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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선대록

東方先代録


원작 |

역자 | DanteSparda

그 23 「생명유희」


  거짓된 달이 하늘을 비추는 끝나지 않는 밤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야고코로 에이린이 만들어 낸 죽림의 결계 속에서 탄막놀이의 빛이 번쩍인다.
  우여곡절 끝에 이변해결을 위해 모였음이 분명한 인요 중에서 두 인간이 싸우고 있는 것이었다.
  계기는 에이린의 책략 때문이었지만, 이 결투는 다른 무엇보다도 당사자가 바랐기에 이루어진 것이다.
  마리사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레이무와의 결투에 도전하고 있었다.

 「──스펠카드 브레이크」

  마리사가 발사한 최초의 스펠을 모두 회피하며 레이무가 짧게 말을 내뱉었다.
  그 태연한 모습을 마리사는 이를 악물며 노려봤다.

  이제까지 몇 번이나 봤었다.
  이제까지 몇 번이고 실감했다.
  그 흔들림 없는 존재를, 아주 약간의 흔들림조차──만들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만두자」
「……뭐?  무슨 소리야?」

  마치 탄막놀이 따윈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레이무는 갑작스레 자세를 바로잡았다.

「나는 여기에 이변을 해결하러 온 거야. 마리사랑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헤헤, 유감스럽게도 나는 그런 말은 믿지 않는다고.
  지금 밤을 멈추고 있는 흑막이 정말로 있다면, 이야기는 간단하지. 너를 쓰러뜨린 다음에, 내가 그 녀석도 같이 쓰러뜨려줄 테니까」
「응, 뭐. 마리사의 말은, 딱히 상관없어. 네가 나랑 싸우고 싶다는 건 알겠으니까. 그렇지만 말이지──」

  마음을 단단히 먹은 마리사와는 달리, 레이무는 이미 긴장감을 잃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해봤자 의미 없잖아」

  결투를 벌일 이유도 없이 계속 할 필요는 없다, 레이무는 그렇게 단정지었다.

「……겨우 스펠카드 한 장을 버틴 걸로 뭘 알았다는 거야?  나는 아직 비장의 카드도 최후의 수단도 쓰지 않았다고!」
「아무리 탄막을 더 뿌려봤자 같아. 네 공격은 내게 닿지 않아. 조준도 제대로 안 되어 있잖아」

  레이무의 날카로운 지적에 마리사는 분한 듯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적중이다.
  조준하지 않고 흩뿌리는 계열의 탄막이라면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레이무는 마리사의 상태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마리사의 시력은 현재 극도로 저하되어 있었다.
  이 거리에서는 레이무의 얼굴은커녕 몸의 윤곽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탄막놀이를 하며 고속으로 이동하는 레이무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했다.
  어두침침한 시야에 잡히는 것에 탄막을 흩뿌리는 것 외엔 할 수 없는 마리사에게 이길 기회 따윈 없다는 것을 레이무와, 그리고 누구보다도 마리사 자신이 최초로 사용한 스펠카드로 깨닫고 말았다.

「한가할 때 같았으면 얼마든지 상대해 주겠지만」

  레이무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지금은, 하쿠레이의 무녀로서 할 일이 있어」
「……기다려」
「이변해결이 먼저야. 그 눈, 빨리 어떻게든 하는 게 좋아」
「기다리라고!」
「그럼」

  레이무의 등을 향해 마리사는 손에 쥔 미니 팔괘로를 향했다.
  그러나 레이무는 되돌아보지 않는다.
  마리사가 공격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보지 않아도 피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 때문인 걸까. 둘 다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레이무는 자신의 책임을 우선하고 마리사의 존재에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다.

  팔괘로를 쥔 마리사의 손이 작게 떨렸다.
  분노일까, 분함일까. 솟구치는 격정을 버티듯이 이를 악물고 있자니, 이미 충분히 흐려져 있던 시야가 눈물로 더욱 크게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이 장소에서 떠나가려 하는 레이무에게, 마리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기​다​려​…​…​기​다​리​란​ 말이야, 레이무!」

  마리사의 처절한 절규에도 불구하고 레이무는 이미 이변의 원흉에 마음이 넘어가 있었다.
  상대의 유도에 감쪽같이 당해버렸지만, 「적」과의 거리는 확실히 좁혀지고 있다.
  가깝다──라고 레이무의 감이 말하고 있었다.
  레이무에게 「적」이란, 이 앞에 있을 이변의 주모자뿐이다.
  자신에게 부과된 하쿠레이의 무녀로서의 의무에 따라 레이무는 나아가려 했다.

「──멈춰」

  그 순간, 갑자기 들려온 제 3자의 목소리가 레이무의 움직임을 막았다.

「뭐야?」

  시간을 멈추고 다가온 듯. 어느새 사쿠야가 레이무의 등 뒤를 잡고 있었다.
  목덜미에 닿은 나이프에도 일절의 위협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 레이무는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한 움직임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리사와의 결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결과가 뻔히 보이는 승부를 계속하라는 거야?」
「그렇다면, 결과를 보고 가」
「이번 이변해결은 제한 시간 안에 해야 되니까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고 싶진 않은데」
「쓸데없지 않아. 그리고 이변해결에는 저도 협력할 테니, 분담하면 돼」  

  사쿠야는 주변의 인요들을 재빨리 훑어봤다.
  거의 대부분이 레이무와 마리사의 거동을 지켜보고 있다.

  마리사의 서포터로 가세하려고 했던 앨리스마저, 그 앞을 막아서듯이 마주선 파츄리를 경계하며 쉽사리 움직이려고 하지 않는다.
  파츄리도 앨리스를 경계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마리사처럼 성급히 승부를 걸려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야쿠모 유카리가 환상향의 관리자로서 이변해결을 바라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고, 명계의 이인조는 사쿠야에겐 낯선 상대이나, 적어도 적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장소에 명확한 적대 관계는 성립되지 않았다.
  그저 승부를 바라는 자만이 있을 뿐이다.

「……영문을 모르겠네」

  레이무 또한 사쿠야와 같은 해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정말로 모르겠다는 마음을 담아 중얼거렸다.
  이변과는 상관없는 마리사와의 사적인 결투에 참견하는 사쿠야의 속셈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마리사랑 승부해야 하는 건데?  왜 마리사는 승부하려는 거고?」

  마리사에게 적의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다.
  드물게도 인상까지 써가며 물어온 레이무의 질문에, 사쿠야는 약간의 초조함이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내가 가르쳐줘도 모를 거야」

  사쿠야의 뇌리에, 명계에서 레이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마리사의 기특한 모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때 그 말은 자신만이 들었을 뿐이기에 어느 누구도 그녀의 진심을 모른다.
  물론, 레이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말하지 못했기에, 마리사는 그곳에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사쿠야는 불합리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레이무가 마리사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초조함을 느꼈다.
  그녀가 대체 어떤 마음으로 당신과의 승부에 집착하는 건지──.

「알고 싶다면, 마리사와 승부해」

  사쿠야는 목에 들이대고 있던 나이프를 거뒀다.
  그 말에 함축된 의미를 잠시 생각하던 레이무는, 이윽고 포기했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고는, 다시 고개를 되돌렸다.
  몸을 한 바퀴 빙글 돌려 마리사와 마주보니 그녀 자신도 예상 밖이었다는 듯, 사쿠야의 난입에 매우 놀라 굳어있었다.

「마리사. 우선 말해두겠는데 ……」
「뭐, 뭔데?」

  자신을 향한 레이무의 눈에서 전의가 쏘아지듯 흘러나온다. 그것을 무섭다고 생각하기보다도, 이쪽이로 주의를 돌렸다는 사실에 마리사는 놀라고 있었다.
  레이무는 하쿠레이의 무녀로서의 의무보다 마리사와의 승부를 우선시한 것이다.
  자기 자신도 딱히 납득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한쪽 눈이 부어오른 마리사를 노려보며, 레이무는 스펠카드를 꺼냈다.

「네가 지금 그대로라면 절대로 이길 수 없어.
  조금이라도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어떻게든 새로운 힘에 눈을 뜨기라도 해봐. 할 수 없다면, 가능한 빠르게 패배를 인정해!」

  레이무는 마리사와의 탄막놀이를 재개했다.

