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24 「영야반환」
「무슨 말이든 해 주세요! 선대님──!!」
나에게 애원하는 케이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카구야의 질책에, 할 말이 사라지고 말았다.
내 말이 무책임하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왜냐면, 내가 모코우에게 해준 조언, 수련은 모두 남에게서 빌린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존경하는 위대한 선구자들을 따라서 행동했다.
그것이 모코우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지금도 선구자들의 명대사와 행동 이념들이 올바른 것이라 믿고 있다. 그 안에 타인을 바꾸는 힘 또한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믿음대로 그것들은 힘을 발휘하여──그 결과, 모코우를 괴롭히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나는, 나의 올바름을 추구한 나머지, 주변을 둘러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카구야의 말대로, 내 자신의 말이 주변에 주는 영향을 너무 가볍게 봤던 것은 아닐까.
그녀가 느낀 것처럼, 정말로 나의 말에 힘이, 아니 닮아 온 말이나 행동에 특별한 영향력이 있다면──.
──나는, 너무도 함부로 그것을 사용했던 것은 아닐까.
영원의 생명이라니, 나로선 상상도 가지 않는다.
백년이니 천년이니 그런 긴 시간을 말해봤자, 마음 한구석에선 「그 시간에도 끝이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길을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걷는 것은 다르다.
무엇보다, 나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인간이다.
딸을, 레이무를 위해 부모로서 죽을 것을 다짐하여, 후회 없는 신념으로 가지고 만 인간이다.
나는, 모코우와 함께 살아줄 수는 없다.
카구야는 「여기에 봉래의 약이 있으면 마실 수 있어?」라고 물었지만──그건, 할 수 없다.
머지않아 죽을 인간인데, 나는 모코우가 보내야할 뒷날을 크게 바꾸어버리고 말았다.
알지도 못하고. 그게 잘 될 것이라는 생각에…….
남겨진 모코우가, 내가 남긴 말을 새긴채 어떤 마음으로 살지 상상조차 하지 않고서.
그리고 그것은 케이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예전에 일어난 춘설이변에서 그녀가 벌인 사건을, 나는 새삼스럽게 떠올리고 있었다.
카구야의 말대로다…….
「……내게, 입을 놀릴 자격은 없다」
매달리는 것 같은 케이네의 눈을 외면하며, 나는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
「……내게, 입을 놀릴 자격은 없다」
선대가 신음과 함께 흘린 대답은, 케이네에게 있어서 사형선고를 받는 것만 같은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모든 선택지가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다.
몸을 떨며 도망치듯 시선을 옮겨보니, 쓰러진 채 일어서지 않는 모코우가 보였다.
그리고 묵묵히 서있는 카구야.
누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은 채, 그저 이 장소의 상황만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카구야와 모코우의 승부는, 모코우의 패배로 끝났다.
오늘 이때까지 견뎌온 선대의 단련이 무의미한 것이 되고, 선대 일행과 모코우가 마음을 터놓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던 날들이 부정당했다.
케이네는 다시 한 번 선대를 바라봤다.
쓰러진 모코우를 지켜보며, 그러나 몸은 그 자리에 꽁꽁 묶인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카구야의 말과 눈이, 선대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안 된다.
케이네는 힘없이 머리를 수그렸다.
카구야의 비난을 납득한 것도 아니거니와, 그녀의 말이 옳다 생각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분하다. 모코우가 자신과 선대, 그리고 치르노, 테위와 함께 보낸 시간이 쓸모없는 것이니 버리라는 카구야의 생각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크게 외치며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카구야의 지적이 틀렸다고만은 할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있다.
모코우가 다치고, 괴로워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 자신들에게 있다.
그리고 그 현실에 자신은 너무나도 무력하다는 것을 케이네는 느끼고 있었다.
그날, 모코우가 자신의 품속에서 슬픔과 공포를 드러냈을 때, 뭐라 한마디 대답조차 해 줄 수 없었다.
만약, 이곳에 선대가 있었다면 분명──그렇게 생각하며 무력한 자신을 탓하면서도, 일말의 희망으로서 선대를 믿고 있었다.
그 선대가, 그때의 자신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여태까지 보내온 나날이 전부, 여기서 끝나는 건가.
선대조차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자신이 어떻게 바꿀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말은, 요컨대 이거다.
카구야는 올바르고, 같은 입장에 선 모코우에게 있어서도 올바른 것이다──.
「…………틀려」
모두가 침묵을 지키는 정적 속에서, 갑자기 흘러나온 한마디 말이 넓게 울려 퍼졌다.
「뭐가 틀리다는 걸까나? ──카미시라사와 케이네 」
홀로 부정의 뜻을 나타낸 케이네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카구야의 경계 섞인 시선과 예상치 못했다는 선대의 시선을 받으며, 케이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눈동자에는 미혹을 뿌리쳤다는 증거인 확고한 결의의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자격 따윈……필요 없습니다. 선대님, 당신은 모코우에게 더욱 말해줘야 합니다」
케이네는 선대를 올곧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까지 존경스러운 상대로밖엔 대하지 않았던 선대에게 처음으로 하는 훈계였다.
「당신이 모코우와 대화를 나눴을 때, 가르쳤을 때, 어떤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심이었든, 깊은 생각 없는 걱정이었든, 품은 마음에 거짓이 없었다면──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한 번, 고개를 들고 모코우를 불러주세요」
「케이네……」
「자신의 고집을 지키는 게 먼저라는 거네」
그렇게 조롱하는 카구야의 말에, 케이네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마주했다.
「호라이산 카구야, 너는 우리와 비교하면 모코우와 훨씬 가까운 인연의 상대겠지.
우리들과는 달리, 너는 쭉 모코우의 옆에 있을 수 있다. 지켜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그건 남의 말일 뿐이다. 우리들처럼, 모코우의 진심을 대신해줄 수 있을 리가 없을 터」
「저 엉망진창인 모습을 보고, 더 할 말이 있어?」
「그래, 있다.
산다는 것은, 고통이다. 영원의 생명이든 뭐든 간에, 시간이란 평등하게 새겨져 가는 것이지. 마음이 무언가를 느끼는 데엔 백년이나 천년 같은 긴 시간은 필요 없다.
주변에 있는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으로, 찰나의 시간에 느낄 수 있는 것이지. 무언가를 얻어 약간의 따스함을 느낄 수도 있으나, 무언가를 잃고 마음이 싸늘하게 얼어 붙을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내 말대로……」
「남과의 연을 끊은 네가 알 리가 없다!」
케이네의 박력에, 카구야는 숨을 삼켰다.
처음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압도되고 있었다.
「나는 불로불사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인간보다는 긴 세월을 보내겠지.
선대님이 돌아가신 뒤, 수십 년……아니, 수백 년, 머지않아 찾아올 이별을, 나는 이미 충분히 깨달았다」
춘설이변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때 이후로, 아직도 꾸는 선대와의 사별 이후에 겪을 시간을 그린 꿈은, 머지않아 찾아올 현실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알고 말았다.
그것이 슬프고, 불안했으며, 그 무엇보다 두려웠다.
그 점에서 케이네는 모코우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케이네는 옆의 선대를 바라봤다.
평소의 존경심과 경의가 깃든 눈빛이 아니다.
그 눈동자는 마음이 약해진 선대를 혼내듯이 엄격하며,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신과의 만남을 후회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슬픔과 기쁨이 함께하는 것 같은 미소를 짓는다.
덧없기도 하며, 딱딱하기도 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미소였다.
「좋아해, 당신을」
케이네는 말했다.
경어가 아닌, 대등한, 같은 위치에 섰기에 가능한 말.
「당신의 말은 마음을 떨리게 하고 행동은 위대한 결과를 낳아──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에서 전해져오는 당신의 마음이, 나는 기뻐」
──당신은, 남과 마주할 때엔 언제 어느 때든 진심이었다.
케이네는 한 번 눈을 감으며 마지막 망설임을 뿌리치듯이 다시 떴다.
시선은 곧게, 쓰러져있는 모코우에게 향한다.
「네 「진심」을 들려다오 모코우.
우리들은, 어떤 선택이 네게 가장 좋은 결과를 남길지 알 수 없다.
무엇이 올바르고, 잘못됐는지, 그 답은 구할 수 없었다.
그저, 너와 떨어지는 것만은 싫다.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며, 생판 남처럼 대하는 건 싫단 말이다.
