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영야선대록」
막간 「영야선대록」
【영원정에서의 한 때】
「선대 무녀, 완전 부활!」
붕붕마루 신문의 대문에는 그런 한 마디가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선대 무녀의 다리를 치료하기 위한 수술이 성공한 지 불과 3일 뒤.
자세한 상태나 치료 과정을 생략하여 억측이 섞여있는 기사였지만, 영원정의 한 방에서 두 다리로 서있는 선대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한 장의 사진이 이 신문에 큰 신빙성과 임팩트를 준 것이다.
「대체, 언제 이런 사진을 찍은 걸까?」
신문을 읽으며, 에이린은 기가 막히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 각도로 보건데 분명히 도촬한 것이다.
이 사진을 찍은 기자의 범죄는 눈감아준다 치더라도, 헤매임의 죽림에 있는 영원정에, 레이센이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은밀하게 잠입해낸 솜씨에는 솔직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을에 다녀온 테위가 읽지도 않던 이 신문을 사온 이유를 에이린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얕볼 수 없는걸, 환상향은」
이변을 거치고, 선대 무녀의 치료를 계기로, 영원정은 의료 방면으로 바깥과의 교류를 가지려고 결정한 것도 최근.
그 전까지는 이 죽림의 안에서 말 그대로 멈춘 것이나 다름없는 세월을 살아 왔다.
봉래인에게는 평화롭게만 보낼 수 있다면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네」
「뭐라고 했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미소 섞인 에이린의 혼잣말을 선대가 용케도 듣고는 대답했다.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신문을 살그머니 접어 품속에 갈무리한다.
에이린은 다시 한 번 툇마루에서 안뜰에 서있는 선대를 바라봤다.
수술이 끝난 지 3일 째. 완전히 회복된 그녀가 보였다.
수술 뒤의 후유증을 지켜볼 필요도 없었다.
선대의 다리는 완치되었으며, 그 흉터조차 남지 않았다.
「다리가 아프진 않아?」
「아니, 없다. 위화감은 약간 있다만」
「그건 감각적인 문제야. 오랫동안 다리를 쓰지 않아서 온 폐해지」
에이린이 수술을 하기 위해 절개한 다리의 상처는 3일 만에 나았다.
당연히, 그건 선대 본인의 자연치유력 때문이 아니다.
수술을 위해 제공된 수많은 기술이나 도구 중, 외상에 사용된 약초가 효과를 발휘한 덕분이었다.
봉합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절개되었던 다리의 상처를 붙여버렸다. 확실히 신비롭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약초였다.
그 덕분에 원래라면 필수적이었을 장기적인 입원을 할 필요가 없어진 선대는 이르게도 벌써 퇴원 날짜를 맞이한 것이다.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선대는 안뜰에 나와 있었다.
이 안뜰에 나오며, 확인하듯이 사뿐사뿐 땅을 밟으며 맨발로 바깥에 나와 가볍게 굽혔다 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하반신의 근육은 놀라울 정도로 건강하던걸」
그런 말과는 반대로 에이린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반년이 넘도록 다리를 움직이지 않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야.
수술에 사용된 약품이 세포를 활성화 시킨 게 영향을 끼치긴 했겠지만, 그래도 비정상적인 결과네. 마사지 정도로 유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을 텐데」
「그건 파문의 효과다」
「 「파문」——그 특수한 호흡법 말이지」
「그렇다」
수술을 하기 전, 에이린은 선대가 가진 육체에 작용하는 기술 몇 가지를 문답을 통해 알게 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를 끌던 것이 바로 「파문법」이다.
특수한 호흡을 실시함으로서 피에 에너지를 모아 그것을 몸속에서 순환시킨다.
그 에너지는 세포를 활성화시키고, 골절 정도라면 자연치유가 가능하게 만드는 힘.
신경이 끊긴 다리에도 변함없이 흐르던 그 에너지가 움직이지 않는 근육의 열화를 막은 것이다.
육체를 활성화시킨다, 라는 효과 자체가 딱히 희귀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능력을 호흡하는 법 하나로 다룬다는 점이 훌륭하다.
외적 요인은 아무 것도 없이, 선대는 자신의 육체를 조작하는 것만으로 이 신비적인 힘을 만들어내고 있다.
어떤 발상으로, 이런 기술을 만들어낸 것인가.
알면 알수록, 이 선대 무녀――흥미롭다. 인물로서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에이린은 흥미진진한 시선을 애매한 미소로 숨기며, 선대의 행동을 하나하나 관찰했다.
두 다리를 번갈아 길게 피는 가벼운 체조를 끝낸 선대는, 한 단계 난이도를 올려 하반신을 움직였다.
왼발을 천천히 들어올린다.
무릎은 굽히지 않은 채, 쭉 뻗은 상대로 이마에 발이 닿을 정도로 올린다.
한 발만으로 몸을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땅을 딛은 오른쪽 다리와 들어올린 왼발이 하나의 직선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범상치 않다.
몸 또한 가능한 뒤로 물리지 않고, 들어올린 왼발과 가슴이 붙을 정도의 위치에서 버티고 있다.
중심을 잡지 못해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다.
선대는 그런 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굉장한 안정감을 가지고 있었다.
몸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잠시 동안, 그런 자세로 있은 뒤, 선대는 다리를 바꾸며 똑같은 자세를 잡았다.
「……훌륭한 유연성과 강성이네」
두 다리가 땅에 내려온 것을 본 에이린은 선대의 육체를 칭찬했다.
진심이었다.
어설픈 단련으로 이루어진 몸이 아니다.
저 다리로 차면, 상대의 턱을 날려버릴 것이며, 반대로 내려찍으면 훌륭한 뒤꿈치 찍기가 정수리를 부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어깨 너머로 뒤에 선 적을 찰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하나, 선대 무녀의 힘의 일부분을 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약간 약해진 것 같군」
허공을 베는 날카로운 발차기를 양다리로 번갈아 휘두르며 선대가 중얼거렸다.
그녀가 그렇게 말한다면, 사실일 것이다.
결코 겸손이나 허세 따위가 아니다.
「당분간은 재활 훈련인가」
「……그럼, 지금 여기서 조금 해볼래?」
선대의 혼잣말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놀란 눈을 치켜뜨며 고개를 돌리니, 툇마루에서 뜰로 발을 내딘 에이린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네가 상대할 생각인가?」
선대는 그렇게 놀라면서도 에이린의 말과 행동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 이래봬도 체술에는 나름 재주가 있거든」
「어째서, 이렇게나 해주는 거지?」
「하나는 의사로서의 애프터케어. 또 하나는, 개인적인 흥미야」
영원정의 안뜰 한 쪽에서, 선대와 에이린이 마주보고 있었다.
언뜻 보면 그저 서로 마주보며 서있을 뿐이지만, 그녀들이 서있는 위치만 봐도 그 속을 알 수 있었다.
뜰의 장식품인 연못이나 나무에서 떨어졌으며 돌바닥과 자갈이 깔린 비교적 평평한 장소에서 진을 치고 있다.
인간 두 명이 충분히 움직일 수 있는――예를 들자면, 충분히 「싸울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어 있는 것이다.
「……괜찮은 건가?」
「그건 나를 얕보고 있다는 말이야?」
「아니……」
「나도 모처럼 치료한 환자를 다시 침대로 돌려보낼 생각은 없어.
이쪽은 당신한테 맞춰 움직일 테니, 마음껏 와봐」
듣기에 따라선 도발처럼 들리는 대사다.
그러나 선대를 상대로는 무의미한 말이었다.
「알았다. 그럼 시작 신호는 뭐지?」
선대가 물었다.
「이미 시작됐어」
에이린이 대답했다.
그 얼굴에서는 이미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그 순간, 선대는 발을 내딛었다.
일절의 망설임도, 흔들림도 없는 움직임.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혀 움직이지 못했었음이 확실한 다리를 마음껏 움직여, 체중이 이동함에 따라 순식간에 속도와 무게가 실린 정권지르기를 내뻗는다.
이 일련의 동작에 에이린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경악하고 있었다.
선대의 공격에는 날카로움도 있었지만, 그 손속에 방심이라곤 전혀 존재하지 않았음에 놀란 것이다.
자신의 갑작스런 제의에 어느 정도 당황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했었다.
실제로 당황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싸움이 시작되고 나니, 선대는 완전히 사고가 뒤바뀌어 있었다.
알 수 없는 상대의 실력에 방심은커녕 탐색전조차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진지하다. 그녀에게는 한 점의 무름도 없다.
반대로, 예상이 빗나간 에이린이 오히려 의표를 찔리고 말았다.
「과연――」
에이린은 감탄하면서도, 달려드는 철권에 맞섰다.
양손의 손바닥으로 정권지르기를 막는다.
