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21 「영야초」
──신기한 걸 찾았다.
낯익은 죽림 속에서 낯선 무언가를 발견한 테위는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것을 얼마 안가 깨달았다.
작은 호기심은 커다란 귀찮음에 지워졌다.
요정조차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 죽림 속에 인간이 홀로 나앉아 있었다.
한순간 못 본 척 넘어갈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웠으나 곧바로 자신이 영원정의 거주자들과 나눈 계약을 떠올렸다.
인간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것.
눈앞의 인간이, 살아 있는 건지 죽어 있는 건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살아있으면 대답하고─」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혼잣말을 하듯 질문을 입에 담으며 테위는 한 발짝 다가갔다.
「죽었으면 대답하지 마」
이곳에 나앉은 지 며칠은 지난 것 같았다.
더러운데다가 여기저기 상처가 엿보이고, 벌레가 몸에서 기어 다니고 있다.
숙여진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애당초,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살아있지만, 죽어있기도 하네──」
──그게 제일 귀찮은데 말이지.
테위는 자신의 속내를 머릿속으로만 떠올렸다.
눈앞까지 다가왔음에도 그 인간은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전혀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탓에 묘하게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가까이서 보니 그 인간의 성별이 여자라는 것을 겨우 확신할 수 있었다.
더럽혀진 백발의 긴 머리카락은 깨끗했다면 백은 빛으로 빛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노파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실제 나이는 어떨까 알기 위해 테위는 그대로 여성의 턱을 잡아 숙여진 얼굴을 들어 올렸다.
「……이건……또」
──귀찮은 걸 찾아냈네.
기나긴 세월 속에서, 세상의 단맛, 쓴맛을 전부 경험해본 테위가 드물게 표정을 찡그렸다.
예상 중에서 최악의 예상이 맞아 들어갔다.
아니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도 테위를, 아니 주위의 그 어느 것도 비추지 않는 풀린 눈.
생기를 잃었다, 라고 말할 만큼 가벼운 상태가 아니다.
「너, 무슨 얼굴 표정이 이래……」
──이 녀석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에 어떤 가치도 찾아내지 못한 것이다.
◇
──모코우여. 이 어려운 수행을 용케 참아냈구나.
요 1달간의 시간을 단련함에 따라 기초가 서서히 다잡아지기 시작했다.
그럼, 드디어 내가 너에게 오의를 하사할 때가 왔구나!
매일은 아니지만, 거의 일과가 된 모코우와의 수련.
이제까지 단순한 체력 단련이라거나,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을 무렵에는 주먹을 쥐는 방법, 기본적인 자세 등등 정말로 기초중의 기초를 가르쳐왔다.
모코우 자신이 헤매임의 죽림에서 사는 이상 특별히 가르쳐 줄 주의사항도 없어 하루를 순수하게 단련에만 소비할 수 있었으므로 상당한 밀도의 단련이 가능했다.
따라서, 오늘은 드디어 구체적인 전투기술의 습득에 들어가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생겨난 또 하나의 문제점.
──뭘 가르치지?
이제 와서냐!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만, 솔직히 말해 이게 의외로 난관이다. 일단, 며칠 전부터 고민하기는 했지만.
물론, 내가 익힌 기술 중에서 쓸 만한 것을 골라서 가르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니 내가 익힌 기술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우선, 습득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애당초 내 목적은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수행」을 하는 것이며, 그 결과로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기술」을 익혔을 뿐이긴 해도, 모두 하루아침에 배울 수 있을 만한 기술이 아니다.
감사의 정권지르기라든가, 우선 「무엇에 감사해야 하는가」라는 부분을 모코우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정권지르기는 가르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우선은 자세 자체를 몸에 기억시키기 위한 반복 연습이 먼저다.
파문법은 어떨까? 폐의 공기를 전부 짜내면 일단 바로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새끼손가락을 박아 넣는 걸 내가 할 수 있을까? 무리다. 평범한 공격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불로불사인 모코우에게 시간은 충분하겠지만, 그렇게나 오랫동안 수행을 한 뒤에야 카구야와 싸워야 한다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번 죽으면 리셋이라는 조건 탓에 수련을 거듭하여 익히는 타입의 기술은 맞지 않는다.
이렇게 된 이상 처음 모코우가 말했던 대로 「황금장방형의 회전」 같은, 이론을 이용한 파워업이 바람직할지도 모르지만……이것도 솔직히 익히기 어렵다.
그전에 단순한 단련만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니, 나도 「모코우, 너는 이제부터 「가능할 리가 없어」라는 대사를……네 번까지만 말해도 좋다」라는 흐름으로 수련을 해보고 싶었지만, 이건 내가 즐거울 뿐 절대로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어떻게 할까──?
내가 낸 대답은, 이것이었다.
「정신집중 수행이라고?」
「그렇다」
다섯이서 모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아침식사 시간.
오늘부터 할 새로운 수행의 내용을 단 한마디로 정리한 내 말을 모두가 되뇌었다.
「그거 정말이지……기본적인 거네」
「하지만 중요한 것이다」
어이없이 허탕을 친 것 같은 쓴웃음에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사실 너무 당연한 반응이라, 반쯤 표정이 굳은 거라는 사실은 비밀.
「나는 분명 최강이라 유명한 선대무녀의 기술 중 하나를 전수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테위의 딴지가 너무 지당해서 마음속으로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기대하게해서 미안해.
그렇지만 잘 생각해보면 지금의 모코우가 빨리 강해지려면 이게 최선이었어.
「──흠. 아니, 옛적부터 정신집중은 무술 단련의 비법으로서 중요시되어 온 것이다.
이른바 「무아의 경지」나 「명경지수」라 불리는 본연의 자세는 무술을 추구한 끝에 얻을 수 있는 것이라 말해지고 있지」
케이네의 보충이 너무 완벽해서 위험해.
그래! 그래요.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겁니다!
나는 케이네의 말을 이어 이때라는 듯이 편승했다.
「단순히 신체나 기술의 단련만을 계속하면 반드시 생겨나는 미숙함. 그 미숙함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정신의 단련이다」
그렇게 득의양양한 얼굴로 말하는 나의 이 절대적인 자신감이 어디에서 오냐 묻는다면, 많은 격투 만화에서 온다고 답할 수 있다.
이미 왕도라고 말할 수 있는 「캐릭터의 파워업」에 빠뜨릴 수 없는 정신수련.
얼핏 보기에 화려한 기술을 습득해서 「최강 아냐?」라고 생각하게 해 두고, 극히 기본적인 부분이 미숙하여 달인에게는 이길 수 없다──라는 전개는 자주 그려져 왔던 것이다.
형식이나 흐름은 달라도 그런 정신적인 수행을 거쳐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여」라는 느낌으로 전체적인 힘이 상승하는 전개는 왕도 중 하나다.
그런 스토리 중반에야 일어날 이벤트를 일찍 일으켜 버리자는 것이 내 속셈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육체단련 뒤에 해야 하는 거다만, 모코우라면 마음을 단련하는 편이 효과적이겠지」
「뭐, 확실히 그거라면 죽은 다음 리셋도 상관없을 테니」
「기술이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정말로 중요한 것을 단련한다……역시 대단하십니다, 선대님」
「뭐, 뭔진 모르겠지만, 스승은 대단하다는 거지?」
「치르노, 내 생선 줄 테니까 잠깐만 조용히 있어봐」
「정말!? 아싸─!」
모코우와 수행을 시작한 이래 틈만 나면 나를 치켜세워주는 케이네. 그런 말을 할 기회가 늘었기 때문일까? 내게 향해지는 존경심이 아프다.
테위와 치르노가 훈훈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시야 저편으로 돌리며 나는 가장 중요한 모코우의 반응을 확인했다.
이런 느낌의 수행을 예상하고 있는데, 어때?
수수하지만 꽤 효과적일 거라고 생각해.
「……」
「……모코우?」
「어! 아, 아아……응. 아, 알겠어」
중요한 모코우는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었나보다.
「모코우. 당신 자신에 대한 겁니다, 집중하세요」
「미안. 잠깐, 생각할 게 생겨서……」
케이네의 설교에도 모코우는 묘하게 힘없이 답했다.
흠. 며칠 전부터 모코우의 상태가 신경 쓰인다.
수행 중에는 굉장히 집중하고 있어서 그렇게 심각해 보이진 않았지만, 수행을 하지 않을 때엔 다른 데 정신을 팔고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무언가 걱정이라도 생긴 걸까?
지금 생각해보니 수행에 집중하는 것도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일 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뭔가, 있는 건가?」
제대로 된 질문이 떠오르지 않은 나는 애매하게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정말로.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 수행을 하는 거야? 정신단련이라고 들어봤자 전혀 상상할 수 없는데」
모코우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
응, 그런데……무서울 정도로 표정에 훤하게 들어나는데.
케이네도 이상하다는 표정이고, 테위는 뭔가 포기했다는 듯이 작게 어깨가 쳐져있었다. 열심히 밥을 먹는 치르노만이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이 장소에서 추궁할 수도 없는 노릇, 나는 모코우가 꺼낸 질문에 대답했다.