왜냐면, 우리들이 너와 대화를 나누고, 같은 시간을 보내며, 함께 했던 것은──모두, 너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입장과 종족은 다를지언정, 우린 동료이며, 친구다」
정적이 감돈다.
케이네의 고백에, 그 누구도 참견하지 못했다.
땅에 얼굴을 파묻은 모코우는 그렇다 쳐도. 카구야는 케이네를 있을 수 없는 무언가를 보는 것 같은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역시 묵묵히 말을 듣고 있던 선대는, 자신을 보는 케이네의 곧은 시선에 제정신을 차렸다.
「……자, 선대님. 언제까지 그런 한심한 얼굴을 하고 계실 겁니까?
정신차리세요. 당신은, 벌써 할 말을 다 한 건가요? 지금의 모코우에게, 해줄 말은 더 이상 없습니까?」
케이네의 훈계는, 선대의 결의를 재촉했다.
「……팔꿈치를 겨드랑이 밑에 딱 붙여서, 약간 안쪽을 노려, 도려내듯이 칠 것」
쓰러진 모코우에게, 수행을 시키듯이 지도가 담긴 말을 외친다.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주먹을 쥘 수 있다면, 서라! 모코우!」
「너희는 아직도 그렇게 자기 좋을 대로만……!」
짜증을 담은 외침을 내지르려 하던 카구야는, 시야 한구석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눈치챘다.
이미 발버둥 칠 기력도 없는 듯, 쓰러진 채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모코우가, 천천히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카구야의 도발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기에, 이미 기절했던 것이라고 생각했지만──지금 확실히 눈이 뜨였는지, 아니면 지금까지 오간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어쨌든 모코우는 다시 일어선 것이다.
그것은 장렬한 결의와 각오가 필요한 행동일 것이다.
사라질리 없는 고통과 피로가 온몸을 헤집었으나, 이곳에서 그것을 떨쳐낼 수는 없다.
일어서봤자, 눈앞에 있는 것은 승패는 물론 끝조차 없는 싸움이 기다릴 뿐이다.
「……어째서」
그러나 모코우는 일어섰다.
카구야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일을 위해서……」
「……뭐?」
「내일을 위해서, 제일 먼저 배운 거였지…….
주먹을 쥐는 법, 때리는 법……제일 먼저 배웠던 거였어. 공격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아니면 적의 기세를 멈추기 위한, 얕게 치는 법……」
만신창이인 몸으로 일어선 모코우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머리와 마음에 새긴 수행의 광경을 되새기듯이 주먹을 쥐었다.
양팔을 들어 올려 겨드랑이를 붙인다.
한쪽 팔의 뼈가 카구야에게 부러졌지만, 관절을 움직이는 것에 지장은 없다. 고통은 무시했다.
「기억하고 있어……」
시선은 카구야를 방심 없이 노려본 채, 모코우는 선대에게 말했다.
「네가 가르쳐 준 건, 전부 기억하고 있어」
완전히 지쳐버린 몸을 조금이라도 회복시키기 위해, 호흡을 정돈한다.
할 말을 잃은 카구야의 일거수일투족을, 다시 한 번 냉정하게 관찰한다.
남은 체력과 부상 속에서, 어떤 전투가 가능한지 머릿속에서 정리한다.
──방심하지 마라.
──빈틈을 보이지 마라.
──간격을 정확히 재라.
모두, 선대에게 배운 것이었다.
「선대와, 케이네, 치르노랑 테위……모두와 함께 보낸 한 달을, 나는 전부 기억하고 있어!」
모코우는 크게 외쳤다.
그것은 눈앞의 카구야에게 향하는 것이기도 했지만, 주변의 모두에게 힘차게 내지르는 외침이었다.
그 눈동자에서 사라져가던 투지가 불길이 되어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게, 네 대답이야?」
카구야는 코로 비웃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미소를 지으려고 했던 입가는 비틀어지고, 혼돈에 빠진 속내를 감추지 못해 드러난 격정 탓에 심각하게 찡그려진 표정이 되고 말았다.
「천년이나 되풀이해서, 결국 「거기」로 돌아간 거야!?」
「……카구야, 알고 있어? 「내일은, 지금」──이라던데」
「시끄러워, 닥치라고!」
「이건 알아? 「노력하는 자가 모두 보답 받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모두 노력하고 있었다」──래. 좋은 말이지」
「이제 그만 눈을 떠, 너는 허울 좋은 말과 분위기에 속고 있을 뿐이야!」
「그리고 아직 많이 남았어……여러 가지를, 배웠다고」
「닥치라고, 했잖아!」
무언가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카구야가 모코우를 향해 뛰어들었다.
부상도 체력도 완쾌한 상태로 모코우에게 덤벼드는 카구야는, 냉정함을 완전히 잃고 있었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 불러온 방심과 모순되듯이 속으로 느끼는 짜증과 초조함이, 무모하게도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어떤 기교도 술책도 없이, 정면으로 달려드는 카구야를 앞에 둔 모코우와 그것을 지켜보는 선대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미리 짜놓은 것처럼 같은 말이 흘러나온다.
「──자신의 마음을 예리하게 갈아라」
싸움 속에서, 선대가 속삭이는 중얼거림이, 어찌된 영문인지 모코우의 귀에 똑똑히 들려왔다.
「강은 뗏목을 부술 수 없다」
승부가 한창인 지금, 이 순간까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선대의 가르침이, 지금은 자연스럽게 입에서 흘러 나온다.
「 「물방울만이 뗏목에 구멍을 뚫는다」」
그리고 두 명의 말이 완벽하게 일치한 순간, 모코우의 안에서 무언가가 번쩍였다.
선대가 「천심」이라는 마음가짐을 가르칠 때 말해준 이 구절의 의미를, 오늘날에 이를 때까지 모코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제대로 이치를 깨우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선대와 함께 말을 끝마친 순간, 모코우의 뇌리에 갑작스레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것은 종이였다.
별 것 없는 새하얀 종이가 나타나더니, 그것이 끝부터 말리더니, 가늘어져 가는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어째서 종이를 떠올리고, 그것이 가늘어져가는 모습을 생각했는지는 모코우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선대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이래, 여태까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는데, 머리 한구석에서 갑자기 이런 것이 떠올랐다는 현상이 신기했다.
마치 바깥에서 자신에게로 흘러들어온 것 같은, 갑작스런 깨우침이었다.
그러나 모코우는 자신의 생각에 어떤 의문도 품지 않았다.
그저 그것을 충실히 받아들였다.
가늘어져가는 종이.
그것을 흉내 내는 듯이, 자신의 의식을 더욱 가늘게──.
「물방울만이, 뗏목에……」
모코우는 주먹을 내뻗었다.
팔꿈치를 겨드랑이 밑에 딱 붙여서, 약간 안쪽을 노려, 도려내듯이 박는다.
부상당하여, 피폐해진 그 일격은, 힘이 가득 찼을 때의 일격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초췌하고 쇠약했으나──카구야의 얼굴에 정확하게 꽂혀 들어가, 뇌를 꿰뚫는 것 같은 충격을 전해주었다.
「……!? ……크읏!」
예상외의 반격을 당해 신음을 흘리며 나가떨어진 카구야가 땅바닥을 구른다.
한편 모코우는, 기사회생의 일격을 먹였음에도 한마디의 감탄조차 없이, 그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구멍을, 뚫는다」
◆
──위험한데.
그런 소리 없는 신음이 흘러나올 것 같은 속내와는 반대로, 마리사의 얼굴은 억누르지 못한 기쁨을 드러내고 있었다.
레이무와의 탄막놀이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엄청난 집중 상태를 유지해온 탓에, 체력도 정신력도 피로했지만, 그것은 이미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다.
──정말로 새로운 힘인지 뭔지에 눈을 떠버린 건가, 나?
역경을 넘어 잡아낸 상쾌함, 마리사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눈앞까지 닥쳐왔던 탄막이 마리사의 옆을 통과해가듯, 지나쳐 사라진다.
레이무의 스펠카드 하나를, 완벽하게 공략한 것이다.
「스펠카드 브레이크, 다. 레이무」
「……그러네. 한 방 먹었어」
피로에 절어있음이 눈에 뻔히 보였으나, 얼굴이 결투가 시작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 살아있는 마리사를 레이무는 가만히 지켜봤다.
