」
하하하, 「방법만 가르쳐 줘」라니 타락하기 쉬운 전형적인 발상이다.
그리고 불사신이란들 자신이 죽는다는 전제를 미리 깔아놓고 생각하다니, 우선 그것 자체를 용서할 수 없다.
그 빈약한 사고에, 아이언 크로!
「아팟! 아야야야야야야!」
「모코우, 수행을 얕보지 마라」
나는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에 힘을 모았다. 분노도 담겨 있다.
모코우……몸을 단련할 때는 말이지, 변명 하지 말고, 우직하게……뭐랄까, 구애 받아야 하는 거다.
「못 쓰겠네─, 모코우는. 이 몸이 좋은 말을 가르쳐줄게」
아이언 크로에서 해방되어 울상을 지은 모코우에게 치르노가 가슴을 피며 말했다.
「노력하는 자가 모두 보답 받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모두 노력하고 있었다!」
치르노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녀답지 않은 신념이 담긴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한 마음으로 놀랐다.
나도 놀라고 말았다.
이 얼마나……멋있는 대사인가!
몇 번을 듣든 좋다. 누구에게서 듣든 좋다. 너 좋고 나 좋은 명대사다. 과연 관장님.
나도 수련하던 시절의 마음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이건 이 몸이 스승한테 배운 말이야!」
「선대님……역시 대단하십니다. 진리를 꿰뚫는 한마디, 감동했습니다. 나중에 서당 학생들에게도 가르쳐야겠군요!」
「헤에─, 좋은 말이구나. 지금 그건 나도 조금 두근거렸어」
케이네의 존경심이 넘쳐흐를 것 같이 반짝이는 눈과, 테위의 감탄이 담긴 미소를 받자니, 정말로 마음이 아프다.
아냐, 아니라구……나도 너희들이랑 똑같은 감동을 느꼈단 말이야.
매번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던 나는 두 명의 시선을 참으며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코우는 이 대사를 곱씹듯이 다시 한 번 스스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노력, 이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그 한 마디 말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사람에 따라 진부하게 느낄지도 모르는 이론이다.
그러나, 그것을 믿는 자야 말로──.
「내일을 위하여」
「뭐?」
나는 저절로 또 다른 복싱 만화의 명언을 입에 담았다.
이것 또한 훌륭한 말이다.
그렇다고나 할까, 나도 수행 초기에는 구체적으로 뭘 어째야 할지도 모른 채 이 이후에 행하던 잽 연습법으로 주먹을 갈고 닦았었다.
「내일을 위해서, 다. 모코우」
「내일을……위해서」
하지만 하얗게 불타버릴 때까지 힘내면 안 되니까 말이지.
모코우의 경우엔 이 말이 비유로 끝나지 않으니 곤란하다.
「──알았어. 나도 노력해 볼게. 수행, 잘 부탁드립니다」
각오를 굳힌 모코우에게, 나도 크게 끄덕이며 답했다.
후후후,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수행을 시키는 건 레이무 이래로 처음이다.
그 레이무에게도 실제로는 유카리에게 떠맡겼을 뿐이니 내가 직접 하는 지도는 거의 처음이라 봐도 무방하다.
물론, 일찍이 내가 했던 수련은 상급자 전용. 아니, 바보 전용이다.
그러나 힘과 기술의 수행이 있는 법!
단순한 체력 단련이라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근육맨 이론 급의 말도 안되는 근거를 가진 수행부터, 과학적 이론에 근거를 둔 트레이닝까지. 초보자인 모코우에게는 뒤의 것을 써먹어보자.
일찍이 머리속에서 나를 이끌어준 코치들의 자리에 내가 선다──이런, 텐션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좋아, 따라와라 모코우!
여기서부터는 뇌내 BGM『Eye Of The Tiger』를 틀고 가겠어──!
◆
「으랴으랴, 농땡이 부리지 말고 달려라 달려」
「크……읏! 테, 테위…… 네 녀석, 두고 봐……!」
「네이~, 이쪽을 신경 쓸 여유가 있구나─. 그럼 한 바퀴 더 추가네─」
테위의 선고에 모코우는 속이 싸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얼굴은 반대로 상기되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쭉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대가 체력 단련의 기초 과정이라며 달리기를 시킨 것이다.
「그런데 모코우. 겨우 이걸로 숨이 차다니, 정말 못 쓰겠네. 체력이 너무 적어」
「……큿!」
「그거구나, 겉만 젊고 속은 늙을 대로 늙은.
지금까지 폐인처럼 생활한데다 평소에 한 운동이라고 해봤자 내킬 때 죽림을 산책할 뿐이고. 그래서야 공주에게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교양으로도 지고 있잖아?」
「……큿!」
「오랜 세월동안 건강한 생활을 해온 내가 보자면…… 이미 끝났어, 모코땅의 몸.
그렇지, 불로불사니까 건강 같은 건 어찌 되든 상관없구나. 아, 적당히 대충 달려도 괜찮다고? 힘들다는 연기만 제대로 하면 속아 줄 테니까」
「……시끄러! 모코땅이라고 부르지 마!」
「네이~, 아직도 체력이 남아 있구나─. 그럼 한 바퀴 더 추가─」
한계까지 달리게 하기 위한 도발이라지만, 아무리 봐도 즐기고 있는 걸로 보인다.
물론 모코우도 알고 있기는 했지만, 앞서 달리는 테위의 뒤를 필사적으로 쫓아 달려도 거리가 전혀 좁혀지지 않는다.
분노와 짜증을 연료로 이를 꽉 깨물며 달린다.
그러나 슬프게도 둘의 차이는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결국 그대로 모코우가 힘이 다해 쓰러질 때까지 러닝은 계속되었다.
「아야야야야야……!」
「견뎌라」
「죽어! 진짜로 죽는다고!」
「안심해라, 이 정도로 죽는 녀석은 없다. 아마도」
「아, 아마도……라니이이잇!? 아, 아프다고!」
울상이 되어 비명을 지르는 모코우의 등을 강하게 누르는 손에서 힘을 빼지 않는 선대는 무자비해 보일 지경이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한계까지 다리를 벌리는 「다리 찢기」다.
「그렇게 아파? 이 몸. 쉽게 되는데」
「개인차가 있다고는 하지만 나도 치르노나 테위처럼 하는 건 무리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모코우는 관절이 너무 굳은 거 아냐? 차라리 한 번에 하는 게 어때?」
「그러면 인대가 손상된다」
크게 소리를 지르는 모코우의 주변에서 서로서로 흉내를 내듯이 둘러 앉아 다리 찢기를 하고 있었다.
케이네는 거의 완전하게 다리가 벌려져 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다리가 찢어져 상체의 가슴과 턱이 땅에 닿을 정도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치르노와 테위였다
그러나 그와 비교해 모코우의 관절은 그 관절에서 녹슨 경첩 소리가 들릴 것같이 유연함이 부족했다.