「귀찮은 짓을 해버렸네」
「야쿠모 유카리……」

  말과는 반대로 미소를 짓는 유카리의 등장에 사쿠야는 얼음장 같은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리사의 마음을 레이무에게 토로하던 감정적인 일면을 마음속에서 지워낸다.
  그 대신 유카리의 앞에서 드러난 일면은 전투원으로써의 냉철한 부분이었다.

  사쿠야는 유카리가 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군이라고도 생각지 않았었다

「당신은 오늘 밤의 이변을 해결하러 온 게 아니었어?」
「그 말 대로야」
「효율을 먼저 따지는 성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네가 키리사메 마리사의 친구라면, 지금은 그녀를 설득해서 레이무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옳은 선택일 텐데.
  마리사는 레이무에게 이길 수 없어. 의미 없는 승부야. 이래서야 그저 레이무의 앞을 막고 있을 뿐이지. 아니,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해야 하려나」
「하나 착각하는 게 있어. 나는 이변을 해결하러 왔지만, 그건 당신을 위해서가 아냐」

  유카리는 일부러 화를 돋굴만한 말을 골라 썼으나, 사쿠야는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았다.

「내 주인의 명령과 바람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이변을 해결하러 온 거지. 네 사정이나 손익 따윈 알 바 없어」
「어머, 사정이라니……나는 그저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자는 것뿐인데」
「그 효율은 네 이익이 될 뿐이지.
  나는 내 사정으로 움직이고 있어. 마리사도 그래. 한 번 더 말하겠지만 「네 사정 따윈 알 바 없다」는 소리야」
「이치를 따지고는 있는 걸까?」
「신용의 문제야」  

  사쿠야는 유카리에게 호의도 혐오도 가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눈앞의 요괴를 향한 마음가짐에는 항상 용납할 수 없는 경계가 쳐져있다.
  만일의 경우에도 싸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반대로 갑자기 싸우게 되더라도 동요하지 않는다. 마음의 한 구석에 그런 가능성을 항상 고려해둔다.
  상대에게 나이프를 꽂을 필요가 있는 상황이 된다면 일말의 주저 없이, 확실하게 실행할 수 있도록 각오하고 있다.
  그런 둘의 사이에서 신뢰 관계 따윌 간단하게 만들 수 있을 리 없다.
  묘하게 수상한 미소를 지으며 효율과 이치를 입에 담은 유카리에게, 사쿠야는 목적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동료 의식을 가질 수는 없었다.

「지금은 칼을 향하지 않을 뿐이야. 네게 등을 맡길 생각은 없어」
「……어렵네, 신뢰라는 건」

  ──선대가 없을 때엔 절실하게 느껴져.

  유카리는 뒷말을 변함없는 미소 속에 숨겼다.
  선대무녀의 예외성을 실감했다.

  인간과 요괴. 서로의 인식을 따지자면 사쿠야가 정상이다.
  눈앞의 인간은 요괴에게 실로 알맞은 감성을 가지고, 냉정하게 선을 긋기에 야쿠모 유카리라는 요괴의 말에 최선의 판단을 내리고 있다.
  실제로도 수많은 기대감을 숨긴 미소의 가면 아래쪽에 있을 무언가를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올바르다.
  영리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이런 자신의 미소를 좋아한다고 말해준 선대는, 바보 같은 인간일 것이다.
  그렇기에, 괜히 사랑스럽다.

「──그럼 우선은. 신뢰 대신 이해타산을 맞추고 협력해볼까」

  유카리는 분위기를 바꾸자는 듯이 지금까지 이어지던 화제를 끊었다.
  사죄는 입에 담지 않는다. 사쿠야도 유카리의 제안에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라는 표정으로 묵묵히 듣고 있다.
  결국, 이것이 이곳에서 가능한 최소한의 타협점이며 자신의 한계일 것이다, 라고. 유카리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저 둘은 좋을 대로 놔둬도 괜찮겠지. 어차피, 결판이 날 때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테니까」

  탄막놀이의 형세조차 제대로 보지 않고 단언한 유카리였으나, 사쿠야는 그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무시했다고 해도 좋다.

「마법사들은 노려보기만 하고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걸」
「상대 마법사의 정체는 몰라. 그렇지만 파츄리님이 경계한다면 방심해선 안 되는 상대겠지」
「그렇네, 나도 그 마법사에 관해 판단할 정보가 너무 적어. 상대는 그녀에게 맡기자」

  이변해결을 위한 인원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상황에 유카리는 딱히 낙담하지는 않았다.
  애당초 처음 예정엔 레이무 만이 함께 싸울 파트너이며, 갑작스레 나타난 다른 상대들이 적이 될 것이란 가정까지 했으나, 아군으로서 협력할 계산 따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보가 없기에 전혀 상황을 예측할 수 없는 불규칙함 속에서 파츄리가 상대의 발을 묶어주고 있는 상황에 오히려 잘 됐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그럼, 여긴 유유코에게 맡기는 편이 좋으려나」
「어머머∼, 우리들을 고르는 거야?」

  언제부턴가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유코와 요우무에게 시선을 돌린다.
  유카리게 있어 이 둘은 이 상황에서 확실히 아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존재였다. 적어도 주인과 시종이며, 신뢰가 있다.
  협상부터 허탕을 친 유카리와 사쿠야가 팀을 맺고 이변해결에 도전하는 것 보다, 주종의 관계가 확실한 유유코와 요우무의 콤비가 전력으로서 훨씬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속내를 품은 유카리에 눈짓에 사쿠야는 작게 끄덕였다.  


「이변의 원흉은 맡기겠어. 나는 원호를 할 테니까」

  듣든지 말든지, 사쿠야는 등을 돌리며 셋에게서 떠나갔다.
  그녀의 제멋대로인 행동에 요우무는 불쾌감을 느꼈지만, 사쿠야에 대해서 모르는 유유코는 오히려 만족했다.
  서투르게 협력해봤자 서로의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공통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유롭게 단독 행동을 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임은 틀림없다.

「주변을 가린 결계를 무너뜨릴게」

  유카리는 바로 옆으로 펼쳐진 공간을 덧그리듯이 손가락을 내리그었다.
  그 궤적을 따라 공간의 갈라진 틈이 발생한다.

「이 틈새는 목적지까지 이어져 있는 거야?」
「유감스럽지만, 거기까지 할 수는 없어. 상당히 견고하고 치밀한 결계야.
  그렇지만 그 술식을 어지럽힐 수는 있었어. 이 틈새를 빠져나가면, 이 미궁이 된 결계의 영향에서 피할 수 있을 거야」
「그 뒤부턴 알아서 이변의 원흉을 찾으라는 말이구나」
「아마 「적」은 가까이에 있어」
「알겠어. 가자, 요우무」
「네」

  유카리의 추측을, 유유코는 의심하지 않았다.
  요우무와 함께 틈새 속으로 사라진 유유코의 등을 잠시 배웅하며, 유카리는 레이무와 마리사의 싸움에 시선을 향했다.
  그 둘의 대결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뒤, 다시 레이무와 함께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갈 생각이었다.
  어차피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대결 따윈 곧 끝난다──유카리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왠지, 사쿠야처럼 자기 혼자 행동하자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시간을 다룬다는 것은 공간을 다룬다는 것과 같다──사쿠야의 능력은 그렇게 해석되어 있다.
  실제로, 자신의 능력이 어떤 능력인지 사쿠야 자신조차 전부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당연한 것처럼 시간을 멈추고 공간에 간섭할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이 보는 세계는 분명 남들과는 다른 걸까.

  이 죽림에 발을 디딘 순간, 결계의 영향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또한 주위에 있던 위화감을 알아차리고 있다.

「이 근처네」

  레이무 일행에게서 멀리 떨어진 하늘에서 멈춰 선 사쿠야는 눈을 감았다.
  자신 속에서 항상 시간을 새기고 있는 회중시계의 바늘을 멈추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눈을 뜬 순간, 그 이미지는 현실이 되어 있었다.
  사쿠야만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가 펼쳐지고, 일을 끝낸 순간 시간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앗……!」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비명이 울려 퍼졌다.
  종이위로 물감이 덧칠되듯이, 파장을 조작하여 숨어있던 레이센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 어깨에는 나이프가 박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충격과 고통에, 레이센은 억지로 자신의 능력을 해제 당한 것이었다.