뭐, 정말로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만약의 경우에는 상담해주겠지.
뭐랄까 우리들은 영화에 나오는 사제관계 같은 깊은 정으로 이어진 수행의 나날을 함께 보내는 사이니까 말이지.
「「천심」이라는 경지가 있다」
내가 엄숙하게 꺼낸 말에 모두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음을 예리하게 해라. 강은 뗏목을 부술 수 없다, 물방울만이 뗏목에 구멍을 내지」
만화 속에서 나온 정신의 경지를 표현하는 방법은 상당히 많다. 「명경지수」라거나 「물의 마음을 가져라」라든가.
그러나 의외로 그것들 자체엔 그리 큰 차이는 없다.
겉으로 내보일 수 있는 기술과는 달리 정신의 경지에 구체적인 모습은 없으니까, 말로 표현하는 것을 깊게 파헤쳐보면 대체로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다른 만화의 팬들에게 까일 것을 각오하고 그런 요점을 대충 모으면 결국 「잡생각을 버리고 집중해라」라는 말로 끝난다.
많은 만화에서는 이런 경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갖가지 말들로 표현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제일 이해하기 쉬웠으며, 구체적으로 이미지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 「천심」의 경지였다.
……뭐, 원본인 요괴소년 호야을 특히나 좋아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긴 하지만.
「……잘, 모르겠어」
「지금은 그걸로 좋다」
당연이라고 하면 당연한 감상을 입에 하는 모코우에 대해서, 나는 의미 있어 기분에 수긍했다.
속으로는, 뭐가 「그걸로 좋다」라는 건지 나조차 알 수 없었다.
다른 일행도 내 말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고만 있을 뿐, 그렇게 빨리 요령을 잡을 수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응, 뭐……그렇지. 그게 보통 반응이지.
말만 듣고 「물……? 그렇구나, 알았다! 」라면서 각성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
새삼스럽지만 이 수행의 어려움을 절실하게 느꼈다
애당초 「단련을 거쳐 도달할 수 있는 경지」니까 일찍 해버리자는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원본인 만화도 모르는 모코우에게 이런 말만 해봤자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나…….
그렇지만 우선 이외에 좋은 방법도 생각나지 않았으니, 할 만큼은 해보자고!
「수행 자체는 이제까지 해왔던 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기본적인 격투기를 추가로 가르칠 뿐이지」
「흐음…… 뭐, 따로 생각이 있겠지」
원호사격 고마워, 테위.
그렇지만 미안. 사실 딱히 생각해둔 게 없어.
현재 진행형으로 아파져가는 속내를 숨기며 겉으로는 태연한 척 식사를 끝낸다.
아, 맞다맞다.
그러고 보니 확인해야 할 사항을 잊고 있었다.
「모코우. 호라이산 카구야와의 승부는 언제 할 생각이냐?」
나는 수행이 끝날 날에 대해 물었다.
처음엔 지식으로만 알고 아직까지도 안면을 트지 못한 카구야의 존재를 수행 중에 은근히 질문해 모코우에게 들어왔다.
물론 그다지 많이 말해주지는 않기에 모코우와 카구야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알고 있어선 안 될 정보다. 질문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
또 에이린 때 같은 긴장감을 맛보는 건 사양이니까.
우선 나를 포함한 이 장소의 모두가 「카구야는 모코우가 승부해야 할 상대이며, 이제까지 몇 번이고 싸웠지만 졌다」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전에 승부했을 때가 언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요 1개월간은 수행뿐인 날이었다.
딱히 서로 날짜를 정해서 싸우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하지만, 모코우가 정확히 언제쯤 승부를 걸 생각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그에 따라 수행의 과정도 결과도 바뀌게 되니까.
「……그건……」
그러나 모코우는 그런 당연한 의문에 대한 대답을 망설이는 것 같았다.
「왜 그러나?」
「아직……결정하지, 않았어」
「그런가. 그렇지만 날은 결정해 두는 편이 좋을 거다」
그냥 막무가내로 단련하는 것보다, 목표가 있는 편이 당연히 진척이 빠를 테니까.
거기에 지금은 이렇게 다섯이서 모이는 것이 너무 당연해져버렸지만, 케이네에게는 서당 일도 있고, 나도 최근 진료소를 너무 오래 비워둬서 슬슬 복귀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은 나만이 아는 예정이지만, 앞으로 여러 이변이 환상향에서 잇달아 일어날 테니.
이 헤매임의 죽림이 무대인 「영야이변」도 걱정하고 있다. 언제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나도 이 일상이 즐겁기는 하지만, 앞으로도 같은 나날이 영원할 리는 없다.
뭐, 그 변화가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것이지만.
「……알고 있어. 그……나중에, 승부할 거야. 나중에……」
그렇게 대답한 모코우의 고개가 숙여지며 목소리도 약해져갔다.
──왜 그러는 거야?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뭔가 방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대답을 망설이는 것이 나쁘다고는 하지 않겠지만──으응, 여기선 위대한 명언으로 모코우의 등을 밀어줘볼까!
「「나중」이란, 언제냐? 내일인가?」
「……뭐?」
「모코우, 나중이라는 건 언제의 나중인 거냐?」
말문이 막힌 모코우에게 나는 딱딱한 말투로 질문했다.
미안. 조금 딱딱한 말투기는 하지만, 결단을 망설일 때는 이 말이 제일 효과가 클 것이다.
「내일이란, 지금이다」
누나, 내일은 지금이야!
나 자신도 50년간 살아오며 여러 난관에 부딪쳤을 때 몇 번이고 마지막 버팀목으로서 남아준 말이다.
아니, 진짜라고. 위대한 선구자분들의 말에는 도움 되는 말이 많다.
진부한 소리지만,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모코우와 보내는 나날은 물론 좋지만, 그렇기에야말로 모코우는 보다 충실한 시간을 보내 줬으면 한다.
계속 져오던 카구야에게 이기는 것이 그 첫걸음이 된다면, 그 한 발짝을 내디디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니──」
「……시끄러워!」
……뭐?
「다음은 다음이야! 내일은 오늘이 아니라고! 앞일에 대한 이야기 따윈, 하지 말라고!」
모코우는 자리를 박차 일어서서 절규했다.
두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어깨를 떨고 있다.
분노와 초조함, 그리고 그 이상의 슬픔이 모코우에게서 엿보였다.
「모코우, 왜 그러는 겁니까? 선대님은 그저──」
「하지 말아줘……」
당황하며 말리려 했던 케이네의 말을 막으며, 모코우는 말문이 막힌 우리들 모두를 눈물을 흘리며 돌아봤다.
「내게, 지금의 일상을 가져다 준 너희가……앞일에 대해선, 말하지 말아줘……!」
그것은 호소보다는 애원하는 것 같은 외침이었다.
모두가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나머지 멍해져버려 조용해진 장소에서 도망치듯이, 모코우는 등을 돌려 달리기 시작했다.
죽림 속으로 뒷모습이 사라진다.
나는, 물론 양다리에 때문이기도 했지만……쫓을 수 없었다.
「모코우!」
「기다려, 치르노. 미안하지만 네가 쫓아가면 안 돼」
「테위, 방해하지 마!」
「됐으니까, 여긴 선생님에게 맡기자고. 괜찮지, 케이네?」
이 장소에서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대처한 테위가 무거워진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듯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내가?」
「내 생각대로라면 이중에서 제일 적임이야」
「……알겠다. 죄송합니다, 선대님. 다녀오겠습니다」
모코우를 쫓아 달려간 케이네를 말없이 배웅한다.
응, 다녀오세요.
조심해…….
…………어째서 이렇게 된 거야아아!
나는 속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어딜 어떻게 봐도 내 말이 모코우에게 상처를 입힌 것 같았다.
무, 뭐야…뭐가 문제였던 거야…!
역시 말투가 너무 딱딱했나? 그렇지 않으면 알고 있는 것을 꼬치꼬치 설교하는 것처럼 말한 것이 문젠가!?
「선대. 당신이 걱정할 필요는 없어」
아무래도 내 철면피로도 이 고뇌를 숨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내 상태를 눈치챈 테위가 웃으며 그렇게 말해줬다.
그러나 그 말에 순순히 끄덕일 수는 없었다.
나는 상황을 전부 파악한 것으로 보이는 테위에게 대답을 바라며 시선을 향했다.
「「내일이란 지금」──좋은 말이라고 생각해. 헤매임과 후회뿐인 인생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가르쳐주는 말이야」
장난스러운 어조를 그만둔 테위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듯 끄덕였다.
「좋은 말이지. 그렇지만……모코우에게는, 조금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 「앞으로 나아가라」라는 말은 말이지」
테위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작게 웃었다.
평소의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가 아니다.
처음으로 보는, 그렇지만 분명 테위의 진심이 느껴지는 솔직한 미소였다.
「물론 그건 모코우가 약하기 때문이지만.
그렇지만 어쩔 수 없어. 그 녀석은, 요괴도 신도 아니야. 그저 우연히 불사신이 되어 버린, 평범한 인간 여자애니까……」
테위의 미소에는 작은 슬픔이 담겨 있었다.