「관절의 유연함은 상처를 막는데 있어서도 중요하다. 유연하면 유연할수록 좋다」
「이, 이래서야 상처가 난다고! 갑자기 확 하면 다친다며!」
「괜찮다, 한계는 내가 지켜보마. 아픈 건 처음뿐이다」
「히익!」
평소 변하지 않는 철면피 탓도 있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체중을 싣는 선대의 행동에 모코우는 진심으로 공포를 느꼈다.
여담으로, 몸이 불편하지 않던 시절의 선대는 양다리를 좌우의 받침대에 얻고 지면에 닿지 않은 상태로 다리 찢기를 했었다는 것을 케이네가 말해줬다.
예상보다 몸이 굳은 모코우를 위해서 이 운동은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 나아갔다.
그런 탓에 얼마간 죽림에서는 소녀의 비명이 떠나갈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말만 들으면 야하지 않아?」
「야하다는 게 무슨 뜻이야?」
「테위, 치르노 앞에서 이상한 말을 꺼내지 마라」
케이네의 박치기에 당한 테위는 혀를 내미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런 평화로운 셋의 대화를, 모코우가 눈물을 흘리며 노려보고 있었다.
「저……저기, 아직 필요한 거야? 이미 장작은 충분하다고, 생각, 하는데……」
숨을 몰아쉬며 모코우는 옆에 선 선대에게 물었다.
이미 등 뒤에는 장작이 산만큼 쌓여있었다.
모코우가 도끼로 팬 장작을, 선대가 지켜보며 밧줄로 단단히 묶고 있다.
「도대체, 뭘 하려고, 이렇게나……?」
처음엔 지금까지 했던 힘겨운 트레이닝과 비교해 단순한 장작패기라며 얕봤던 모코우였으나, 지금은 이미 전신이 피로로 찌들어 있었다.
간간히 숨을 내쉬며 간절하게 부탁한다는 시선을 보냈다.
「그전에 이렇게나 있으면 당분간은 장작 필요 없지──」
「이건 오늘 하루 분량이다. 목욕탕을 데우는데 사용하고 나머지는 마을에 판다」
시원스럽게 돌아온 대답에 모코우는 말문이 막혔다.
목욕탕이라는 것은 무연총에서 주워 온 철로 된 원통──선대의 말로는 「드럼통」──이라는 걸 말하는 걸까? 지금 케이네들이 물을 모으고 있었다.
아니, 사실 그런 것은 어찌되든 상관없었다.
모코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 이 장작패기가 끝나지 않았으며, 거기다 내일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야, 겉보기엔 저래도 선대의 수행은 실용성이 높네」
모코우가 잔뜩 구르는 모습을 구경하던 테위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치르노는 물론 선대가 시키는 수행에 일말의 의문조차 품지 않던 케이네도 「그런가?」라며 머리를 갸웃거렸다.
「장작패기는 생활하는데 필요한 거긴 하지만, 전신의 근육을 써야 돼서 저절로 몸이 단련 되거든.
특히 허리힘을 늘릴 수 있어서 전체적인 근력 상승과도 연결돼. 주먹으로 때릴 때의 위력도 올라가지 않으려나」
「과연. 그저 마구잡이로 몸을 단련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 목적이었던 「승부에 이기기 위한 수련」과 제대로 연결되고 있다는 건가. 역시 선대님이시군」
「케이네는 정말 그 말 뿐이네─. 뭐, 확실히 역시나라는 느낌이긴 하지만 말이지.
옛날부터 대대로 대를 이어온 무녀라길래 좀 더 고풍스러운 수련이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깜짝 놀랄 만큼 이론파 수행이야」
「어쨌든, 스승은 최강이라는 거구나?」
「……아─, 응. 너희들, 선대와 관련된 거에선 똑같은 수준이구나」
테위는 기막히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서, 오늘의 수행은 이걸 잡는 거야?」
「그렇다」
선대가 끄덕이며 모코우가 가리킨 통의 뚜껑에 손을 얹었다.
안에서 소란스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닭의 울음소리다.
「뭐랄까…… 너무 쉽지 않아?」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 번 해봐라」
선대가 한 손으로 재주 좋게 한 마리의 닭을 꺼냈다.
잡는 방법이 좋았던 것일까, 통 속에서 소란을 피우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이걸 잡는다니, 역시 쉬운 거 아닐까──.
모코우는 맥이 빠졌다는 듯이 숨을 내쉬면서도, 선대가 닭을 땅에 풀어주는 때를 잡아 허리를 낮췄다.
「앗……!」
정말로 「앗」하고 말한 단 한 순간.
펼친 손을 피하듯이 닭이 달리기 시작했다.
「기, 기다려!」
당황한 모코우가 그 뒤를 쫓았지만, 잡는 것은 물론 생각대로 따라잡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서서히 필사적이 되가는 모코우였지만, 자신이 닭을 잡을 수 없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제법인걸」
닭이 멀리 도망치지 못하도록 주변에 설치한 수제 울타리에 기대며 테위가 웃었다.
「엄청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모코우 말고. 이 수행 말이야」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 치르노의 뒤에서 케이네가 납득했다는 듯 끄덕이고 있었다.
「모코우가 닭을 잡을 수 없는 까닭은 저절로 몸의 자세가 엉거주춤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말대로. 낮은 곳에서 달리는 닭을 잡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낮추고 있어.
저런 자세로는 빠르게 움직일 수도 없고, 몸에도 부담이 가지. 뭐, 수행의 목적은 그거 같지만 말이야─」
「방목 사육하던 닭을 골라서 사온 것도 그 때문일까」
「정말이지, 용케도 저런 수행을 생각할 수 있네. 게다가 연륜이 깃들어 있어.
선대는 정말로 다른 누군가를 단련시킨 적 없는 거 맞아? 당대의 하쿠레이의 무녀는 선대의 딸이지?」
「레이무에게는 대대로 전해지는 하쿠레이의 술식을 가르쳤다고 한다. 저 사람이 익힌 무술은 거의 전수하지 않았다더군」
「흐음. 의외로 사람을 가르치는 재능이 있는 걸지도」
「가르치는 재능……이라」
「서당을 도장으로 바꿀 생각이야?」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황하는 케이네의 말을 흘려들으며 결사적인 점프 태클이 빗나가 땅바닥에 격돌하는 모코우를 바라보며 테위가 웃었다.
「아─, 기분 좋다아─」
「얼굴 엄청 풀렸어」
「시끄러워─, 뭐라고 하든 신경 끌 거야─」
극한의 탈진 상태에 빠진 모코우의 반응을 테위가 쓴웃음을 지으며 보고 있었다.