「그런, 말도 안 돼……!」

  자신의 모습을 완벽하게 잡아낸 사쿠야를 레이센은 경악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라봤다.
  다가오던 그녀의 행동을 보아 아마 자신이 숨어있다는 것을 들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설마 정확하게 위치를 파악하고 공격까지 맞힐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파장을 비틀어 자취를 감춘 자신을 인간이 맨눈으로 파악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무엇보다, 그 결과에 이르기 위한 과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레이센의 시점에서 보자면, 제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공격당해 있었다는 이해 못할 상황이다.

「직접 공격해 버리긴 했지만……뭐, 당신도 스펠카드 선언도 하지 않고 몰래 숨어 있었으니까, 자업자득이라고 이해해줘」

  이미 레이센을 적이라 판단한 사쿠야는 냉철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넌 이변의 주모자 혹은 그 관계자 맞다 봐도 좋겠지?」
「……나를 찾아낸 정도로 우쭐거리지 마. 지상에서 기어 다니는, 더러운 인간 주제에」
「그래, 알겠어. 적대의사를 확인. 그렇다면 나이프와 카드 중에서 어느 쪽이 마음에 들어?  나는 어느 쪽이든 괜찮지만」
「인간 따위가, 얕보지 마!」

  레이센이 스펠카드를 꺼내는 것을 확인하며, 사쿠야는 나이프를 갈무리했다.
  그러나 서로의 전의는 누구 하나가 죽어도 이상치 않을 정도로 고조되어 있었다. 뜨겁고, 고요하게.
  똑같은 탄막놀이임에도 레이무나 마리사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그 둘에겐 있었다.

「역시. 너와 난 비슷한 것 같네」

  ──탄막놀이를 비치사성의 공격을 사용하는 「전투」의 하나로서 알고 있다.
  사쿠야에게 있어 스펠카드 룰이란 하나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냉정히, 정확하게 작업을 해내는 것에 집중한다.
  그 사이에 잡념은 없다. 공포나 초조함, 분노, 반대로 기뻐하거나 흥분하지도 않는다.
  탄막놀이에 임하는 사쿠야의 정신 상태는 항상 전투원으로서의 그것이었다.
  방금처럼 레이무와 「승부」를 내고 싶어 하던 마리사와는, 그에 임하는 이유도 마음가짐도 다르다.

  그와 반대로 지금 눈앞에 있는 「적」에게 사쿠야는 자신과 비슷한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레이센 또한, 사쿠야와의 탄막놀이를 「승부」가 아닌 「전투」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훌륭해. 역시, 적이란 이래야지」
「겨우 한 번 날 찾아냈다고 우쭐거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조금 전엔 정체를 숨기기 위해 당신의 눈을 보지 못했지만. 이번엔 달의 토끼인 나의 눈을 보고, 네 자신이 미쳐가는 걸 느끼는 게 좋아!」
「공교롭게도, 내가 보고 있는 세계는 이미 미쳐있어. 가능하다면, 나의 세계를 봐봐. 네 시간도 나의 것이니까──」







  자신을 제외하고 두 번째로 보는 마법사를 찾아낸 앨리스는 소극적인 대처를 보여주고 있었다.
  상대는, 그 미숙한 마리사와는 다르다.
  독자적인 계통을 가지고, 그 극에 이른, 완성된 마법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섣불리 나서는 것도, 반대로 얕보는 것도 실례가 될 것이다.

「──반가워」

  결국, 앨리스는 파츄리와의 첫인사를 그런 평범한 한 마디 말로 끝냈다.

「……반가워. 파츄리 노우렛지야」
「나는 ​앨​리​스​·​마​가​트​로​이​드​」​
「그럼 「앨리스」라고 부를게. 괜찮을까?」
「마음대로. 이쪽은 「파츄리」라고 부를게」
「상관없어」

  주변에서 전투의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레이무와 마리사의 탄막놀이는 오만가지 색채의 섬광과 함께, 사쿠야는 어느새 나타난 정체 모를 토끼 요괴 같은 상대와 싸움을 시작했다.
  유유코와 요우무 두 명은 자취를 감췄고, 이 장소의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있는 유카리가 미소 짓고 있다.

  그런 주위의 상황을 모두 머리 바깥으로 쫓아버린 두 마법사는 각각의 세계를 펼치고 있었다.
  앨리스와 파츄리는, 미지의 마도서를 해석하는 것 같이 신중하며 냉정하게 서로를 분석하고 있었다.

「질문이 있는데, 당신은 내 「적」이 아니지?」

  앨리스는 아무 숨김없이 그저 순수하게 지금 가진 유일한 의문을 풀기 위해 질문했다.
  처음엔 달의 이변을 눈치채 그것을 해결하러 온 것이었다.
  우연히 마주친 눈앞의 마법사에게 흥미는 있지만, 무엇보다 빨리 해결해야하는 것은 이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모르는 상대가 너무 많다.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지 어떨지는 둘 째 치고, 어쨌든 지금은 적과 아군, 어느 쪽인지 파악만이라도 해두고 싶었다.

「……그건 네 하기 나름이겠지」

  그 질문에 파츄리는 대답을 흐렸다.
  두 명의 사이에 불미스런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무슨 의미려나?」
「마리사에게 마법을 지도하던 건 너였구나」
「아아, 과연. 요컨대 내가 마리사의 정식 스승인 당신을 찬밥취급 했다는 걸까」
「……틀려. 나는 마리사의 스승이 아니야」
「──?  모르겠는걸.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파츄리가 약간 고개를 수그리자 앨리스가 눈썹을 찡그렸다.
  동요를 내보이는 것은 자신이 열세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파츄리는 잘 알고 있었다.
  마법사에게는 내면의 평정이 필요하다. 소악마에게도 충고를 받았을 정도다. 감정에 좌지우지 되는 「인간성」은, 마법사에게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파츄리는 눈앞의 또 다른 마법사에게 복잡한 감정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마리사는 그녀와 함께 이곳에 나타났으니까.  

「마리사와 당신은, 어떤 관계지?」

  파츄리의 질문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듯, 앨리스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굳혔다.
  그 질문은, 지금 이 상황에서 꼭 필요한 것이었나?
  그런 의문을 뒤로하고 쓸데없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도록, 솔직하게 대답한다.  

「수개월 전에 만난 관계야. 그녀는 마법사로서 미숙하여, 우연히 만나게 된 내게 가르침을 바랬고, 그래서 가르쳤지. 그뿐이야」
「담보는?」
「딱히 없어. 그녀에겐 내가 바랄 정도로 거창한 물건은 없으니까.
  뭐, 내 거처는 마법의 숲에 있어서 정보에 도태되는 게 일상이라 바깥의 정보를 몇 가지 들은 것도 있고 말이지」
「어째서, 대가를 요구하지 않지?」
「……이쪽에서 질문해도 괜찮을까?  지금 이 상황과 알맞지 않은 화제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게 중요한 내용일까?」  

  결국 의문을 버리지 못하고 질문으로 답한 앨리스는, 더욱 얼굴이 굳어져가는 파츄리를 보며 속으로 혼란에 빠졌다.
  이쪽을 향한 시선엔 이미 적의까지 섞여 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여태까지 흐른 이야기 어디에 상대방에게 불쾌함이나 적의를 부추길 요소가 있었는지, 앨리스로선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자신과 같은 레벨이거나, 혹은 그 이상일 것이라 상정하고 있던 보라색의 마녀는, 마치 인간처럼 초조해하며 분노의 감정이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내보이고 있다.

「……어째서, 마리사에 저런 위험한 술식을 가르친 거지?」  

  탄막놀이에 시선을 돌린 파츄리를 따라, 앨리스도 시선을 돌렸다.
  옆에서 봐도 표적을 정하지 못해 난폭하게 날뛰는 것으로 보일 정도의 탄막을 무모하게 계속 내뿜고 있는 마리사가 있었다.
  시력의 저하가 움직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사정을 아는 자라면 그 누구라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마리사가 공세를 펼치고 있지만, 만약 레이무가 탄막을 발사한다면, 지금 저 상태의 마리사로선 그것을 회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안전성이 높다고는 하나, 탄막놀이는 부상이나 죽음의 위험마저 충분히 품고 있었다.  

