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22 「난제」
「……가볍네」
「그래, 너무 가벼워. 이 녀석」
에이린의 혼잣말을 용케도 알아들은 테위는 맞장구를 치며 답했다.
진찰대의 대용으로 쓰인 책상 위엔 너덜너덜한 소녀가 눕혀져 있었다.
테위가 죽림에서 발견한 길을 잃은 것이라고 생각해 소녀를 데려온 것이다.
「며칠이나 거기에 있었던 거야……」
소녀는 극도로 쇠약해져 반쯤 시체나 다름없었다.
몸이 이상하게 가벼웠던 것은 그녀가 굶어 죽기 직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테위는 실질적인 체중만이 아닌 무언가 치명적인 것이 이 소녀에게서 빠져있는 것 같은 가벼움을 느꼈다.
죽림에서 이 영원정까지 소녀를 들쳐 업고 온 테위를 맞이한 에이린에게 사정을 설명한 뒤, 이렇게 치료를 위해 옮길 때까지 주변의 변화에 조금의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그런 인상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있다.
소녀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간간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다.
그저 그것을 반복할 뿐이었다.
치료라고 한들 이런 인간은 어떻게 치료해야하는 것일까, 아마추어인 테위로선 어쩌지도 못하고 그저 에이린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소란스럽네」
갑자기 방문이 열리고 카구야가 얼굴을 내밀었다.
항상 조용한 영원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다.
「어머나, 인간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라고 했, 을……!」
가로 뉘인 소녀의 모습을 본 순간, 카구야의 안색이 바뀌었다.
테위가 이제까지 보아온 우아하며 「공주」라는 호칭이 어느 누구보다 어울리던 그녀가 처음으로 흔들림을 내보이고 있다.
「……혹시, 아는 사이야?」
카구야처럼 말문이 막힌 에이린의 반응에 테위는 적당하게 추측했다.
하지만 두 명은 그 질문을 무시하며 서로 시선을 나눴다.
「……에이린, 이 아이는」
「예, 틀림없습니다. 봉래의 약의 약효가 듣고 있어요」
「그럼, 그때 그……」
「인간이 그 약을 손에 넣을 기회는 그때 외엔 없습니다. 저는 이런 얼굴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만」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 남자들 중에 이 애의 부모가 있던 것 같은데……」
「아아, 그 다섯 명 말인가요. 그렇다면 조금 귀찮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두 명은 공주와 종자로서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테위는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카구야의 말투에서는 당황스러움을, 에이린의 말투에서는 냉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쨌든 눈앞의 소녀를 치료하기 위해 여기까지 함께한 테위에게는 딱히 좋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서로 이야기하는 건 좋은데, 이 애 죽기 직전이라고?」
테위는 그렇게 돌려 말하며 치료를 재촉했다.
그러나 에이린은 묵묵히 카구야의 대답을 기다리듯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좋아. 부탁해, 에이린」
잠깐의 망설임 뒤, 카구야는 뜻을 결정한 듯 에이린에게 말했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깃든 침묵이 한 차례 흐른 뒤, 에이린은 그제야 누워있는 소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품속에서, 한 자루의 칼을 꺼내든다.
「테위, 비켜봐」
그런 칼 한 자루로 뭘 할 셈이야, 라고 테위가 물으려던 그 순간, 에이린은 질문을 막듯 말없이 칼날을 소녀의 목에 대고 누른다.
그대로 주저 없이 옆으로 긋는다.
그 동작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웠기에 테위는 한순간 에이린이 뭘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의 육체를 숙지하여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조금의 저항도 없이 칼날이 목안을 파고들어가, 동맥을 절단하고 반대쪽으로 빠져나간다.
처음부터 그 부분이 열려있었다고 착각할 만큼 예리한 단면에서 엄청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눈을 커다랗게 치켜뜬 테위의 앞에서 소녀는 그대로 숨을 멈추었다.
「……무슨」
「봐봐」
마음을 다잡으며 당황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테위의 말을 막으며 에이린은 담담하게 칼에 묻은 피를 닦으며 소녀의 시체를 바라봤다.
머지않아 변화가 일어났다.
갑자기 소녀의 시체가 불타오른 것이다.
두 명이 손을 쓴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말은 즉, 눈앞의 시체에서 멋대로 불이 난 것이라는 소리가 된다.
불가사의한 현상은 그 외에도 있었다. 바로 옆에서 보고 있는 자신에겐 그 불길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고 있음에도 그녀가 누워있는 자리엔 불이 옮기는커녕 그을음조차 나지 않았다.
격렬한 화염은, 그 불길이 피어오른 것처럼 급속히 사그라졌다.
그리고 그 불길이 완전히 사라진 뒤엔, 베인 목의 상처는커녕, 죽기 직전이던 야윈 몸마저 사라진, 피부에 윤기가 흐르는 싱싱한 아름다움을 품은 소녀가 뉘어져 있었다.
「……요컨대, 공주님이나 스승님 같은 인간이라는 거야?」
「우리들은 인간이 아니야, 월인이지. 그리고 이 아이는 정확하게 따지자면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봉래인이 된 존재야」
테위의 간단한 요약을 에이린이 자세하게 정정했다.
그 대화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는 테위도 모른다.
그저 그녀들이──특히 에이린이 지상에 사는 인간이라는 종족을 얕보고 있다는 것만은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살아오며 알고 있었다.
에이린의 속내를 파악하는 것에 실증을 느끼던 테위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부활한 소녀가 눈뜨기를 기다렸다.
당장이라도 멈출 것만 같았던 호흡이, 정말로 한 번 멈춰서 힘을 되찾는다는 현상에 생명의 이치가 정면으로 부정되는 것만 같은 두려움을 느꼈다.
그리고 육체가 회복된 덕분일까, 얼마 안가 소녀의 의식도 회복됐다.
천천히, 눈꺼풀이 올라간다.
「……아」
녹슨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이 느릿느릿 눈이 움직이고, 입에서는 철판을 긁는 것 같은 신음이 작게 새어나왔다.
시체가 되살아난다면 이렇지 않을까?
테위는 움직이기 시작한 눈앞의 소녀에게서 생자의 활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으……아……」
「좋은 아침이야」
말을 이루지 못하고 작은 신음만을 흘리는 소녀에게 먼저 말을 건 것은 카구야였다.
「……에……?」
「누군지 모르겠어? 내 얼굴, 기억나지 않는 거야?」
소녀가 그제야 의식이 되돌아온 것 같은 반응을 보였다.
「나. 지금 생각났어. 벌써 천년은 지난 이야기네」
마치 그림같이 아름다운 미소의 가면을 쓴 채, 카구야는 소녀에게 말을 건넸다.