그날의 수행이 끝나고, 목욕탕에서 땀을 흘린 뒤, 케이네가 저녁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에 선대가 모코우의 몸에 마사지를 해준다.
이것이 하루의 흐름이었다.
평소에는 진료소에서 사용하는 기술들을 써가며 피로가 다음날까지 남지 않도록 꼼꼼하게 근육을 풀어준다.
모코우는 이 시간을 제일 좋아했다.
어려운 수행이 끝나고 하루의 노고가 보답 받을 만큼 평화로움을 느낀다.
「기분 좋아 보여……좋겠다, 이 몸도 해주면 안 돼?」
「치르노는 피로가 모이지 않았으니 마사지를 해도 큰 의미는 없을 거다」
「칫. 이 몸도 모코우랑 같이 수행해볼까?」
「요정도 몸을 단련할 수 있는 거야?」
선대가 지압을 해주는 동안 치르노가 그 옆에서 테위와 대화를 나눈다.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모코우는 주변의 평화로운 소란을 듣고 있었다.
굳어져 있던 몸에서 피로와 함께 필요 없게 뭉친 힘이 빠져나간다.
주변에는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잡다한 목소리들이 울린다.
기분이 좋았다.
여기는 정말로 자신의 집인 걸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생활이 실재했으며, 자신이 그 중심에 서 있다.
「──선대님, 모코우. 저녁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슬슬 끝내주세요」
「네에~, 밥이다!」
「오늘의 반찬은 수행에 사용했던 닭 맞지? 이것도 일종의 사냥인가?」
「좋아, 끝이다. 식사를 하자, 모코우」
치르노를 앞세워 모두가 바깥으로 나간다.
날씨가 좋은 날엔 불 주변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한다.
날씨가 나쁜 날엔 조금 좁은 집안에서 어깨를 서로 기대며 식사를 한다.
모코우는 그 어느 쪽이든 마음에 들었다.
「──응, 지금 갈게」
선대의 말에 답한다.
몇 마디 되지 않는 대화임에도 마음속에 따뜻한 무언가가 생겨난다.
그것은 옛날에 맛봤던, 최근에는 잊고 있던 정체 모를 무언가의 감각이었다.
그 무언가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아직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생활을 계속해나간다면, 머지않아──.
식후의 휴식을 끝내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수그러들고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테위는 영원정으로.
치르노는 안개의 호수로.
케이네가 선대를 부축하며 마을로 돌아간다.
마지막에 전원이 나눈 것은, 당연하게도 「내일 또 보자」라는 인사.
홀로 남은 모코우는 선대에게서 배운 유연체조를 한 뒤 마루로 들어간다.
피로 때문일까, 졸음이 곧바로 찾아와 깊게 잠들었다──그리고, 그녀들과 재회하는 내일이 찾아온다.
사람이 발을 디디지 않는 해메임의 죽림에는 일상이 된 광경이 있었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그 광경을 본다면 뭐하는 거냐며 이상하게 볼지도 모른다.
혹은 그녀들의 사정을 알고 예상 밖의 대답에 놀랄지도 모른다.
──고통과 피로를 견디며 내 자신을 단련하고 있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이를 악물어 버티고 있다.
그런 수련을 행하면서도 그 누구에게서도 그런 비장감이나 고통 따윈 느껴지지 않는다.
적어도, 그 광경의 중심에 선 모코우는 땀을 흘려도, 숨을 몰아쉬어도, 힘차게 웃고 있었다.
아침의 시작과 함께 인사를 나누며, 식탁에 둘러 앉아, 격려와 질책을 받으며 달리고, 서로 웃으며, 재회를 약속하고 헤어진다.
그 광경은 틀림없이 인생이라는 나날을 살아가는──내일로 향하는 인간의 일상이었다.
◆
마을에는 카미시라사와 케이네가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서당이 있다.
혼자서 꾸리는 것이기에 학생의 수는 적다.
모두가 가난한 집 출신이며, 그 중에는 버려진 아이도 있어 서당의 일부는 그런 아이들의 숙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환상향의 문명이 바깥 세계와 비교해 낡았다고는 하지만, 교육의 중요성은 인지되어 있다.
유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에게 서로의 집에 필요한 일을 가르친다.
그런 여유가 없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케이네는 배울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당연하게도 학비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서당의 운영에도 자금이 필요하다.
그 자금을 제공하는, 이른바 「스폰서」의 역할을 맡고 있는 곳이 바로──키리사메 만물상이다.
「──케이네, 있나?」
아침 일찍 키리사메는 서당을 방문했다.
학생들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더부살이하는 아이들도 아직 잘 시간이다.
그러나 케이네는 이미 일어나 학생들을 맞이할 채비를 끝내놓은 상태였다.
「키리사메 만물상의 주인님 아니십니까. 안녕하신가요」
「그래, 미안하구나. 이렇게 이른 아침에」
「아니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아무쪼록 들어오십시오. 변변치 못한 차밖에 준비해드릴 수 없습니다만」
케이네는 이른 아침에 찾아온 방문객에게도 공손히 대응했다.
그것은 결코 키리사메 만물상이 서당의 출자자라서 그런 것만이 아니다.
그 개인의 인품에 호감을 품은 것이 이유다.
거기다 이 둘의 관계는 서당이 만들어진 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오늘은 어떤 볼일로 오셨죠?」
「아, 그래. 뭐……그렇군」
찻잔에 입을 대며 키리사메는 꺼낼 말을 찾지 못하며 우물거렸다.
케이네에게는 의외로운 모습이었다.
쇠약해졌다고는 하나 옛날부터 성미가 대쪽같이 곧으며 단순명쾌함을 좋아하는 그다.
저렇게 망설이는 모습은 그리 본 적이 없다.
「……선대님에 대한 겁니까?」
케이네는 짐작이 가는 점을 과감하게 입에 올렸다.
키리사메가 입에 머금고 있던 차를 그대로 삼킨다.
「아, 뭐, 그거다」
「과연. 최근 자주 외출하시는 것 때문인가요」
나이를 먹어 노련함이 깃든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케이네는 튀어나오려는 쓴웃음을 견디고 있었다.
「전부터 외출의 빈도가 많기는 했지만, 최근엔 귀가까지 늦고 있네. 게다가 마을에서 나가 해메임의 죽림까지 갔다지 않나. 그래서……신경이 쓰여서 말이지」
「마음은 이해합니다.
저도 불안하게 생각되어 선대님에게 사정을 듣고 가끔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으음……뭐, 네가 시중을 들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으니. 안전에 대해선 걱정은 없네만」
「선대님이 외출하시는 이유에 대해서라면── 저보다 선대님 본인에게 묻는 편이 좋지 않을런지요? 이 시간이라면 진료소에 있을 겁니다」
「그런가. 오늘도, 갈 생각인가?」
「예, 저도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케이네의 대답에도 키리사메는 작게 끄덕일 뿐이었다. 지금 그 대답만으로 어떻게든 자신을 납득시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 역시 평소의 그를 아는 사람에게는 위화감이 느껴지는 태도였다.