「네 가르침은, 「저 아이」의 레벨에 맞지 않아」
「그건 「그녀」가 바라던 거야, 어쩔 수 없잖아」  

  그 둘의 말 속에 담긴 음색에는 명확할 정도의 온도차가 있었다.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마리사를 설득해야만 했어」
「정말로 네 생각을 이해할 수 없겠는걸. 본인이 바란 걸 어째서 내가 멈춰야하는데?」
「이대로라면, 마리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그저 빛을 잃을 뿐이야」
「리스크는 이미 설명했어. 그걸 알고도 본인이 바랐고」

  앨리스는 파츄리와 시선을 마주했다. 파츄리의 동공이 작게 좁혀졌다.
  공격태세에 돌입하겠다는 신호다. 앨리스는 냉정한 예상과 함께 말을 끊었다.  

「마리사의 몸을 걱정해서 내게 돌아올 메리트는 없으니까」  

  파츄리의 눈동자가 명백한 적의로 물든다.
  주문이나 동작도 없이, 파츄리의 주위로 마력이 모인다. 그뿐만이 아니라 단순한 마력탄도 아니고, 불꽃의 속성까지 가미된 화구의 마법이었다.
  고속의 마법 제어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지만, 앨리스가 한 수 빨랐다.
  파츄리가 마법을 완성시킨 시점에, 앨리스는 무장한 자신의 인형들로 그녀를 포위하고 있었다. 각각이 가진 무기의 칼날은, 목젖 바로 앞까지 들이닥쳐 있었다.

  승부는 한순간에 끝났다.

「……착각하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공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듯이, 천천히 손바닥을 보인 파츄리는 품에서 한 장의 카드를 꺼냈다.  

「환상향의 룰은 이거야」  

  스펠카드를 내밀며 담담히 내뱉는다.
  그것이 저도 모르게 나온 허세이며, 상대에게 이미 눈치채였다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도 파츄리 자신이 알고 있었다.

  그 순간, 자신은 죽었다.
  스펠카드 룰이 아닌 실전이었다면, 그것도 먼저 움직인 것은 이쪽이다.
  선수를 빼앗겼음에도 섯불리 행동하지 않은 앨리스의 완승이었다.
  마법사임에도 솟구치는 감정에 마음을 어지럽히고, 평정을 깨트린 자신이 패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또한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파츄리는 인정할 수 없었다.  

  ──무엇을?  

  승부에 졌다는 것을.
  말의 정당성이 상대에게 있다는 것을.
  마리사가 자신의 가르침만이 아닌 다른 것을 바랐다는 것을.
  그 모든 중심에, 눈앞의 앨리스 마가트로이드라는 마법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무래도, 나는 미움 받고 있나보네」

  알 수 없는 점은 많지만, 결국 그런 결론을 내린 앨리스는 포기했다는 듯이 몸을 수그렸다.
  인형을 거두며 처음으로 경함하게 될 탄막놀이에 대비한다.
  파츄리에게는 어떤 감정도 없지만, 상대의 적의를 저항 없이 받을 정도로 착하지도 않다.
  감정이 아닌, 차가운 이성으로, 앨리스는 적의 배제를 결정했다.  

「……이제 와서 하기에는 맞지 않을 질문일 테지만, 앨리스. 넌 뭐야?」
「그렇네, 사실 나도 그게 제일 신경 쓰였어」  

  의미 모를 대답에, 파츄리는 흥미를 품지 않았다.
  마법사들은, 서로를 불가사의한 존재라 정리했다.
  이 다음 남은 것은 충돌뿐. 마주선 두 마법사는, 눈앞의 상대를 부정하기 위해 각각 행동을 개시했다.  







「테위, 왜 그러나?」  

  끝없이 이어진 죽림을 꿰뚫듯이 날아가던 케이네는 선두를 맞고 있던 테위의 급정지에 따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바로 옆에서 따라오던 치르가 멈추자, 둘이 함께 안아 나르던 선대 또한 덩달아 멈췄다  

  밤의 어둠이, 그렇지 않아도 길을 잃기 쉬운 죽림 속을 천연의 미로로 탈바꿈시키고 있었다.
  전혀 변하지 않는 풍경은, 혹시 자신들이 나아가야 할 길조차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불러 일으킬 정도다.
  훨씬 경험이 많은 테위의 뒤를 따르던 케이네는 선두의 머뭇거림에 약간의 불안감을 붐었다.  

「설마, 길을 잃은 건가?」
「아니, 그건 아니야」

  테위는 뭔가 주저하듯 약간 말에 뜸을 들이더니, 그대로 뒤를 돌아봤다.
  전혀 변하지 않은 태연자약한 미소가 지어져 있다. 

「내가 안내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뭐라고?  잠깐, 그건 곤란하다. 어떻게 모코우에게 가라는 건가?」
「아, 그건 괜찮아. 우선 분명 현장은 모코우가 사는 곳일 거야.
  거리를 따지면, 이미 거의 다 온 거나 다름없어. 선생님─들도 몇 번이나 다녔던 곳이기도 하고, 제대로 도착할 수 있게 행운을 되는대로 줄 테니까 말이지」
「행운이라니……」
「어쨌든, 이대로 쭉 가면 분명 도착할 수 있을 거야. 뭐, 내 능력이니 넘어가줬으면 하는데」
「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믿겠다만……그럼 너는 어쩔 생각이지?」 

  어떤 보증도 없는 테위의 말에도 한 치의 의문조차 품지 않은 케이네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 셋의 얼굴을 저도 모르게 돌아보니, 모두가 질문의 대답을 기다린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녀들에게 있어 제일 큰 걱정은, 정말로 모코우에게 갈 수 있을지 어떨지가 아니라, 이곳에 남겨질 테위에 대한 걱정이었다.
  반쯤 기가 막히는 것 같은 기분과 함께 묘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테위가 가볍게 콧잔등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유감스럽게도, 나한테는 일이 있거든」
「일?」
「영원정과의 계약에 관한 일, 이라고만 말해둘게. 어쨌든, 모코우는 너희들한테 맡기겠어」
「그런가……」 

  사정을 거의 전혀 말해주지도 않은 테위의 결론만을 들은 케이네는 입을 다물었다.
  평소에도 과묵한 선대는 그렇다 치더라도, 의외롭게도 테위의 발언에 치르노조차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도움을 바랐으면서, 모코우의 문제를 전부 남에게 떠맡긴 것이다. 어떤 질책이나 매도가 가해질 것이라 예상하던 테위가 반대로 허탕을 친 기분이었다.

  케이네가 한 마디 말을 덧붙였다.

「네가 뭘 하려는지는 잘 ​모​르​겠​다​만​…​…​조​심​하​도​록​,​ 테위」

  그저 올곧게, 걱정스럽다는 마음이 담긴 진지한 말이었다.
  아무 대답도 없이, 작은 미소를 지은 테위는 작게 끄덕였다.
  콧잔등을 긁적인다.
  그 이상 아무 대화도 없이 땅으로 내려선 테위를 배웅한 케이네는 다시 앞을 바라보며 모코우가 기다리고 있을 어두컴컴한 죽림 속으로 나아갔다.

「──사실, 이것 말고 할 수 있는 건 없지만. 건네줄 수 있을 정도의 「행운」을 가져가, 그 아이의 것도 함께」

  지상에 내려선 테위는 케이네 일행의 뒷모습에서 눈을 뗐다.
  귀를 막듯이 한 손을 귀 위로 얹고 들려오는 음성에 집중한다.

  처진 토끼 같이 생긴 귀에는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는 작은 기계가 끼워져 있었다.
  영원정에서 살짝 실례한, 정체불명의 기계다. 이런 물건을 영원정의 거주자들이 대체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혹은 만들었는지는 테위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가진 기능은 알고 있었다.
  같은 기계를 가진 자와 멀리 떨어져서도 대화할 수 있다. 혹은, 말을 일방적으로 들을 수도 있는 물건이었다.
  그리고 바로 조금 전부터 신경 쓰이는 말이, 이 기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침입자중, 2인1조가 결계에서 빠져나갔다……라」

  기계를 통해서 먼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경청하던 테위는, 목소리의 주인인 레이센의 말을 반복했다.
  레이센이 보고를 보낸 상대는 에이린일 터이다.
  테위는 그 통신을 옆에서 도청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스승님이 해치워주면 편할 텐데」

  자신의 말이었음에도 그것이 단순한 희망일 뿐이라는 것을 테위는 잘 알고 있었다.
  에이린의 최우선으로 챙기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우선 카구야다.
  이번 이변도, 그 카구야의 안전을 위해 벌인 것이었다.
  쫒기고 있는 카구야의 존재를 달의 사자에게서 숨기기 위해, 달 자체를 비술로 숨겨버릴 정도다.