그 시선에, 마리사는 커다란 만족감을 느꼈다.
──그걸로 좋아, 나를 보라구.
──이제, 나를 무시할 수 없게 만들어주겠어.
이마에서부터 시작된 땀이 뺨을 타고 흐른다.
하쿠레이 무녀의 스펠카드라는 고난이도의 탄막을 벗어나 순간적인 긴장에 빠져있던 근육이 흠칫흠칫 떨렸다.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레이무에 비해, 마리사가 크나큰 소모를 겪고 있다는 것은 그녀 자신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기분은 최고였다. 절호조다.
「보인다고, 레이무. 눈이 뜨였다는 느낌이야」
지금, 마리사의 시야는 완전하게 열려 있었다.
마도서의 저주를 넘어 본디 가진 힘을 끌어내, 말 그대로 인간을 초월한 특성을 손에 넣은 것이다.
그것은 앨리스가 과제로 내주었단 「마법사만의 시점」이었다.
「탄막놀이를 할 때, 넌 항상 이런 세계를 보고 있었던 거냐?」
사방에서 덮쳐오는 탄막은, 빛의 비와도 같다.
주관적으로 보기에 그것들은 너무나도 압도적이어서, 회피를 위한 올바른 루트는커녕, 때때로 자신이 있는 곳마저 잊어버릴 정도의 공간이다.
그 속에서, 마리사는 이제까지 필사적으로 발버둥 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마법사로서 한 단계 위의 힘을 각성한 마리사는, 새로운 시야를 손에 넣었다.
마력이나 주변의 영적인 힘을 막연히 피부로 느끼는 것만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완벽하게 볼 수 있다.
앞을 보면서, 뒤에서 일어나는 마력의 움직임마저 「보인다」라는 모순 같은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물론 착각이 아니다.
마리사의 시야는 확대되어,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득히 위쪽에서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 같은, 공간파악 능력에 눈을 뜬 것이었다.
「한 발짝, 너랑 가까워진 것 같은데……레이무」
마리사는 확고한 반응을 느끼며 대담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속에 여유는 없다. 당연히 방심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상황이 호전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레이무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강적이다.
그녀의 최초의 스펠카드를 그렇게 잘 피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마리사의 투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을 똑바로 마주보는 레이무의 시선이──자신의 존재를 적으로서 인정한다는 눈빛이, 너무나도 기뻤다.
「승부는 지금부터라고? 레이무!」
「……그래. 아직 멀었어」
레이무는 그렇게 답하며 새로운 스펠카드를 집어 들었다.
둘의 탄막놀이는 결판나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불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유카리는 그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변해결의 시간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상황은 처음 예정했던 것보다 빠르게 진행되지 않았다.
현재, 이곳이 아닌 어딘가에서 유유코와 요우무 일행만이 제대로 움직이고 있다.
사쿠야와 레이센, 파츄리와 앨리스의 싸움은 각각 다른 장소에서 계속되고 있으며 중요한 하쿠레이의 무녀는 보는 대로.
마리사의 분투는, 유카리에게 있어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훌륭해. 인간의 장점이라는 걸까……」
좌절감을 딛고, 한결 같이 승리를 향해 날아오르는 소녀의 모습을, 유카리는 순수한 마음으로 칭찬했다.
처음 키리사메 마리사라는 인간을 봤을 때부터, 그녀의 평가는 항상 상승중이다.
모든 계기는 선대의 추천 덕분이었지만, 과연, 그녀에게 인정받은 존재답다.
이 야쿠모 유카리도 인정한다.
그러나──.
「아, 안타깝게도. 너는 너무「평범한 인간」이야」
유카리는 연민과 실망이 뒤섞인 것 같은 목소리를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무리야, 키리사메 마리사」
같은 인간이지만, 하쿠레이 레이무와 키리사메 마리사의 결정적인 차이, 유카리는 그것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인간이 하늘을 난다」라는 현상의 비현실성을, 마리사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요괴나 요정은 하늘을 난다──.
그들은 인외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의문을 품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원래는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이 하늘을 나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반항하는 비정상이다.
순수하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인간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대지와는 판이한 법칙 속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인간에게는 없으니까.
예를 들자면, 같은 인간이라 볼 수 있는 이자요이 사쿠야는, 종족은 인간이지만, 그 몸에 품은 이능은 공간과도 관련된 것이다. 그녀의 감각의 일부는 이미 인외의 영역이나 다름없다.
마리사는 하늘을 날 때, 반드시 빗자루를 타고 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정적이게 날 수 없다는 이유때문이지만, 왜 안정적이게 날 수 없는지를 본인이 깊게 생각한 적은 없다.
유카리가 보기에, 그 이유는 간단했다.
빗자루라는 탑승물을 기준으로 잡지 않으면, 평범한 인간의 감성 밖에 가지지 못한 마리사는 하늘을 날 수 없는 것이다. 지상과의 괴리감 때문에, 반드시 어느 한 부분의 인식이 혼란에 빠진다.
그것은 그 선대무녀조차 예외가 아니다. 규격을 넘어선 힘을 가진 그녀지만, 그녀 또한 인간.
고로, 진정한 의미로 「하늘을 날 수 있는 순수한 인간」이라는 존재는 유카리가 아는 한, 단 한 명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이 「하늘을 나는 정도의 능력」을 가진 하쿠레이 레이무다.
인간이 하늘을 난다──그 진정한 의미와 그것이 가진 특이성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자는 적다.
유카리는 다시 한 번 확신했다.
마리사는, 레이무에게 이길 수 없다.
「너로선 무리야……」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결투를, 유카리는 눈을 감는 것으로 외면했다.
저 둘의 탄막놀이가 아무리 막상막하로 보여도, 바뀔 리 없는 결과가 유카리에겐 보이고 있었다.
영원한 밤의 이변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유카리에게 초조함은 존재하지 않았다.
눈앞의 광경에서 느껴지는 의외성은 정말로 작디작은 변수이며, 아무 문제없이 결투를 끝낸 레이무와 함께 이변의 원흉을 찾을 예정을 이미 머릿속에서 짜고 있었다.
유카리는 그때가 오기를, 그저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예상을 진정으로 틀리게 만드는 변수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었다.
마리사의 예상치 못한 각성은, 확실히 주변의 의표를 찌르고, 레이무와 유카리의 의식을 그녀에게 향하도록 만들었다.
고로, 모두가 깨닫지 못했다.
이변의 밤. 이 미혹의 죽림의 한 구석에서, 아무 상관없는 자들이 만들어 내는 상황이, 이변 자체에 크게 관련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
──이, 있는 그대로 지금 일어난 일을 말하겠어.
카구야의 지적이 너무 지당하여, 가만히 도움도 안 되는 옷걸이 신세가 되어 있던 나는, 케이네의 「좋아해」라는 한마디와 함께, 아마 만난 뒤 처음으로 설교를 들었다.
그것을 계기로 다시 힘을 내서, 어찌되든 괜찮으니 모코우에 내 말을 전해주기 위해 무모하게 외치고 있자니, 어느새 모코우가 역전해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도 모르겠지만……이 아니라, 그쪽 패러디는 안 해도 괜찮잖아! 혼란에 빠졌어, 나.
나는 반쯤 믿기지 않는다는 기분으로, 눈앞의 광경을 보고 있었다.
모코우가 져도 좋다니, 물론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승부는 거의 결판난 것이나 다름 없었을 것이다.
무한히 재생하는 카구야에 비해, 한 번도 부활할 수 없는 입장의 모코우는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을 터다.
그것이, 지금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카구야와 모코우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말도 안 돼……대체 어떻게!?」
부러진 이를 깨물고, 흐르는 코피를 닦지 조차 않은 카구야가 덤벼든다.
그에 맞써 싸우는 모코우는, 언뜻 보면 아무 변화도 없는 듯 보였다.
만신창이가 다 된 몸으로, 이미 다한 체력을 쥐어짜내며, 휘청휘청 흔들릴 뿐이다.
그러나 싸움의 기세는 이미 넘어가 있었다.
「너……!」
매우 거칠게 팔을 휘두르는 카구야의 공격을, 모코우는 피했다.
느릿느릿한 움직임이다. 아니, 더 이상 빠르게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마치 발을 삐끗하여 넘어질 것만 같은 움직임으로, 그러나 결과적으로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공격을 스치듯이 피하고 있다.