선대에게 직접 묻지도 않고, 케이네에게도 애매한 대답 뿐.
원래 그의 성격은 대쪽같이 곧으면서도 명쾌하다.
신경 쓰이는 것은 본인에게 직접 묻고, 납득이 가면 웃음과 농담을 돌려주며, 납득이 가지 않는다면 소리치며 추궁한다──조금 비뚤어진 남자였다.
그런 점을 귀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케이네에게는 그런 서툰 면이 이 남자의 미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적어도 그와 선대 사이는 그 정도는 용납할 수 있을 만큼 친했을 터다.
케이네는 어째서 그가 망설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요 전날에 말이다, 그 선대가 내게 왔었지」
케이네의 말에서 의심스럽다는 낌새를 눈치챈듯, 키리사메가 말을 꺼냈다.
서툴기는 하지만 결코 아둔한 남자는 아니다. 상대의 눈치를 읽을 수 있는 통찰력이 있다. 그것이 상인으로서 성공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전에 부재중이었을 때 보낸 과자의 답례를 할 겸 사과하러 온 것 같았지. 의리 있는 녀석이다」
「선대님은 그런 분이니까요」
「중요한 때에는 둔한 주제에 말이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했지만, 옛날과 변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 옛날과 똑같이……아름다운 그대로였다」
키리사메가 마지막으로 입에 담은 「아름답다」라는 말에 담긴 마음은, 케이네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 말에 케이네는 뭐라 형용키 힘든 불안함을 느꼈다.
자신도 호감을 가진 인물에 대한 평가는 기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서 들어도 되는 말일까──?
「그……점주님, 그건──」
「나는, 젊었을 적에 그 녀석에게 반했었지」
겉으로는 가볍게 내뱉은 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을 읽어낸 케이네는 말문이 막혔다.
「아니, 지금은……어떠려나? 잘 모르겠군」
「그, 그것은……!」
「하하, 알고 있다. 안심해라, 이상한 생각은 하지 않아」
매우 어색한 기미를 보이는 케이네의 모습에 속을 헤아린 키리사메는 무심코 웃고 말았다.
그녀가 무엇을 걱정하는 건지는 충분히 알고 있다.
옛날과 지금은 다르다.
키리사메는 지금은 대상점의 주인. 물론 훨씬 옛날에 결혼도 했다.
의절하기는 했지만 피가 연결된 딸이 있으며, 게다가 그녀는 선대와 그 딸과도 관계가 깊다. 마을에도 가끔 들른다.
모두가 만나려 마음먹는다면 만날 수 있는 곳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키리사메의 고백은 그 모든 인간들과의 관계를 뒤바꾸어버릴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실례하지만, 사모님을 잃으신 뒤 몇 년이나 지나셨죠?」
폭발물에 손을 대듯이 케이네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키리사메의 아내는 젊은 나이에 병사하고 말았다.
정말로 젊었다. 그때 당시 이미 나이가 40에 닿기 직전이던 키리사메와는 나이 차이가 꽤 있던 결혼이었다.
어째서 키리사메가 그 나이까지 아내를 맞이하지 않았던 것일까 당시 주변 사람들은 의문으로 생각했지만──그런가? 그런 것이었나?
케이네는 자신의 나쁜 예감을 멈출 수 없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만? 나는 부인을 사랑했기에 결혼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
키리사메는 케이네를 노려보며 확실하게 단언했다.
그 반응에 케이네는 놀랐다.
대부분의 남자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데에 서투르다. 특히 그것이 자신의 아내에 대한 감정일 경우에는 더하다.
그의 서툰 우직함은 이럴 때 좋게 드러난다.
케이네는 마음 깊이 안심했다.
「네가 뭘 그렇게 불안해하고 있는 건지는 안다.
하지만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게다. 그런 뻔뻔한 짓을 할 정도라면 그전에 머리를 깎고 출가라도 했겠지」
「……그래도 아직 선대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다, 라는 거군요」
케이네는 주저 없이 자신이 품은 의심을 말로 내뱉었다.
대답이 되돌아오는 데에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봤던 3년 전과 같아──그 녀석은 내 기억에 있던 대로 젊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지.
하지만 불편한 다리 탓에 지팡이를 짚고 있었네. 꽤 길게 봐왔지만 그런 모습은 처음 봤어. 그 녀석도 인간이라는 것을 실감했지」
선대의 변함없는 모습이 그녀가 쌓아올린 단련의 성과라는 것은 물론 알고 있다.
현역 시절의 그녀는 매일같이 상처를 입어도, 피를 흘려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언제나 그 녀석을 눈부시다고 생각했네」
실력이나 지위라는 의미만이 아닌, 어딘가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존재라 생각했었다.
일찍이 자신이 그녀에게 연모의 감정을 품었던 것은 자각하고는 있었으나, 그것이 존경심이나 동경에서 오는 것이며,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었다.
「나는 그 녀석보다 먼저 죽는다, 라고. 옛날에는 아무 의심 없이 믿었었지.
그래서 기대를 품으며, 묘하게 포기하기도 했었네. 그 녀석은 나 같은 평범한 인간과는 다르다. 무언가에 선택받아 특별한 길을 걷는 인간이다, 라고 말이야」
자신의 말에 키리사메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날 직접 그 녀석을 만나서, 그때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 일을 생각했네.
──불편한 다리로는 진료소는커녕 혼자 살기도 불편할 거다. 그러니까 내게 손님으로 들어오는 게 어떠냐.
그리고 남은 인생을 천천히 보내라. 그 정도는 내가 보살펴주마. 옛날부터의 인연이다. 무녀로서 쌓은 공적도 있으니 아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다, 불평도 없을 거야──」
「……그 말은, 선대님에게는 하지 않으셨군요?」
「그래, 그냥 변덕이다. 실제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말할 생각은 없어. 그 녀석도 폐밖에 안 되겠지.
그렇지만 생각했다는 건 사실이라네. 아무리 동요해서 무의식 적으로 생각했든 뭐든지 간에 나는 이제 와 그 녀석에게 옛날에 품었던 감정을 떠올리고 말았지」
그 녀석과 얼굴을 마주하는 게 괴로운 이유는 그거야, 라고. 어떻게든 웃으려 했지만, 케이네가 보는 한 그 시도는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키리사메의 얼굴에는 자조와도, 후회와도 비슷한 불쾌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인간이라는 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약해지는 거다」
키리사메는 자신이 살며 느낀 실감을 지쳤다는 듯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아내에게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네. 그것을 배신할 정도라면 죽는 편이 나아.