「미안해, 네 이름을 몰라. 그러니까 내가 먼저 알려줄게」
「…………」
이미 확실히 의식을 되찾은 소녀의 눈동자는 카구야의 얼굴을 올려보고 있었다.
재빨리 초점이 맞춰지고, 그에 따라 한 감정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내 이름은 「호우라이산카구야」야. 후지와라의 아가씨」
「아, 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시체가 되살아났다──.
몸속의 내장까지 전부 토해낼 기세로 흘러나오는 절규를 듣고, 테위는 그제야 겨우 그렇게 실감할 수 있었다.
카구야의 모습을 눈에 담은 소녀는 그 순간 바로 마음과 몸을 폭발시키듯 움직였다.
일어나자마자 혼신의 힘을 담아 카구야의 얼굴을 때려 날린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카구야에게서 난 소리가 아니다. 반대로 주먹을 휘두른 소녀의 주먹이 탈골된 것이다.
몸집이 작은 소녀의 약한 몸은, 그런 겉모습에 어울리지 않게도 살의에 휩싸여 이성을 잃고 있었다.
넘어진 카구야의 위에 올라타 손가락이 부러진 주먹을 무리하게 쥐고, 몇 번이고 내리쳤다.
피가 흩날린다.
카구야의 입에서 나오는 것보다, 부러진 뼈가 피부를 찢은 소녀의 주먹에서 나오는 피가 더 많았다.
그러나 소녀는 미친 것처럼 커다란 비명을 지르며 주먹을 내리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카구야는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
어째설까, 에이린 또한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 대처도 하려 하지 않는다. 마치 의미 없는 짓이라는 듯 싸늘한 눈빛만을 보낼 뿐이었다.
소녀가 외치는 짐승 같은 울부짖음과 살과 뼈가 부서지는 소리. 피가 마루에 흩뿌려지는 소리만이 끝없이 계속된다.
테위는 한 발짝 떨어져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분명 광기와 두려움에 벌벌 떨어도 모자람에도 그저 고통에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이게, 봉래인이라는 거야……?」
소녀는, 끝없이 카구야를 계속 때렸다.
카구야는, 끝없이 계속 맞았다.
에이린은, 끝없이 그것을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봉래인인 카구야는 죽지 않고, 같은 육체를 가진 소녀 또한 죽을 리는 없다.
세 명중, 누군가가 멈추지 않는 이상 이 광경은 계속될 것이다.
끝없이──.
「……무슨, 난리냐고」
이 셋이 이런 관계를 가지게 된 계기를, 테위는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 셋에게 끝이 없다는 것을, 테위는 깨달았다.
◆
──유도당하고 있다.
유카리와 레이무는 서로 대화는 하지 않았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달의 이변의 원흉과 이어진 흔적을 쫒아 헤매임의 죽림에 들어간 순간 느낀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고 발을 들이민 것이다.
이 죽림 전체가, 견고하며 치밀한 결계의 미로라는 것은 바깥에서 단번에 눈치챘다. 결계의 전문가인 두 명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했다.
이곳이 단순히 통과 지점이었다면 결계를 무시하고 하늘 위로 지나간다는 선택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명은 역시 서로 똑같이 이변의 원흉이 이 죽림 안에 있다고 짐작했다.
결계를 무너뜨리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시간이 너무 걸린다.
유카리는 한 순간 망설였지만, 레이무는 한 치의 주저도 없이 결계 속으로 침입하는 것을 택했다.
「이런 결계술은 처음 보는걸」
「나는 알고 있어. 주모자의 정체가 짐작이 가네」
레이무에게 앞을 양보하고, 유카리가 그 뒤를 따르며 둘은 나아갔다.
주변의 경치는 아무리 나아가도 똑같이 보인다.
실제로 술책에 걸려서 같은 장소를 왕복하는 것일까, 결계에 의해 시각만이 아닌 다른 감각마저 흐트러지고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는 레이무에게 망설임은 없다.
확실히 이변의 원흉과 가까워지고 있다고 유카리는 의심치 않았다.
신중을 기해 결계를 파괴하지 않고 돌파하는 것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그것이다.
하쿠레이의 무녀에게 있는 「감」의 정확함은, 자타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기에.
──현혹이나 감각을 방해하는 술식은 레이무에는 통하지 않는다.
그런 레이무에게 눈치채이지 않게끔 유카리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거의 다 왔네」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어떠한 근거도 없는 레이무의 말을 유카리는 약간의 의심도 없이 믿었다.
우아한 몸짓에 숨겨 어떤 사태에 직면하더라도 동요하지 않게끔 전투태세에 돌입한다.
이 결계를 돌파해봤자 「적」의 기량은 얕볼 수 없다.
그리고 더욱이, 유카리는 개인적인 지식으로 「적」의 정체를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레이무, 이제부터 마주하게 될 상대는 달의──!」
「앗」
둘은 서로의 말을 말을 끊어먹듯이 동시에 다가오는 여러 기척을 느꼈다.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던 것은 아마 결계 탓일 터.
그러나 왜 지금 그 기척이 나타난 것일까?
마치 이곳만이 결계의 구멍인양 술식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속아버렸네」
머릿속에 떠오른 의심에서 바로 답을 도출하고, 자신의 실수를 자각한 유카리는 불쾌하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접근하고 있던 기척이 결국 서로 보일 수 있을 만큼 다가왔다.
기척은 여섯.
각각 다른 방향에서 둘씩, 거의 같은 타이밍에 레이무 일행의 앞에 나타났다.
「레, 레이무!」
「……레이무?」
마리사와 앨리스는 같은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이 공간은 짜여서 만들어진 미로였던 것 같네요」
「그래. 감쪽같이 유도당해 버렸네」
사쿠야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파츄리의 시선은 마리사와 그 옆에 있는 낯선 마법사에게 향해져 있었다.
「봐봐, 요우무. 길을 잃은 게 아니라고 했지? 유카리가 있다는 건 이 방향이 정답이었다는 거니까」
「그, 그런가요? 뭔가 상황이 복잡해 보입니다만」
태평하게 기뻐하는 유유코와는 다르게, 주위의 모든 인물을 경계한 요우무는 방심하지 않고 칼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이 상황이 계획된 거라는 말이야?」
「아마도. 유도 당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적의 계략이 한 수 위였던 모양이네」
이변해결을 위해 행동을 시작한 자들이 모두 하나 같이 이곳에 모였다.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닌 계획된 것이라는 사실을 몇 명은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유카리는 이 뒤에 있을 상황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씁쓸한 패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변의 주모자를 결코 얕보지는 않았으나──최초의 한 수를 적에게 양보하고 만 것이다.