그것을 「운이 좋다」 라고는, 나도, 옆에서 보고 있는 케이네도, 무엇보다 싸우고 있는 카구야조차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벌써 몇 번이나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모코우는 카구야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간파해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고 있다.
「어째서……뭐가 바뀌었다는 건데!?」
「마음을 예리하게──」
「계속 중얼중얼……그런 영문도 모를 소리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런 물음에 답하듯이, 카구야의 무모한 맹공의 틈새를 모코우의 반격이 파고 든다.
내가 가르친 정권지르기……!
그때 가르쳤던 대로, 우직하게 경로를 덧그리는 곧은 주먹이, 급소에 직격한다.
나의 눈으로 봐도, 그 정권지르기는 속도나 위력이 약해져 있었다. 피로나 부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뻔히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발휘된 파괴력은 절대적.
속력의 늦음을 최단 거리의 궤도로 파고드는 것으로 상쇄하고, 약해진 위력을 이상적인 근육의 탄성으로 보충하며, 반대로 상대의 긴장이 풀린 근육을 정확하게 노려 꿰뚫는다.
「백식관음」을 습득한 내가 봐도,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한 정권이었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데미지를 받은 카구야가 기절했다.
더 이상의 공격은 없다.
아니, 모코우에게 그럴 체력이 더 이상 남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반 시체나 다름없는 모코우가, 지금 크나큰 위협으로서 되살아났다.
불리함을 깨달은 듯이, 뒤로 물러선 카구야는 모코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아니, 정말로 어떻게 된 거지? 모코우 정말로 각성했습니다만.
도저히 믿음이 가진 않지만, 혹시 이건 내 말이 계기가 된 걸까?
「믿을 수 없어, 모코우가 완전히 되살아나다니……」
옆의 케이네의 말에 말없이 동의한다.
「선대님, 역시 당신은 훌륭합니다」
아니 아니, 진짜로!? 설마 아니겠지!
확실히, 방금 케이네의 질책에 나는 눈이 뜨였다.
자신의 입장이나 삶에 대한 고뇌가 어찌됐든, 지금 확실히 궁지에 몰린 모코우를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주저한다면, 나는 모코우의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전, 명계에서 딸인 레이무에게 그랬던 것처럼, 제자이며 동료인 모코우를 진심으로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움직였을 뿐이다.
마음의 힘이라는 것이 말에 얼마나 담길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되는대로 마음을 담아 외친 것이다.
위대한 선구자들의 명대사를 사용하는 것에 망설임은 없었다.
이런 말은, 확실한 힘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온 것이다. 그 안에 담겨진 진리가, 조금이라도 모코우의 힘이 되어 준다면──그런 바람을 담아, 전했다.
그랬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아니, 최고의 결과긴 한데……진짜 카구야가 말하는 대로, 내 능력은 「언령을 다루는 정도의 능력」인가?
그 말에 대한 진위는 둘 째 치고, 내 말이 모코우의 힘이 됐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은 없다.
고통에 허덕이는 모코우를, 더욱 싸움으로 몰아내는 것을,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이제 모코우가 아파하지 않아줬으면 했지만, 그 마음은 깊게 묻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내 몸을 빌려주더라도……!
그렇지만 지금은──!
「이겨라, 모코우. 너는 이길 수 있다!」
「알겠다고……사부」
부어오른 얼굴의 모코우가 히죽하고 대담한 미소를 내게 보였다.
초조함에 못이긴 카구야가 나와 모코우에게 짜증을 부딪치며 다시 달려든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다.
그리고 모코우 또한 지지 않는다.
늘어난 힘에 비례해 동작의 어설픔도 늘어난 카구야의 공격을 냉정하게 흘려낸 모코우는 적확하게 반격을 내뻗었다.
정말로 굉장한걸. 지금의 모코우에겐 나라도 공격을 맞힐 수 있을 거란 자신이 들지 않는다.
근거는 없지만, 왠지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아까, 무심코 「천심」의 마음가짐을 중얼거렸는데, 정말로 명경지수라든가 그런 경지에 다다른 건가?
어쨌든, 모코우는 단번에 강해졌다.
이미 승부는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압도적이었다.
남은 건, 불사신인 카구야를 상대로 어떻게 결판을 낼지가──!?
「왜 그러십니까, 선대님?」
갑작스레 머리 위를 올려다본 나를 따라 케이네도 쫓듯이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그 위에 있던 내가 파악한 기척의 장본인, 최악의 존재를 찾아냈다.
좌앙! 좌앙! 하며 내 머릿속에서 경종이 울린다.
예상하고 있던 상황 중에서, 가장 귀찮은 참견쟁이가 납셨다.
「야고코로 에이린──!」
「야고코로……저자가, 호라이산 카구야의 시종입니까!?」
무심코 「게엑! 에─링!」하고 외칠 뻔 했다.
내 시야 안에, 먼 하늘 위에서 화살을 시위에 올린 채 모코우를 겨누는 에이린의 모습이 들어왔다.
◆
──눈치 챘나.
에이린은 자신에게 시선이 몰렸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선대 일행에게 들켰다는 것을 이해했다.
움직이기 직전까지 기척을 죽이고 상황 파악에 힘썼지만, 막상 행동을 시작할 때 일어난 얼마 안 되는 기척의 흐트러짐을 용케도 찾아낸 것 같았다.
모코우를 기습하자는 책략은, 이것으로 파탄 났다.
역시, 저 하쿠레이의 선대무녀는 방심을 해선 안 되는 상대였다──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속으로는 불평 하나 없었다.
이미 화살은 매겨져 있다. 이 뒤엔 쏘아낼 뿐이다.
에이린은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주저도 없이, 모코우를 노렸다.
카구야가 모코우와의 승부를 집착하고 있다는 것은 안다. 분명, 이 일은 그녀에게 매우 뜻하지 않은 사건이 될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에이린은 카구야의 안전을 우선시했다.
봉래인에게 있어서, 육체의 손상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정신의 상처는 다르다.
두 명의 승부와 대화를 지켜보던 에이린은, 지금의 모코우가 카구야에게 있어서 큰 부담이며 위협이라 판단했다.
──모코우의 삶에 대한 생각은, 카구야와는 결정적인 부분에서 다르다.
──그 말에 혼란에 휩쓸리지 않도록, 사랑스러운 공주여, 부디 마음을 편히 가지시기를.
에이린은 그렇게 염원하며 시위를 당겼다.
「에이린──!」
목표에 집중하고 있던 에이린은, 본능적으로 느껴진 위협에, 시선을 선대 일행을 향해 돌렸다.
「손을, 대지마라!」
선대의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녀를 진찰하여 알고 있던 에이린은 약간이지만 방심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하늘을 날기는커녕 서는 것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선대가 고속으로 회전하는 음양옥을 던지는 것을 보며, 경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자신의 실수를 눈치 챘다.
순식간에 표적을 바꾸어 날아드는 음양옥을 향해 화살을 발사했다.
가냘픈 팔에서 쏘아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가지 않는, 갑옷조차 관통하는 강궁의 일격은 구슬의 회전에 말려 들어가 간단하게 분쇄되었다. 그럼에도 구슬의 속도와 위력은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레이센에게 보고는 받았었지만, 그 보고에서 도출한 에이린의 예상을 선대는 웃돌고 있었다.
제대로 피할 수 없었던 에이린은 어쩔 수 없이 음양옥에게 몸을 내주고 말았다.
어깨에 박혀 들어간 음양옥의 회전이 충격과 함께 퍼져, 전신을 강타한다.
머리부터 발끝에 이르기까지 힘을 빼앗긴 손에서 미끄러진 활이 땅으로 떨어진다.
공중에 더 이상 떠있지 못한 에이린의 몸이 낙하를 시작한다.
그런 사태 속에서, 에이린은 한 치의 동요 없이 냉정하게 모든 것을 관찰했다.
──이해 불가능한 충격이 전파. 살상력은 전무. 그러나 전신 근육의 마비. 각부, 반응 없음. 행동불능.
──심장 정지. 부활, 개시.
순식간에 육체의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자, 에이린은 몸에서 유일하게 움직이고 있는 내장에 의식을 집중했다.
손가락 하나 끄떡하지 않고, 오로지 생각으로만 자신의 심장의 움직임을 멈춘다.