◆
한 달간 모코우의 집에 다니며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역시 이 죽림은 들어온 자가 현혹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다행히 바로 뒤를 쫓은 케이네는 겨우겨우 모코우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케이네에게서 등을 돌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전속력으로 달렸음에도 따라잡을 수 없었던 데다, 자신과는 달리 조금도 숨이 차지 않아 보이는 모코우의 모습을 보며, 케이네는 「수행의 성과가 나오고 있군」이라며 장소에 맞지 않는 감상을 느꼈다.
「……모코우」
테위는 자신이 제일 적임일 거라고는 했지만, 정말로 그럴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질문하듯 이름을 부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미안, 케이네」
케이네의 말에 대답하는 모코우의 목소리는, 생각 외로 또렷했다.
「아니, 아닌가. 사과는 선대에게 해야지. 하하, 나중에 제대로 사과해야겠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감정을 내보이며 한탄하던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았다.
선대를 피하는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케이네에겐 그런 모코우의 행동이 마음속 흔들림을 억지로 참아내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아무리 목소리를 밝게 꾸며도, 모코우는 아직도 이쪽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대로라면 모코우는 분명 자신의 속내를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지셨습니까?」
마음을 굳게 먹은 케이네는 바로 본론을 꺼내들었다.
아직도 이쪽에 등을 보이고 있는 모코우가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 모코우가 소리친 이유는 찾아올 미래에 두려움을 느껴서가 아닌가요?」
자세하게 묻지는 않았다.
그러나 케이네는 모코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기묘한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케이네 자신이 매우 공감할 수 있는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망설임 없이 말하고 있음에도 딱딱한 말투가 아닌 모코우를 위로하는 것만 같은 상냥함을 담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아아, 그래」
모코우는 풀죽은 목소리로 긍정했다.
「선대들을 만날 때까지 매일이 똑같았어. 이런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었지.
선대들을 만난 뒤부터는 매일이 달라졌어. 내일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대 돼서 잠을 못 잘 정도였다고」
「지금은, 아닙니까?」
「응, 무서워. 나는, 하루가 끝나는 게 무서워. 내일이 오는 게 무섭다고」
모코우는 나날이 찾아오는 괴로운 수행 속에서 분명 기쁨과 행복을 느꼈었다.
카구야를 쓰러뜨리기 위한 힘을 쌓는다는 것이 그렇게 기뻤던 것은 아니다.
주변의 상냥한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그녀들과 목표를 하나 둘 달성한다── 그 달성감이 모코우에게 기쁨과 함께 살아 있다는 실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달성감이, 살아 있다는 실감이, 정확하게는 그 후에 찾아오는 한숨 돌리는 시간에──.
형용키 힘든 허무함을 느낀다.
하나의 목적을 달성한 뒤에, 하나의 마지막을 느낀다.
──한 걸음 한 걸음, 이 일상의 마지막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 두렵다.
케이네는 모코우의 고백이 마치 몸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일찍이 머지않아 찾아올 선대와의 이별을 상상하며 두려움에 떨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꿈에서 봤던 광경이 곧 현실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차라리 꿈속이라면──눈이 떠지는 아침 따윈 찾아오지 말았으면, 이라며 몇 번이고 되뇌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완전히 잊어지지 않았다.
아마 그때가 올 때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모코우와 자기 자신을 함께 타이르듯이 케이네는 고개를 저었다.
망설임은 없앨 수 없다.
그러나 대답은 얻었다.
「시간의 흐름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윤회를 막는 것은, 용납될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마음의 괴로움을 견디며 케이네는 천천히 자신의 답을 전했다.
「모코우, 당신의 마음은 저도 사무칠 만큼 압니다.
저는 반수. 선대와 같은 삶을 살 수 없는 몸이죠. 머지않아 저도 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일상을 잃을 겁니다」
「……」
「그 공포에 견디지 못한 전, 하나의 잘못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죄를 지었음에도 아직도 고뇌는 사라지지 않았죠.
그렇지만 알게 된 것도 있습니다. 이별이 있기에, 만남도 있다. 나날의 변화가 저와 선대를 만나게 해 줬다는 것을요.
모코우, 당신이 소중히 생각해주는 우리와의 일상도 「내일」이 오기에 얻을 수 있었 던 겁니다.
잃기에야말로 귀중한 하루가 있다. 그 가치를 부디 깨달아주세요. 설령 지금의 일상을 잃었다 해도 그것을 잊지 않고 품고 살아간다면──」
「아니야」
케이네의 설득을 모코우의 떨리는 목소리가 막았다.
「케이네는 내 마음을 몰라」
「예……?」
「너와 나는 다르다고!」
모코우는 이쪽을 돌아봤다.
역시 그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녀는 눈물을 감출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케이네는 죽을 수 있잖아!」
모코우의 피를 토하는 것 같은 절규에, 케이네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케이네가 한 말도, 선대가 한 말도……맞는 말이야. 맞는 말이란 건, 알고 있어」
「모, 모코우……」
「그렇지만, 그건 죽을 수 있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나는 죽을 수 없어……끝이 없어. 내 인생을 끝낼 수 없다고. 아무리 대답을 얻어도 그 답을 끝까지 밀고나갈 수 없어!
아무리 굳게 각오해도, 아무리 마음이 채워져도, 나한텐 그 앞이 남아 있단 말이야! 끝나지가 않는다고!」
모코우는 마치 추궁하듯 케이네의 어깨를 붙잡았다.
험악하게 일그러진 험상궂은 표정임에도 불구하고, 팔로 느껴지는 힘은 너무나도 허약했다.
「내가 생각하는 건 선대와의 이별만이 아니야.
케이네도, 테위도, 치르노도, 언제일지는 달라도 머지않아 생명이 다해 사라져 가…….
그런데……나만 달라! 나만! 이별하고 만나고, 얻고 잃는 걸 나는 영원히 반복해야 해!」
꽉 깨문 이빨 사이로 오열을 흘리며 모코우는 이마를 케이네의 가슴팍에 기댔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케이네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선대 같은 인간이 아닌 자신은 남겨지는 쪽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슬픔을 모코우도 느끼는 걸까, 라고 .
그러나 그 생각은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이별의 슬픔을 양식으로 남은 삶을 보낸다──그녀에게는 그조차 용납되지 않은 것이다.
케이네는 모코우가 견뎌온 세월과 고단함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뭐라 해줄 말이 떠오르지 않아 떨리는 손으로 모코우의 어깨를 잡는다.
「내일이 오는 게 무서워…….
무엇하고도 비교 못할 지금이, 백년 후엔 단순한 기억이 됐을 거란 사실이 무서워. 2백년 후엔 떠올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무서워.
이런 평화로운 일상을 옛날엔 몇 번이고 경험했었어. 그때, 희망이라는 녀석을 가질 수 있었지. 그래서 여태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거야.
그렇지만 나는 이제 천 년 전의 일 따윈 어렴풋하게도 기억나지 않아……!」
한탄하는 것 같은 슬픈 목소리 속에는 초조함과 분노 또한 섞여 있었다.
그 감정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는 모코우 자신도 알지 못했다.
모코우는 억누르지 못할 격정을 그저 밖으로 토해낼 뿐이었다.
「천 년이야……천 년이라고! 말로는 느껴지지 않지? 이게 얼마나 긴 시간인지, 상상할 수 있냐고!」
「……」
「너무 길어……천 년은, 인간인 나한테는 너무 길어. 그런데 영원이라니……그런」
그것이 영원의 생명을 얻은 봉래인의 진심.
목소리가 쉴 정도로 소리 지르며 울분을 토해낸 뒤에 남은 것은, 단순한 인간의 소녀가 흘리는 허약한 오열 뿐이었다.
「저기, 죽지 마……없어지지 마……」
모코우는 얼굴을 올리며 애원 담은 시선으로 케이네에게 호소했다.
「부탁해……부탁해요……! 없어지지 말아 주세요! 부탁해요!」
「모코우……」
착란에 빠진 모코우를 케이네는 억누르듯 세게 껴안았다.
그렇게 그녀가 침착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 외의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
「그래. 시시하네」
테위의 보고를 들은 카구야는 그렇게 말하며 낙담했다.
그런 행동마저 우아하다.
팔걸이에 팔을 기대고 양다리를 가지런히 모아 다다미 위에 앉아있다. 낙담할 때 약간 고개가 내려가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뭐라 형용키 힘든 매력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풀이 죽어있는 이유는 최근 에이린의 지시로 자신의 방에서 근신 중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테위가 바깥의 상태──몰래 지켜보고 있는 모코우 일행의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듣는 것 외에 자극적인 것이 없다.
「시시해, 라? 모코우가 들으면 화낼 걸. 그 말」
「아아, 그게 아니야. 모코우의 고민 이야기 말고. 선대무녀의 새로운 수행에 대한 거」
테위는 오늘 아침에 일어난 사건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카구야는 그저 있는 그대로 말해달라고 부탁받았으므로, 오늘 아침의 사건 때 모코우의 속내나 고민에 대한 자신의 견해는 들어있지 않다.