방어로서 본다면, 그 방어는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어설펐다.
일격을 막는데 양손을 사용해서야, 그 뒤에 닥칠 반대쪽 손의 공격에 대처할 수 없다.
그러나 에이린의 양손이 선대의 찌르기를 막은 그 순간, 선대의 몸이 그대로 공중을 헤엄치고 있었다.
눈이 의심되는 광경이었다.
공격을 한 것은 선대였다. 게다가 제대로 땅을 딛고 있는 안정감 있는 공격이었다.
그런데 마치 자신이 혼자 뛰기라도 한 듯 몸이 공중으로 내던져진 것이다.
게다가 힘으로 무리하게 다리가 땅에서 떨어진 것 같은 무리함도 없었다.
자신의 주먹의 기세에 말려든 듯이, 내뻗어진 팔을 기점으로 던져졌다.
갑작스런 사태에도 선대는 냉정하게 대처했다.
공중에 내던져졌음에도 자세를 고치더니, 땅에 내려설 쯤엔 이미 다리로 착지할 수 있을 정도로 균형을 바로잡았다.
그대로 곧바로 반격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완벽함이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는다.
에이린은 던지던 중에 손을 놓았었다. 그 덕분에 자세를 고칠 수 있었던 것이다.
팔을 잡은 채로 자세 제어를 방해하며 땅에 내던졌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에이린이 봐준 것이다.
그것은 물론, 그녀 자신이 싸우기 전에 했던 말대로 했을 뿐이다.
그러나 불가사의함은 남았다.
선대는 자세를 잡은 채, 자신을 가볍게 던진 에이린의 기술의 비밀을 찾기 위해 힘썼다.
「——뭐야아!?」
분위기에 맞지 않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느새 치르노가 영원정의 안뜰에 들어와 있었다.
정식적인 환자인 선대와는 달리, 당연히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이다.
바로 옆에는 레이센이 서있었다.
선대를 문병하기 위해 억지로 영원정에 쳐들어온 치르노를 침입자라고 단정 짓고는 바로 방금까지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두 명은 안뜰에서 선대와 에이린의 대련을 보게된 것이었다.
「저기, 지금 어떻게 한 거야!?」
갑작스런 구경꾼의 등장에도 그 둘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상대에게만 집중하고 있을 뿐이다.
치르노는 옆에 있는 레이센에게 무심코 물었다.
「……아, 저건 사부의 기술이야!」
치르노처럼 한순간의 공방에 눈을 빼앗겼던 레이센이 당황하며 대답한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저렇게 할 수 있는 건데?」
「아, 그―그러니까……사부의 기술은, 알 수 없어!」
즉, 레이센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원래 달의 군인이다. 격투에 관한 지식이나 기술은 익혔지만, 그 한순간의 공방은 그동안 배웠던 어떤 것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에이린의 기술은 물론이거니와, 선대의 타격기조차 알 수 없었다.
실제로는 단순한 정권지르기지만, 극한까지 단련된 그것은 일반적인 견식 밖에 가지지 못한 레이센의 눈에는 너무나 이질적으로 보였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타격과 묘리를 알 수 없는 기술.
이곳에 올 때까지의 과정이 모두 애매해진 치르노와 레이센은 그저 멍하니 눈앞의 광경에 숨을 삼키고 있었다.
「저거, 「합기」라는 거야」
「테위, 깜짝 놀랐잖아!」
두 명의 사이에 끼어들듯이, 이나바 테위가 얼굴을 내밀었다.
「합리적인 힘과 기술로 상대의 힘과 맞서지 않고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한다는 취지의 무도지.
쓸데없는 힘을 사용하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니까, 죽으면 육체 상태가 초기화되는 봉래인에게도 궁합이 좋아. 거기다 사부가 유일하게 단련해온 체술이거든.
아마, 극한으로 단련하진 않았겠지만, 시간만은 무한했으니. 연단위의 공백을 사이에 두고 단련했다고 해도 종합적으로 따지면 얼마나 오랫동안 수련했을지 상상도 안 가」
당황하는 둘을 무시하며, 테위는 다 안다는 듯 한 얼굴로 장황한 설명을 이어나갔다.
「짧은 인생의 대부분을 소비해서 신념을 갖고 단련한 선대 무녀. 반대로 방대한 시간을 낭비하듯이 사용하며 놀이로 단련한 사부.
선대의 몸이 나은 직후이기도 하지만, 사부가 합기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도 오랜만이야.
판단할 소재가 너무 적어서, 이건 어느 쪽이 이길지 모르겠는걸……」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마음대로 설명하기나 하고, 거기다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레이센은 당황하며 물었다.
「아니, 치르노를 도우려고 쫓아와서 보니, 해설이 필요할 것 같은 상황이어서 말이지」
「뭐, 잘 됐다면 잘 된 거지만……너, 정말로 뭐든지 아는구나」
「이래 보여도 오래 살았으니까—」
「이 몸 알고 있어! 테위는 진짜로 해설 캐릭터였구나!」
「시끄럽네. 그 전에 그런 말은 어디에서 안 거야」
「사부」
「……얕볼 수 없네, 저 무녀」
「이제 됐으니까 조용히 지켜보자.
사부도 진심으로 할 생각은 아니겠지만, 심각해지면 말려야 되니까……」
레이센은 꾸준히 상황을 지켜보고, 치르노는 다른 의미로 긴장하며, 한편 테위는 어딘가 평화롭게 안뜰의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 명의 침묵이 신호가 된 듯, 선대와 에이린은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대가 낮게 발을 내뻗었다.
에이린의 하단을 노린, 날카로운 로킥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발차기를 잡아 던질 수는 없다. 막든가, 피하든가, 둘 중 하나다.
자신을 던진 기술을 알아내지 못했기에, 공격 타입을 순식간에 바꾼 것이다.
에이린은 불과 반보 뒤로 물러서는 것만으로 그것을 피했다.
땅 위를 미끄러지는 것 같은 이동이었다.
떨어진 만큼 선대가 간격을 좁힌다.
그러나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에이린 또한 발을 앞으로 내딛는다.
한순간에 서로의 거리는 제로.
에이린은 이 상태를 노리고 있었다.
맞서는 선대는 속내를 전혀 표정에 드러내지 않기에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에이린이 선대의 손목을 잡았다.
공격에 대한 카운터는 아니었으나, 결국은 방금 일어났던 공방과 같은 흐름이다.
또 다시, 정체불명의 기술로 선대의 몸이 던져질 뿐――이었을 것이다.
「큭……!?」
손바닥으로 달리는 전기가 감전된 것 같은 충격에 에이린의 손이 튕겨나가듯이 선대의 몸에서 떨어진다.
의표를 찔렸다는 정신적인 이유 외에도, 왜일까 물리적으로도 육체가 경직되어 빈틈이 생겨났다.
그 빈틈을 꿰뚫을 기세로 선대의 주먹이 날아든다.
에이린은 전신을 팽이처럼 회전시켜 그 주먹을 피해낸다.
회피로서는 불필요한 요소가 많은 움직임이다.
원심력을 이용한 반격이 온다.
선대는 확신에 가까운 예상을 했다.
주먹인가, 발차기인가.
――촤악!
한 데 묶인 긴 은발이, 채찍처럼 휘어져 선대의 얼굴을 덮쳤다.
머리카락이라고 해도, 묶여있는 데다가, 힘이 들어가 있다.
두 눈을 정확히 맞아 일시적으로 시야를 확보할 수 없었다.
우연이 아니다. 노리고 시도한 공격이다.
에이린이 목을 비틀어 머리카락의 끝을 휘두른 것이다.
그 공격의 뒤를 쫓듯이 틈을 주지 않고, 이번에야말로 주먹이 뻗쳐온다.
그러나 시야를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선대는 그 일격을 당연하다는 듯 한 손으로 막아냈다.
타격기에 대해서는, 에이린의 기술이 미숙했던 데다, 단순한 힘 또한 선대에 비해 약했던 것이 다행이었다.
에이린의 주먹을 막은 채, 선대는 작게 눈물이 맺힌 눈동자를 천천히 깜박였다.
「의표를 찔렸군」
「이쪽이야 말로. 지금 그 저린 감각은 뭐야?」
에이린은 선대의 손목을 잡았을 때 느껴진 감촉에 대해 물었다.
착각이 아니라, 정말로 전기가 달린 것처럼 손이 저렸으며 실제로 근육의 움직임마저 멈췄던 것이다.
「그건 파문이다」
「또 파문? 속이 깊은 기술인걸」
「들러붙는 성질의 파문과 튕겨내는 성질의 파문이 있다. 또 닿은 순간이나 때리는 순간 상대에게 파문을 강하게 흘려 넣으면, 저리게 할 수도 있지」
「만약, 더 강하게 흘려 넣으면?」
「육체를 녹이는 것도 가능하다」
「그건 무섭네」
서로 얼굴을 맞댄 채 담담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적어도 에이린은 속으로 전율하고 있었다.