더욱이 근육을 조작하여, 그대로 심장을 안쪽으로 압박해 스스로 붕괴토록 한다.
심장의 고동이나 각 내장의 활동 등등, 본래는 인간의 인지 바깥에 존재하는 육체의 움직임이다.
보통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육체의 정밀한 간섭, 그러나 에이린은 그것을 가능케 하고 있었다.
무서운 속도로 판단을 내리자마자 행동으로 옮긴 에이린은, 낙하를 시작한 순간 목숨이 끊어졌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 부활이 시작된다.
낙하하며 생명을 잃은 육체가 빛을 내뿜으며, 땅에 부딪치기 직전에 소멸했다.
옛 육체에서 풀려난 영혼은, 맨 처음 나타났던 위치로 되돌아가 새로운 육체와 함께 부활했다.
선대와 케이네가 눈을 치켜뜨며 경악하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화면을 되감듯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에이린의 모습이 공중에 생겨나 있었다.
「이 무슨……저것이, 봉래인의 힘이라는 건가!」
「돌아와라, 음양옥!」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
이쪽의 공격에, 방어도 회피도 아닌, 말 그대로 생사를 초월한 반응과 대처를 보인 에이린의 모습에 두 명은 전율감을 느꼈다.
아직도 회전의 힘을 잃지 않은 음양옥에게 명령을 내린 선대였으나, 그것이 움직이는 것보다 빨리, 에이린이 움직였다.
한 손으로 음양옥을 잡아챈다.
손바닥 위로 순식간에 전개한 결계로 음양옥을 감싸고, 그 힘을 죽이기 위해 압축한다.
불완전한 황금의 회전으로는, 그 압력에 거스를 수 없었다.
에이린의 손 안에서 구슬의 회전이 멈춘다.
「흥미로운 힘과 도구네」
에이린은 한줌의 흥미를 손에 쥐여진 물건에 품었지만,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팔에 힘을 주었다.
단순히 악력만이 아니다. 그 힘에 맞춰 결계의 출력도 함께 상승하더니, 순식간에 음양옥을 분쇄한 것이다.
뿔뿔이 흩어진 파편을 멀리 내던지며 다시 시선을 모코우에게 향한다.
그 한순간의 공방은, 다행스럽게도 승부에 집중하고 있는 카구야와 모코우는 눈치 채이지 않았다.
활과 화살은 잃었지만, 공격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카구야는 화를 내겠지만, 직접 승부에 난입해도 괜찮겠지.
대처를 끝낸 선대를 머리 바깥으로 내몬 에이린은 냉정하게 머리를 굴렸다.
그 생각이, 다시 멈춰진다.
「이쪽이다──」
다시 한 번 선대의 움직임이 느껴져 시선을 돌린 에이린은, 그 순간 처음으로 동요를 드러냈다.
「에이린!!」
「무슨……!?」
얼음장처럼 냉정을 유지하던 마음이, 경악성과 함께 흔들린다.
힘찬 기합을 외치며, 기묘한 자세를 잡은 선대를 중심으로 엄청난 힘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양손의 손바닥이 옆구리에서 마주 보이도록 모으고, 그 사이에서 영력도 마력도 아닌, 불가사의한 힘이 모여가고 있다.
그 힘은 눈부실 정도로 밝디 밝은 빛의 구체가 되어서도, 선대의 손에서 더더욱 크기를 불려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술이다. 그러나 에이린에게 있어서 가장 불가사의 했던 것은, 그 한점에 모여가는 「힘」의 크기였다.
양도 질도, 인간이 다룰 수 있는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거기다 더욱 늘어나고 있으며, 그 증가율은 이상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에이린은 선대에게 그 어느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경악과 전율감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선대의 두 손 안에서 맥박이 뛰듯이 깜박이는 빛의 구체는, 이미 태풍과 같이 날뛰며 주변에까지 그 힘을 풀어내고 있었다.
밤의 어둠을 손에서 넘쳐 나오는 힘이 찢어 가르고, 죽림을 너무나도 거센 바람이 거칠게 휘몰아친다.
그 힘을 만들어낸 자기 자신마저 튕겨나갈 것 같은 폭주하는 힘을, 양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선대는 케이네에게 기대어 억제하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힘의 덩어리가, 지금 확실히 뿜어져 나오려 하고 있다.
선대와 눈을 마주한 에이린은, 불사의 몸임에도 느낄 수 있었다──움직일 수조차 없는 공포라는 것을.
「──괴물」
「파아아아아아앗─────!!!」
두 손을 전방을 향해 내뻗은 선대는 극한까지 뭉쳐졌던 힘을 섬광과 함께 내뿜었다.
◇
예를 들어, 손에 쥔 다이너마이트에 실수로 불이 붙어버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뭐, 우선 놀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뒤엔 패닉에 빠지겠지.
지금, 확실히 그런 심정이었다.
……어, 어쩌지?
모습을 드러낸 에이린이 아니나 다를까 카구야를 원호하기 위해 활을 겨누는 것을 본 나는 당황하며 그녀를 막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라고 말은 해도, 하늘도 날지 못 하는데다, 지금은 제대로 설 수조차 없는 내가 가진 원거리 공격 수단 따윈 한정되어 있다.
너로 정했다! 라고 속으로 외치며 소매에서 꺼낸 음양옥을 황금의 회전으로 강화한 뒤 내던졌다.
회전의 종류는 확산형.
에이린 또한 카구야와 같은 불사신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레이센에게도 사용했던 무력화 쪽이 더 알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뭐, 그것 말고도 귀중한 동방 캐릭터이며, 무엇보다 한 번 진찰 받아 신세를 진 에이린에게 상처를 입힐 생각도 없다.
부디 얌전히 있어주라, 라고 기도하며 음양옥을 내던진다.
눈 깜짝할 새 쏘아진 화살을 튕겨내고, 내가 노린 대로 그 일격은 에이린에게 맞아 들어갔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전신의 자유를 빼앗겼음이 분명한 에이린이, 낙하하던 도중 빛을 뿜어내더니, 그것이 사라지자 당연하단 듯이 처음 그 장소에서 날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여 깜짝 놀라는 나와 케이네.
내가 보기에 아마 부활한 것이라 생각되지만……어떻게!? 설마 그 비살상 공격으로 죽었을 리는 없다.
그럼, 자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을 텐데?
알아서 심장이라도 멈췄다는 거냐! 무슨 스탠드사냐고!!
지금까지 만난 어떤 강적과도 다른, 불가사의한 힘에 나는 몸이 떨렸다.
「이 무슨……저것이, 봉래인의 힘이라는 건가!」
힘──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 봉래인에게 있어 「생명」이란 단순한 「능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까.
무서워─. 엄청 무서워─.
단순한 힘이 어쩌구를 떠나, 나는 인간으로서 에이린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요괴와는 다른, 인간보다 명확히 위에 서있는 무언가를 그녀에게서 느꼈다. 같은 봉래인인데도 불구하고, 모코우하고는 완전히 다른 존재 같다.
어쨌든, 비살상 같은 무른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당황하며 음양옥에게 돌아오라 명령을 내렸으나, 내 손으로 돌아오는 것보다 빠르게, 에이린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작은 상자 모양의 결계에 휩싸인 음양옥은, 그대로 쥐어진 에이린의 손안에서 부서져버렸다.
──으……음양오옥───!?
순직한 파트너를 보며, 폭발하는 크리링을 본 오공처럼 속으로 비명을 내지른 나.
모처럼, 린노스케가 만들어 준 건데……라기보다, 두 번 밖에 못 썼는데─!
공격 수단을 잃은 나에게서 시선을 돌린 에이린은 다시 모코우를 노리는 듯 했다.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그러나 음양옥을 잃은 지금, 공중의 에이린에게 닿을 정도의 사정거리를 가진 기술은 상당히 한정되어 있다.
충격파를 날리는 타입인 백식관음은, 원래대로라면 저기까지 닿는다. 하지만 다리를 다친 이래 몇몇 기술이 영향을 받아 생각대로 쓸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격투기에서 의외로 중요한 체중 이동 같은 걸 할 수 없어서일까, 아니면 온몸을 둘러싼 힘의 흐름이 흐트러졌기 때문일까──어쨌든, 백식관음의 위력과 사정거리는 현저히 낮아져있다. 도저히 에이린이 있는 곳까지 닿지 않는다.