「……「전부」모르는 얼굴이네」
가만히 레이무를 바라보고 있던 앨리스는 이윽고 시선을 돌려 전부를 둘러본 뒤 마리사에게만 들리게끔 속삭였다.
파츄리에게서 적대적인 기세를 느끼고 경계심을 높인다.
「적, 아니면 아군……어느 쪽이야?」
앨리스에게 낯선 상대란 대처법을 정하기 힘든 상대다.
그것은 파츄리가 앨리스를, 사쿠야가 유카리를, 혹은 요우무가──서로가 서로에게 낮선 상대를 경계하는 것과 같았다.
탐색하는 것 같은 시선이 복잡하게 뒤얽히고,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같은 분위기가 흐른다.
모두가 첫 움직임을 망설이던 중, 앨리스에게 불린 마리사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눈에 깃든 결의의 빛을 본 모두가 상황이 움직일 것을 예상했다.
「움직이면 쏜다!」
마리사는 미니 팔괘로를 쥐고 공격할 상대에게 향했다──레이무를 향해서.
「……어쩔 셈이야?」
「실수했다. 쏜다면 움직인다였어. 지금 당장 움직일게」
「무슨 오해를 하는 건진 모르겠는데, 나는 이변을 해결하러 여기까지 온 거야」
「그러냐. 나는 평소대로 폐가 되는 요괴를 퇴치하러 왔을 뿐인데」
마리사의 말을 들은 레이무는 뒤를 돌아봤다.
묘하게 수상한 요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질렸다는 듯 한숨을 내뱉는다.
「이 녀석은 민폐긴 하지만 이번 이변의 원흉이 아냐」
「그건 어떠려나? 그 녀석의 능력이라면 밤과 낮의 경계를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확실히, 밤을 멈춘 건 우리들이 맞아. 그렇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라고」
「뭐야, 너도 공범이었어?」
「……마리사, 일부러 그러는 거야?」
레이무는 약간의 무게가 더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쪽의 말을 무시하며 이 상황을 오해할 만큼 이해력이 나쁘지도 않고, 놀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럴 인간이 아니다. 라며. 레이무는 마리사를 평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레이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마리사가 자신에게 향하고 있는 투지엔 거짓이 없으며, 그와 동시에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감으로 알아버렸다.
「결백을 증명하고 싶으면, 나한테 이겨 보라고!」
「너, 눈은 또 왜 그래?」
혈기왕성한 마리사의 도발을 무시하며 레이무는 냉정하게 그 진심을 파악하려 애썼다.
그것은 너무나도 냉정한 대응이었다.
마리사는 초조해하며 이를 갈았다.
「시끄러워! 승부다, 레이무!」
「뭐, 좋아. 어쨌든 적이란 거네」
한 눈을 가리는 붕대를 풀어 헤치며 마리사가 탄막을 발사한다.
그 흐름에 말려들듯이 앨리스가 그 뒤를 따라 움직엿다.
「뭐야……?」
드물게 당황한 레이무가 반사적으로 회피행동을 시작한다.
레이무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유카리는 마리사를 중심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주위의 상황을 둘러봤다.
같이 이변을 해결할 목적이었던 자들 중 둘이 싸움을 시작해버렸다.
이것이 상황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예상은 할 수 있다.
그리고 유카리의 머릿속에 떠오른 예상은 나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정말이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가버렸네」
가슴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숨기듯이, 유카리는 입가를 부채로 가렸다.
◆
「──침입자 두 명이 전투를 개시했습니다. 예의 스펠카드에 의한 전투 같습니다만」
「그래, 보고 있어」
레이센에게서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영상을 확인하며, 에이린은 통신에 답했다.
이 모든 것이 환상향에는 존재하지 않는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기계를 사용한 것이다.
주변에 떠오른 화면에는 그녀도 처음으로 본 실제 탄막놀이가 비춰지고 있었다.
교차되는 탄막의 물량에 한순간이나마 압도 됐으나, 그와 함께 살상력이나 파괴력 같은 직접적인 위력이 담겨있지 않았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저렇게 하면 되는 거군요……」
「만약 싸우게 된 다면 이쪽의 룰에 따르기로 하렴. 쓸데없는 말썽은 일으키고 싶지 않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레이센의 목소리에 약간의 안심감이 섞여 있다는 것을 에이린은 굳이 지적하려 들지 않았다.
이 환상향에서 시행되고 있는 결투법이 예상보다 훨씬 더 안전했기에 안심하는 것일까.
레이센은 이 탄막이 실탄으로 벌어지는 전투를 알고 있으며, 그 공포 또한 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방심해선 안 되지만──.
「그나저나 진짜로 스승님의 말대로 됐네요」
쓴 소리를 할까 말까. 잘못하면 풀이 죽을지도 모른다.
의외로 다루기 어려운 부하를 가진 에이린의 심정을 아는 걸까, 아니면 알지 못하는 걸까, 레이센은 존경의 마음을 담아 중얼거렸다.
「저 녀석들, 멋대로 싸우기 시작했어요」
「예상 범위내란다. 이 환상향은 그런 곳이니까.
군대에 있던 너한텐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이 땅에는 조직을 통솔하는 자가 거의 없거든」
「그렇지만 이런 이변이 일어났을 때 해결하는 자는 있는데도요?」
「그래, 개인적으로 말이지. 그런 해결사들을 지원하는 조직은 당연히 존재하지 않아. 하쿠레이의 무녀는 그저 단체로서 존재할 뿐.
또 요괴라는 것도 한 개체마다 강력하긴 하지만 그 탓에 개인주인적인 자들이 많아, 연합을 해봤자 자부심이 강해서 자신의 지위를 그 집단의 정점으로 올리고 싶어하지」
「그럼 저 녀석들이 이곳에 모인 목적은 완전히 같은 게 아니라……」
「서로가, 각각의 이유로 같은 행동을 한 결과 만났다, 그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지.
서로의 바람에서 차이가 나니까 이렇게 실제로 모아두면 마찰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했었단다. 적어도, 서로 힘을 합친다는 발상은 생겨나지 않겠지」
「역시 대단하세요, 스승님! 」
「아부는 됐으니까, 전황을 지켜보고 있으렴.
처음은 나쁘지 않지만, 화해하고 서로 협력한다는 전개가 제일 귀찮아」
레이센에게 내린 명령을 끝으로 에이린은 통신을 끊었다.
힘의 차이를 따져볼 때 레이센에게 그 장소에 있는 일부의 인요를 상대로 승산은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은밀 행동에 관한 그녀의 능력은 야쿠모 유카리에게 통할 정도다.