파문은 전신에 두를 수 있다.
즉, 선대의 몸에 닿기만 해도 그 영향을 받는다.
무적인가?
아니, 틀리다.
실제로 처음 던졌을 때나, 지금 주먹이 닿고 있는 부분에서 그 저리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는다.
파문에는 강약이 있으며, 그 에너지를 호흡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이상, 순간적인 힘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손목을 잡히는 것을 예측하고, 미리 그곳에 파문을 집중시키고 있었기에 나온 결과다.
에이린은 냉정하게 그렇게 분석했다.
「계속할 텐가?」
「다리를 더 많이 사용해봐」
이렇게나 박력 넘치는 싸움을 하면서도 처음의 목적을 잊지 않은 논리적인 사고라니, 과연 달의 현자였다.
상대의 기묘한 바람에 답하듯이, 선대가 발을 휘두른다.
간격을 좁힌 채 마주보고 있는 두 명의 사이에 그리 큰 공간은 없었다.
그러나 에이린의 턱을 목표로 바로 밑에서 밀어 올리는 것 같은 발차기가 휘둘러진다.
그 관절의 유연성과 근육의 탄성을 발휘하여, 다리를 작게 굽힌 채 얼마 안 되는 몸의 틈으로 찔러 넣은 것이다.
어퍼컷처럼 컴팩트한 발차기가, 위험하게도 급히 고개를 들어올린 에이린의 턱을 스친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 번 정점에 도달한 발차기가, 이번엔 정수리를 향한 뒤꿈치 찍기로 이어졌다.
도끼를 내려치듯이 날카로우며, 무거운 일격.
에이린은 그것을 막으려 하지 않고, 벌린 간격을 다시 좁히며 태클을 걸었다.
다리를 치켜들고 있던 선대는, 한쪽 발로 그것을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버틸 수 없다.
기술이 끝나기 전에 잡혀 땅에 등을 박는다.
몹시 거칠게 진행되는 싸움에 멀찍이서 구경하던 레이센과 치르노가 무심코 소리를 내지른다.
에이린은 뒤꿈치 찍기를 막기 위해 잡은 다리를, 그대로 꺽으려고 했다.
관절을 노린 기술이다. 먹힌다면 거기서 승부가 난다.
선대는 남은 다른 한 쪽의 다리를 휘두르며 그것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넘어진데다, 몸은 밀착되었으며, 한쪽 발까지 잡힌 상태다.
아무리 선대의 강력한 발차기라고 할지언정, 간단하게 막아낼 수 있는 상황이다.
에이린은 한쪽 팔을 억지로 방패 삼아 발차기의 충격을 견뎠다.
그리고 뼈가 부러질 것만 같은 힘을 막아낸 순간, 이번에는 끌려가는 힘을 받은 에이린의 몸은 어쩌기도 전에 선대에게서 떨어져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걸까 하여 당기는 힘이 전해지는 곳을 눈을 돌려 찾아보니, 그곳에는 방어한 팔을 잡아챈, 선대의 발가락이 있었다.
발로 행해지는 던지기.
선대 자신 또한 넘어져 있는 안정되지 못한 자세이나, 원래부터 다리 힘은 팔 힘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
맞대응 하지 못한 에이린은 공중에서 반 바퀴를 돌아 땅에 등으로 쳐박혔다.
무심코 발을 움직이려 했던 레이센과 치르노는, 그 기묘한 움직임에 눈을 빼앗기고 말았다.
쓰러진 선대를 누르려던 에이린이, 그 자세 그대로 위를 향해 튕겨나간 것이다.
격투전의 판도라는 것을 아는 레이센으로선 믿기 어려운 역전극이었다.
지식이 없는 치르노는, 그 대신 지금 이 기술을 한 번 지저에서 봤었다.
사부에게 생긴 빈틈에 레이센은 초조해하며, 이길 기회를 엿본 치르노는 눈을 빛냈다.
그때, 그런 광경을 지켜보던 테위가 크게 손뼉을 쳤다.
「네, 끄―읕! 거기까지! 한 판! 무승부!」
「……어느 쪽이야?」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울려 퍼진 테위의 외침에 에이린은 힘이 풀린 미소를 흘렸다.
테위의 말이 뜨거워지기 시작한 두 명의 싸움에 좋은 의미로 찬물을 끼얹었다.
선대와 에이린. 둘 다 땅에 쓰러진 채, 그 몸에서 투쟁심이라는 열을 빼내간다.
긴장감 또한 동시에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인 것 같군」
「그러네. 이제 충분해」
「너무 충분하다」
「미안해. 약간 흥미가 돋아서」
「무서운 녀석이군」
「……후후후, 그 정도의 기술을 가졌으면서 「그런 감상」도 말할 수 있는 당신이, 나는 더 무섭지만」
처음부터 승부를 낼 작정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두 명은 서로를 칭찬하며 일어섰다.
아첨은 아니다. 적어도 에이린은 진심이었다.
에이린은 변함없는 표정 탓에 알 수 없는 선대의 속내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한 번, 실제로 싸워 보고 알았다.
그 측정하지 못할 전투력은, 물론 위협이다.
그러나 정말로 경계해야 할 것은 그녀 자신의 인품이나 성격이다.
그 야쿠모 유카리와 마주했을 때도 위협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지만, 한 편으로는 찌를 수 있는 빈틈이 있다는 생각도 했었다.
힘을 가진 자들의 자부심이나 오만은 없앨 수 없다. 특히 요괴는, 그런 것들로 요괴로서의 힘이나 격을 만들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눈앞의 인간은 다르다.
방심이나 오만은 한 조각도 없다.
선대가 자신을 「무섭다」고 평가한 것은, 아마 진심일 것이다.
그 정도의 힘과 기술을 가졌음에도, 그녀는 자신이 느끼는 공포를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기에, 무섭다.
반대로 봉래인이라는 이점을 가진 자신이, 그 빈틈을 찔려버릴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다.
야쿠모 유카리보다, 훨씬 대하기 어려운 상대다.
「다리의 상태는 어때?」
「역시, 조금 위화감이 있지만, 꽤 감각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래. 그건 다행이네」
에이린은 의사로서의 자신으로 의식을 바꾸며 상냥하게 말을 건넸다.
레이센 일행이 근처에 있다는 것은 그녀들이 안뜰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조금 떠어진 곳에 서있는 세 명이 의사가 환자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다가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에이린은 소리를 속삭이는 정도까지 낮췄다.
「퇴원 전에, 잠깐 할 이야기가 있어」
「……뭔가 문제라도 있나?」
선대가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다리의 상처는 완치됐어. 감각도, 그 상태를 보면 얼마 안 가 되돌아올 거야. 그건 보증해」
「——」
「문제는, 당신의 몸 그 자체야」
에이린은 수술을 시작하기 전에 철저하게 조사한 선대의 신체에 관한 정보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에게 직접 들은 터무니없는 단련에 의한 혹사와 50을 넘은 연령에 의한 열화――이건 당연히 몸에 부담을 주고 있어.
그 부담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이유는 전적으로 파문에 의한 세포의 활성화와 강화, 그리고 보조가 계속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야.
나는 파문의 이론까지는 몰라. 그저 당신의 힘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은 건 확실한 원인이 있기 때문이야. 허울 좋은 정신론 같은 게 아니라」
「그래, 알고 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는 인간이니까」
「파문은 당신의 몸을 항상 치유하고, 계속 보충하고 있어.
――알겠어? 여기가 중요해. 당신이 호흡에 의해서 파문의 에너지를 무한하게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게 계속되는 한 문제는 일어나지 않아」
타이르듯이 목소리에 힘을 넣어, 에이린은 굳게 말했다.
「다만, 만약 그 「파문」이 멈춰버렸을 때엔――」
「……어떻게 되지?」
에이린은 서둘러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말만으로는 전해지지 않는 「위기감」을 직접적으로 느껴지게 했다.
「몸의 노화가 시작되는 건, 일단 확실해」
모두 예측에 지나지 않는 생각 중에서, 가장 확실한 것을 최초로 대답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단순하게 몸이 늙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 거야.
파문으로 멈춰졌던 만큼만 나이를 먹고 늙는다니, 그렇게 술술 풀리진 않겠지.
세포가, 단번에 죽어나가. 그 과정에서, 반드시 뭔가 문제가 발생하게 돼. 조금 전에도 말한 것처럼, 당신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었어. 즉, 그만큼 몸을 혹사시켰다는 거니까」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
선대는, 스스로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듯 평탄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 번 숨을 크게 들이쉰 에이린이 대답한다.