그러나 카구야와 테위의 예상은 아마 일치하고 있었다.
선대와 모코우가 만나기 전에, 테위에게 모코우를 돌봐달라고 부탁한 것은 다름 아닌 카구야였기 때문이다.
「선대무녀는 대대로 계승돼온 무녀의 비술과는 다른 독자적인 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다던데.
나는 그런 알기 쉬운 기술을 모코우에게 가르쳐주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지만……묘하게 수수한 점에 집착하네」
「아마추어 멋대로 기대해서 그런 걸까. 그렇지만 실제로 그런 방면의 수행이 모코우에게는 더 효과적일지도 몰라」
「그럴지도. 정말이지, 쓸데없는 참견이야」
카구야는 괴롭다는 듯 이마를 매만졌다.
「쓸데없다, 라……」
테위는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표정을 바꾸지 않는다.
카구야에게 모코우의 이야기를 해줄 때 그녀는 항상 이런 표정밖에 짓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 이야기에 카구야가 어떤 반응을 보여도, 테위는 자신이 느낀 점이나 생각하는 바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 쓸데없어. 정신 단련은 모코우에게는 악영향에 지나지 않아」
「오늘 아침 사건 때에는 선대가 악의를 가지고 모코우를 훈계한 건 아닌데 말이지」
「그래서 자각 없이 몰아넣게 돼버리는 거야.
결국 그런 거지. 머지않아 죽는 인간과 영원히 사는 인간의 차이란」
「봉래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거구나, 생자의 상식이라는 건」
「통하지 않아. 애당초 가치관마저 다른걸. 영원의 생명을 얻은 그 시점에서 세계의 견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돼.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건 다시 말해 살아있지 않다는 거와 같아.
그런데도 모코우는 아직도 「살며 죽는 인간」인 채 살아가고 있지. 그런 생각이 모코우의 마음을 마모시키고 있는데 말이야, 이제 와서 약해진 정신을 다시 단련하다니. 괴로움을 늘리는 것밖에 안 돼」
테위에게서 들은 선대의 말에 카구야는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카구야의 의견에도 테위는 아무 말도 없이, 그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이, 그저 살짝 콧잔등을 긁적일 뿐이었다.
동의인가 반대인가. 테위의 반응을 살펴보려던 카구야는 이윽고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모코우는 쓸데없이 죽었다 되살아나기를 반복하고 있어. 몸이 아니라 마음을 말하는 거야.
언제까지고 인간이었을 적의 삶에 기대고 있어. 이게 지상의 더러움이라는 걸까. 아직도 속박이 남아 그 아이를 방해하고 있는 거야」
「뭐, 모코우의 삶이 불쌍하다는 말엔 동의해.
공주님은 모코우가 완전히 은둔자가 돼버리면 편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
「세상과 사귀는 방법을 고쳐보라는 말이야. 주위엔 「살며 죽는 것」뿐. 이것도 저것도 우리들과는 달라.
같은 시선으로 보고, 같은 가치관으로 말하고, 같은 생각으로 마음을 열면, 머지않아 반드시 파탄 나. 그럴 때마다 마음에 상처를 입고, 힘이 다하지…… 슬슬 모코우도 깨달아야 할 텐데」
「세속 일엔 신경 끄고 마음을 돌처럼 굳히고 살라고?」
「그렇게 하지 않아서 모코우의 마음은 몇 번이나 한계를 맞이했어. 틀려?」
「아니. 그저 공주님 자신도 자신의 주위에 변화를 바랐던 거 아닐까 해서. 선대의 행동에 흥미를 가지기도 했고」
「그렇네. 고인 물은 얼마 안 가 썩어. 창을 열어 바람이 들어오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
카구야는 앉은 채 손에 쥐고 있던 나뭇가지를 잡았다.
가지의 끝에 선명한 색채의 보석이 붙어 있는 이상한 나뭇가지다.
그것을 가볍게 흔들자, 닫혀 있던 창문이 소리 없이 좌우로 열렸다.
열린 창문 저편은 안뜰과 이어져 있었다.
바깥은 밤이다.
기분 좋은 밤바람이, 둘의 사이를 지나쳐간다.
「그렇지만 내가 갖고 싶은 건 폭풍우가 아니야. 약하게 불다 마는, 자그마한 미풍. 그 이상은 필요 없어」
테위에게선 역시 아무 대답도 없었다.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묵묵히 카구야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너, 재미없네」
기품 있는 미소를 찡그리며, 어린 소녀같이 입매를 날카롭게 세우며 카구야가 투덜댔다.
자신의 이야기에 대한 테위의 반응을 기대했던 것이다.
동의도 반박도 좋다.
그러나 테위는 못 들었다는 듯이 콧등을 긁적일 뿐이었다.
「네가 처음 모코우를 찾아냈을 때부터 여태까지 감시와 보살핌을 부탁했었는데, 아무 감상도 없는 거야?」
「아니, 처음 공주님이 말했었잖아. 장수하는 요괴라도, 나도 머지않아 죽을 존재니. 같은 입장인 봉래인끼리 제일 잘 통할까 해서」
「그러니 아무 할 말 없다는 거야? 너, 조금 몰인정하지 않아?」
「공주님도 제법 변덕이 심하네. 결국 지금의 모코우가 살아가는 방법을 부정하는 건지 긍정하는 건지, 어느 쪽이야?」
「그건 당연하잖아. 부정이야, 부정!」
카구야는 그렇게 단언하며 마음을 다잡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아름다우면서도 악랄함이 담긴 표정이었다.
「처음은 새로운 힘을 기른 모코우와의 승부를 순수하게 즐길 생각뿐이었는데, 예상외로 귀찮은 짓을 해줬네.
이야기를 듣자하니, 이미 모코우는 자신을 몰아세우기 시작한 모양이고. 재미없는 결말을 반복하기 전에 먼저 승부를 걸 차례네」
「……이라는 건?」
「시기적으로도 딱 좋아. 에이린이 호들갑스럽게 준비하고 있는 것 같고.
내용을 살짝 들어보니 가까운 시일 내에 상당히 큰일을 저지를 계획인가 봐. 그때를 노려서 모코우에게 승부를 걸 거야」
「아니, 스승님이 그만큼 일을 크게 벌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공주님 때문일 텐데」
「그렇네. 그러니까 유익하게 써주겠어」
「안 된다고, 이 바보 공주」
테위의 기막히다는 잔소리가 안 들린다는 듯, 카구야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같은 하늘의 아래에 있을 모코우에게 의식을 돌리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
카구야는 모코우의 고뇌와 소원을 완벽하게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무리야. 생명은 다하고 다시 태어나는 것. 세계는 바뀌어야만 하는 것」
이렇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주변의 살아 있는 온갖 것은 모두가 반복될 것이다.
「봉래인은 윤회하지 않아. 모코우, 네 반복하는 방황을 끊어 줄게. 나와의 승부가, 네가 결단을 내려야 할 때야」
카구야의 눈동자가 그 승부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말하고 있었다.
잔혹하기까지 한, 선택을 강요하는 의지가 그 안에 품어져 있었다.
그리고 카구야의 말대로, 그 밤이 왔다.
거짓된 달이 발단이 된 이변의 시작.
기이하게도, 모코우가 바라던 「아침이 오지 않는 밤」의 시작이다──.
◆
「기다리게 했네, 레이무. 준비는 끝났어」
「준비, 라……」
틈새 속에서 식신과 함께 나타난 유카리를 힐끗 본 레이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밤하늘에는 보름달이 떠 있었다.
인간의 시점으로는 아무런 특징도 찾을 수 없는 밤.
그러나 요괴에게는 이변이 일어난 밤인 듯하다.
「저 달이 가짜라고?」
「인간인 너는 알 수 없겠지. 그렇지만 달의 영향을 받는 요괴 중엔 눈치챈 요괴도 있을 거야」
잠에 빠져있던 레이무가 갑자기 신사로 찾아온 유카리에 의해 일으켜진 것은 대략 대여섯 시간 전이었다.
짧게 사정을 듣고 그 중대함에 대해서도 들었지만, 아직도 레이무는 제대로 된 위기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그 「가짜 달」에 유카리가 취한 대처법이 더 큰일 같다고 느껴진다.
「「밤인 채 시간을 멈춘다」라는 편이 더 큰 이변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너의 상상이랑은 달라. 「시간을 멈춘다」는 것과 「밤을 멈춘다」라는 건 의미와 성질이 다르니까.
이 세상의 이치에 간섭하기 위해 필요한 건 「힘」보다 「지혜」야. 강함보다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 뛰어난 술사나, 예를 들면 너라도 가능할 거야」
반대로 이건 선대에게는 무리겠네, 라며 웃는 유카리를 레이무는 복잡한 심정을 담아 노려봤다.
유카리가 말하는 「준비」란, 가짜 달을 유지한 채 밤을 멈추는 술식에 대한 것이었다.
수단도 수단이지만, 뭣보다 실제로 해버린 유카리도 터무니없다.