다른 수단을 찾자면, 명계에서 익힌 영환 샷건도 있지만, 이 녀석은 확산되는 공격이라는 것을 생각하니 원거리 공격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그렇다면 남은 수단은 단 하나──!
「케이네, 손을 빌려다오」
「아, 예. 하지만 대체 어떻게……?」
케이네를 지팡이 삼아 일어선 나는, 양손을 옆구리에 대고 힘을 모았다.
오랜만에 해보는걸, 하쿠레이파!
사실 이 기술을 사용할 때마다 속으로 「에─네─르─기─」라며 중얼거리는 건 비밀이다. 기분탓일까, 그렇게 하는 편이 위력이 올라간다.
물론, 이걸 직격시켜서 에이린을 쓰러뜨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에이린이 강적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다.
애매한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이 녀석이 막히거나, 빗나간다면, 다음 찬스는 더 이상 오지 않을 것이다.
거짓말이든 진짜든 「원작 최강 캐릭터」라는 평가는 겉치레가 아니었다.
단순한 하쿠레이파로는 약간 부족하다.
나는 더욱 위력을 높이기 위해 쓰는 입장에서는 제일 즐거운 시간이지만 객관적으로 보자면 약점에 지나지 않는 이 모으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모은 힘에 황금의 회전을 더했다.
회전의 대상이 물체는 아니지만, 이런 에너지에도 황금의 회전이 가능하다는 것은 처음 사용했던 유우기와의 싸움에서 실증이 끝난 상태다.
불완전해도 좋으니, 하쿠레이파의 에너지를 증폭한다!
──그랬더니 왠지 예상 이상의 파워업이 일어나버리고 말았습니다.
「큭……!」
「서, 선대님! 괜찮으십니까!?」
미안, 케이네──전혀, 괜찮지 않아!
공기를 너무 불어넣은 풍선처럼, 두 손 안에서 부풀은 힘의 덩어리를 나는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었다.
확실히 말해서, 폭주 직전이다.
아니아니, 확실히 증폭시키려고 하긴 했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위험해, 이거 불완전한 회전이 아니야.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완벽한 황금 장방형의 궤적으로 회전이 성공해 버렸다고.
딱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황금 장방형을 모코우의 몸에서 찾아내 회전시키니, 그게 딱 들어맞은 것 같다.
이 회전에 성공한 적은, 지금까지 단 두 번.
처음에는 불리한 상태에서 오니의 육체를 꿰뚫었으며, 두 번째에는 거대한 요괴벚꽃의 힘을 억눌러 봉인하였다.
모두, 내가 제상태가 아니었음에도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했었다.
그리고 세 번째인 지금은 그렇지 않아도 특출나게 커다란 에너지를 방출하는 기술에, 한층 더 증폭을 위하여 사용한 것이다.
그 결과로 얻어진 효과는 이루 짐작할 수 없을 정도, 였다.
손안에 태풍이라도 담긴 것처럼─아니 그보다 더욱 강해진 힘이 날뛰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증폭은 멈추지 않는다.
풍선의 비유는 정답이다. 이대로라면 확실하게 터진다!
억누르는 것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당장에라도 이 녀석을 풀어주기로 결정했다.
목적은 에이린──이 아냐! 이런 무서운 걸 맞출 수 있겠냐, 아무리 그래도 너무하다고!
다른 표적은……있다, 저걸로 좋아!
새로운 목표물을 설정한 나는, 곧바로 나를 덮쳐올 반동에 대비해 옆에 서있던 케이네를 불렀다.
「케이네, 나를 잡고 있어다오!」
「──크, 아……옛! 제가 당신을 잡고 있겠습니다! 맡겨주세요!」
나의 부탁을 받은 케이네가 껴안듯이 팔에 힘을 넣었다.
……왜일까, 얼굴을 붉어진 것이 묘하게 흥분한 것 같다. 아니, 버티기 위해 힘을 주고 있을 테니 당연한가.
이런 상관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이제 한계다. 힘을 해방한다.
목적은──그 에이린이 만들어 낸 가짜 달이다!
간다! 하─쿠─레─이─…….
「파아아아아아앗─────!!!」
머릿속에서 노자와 마사코의 목소리로 외치며, 나는 응축된 힘을 두 소넹서 단번에 내뿜었다.
역시 예상을 넘는 규모의 빛의 파도가 밤의 어둠을 찢어발기며 거짓된 달을 향해서 일직선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결과는──!
……。
…………。
…………응, 뭐 그래, 그거다.
이럴 때, 원래 놀라는 쪽은 적이다.
에이린 같은 캐릭이 「대단한 녀석……」이라거나 「역시 천재네」라며 전율과 함께 칭찬 한마디를 중얼거릴 타이밍이다.
물론, 에이린은 내 하쿠레이파가 일으킨 상황에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내게는 한 가지 자신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아마, 이 일을 벌인 나 자신이 누구보다도 가장 놀라고 있다, 라고.
──지금 그걸로, 정말로 달이 날아가 버렸다.
뭐야 이게. 몰라 무서워.
◆
「……지금 그거, 뭐죠?」
「글세, 뭐였을까?」
요우무와 유유코는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새지 않는 밤하늘을 세로로 가르며, 달까지 닿은 빛의 기둥이다.
죽림 어딘가에서 뿜어져 나온 힘의 파도는, 한순간 주위를 비추고는 서서히 사라졌다.
그 뒤에 남은 것은, 평소와 다름없는 「평범한 밤하늘」이었다.
「거짓된 달이……사라졌어」
그 두려울 정도의 파괴력은, 이 이변의 원흉인 가짜 달을 완전히 없애버린 것이다.
「그 달은 만들어진 것──크기도 질량도 없는 환상의 존재일 뿐이지.
하지만 그걸 파괴한 저 빛은, 어느 의미로 우주에 닿는 것보다도 엄청난 짓을 저질렀네. 그 어떤 술식도 법칙도 없이, 그저 억지로 「도려냈어」」
속마음의 동요가 뻔하게 표정으로 드러나는 요우무와는 달리, 유유코는 미소를 지은 채였다.
그러나 자신이 본 광경의 의미를 요우무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기에, 숨긴 속마음의 동요는 요우무보다도 거대했다.
도대체 누가 저런 짓을 벌인 걸까──?
「뭐, 짐작까지는 아니어도, 나도 모르게 누가 떠오르는구나……」
「왜 그러시나요?」
요우무의 질문을, 애매한 미소로 속이며 답한다.
「가보면 알 거야. 저 빛이 나온 쪽으로 가보자꾸나. 그 의문에 대한 대답──분명 이번 이변의 모든 게 그곳에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뒤를 따르죠」
납득이 가지 않은 듯 보이는 요우무와 함께, 유유코는 그 자리에서 날아올랐다.
──그 뒤에 남겨진 것은, 땅바닥에 쓰러진 치르노와 테위 두 명 뿐이었다.
모락모락 온몸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두 명은 함께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탄막놀이에서 진 패자의 모습이다.
「……가버렸네」
「조……종이 한 장 차이였다구」
「오─, 그런 어려운 말도 알고 있었네. 사용할 때도 틀리지 않았고.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니잖아. 완패 맞지, 이거」
테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명계의 공주와 검사를 상대로 벌인 탄막놀이는, 요괴토끼와 요정의 즉석 태그의 패배로 결판났다.
딱히 의외도 뭣도 아니다. 당연한 결과다.
이 결과를 예상하지 못 했던 인물이라곤, 오직 치르노 뿐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테위에게 있어서는 원래 목적이었던 시간벌기는 충분히 이뤘으므로, 승부에서는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
모코우 일행이 있는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결판이 났을 것이다.
그 빛을 본 테위는 아무 근거도 없이 그렇게 느낄 수 있었다.
에이린이 만들어낸 환상의 달은 사라진데다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 같지도 않다.
죽림은 평소 그 대로의 고요함이 돌아와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이곳에서 살고 있었기에 알 수 있다, 평소와 다름없는 밤의 기운이 돌아와 있다는 것을 테위는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잘 해준 것 같네, 선대랑 케이네는……」
「크읏……, 이런데서 누워 있을 때가 아니야!」
피로와 고통을 참으며 치르노가 일어섰다.
「그 「요─무」라는 녀석, 이 몸을 「요정 따위가」라고 했다고! 용서 못 해, 리벤치 매치를 해주겠어!」
「터프한걸, 너」
최근 상당히 어휘가 늘어난 치르노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 감탄하며, 테위는 지쳤다는 듯이 쓰러진 채 그런 치르노를 올려다봤다.