「——파문을 멈추고 일 년 안에, 당신은 심각한 신체장애나 병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
이미 선대가 중병에 시달리는 환자인 것처럼, 에이린은 엄숙한 목소리로 선고했다.
그런 에이린의 말에 선대는 잠시 동안 침묵을 지켰다.
충격을 받은 것일까?
눈앞의 인간이 그렇게 무른 성격이라고는 이미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심각한 이야기임은 틀림없다.
에이린은 선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주변에 눈을 돌리고 있었다.
저만치 떨어진 레이센 세 명 말고는, 아무도 없다.
그 신문을 쓴 텐구처럼, 누군가 이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닌지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의사로서인가,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일까, 자기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에이린은 선대가 바라는 한,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한 지 오래였다.
「그런가」
이윽고, 선대가 짧게 대답했다.
「알았다」
그뿐이었다.
그 뒤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 짧고, 평탄한 대답에 에이린은 무심코 참견하고 말았다.
「당신, 머지않아 파문을 멈춘다고 했었지?」
「그래」
「진심이야?」
「진심이다」
「그 불로의 기술을 계속 사용할 생각은 없어?」
에이린은 순수한 의문을 품고 있었다.
지금까지 심각한 문제를 이야기했지만, 이런 문제의 해결책이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녀이기에 평범한 인관과 비교하면 많은 길이 남아 있다.
인간에서 선인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다.
선대가 가진 인맥을 사용한다면, 이번처럼 누군가의 힘을 빌려 요괴로 변해 인외가 되는 것도 간단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그릇에 묶인 채이기에 이렇게나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니, 그 그릇을 벗어나가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것들이 해결된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완고하게 거절하고 있다.
에이린은 선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인간으로서 죽을 생각이다」
「왜?」
선대는, 그때 처음으로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레이무의 어머니다. 부모로서 마지막 일을 끝내야만 하는 입장이지」
「부모로서의 일?」
「사람이 태어나, 머지않아 죽을 때 가르쳐주는 것이다」
「——」
「그 아이가 머지않아,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됐을 때에 알아야만 하는 것이지」
「——」
「인간이, 지금까지 계속 반복해온 일이다」
타이르는 듯 들려오는 선대의 조용한 목소리에, 이번엔 에이린이 침묵에 빠졌다.
――짧은 생명을 펼쳐, 부모로서 아이에게 전한다.
지상에 사는 인간들이 반복하는 생과 죽음은 에이린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할지언정, 그 자체에 감동이나 고귀함을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월인으로서 더러움에 찌들어 불완전한 생명의 마지막에 약간의 불쌍함을 느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된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인물이라 경계하고, 경의를 표한 선대 무녀.
무슨 심경의 변화일까, 오랫동안 누구에게도 밝혀본 적 없었던 자신의 약점을, 일부라고는 하지만 보이고 만 상대다.
그런 그녀가, 다른 인간들처럼, 부모를 말하고, 아이를 말하며, 그리고 죽음을 말한다――.
당연한 어머니로서의 모습이, 그녀에게서 느껴졌다.
――가족. 아이. 어머니. 여성.
――그런가.
에이린은 갑작스럽게 떠올렸다.
――나는, 달과 지상을 포함해 누구보다 길게 살았음에도.
――아직 한 번도, 어머니가 되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런 기묘한 납득이, 에이린의 가슴에 파인 의문이라는 구멍을 살포시 메웠다.
선대의 대답에 「그런 거구나」라는, 알 수 없는 납득만이 솔직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의사로서 더 이상 할 말은 없어」
「그래. 충고 고맙다」
「그저 의무와 의리 때문이야」
「의리인가」
「그래, 의리. 당신에게는, 약간이지만 신세를 졌으니까」
그 말은 사실 이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전날 선대에게 했던 푸념 같은 고백에 대한 것이었으나, 에이린은 더 이상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 의미를 오해하고 있을 선대가 작게 끄덕이는 것을 보며, 속으로 쓴웃음을 짓는다.
그때의 일은 지금도 실수라고 생각한다.
자신은 물론, 카구야도, 긴 세월 동안 후회만 하며 보내오지는 않았다.
영원의 삶에 대한 대답은,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대답 따윈 무르디 무른 것이다. 긴 세월 속에서 시원스럽게 부서지고 만다.
이번 사건으로 모코우는 헤매이며 스스로 대답을 찾아냈다.
그것을 보고, 자신과 카구야는 헤맸다.
그러나 더욱 계속될 영원의 시간 속에서, 상황이 뒤바뀔 때는 반드시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반복될 것이다.
살아 있으면, 헤매는 것은 당연하다.
그 헤매임 속에서, 눈앞에 나타난 인간에게 자신은 무심코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이것을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의리라고 했지만, 빚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약점을 잡혔다든가.
어쨌든, 눈앞의 인간에게 품은 감정이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버린 것이다.
「당신이 바란다면, 지금 말한 건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그렇게 해다오」
결국, 이렇게 타산이 섞여들어간 걱정을 하고 마는 자신과 그런 자신에게 순수한 호의를 보이는 선대를 비교하며, 에이린은 약간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을 속이기 위해 에이린은 잠시 동안 선대와 별 볼일 없는 잡담을 나눴다.
――한편, 대화를 나누는 두 명을 보고 있던 레이센은 테위를 데리고 그 자리에서 떨어져 있었다.
영원정의 거주자 외의 사람과 저렇게나 차분히 대화하는 사부의 모습은 처음 봤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인간 따윈 방문한 적이 없는 곳이므로, 당연하다면 당연했지만, 레이센은 복잡한 기분이었다.
「……그 이변 뒤로, 왠지 주위가 점점 복잡해지는 것 같아」
「레이센은 사람을 싫어한다기 보단 서투르지. 변화를 싫어한다고 할까」
「시끄러워. 인간은, 추접한데다, 귀찮기만 할 뿐이야」
테위의 짓궂은 장난에 대답하며, 레이센은 자신도 모르게 한쪽 팔을 어루만졌다.
눌린 손바닥 아래엔 아직도 다 낫지 않은 상처가 남아 있다.
그 이변의 밤에 사쿠야에게 입은 상처였다.
「마음에 안 들어……」
레이센은 누구에게 하는 건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라? 잠깐만, 그 요정은 어디갔지?」
어느새 사라져버린 치르노의 존재를 깨달았다.
「위험해! 설마 영원정 안으로 들어간건……!?」
「아니, 그 녀석 선대 무녀가 관련되면 솔직하기도 하고. 사부와의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얌전히 있으라고 하니까, 그래도 심심하다고 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려도 곤란했으니――」
「에, 뭐라고? 꽤 쉽게 쫓아냈네?」
「같이 놀라고 공주님의 방을 소개해줬지」
「바보냐아아아아—!!!」
레이센은 절규하며, 카구야의 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이변 때부터 공주님이 방에서 나오지 않고 계신 건 알고 있잖아!」
「응, 그러니까 좋은 기분 전환이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
「그 바보 요정의 무례한 태도로 기분을 해칠 게 뻔해! 아, 정말! 빨리 끄집어내지 않으면!」
「나름 잘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 소리를――!」
이야기를 시작한 레이센은 카구야의 방의 바로 앞까지 오자마자 말을 멈췄다.
미닫이 너머에서 카구야의 질문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레이센, 거기에 있어?」
「아, 예! 거기 요정이 오지 않았나요!?」
「그래, 지금 눈앞에 있어」
미닫이문은 닫혀 있다.
허가 없이 문을 열 수는 없기에, 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치르노가 같은 방에 있는 것은 확실했다.
레이센은 창백해졌다.
「지금 당장 내쫓겠습니다!」
「아니, 괜찮아. 대신 차를 좀 갖다 주지 않을래?」
「……네?」
「차. 그리고 과자도」
「이 몸은 단 게 좋아!」
치르노의 사양 없는 리퀘스트가 들려왔다.
「단 걸로」
쓴웃음 섞인 카구야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레이센은 한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카구야의 목소리로 보건데 확실히 기분이 좋다는 것이 느껴졌다.
보기도 송구스러운 호라이산 카구야는 영원정의 주인이며, 레이센에게는 상사의 상사라는 지위에 앉은 인물이다.
계급장을 떼고 붙더라도 현기증이 날 것만 같은 미모나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고귀함 같은, 일개 병사에 지나지 않는 자신과의 차이를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요 며칠간은 나른한 모습이 늘어나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분위기가 거의 정반대로 변해 있었다.