그럼에도, 그런 결의와는 다른 바람이 솟아올라. 그것을 어떻게든 억누르자니 의문이 생겼지. 「나는 정말로 배신하지 않은 건가? 」──그런 의문에 또 마음이 흔들려」
「반수인 저로서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순 없습니다만, 그것 또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이유일가 아닐까 합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평소 생각하던 거네만, 인간과 요괴가 가진 가장 큰 차이점은 그 사상일지도 몰라.
나이를 먹을 때마다 자신의 약함을 실감할 때가 많아진다네. 혼자 걷는 것이 힘들어졌다고 생각될 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을 만큼 불안감을 느끼고 말지.
인생이라는 길에서 나 홀로 힘겨워 쓰러진 채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가는 것이 참을 수 없이 무서워.
그럴 때일수록 자신의 다리만으로 걸으려 하는 것이 그 선대다. 하지만 평범한 인간은 그렇게까지 강하게 나아갈 수 없어」
케이네에게는 키리사메의 말뜻을 아플 만큼 이해할 수 있었다.
춘설이변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범한 잘못이,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나와 선대와 린노스케──옛날, 셋이서 사귀던 때엔 이런 시간이 언제까지고 계속 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세월이라는 것은 야박하게도 변해가고 말아. 나이를 먹고, 몸과 함께 마음도 늙으며, 결의와 의지는 점점 약해져가지. 정말이지, 번거로워」
「……」
「인간이라는 생물은, 정말로 번거롭다네……」
◆
──그 후로 10년.
모코우가 두 아이들과 만난 뒤 그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나 작았던 꼬맹이들은, 소년에서 씩씩한 청년으로. 소녀에서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했다.
그 성장을 모코우는 이날까지 계속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뭐라고, 그거 정말이냐!?」
그런 둘에게서 들은 말에 모코우는 놀람과 동시에 마음속 깊이 기뻐했다.
「네. 우리들, 결혼하기로 했습니다」
청년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어릴 시적처럼 옆에 찰싹 붙어있던 여성의 얼굴은 그 이상으로 붉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모코우까지 자기 모르게 떠오르는 미소를 멈출 수 없었다.
「그렇구나……이야, 정말로 축하해」
모코우의 속에서 우러나온 축복이었다.
둘과 만난 지도 10년. 아이였던 둘은 모코우와 나란히 서면 동년대로 보일 정도로 자랐다. 부부가 되기에 알맞은 나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것은 행복한 결혼이었다.
부모나 타인에게 강요받은 것이 아닌, 둘이 서로를 사랑하여 한 결혼.
작은 마을이었지만 둘의 집은 그중에서도 비교적 유복했으며, 그렇다고 다른 명가처럼 규율이 엄격하지도 않다.
매일을 자유롭게 살고, 평화롭게 보낼 수 있는 풍족한 환경이었다.
하나 걱정이 있다면 여자의 몸이 약하다는 것이었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서로를 지탱해줘야 한다?」
「네. 이 녀석은 앞으로도 내가 지킬 겁니다」
「저, 저도……노력할게요」
10년간 두 사람을 지켜봐온 모코우이니 이 걱정이 필요 없는 참견이라는 것 정도야 알고있다.
어렸을 적부터 그래왔듯, 소년은 소녀를 지키고, 소녀는 소년을 지탱해주고 있다. 부부가 되어도 그것은 변화지 않을 것이다.
모코우는 세월의 흐름을 마음 깊이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결혼식 말입니다만……」
「응? 아, 신경 쓰지 마」
그 말에 불쾌한 표정이 된 둘에게 모코우는 힘을 내 힘찬 웃음을 지어냈다.
「내가 얼굴을 들이밀 수는 없잖아. 모처럼 축하 받을 날을 망쳐버릴 거라고」
어디선가 들어와 이 땅에 들어온 모코우가 이 둘과 만난 지 10년.
두 명에게 있어 옛날 모습 그대로 나이를 먹지 않는 모코우는 생명의 은인임과 동시에 의지가 되는 누나이자, 지금은 눈높이가 같아진 친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마을사람들에게는 다르다.
정체도 모르며 10년이 지나도록 나이를 먹지 않는 그녀가 제대로 된 인간으로 보일 리 없었다.
명백하게 거부당하거나 배척 받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은 모코우가 스스로 자신의 입장을 알고 두 사람 이외의 인간에게 적극적으로 관계를 가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마을에 모코우의 존재는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결코 받아들여지지는 못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적어도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려드리고 싶어서」
「제일 축하해줬으면 한 건 모코우 씨였는데……」
모코우는 두 사람이 걱정해준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 기뻤다.
그렇기에 걱정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자신이 축복하듯이, 두 사람의 주변 인간들도 축복해줬으면 한다.
그렇게 된다면 분명 매우 기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괜찮아. 나는 사람 없는 밤에라도 몰래 갈 테니까. ……아니, 잠깐?」
「네, 왜 그러시죠?」
「……아─, 미안. 잘 생각해보니 결혼식이 끝난 밤에 가다니, 그럼 안 되지. 이거 실례. 거기까진 생각 못했네」
「──읏! 모, 모코우 씨!」
「네……아, 아앗! 그런 말인가……라니, 잠깐!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부끄러운 배려를 일부러 입에 댄 모코우를 얼굴을 붉힌 두 사람이 노려본다.
서로 장난 같은 대화를 나누며 모코우는 자신의 행복을 마음 깊이 느꼈다.
지금 그녀에게 시간의 흐름은 너무나도 상냥하며, 따뜻했다.
──그 후로 20년.
「죄송해요 모코우 씨. 남 몰래 들여서……」
「신경 쓰지 마. 억지로 문병 온 내가 나쁜 거야」
누운 여성에게 모코우는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몸의 약한 여성은 감기로 상태가 나빠져 자리에 누워 있었다.
부모님도 고령이다. 제대로 간병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거 아닐까 걱정되어 모코우가 남몰래 집에 들른 것이다.
「제가 이래서. 그이도 힘들게 만들고 있네요」
「그 녀석이 괴롭다고 한마디라도 한 적 있어? 나도 뭣하나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자의 남편인 청년은 약을 사기 위해 마을까지 나가 있다.
작은 마을이다. 몸이 약한 부인을 위해 그는 종종 멀리까지 약을 사러 나간다.
집에서 나설 때와 돌아왔을 때. 청년은 반드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직 기억해? 나랑 너희가 처음 만난 날.
정체도 모르는 내 앞에서 너를 감싸면서, 나한테도 감사인사를 해줬지. 그런 좋은 사나이야, 네 남편은」
「예……」
모코우의 말에 여성은 망설이며 끄덕였다.
「왜 그래?」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인 것을 눈치챈 모코우가 걱정하며 물었다.