  오랜 세월 이 땅에 숨어 살았으면서, 왜 이제와 발견당할 것이란 생각을 했는지는 수수께끼지만, 어쨌든 에이린은 카구야를 위해서라면 안전을 위한답시고 이런 터무니없는 사건을 단번에 해치워버린다.
  그 결과, 환상향의 유지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조차 거리끼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의 에이린에게 있어 최우선적으로 배제해야 할 「적」이란, 아직도 갈길이 먼 침입자들이 아닌──지금 확실히 카구야와 싸우고 있을 모코우였다.

「계약을 취소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모코우가 떠안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인연의 상대인 카구야와의 싸움은 피할 수 없다. 그에 쓸데없는 참견은 필요하지 않을 터다.
  그러나 테위는 에이린의 방해도 할 수 없었다.
  물론, 실력의 차이나 뒷일이 걱정된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렇기에, 선대들을 먼저 보낸 것이다.

「결국, 떠맡겼을 뿐이네……」

  테위는 자조의 뜻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 케이네나 치르노가 자신의 대답을 듣고, 그 무책임함을 이유로 자신을 꾸짖어도 그것은 오해도 뭣도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해주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그녀들은 너무나도 어수룩했으며, 상냥했다.
  그것이 테위가 모코우를 그녀들에게 맡긴 이유인것처럼──.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려나」

  진심의 미소 위로, 가면의 미소를 쓴, 테위는 죽림의 저편을 노려보았다.
  희미한 빛이 두 개, 어두운 곳에서 나타났다.
  테위는 그것이 망령이 내뿜는 영적인 빛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계를 빠져나온 ​침​입​자​─​─​이​변​해​결​을​ 위해 움직이던 사이교우지 유유코와 콘파쿠 요우무가, 우연하게도 이곳에 나타난 것이었다.

「어머나, 토끼를 발견했네」
「이쪽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군요. 이변의 관계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명 또한 테위를 눈치채고, 흥미를 보였다.
  거리를 잡고 마주선다.

「이 영원한 밤에 용케 흥분하지도 않고, 침착하게 보이는걸. 꽤 노련한 요괴토끼 같구나」
「이런 귀여운 토끼를 늙은이 취급이라니, 제법이네」
「뭔가 목적이 있어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겠지. 당신은 이 이변의 관계자?」
「나는, 평범한 건강 매니아인 작은 토끼 씨야」
「어라 그래?  그럼, 거기를 지나가도 될까. 뭔가를 지키려는 토끼 씨」

  태연자약한 말투 속에서, 자신이 시간을 벌려는 속셈이라는 것을 유유코에게 들킨 테위는 속으로 식은땀을 흘렸다.
  상대는 상당한 난적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것은 유유코뿐, 요우무는 그 옆에서 묵묵히 칼을 쥐고 있다.

  말없이 압력을 내뿜는 요우무에게 「아, 이 녀석 이야기를 듣지 않는 타입이네」라는 감상을 품으며, 그러나 상대하는 게 귀찮은 건 유유코 쪽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만의 페이스를 가진 상대는 서툴다. 자신 있는 말빨로 솜씨 좋게 놀리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거기다 전투력의 차이는 물론, 단순한 수적 우위도 저쪽이 잡고 있었다.

「……뭐, 어쨌든 조금 나랑 놀아줬으면 하는데」

  이야기를 오래 끄는 것이 의미 없는 행동이라 판단한 테위가 재빨리 사고를 뒤바꿔 스펠카드를 꺼내 들었다.
  상대가 자신을 그저 장해물로써 배제하려고 한다면, 저항할 방법은 없다.
  그러나 탄막놀이라면, 적어도 승부는 된다. 이길 수 있다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마음껏 하는 게 좋겠네. 이 앞에, 꽤 중요한 게 있나봐?」

  유유코가 탄막놀이에 응했다.
  테위의 예측대로였지만, 그녀가 저 부드러운 미소 안쪽에서 상황을 얼마나 꿰뚫어보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에이린이나 카구야에게서 때때로 느껴지는 거물의 기세를 유유코에게서도 느끼며, 동시에 순수한 적의를 향하는 칼을 뽑기 직전인 요우무가 신경을 압박한다.

  ──이건, 힘든 싸움이 될 것 같은걸.

  이길 생각은 조금도 없으며, 시간을 버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이런 녀석들과 길게 싸워서 아픈꼴을 보고픈 마음은 없다.
  지긋지긋하다는 한숨을 내뱉으며, 테위는 두 명의 적을 맞아 싸우려고 했다.

「잠깐 기다려!」

  테위의 탄막이 전쟁의 개막을 알리려던 순간, 명랑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 바보!」
「누가 바보냐!」
「미안, 치르노!」

  갑작스레 나타난 치르노에게도, 테위는 장난을 잊지 않았다.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선대랑 케이네는?」
「먼저 갔어. 모코우는, 스승이랑 케─네한테 맡겼으니까 괜찮아!」
「그러니까, 왜 너만 돌아온 거냐고!」
「이유는 당연하지, 도우러 왔다고!」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치르노는 가슴을 피며 대답했다.
  테위는 눈을 치켜뜨며 치르노를 바라보고, 뒤를 이어 고맙게도 자신들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유유코와 요우무를 보았다.
  요우무는 뭐냐는 표정이었지만, 유유코는 치르노의 난입을 분명히 즐기고 있었다.

  얼굴을 찡그리며, 치르노를 다시 바라본다.

「……어째서, 도우러 온 건데?」
「흐흥, 이 몸의 눈은 속일 수 없다구. 테위가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는 건 다 알고 있어」
「아 그래, 그거 바보치고는 굉장하네. 케이네도 알고 있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돌아올 이유는 아니야」
「왜?」
「왜라니……너는 모코우를 도우려고 죽림까지 온 거잖아! 제일 중요한 목적을 잊지 말라고!」
「잊지 않았어. 모코우에게는 스승이랑 케─네가 갔으니까 괜찮아. 스승은 이 몸보다 최강이고, 케─네는 머리가 좋으니까」

  케이네의 「머리가 좋다」는 어찌됐건, 선대의 「최강」이라는 평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치르노에게 그것은 절대의 신뢰를 가질 수 있는 이유로 보였다.
  새삼스럽게도, 이해할 수 없는 요정의 사고 회로에, 테위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럼, 거기에 너도 같이 있으면 괜찮잖아…….
  내가 여기에 혼자 남은 의미를 조금은 이해해 달라고. 나는, ​「​모​코​우​를​」​도​와​달​라​고​ 했어!」  

  이치에 맞지 않는 치르노의 말이, 그 무엇보다도 모코우의 마음에 울려 퍼진다──자신은 할 수 없는 것이다, 라고. 테위는 생각하고 있었다.
  기나긴 시간 속에서 결국 모코우에게는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 가능성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그 가능성을 올리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무리는 이 정도라고 생각했다.
  테위의 목소리는, 반쯤 치르노를 꾸짖는 것 같은 기세를 띄고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치르노는 그 말이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그럼, 넌 누가 도와줘?」

  테위는 이번에야말로, 완벽하게 의표를 찔려 눈을 껌벅거렸다.

「……뭐?」
「잘은 모르겠지만, 여기서 저 녀석들이랑 혼자서 싸우려고 했었지?
  모코우가 위험한 건 알지만, 너도 위험했다는 거잖아.
  이 몸은 친구는 버리지 않아. 모코우는 스승들이 도와줄 거고, 테위는 이 몸이 돕는다── 「분업」이라는 거라고. 할 수 있어, 배웠는걸!」

  그렇게 말을 끝맺으며, 자신의 말에 절대적인 자신감과 정당성이 있다는 듯, 치르노는 팔장을 끼며 어깨를 폈다.

  ──어느새 나와 네가 친구가 된 건데?
  ──그 전에, 너 혼자서 그 둘이랑 같다고 할 수 있어?

  테위는 아무 말이라도 하며 대답하려 했으나, 평소처럼 입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분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테위는, 치르노의 기세에 완전히 밀리고 말았다.

​「​정​말​이​지​…​…​너​는​,​ 질리지도 않네……」
「뭐라고?」
「 ​「​최​강​」​이​라​고​…​…​」​

  결국, 테위는 포기했다는 듯이 그 한 마디를 입에 담았다.
  입가에는 마치 쓴웃음 같은, 기묘한 미소가 자기도 모르게 지어져 있었다.