첫 대면이 분명한 치르노가, 이 짧은 시간만에 그녀에게 어떤 아첨을 한 건지, 레이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그 요정, 뭐야?」
「글쎄, 봉래인에게 사랑받는 체질이라도 타고난 게 아닐까?」
레이센의 질문에, 테위는 장난꾸러기 같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
【요괴의 산에서의 자초지종】
에이린을 포함한 관계자 모두에게 감사인사를 끝낸 뒤, 선대는 영원정을 나섰다.
헤매임의 죽림을 빠져나와 향림당에 들른 뒤, 밭, 마을, 숲을 가로지른다.
능력을 가진 자라면 하늘을 날아가거나, 평범한 인간이라도 말을 타야할 정도의 거리를, 오로지 달려서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얼굴은 전혀 지쳐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움직이는 다리에 맞춰 몸의 상태가 좋아졌을 정도다.
지금 이 날, 선대 무녀는 완전하게 부활하였다.
그대로 환상향을 일주할 기세로 달리던 선대는, 이윽고 천천히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요괴의 산의 산기슭에 점점 다다르고 있었다.
마을로 가는 길목에서 상당히 떨어진 장소.
선대는 일부러 이곳에 들른 것이다.
산기슭이 다다라 달리던 발을 멈춰 세우고, 그 앞으로 뻗은 산길을 천천히 걸어 오른다.
선대는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며, 무심코 작게 그리움이 깃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길은 일찍이 걸은 기억이 있다.
마을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도망간 요괴를 쫓아, 요괴의 산에 쳐들어갔을 때 걸었던 길이다.
기억 속에 남은 그 시절의 풍경은 지금의 풍경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즉, 이대로 간다면, 그때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거기 서십시오.」
그런 말을 건네받은 선대는 순순히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이 앞은 텐구의 영역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선대 무녀님.」
그때처럼, 텐구의 영역에 다가간 선대의 눈앞에 내려선 것은, 초계 텐구인 이누바시리 모미지였다.
수십 년이나 지났음에도, 요괴인 그녀의 외모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같은 방패와 검을 쥐고 그때와 똑같은 딱딱한 표정으로 침입자와 마주서고 있다.
단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며, 선대 무녀――정확하게 말하자면 하쿠레이의 무녀――의 권위가 텐구의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널리 퍼졌다는 것이었다.
모미지는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모습과는 달리, 선대에게 충분한 경의를 보이며 답했다.
「……경어는, 그만둬주지 않겠나」
「그럴 순 없습니다」
어딘가 간절히 바라는 것만 같은 선대의 말에, 모미지는 주저 없이 거절로 답했다.
이런 고집스러운 부분은 상대가 누구든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죠?」
선대는, 곤란하다는 듯 미소지었다.
「볼일은, 없다」
「무슨 뜻이죠?」
「너를 만나러 왔다」
모미지는 말을 잃었다.
드물게도 그녀의 눈이 예상치 못한 선대의 말에 동요를 보이며 흔들렸다.
선대또한 평소의 늠름한 몸가짐을 잃고, 묘하게 초조한 모습으로 모미지의 눈치를 살폈다.
「그……실은, 전에 다리를 다쳤다」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나았다. 보다시피 말이지」
「다행이군요」
「아. 그래서, 그러니까……그게 다다」
선대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을 맺었다.
정말로 볼일은 그게 다인 것 같았다.
그저 자신이 나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온 것이다.
그것도 천마나 대텐구 같은 텐구 사회에서 높은 지위를 가진 누군가도 아니라, 말단인 모미지에게 직접 알려주기 위해서.
아무 말도 없이 빤히 바라보기만 하는 모미지의 반응을 나쁜 뜻으로 이해한 듯, 선대는 어색한 분위기로 사죄했다.
「……방해해서, 미안하다」
도망치듯이 발을 돌린다.
「——잠깐」
모미지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경어가 아니다.
마치,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말투였다.
「이걸 가져가라」
몸을 돌린 선대의 품에 밀어 넣듯이, 작은 주머니를 들이민다.
낡긴 했지만, 못 쓸 정도는 아닌 주머니였다.
묶여있는 끈이 묘하게 어울리지 않았다.
선대는 그 자리에서 주머니를 열었다.
「……열매?」
「이 산에서 얻은 열매다. 영양가가 뛰어나지. 맛은 없지만」
모미지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평소에 자신도 먹는 것 같았다.
주머니 속의 열매는 여러 종류가 있었고, 그중 몇몇은 선대 또한 본 적이 있다.
일찍이 요괴의 산에서 수행하던 시절에 먹었던 것이다.
그런 그리운 느낌에 선대는 무심코 미소를 지었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 정도가 다다.」
모미지는 변함없이 무뚝뚝한 얼굴로 생각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속에 꽉 들어찬 수많은 열매와 일부러 끈만 새로 만든 주머니, 이것들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거쳐 준비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모미지는 기본적으로 마을에 방문할 일이 없는데다가 초계 임무에 소홀히 임할 리 없다.
선대와 만날 기회는 한없이 적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이것을 준비해둔 것이다.
모미지의 사정을 이해한 듯, 선대는 따듯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맙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렇게 보인 적 없는, 여성다운 명랑함이 들어찬 상냥한 미소였다.
「몸조심하도록」
「알겠다」
「그럼 이만」
「그래. ……저기」
「……또 보자」
「그래, 다음에. 다음에……다시」
너무나도 서투른, 두 사람의 재회를 약속하는 말.
그것을 끝으로 선대는 떠나기 위해 등을 돌렸다.
침입자를 맞아들이는 임무를 확실히 끝낸 모미지였으나, 바로 돌아가진 않은 채, 그 자리에 서서 선대의 등을 지켜봤다.
두 사람의 이별은, 그렇게 조용하기 이뤄졌다.
――하지만.
그런 둘의 곁으로 맹렬한 속도로 날아드는, 다른 텐구의 모습이 보였다.
「아앗―――! 잠깐 기다려, 기다리라고! 기다리란 말이야!!」
어수선하게 땅에 내려선 텐구의 정체는, 히메카이도 하타테였다.
상당히 서두른 듯. 숨이 목까지 차올라 있었다.
얼굴도 붉게 물들어 있었으나, 그 홍조는 그저 힘들어서 생긴 것은 아닌 듯 보였다.
하타테는 흥분――이라기보다는, 긴장을 필사적으로 감추며, 억지로 밝은 웃음을 선대에게 보였다.
「오랜만이네, 건강했어!?」
당황한 선대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몰아붙이듯이 말을 잇는다.
「이거 참—, 아야의 신문에서 네가 복귀했다는 걸 알아버려서 말이지—! 영원정이던가, 나도 병문안이나 가볼까 했었거든? 그런데 딱히 망설인 건 아니지만, 이변이 끝난 지 얼마 안됐잖아? 텐구인 내가 끼어들어서 이야기가 꼬이면 난처해질 거라고 생각해서. 딱히 모르는 곳이라고 쫄았던 건 아니지만. 조금 꺼린다고 할까, 이것저것 너무 복잡하게 생각해버려서 말이지—.딱히 이제 와서 만나는 게 불안했던 건 아니지만, 사실 그 뒤로 쭉 만나지 못해서 어떨까나—? 라고 생각했었거든. 그래도 꽤 빨리 퇴원했네? 아니, 딱히 네가 어찌되든 상관없어서 병문안을 가지 않은 건 절대로 아니니까 말이지!!」
말하면 말할수록 혼란스러워져가는 정신줄을 부여잡으며, 하타테는 간신히 말을 끝맺었다.
선대도 그녀가 필사적으로 진심을 전하려고 하는 마음만큼은 느낄 수 있었으므로,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하지만 그런 하타테는 쉴 틈도 없이 등뒤로 숨기고 있던――전부 가려지지 못했다――꽃다발을 들이밀었다.
「그게, 이건 병문안 선물! 사실은 오늘 당장이라도 가져가려 했는데, 건강해 보이니까 복귀한 걸 축하하는 겸으로 가져!」
「그래……고맙다」
「아니, 괜찮아! 미안해, 이렇게 평범한 것뿐이라. 아니, 딱히 너무 화려한 걸 줘봤자 곤란할까 했거든. 응, 그런 거니까!」
하타테는 남보다는 자신이 먼저 납득하겠다는 듯 힘차게 끄덕이며 이유 없는 미소를 지었다.
아까부터 단 한 번도 선대의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있다.
얼굴은 이미 새빨갛게 물들었으며, 차오른 숨은 진정되기는커녕 더더욱 있는 것 같았다.
꽃다발을 받은 선대는, 당황스러움을 내비치며 말했다.
「저기……」
「응, 왜?」
「네 이름을 알려주지 않겠나?」
「——」
그 한마디에, 하타테의 모든 것이 멈췄다.
목소리도, 머릿속도, 호흡마저도.
「서로 처음 보는 것 같다만……」
선대는 생소하다는 듯 물었다.