우선 미리 준비해뒀던 책략의 시작은 순조롭다.
이대로 서로의 전력을 알아서 깎아 먹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테위와 카구야네……」
어느새 영원정에서 자취을 감춘 둘을 떠올린다.
그 둘의 움직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테위는 가끔 생각치도 못한 행동을 하므로 예상하기가 어렵지만, 애당초 에이린은 그녀의 존재를 그렇게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영원정이 움직인다는 중요한 사태에, 손을 빌려준다면 고맙겠지만, 그녀에게 그럴 의무는 없다.
에이린은 테위에 대한 것을 머리의 한쪽 구석으로 쑤셔 넣었다.
카구야에 대한 것은 반대다.
오랜 세월을 같이 보내온 사이로서 그녀의 움직임은 높은 확률로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만일의 실수조차 일어나선 안 되는 것이다.
「약간, 예정을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네」
카구야가 향한 곳은, 아마 분명 예상대로일 것이다.
에이린은 조용히 행동을 시작했다.
◇
──이렇게 평화로워도 괜찮은 걸까낭~?
내가 사는 진료소의 내부는 평온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평소에는 혼자서 앉아 있었을 작은 식탁에 두 인물이 더해져 함께 둘러앉아 있다.
내게 상담을 부탁한 케이네와 이곳에 왜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미소만으로 뭐든지 용서할 수 있을 정도로 귀여운 치르노였다.
케이네는 치르노에게 간단한 한자를 가르쳐주고 있다.
그런 치르노─⑨의 국어 교실을 바라보며, 나는 한가로이 차를 홀짝이고 있었다.
이건……지복이구나.
그 어떤 TV프로그램보다 훌륭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이다.
정말로 이런 평화를 만끽해도 괜찮은 걸까?
그게──지금 이변이 일어나고 있는걸.
나는 창문 바깥으로 밤하늘을 올려봤다.
한밤중에 눈이 뜨인 뒤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꽤 지났을 터인데 달은 변함없이 같은 곳에 있었다.
시계가 없으니 정확한 시간까지는 알 수 없지만, 슬슬 하늘이 밝아질 시간일 터인데, 전혀 날이 샐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난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 이변을 알고 있다.
분명 오늘 밤은 「영야이변」이 한창일 것이다.
사실 케이네가 상담하러 온 것도 이 사태를 눈치채서였고.
「해결하기엔 아직 먼 것 같군요」
내 시선을 눈치챈 케이네가 똑같이 시선을 창밖으로 옮기며 중얼거렸다.
오늘 밤의 이변을 맨 먼저 알아차린 것은 사실 케이네이기도 하다.
달에 위화감을 느끼고 한밤중에 방문한다는 실례까지 끼치며 나를 일으키고, 그제야 나 도 간신이 이 이변이 떠오른 것이다.
케이네가 일으켜 주지 않았다면 아마 그대로 잠으로 이변을 보내버렸을 것이다. 설날을 잠으로 샜던 때처럼.
「아아. 그렇지만 머지않아 해결할 테지」
나는 맞장구를 치며 답했다.
뭐, 반쯤 확신한 거나 마찬가지지만.
그런 나의 망설임 없는 대답을 들은 케이네는 안심했다는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이번 이변의 규모엔 아무래도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만……선대님이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도 안심되고 마는군요」
「레이무를, 믿고 있으니까」
──특히 수의 폭력을.
어쨌든, 이번 이변에는 레이무는 물론 그 파트너로 유카리에 다른 쟁쟁한 멤버도 참여했으니, 이변 해결은 확실하다.
이 무슨 폭력. 태그를 붙인다면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정도려나.
도망쳐! 영원정, 도망쳐!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역시, 선대님에게 상담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저 혼자선 멋대로 행동해 불필요한 문제를 늘릴 뿐이었겠죠」
「마을을 능력으로 숨기려던 판단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아니요, 레이무 일행이 마을 위를 지나치는 것을 보고 당신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만약, 그곳에 마을이 숨겨져 있었다면 그녀들은 그것을 눈치채고 쓸데없는 경계심을 품게 됐겠죠. 마치 미래를 읽은 것 같은 혜안, 감복했습니다」
응, 항상 그랬지만……미안. 미래를 알고 있었어. 원작 네타적인 의미로.
당연히 그런 사정을 설명할 수는 없기에 나는 뭐든지 알고 있는 것 같은 철면피로 케이네의 존경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꺼림칙함을 외면하고 있었다.
아니 진짜 요즘 케이네의 존경심 상승률이 너무 위험하다고.
내 말을 너무 좋은 쪽으로만 해석한다.
나도 인간이니 잘못하거나 실수하는 것도 있다고?
예를 들면……지금이 확실히 그렇네.
「그러고 보니 모코우는 괜찮을까?」
신기하게도 갑자기 튀어나온 치르노의 혼잣말이 내 속마음을 꿰뚫어본 것 같이 내가 품고 있던 불안을 그대로 언급했다.
「모코우라……」
「역시, 선대님도 신경 쓰이시나요?」
치르노가 딱히 어떠한 의도로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아니었다.
환상향 규모의 이변을 홀로 보내고 있을 모코우가 신경 쓰였을 뿐이다.
그러나 나와 케이네는 다른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식사 시간에 봤던 모코우의 얼굴을, 나는 잊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그 뒤를 쫓아갔던 케이네는 보다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뒤로 모코우에게 무언가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만, 아마 분명히 무리하는 것을 감추고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케이네의 말은 내 불안감을 부추길 뿐이었다.
이럴 때 내가 가진 전생의 지식이 결코 만능이 아니라는 것이 실감된다.
나로선 그때 모코우가 어째서 그렇게나 마음이 흐트러졌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다.
몇 번을 되새겨도 그때 내가 한 발언에 모코우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을 거라곤 생각할 수 없다.
그것도 모르고 모코우의 개인사에 스스럼없이 발을 들이밀 수도 없었기에 결국 그날 이후로 아무 발전 없는 나날을 보내고 말았다.
그 결과, 이렇게 일어나버린 이변의 밤, 이렇게 평화롭게 보낼 수만은 없다.
으음~, 불안해…….
원작에서는 영야이변 자체에 모코우가 엮이진 않았지만……이런 내 생각이 그저 희망적 관측일 뿐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모코우는 사건의 중심인 죽림에 있다.
어떤 사건이 어떻게 굴러가 어떠한 사태에 말려들어갈지 알고 있지는 않다.
항상 사태는 급변하는 것──그것이 현실이니까.