틈새 저편에서 어떤 술식이나 의식을 끝내고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카리는 상쾌한 표정으로 신사로 돌아와 이대로 가짜 달과 관련된 이변 해결에 끼어들 기세다.
평소에는 방관자의 입장에 선 요괴의 진심을 레이무는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대로 밤이 계속되면 달의 마력이 환상향의 요괴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될 거야. 물론 그렇게 되기 전에 이 영야의 술식을 해제할 생각이지만.
그렇지만 그 가짜 달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어. 이건 내가 밤을 멈춘 것과 필적할 정도의 엄청난 짓이야. 이런 소동을 벌인 누군가가, 이 환상향에 숨어 있다는 거지」
「요컨대 유카리 레벨의 괴물이 나돌아 다니고 있다는 소리네」
「그 말대로야. 설령 밤을 멈춰서라도 그 가짜 달을 추적해 「적」을 찾아내야 해. 그것도 제한시간 안에」
「귀찮은 이야긴걸」
유카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을 만큼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듣는 레이무는 느긋하게 기지개를 펴고, 말하는 유카리의 얼굴에는 평소의 묘하게 수상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하쿠레이의 무녀와 요괴의 현자.
환상향을 대표하는 실력자 두 명의 여유가 그대로 전해져온다.
「그럼 란, 다녀올게. 만약을 위해 영야의 술식을 보고 있으렴」
「──외람되옵니다만, 유카리님. 간언드릴 것이 있습니다」
레이무와 함께 신사를 나서려던 유카리의 뒤를 묵묵히 따르고 있던 란이 말을 건넸다.
「이번 이변은 이례적인 대사건. 실력자의 동행이 필수하다고 생각합니다」
「……흐응.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니?」
유카리는 일부러 모른 체하며 물었다.
옆에서는 유카리와 란, 서로의 생각을 날카롭게 간파한 레이무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인간 따위가 아닌, 저와 동행하시는 것이──」
「즉, 네가 레이무보다 이변 해결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말이니?」
「그렇게 생각합니다」
「레이무의 탄막놀이 실력을 알고서 「자신이 낫다」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니?」
「유카리님이 제게 사하신 식을 이용해주신다면, 가능성은 충분……그에 더해 저의 충성이 도움이 될까하여」
식신의 힘은 그 술식을 건 주인의 명에 따르는 것으로 진가를 발휘한다.
단독이 아닌 콤비를 짤 경우, 의견 충돌의 가능성이 있는 레이무가 아닌 유카리의 도구로서 충실한 자신이 유용하다──라고. 란은 말하는 것이었다.
유카리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학심과 잔혹한 즐거움이 담긴 요괴의 음침한 미소였다.
「과연. 그건 생각해볼 여지가 있구나」
「그럼……」
「생각이 끝났어. 결론을 말해줄게, 란──」
유카리는 균열이 갈라진 것 같은 형태의 미소를 지으며 란의 귓가에 속삭였다.
「다녀올게. 집지키기를 부탁해」
대답을 들은 란은 눈을 지그시 감더니 그대로 깊게 고개를 숙였다.
「……조심하십시오」
유카리의 몸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감정이 담긴 말이었다.
적어도, 란의 말에는 일절의 동요도 나타나지 않았다.
유카리는 만족한 듯 미소 짓고는, 다시 등을 돌려 신사를 나선다.
그 뒤를 쫓듯이 레이무가 날아오르고──신경이 쓰여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본 것을 바로 후회했다.
다시 지긋지긋한 기분이 되살아났다.
「너, 자기 식신 놀리는 건 그만둬」
「어머? 놀린 적 없어. 이건 사랑이야, 애정표현의 일종」
「내가 없는 곳에서 해. 그 녀석 날 진심으로 죽일 생각이었다고」
바로 방금까지 자신을 향하던 란의 눈을 떠올린 레이무는 지쳤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철판을 깐 것처럼 냉철한 눈동자 속에 살의와 질투가 숨겨져 있었다.
그 눈빛을 보고도 한줌의 공포조차 느끼지 않는다는 점은 과연 레이무다웠다.
유카리는 유쾌하다는 듯 소리를 내며 웃었다.
「란은 지치지도 않나보네, 부모에 더해 자식까지 눈엣가시로 보다니」
「뭐? 설마 어머니에게도 저랬어?」
「혹시 옛날 일에 원한을 품었던 걸지도 모르겠네. 질투가 깊구나, 우리 귀여운 여우는. 뭐, 나를 너무 따라서 그럴 뿐이지만」
「그렇네. 네가 나빠. 나랑 어머니의 눈앞에서 사라져 준다면 만사해결일 텐데」
평소와 다름없는 농담을 나누며, 인간과 요괴로 이루어진 태그가 이변의 밤하늘을 가른다.
나란히 선 레이무의 존재를 느끼며 유카리는 기묘한 그리움을 느끼고 있었다.
전에도 이렇게 곁에 자신의 식신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이변해결에 나섰던 적이 있다.
관계는 달라도, 그때와 같은 신뢰감을 느낄 수 있다.
「──적은 강대해, 레이무」
유카리는 마침 떠오른 기억을 되새기듯 말을 꺼냈다.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무에게 웃음으로 답하며 그녀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아니, 별 거 아니야. 오늘 밤은, 나와 너 둘이 모였으니까」
당대 하쿠레이의 무녀와 요괴의 현자.
이례적인 콤비가, 가짜 달을 추적하여 「적」을 노리고 있었다.
◆
「준비는 됐니, 요우무?」
「언제라도 갈 수 있습니다」
허리에 두 자루의 칼을 찬 요우무가 대답했다.
준비라고 말은 해도 챙길 것은 없다. 출발하기 전 갖춰둘 마음의 준비다.
요우무의 표정은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로 변해 있었다.
「네가 달을 벨 수 있었다면, 이런 이변은 바로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죄송합니다. 아직 미숙한 몸인지라. 하지만 적은 반드시 베겠습니다」
「……농담이야. 규칙을 지키며, 즐겁게 싸우자」
「네」
마치 진검처럼 날카롭게 갈아진 요우무의 기세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 했던 유유코의 의도와는 반대로, 돌아온 반응은 실로 흉흉했다.
옛날의 요우무라면 좀 더 귀염성 있는 반응을 보여줬을 텐데, 라며 유유코는 작게 입을 삐죽였다.
춘설이변을 기점으로 그 전과 후의 요우무는 확실하게 변했다.
첫 실전과 그 패배를 겪어, 무엇을 얻었는가.
혹 미숙함이나 무름을 잃은 걸지도 모른다.
지금의 요우무에게선 이제까지 없었던 자신감이나 확신 또한 보이긴 했지만──.
평범한 생활 속에서도 묘하게 흉흉한 분위기가 서린 요우무를 유유코는 몰래 걱정하고 있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유카리한테 연락이 왔었어.
입장을 따지고 보면 당연하긴 하지만 유카리도 이 이상한 달을 눈치챈 것 같아. 하쿠레이의 무녀와 함께 이변해결에 나섰다던걸」
「하쿠레이……레이무, 입니까」
요우무의 눈동자가 잠깐 흔들렸다.
자신이 처음으로 싸웠으며, 완벽하게 패배해버린 상대의 이름을 되새긴다.
그 입에는 의외롭게도 작은 미소를 지어져 있었다.
그러나 당연히 그 미소에 담겨있는 감정이 호의일 리가 없다.
유유코는 요우무의 미소가 송곳니를 드러내는 거나 다름없음을 눈치챘다.
「말 안 해도 알겠지만, 그녀들은 같은 목적을 가진 아군이야」
「네. 알고 있습니다」
요우무는 고개를 숙이고 작게 지어진 미소를 풀었다.
그것이 마지못한 반응이라는 것을 눈치챈 유유코는 부채로 입가를 숨기며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하쿠레이 레이무와의 만남이 나쁜 방향으로 튀어버린 걸까?
명계라는 폐쇄된 세계밖에 모르는 요우무에게 외부의 자극은 큰 성장을 이룰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던 유유코지만, 사태는 여러 의미로 그녀의 예상을 뛰어 넘고 있었다.
레이무가 요우무에게 끼친 충격과 영향은, 지금까지 요우무가 가져온 세계관을 산산조각으로 부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좌절의 나락에 빠져있던 요우무가 다시 일어선 것은 성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최근 유유코는 그것이 좋은 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고 있었다.
대체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된 것일까. 최근 요우무가 휘두르는 검에는 날카로움이 늘어가고 있다.
단, 눈앞에 있는 상상의 표적을 베기 위한 순수한 검술로서의 날카로움만이.
「네가 검을 배우기 시작한 건 그저 무언가를 베기 위해서가 아니었잖니……」
「예?」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뭐, 요우무는 아직 갈 길이 머니까 말이지?」
「예, 미숙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만……」
유유코의 말을 오해한 요우무는 애매하게 답했다.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와 같은 미소로 그런 요우무를 보는 유유코.
여러 모로 걱정거리가 많기는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설령 잘못된 길일지언정,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은 변함 없다. 성장의 일환이다.