하타테는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무 반응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전신이 긴장으로 굳고, 삐질삐질 땀이 흘러나오고 있다.
토악질을 견디는 듯 창백해진 하타테의 안색을 알아챈 모미지가 살그머니 다가왔다.
「하타테 씨, 그녀 쪽에선 이게 하타테 씨와의 첫 만남입니다」
모미지는 하타테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그녀의 착각을 고쳐주었다.
「——히메카이도 하타테입니다」
하타테는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그렇게 말했다.
「그런가. 일부러 이런 것까지 챙겨줘서 고맙다, 히메카이도 씨」
「……그녀는 「하타테」라고 불러도 좋다, 는군」
모미지가 눈물이 나올 정도로 훌륭한 원호를 보낸다.
「그럼, 하타테. 고맙다. 꽃은 집에 장식해두지」
「아뇨아뇨, 뭘 그런 걸 가지고」
「너도, 다음 기회에 다시 보자」
「몸 조심해」
기적적으로 대답을 끝마친 하타테는, 망가진 인형처럼 떠나가는 선대에게 계속 손을 흔들었다.
아직도 당황스러움이 다하지 않은 듯. 선대는 돌아가며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려 하타테를 봤다.
그 모습에, 하타테는 또 한 번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이윽고 선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지자, 하타테는 모든 것에서 풀려났다는 듯 그 자리에서 토했다.
――그렇게 선대가 떠나고, 잠시 뒤.
무릎을 감싸 안고 주저앉은 하타테와 그녀의 토사물을 청소하는 모미지.
그 둘의 앞에 내려선 것은, 샤메이마루 아야였다.
「꺄하하하하하하하핫!! 처음……처음 만났대!」
아야는 천박한 목소리로 폭소했다.
그 대화를 모두 멀리서 구경하고 있었던 듯 하다.
「저기, 기분 어때? 자기애처럼 길렀던 상대방이 자기 얼굴마저 모를 땐, 어떤 기분이야?」
아야는 하타테의 주변에서 경쾌하게 발을 놀리며, 재수 없는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반쯤 재미로 하는 일이긴 해도, 나머지 반은 기분 전환이다.
일찍이 선대 무녀가 이 산에서 일으킨 사건과 거기서 자신까지 휘말리게 한 하타테의 난동에 아직도 원한을 품고 있던 것이다.
아야에게 그때 그 사건은 과거이며, 잊고 싶은 일이다.
그것을 이날 이때에 이르도록 항상 떠오르게 만드는 하타테의 말본새가, 고의였든 아니었든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 끈질긴 집념도, 저쪽에서는 겨우 그 정도라는 거야.
그 날부터 몇 년이나 지난줄 알아? 요괴의 산에서 일어났던 사건도, 선대 입장에선 이미 옛날 이야기라는 거라고. 인간과 요괴는, 시간 감각이 다르니까」
「……시끄러워」
「지금 와선 이미 늦었어. 이번 일이 없었으면 만나보지도 못하고 10년, 20년 세월아 네월아 보내다가, 정신을 차렸을 땐 저쪽이 죽어버렸을걸」
「시끄럽다니까, 그렇게 안 됐잖아! 확실히 제대로 만나는 건 처음이었지만, 이걸로 제대로 아는 사이가 됐다고!」
「그러네—, 부끄러워한 의미가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있었어, 충분히! 이름으로 불러줬기도 했고!」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뭐, 잘된 일 아냐? 이번에 준비한 꽃다발은 쓸모없어지지 않았으니까.
선대가 다쳤다는걸 알았을 때부터, 날만 되면 사서 말려죽이고, 사서 말려죽이고――저기, 집의 꽃병도 상당히 늘었던데, 지금부터 어떻게 처리할 거야? 그거, 이제 버릴 셈이야?」
하타테의 집에 들를 때마다 생각한 것마저 놀림감으로 써먹으며, 아야는 철저하게 매도했다.
그러나 오로지 참고 있던 하타테가, 그 한마디에 눈빛을 번쩍였다.
이 귀찮은 의기양양한 얼굴을 쳐부수기 위해, 반격을 시작한다.
「——아, 맞다—. 괜찮으면 네가 쓰지 그래? 전에 샀던 꽃, 이제 못쓰게 되지 않았어?」
아까까지만 해도 충만하던 들뜬 기분이 날아간 듯, 아야의 안색이 곧바로 뒤바뀌었다.
「영원정에 잠입했었지—, 신문에 쓸 사진 찍는다고. 이야, 넌 진짜로 행동력 좋네—, 나도 본받고 싶어—.
어라라, 근데 왜―일―까—요? 너, 그때 가져갔던 꽃을, 왜 다시 가져온 거야? 아니, 그 전에 꽃은 뭐 하러 취재하는 데 가져갔어?」
「아, 너……어떻게 그걸……!?」
「아니, 나는 그냥 네가 너답지 않게 꽃을 사는 걸 봐서, 그걸 기억하고 있을 분인데」
「큭!? 유도심문이라니, 하타테 주제에 건방지긴――!」
「네에, 자폭 확정! 뭐야, 이 머리 비뚤어진 녀석이! 너야말로 그 아이가 걱정돼서 맨 먼저 병문안 하러 간 거 아냐!?」
「전부터 말하겠는데, 그 자기중심적인 착각을 어떻게든 하란 말이야! 그건 체면치레로 산 간단한 선물이였어, 영원정에 줄 거였다고! 결국 안 썼지만!」
「나왔다, 나왔어! 너야말로 그 솔직하지 못한 머릿속을 어떻게든 해! 얼른 그 아이한테 가서 퇴원 축하한다는 한 마디라도 좋으니까 하고 오란 말야!」
「이야—, 넌 정말로 남 이야길 안 듣네—! 바보 아냐!?」
「그 아이의 다리가 낫는다는 기사, 난 네 신문으로 처음 알았어. 다른 까마귀 텐구들도 모르고 있었는데 말이지. 얼마나 빨리 알아낸 거야, 너!
다른 때엔 이러쿵저러쿵 뒷담만 까면서, 그 아이한테만 행동이 뻔하잖아! 네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보고 있으면 이쪽이 초조해진다고!」
「그건 그냥 내가 기자로서 너무 우수할 뿐—」
「됐으니까, 얼른 그 아이를 만나고 오란 말이야!」
「아아, 못 들었어! 아무것도 못 들었습니다!」
「이 심성 꼬인 년이!」
끝없이 이어지는 아야와 하타테의 말다툼을 들으며, 모미지는 산기슭을 내다봤다.
천리안으로 확인해보니, 선대는 벌써 요괴의 산을 떠난 뒤였다.
모미지는 둘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
【홍마관의 번갈음】
「——선대가 왔다고?」
소악마에게서 보고를 받은 파츄리는, 읽고 있던 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네. 문 앞에서 메이링 씨랑 이야기하는 걸 봤어요」
「그래. 무사히 회복한 것 같네」
「시간이 있다면, 파츄리 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다는데요?」
「의리 있는걸」
파츄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감사인사를 받을 정도가 아니라는 것은, 진심이었다.
확실히, 선대의 다리를 치료할 때 협력은 했지만, 그것도 얼마 안 되는 도움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아주 약간이긴 해도, 선대에게 꺼림칙함을 느끼고 있었다.
선대가 다리에 상처를 입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츄리는 그것에 대해 여러번 상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사정을 안 메이링이나 플랑도르는 물론, 레이무나 마리사, 끝내는 야쿠모 유카리까지 이곳에 방문하여 같은 질문을 했다.
――마법을 써서, 선대의 다리를 고칠 수 없어?
그때마다 몇 번이고 고뇌했으나, 결국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저 「선대를 다시 걸을 수 있게 만든다」라는 것뿐이라면, 가능했다.
다만, 그랬다간 선대는 인간이 아니게 됐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카테고리의 명확한 경계 따윈 파츄리도 정의내릴 수 없지만, 움직이지 못하게 된 다리 대신 「다른 무언가」를 끼워 넣는 것을, 과연 치료라고 부를 수 있을까.
결국, 제안만을 했을 뿐, 그 말을 들은 자들은 모두 거절했다.
선대 그 자체를 인간에서 다른 무언가로 바꿔버리는 방법은 물을 것도 없었다.
그때, 파츄리는 무력했다.
그런 자신을 대신하여 기적을 일으킨 것이, 야고코로 에이린의 기술이다.
자신은 그저, 그를 위해 필요한 것들 중 일부를 준비했을 뿐이다.
「일단,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줘」
파츄리는 그 한 마디로, 선대와의 면회를 거절했다.
「만나지 않으실 건가요?」
「지금은 「손님 접대 중」이니까」
「——알겠습니다.