「모코우의 상태를 보러간다, 라는 것은 무리인가?」
「선대님 스스로 말씀이신가요?
위험합니다. 요괴도 요괴지만, 한밤중에 헤매임의 죽림에 들어가다니, 제정신으로 할 짓이 못 됩니다」
여태까지 생각하고 있던 작전이 케이네에게 단번에 각하당했다.
그렇구나─.
이렇게 가서 어쩔거냐, 라는 소리다.
실제로 모코우의 몸에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대로 가만히 이변이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가장 좋으려나…….
「──밤늦게 실례합니다아」
서로 말이 없어진 우리들에게 진료소 입구 쪽에서 낯익은 소리가 들렸다.
이쪽의 대답도 듣지 않고 주저 없이 문을 열고 당당하게 들어온다.
「테위!」
「야아, 반가워, 반가워. 모두 모였네, 마침 딱 좋은걸」
우리들을 살펴본 테위는 언제나와 같은 못된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었다.
「이런 야심한 밤에 무슨 일이냐? 혼자 온 건가?」
케이네의 능력은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변임을 눈치챈 뒤부터 마을에는 경계태세가 깔려 있다.
달의 영향을 받은 요괴가 무언가 실수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만일을 위한 준비다.
어떻게 그런 경계태세를 뚫고 여기까지 온 것일까? 애당초 이 진료소를 어째서 알고 있는 것일까?
의문은 많았지만, 케이네가 처음으로 입에 올린 한 마디는 그녀들에게 오며 밤길을 달려왔을 테위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것을 이해한 듯 테위의 미소가 상냥하게 변했다..
「새벽이 오길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느긋하지가 않아서 말이지. 뭐, 이대로 있으면 새벽 자체가 오지 않을 테고」
「이변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냐? 그렇다면 더욱이……」
「그 이변의 중심이, 내 집이야」
「뭐라고!?」
테위의 충격적인 발언엔 그 케이네라도 안색이 바뀔 수밖에 없었다.
나도 다른 의미로 동요하고 있었다.
어째서 테위는 그걸 상관없는 우리들에게 가르쳐주러 온 걸까……?
「혹시 모코우가 위험한 거야?」
「……저기, 치르노. 가끔, 진짜 최강은 네가 아닐까 생각해」
아마 여기 모인 누구보다도 사태를 파악하지 못했을 터인 치르노의 질문에 테위는 존경스럽다는 심정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아무래도, 치르노는 의도치 않게 핵심을 찌른 것 같다.
「그래, 모코우가 위험해. 이변은, 솔직히 딱히 상관없고」
「하지만 모코우가 위험하다는 거군?」
「응. 그래서 도왔줬으면 해」
「좋다. 가지」
케이네가 확인하고, 내가 다른 둘을 대신해 대답한다.
그 말에 망설임은 없었다.
우리 모두를 바라보며 테위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고마워. 모코우가 떠안고 있는 문제는 솔직히 나한테는 과중하거든.
한심하게도 나는 대답을 알려줄 수 없고, 힌트도 줄 수 없어. 그러니까, 부탁해──」
테위는 고개를 숙였다.
그 부탁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 쯤은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가자!」
치르노의 외침에 나와 케이네는 묵묵히 서로 끄덕였다.
괜찮다, 맡겨라.
구체적으로 뭘 어째야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맡겨둬!
경솔히 떠맡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방금까지만 해도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 거짓말처럼 내안에서 「해버리면 되잖아」라는 의욕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테위가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부탁하고 있는걸.
그녀가 「이나바 테위」라는 좋아하는 게임의 캐릭터라서, 호의를 베풀려는 것이 아니다.
한 달 동안 함께 살고, 마음이 통한 동료의 부탁이기에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코우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그때 모코우가 화내며 괴로워했던 원인은 모른다.
혹시라도 같은 사태를 일으킬지도 모른다.
불안함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이 행동을 망설일 이유는 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지도 모르고,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은 결과가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모코우가 위험하다면.
무언가에 쫒기고 있다면.
일단 곁으로 간 다음 생각하자.
기다려라, 모코우. 지금, 간다──!
◆
「……이상해」
밤하늘 위로 떠오른 달을 올려보며 모코우는 의아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왜 날이 안 새지?」
느끼고 있던 위화감을 말로 꺼내니, 그 의심은 확신으로 굳어졌다.
평소에 그래왔듯이 선대 일행과 헤어지고 일과가 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한 뒤에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을 뜬 것이 바로 조금 전.
보통은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냄새로 눈이 뜨여. 저절로 해가 뜨는 시간대에 일어난다.
그러나 오늘. 모코우는 아침 해도 뜨지 않았을 때 눈이 뜨였다.
단순한 우연일지도 모른다.
조금 빨리 일어나서 아직 새벽이 되기 전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맨 처음 떠올랐지만, 마치 심야의 밤하늘의 중심에서 휘황찬란 빛나는 달을 올려보고, 그저 위화감일 뿐이던 그것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저 달은 지지 않는다.
──그리고 분명 이대로 해는 뜨지 않는다.
「……」
머릿속에 한순간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단 한순간뿐인 상상. 자기도 어째서 이런 생각이 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림없이 처음이 아니었다. 속이 꽉 막히는 것 같은 감각을 떠올리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지금──내일이 오지 않을 거라고 안심했지?」
「누구냐!」
마음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듯이 들려온 소리에 모코우는 흠칫 놀라며 외쳤다.
최근에 자신이 사는 곳에 찾아온 자들은 선대 일행을 제외하면 없다.
그래서 그 중 누구도 아닌 다른 인물의 목소리에 놀라서 답한 것이다.
「누구냐, 라니. 너무한 질문인걸」
그 목소리는, 싫을 만큼 낯이 익었어야 할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모코우는 한순간 누구인지를 생각한 뒤에야 떠올릴 수 있었다.
「카구야……!」
「한 달 만인가?
정말이지, 반응이 너무하네. 내 목소리를 잊은 거야? 겨우 한 달 따위, 우리한테는 눈을 깜빡일 시간도 안 될 텐데」
역시 오늘 밤은 평소와는 다른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카구야와 만날 때엔 항상 이쪽에서 갔었다.
그런 모코우에게 오늘 밤엔 카구야가 직접 찾아온 것이다.
테위는 물론 하인인 토끼나 언제나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을 터인 에이린조차 없다. 혼자서 여기까지 왔다는 소리다.
「어떻게 여길?」
「테위가 알려줬어.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네 이야기는 정기적으로 보고를 받고 있거든. 테위는 내 명령으로 너를 염탐했던 거야」
심술궂은 웃음과 함께 나온 카구야의 말에 모코우의 표정이 굳었다.