단 하나의 만남이 요우무를 이렇게나 바꾸었다.
이번의 이변에선 어떤 만남이 있을까? 어떤 경험이 요우무를 바꿔줄까?
「가자꾸나, 요우무」
「가시죠. 유유코님」
주종 두 사람. 서로 생각은 달라도 어느 의미로 이 이변에 관련된 자들 중에서 가장 의무감이 없다는 것만은 같았다.
말 그대로 강 건너 불구경이다.
반인반령의 정원사는 주인의 적을 베기 위해.
망령의 공주는 그런 종자를 지켜보기 위해.
망자의 세계에서, 거짓된 달이 뜬 생자의 세계로 그 둘은 내려섰다.
◆
「이게 천식 약이에요. 휴대용이라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소중하게 써주세요. 몸이 불편해지면 바로 사쿠야 씨에게 말하시고요.
그리고 이건 제가 겨울에 사용하는 머플러에요. 조금 길어서 불편하겠지만, 목을 이걸로 제대로 감싸세요. 그리고 또──」
「알았어! 알았으니까……이제 그만둬줘, 메이링」
파츄리는 메이링이 일일이 챙겨주는 말을 당황하며 막았다.
등 뒤의 소악마가 어떤 표정으로 이 대화를 보고 있을지 간단히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의 파츄리라면 이런 식으로 어머니가 아이를 대하는 것 같은 취급은 자존심을 건드려 단호하게 거부할 테지만, 그 걱정은 악의 없는 선의인데다, 뭣보다 상대가 나빴다.
일찍이 메이링에게 돌봐졌던 몸으로서 그녀의 걱정은 아무래도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그런 메이링의 걱정을 자신이 결코 싫어하지 않는다는 점 또한 한 몫 했다.
「파췌, 준비는 끝났어?」
「그래, 차고 넘칠 만큼 말이지」
같이 외출 준비를 끝마친 사쿠야를 동반한 레밀리아가 나타나자 파츄리는 약간 질렸다는 표정으로 맞이했다.
등 뒤에서 이죽이며 기분 나쁘게 웃는 소악마는 일부러 눈에 들어오지 않게 하고 있다.
「제법이야. 뭐, 파췌의 지식과 사쿠야의 실력이 있으면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오늘 밤은 운명이 복잡하게 움직이고 있어. 일단 조심해」
「문제없어. ──하지만 정말로 내가 가도 괜찮은 거야?」
「뭐야, 역시 귀찮아?」
「아니, 친구의 부탁이니 당연히 들어줘야지」
사쿠야는 주인의 명령으로. 파츄리는 친구의 부탁으로. 각각 오늘 밤에 일어난 이변의 해결에 나서려 하고 있었다.
레밀리아는 달의 영향에 가장 민감한 요괴 중 하나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하늘의 달이 가짜라는 것을 눈치채고, 그 후에 시작된 시간의 흐름의 이상과 그것이 환상향에 끼칠 영향까지, 모두 간파하고 있었다.
멈춘 밤을 움직여 진짜 달을 되찾아야 한다──.
드물게도 그녀는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닌 정당한 의무감을 갖고 자발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레미가 직접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어.
거짓이긴 해도 달의 이변. 흡혈귀의 힘도 넘쳐흐를 텐데」
「처음엔 나도 그럴 셈이었지만」
레밀리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
「알아버렸어. 자매인걸, 플랑도 나와 같은 상태일 거야.
그 아이를 지하에 가두고 나 혼자만 바깥에서 좋을 대로 설치는 건 불공평하잖아?」
「이제까진 보름달이 뜰 대마다 봉인을 강화해서 가뒀었던 주제에」
파츄리는 일부러 심술을 부리며 과거를 언급했다.
물론 그 지적이 레밀리아에게 나쁜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녀와 그 여동생의 관계는 이미 그렇게 나쁘지 않다.
「그래서야. 플랑은 그 시절과는 달라.
아직까지 지하에서 날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 아이는 참고 있는 거야. 흥분해서 날뛰고 싶은 마음을, 광기를 억눌러서, 홀로 참고 있어」
「기특하네」
「그래, 기특하고 귀여운 내 여동생이야.
그 아이의 성장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참는 법을 익히게 하기 위해선 저렇게 두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일지도 몰라」
레밀리아는 자신이 입에 올린 말이 우습다는 듯 경쾌하게 웃었다.
「──모르지만, 그래도! 그런 건 알 바 아냐, 나는 응석부리게 하겠어!
오늘 밤은 밤새 플랑과 붙어서 놀아줄 거야. 파췌와 사쿠야는 지하실 째로 홍마관이 날아가기 전에 어떻게든 이변을 해결해줘」
레밀리아가 말하는 「놀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은 당연.
그럼에도 옛날처럼 비장한 느낌은 느껴지지 않는다.
플랑도르 스칼렛은 바뀐 것이다. 언니나, 곁의 인물들과의 관계까지도.
「책임이 중대한걸」
「명심하겠습니다. 맡겨주세요, 아가씨」
파츄리가 기가 막히다는 듯 웃고, 사쿠야는 우아하게 고개를 숙이며 답한다.
아무도 레밀리아의 판단에 반론을 내세우지 않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메이링도, 소악마도, 이 장소의 모두가 웃고 있었다.
레밀리아의 부탁인지 명령인지 알 수 없는 말에 재촉 받은 사쿠야와 파츄리라는 드문 콤비가 이변해결에 나선다.
「──아, 그리고 파췌」
「왜?」
「오늘 밤의 이변해결은 네게도 큰 의미를 갖게 될 거야」
「……?」
홍마관을 나서려 하는 파츄리를 레밀리아가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배웅한다.
파츄리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 이상 말을 꺼내지 않고 웃고만 있는 친구가 진심을 밝힐 생각 따윈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깨를 들썩였다.
아마, 이 밤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운명」이라는 것의 인도에 따라──.
「자, 그럼」
그렇게 종자와 친구를 배웅한 레밀리아는 뒤를 되돌아 보았다.
두 명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손을 흔들고 있던 메이링에게서 시선을 돌려 재빨리 도서관으로 돌아가려 했던 소악마의 어깨를 붙잡는다.
「그럼, 가볼까」
「저기, 뭔가요 이 손은? 저, 이제부터 일이 있으니 놔주시면 좋겠는데요?」
「메이링, 너도 따라올거지?」
「물론이에요. 저도 오늘 밤의 달 덕분에 힘이 많이 모였으니까요. 아침까지 따르겠습니다」
「어라라─? 무시하시는 건가요─?」
「소악마, 너도 와」
「화장실이라면 혼자서 가주셨으면 합니다만」
「주인이 없다고 편히 쉴 생각은 마. 파췌가 네게 아무 말 없이 나간 건 너를 맘대로 써도 좋다는 뜻이니까」
「사실 저는 도서관을 떠날 수 없는 마술적인 제약이……」
「전에 선대가 오셨을 때는 나오시지 않으셨나요?」
「메이링 씨는, 분위기 못 읽으시는 편이죠?」
「읽을 상대를 구분할 뿐이에요」
「……제법 하시네요」
「당연하지, 이 녀석은 나를 방에서 끌어냈던 적도 있다고」
말다툼인지 단순한 농담인지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던 셋은 어느 새 지하에 있는 플랑도르의 방 앞에 도달했다.
소악마는 거의 질질 끌려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은 것은 포기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었던 걸까.
뭔가 수상쩍은 속셈이 있을지도 모른다, 라며. 레밀리아는 새삼스럽게 그녀를 데려온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이 녀석 혼자 한가하게 지하에서 일어날 사건을 즐기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당사자로서 말려들게 해버린다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용하네요」
레밀리아는 방문의 앞에 서서 중얼거린 메이링의 말뜻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옛날이라면 안에서 날뛰는 플랑도르의 외침 같은 무언가의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작은 숨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그 작은 여동생이 어슴푸레한 방 속에서 홀로 견디는 모습을 상상한 레밀리아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가만히 서 있지 못한 레밀리아는 힘차게 문을 열며 외쳤다.
「안녕, 플랑. 잘 잤니?」
억지로 힘을 내 밝은 목소리를 꾸민다.
방안을 확인한 레밀리아는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파괴는커녕, 방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멀쩡하다.
주변의 물건에 화풀이한 흔적 정도는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플랑도르의 자제심이 그만큼 강했던 것이다.
그런 여동생에게 감동조차 느끼며 모습을 찾아보니, 침대 위에서 무릎을 껴안고 앉아있는 플랑도르를 발견했다.
플랑도르가 방문객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든다.
「플라─!」
다시 말을 걸려고 한 그 순간, 플랑도르의 눈동자를 본 레밀리아의 뇌리에 싫은 예감이 스쳤다.
광기를 가득 품은 눈빛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피해!」
등 뒤에 선 메이링과 소악마에게 곧바로 경고한다.
레밀리아는 플랑도르에게서 폭탄이 터지기 직전 같은 느낌을 느꼈으며, 그것은 옳았다.