「저……불안했어요. 저와 결혼한 것이 그이에게 부담 아니었을까 하고……」
「그런 건……」
「죄송해요. 그렇지만……불안했던 건 모코우 씨를 볼 때도 느꼈었어요.
당신은 저와는 다르게 몸도 약하지 않고, 아름다운데다, 상냥하기까지 하죠……그이가 정말로 좋아했던 건 당신이 아니었나 했어요……!」
「……」
「정말로 죄송해요. 저는, 추하고, 나쁜 여자에요……!」
「……그렇지 않아」
상냥하게 미소 지으며 모코우는 살며시 여성의 손을 잡았다.
몸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약해졌다는 것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그런 그녀에게 건네줄 말을 떠올리지 못하는 자신에게 무력감 또한 느꼈다.
「죄송해요……」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 자, 빨리 건강해져야지」
모코우는 마치 제발 그래달라고 바라듯 말했다.
집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얼마 뒤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다녀왔습니다─! 늦게 와서 미안, 기다리게 했지! 어, 모코우 씨 오셨습니까? ……잠깐, 너 왜 울고 있는 거야. 그렇게 외로웠어?」
쿵쾅거리는 발소리를 울리며 힘차게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온 청년의 얼굴을 바라본 둘은 잠시 기막혀하더니, 무심코 웃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배어있던 답답한 분위기는 이미 없었다.
병들었을 때도, 건강할 때도──.
일찍이 아이였던 두 사람은 어른이 되어 수많은 고난을 경험해왔다.
그러나 그 고난들을 넘어서왔다.
모코우는 그들의 곁에서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 후로 30년.
「……그래. 이제 상당히 나빠졌다고」
「예, 최근 들어 쭉 들어누워 있었으니까요」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청년은 피로 탓인지 매우 늙고 지쳐 보였다.
이미 나이도 청년이라 부를 만큼 젊지 않다. 몸이 약해지기 시작한, 늙은 남자였다.
부모도 이미 이승에서 떠났다.
세월은 지나고 인간은 늙으며 그에 맞춰 몸이 약한 그의 아내는 상태가 나빠지는 날이 많아졌다.
「일단 마을에 가서 사온 약이 있다만……」
「이렇게 신경써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그렇지만 이제 약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겠죠. 저도 아내도, 나이를 먹었습니다」
이야기 속에 지친 한숨이 섞여들었다.
모코우는 10년 전에 봤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금 그의 행동에 위화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오해일 뿐이라는 것을 마음속 어딘가에서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벌써 10년이나 지났다.
평범한 인간이, 평범하게 늙어갈 시간.
불로불사인 모코우는 겹겹이 쌓여온 세월의 무정함을 느꼈다.
「……이 집도 조용해졌네」
이미 수명이 다했을지도 모를 낡아 보이는 방을 둘러보며 무심코 중얼거린다.
결국, 두 사람의 사이에서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여자의 몸이 아이를 임신하는 것을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남자는 그것을 걱정하고, 가족은 늘지 못한 채 부모님을 잃어, 이 집의 거주자는 단 둘만이 남았다.
이 집을 방문할 때 옛날만큼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모코우에게는 묘하게 외롭게 느껴졌다.
「약은 두고 갈게. 그것 말고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라도 말해줘」
늙은 두 사람과는 달리 자신은 언제까지고 바뀔 수 없다.
이 차이가 서로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모코우는 오랜 세월의 경험 덕분에 알고 있었다.
분명 두 사람에게 그리 좋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그렇게 생각하여 옛날만큼 자주 방문하게 되진 않았다.
두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신의 마음을 우선시 해, 부담을 늘리고 싶지는 않았다.
「저기, 모코우 씨……!」
떠나려하는 모코우의 손을, 남자가 잡았다.
놀라서 뒤돌아 보니, 자신을 올려다보는 남자의 눈과 마주쳤다.
「부디, 다시……또 다시 와주세요. 부탁합니다」
「으, 응. 물론이야」
이미 애원과도 같은 남자의 말에 모코우는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향하는 애달프다는 시선과 손에서 느껴지는 의외로울 정도의 강력함이 묘하게 불안함을 부추겼다.
──그 후로 40년.
결국 여자의 몸은 나아지지 못했다.
나이와 함께 몸은 쇠약해지고 그와 함께 상태도 악화되어간다.
이미 침상에서 나오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스스로 식사도 할 수 없었으며, 용변조차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다면, 살 수 없을 정도다.
그 누군가인 그녀의 남편 또한 오랜 세월의 간병 탓에 더욱 늙고 약해졌다.
그까지도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빠듯하게 버티고 있는 상태다.
그런 세월의 중압감 속에서 자신만이 홀로 태연하게 있다는 사실을 모코우는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눈을 돌릴 수는 없다.
여기서 떠나면, 그 뒤엔 죽어가는 노인이 단 둘이서 남겨질 뿐이다.
모코우는 두 사람을 위해 마지막까지 뭐든 해주고 싶었다.
그 「무언가」를 어떻게 해야 최선의 방법이 될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나이를 먹는 인간과 먹지 않는 인간. 세 사람의 관계가 머지않아 이렇게 될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아봤자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일까?
40년 전엔 먼 미래라고 생각하던 현실이 지금 눈앞까지 다가왔다.
모코우는 그것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갖고 싶은 거라도 있어?」
「……아무것도」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모코우와 여성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이미 그녀는, 여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젊지 않았다.
나이는 오십을 넘어섰고, 병 탓일까 나이보다도 더욱 늙어 보인다.
머리카락은 하얗게 세고 주름은 늘어 옛날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단 냄새를 풍기던 젊음과 아름다움은 이미 먼 옛날에 사라졌다.
죽은 사람 같은 색의 피부와 뼈밖에 남지 않았고, 투병 생활의 이불에서는 약간의 오줌 냄새가 풍겼으며, 이미 녹초가 된 노인이 있을 뿐이었다.
그 머리맡에 앉은 모코우는 40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 젊고 아름다운 채였다.
지금의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는 분노를 늘릴 뿐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코우는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욕을 먹고 화풀이를 당해도 상관없었다. 자신의 사정 때문에 몸이 불편한 그녀를 버리는 것만은 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자신의 존재 그 자체가 그녀의 부담이 된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모코우는 불필요하게 입을 열지 않고, 그저 그녀를 보살피는 것에만 필사적이었다.
「……모코우 씨」
갑자기 늙은 여성이 입을 열었다.
「당신이, 좀 더 나쁜 사람이었으면 했어요」
「……뭐?」
악의가 담긴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저, 어쩔 도리가 없을 만큼 슬픔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당신이 자신의 젊음이나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늙은 저를 농락하는 사람이었다면, 했어요」
「대체 무슨……」
「그렇지만, 당신은 상냥한 분이셨죠. 40년이 지나도록 마음이 변하지 않고, 건강한 채로」
모코우는 당황했다.