속으로는 충격을 받았다.
테위에겐 선대와 만나기 전부터 줄곧 보살핌을 받아왔다.
그녀의 말에서 느껴지는 묘하게 수상쩍은 느낌을 경계하고 있기는 했지만, 사실은 속으로 항상 감사하단 생각을 품고 있었다.
배신당했다, 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영원정에서의 테위의 입지를 생각해볼 때 이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 자신이 훨씬 더 크게 동요하고 있다는 것에 모코우는 놀라고 있었다.
「……왜, 온 거야?」
아마 이미 속마음이 들켰을지도 모르지만, 모코우는 허세를 부리며 카구야를 노려봤다.
「그걸 네가 묻는 거야? 정말로, 대체 왜 그러는 건데? 한 달이 그렇게 길었던 걸까. 나는 싫증날 대로 싫증났는데」
「무슨, 소리냐」
「그게 아니면, 그렇게 즐거웠어?」
카구야는 소매로 입가를 숨기며 쿡쿡하고 우아하게 웃었다.
그것이 또, 쓸데없이 모코우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 인간들과 살았던, 잠깐의 시간이」
「닥쳐!」
모코우는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솟구치는 분노의 원인이 카구야의 말의 어느 점인지는 알고 있었다.
카구야는 「잠깐의 시간」이라고 말한 것이다.
「딱히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나와 네 승부에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따로 규칙을 만든 것도 아니야.
나는 지루한 일상의 자극이 되고, 넌 풀고 싶은 원한이 있으니까. 서로의 바람이 맞물렸을 때, 마음이 내킬 때까지 서로 싸우면 될 뿐이야. 그렇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겠지」
그러니까, 라고. 자비로움마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한다.
「한 달이든 일 년이든 나는 기다려도 상관없어. 네가 보냈던 일상은, 어차피 백년도 안 돼서 무너져 사라질 테니까」
「닥치라고 했지!」
더 이상 참지 못한 모코우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참지 못한 감정은 조금 전까지 끓어오르던 「분노」가 아니었다.
카구야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이해한 그 순간 등골을 스쳐간 싸늘함──.
재빨리 간격을 좁힌 모코우는 전력으로 카구야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그것은, 틀림없이 억눌렀던「공포」가 터져버린 것 같은 행동이었다.
카구야는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한 채 코피를 터트리며 쓰러졌다.
「아파라……, 반응할 수 없었어」
맞은 부위를 매만지며, 이번엔 카구야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더 예리한 일격이었다.
카구야의 기억대로라면 한 달 전의 모코우와는 딴사람 같을 정도다.
간격을 좁히는 움직임은 단순하지만 빨랐고, 낮은 자세로 달려오는 상대에게 대항하는 것은 아마추어인 카구야에겐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주먹을 휘두르는 일련의 움직임은 전문가 저리가라다.
힘이 들어찬 일격이 뇌수 안쪽까지 꽂혀와, 흔들리는 다리로 카구야는 어떻게든 일어섰다.
「호오, 수행의 성과가 있나보네?」
「쫑알쫑알 시끄러워. 싸우고 싶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해주겠어!」
「아니, 정말로 힘냈구나, 처음 만났을 때엔 제대로 때리는 것도 못했었는데……아, 손은 괜찮아?」
모코우는 카구야의 도발을 무시하며, 다시 달려들었다.
허리를 꺾으며, 꽉 쥔 오른손을 상대를 향해 내뻗는다.
선대에게 배운 이후로 매일같이 반복한 정권지르기다.
나날이 쌓아온 단련은 자신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고 효과를 발휘했다.
명치에 주먹이 박히자, 신음소리와 함께 카구야의 몸이 기역자로 접히고, 쉴 틈 없이 주먹이 이어나간다.
모코우의 왼 주먹이 선을 그리며 카구야의 의식을 빼앗았다.
「아……으……어라?」
멀미감을 참으며 웃음을 보이려 했던 카구야는 몸이 떨어지는 것 같은 부유감을 느꼈다.
아래를 바라보니 무릎이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멋대로 꺾여 몸이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일어설 수 없다.
이를 악물고 다리에 힘을 주려고 해봤지만, 마치 허리 아래쪽의 신경이 잘려나간 것 같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불사신이라고, 약점이 없는 건 아니야」
긴장을 풀지 않고 거리를 잡고 자세를 유지한 모코우는 선대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봉래인도 머리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거야. 급소도, 인간과 같지」
──턱에 충격을 가해 뇌를 흔들고 일시적으로 몸의 자유를 앗아갔다.
카구야는, 모코우의 공격의 정체를 간신히 깨달았다.
인체를 의학적으로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한 기술.
새삼스럽지만, 모코우를 가르치고 단련시킨 선대무녀를 향한 존경심을 품었다.
「꼭 에이린같은 녀석이네……」
「회복할 시간을 줄 생각은 없어. 이보다 아픈 꼴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어서 항복해」
방심하지 마라. 빈틈을 보이지 마라. 간격을 잘못재지 마라.
선대의 가르침들을 모코우는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모코우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상대는 움직이지 않는다. 상대를 쫒을 노력을 없애고, 더욱 위력을 담은 일격을, 이번엔 전신의 급소 어디든 때려박을 수 있다.
그 안에는 잘못 맞으면 죽을지도 모를 급소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카구야는 항복은커녕 당황조차 하지 않고, 다시 대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항복이라니……내가 왜?」
「……뭐라고?」
「아니, 이상한 질문이라고 생각해서 말이야. 이 상황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허세인가?
모코우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면 되잖아?」
그 한마디에, 모코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사양할 필요 없이 「죽일 각오」로 공격하면 돼잖아?
항복이라니, 느긋한 말도 정도가 있지. 정말로 겨우 한 달 만에 꽤 많이 까먹었나보네」
나날이 쌓은 단련은, 틀림없이 모코우의 힘이 되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덕분에 방심하던 카구야를 단번에 때려눕히고 확실하게 그 생명을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그 무의미함을 알아챘다.
「나아지는 걸 기다리는 것도 귀찮은데다 맞은 데도 아프니──하지 않으면, 내가 할게」
모코우가 말릴 틈도 없이, 카구야는 자신의 목을 강하게 잡았다.
살이 찢겨지고,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카구야는 죽었다.
힘없이 쓰러지는 카구야의 모습을 모코우는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천천히, 잊고 있던 공포와 불안감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카구야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카구야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원점으로 돌아, 왔네」
달빛 같은 희미한 빛에 휘감겼다고 생각하니, 다음 순간 상처 하나 없는 카구야가 그 자리에 서있었다.