「당연하지!  너도 이제야 이 몸의 힘을 알아 본 거구나.
  저 녀석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최강인 이 몸이 돕는 이상 아무 문제 없어. 안심하라구!」
「아아, 정말이지 빌어먹을 정도로 안심이야.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걸」
「그 말대로!」

  자신만만하게 웃는 치르노의 옆에 서며, 테위는 다시 적을 올려다봤다.

「우후훗. 좋네, 우정은. 그래, 좋은 생각이 났어. 요우무, 너도 친구를 만드렴」
「유유코님, 지금은 놀 시간은 없습니다만……」
「그럼, 이 이변이 해결되면 친구를 만드렴. 분명, 네 도움이 될 거란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의외로 생트집일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며, 요우무는 의식을 저 아래에 선 적들에게 돌렸다.

「……치르노」
「왜?」
「조금 전에 말한 「아무것도 무섭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야. 정말이야」
「응……?  알고 있어, 뭘 이제 와서. 이상한 녀석이네」
「믿음직한 친구가 있어서, 난 행복하다고 생각해……온다!」

  유유코가 미소지으며, 요우무가 날카로운 눈빛을 내뿜으며, 덤벼든다.
  테위와 치르노는, 서로 전혀 기죽지 않은 의지로 맞상대에 들어갔다──.







  ──얼마나 싸웠을까?

  주변은 여전히 밤의 어둠에 잠겨 있었고, 그 위를 거짓된 달빛이 비추고 있다.
  질리지도 않은 듯 변함없는 풍경이었다.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마치 시간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것은 착각일 뿐이라며 자신을 타이른 모코우는 가슴속에서 솟구친 작은 안도감에 흠칫 놀랐다.

  ──카구야가 말한 대로야. 나는, 해가 뜨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있어.

  그래선 안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의문을 품는다.

  ──뭐가 안 된다는 거야?

  시간이 멈춘다면, 끝은 없다. 시작도 없다. 반복도 없다.
  혼돈에 빠진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며, 모코우는 일어섰다.

「그렇게, 같은 걸 반복하는구나. 그야말로 네 삶이랑 똑같아」

  땅위를 기던 모코우가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카구야는 불쌍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카구야와 모코우의 싸움은, 처음과 다르게 전개되고 있었다.
  상처 하나 없는 카구야와 멍과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거칠게 숨을 내쉬며 간신히 일어서는 모코우.
  그 모습이 어느 쪽이 더 우월한지를 명백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미 충분히 다쳤어」

  당연한 결과였다.
  봉래인인 두 사람에 있어서, 전투의 부상이나 피로 따위는 문제가 되지 못한다.
  죽음조차 의미가 없으니까.
  한 번 죽어버리면, 그때까지의 상태는 리셋 되어 완전한 상태로 되살아난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다하더라도, 도달한 결과가 같다면, 그 다음에 일어날 일도 같다.
  부활하여, 원점으로 돌아온다.

  힘겨운 수행을 견뎌낸 모코우는, 그 수행에서 얻은 힘으로 카구야를 몇 번이고 쓰러뜨렸다.
  쓰러뜨렸음에도 끝나지 않고 다시 시작되는 싸움을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었다.

「이미 완전히 지쳤을 테고」

  되살아날 때마다 부상은 사라지고 체력까지 회복하는 카구야와는 반대로, 모코우는 그저 소모만을 반복하고 있다.
  싸움을 끄는 만큼, 모코우는 불리해져간다.
  우세를 잡았던 모코우가 되려 지치는──너무나도 성과 없는 싸움이었다.

「어째서 편해지려고 하지 않는 거야?」

  이윽고, 카구야의 반격이 모코우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기술도 뭣도 없는 어설픈 공격은, 체력을 소모하여 움직임이 둔해진 모코우로선 피할 수 없었다.

  주먹에 맞아 날아가 땅 위를 뒹군다.
  피가 튀어나오며, 뼈가 삐걱인다. 저 가냘픈 팔에서 나온 것이라곤 상상도 못할 괴력이다.
  형세가 완전히 역전되고, 모코우는 몇 번이고 ​쓰​러​졌​으​며​─​─​그​때​마​다​ 다시 일어서, 온몸을 갉아 먹히듯 약해져갔다.

​「​항​복​은​…​…​절​대​로​,​ 안 해……」
「그것도 있지만, 내 말은 그게 아니야」

  모코우는 자세를 잡았다. 이미 양팔을 들어 올리는 것조차 괴로웠다.
  카구야가 대충 걸어와 간격을 좁혀도 맞설 수 없다. 스스로 발을 디딜 체력조차, 이미 전부 써버린 뒤였으니.
  카구야가 충분히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던 모코우는 주먹을 내뻗었다.

  아직 예리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에 비교하면 확실하게 무디다.
  그저 반격밖에 할 수 없는 모코우의 패턴을 이미 파악한 카구야는, 그 일격을 간단히 피하고, 반대로 주먹을 박아 넣었다.
  정권도 수도도 아닌. 그저 팔을 휘두를 뿐인 아마추어의 공격.
  그러나 그 일격을 막아낸 모코우의 팔이 이상한 소리와 함께 꺾이며 그대로 튕겨나갔다.

「크아……악, 으, 아앗……!」
「봐봐, 또 그래」

  팔을 부여잡으며 필사적으로 비명을 삼키는 모코우를, 카구야가 내려다본다.

「또 몸을 지켰어. 그건 무의식적인 행동이야?  아니면 몸에 배어든 기술의 탓? 그렇다면 그건 불행일 뿐이야」

  발을 옮기며, 주먹을 치켜들고, 머리를 노려서 온 힘을 다해 내리찍는다.
  한순간이나마 재빨리 정신을 차린 모코우가 당황하며 그 자리에서 구르자, 주먹이 박혀 들어간 땅에서 굉음이 울려 퍼진다.
  만약, 제대로 맞았다면 두개골채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머리가 부서져서, 죽었다면 편해졌을 텐데」

  다시 일어선 모코우를 바라보며 카구야는 말했다.

「한 번 되살아나면, 그 부상과 피로라는 족쇄에서도 풀려날 수 있어. 다시 전력으로 싸울 수 있게 돼」
「……그리고 예전의 빈약한 몸으로 돌아온 나는, 네게 끝없이 농락당하며 죽을 거라고?」
「그럴지도 모르지──그래도」

  땀을 폭포수같이 흘리는, 모코우는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몰아쉬었다.
  눈의 초점까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모든 한계가 가까이 다가왔다.

「너, 「그런」걸 언제까지 계속할 생각이야?」

  카구야의 질문은 모코우가 지금까지 해온 행동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머지않아 힘이 다하면, 같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적당히 포기해」
「……싫어」
「인정하는 게 싫다면, 내가 확실하게 말해 주겠어.
  네가 선대와 함께 보낸 시간은──전혀, 어떤 의미도 없어. 결과에 어떤 변화도 주지 못해.
  오히려, 거기까지 가는데 필요한 과정을 악화시켰을 뿐이야. 네가 지금, 이렇게 괴로워하고 있는 건 선대와 함께 보낸 나날 때문. 그때 손에 넣은 것이, 네 괴로움을 더욱 늘릴 뿐이지」
「틀려!」
「틀리지 않았어, 모코우. 이제 슬슬 세계를 보는 견해를 바꿔. 정해진 수명을 가진 사람과 당당히 마주보는 걸 그만둬.
  지금의 네가 집착하고 있는 걸, 달라붙고 있는 걸, 버려. 지금은 확실히 손안에 있을지 몰라도 「그것」은 언젠가 어긋나서 무너져 사라질 테니까」
「싫어!」
「적당히──눈을 뜨라는, 말이야!」

  카구야가 처음으로 분노를 드러냈다.
  싸움을 시작했을 때부터 아무리 모코우의 공격을 맞아도 여유가 넘쳐흐르던 카구야가, 짜증과 초조함에 얼굴의 표정을 찡그린다.
  정면으로 파고드는 모코우의 주먹이 얼굴에 맞았으나, 약해진 주먹은 카구야를 막지 못했다.

  모코우를 밀어 넘어뜨리고, 양손으로 목을 잡는다.