플랑도르는 아무 말 없이 한 손을 뻗어, 그 손에서 탄막을 발사한 것이다.
마치 봇물 터지듯 개방된 마력의 탄막엔 정밀성은 없었으나 폭주하는 마력이 더해져 터무니없는 속력과 위력을 가진 빛의 탄환이 셋을 향해 쇄도한다.
이윽고 그 탄환은, 지하실의 입구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에……! 나, 무슨……!?」
지하에 울려 퍼지는 굉음을 들은 플랑도르가 겨우 제정신을 차린다.
자신이 일으킨 파괴의 흔적을 보고선 뒤늦게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를 자각했다.
한순간 소름이 돋을 만큼 자신에게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꼈으나, 연기가 가신 뒤 레밀리아와 메이링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는 안심했다.
그러나──.
「아가씨, 무사하신가요!?」
「그래, 괜찮아. 그쪽은?」
「겨우 피했습니다. 위험했어요─……그런데 소악마 씨는요? 같은 타이밍에 움직였으니, 피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소악마?」
연기가 개이자 달려오려던 플랑도르는 눈앞의 광경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아아……」
「자, 작은 아가씨……」
우뚝 멈춰선 플랑도르와 몸을 웅크리린 채 고개를 들어 올린 소악마의 눈이 마주쳤다.
소악마는 오른손으로 왼손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 손목부터 앞이, 없다.
「아아, 손……손이…! 제, 제 손이……! 아파……!?」
얼굴이 창백해진 소악마는 비명을 내질렀다.
그 비참한 광경에서 눈을 돌리지 못한 플랑도르는 공포로 얼어붙었다.
이 사태는 자신이 일으킨 것이다.
「소, 소악마……!」
「히익……! 제 손이!」
「미……미안해요, 나……!」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질러버린 절망감과 몸을 꿰뚫는 것 같은 죄책감이 플랑도르의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사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자신은 결코 소악마에게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남아있던 이성이 플랑도르를 더욱 궁지로 몰고 있었다.
「어째서……어째서, 이런……? 너무해요, 작은 아가씨……어째서!」
소악마의 애절한 비명이 플랑도르의 죄책감을 더욱 부추겼다.
얼굴을 손에 파묻어 공포로 경직된 양 뺨을 가린다. 눈물이 흘러넘치고 온몸이 떨린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목숨을 걸고라도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리해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라 절망하며 떨리는 눈으로 레밀리아와 메이링에게 시선을 돌린다.
「…………어이」
「아야야야야, 아파! 아파요, 작은 아가씨! 죽을 것 같아요∼!」
「…………소악마 씨」
「이, 이거 보세요 메이링 씨! 작은 아가씨가 이런 짓을 했어요! 레밀리아 아가씨, 당신의 여동생이 이랬다고요! 저의 손이……!」
「──죽인다」
레밀리아와 메이링이 동시에 냉철한 목소리로 소악마를 다그쳤다.
「손──이, 있네요」
지금까지 고통으로 찡그려져 있던 표정을 눈 깜짝할 새에 웃음으로 바꾼 소악마는 소매 속에 숨기고 있던 왼손을 꺼내 보였다.
멍한 표정으로 할말을 잃은 플랑도르의 눈앞에서 흔들흔들 상처 없는 왼손을 흔든다.
「왜 그러세요, 작은 아가씨? 소악마의 멋진 마술쇼랍니다. 보세요, 이거 말고도 이렇게 엄지가 잘린 것처럼 보이게 하는 마술도……」
「왼손을 잘라버릴까요」
「오른손도 잘라. 손가락 전부 잘라」
메이링과 레밀리아의 살의와 분노가 소악마를 찌그러뜨릴 기세로 뿜어진다.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플랑도르의 눈에는 진심이 담긴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녀가 눈앞에서 일어난 일에 얼마나 당황했는지 간단히 상상할 수 있다.
누군가를 상처 입히고 무언가를 부수는 것을 꺼리기 시작한 아직 마음이 어린 연약한 소녀다.
단순한 장난으로 치부하기엔 너무했다.
그러나 소악마는 침착하게 다른 둘에게 시선을 향하며 말했다.
「외야는 다무세요, 이제부터 중요한 이야기를 할 테니까요」
자신을 향한 살의의 시선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소악마는 상냥하게 미소지으며 플랑도르에게 다가갔다.
「──무서우셨나요? 작은 아가씨」
타이르는 것 같은 그 목소리는 그야말로 성모와 같은 상냥함으로 넘쳐 흐르고 있었다.
「……응, 무서웠어. 소악마가 무사해서 다행이다……」
「후후, 감사합니다. 작은 아가씨는 상냥하시네요.
죄송해요. 저도 농담이 지나쳤네요. 그러나 이번엔 농담으로 끝났습니다만……예를 들면, 정말로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도 있습니다」
「……나, 무서워. 쭉 참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알 수 없어서, 정신을 차리니 공격하고……」
「예, 작은 아가씨가 일부러 그러신 게 아니라는 건 알아요. 지금까지 잘 참으셨어요.
그리고 지금 느낀 공포를 잊어서는 안 된답니다. 힘을 쓴 결과 일어날지도 모르는 사고 중의 하나가 방금 그거랍니다.
그때 느낀 감정을 잊지 말고 마음에 품어, 어떻게 해야 가장 좋은 방법인지를 스스로 생각해야 해요. 그저 무서워하기만 해서는 안 된답니다?」
「응……알았어. 소악마, 미안해요」
「괜찮아요, 작은 아가씨. 혼자서 잘 참으셨어요. 훌륭하십니다」
소악마가 플랑도르를 상냥하게 껴안자, 이윽고 플랑도르의 입에서 오열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레밀리아와 메이링은 어느 새 분노를 잊고 그저 묵묵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상냥하면서도 아름다운──기만으로 가득 찬 광경에, 화가 나는 대신 마음속 깊이 질려버리면서.
「……진짜 더럽네, 저 쓰레기」
「작은 아가씨를 놀린 주제에 이렇게 깨끗하게 이야기를 끝내버리다니……」
「결과적으로 플랑의 성장에 도움이 됐다는 사실이 쓸데없이 짜증나」
「옆에서 말참견할 수도 없었어요」
「게다가 이대로라면 플랑이 그 녀석을 상대로 마음껏 놀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소악마 씨만 빼고 할 수밖에 없네요. 거기까지 계산한 걸까요……성격 최악이네요!」
뒤로 돌아선 소악마의 얼굴이 남몰래 기분 나쁜 미소로 비뚤어진 얼굴을 보고 반쯤 확신한 레밀리아와 메이링은 이를 갈며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홍마관을 나온 사쿠야와 파츄리는──.
「……이제 와선 늦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소악마를 두고 온 건 실수였을지도」
「저도 지금 겪을 이변보다 홍마관이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둘에게 있어, 오늘 밤 제일 걱정되는 것은 앞이 아닌 뒤에 존재하고 있었다.
◆
마법의 숲에는 두 명의 마법사가 산다.
하나는 평범한 마법사인 키리사메 마리사.
또 하나는──.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탁자 건너편에서 들려온 물음에 마리사는 책에 시선을 집중한 채 답했다.
끊임없이 붕대에 감싸이지 않은 눈을 문질렀다.
「왼쪽도 잘 안 보이게 된 거야?」
「……응, 희미해졌어. 그래도 괜찮아. 글씨는 오히려 더 잘 보이게 됐으니까」
다른 사람이 봤다면 기묘한 광경일 것이다.
탁자를 사이에 둔 소녀들. 한 쪽은 재봉을 하며, 다른 한 쪽은 독서에 집중하고 있다.
둘 다 어린 나이의 소녀들이다.
방안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으며 천박하지 않을 정도로만 장식되어 있다. 탁자 위에는 티세트와 다과. 그리고 소녀의 취미로 보이는 인형이 선반 위와 창가에 몇 개나 놓여 있었다.
그림책에서나 나올 법한 팬시적인 분위기가 나는 광경이다.
단, 그 인형들 중 몇 개가 혼자서 돌아다니며, 방 여기저기를 청소하는 모습은 현실과 동떨어진 판타지였다.
그리고 마리사가 열심히 읽고 있는 책의 페이지에는 단 하나의 글자도 쓰여 있지 않았다.
「그것보다 대체 무슨 책이야 이건……기분 탓인가, 어제 봤던 거랑은 내용이 달라 보이는데」
「그런 마도서야. 그 한 권에 수백 권 분량의 내용이 들어 있어」
「읽을 때마다 다른 내용이 되다니, 읽고 싶은 페이지를 찾을 땐 힘들겠는걸」
「원래는 읽고 싶은 부분을 마음대로 부를 수 있어. 미숙한 인간」
「미안하다고, 흉내쟁이 마법사라서……」
얼핏 무관심하게 보이면서도 묘하게 자신을 챙겨주는 이 인물에게 마리사는 입을 삐죽였다.
그러나 진짜로 나쁜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다.
뭔가 해탈한 것 같은 묘한 냉철함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서도 말투에 무의식적인 걱정이 가끔씩 보일 때의 갭을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지금도 그렇다.