스스로 찢은 목의 상처도, 모코우가 입힌 대미지도, 그 새로운 육체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놀랄 것도 아니잖아, 너도 할 수 있으니까. 이게 봉래인의 「힘」이야」
「……몇 번이든」
「에이린은, 더 대단해. 일일이 손을 쓰지 않아도 자기 맘대로 심장을 멈출 수도 있다든가」
「몇 번이든 해 주겠어, 카구야!」
「물론이야. 속이 내킬 때까지 하자.
모처럼 단련까지 했으니, 그 성과를 보고 싶네. 그러니까, 능력은 사용하지 않을게.
스펠카드 룰도 재미있을 것 같지만, 오늘 밤엔 그럴 마음이 안 드니, 육탄전 하나만으로 승부하기로──」
마치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다는 듯이 승부 조건을 정하는 카구야의 말에도 모코우는 오직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하고 있었다.
긴장을 풀면, 꺾이고 만다. 뭉개져버릴 것이다.
이 승부로 카구야가 자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이미 눈치채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의 말에──거짓 없는 현실에──꺾일 수는 없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이라도 한계가 찾아올 것 같았다.
「아아, 그러고 보니 중요한 걸 까먹고 있었네」
지금 생각났다는 듯이 부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카구야가 말했다.
「이 승부, 어느 걸로 결판을 낼래?」
──결판 따윈 없다.
──봉래인의 싸움에, 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코우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기에, 아무 대답도 없이 그저 눈앞의 적에게 달려들었다.
단련된 사지와 체득한 기술에 의한 발놀림은, 카구야가 반응할 여지를 주지 않으며 간격을 좁히는 것에 성공한다.
뻗어나간 주먹을, 격투에 관해선 아마추어인 그녀가 회피할 수는 없겠지.
일방적인 승부가 시작된다.
──그러나 이 승부에 끝이란 있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주어진 그 질문에서 모코우는 필사적으로 눈을 돌렸다.
요 한 달 간, 무언가가 바뀌었다고 실감했다.
선대에 가르침 받고 케이네와 마음을 통하며 치르노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살았다.
그 나날이, 인간으로서의 따뜻함을 되찾아주었다.
──그러나 이 일상은 언젠가 끝난다.
왜냐면 나는 봉래인이니까.
그리고 사람도 요괴도 요정도, 모두 머지않아 죽을 존재니까.
「카구야!」
「「마음」「기술」「몸」──넌 겨우 한 달 만에, 몸을 단련하고 기술을 연마했지. 아주 훌륭해」
모코우는 무의식적으로 적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라지도 않았지만, 이름을 외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계속 외면해왔던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마음이 꺾이지 않기 위해.
격렬한 감정을 불태워, 자신을 지탱할 힘으로 만들기 위해.
천 년 하고도 더욱 전에 품은, 모든 것의 시작인 감정과 그 원흉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 그런데──마음은 어때?」
「카구야아아아아앗!」
모코우는 절규했다.
이 승부를 끝내달라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바라며──.
◆
카구야와 소녀의 일방적인 난투는 긴 시간동안 이어졌다.
자세히 따지자면 반나절 이상,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게다가, 아직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테위는 처음 받았던 충격도 완전히 희미해져 지금은 질릴 뿐이었다.
이미 방은 엽기살인이라도 일어난 것 같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런 처참한 광경을, 눈썹 하나 까닥이지 않고 지켜보기만 하는 에이린에게 공포심을 느꼈지만, 그보다도 반나절 이상 끝없이 때리고, 맞고 있는 둘을 보면 두통이 일 정도였다.
저항 없이 계속 맞는 카구야의 육체는, 당연하게도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무리 가냘픈 소녀의 힘이라도, 자신의 주먹이 부서질 정도의 힘으로 내리쳐대니 죽지 않는 쪽이 이상하다.
사인은 많았다. 맞은 곳이 나빴을 때도 있었고, 토해낸 피가 기도를 막아 질식해 죽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되살아나고 있었다.
멀쩡한 상태로 돌아온 카구야를, 소녀가 다시 내리치기 시작한다. 죽이고, 되살아나고, 죽인다.
그 반복은 이미 단순한 작업과도 같았다.
때리던 소녀에게, 한계가 찾아왔다.
양손의 주먹은 완전히 부서져 뼈와 살로 만들어진 둔기로 변해 있었다.
체력도 이미 떨어진지 오래다.
일방적으로 때리고 있을 뿐임에도 땀과 침이 질질 늘어지고, 말라 비틀어진 목으로 후후하고 불규칙한 호흡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로 멈출 수 없다는 듯이, 느릿느릿하게 팔을 들어 올려 힘없이 내리쳐, 카구야의 얼굴을 자신의 피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더럽히고 있었다.
이윽고, 진짜 한계가 찾아왔다.
체력은 물론, 마침내 정신력까지 어쩔 수 없는 한계에 이른 소녀의 몸은, 힘을 잃고 대자로 쓰러졌다.
사람을 끝없이 때린 결과 지쳐서, 죽어간다는 이상한 모습 속에서, 탁한 눈만이 힘을 잃지 않고 허공을 노려보고 있었다.
솟아오르는 격정은,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
「……에이린」
그때까지 묵묵히 맞고만 있던 카구야가, 자신의 수행원에게 짧게 말했다.
그 한 마디 말에 담긴 의도를 눈치챈 듯, 에이린은 한 번 소녀의 생명을 앗아갔던 칼을 다시 꺼내 그 앞에 던졌다.
「써.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
힘이 다한 소녀에게 가르친다.
봉래인이 가진 힘의 「사용법」을.
소녀는 증오로 가득 찬 시선으로 에이린을 노려보고, 카구야를 노려본 뒤, 마지막으로 칼에 시선을 돌렸다.
각오하고, 무언가를 잡는다는 기능을 거의 잃은 손으로 그것을 집으려 손을 뻗었고──그 순간 테위가 칼을 채갔다.
「……내놔」
「싫은데」
위협하듯이 사나운 말투에도 테위는 태연한 표정으로 품속에 칼을 숨겼다.
소녀의 증오와 살의가, 새로운 상대로서 테위에게 향한다.
「그럼, 그걸로 나를 찔러!」
「그것도 싫어. 아아, 참고로 혀 깨물거나 하지 마」
테위의 경고를 무시하며 소녀는 재빨리 혀를 내밀어 그것을 자신의 이로 씹어 뜯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빠르게 입 속으로 테위의 손가락이 파고 들어가, 혀를 잡아채 입이 다물어지는 것을 막았다.