요괴라고 해도, 탄막은 맞으면 아프고, 그걸 계속하면 지친다.
요우무의 칼을 사용한 탄막은 생명의 위험이 느껴질 정도의 살상력이 숨겨져 있던 데다가 유유코의 탄막은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임무를 끝냈다는 달성감도 더해져, 테위는 도저히 일어날 마음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런 테위의 눈 앞에, 작은 손이 들이밀어진다.
「가자, 테위!」
「…………예이예이, 알겠다고. 파트너」
자신과는 달리 전혀 지친 것 같지 않은 건강미가 흘러넘치는 치르노의 미소를 본 테위는 포기했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내밀어진 손을 잡아 몸을 일으킨 뒤, 옷에 달라붙은 먼지를 털어낸다.
「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볼 의무 정도는 있으니까」
아마 딱히 나중 일은 생각이 없어보이는 치르노를 대신해 이유를 대며, 테위는 유유코가 향한 곳과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
거기서, 문득 깨달고 말았다.
「……아, 큰일 났다」
「왜?」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작게 혀를 찬다.
왜 그러냐는 듯 이쪽을 보는 치르노에게서 눈을 돌리며, 콧잔등을 긁적인 테위는 의리 있게 답했다.
「네가 내민 손. 별 생각도 없이 나도 모르게 잡아 버렸어」
「그게 왜? 그럼 안 돼?」
「안 된다고 할까……보라고, 나 꽤 비뚤어진 녀석이니까」
「그런 건 이미 알고 있어」
「그래서 「큰일」이라는 거야」
「……이상해」
어째선지 좌절하는 테위를 보며, 치르노는 알 수 없다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
「사부──!?」
죽림 저편에서 광선이 뻗어나오는 것을 본 레이센은, 무심코 그렇게 외치고 말았다.
한 방향에 시선을 고정시킨 그녀는 빈틈투성이였지만, 사쿠야는 그 찬스를 잡지 않았다.
아직 탄막놀이의 결판은 나지 않았다. 일보 전진 일보 후퇴의 공방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승리를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상황──아니, 더 크게 보아 이변 자체의 상황이 변했다는 것을, 사쿠야는 냉철하게 판단내렸다.
「「사부」라는 건, 너보다 이 이변에 깊게 연관된 자, 아니면 주모자일까?」
귀에 들어온 단어를 사용해 속을 떠보는 사쿠야를 레이센은 날카롭게 째려보는 것으로 답했다.
조금 전까지 벌이던 승부 도중 몇 번이고 나눈, 적의로 가득 찬 눈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안에 초조함이 더해져 있었다.
아무래도 레이센은 능력 같은 것으로 사쿠야보다 상황의 변화를 자세하게 알 수 있었고, 그 변화는 그녀에게 있어서 불리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보였다.
그것은 즉, 사쿠야에게는 좋은 흐름이라는 것이다.
「……승부는 미뤄두겠어」
「적을 앞에 두고 도망칠 정도로 상황이 나빠졌나 봐?」
「주제 넘게 나대지 마. 그 「시간에 간섭하는 능력」은 더러운 인간 따위가 가지고 있어도 되는 게 아냐. 너는 죽이겠어. 머지않아 반드시」
사쿠야의 도발에 살기로 답하면서도 냉정하며 침착한 판단.
낯이 익은 파장의 혼란에 상황을 알 수 없게 된 에이린과 카구야의 곁으로 향하는 것이 먼저다.
등 뒤에서의 기습을 경계하며, 레이센은 현장으로 바로 갈 수 있도록 등을 돌렸다.
「기다려」
「방해하지 마!」
무심코 말을 건넨 사쿠야를 뒤돌아보며 그대로 나이프를 내던진다.
탄막놀이에서는 할 수 없는, 한 치의 낭비도 없는 효율적인 살상만이 목적인 공격.
사쿠야는 날아드는 나이프를 재빨리 잡아챘다.
시간을 멈출 것도 없었다. 던지는 것도 던져지는 것도, 나이프를 다루는 것에 관해서라면 이미 손에 익을 대로 익었으니까.
「……나이프, 돌려달라고 할 생각이었는데」
사쿠야의 나이프를 어깨에 꽃아 놓은 채,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 레이센의 모습을 찾아 눈을 여기저기로 굴린다.
아마 이 장소에서 이미 떠났을 것이다.
이제 찾아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쿠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잡고 있던 나이프를 얼굴 바로 앞까지 들어올린다.
「흐음」
사쿠야가 평소에 쓰는 나이프와는 다른 타입의 물건이었다.
투척에 적합하지 않은, 소위 「컴뱃 나이프」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은장식까지 가미되어있는 사쿠야가 애용하는 물건들과는 달리, 장식미가 없는 무기였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네. 좋은 취미인걸」
처음 마주한 이래, 레이센에게서 느껴지던 기묘한 공감대가 또 하나 늘어났다.
친밀감 따윈 눈꼽 만큼도 없지만, 어째서인지 재회의 기다려짐을 마음 한 구석에 남기며, 사쿠야도 주변에 의식을 돌렸다.
이변의 밤을 베어 가른 그 섬광은, 이 죽림에서 싸우는 대부분의 인물들의 관심을 산 것 같다.
파츄리와 앨리스도 탄막놀이를 중지한 것으로 보였다.
레이무는 유카리와 합류한 뒤였다.
그리고 마리사는──.
◆
「저거, 어머니네」
「그렇구나, 분명해」
마치 미리 짠 것처럼, 레이무와 유카리의 의견이 일치됐다.
하늘을 꿰뚫는 한줄기 광선은, 두 명에게 익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 눈에 새긴 것을 잊을 리 없다──아이로서 목표로 삼고, 벗으로서 등을 맡긴, 위대한 그 사람의 힘이니까.
「최근 몰래 여기저기 기웃거리더니, 설마 이런 곳에 있을 줄이야」
유카리는 이마를 약하게 억누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온 사이이건만, 그 인간은 언제가 됐든 고민거리에, 불안의 씨앗에, 걱정의 씨앗이기도 하다.
레이무는 기가 막혀 뭐라 말도 나오지 않는 듯 했지만, 빛이 사라진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오늘 밤에 이변이 일어날 거라고 알고 있었던 걸까?」
「설마──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겠네, 선대니까.
어쨌든, 예상도 못한 방법으로 이변은 해결. 일단 선대에게 가야겠네, 이번 이변의 주모자도 거기 있을지도 모르고」
「그 어머니니, 이미 때려눕힌 거 아냐?」
「……부정할 증거를 찾지 못 하겠네」
「역시나. 홍무이변 때도 그랬지만, 또 어머니에게 추월당해 버렸어. 나도 좀 더 노력해야겠네」
소처럼 게으른 성격인 그녀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향상심으로 가득 찬 레이무의 발언에 유카리는 눈을 둥글게 떴다.
이 시건방진 게으름뱅이 무녀에게 이런 한결같은 면이 있었을 줄이야, 라며 한순간 감동할 뻔 했지만, 곧바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선대와 넌 다르니까, 목표로 삼을 곳을 착각해선 안 돼」
이미 하쿠레이의 무녀의 비술이고 뭐고 상관없이 힘 싸움으로 단번에 해결되어버린 이변의 해결을 되새기고는, 유카리는 속으로 전전긍긍하며 말했다.
거짓된 달을 지워 없앤 선대무녀의 그 힘은 오랜 세월 동안 사귀어온 유카리조차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충고에 레이무는 불만이 가득한 듯 뺨을 부풀렸다.
「왜 너한테까지 어머니랑 같은 말을 들어야하는 건데…….
뭐, 좋아. 어쨌든 어머니한테 가자. 아마 저걸 본 녀석들이 똑같이 모일 테니까」
「그러네. 선대에게 사정을 듣고, 오늘 밤의 이변을 제대로 끝내야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레이무와 유카리는 목표지점을 향해 같이 날아올랐다.
두 명의 모습이 멀어져 간다.
당연하다는 듯이 떠나가는 그 둘 뒤에 남겨진 것은, 결판이 난 탄막놀이와 땅에 주저앉은 패자뿐이었다.
땅에 얼굴을 박은 채, 마리사는 떨리는 손으로 솟아나 있던 풀을 잡아챘다.