그녀가 건네 오는 말은 자신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뻤다.
그러나, 그렇다면 어째서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일까?
「그이가……사랑하는 것도 어쩔 수 없죠」
그이──남편을 말하는 건가.
모코우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최근 10년 동안 조금씩 겹쳐 쌓여오던 나쁜 예상이 지금 결정적인 형태가 되어 전해진 것이다.
「……알고 있어요. 그 사람은 지쳐버렸어요. 제 탓이죠」
「아냐! ……그렇지는……」
──이제 두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는 편이 좋지 않을까.
──늙은 두 사람의 눈에 띄기만 해도 그들의 평화로운 여생을 어지럽히는 것은 아닐까.
모코우는 전부터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래도 약간만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바란다면──이라며 이곳에 들려왔다.
모코우의 방문을 가장 바라던 것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완전히 지쳐버린 그의 눈동자가 자신을 볼 때만 불타오르듯이 빛이 돌아오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저는 늙었어요」
「……아냐」
「당신은 아름다웠던 그 시절 그대로죠」
「그 녀석은, 그런 남자가 아냐……」
「단순히 젊은 여자라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상대가 당신이었어요. 기억에 남은 대로, 아름답고, 상냥하고──무너지지 않는 이상적인 여성이었던 거죠.
이렇게 외모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추하고 약해져버려 당신을 질투하는 제게서 마음이 떠나버린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 거에요」
「그런……그런 건!」
그 이상은 말할 수 없었다.
자기 자신을 그 자리에서 지워내고 싶을 정도의 꺼림칙함을 느낀 모코우는 충격에 일어서 있었다.
「40년 전. 사실, 그이는 당신을──」
그 고백을 모두 들을 때까지 버티지 못한 모코우는 도망치듯이 그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아니, 틀림없이 도망친 것이다.
도망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리고, 그 시작으로부터 마지막 날.
집이 불타고 있다.
마을의 소란을 눈치챈 모코우가 남들의 시선을 피해 달려왔을 때엔 그 두 사람이 사는 집은 이미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이미 어디서 발화한 건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타오른 불길은 점점 크기를 키우며 밤하늘을 붉게 밝히고 있었다.
40년 동안 낯익은 집이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모코우는 멍하니 멈춰서고 말았다.
주변에는 화재를 우연히 눈치챈 마을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그들에게 발견되는 것 따윈 이미 머리 바깥으로 내몰려 있었다.
「……두 사람은?」
모코우는 누군가에게 난데없이 물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저 지켜보며 떠들 수밖에 없었다.
불이 언제 시작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미 어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이, 여기에 살고 있던 두 명은 어디 갔어!」
모코우는 가까이에 있던 사람의 멱살을 움켜 잡았다.
무서운 분위기가 감도는 표정에 상대는 모코우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당황하며 대답했다.
「지……집에서 나온 사람은 없어. 아마, 아직 안에 있을 거다」
「──으, 으아아아아앗!」
다음 순간, 모코우는 절규를 내지르며 불타오르는 집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뒤에서 그녀를 말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달렸다.
호흡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뜨거운 공기를 가르며 무너져가는 집의 파편을 피해 무모하게 달린다.
두 명이 있는 곳은 모르지만, 방의 배치는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다.
40년 동안이나 다닌 집이다. 설령 주변이 불꽃의 벽에 둘러싸여 있을지언정, 내부 파악 정도는 정확하게 할 수 있다.
모코우는 쏜살같이 늙은 여성이 자는 방으로 달려들었다.
반쯤 불타버린 미닫이문을 차서 열어보니 역시 생각대로 두 사람이 있었다.
주변의 불길 따윈 마치 없다는 듯이 이불에 뉘인 늙은 여성의 옆에서 늙은 남자가 앉아 있다.
「무사한 거냐!」
모코우는 이때 마음속 깊이 신의 자비에 감사를 표했다.
「빨리 도망치자!」
「……죽었습니다」
그리고 귀에 들린 그 말에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아내는, 이미 죽었습니다」
「…………뭐?」
「제가 죽였습니다」
남자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모코우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나친 충격에 마음이 이해하기를 거절한 것일지도 모른다.
주변의 소리가 사라지고 열기는 느껴지지 않게 됐다.
「자신이 직접 죽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만, 이제 그럴 힘도 남지 않아서 제가 독을 준비했습니다」
「……어……무슨?」
「집에 불을 지른 것도 접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제야 남자는 모코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불길에 비춰지는 늙은 남자의 눈은 강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눈은, 하나의 결의를 품은 눈이었다.
「마지막으로 아내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까지에 대한 것, 앞으로에 대한 것, 그리고 당신에 대한 것──」
남자는 이 궁지 속에서 장소가 착각될 만큼 평화로운 미소를 지었다.
「어렸을 때, 저는 당신에게 은밀하게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늙은 지금에 와서 떠오르고 말았어요. 저는……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모코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두려운 것처럼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도 결코 잃지는 않았어요.
늙은 저로선 이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굳히는 것이 아무래도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마음도 함께 제 속내를 모두 아내에게 말하고, 또 그녀의 속마음도 모두 들었습니다」
「그……그 결과가, 지금 이 상황이라는 거야……?」
「저는, 이제 더 이상 그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약해진 마음의 방황을 멈추는 것은 이미 제가 뭘 어쩌든 불가능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대로 말을 끝맺지 않은 남자는 작게 웃더니, 잠자듯 자리에 뉘인 늙은 여성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었다.
일찍이 그녀에게 장가갔을 때 같은, 자애로 흘러넘치는 행동이었다.
「집이 무너집니다. 빨리 도망치세요── 아니」
남자가 품에서 칼을 꺼내는 것을 보고, 모코우는 제정신을 차렸다.
「필요 없는, 참견이었나요」
「그만둬어어어어──!」
그렇게 외치며 손을 뻗는 모코우를 막아서듯이, 눈앞에 불타오르던 지붕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불의 저편에서 남자가 자신의 목에 칼날을 찔러 넣는 광경이 보였다.
모코우는 피를 토하듯이 절규했다.
그 소리가 무너지기 시작한 집의 소리와 크기를 키우는 불꽃의 소리에 삼켜져간다.
그럼에도 단말마와 같은 그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크게 울려 퍼졌다.
죽은 두 사람처럼, 그녀도 또 한 번 목숨이 끝어질 때까지. 끝없이──.
──태어나고 태어나고 태어나고 태어나 생명의 시작에 어둡고.
결국, 화재가 진압된 것은 새벽녘이었다.
「심한 화재였는걸」
「다른 집에 옮겨 붙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야. 죽은 사람은 두 명……아니, 그 정체 모를 아가씨까지 하면, 셋인가」
새까맣게 불탄 집의 잔해를 마을사람들이 힘을 합쳐 치우고 있다.