그녀가 부지런하게 고치고 있는 것은, 챙 부분이 나뭇가지에 걸려 찢어져버린 마리사의 모자였다.
「그런데 글씨가 보이게 된 건 좋지만, 뭐라고 써진 건지 전혀 모르겠어」
「단계가 달라. 그 마도서의 글씨를 보는 것이 우선 첫 번째.
두 번째가 책의 힘을 억제하고 무작위한 정보의 방출을 조작해서 네 레벨에 맞는 페이지를 볼 수 있게 되면 돼.
읽는 건 그 다음이야」
「거 일정 한 번 느긋한걸」
「그렇게 느긋하게 할 수는 없어. 이런 페이스대로 간다면 왼눈의 시력을 잃는 게 먼저야」
주저 없이 들려온 잔혹한 사실을 마리사는 묵묵히 받아들였다.
위험성에 대해선 이미 들은 사항이었고.
이미 그것을 각오했기 때문이다.
「마도서 자체의 마력이 네 시각을 침식하기 시작했어.
그 덕분에 넌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영적인 요소를 볼 수 있게 됐지만, 그 「마법사 특유의 시각」을 빨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그냥 실명하는 걸로 끝날 거야」
「반대로 주변의 마나를 기척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마법사로서 레벨 업 할 수 있다……고 했었지?」
「기초중의 기초지만. 잉크로 쓰인 초보적인 책보다 수준 높은 주문이나 문장이 포함된 암호 같은 것들도 읽을 수 있게 되겠지. 이론상으론」
「「보는 것이 전제 조건. 그 뒤는 탐구와 이해」였지? 첫 수업 시간에 들었다고」
「네 스승은 이런 기본적인 것도 가르쳐주지 않은 거야?」
「스승이 아니야. 내가 지식이 부족해 의문조차 떠올리지 못했을 뿐이지. ……파츄리를 나쁘게 말하지는 말아줘」
「실례였네」
웃음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상대가 쓴웃음을 지었음을 느끼며 마리사는 입술을 깨물고 책을 읽는 것에 집중했다.
상대의 반응이 남사스러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파츄리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자신에게 그 「기초중의 기초」를 가르쳐주지 않은 이유는 안다.
자신이 그 기준에 들지 않을 정도로 미숙했기 때문이다.
자기 주제도 모르고 억지로 무리한 결과, 이렇게 실명할지 안 할지 위험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안전을 지키며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파츄리는 냉정하며, 총명하고, 그리고 상냥했다.
마리사는 그것이 분했던 것이다.
그것은 마법사로서의 긍지가 아닌, 젊음이 가져다 준 단순한 고집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갑작스럽게 마리사가 뜻하지 않게 책이 닫혔다.
마리사는 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할 말을 잃은 마리사의 손에서 책이 자기 멋대로 탁자 위를 미끄러져 상대의 손에 들어간다.
마리사가 불평할 틈도 없이 닫힌 책은 그대로 커버가 씌워져 벨트로 감겼다.
「뭐야, 나는 아직 괜찮다고」
다시 책이 아닌 다른 곳에 시야를 향하자, 탁자 너머에 앉아있는 상대의 얼굴조차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마리사는 허풍을 떨었다.
「정신적인 이유야. 집중력이 흐트러졌지?」
「……」
「마법사라면 감정적으로 되지 말라고 했잖아.
……뭐, 너한테 그건 무리라는 건 한 달 동안 같이 지내면서 이해했지만」
기가 막히다는 듯 중얼거리며 빼앗은 책 대신 모자를 던진다.
던져진 모자는 훌륭하게 마리사의 머리에 안착했다.
꿰멘 흔적마저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모자의 상처는 깨끗하게 고쳐져 있었다.
「아, 고마워……」
약간 뺨을 붉힌 마리사가 작은 목소리로 감사인사를 한다.
그 대답을 무시하며 눈앞에 손바닥이 쑥 내밀어졌다.
엄지와 새끼손가락만이 접혀 있다.
「마리사, 몇 개로 보여?」
「응? 그게─……3개다」
거의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사는 눈에 힘을 모아 찡그리고는 대답했다.
「그럼,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실」은 몇 개 보여?」
「3……아니, 2개!」
「3개야. 하나는 일부러 마력을 엷게 해서 보이지 않게 했어」
여기서 말하는 「실」이란, 물리적인 물건이 아닌 마력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 마법사의 특기인 마법 중 하나로, 이 마력의 실로 주위의 인형을 조종하고 있단다.
마리사는 한순간 시험지를 부모에게 보이는 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럼, 보이는 실 2개는 어느 손가락에서 뻗어있어?」
그저 찍기로 대답하고 있을 가능성도 고려해, 더욱 물어온다.
「중지랑……엄지?」
「정답. 이번엔 틀리지 않았네」
약간의 즐거움이 담긴 목소리에 마리사는 복잡하게 웃었다.
평소에는 자신에게 무관심하며 무뚝뚝한 주제에, 가끔씩 보여주는 이런 장난끼 가득한 그녀의 말투엔 무심코 페이스가 흐트러지고 만다.
눈앞의 소녀와 만난 지 아직 2개월 정도밖에 안 됐지만, 마리사는 그 성격이나 인물상을 아직까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진짜「마법사」이면서도, 다른 마법사인 파츄리와는 틀린 부분이 있다.
「──그럼, 나가볼까」
예를 들자면, 이런 갑작스런 활발함.
묻는다기보다 이미 결정된 예정이라는 것처럼 그녀가 꺼낸 말에 마리사는 당황했다.
「잠깐, 나간다니……어디로? 뭐 하러? 그 전에 벌써 밤이라고?」
케이프를 걸치고, 목에 붉은 리본을 메며 묵묵히 준비를 갖추는 그녀는 마리사의 사정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인형이 멋대로 탁자 위를 정리하기 시작하고, 주위의 움직임에 휘말릴 뻔 했던 마리사는 당황하며 일어섰다.
「마리사, 너는 지금 뜬 달에서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어?」
「달? 무슨 말이야? 또 시험이야?」
「뭐, 비슷하긴 하지만……인간은 알 수 없나보네. 뭐, 됐어」
「말해달라고. 마법사라는 녀석들은 혼자서 멋대로 납득하니까 안 되는 거야」
「마법사라는 건 그런 거야. 자신의 지식을 타인에게 이해시킬 필요는 없으니까」
「차가운 녀석이구만……그래서, 정말로 무슨 목적으로 나가는 건데? 왠지 나도 저절로 동행해야 할 것 같은 흐름인데」
「일손이 충분했다면 너 같이 미숙한 인간은 절대로 데려가지 않아.
그래도 어찌 보면 마침 잘 됐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이런 페이스대로라면 눈은 늦어버릴지도 몰라.
따라서, 현장에서 시도해보기로 했어. 상응하는 위험도 있겠지만」
「흐응……」
질문한 상대가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마리사는 혼자서 추측을 시작했다.
두뇌 회전에 집중하는 마리사를 곁눈질로 바라보던 그녀에게 느긋하게 기다릴 생각은 없어 보인다.
준비를 끝내고 현관의 문에 손을 얹을 때 마리사가 입을 열었다.
「──싸우러 가는 거야?」
문을 연다.
달빛이 거의 땅에 도달하지 못하는 울창한 숲속에서, 그 집의 주변만이 이상한 힘으로 도려나간 것처럼 뚫려 있었다.
지저의 구멍에서 올려보는 것 같은 구도로 머리 위에 떠오른 밤하늘과 달이 보인다.
평소에도 괴물버섯의 포자가 떠다니는 숲이지만, 오늘 밤은 달의 힘을 받아 눈에 보일 리가 없는 마력의 입자가 희미한 빛을 발하며 주변을 맴도는 듯이 보였다.
아니,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보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라며. 마리사는 자신이 보는 세계가 변해가는 것을 약간의 공포와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앞서서 현관문 바깥으로 발을 내디딘 그녀를 바라본다.
「따라올래? 마리사」
「아아, 바라던 바야──앨리스」
뒤를 돌아본 앨리스는, 요염하게 웃으며 마리사를 영원한 밤 속으로 초대했다.
◆
사람과 사람이 아닌 자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가 각각의 과정을 거쳐,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자기 자신의 의지로 이변해결에 나선다.
서로의 사정과 목적은 달라도, 향하는 곳은 같다.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진 4조의 진로가, 헤매임의 죽림이라는 한 점에서 마주치려 하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자.
──재회하는 자.
──싸우는 자.
──마음이 통한 자.
목적지에서 기다리는 파란은, 이미 피할 수 없는 필연.
그리고 거짓의 달과 영야의 아래에, 혼란스러운 사태의 중심에 있는 것은 하나의 봉래인.
천 년 이상 반복되어온 세월 속에서, 과연 이러한 흐름은 있었던 것일까?
영원의 생명을 얻은 이래, 끝없이 계속되어 온 헤매임. 자문. 고뇌──.
자신의 속에 있는 난제의 대답이 나오려하고 있다.
──모코우는, 그때가 오늘 밤이라는 것을 아직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