선대는 레밀리아 님이 일어나계실 밤에 다시 온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때라도 내키시면, 부디 불러주세요」
「그래」
「그럼, 선대에게 전해드리고 오겠습니다」
「아, 소악마」
「예?」
「새로운 일을 줄 테니까, 빨리 돌아와」
「……칫」
소악마는 훌륭한 미소를 지은 채, 파츄리에게 겨우 들릴 만큼 작게 혀를 찼다.
물론, 일부러 들리게끔 한 것이다.
이미 주어진 일을 모두 끝냈을 정도로 유능한 사역마지만, 그 이유가 「빨리 끝낸 뒤 선대를 보기 위해서」라는 것을, 파츄리는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럼――전 이만」
정중한 말투와 함께 소악마는 도서관을 나섰다.
변함없이 빈틈없는 사역마에게 약간이나마 감탄하며, 다른 감정을 한숨으로 바꿔 뱉어냈다.
문이 닫히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뒤쪽의 책장을 향해 말을 건넨다.
「나와, 마리사」
「……들켰나」
봇짐을 짊어진 마리사가, 핫, 하고 악당 같은 미소를 지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좀도둑 같은 짓은 그만둬. 강도 같은 짓도 말이지」
「메이링한테는 안 들켰는데」
「선대가 있었으니까. 아니면 알고도 보내줬거나」
파츄리는 그렇게 단정지었다.
메이링의 문지기로서의 실력엔 한 치의 의심도 없다.
「눈, 나았나보네」
안내판을 사이에 두고 책을 덮은 채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선 파츄리는 마리사와 얼굴을 마주했다.
바깥에 나가기는커녕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하던 평소의 모습과는 달랐다.
똑바로 마주보는 파츄리의 시선을 받자, 반대로 마리사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맞아. 파츄리는 이 눈의 비밀을 전부 알고 있었구나」
「그래, 마법사니까」
「내 미숙함이 뼈저리게 느껴지는걸」
「겸손함은 미덕, 비굴함은 악덕이야. 어느 쪽도 마리사한테는 어울리지 않지만」
「……항상, 네 말은 알기 힘들다구」
마리사는 곤란하다는 듯 억지로 웃을 뿐이었다.
평소라면 농담이라도 했었을 것이다.
파츄리가 위화감을 느끼고 있을 때, 마리사는 가져온 봇짐을 책상 위에 펼쳤다.
조금 거친 손놀림이었으나, 안에 들어있던 책들은 제대로 크기를 맞춰 보기 좋게 정돈되어 있었다.
「본 적 있는 책이지?」
파츄리는, 그 책들이 전부 이 도서관의 책들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빌렸던 책, 돌려줄게」
「죽을 때까지 빌리는 거 아니었어?」
「도둑이 될 생각은 없거든」
「네가 할 말은 아닌걸」
책의 내용을 확인하며, 파츄리는 자연스럽게 질문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딱히. 마음이 변했을 뿐이야」
「레이무한테 졌나보구나」
마리사는 무심코, 큭, 이라며 기묘한 신음소리와 함께 목소리를 흘렸다.
「……봤었나보네」
「들은 거야. 그런데 심정의 변화라니, 설마 패배자 근성이라도 박힌 건 아니겠지?」
파츄리는 가차 없이 캐물었다.
그 도발에 마리사는 격렬해질 것도 없고, 즉답도 하지 않았다.
「레이무는……천재야. 게다가, 남을 위해 노력까지 할 수 있는 녀석이니까, 어쩔 수 없다구」
힘없는, 허세 깃든 미소를 지으며, 입을 다문다.
그 말은, 틀림없이 마리사의 약한 속내를 보여주고 있었다.
「뭐, 그렇다고 지고 있기만 해선 안 되겠지!」
마리사는 억지로 밝은 모습을 내보였다.
고민할 필요도 없다. 한껏 힘을 불어넣은 허풍이란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자기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마리사는, 파츄리가 몸을 걱정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짓을 했다.
그것 또한, 레이무에게 이기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과 도박은, 그 이변의 싸움에서 전부 가치 없이 끝나버렸다.
지금, 마리사가 느끼고 있을 무력함을, 파츄리는 이해해 줄 수 없었다.
그것은, 자신이 마법사이기 때문이다.
마의 이치를 알고, 다루기 위해 마음을 버리고 온갖 사물을 항상 평정심 갖고 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소한 문제나 싸움에 일일이 전력을 쓰는 경박한 행동을 해선 안 된다.
마법사의 전력이란, 항상 어느 정도의 여력을 남긴 것을 가리킨다.
전신전령을 걸고 무언가에 도전하여, 만약의 때를 대비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래서, 마리사는 마법사로서 미숙하다.
그래서, 파츄리는 마리사의 마음을 알아줄 수 없다.
「——마법사로서는, 하쿠레이의 무녀에게는 이길 수 없을 거야」
파츄리는 말했다.
그 말에 대답하려한 마리사를 막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그 레이무에게 이길 수 없으면, 마리사는 마법사가 될 수 없어」
레이무에 이기고 싶다, 라는 강한 집착――그것을 잃지 못한다면, 마리사는 마음을 버린 진짜 마법사가 될 수 없다.
그 결론을 이해하지 못한 듯, 마리사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뜻이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 혹시, 나 격려 받고 있는 거야?」
「글쎄.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네」
「임마」
「우선,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걸 말했을 뿐이야」
「뭐야, 요컨대 방금 그 말은 조언이라는 거야?
그래도, 역시 알기 힘들다구. 좀 더, 나한테 필요해 보이는 내용을 요점만 알려줘」
「무리야. 나로선 네 생각을 전혀 이해할 수 없으니까」
파츄리는 지쳤다는 듯, 다시 의자에 몸을 기댔다.
「어째서 그 하쿠레이 레이무에게 그렇게나 얽매이는 거야? 그것 때문에 터무니없는 짓을 할 이유라도 있어? 제대로 마법사가 될 생각은 있고? 나한테 뭘 바라는 건데? 애당초, 왜 나는 너와 만난 걸까? ——알 수 없는 것뿐이야」
「……마지막 말, 조금 너무하지 않아?」
「시끄러워. 너랑 있으면 상태가 이상해져. 나는, 모르는 게 싫어」
「——」
「좀 더, 나도 알법한 행동원리를 가지고 움직여줘. 감정을 이유로 들먹여도,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까. 이 근육덩어리. 바보. 죽어」
「……역시, 너무해」
대화를 나누며, 점점 자신이 지리멸렬해지더니, 마지막엔 결국 자포자기 해버렸다.
파츄리의 매도를 들은 마리사는 푹 풀이 죽었다.
레이무와의 승부로 여러 모로 뒤끝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런 게 어찌되든 상관없어질 정도로 더욱 힘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럴 땐, 약한 모습을 보여준 나한테 격려나 질책을 해줘야하는 거 아냐?
그런 타산적인 생각으로 여기에 온 것도,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지만, 마리사는 속으로 푸념을 하지 않고 배길 수 없었다.
아니, 이미 자신이 해야 할 것은 알고 있다. 포기한다는 선택지는 없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좀 더, 이렇게……상냥히 대해줘도 괜찮지 않아? 친구니까. 친구……인가?
그렇게 고민하는 동안에도, 마리사는 더더욱 풀이 죽고 있었다.
둘 다 입을 다물고, 거북한 침묵이 이어진다.
두 쪽 다 찜찜한 기분이었다.
서로 상대방에게 무어라 말하고 싶은데, 말할 수 없다.
말해봤자, 이대로 이야기가 맞물릴 거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헤어질 수도 없다.
연이은 매도를 들어 풀죽은 마리사는 속앓이에, 반대로 파츄리는 고집으로 서로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다.
두 사람 사이로 흘러가는 시간은 야박했으며, 또한 머지않아 찾아올 구원이기도 했다.
「——그대로 「어두워졌으니까 돌아갈게」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될 때까지, 둘 다 영영 기다릴 셈일까요?」
「신경 쓰이면 도와주러 가는 게 어때?」
「괜찮아요. 시간이 해결해 줄 테니까」
「시간은 만능이란 거네」
두 사람이 있는 테이블에서 멀찍이 떨어진 책장의 그림자에 숨겨지는 곳에 놓인 또 다른 독서용 테이블.
그곳에, 도서관에서 나갔음이 분명한 소악마와 책을 읽는 앨리스가 있었다.
소악마는 나가는 것처럼 연기한 뒤, 재빨리 도서관으로 돌아와 마리사와 파츄리의 대화를 일일이 자세하게 훔쳐보고 있던 것이다.
한편 앨리스는, 처음부터 손님으로서 이 도서관에 눌러 앉아 있었다.