「아파라……! 그러니까, 그만두라고 했잖아!」
소녀의 교력은 체력이 떨어진 탓에 약하기는 했으나, 씹힌 테위의 손에서는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소녀는 깨무는 것을 그만두려고 하지 않았다.
「목숨을 도구처럼 사용하지 마, 정말로 돌이킬 수 없게 된다고」
테위는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침착하게 말을 건넸다.
소녀가 턱의 힘을 빼기 시작했다. 아니면 씹을 체력도 남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손가락을 입에서 꺼내며 아직 경계를 풀지 않은 소녀의 눈을 마주봤다.
「너는……요괴지」
원망서린 목소리로 소녀가 중얼거린다.
「아아, 그래. 나는 요괴야. 그게 뭐?」
「요괴야……」
「그러니까 그게 뭐? 요괴라서 너한테 나쁜 거라도 있어?」
「요괴는, 죽일 거야……! 나에게 다가오지 마……!」
「요괴라는 거 하나로 그렇게 미워? 옛날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시끄러워! 너는 요괴야! 요괴라고!」
소녀의 말은 두서없이 반복될 뿐이었다.
테위에게 그저 「요괴다」라고 외치기만 할 뿐, 이야기에 전혀 진전이 없다.
적의와 살의가 향해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원한을 품은 이유를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요괴는 악이다」라고 말하듯이,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소녀를 보며, 테위는 약간이나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렇구나, 요괴가 미운 거네. 그럼, 어쩔 수 없으려나. 원망을 받아봤자, 나는 아무렇지 않으니까」
새삼스레 칙칙한 미소를 보인다.
테위는 소녀의 적의가 억지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요괴라서 미운 것이 아니다.
미워할 대상으로서 요괴밖에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이다.
미워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몸이 되살아나도, 무언가 격렬한 감정을 뼈대로 삼지 않으면, 바로 그 순간 마음이 무너지고 만다──눈앞의 소녀는,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주먹을 치켜들고 가장 다루기 쉬운 미움을 제물로 마음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카구야를 때린 것도, 소용없는 것임을 알고도 계속했었던 것도, 그것이 이유 아니었을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설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래, 이제 할 말 없어? 좀 더 발버둥 쳐봐, 꽤 재미있거든」
갑자기 입을 닫은 소녀에게 테위는 히죽거리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검게 죽어있었음이 분명한 소녀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분했다거나 슬픔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서 생긴 눈물은 아니었다.
소녀는 테위의 말에서 그녀의 상냥한 염려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속을 리가 없잖아, 바보」
테위는 포기했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소녀는 힘없이 오열을 흘리기 시작했다.
「머리가 너무 좋고, 이해심이 너무 깊어. 뭣보다, 너무 상냥해. 좀더 주변에 책임을 미뤄도 좋을 텐데」
「무리야. 그럴 수 없어」
「속박은 버려. 남의 일 따윈 신경 쓰지 마」
「싫어. 할 수 없어……」
「저기, 남 일에 참견할 여유 따윈 네겐 없잖아. 자기 일만 생각하면 돼」
「할 수 없다고! 나는……인간, 인걸」
소녀의 목소리가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어느 말보다 진심에 가깝다는 것을, 테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렇구나. 사서 고생이네」
「……도와줘」
「어려운 부탁인걸」
「…………도와줘」
매달리며 중얼거리던 소녀는 힘이 다한 듯 눈을 감았다.
죽지는 않았다, 정신을 잃었을 뿐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눈을 뜰 것이다. 그리고 변함없는 잔혹한 현실이, 이 죽지 않게 되어 「끝나버린」작은 소녀를 무자비하게 맞이하겠지.
「정말이지, 어려운 부탁을 하는걸……」
마치 남 일이라도 된다는 듯 중얼거리며, 콧등을 가볍게 긁적인 테위는 일어섰다.
자고 있는 소녀를 짊어진다.
테위의 체격은 소녀보다 더 작았지만, 불안하게 생각될 정도로 가벼운 몸무게의 소녀를 짊어지는 것 정도는 간단했다.
「──어디 가는 거야?」
그대로 말없이 떠나려던 테위를 아직까지 가만히 쓰러져있던 카구야가 허공을 바라보며 물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한다.
「너희 두 명한테서 떨어진 곳」
카구야와 에이린, 두 봉래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죽림에 있는 은둔지 중 한 곳으로 갈 생각이었다. 유사시에 대비하여 그런 장소는 몇 개고 준비되어 있다.
그곳에 가서, 마음이 내킬 때까지 재우고 일어나면 몸을 닦이고, 배가 꽉 찰 정도로 밥을 먹인다──그 정도의 예정밖에 잡지 않았다.
이 복잡한 인생을 홀로 걸어왔을 소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 정도밖에 없었다.
별 다른 생각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 살기 위해서 딱히 더 필요한 건 없지 않냐는 쌀쌀맞은 생각도 있었다.
「그 아이가 느끼는 고통이 어떨지, 너는 실감할 수 없을 거야」
카구야의 목소리엔 약간의 초조함이 담겨있었다.
「네 행동은, 그 고통을 연장할 뿐이야」
「인간으로서 살려고 하는 것이 고통이라고」
「그래. 고통이야」
「그래. 그거 엄청 수고스럽겠네」
한 번 더, 콧등을 긁적인다.
「이 애도 그렇고, 너희들 셋을 보고 있으면 생각나는 게 있어」
「헤에, 그게 뭔데?」
「고리야. 너희 셋을 연결한 고리.
단 세 명으로 세계가 이어지고 있어. 같은 장소에서 빙빙 맴돌면서, 반복하고 있지. 아마, 그건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너희 셋 모두 죽지 않을 테고」
「그게 봉래인이야」
「그 고리 안에, 이 아이를 넣을 수는 없어. 그렇게 생각했어」
「머지않아 파탄날 고리 안에, 그 애를 집어넣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럼……」
카구야의 물음은 마치 잘못을 꾸짖는 것 같았다.
테위는 대답하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
에이린은 시종일관 묵묵부답이었다. 소녀에 대한 것은 남 일에 지나지 않겠지.
그러므로 카구야의 말은 굳어있긴 했어도 결코 쌀쌀맞지는 않다, 라고. 테위는 느꼈다.
도대체 어째서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카구야는 카구야 나름대로 이 소녀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걸……」
어떤 판단이 올바르고, 어떤 행동이 좋은 결과를 낳을지, 지금은 아직 모른다.
긴 세월을 살았음에도, 같은 봉래인으로서 살아온 카구야의 말이 올바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도와줘」라고 말했다.
「이건, 난제네」
테위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를 떠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