「천 년 씩이나, 질리지도 않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얼마나 되풀이할 셈이야!」

  엄청난 힘으로 목을 조여진 모코우는 전혀 호흡을 할 수 없었다.
  질식사──아니, 계속 더해져가는 악력은 목의 뼈를 꺾으려는 듯 했다.
  아픔이 사라지고, 몽롱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모코우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움직였다.
  이렇게 됐을 때의 대처법은, 수행 중에 이미 선대에게서 배웠으니까.

  남겨진 힘을 쥐어짜, 카구야의 한쪽 팔을 잡고, 관절이 약한 곳을 단번에 눌러 꺾는다.

「크……읏!  이, 바보가!」

  한쪽 팔을 잃은 카구야는, 초조해하며 다른 팔로 모코우를 들어 올려 힘껏 던졌다.
  몸을 말아 낙하의 충격을 최소한으로 줄인 모코우가 땅에 엎어졌다.

  예상치 못했던 반격에 놀라면서도, 더더욱 솟구쳐 오르는 초조함과 짜증에 몸을 맡긴 카구야는 자신의 목을 쥐어 뜯었다.
  스스로 생명을 끊고, 바로 되살아난 뒤, 부러진 팔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확인하고 다시 쓰러져 있는 모코우를 노려봤다.

  이미 일어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만신창이가 다된 몸.
  그러나 살아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기지 않고 버틴 모코우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그저 고통뿐인 질긴 목숨이다.

「또 발버둥을 친 거구나. 정말로 귀찮아, 이렇게나 집착하다니……」

  카구야가 품은 초조함과 분노의 대상은, 이미 모코우가 아니었다.
  그녀를 이렇게나 바꾸어버린 상대에게 그 벡터를 돌렸으니까.
  지금의 모코우와 인연이 맺어진 인물은 몇 명이 있지만, 특별히 그 중 하나를 강하게 머리와 마음에 새겼다.
  그리고 대체 어떤 인과의 ​인​도​일​까​─​─​카​구​야​의​ 시야에, 그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모코우!」

  둘의 전장에, 늠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소리에 반응한 쓰러진 모코우의 몸이 작게 떨린다. 그러나 악을 써도 일어설 수 없다.
  그 대신 카구야가, 그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케이네를 버팀목으로 이곳으로 달려온 한 무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선대무녀……!」

  카구야는 미움조차 담긴 목소리와 함께, 선대무녀를 노려봤다.







  ──모코우가 위험하니까 도와줬으면 한다.

  테위에게 그런 말을 들었을 때부터 어떻게든 현장에 빨리 가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모코우가 지금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나는 테위에게서 설명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반쯤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예상이 적중했다는 것을, 죽림을 지나와 처음 본 광경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상처 하나 없이 서있는 카구야와, 넝마가 되어 쓰러져있는 모코우.

  어딜 어떻게 봐도 이미 두 명이 싸운 뒤였다.

「모코우!」

  무심코 외치고 만다.
  케이네의 팔을 뿌리쳐 달리려 했으나, 그대로 땅에 넘어진다.
  어리석게도, 그 순간 나는 자신의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아, 아파……땅에 제대로 박았다.
  케이네가 「선대님!」이라며 초조한 심정을 드러내고 걱정해 줬지만……미안, 부끄러우니까 잠깐 이쪽 보지 말아줘.

  코피를 닦고, 고통과 수치심을 견뎌내며 모코우가 있는 방향을 다시 눈에 담는다.
  나의 호소를 들은 모코우는 간신히 몸을 움직여 반응했지만, 일어서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는 걸까?  그렇게나 맞고 쓰러진 건가?

「정신 차려라, 모코우!」

  케이네가 나의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나는 일어서는 것보다 모코우를 부르는 것이 더 급했다.
  사실은, 직접 모코우를 도와 일으켜주고 싶다.
  다리가 어쨌든 간에 기어서라도 모코우에게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이 승부에, 참견을 할 수는 없다.
  모코우는 지금 이때를 위해 우리들과 수행을 해온 것이니까.

「서라……!」

  충분치 못했던 것인가?
  내가 시킨 단련만으론, 카구야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것일까?  ──자책감과 후회가 솟아오른다.
  이 한 달 동안,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전부 가르쳐주었다.
  순수한 전투를 위한 기술 외에도, 카구야가 죽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한 전법이나, 혹시나 하는 상황의 대처법 또한, 내가 가진 최고의 강점인 만화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가다듬은 것이다.

  불사신이라는 것은 결코 무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허점은 반드시 있다. 라기 보다, 배틀 만화에서 그런 계열의 공략법은 상당히 풍부하다.
  승산은 있다. 「인간」은 「불사신」에게 절대로 지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니까 이길 수 있을 터다.

  힘내라, 모코우!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어!

「서라!  서는 거다, 모코우!」

  지면을 두드리며, 나는 계속 소리를 질렀다.
  좀처럼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 나의 그런 모습에, 케이네는 놀랍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확실히 평소의 내 캐릭터는 아니지만,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다.
  지금 내 기분은, 링사이드에 선 세컨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단페이 아저씨랑 같은 심정이다.

  다친 모코우에게는 가혹한 질책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모코우와 함께 괴로운 수행의 나날을 함께한 동료다.
  그 나날이 무엇을 위해 존재한 것인가──그것은 이 승부에 이기기 위해서였다.

  모코우를 분발하게 하기 위해, 나는 저도 모르게 만화의 대사를 입에 담고 있었다.
  괴로울 때, 쓰러졌을 때, 이 대사를 들으면 일어설 수 있다!  그런 내 자신의 경험이 담긴 위대한 선구자들의 응원이다.

  이걸 듣고 일어서다오, 모코우!

「서라 모코우!」

  발버둥 치듯이 모코우의 몸이 움직인다.
  마치 서기 위한 단서를 찾아 헤매는 것 같이, 손가락으로 땅을 긁으며, 발끝을 세워 버티려 한다. 그러나 잘 되지 않는다.
  안타까웠다. 달려가서,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고 싶었다.

  그렇지만 역시, 그럴 수는 없다.
  케이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땅 위를 기며, 이를 악물고 일어서려는 모코우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나와 모코우의 모습을, 의외롭게도 카구야는 방해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다.

「──당신의 말은 신기하네, 선대무녀」

  시야 바깥으로 벗어난 카구야의 작은 중얼거림이 들렸다.

「뭐랄까,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있어. 딱히 말 자체는 특별할 것도 없는, 어려운 표현도 아닌데, 그저 「서라」고 듣는 것만으로도 일어서고 싶어질 정도로.
  형태가 없는 말인데, 정말로 몸에 힘을 줘서 일으켜주는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어. 옆에서 듣고 있을 뿐인 나까지 그렇게 느낄 정도니, 똑바로 듣고 있는 모코우는 더더욱 그렇겠네.
  궁지에 빠진 모코우에겐, 더 바랄 것도 없는 버팀목이 될 거야. 혹시, 당신에겐 언령을 조종하는 능력이라도 있는 걸까……?」

  에……그래?

  갑자기 그런 말을 들어봤자, 나도 잘 모른다. 그저 필사적일 뿐이니까.
  내 말이 특별하다면, 그건 나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이 말 자체에 머물고 있는 힘이 아닐까.
  내가 존경하는 위대한 만화의 선구자들은, 이 말들로 때론 자신을, 때론 남에게 힘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로서 보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전해주었다.
  나는 그 힘을 빌리고 있을 뿐이다.
  내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힘이 모코우의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는 것뿐이다.
  카구야의 말대로 내 호소가 모코우가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되고 있다면, 나는 설령 목소리가 갈라지더라도──.

「모코우가 당신에게 끌리는 이유를 알 수 있겠어」

  모코우에게서 시선을 돌린 카구야는 그 시선을 우리에게 향했다.
  그 눈동자엔, 나를 향한 완연한 적의가 품어져 있었다.

「당신이……당신이 저지른 짓이 얼마나, 얼마나 무책임한 짓인지!  그 무책임함에 구역질이 나!」







  울려 퍼지는 욕설과 카구야의 분노로 찡그려진 얼굴에, 케이네는 기막히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봉래의 힘에 의해 상처 하나 없이 서있는 카구야는, 확실히 경국지색의 미녀로써 부끄러움 없는 우아함을 갖추고 있다.
  실제로 쓰러진 모코우의 모습이 없었다면, 싸움 같은 야만스러운 것과는 상관없는 존재라는 인상을 느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공주가, 이렇게나 명백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선대도 같았는지, 자신을 향해온 적의의 크기에 숨을 멈추고 말았다.
  지금까지 어떤 거대한 적에게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선대가, 허무함조차 느껴지는 아름다운 공주의 분노에 압도되고 있었다.