시체를 찾아내 적어도 묻어주기라도 할 생각인 것이다.
그때, 겹겹이 쌓인 나무 조각의 틈새에서 불길이 솟아오르자 주변의 마을사람들이 숨을 삼켰다.
「불씨가 남았었나!」
「위험해, 떨어져라. 이미 불탈만한 건 없어. 얼마 안 가 사라질──」
마을사람들의 말이 끊겼다.
눈앞의 믿기 어려운 광경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불길은 나무 파편에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 아래에 파묻혀있던 시체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눈을 치켜뜬 그들의 시선엔 불길에 싸인 시체가 천천히 일어서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사그라들기 시작한 불꽃 아래서, 살아있는 인간의 피부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그제야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괴물이다……!」
누군가가, 그렇게 외쳤다.
시체가 불길에 싸이더니 그것이 사라진 뒤에 살아있는 인간이 남았다.
이 세상의 이치를 정면으로 거역하는 현상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불길에 의해 죽음에서 소생한 인간──모코우는 두려움에 기가 죽은 주변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 눈에는 사실 그 어떤 것도 비춰지고 있지 않았다.
아직도 마음이 죽은 채인 것이다.
「사, 사람인가……?」
「바보같은 말 하지 마, 부활한 시체가 인간일 리가 있냐! 귀신이라고!」
「무기……뭐든지 좋으니까 무기를 가져와!」
「어이, 그 불길에서 살아난 괴물이라고! 뭘 할 수 있다는 거냐!」
마을사람들 각각이 흉기가 될만한 농기구를 손에 쥐고 모코우를 둘러쌌지만, 모두가 두려워하며 기가 죽어 있었다.
상대는 죽지 않는 인간이다.
서툴리 손을 대서 날뛰기 시작하면 그때엔 뜻밖의 희생자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코우는, 역시 주변 사람들의 소란에도 의식을 돌리지 않았다.
이윽고, 주변 마을사람들 속에서 한 노인이 걸어 나왔다.
딱 죽은 두 명과 연령이 같은 늙은 남자였다.
「……그러고 보니 40년 정도 전에 늙지 않는 여자가 있었지」
혼잣말을 하듯이 중얼거린 노인의 목소리를 들은 모코우는 그제야 의식을 현실로 되돌렸다.
「이 집에 불을 지른 것은 당신인가?」
모코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정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 아무래도 좋겠지. 너는 죽지 않는 인간이다. 무엇을 하든 우리 같은 평범한 인간에 승산은 없겠지」
「……」
「만약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다면, 얌전히 이 마을에서 나가줄 수 있겠나? 필요하다면 이 내 생명 정도는 주마. 부탁한다」
노인의 애원에 주변의 마을사람들은 숨을 멈추고 상황을 지켜봤다.
모코우는 노인에게서 시선을 돌리더니, 그 다음 모두 불타버린 집의 잔해를 바라보고는 마지막으로 발밑을 향해 고개를 떨궜다.
「…………인간이 다가오지 않는 장소는, 어디야?」
감정이 없는, 말 그대로 죽은 사람 같은 목소리로 모코우가 물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죽림이 있네. 사람이 들어가면 반드시 헤매고, 요괴가 된 짐승이 서식하는 위험한 장소다. 사람들은 그곳을 무서워해 아무도 발을 디디지 않지」
「……그래. 고마워」
겉치레만 있는 감사를 말하며, 모코우는 노인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길을 막고 있던 마을사람들이 당황하며 길을 비켜선다.
죽지 않는 인간을 향한 두려움은 물론 있었다.
그러나 부활했음에도 배어 나오는 분위기나 행동에 죽은 사람의 분위기가 깃든 모코우의 모습을 기분 나쁘다고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언가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가 불러서 가는 것도 아닌──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계속 걷는 것으로 보였다.
「저것이 사람이라면, 너무나 끔찍하지 않은가……」
흔들흔들 거리는 망자의 걸음으로 떠나가는 모코우의 등을 바라보던 노인은 불쌍하다는 듯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죽고 죽고 죽고 죽어 죽음의 끝에 밝다.
◆
눈을 뜬 뒤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그것이 지금 꾼 꿈의 탓인지, 그렇지 않으면 그 꿈이 지금의 현실과의 기시감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이불에서 일어난 모코우는 모든 감정이라는 것이 사라진 것 같은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얼마 동안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찾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서서히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고 그제야 무엇을 찾고 있던 것인지를 깨달았다.
현실감이다.
조금 전까지 일어났던 거이 꿈이었다는 확실한 증거다.
그 증거는 곧바로 발견되었다.
자신이 자고 있는 이불. 몇 년이나 써온 물건이 아닌, 새로 만든 지 얼마 안 된 따뜻한 이불의 존재.
밤의 어둠 속에서도 살짝이나마 보이는 집은 예전과 비교하면 놀라울 만큼 훌륭했다. 매일 같이 열심히 개장한 성과였다.
모코우는 흐느적흐느적 이불에서 빠져나왔다.
목이 마르지도 않으면서 물병의 안을 엿본다.
새로 뜬 지 얼마 안 된 맑은 물이 차있다.
밖에 나와보니 아직 달이 머리 위에 있었다.
새벽은 멀다.
집의 주변을 느긋하게 걷는다.
매일 아침, 선대 일행이 요리를 하는 받침대에 조리 기구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어제 밤에 불을 지핀 장소엔 거무스름한 자국이 남아 있다.
장작패기에 사용하는 도끼.
조립식 울타리.
목욕탕으로 사용하는 드럼통.
전부, 그곳에 있었다.
몇 시간 전까지 사용되었으며, 그리고 앞으로도 사용될 물건들.
지금 모코우의 생활의 일부가 된 것들이다.
소란스러우며, 따뜻한 일상의 증거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이 머지않아 헛되이 사라지는데 100년도 채 남지 않았다.
모코우는 자신을 덮쳐오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밤하늘을 올려봤다.
달은 아직 머리 위에 있다.
새벽은 아직 멀다.
……너무나도 멀다.
빨리 아침이 오기를 모코우는 절실하게 바랐다.
그러나 동시에, 내일이 오는 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처음 300년은 인간에 미움 받아 몸을 숨기며 살았다.
──그 다음 300년은 세상을 원망하고, 요괴를 퇴치하는 것으로 그것을 해소하고 있었다.
──다음 300년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나날이었다.
──그리고 다음 300년을 거쳐, 이 환상향에 겨우 도착했다.
돌고. 돌고. 돈다.
만남. 이별. 만남. 이별.
얻고 잃고. 잃고 얻고.
가득 찬 배도 얼마 안 가 텅 빈다.
따뜻해진 손도 얼마 안 가 차가워진다.
또 먹으면 된다.
또 맞잡으면 된다.
하지만, 이 반복은 언제 끝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