「기……다리라……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온 힘을 다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몸을 채찍질하며, 필사적으로 얼굴을 올린다.
곁눈질조차 없이 떠나가는 레이무의 모습이 보인다.
패자를 돌아보지 않는, 당당한 승자의 뒷모습.
「어째서야……어째서냐고!」
끓어 넘치는 분노에 잡고 있던 풀을 뽑아내어, 땅에 내려찍는다.
아무 의미도 없다. 허무함만이 남을 뿐이다.
마리사의 시야가, 흘러넘치는 눈물로 흐려졌다.
「손이 닿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내 나름대로, 용 썼다. 위험을 무릅쓰며 무모하게 도전했다. 그리고 내기에서 이겼다.
──그럴 터인데!
「나는, 네 그림자조차 밟을 수 없다는 거냐고……레이무!」
──이쪽으로 생각을 쏟을 가치마저, 눈을 돌릴 의미마저, 없다는 거냐.
마리사는 그저, 자신의 모두를 걸었음에도 얻은 패배만을 곱씹었다.
레이무에게 원망이나 증오를 품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녀가 이변의 해결을 우선한 것과, 그 중심에 나타난 그녀의 어머니에게 관심을 돌렸던 것에 이유나 도리를 들먹이며 자신을 납득시킬 수도 없었다.
──레이무는 압도적이었다.
──그녀는, 싸움에 진 패배자인 자신을 둔 채 가버렸다.
단지, 그것만이 마리사의 진실이었다.
「너와의 거리가 딴사람처럼 멀어지는 건, 싫다고……!」
멀찍이 날아가는 레이무의 등을, 마리사는 그저 울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선대무녀와 야고코로 에이린의 공방.
그 결과 뻗어 나온 달마저 꿰뚫은 황금의 섬광은, 기이하게도 헤매임의 죽림에 모여 있던 수많은 인요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단 두 명──카구야와 모코우 만은, 그런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눈앞의 상대를 타도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새에 화살의 표적이 되어 있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모코우가 맞서 싸운다.
자신의 종자가 파괴의 빛에 삼켜지기 직전임에도 신경 쓰지 않은 카구야가 달리기 시작한다.
「──윽!」
「──큭!」
폭발하는 굉음과 함께 선대의 하쿠레이파가 뿜어져 나온 순간, 그 빛에 비추어진 카구야와 모코우의 그림자가 교차했다.
인외의 힘을 쥐어짜 뻗어진 카구야의 주먹이, 스치듯이 피해낸 모코우의 관자놀이와 머리카락을 도려낸다.
귓전에서 폭음을 울리는 주먹. 흩날리는 선혈.
모코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더욱 발을 내디뎠다.
한 호흡 늦게 뻗어진 모코우의 주먹에는, 힘도 들어가 있지 않으며, 쥔 형태도 풀려있다.
하지만 그 손에는 타격의 진리가 갖춰져 있었다.
카구야의 일격을 덧쓰듯이 엮인 팔이 궤적을 그리며 달려든다.
극한의 탈진에 의해 만들어진 단 한순간의 「힘주기」가, 엄청난 파괴력과 함께 카구야의 머리에 작렬했다.
예리하게 갈린 충격이, 마치 판을 뚫듯이 상대를 꿰뚫는다.
목에서부터 그 위가 통째로 날아갈 것 같은 충격에 당한 카구야는 어쩌지도 못한 채 땅바닥을 뒹굴었다.
한 바퀴, 두 바퀴, 이윽고 대자로 쓰러진 채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만다.
그 순간, 밤의 어둠을 비추고 있던 빛 또한 함께 사라져 자취를 감춘다.
카구야는 일어서지 않고, 모코우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헤매임의 죽림에 마지막을 장식하는 정적을 느꼈다.
「……왜 그러냐, 카구야. 일어서지 않을 거냐?」
전혀 움직일 기미가 없는 카구야의 모습에 모코우는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굉장한 반응이었다. 모코우의 주먹에는, 아직도 카구야를 때려 날린 감촉이 서려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강력한 일격이라 한들, 봉래인인 카구야에게 결정타는 될 수 없다.
얼마든지 부활할 수 있으니까.
「이 승부에 끝은 없다며?」
「……알고 있는 주제에, 왜 그렇게 의욕만만인건데」
하늘을 바라본 채 카구야는 기막히다는 듯 중얼거렸다.
맞은 자국이 부어 올라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 안면 근육 탓에 힘이 들긴 했으나, 모코우는 어떻게든 미소를 지어 내보였다.
「딱히, 결심했을 뿐이야. 네가 패배를 인정할 때까지, 몇 번이라도 패주겠다고 말이지」
──설령, 영원이더라도.
육체의 한계를 무시하며, 모코우는 말을 끝맺었다.
그 눈동자에 헤매임은, 이미 없다.
도리도 뭣도 없이, 그저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겨, 해낼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대답」이, 몇 년이나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모코우의 무모한 대답에 부정도 반발도 하지 않은 카구야는 그저 자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군가가 곁에 있으면 고독은 느껴지지 않을 테고, 남겨진 말은 버팀목이 되며, 추억은 살아갈 희망이 되겠지.
──그렇지만 그렇게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어떻게든 마음의 균형을 맞춘다……그렇게 해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천년? 만년? ……영원히는, 무리야」
그렇게 묻는 카구야의 목소리엔, 지금까지와는 달리 도발이나 부정적인 의미 없이, 그저 늙은이의 넋두리 같은 피로함이 담겨 있었다.
그 말은 옳다.
사람의 마음은, 시간과 함께 마모된다.
나이와 함께, 마음 또한 늙어간다.
각오는 약해지고 의지는 메마른다.
영혼에 영원의 시간이 남아 있다면, 그것은 결코 피해갈 수 없는 마음의 수명이며, 한계인 것이었다.
「이 더러워진 지상엔, 「영원」에 견딜 수 있는 것 따윈 존재하지 않아」
「……그럴지도 몰라」
모코우는 순순히 끄덕였다.
그 뜻밖의 반응에 놀란 카구야는 무심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보았다.
「일단, 테위보다 연상이 될 때까지는 노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모코우는 조금 곤란하다는 듯이 눈썹을 찡그린 채, 그럼에도 웃고 있었다.
잠시간 카구야는 멍하니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어이가 없다는 듯 다시 땅바닥에 쓰러졌다.
전의가 불러온 온몸의 긴장이 빠져나간다.
진정했다기보다, 포기한 무언가가 흘러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졌어」
「뭐?」
작게 중얼거린 카구야의 말에, 모코우는 귀를 의심했다.
「내가 졌어. 정말이지, 마음대로 하라고. 아─, 이제……몰라」
마지막으로 등을 돌렸다는 듯이 말한 카구야는 생각을 그만뒀다는 듯 눈을 감았다.
시야가 닫히기 전에 보인 것은, 상냥한 빛으로 밤의 어둠을 비추는, 진정한 달이었다.
카구야는 자기로 했다.
모코우와의 승부에서 입은 상처가 아파서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진 않았지만, 그 상처를 없앨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속으로 욕을 투덜거리며, 아픔을 참아내고 꿋꿋이 눈을 감았다.
마치 고집을 부리는 것처럼 보이는 카구야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 있던 모코우는, 하늘에서 내려온 에이린을 눈치 챘다.
누워있는 카구야의 바로 옆에 내려선다.
에이린과 모코우가 나눈 것은 시선뿐이었다.
말없이, 에이린은 곧바로 카구야의 상태를 진찰하는 것에 신경을 쏟았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카구야의 곁에 남을 종자──.
혼자 남겨질 것이란 외로움을 느끼고 있던 모코우는,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났다는 듯 몸을 돌렸다.
「모두들……」
낯익은 얼굴이 네 명,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한쪽은 한 명의 몸을 받쳐주며 다가왔으며, 다른 한쪽에선 둘이 어깨를 나란히 맞대며 하늘을 날아, 네 명이 함께 모코우에게 모여든다.
지금, 제일 만나고 싶은, 소중한 동료들이었다.
모코우는 그녀들을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날이 샌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의문, 그 대답과 새로운 문제──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시간은 지나 어제가 내일로 바뀌고, 달과 태양이 서로를 대신한다.
지금 이곳에서, 영원한 밤의 이변은 끝을 맺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