「내가, ​무​책​임​…​…​하​다​고​?​」​
「그래, 그 말대로야」

  그렇게 되묻는 선대의 목소리엔 당황스러움이 가득 차 있었다.
  케이네는 처음으로 본 선대의 당황스럽다는 모습에, 말할 수 없는 불안함을 느꼈다.

「머지않아 죽어 사라질 인간이, 죽지 않는 저 ​아​이​에​게​─​─​모​코​우​에​게​ 무언가를 남기려는 것 자체가 무책임한 행동이란 걸 당신은 알지 못해」

  깊게 찔려오는 것 같은 목소리로, 카구야가 말했다.

「당신은 모코우에게 많은 것을 남기려고 했지. 힘과 기술을 하사하고 사람으로서의 따스함으로 감싸 안아, 고독했던 저 아이를 자신들의 고리 속에 넣었어──」
「……그게, 뭐가 나쁘다는 말이냐?」

  묵묵히 카구야의 이야기를 듣는 선대를 대신하여, 참지 못한 케이네가 성을 내며 물었다.
  아직도 일어서지 못한 모코우를 가리키며, 카구야가 대답한다.

「그 전부가, 지금도 이렇게 모코우를 몰아넣고 있으니까!
  모코우게 저렇게나 다쳐서 쓰러져 있는 이유가 왠지 알아?  서툴게 몸을 지키지 말고, 치명상을 당했다면 상처가 없는 상태로 되살아날 수 있었어.
  그걸 필사적으로 피하기 위해 발버둥친 결과가, 저거야. 모코우는 수행으로 얻은 힘을──당신들과 보낸 나날의 증거를 잃는 것이 무서워서, 고통을 참으며 지금에 매달려있어」
「웃기지 마라!  애당초 모코우에게 상처를 준 장본인은 너일 텐데!」
「이건 나와 모코우의 승부니까, 당연하잖아?
  지금까지 우리들은 몇 번이나 이런 승부를 계속해왔어. 승패나 생사에 의미가 없는 싸움을.
  그런 봉래인에게는 장난 같은 싸움이, 왜 이번에는 이렇게 괴로움을 느껴야 하는 건데?  모코우가 저렇게, 완전히 지쳐버린 몸과 상처의 고통을 참을 이유가 뭔데!  너희가 쓸데없는 참견을 해서야!」
「……말도 안 된다!」

  카구야의 질책을 케이네는 불합리한 트집이라고 단정지으려 했다.
  그녀가 모코우에게 있어 얼마나 인연이 깊은 상대인지는 모르지만, 이 한 달을 함께 보낸 자신들의 관계를 부정할 자격 따윈 없다.
  모코우와 인연을 맺은 모두가, 그 나날 속에서 서로를 순수하게 위하고 있었다. 동료였다.
  그 나날이 실수였다니, 용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케이네의 뇌리에는, 카구야의 말에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자신의 품속에서 힘없이 울던 모코우의 연약한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손에 쥔 따뜻한 나날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던 그녀.
  카구야는, 모코우가 지금 괴로워하는 것은 선대들과 맺어진 인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때 모코우가 한탄하던 원인은──.

「선대무녀, 당신은 얼마나 살 것 같아?
  인간이니까, 앞으로 50년 정도만 살아도 많이 산 편이네.
  그렇지만 모코우는 영원히 살아. 백년, 천년도 아니고, 끝이 없는 시간을. 인간뿐만이 아니라, 수명을 가진 자들이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묻는 카구야의 목소리엔, 선대와 케이네 둘에게는 대답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딱딱함이 담겨 있었다.
  두 명 뿐만 아니라, 머지않아 죽을 자들이라면 그 누구도 대답을 할 자격이 없다. 믿게 할 설득력이 없다.
  봉래인과 그 이외의 존재를 차별하는 강한 고집이 배어나오는 말이었다.

「당신들이 모코우와 보낸 시간에, 악의가 있었다고는 나도 생각하지 않아. 분명 선의와 호의, 그리고 올바른 마음으로 그런 거겠지.
  하지만 말이야, 그 가치관이 너무 달라. 당신들은 그 마음을 남기고, 편하게 죽어서 떠나. 이별의 슬픔이 있어도, 평등하게 찾아올 죽음이라는 끝이 그 슬픔을 납득시켜주겠지」
「……」
「──그럼, 남겨진 모코우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당신들에게서 들은 말이나 기억만을 의지해서, 영원의 고독을 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건……」
「할 수 없어. 하지만 모코우는 지금까지 보내온 시간 속에서 몇 번이나 그걸 반복했어」

  케이네는, 이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모코우와 같은 봉래인인 카구야와 카구야의 말대로 머지않아 모코우를 남기고 떠날 자신──입장의 차이를 뼈저리게 알 수 있다.
  도움을 바라듯이 옆에 선 선대를 보니,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문 그녀를 본 케이네는 절망에 빠졌다.

「선대……조금 전에도 말했었지, 당신의 말에는 이상한 힘이 있다고」

  카구야는 다시 선대를 향해 말했다.

「당신은 자신의 가치관 속에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했을 거야.
  그렇지만 정말로 모코우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을까?  당신이 생을 마친 다음에, 남겨진 모코우가 어떻게 살 것인가. 당신이 남긴 말이, 얼마나 상대의 마음에 영향을 끼칠지. 얼마나 삶을 속박할지──」
「……선대」
「당신의 말에는 아주 큰 힘이 있어. 그걸로 모코우도 바뀌었을 테고.
  이별과 만남을 되풀이해서, 간신히 자신과 다른 세계와의 차이를 깨닫기 시작한 모코우를, 평범한 인간으로 되돌려 놓은 거야.
  그 결과, 다시 잃는다는 것의 공포를 떠올린 모코우는 괴로워하고 있어. 그 괴로움을, 당사자인 당신은 겨우 수십 년 정도 밖에 없애줄 수 없지」
「선대님, 부탁합니다. 무슨 말이라도 해주세요」
「어때?  당신은, 모코우를 위해 살 수 있어?  봉래의 약을 준비하면, 그걸 마실 수 있어?  모코우에 해준 말의 책임을 질 수 있어?」
「저 여자가, 더 이상 말하지 못 하게 해주세요……」
「방금, 당신은 모코우에게 「서라」고 했었지. 그 뒤엔, 어쩔 생각이었어?  남은 영원의 시간을 혼자서 서서 버티라고?
  ──그게 무책임하다는 거야, 당신의 말은!  올바름만을 내세워, 그 뒤에 대한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아!  자신의 말이, 얼마나 상대를 바꿨을지 알지 못해!」

  카구야는 분노와 혐오감을 담아 외쳤다.
  그 말에 선대는 그저 입술을 깨물고 묵묵히 서있을 뿐이었다.
  똑바로 카구야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노려보는 것도, 일방적인 매도에 불쾌함이나 반감을 가진 표정도 아니었다.
  선대는, 그저 묵묵히 참고 있었다.
  마치 카구야의 말이 맞는 소리라는 듯, 벌을 받는 듯이.

「……선대님, 어째섭니까?」

  케이네도 이빨을 깨물며 참고 있었다.
  그녀야말로, 누구보다도 카구야의 말에 반감을 가지고,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은 충동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러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그런 질책을 받는 장본인인 선대가, 어떤 부정도 반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아무 말도 해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케이네는 매달리며 울부짖었다.
  분함으로 몸이 떨려 눈물이 어리고 있었다.
  선대의 행동을 부정하는 카구야의 말은, 동시에 케이네의 마음까지 재기불능으로 만들고 말았다.
  모코우 만이 아니다. 케이네 또한, 선대의 말과 행동에 구원받아 왔으니까.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꾸중을 들었다──그리고 그 말에 아무 대답도 없는 선대의 모습이, 케이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었다.

「무슨 말이든 해주세요!  선대님──!」

  모코우는 쓰러져,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다.
  카구야는 자신의 적의와 함께 죽일 기세로 선대를 노려보고 있다.
  그리고 선대는 입을 닫은 채, 그 시선을 그저 받아낼 뿐이다.
  피를 토하듯이 외친 케이네의 간절한 바람에 답할 자는, 이곳엔 누구하나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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