파츄리가 말한 「손님 접대 중」이란, 사실 앨리스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파츄리 님은 정말로 완벽하게 앨리스 씨를 잊으셨네요」
「딱히 상관없어, 나는 단순한 도서관의 이용객이니까. 신경 쓸 필요는 없지」
「그건 그렇습니다만, 적어도 같은 레벨의 마법사가 자신의 도서관을 사용하고 있는데, 움직임조차 신경 쓰지 않아서야 위기관리가 약간 소홀한 거 아닐까요」
「흠, 일리 있는걸. 그녀는 우수한 마법사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언밸런스한 결점이, 가끔 눈에 띄어」
「후후, 역시 날카로우시네요」
소악마는 유쾌하다는 듯 동의했다.
「그래도 그게 「좋다」는 거에요. 저는 결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그래?」
「예, 물론이죠.
마리사 씨는 마법사로서 미숙합니다만, 파츄리 님은 인간으로서 미숙하죠. 그게 좋아요. 저는, 그런 두분 다 정말 좋아해요」
「악마적인 감상이네」
「예, 악마에요. 완벽한 마법사인 앨리스 씨는 모르겠지만요」
「과대평가야. 나도, 결코 완벽하지 않아」
앨리스는 책에 시선을 떨군 채, 속이 숨겨진 것만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호오, 그런가요」
「그래」
「그렇지만, 이상하네요. 그 「완벽하지 않은」이유나 사정 같은걸, 저는 알고 싶지 않고, 흥미도 나지 않아요」
「그래. 다행이네」
「예. 유감이에요」
두 명은 겉으로만 이어지던 대화를 거기서 끊고, 그 뒤로 서로를 향한 흥미를 완전히 잃었다.
「그럼, 볼일을 끝내고 다시 올게요」
「그래. 다녀와」
허식만 가득 찬 인사를 나눈다.
그때 갑자기, 앨리스는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것을, 날아가기 직전이던 소악마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그 왼손은 왜 그래?
제대로 형태는 잡혀있지만, 제 기능은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은데. 손목부터 시작해서, 뭔가의 영적인 상처를 크게 입은 것 같은데」
「후후, 역시 들켜버렸나요. 작은 아가씨나 파츄리 님은 잘 속였는데 말이죠.
뭐, 이건 그거랍니다. 명예의 훈장이란 거요. 괜찮으시다면, 이건 말하지 말아주세요. 어차피 며칠 뒷면 완전하게 나을 테니까요, 저는 작은 아가씨를 정말로 좋아하거든요」
「그래. 솔직히, 반 정도 말을 이해할 수 없지만, 말하지 말아달라면 따로 말할 이유도 없으니까」
「감사합니다. 당신의 그런 빈틈없는 점이, 귀염성이 없어서 싫어요」
「칭찬해줘서 고마워」
소악마와 앨리스는,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이번에야말로 작별했다.
◆
【마을에서의 교차】
마을의 진료소는 아직도 휴업중이라는 팻말이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끌벅적했다.
오늘은 선대 무녀가 치료를 끝마치고 돌아오는 날.
그녀가 돌아오기 전에 케이네가 먼저 찾아와 청소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선대에게 허가는 받았다.
길 줄 알았던 영원정에서의 입원 기간도, 겪고 보니 꽤 짧았다.
평소에도 선대가 스스로 청소를 해온 곳이다.
다리에 장애가 생긴 이래 여기저기 손이 닿지 않아 더러워진 곳이 있기는 해도, 케이네 혼자서 반나절만에 전부 끝낼 수 있었다.
「케이네, 다녀왔어—」
「아, 모코우. 마침 잘 왔군, 청소도 끝난 참이다」
장을 보러 갔던 모코우가 진료소에 돌아왔다.
처음엔 청소를 도우려고 했지만, 축하하는 겸 식사도 준비해두는 게 어떠냐는 제안이 나와, 서둘러 식재료 심부름꾼 역할을 맡게 된 것이었다.
「……엄청난데, 왠지 반짝반짝 거리고 있어」
「아니, 그만 기합이 들어가고 말았다」
구석구석까지 반짝반짝하게――그런 표현이 정확하게 들어맞을 법한, 청소가 끝난 실내를 바라보며, 모코우가 한숨을 내뱉었다.
솔직히 너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작 케이네는 의기양양한 얼굴이었기에, 그냥 말없이 침묵을 지켰다.
「식재료는 제대로 사왔나?」
「응, 전부 팔고 있었어. 이걸로 생각해둔대로 요리를 만들 수 있겠는걸」
「그럼, 빨리 시작하지. 선대님도 저녁이 되기 전에 돌아오실 테니까」
「아, 사실 그게 말인데――」
모코우가 문지방을 넘어 안에 들어서자, 그녀의 뒤로 진료소 안에 발을 디디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한 명은 자기 집인 것 마냥 당당하게, 다른 한 명은 안을 살펴보며 조심스레 들어온다.
「실례할게」
「시, 실례하겠습니다. 저기, 그게. 이야기를 들어서 실례를 무릅쓰고……죄송합니다」
「윽, 카자미 유카인가. 그리고――」
「콘파쿠 요우무라고 합니다」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에서 여유와 관록이 묻어나는 유카와, 그런 그녀와는 반대로 송구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는 요우무였다.
케이네는 유카하고만 안면을 텄으며, 모코우는 둘 다 모른다.
얼굴을 마주하기엔, 기묘한 조합이었다.
「요괴 쪽이랑은 아는 사이였구나. 그게 말이지, 서로 진료소에 볼일이 있다는데 선대랑 아는 사이인 것 같아서 들여보냈어」
「그런가. 지금은 아직 오지 않으셨다만, 선대님은 얼마 안 있어 돌아오실 테지. 괜찮다면 여기서 기다려줄 수 있겠나?」
「아니, 사양할게」
「저기, 저도……죄송합니다. 딱히 중요한 볼일도 아니고, 선대와는 서로 얼굴을 아는 정도일 뿐이니까요……」
태도에 차이는 있어도, 둘은 비슷한 사정으로 들른 것으로 보였다.
선대와 굳이 볼 이유는 없지만, 진료소 근방에 들른 이유가 있다.
케이네와 모코우는 무심코 얼굴을 마주봤다.
「——흠. 뭐, 억지로 말리지는 않겠다만.
유카, 정말로 갈 셈인가? 아마 선대님은 네게 감사를 하고 싶으실 텐데」
선대의 다리를 치료할 때에 모은 협력자 중에, 유카가 있었다는 것을 케이네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제공한 약초는 많은 도움이 됐다고 들었다.
케이네의 질문에, 유카는 코웃음 치며 대답했다.
「내가 선대에게 굳이 빚을 갚으라고 말하러 왔다고 생각해?」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너는 감사받는 걸 싫어할 테지」
「……꽤 말이 늘었네」
「그렇게 됐다」
케이네는 대담한 미소로 대답했다.
예전에 마을에서 만났을 때와는 다르다. 여유가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은 되지 않았다.
유카는 다시금, 케이네를 똑바로 마주봤다.
케이네와 만난이래, 처음으로 보이는 행동이었다.
「받아. 축하 선물이야. 선대에게 건네줘」
펼쳐진 손바닥에서, 팔락팔락 몇 개의 씨앗이 떨어지자, 케이네는 당황하며 그것을 받아냈다.
처음부터 손에 쥐고 있던 것은 아니다.
유카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불가사의한 씨앗이다.
「이건?」
「꽃의 씨앗이야. 화분에 심는 걸 추천할게. 실내에 장식해둬」
「어떤 꽃이지?」
「겉보기는 소박해. 하지만 그 꽃의 향기엔 마음을 침착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어. 진료소 장식으로 쓰기에 딱 좋지 않아?」
흥미 없다는 듯 대답하고선, 이걸로 볼일은 정말로 끝났다는 듯 유카는 발을 돌렸다.
현관으로 나가며, 그저 조용히 서있던 요우무도 자연스레 부르며 함께 돌아가자 재촉한다.
「저기……」
「가자. 네 볼일은, 여기엔 없잖니」
멋대로 단정하는 유카의 말을 요우무는 부정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케이네 일행에게 고개를 숙인 뒤, 진료소에서 나간다.
한순간뿐이었지만, 그야말로 폭풍처럼 지나간 유카의 뒷모습을, 아직 제대로 사정을 파악하지 못한 모코우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삼켜져버렸네……저 유카라는 녀석의 분위기에」
「으음. 여전히 대단한 녀석이로군」
「역시, 거물이야? 왠지 해를 끼칠 것 같진 않아서 그냥 데려온 건데」
「플라워 마스터 카자미 유카는, 연륜에 힘까지 갖춘 강력한 대요괴다. 도를 지키고는 있다만, 인간에게 우호적인 상대는 결코 아니지」
「우와—, 역시나. 그런 요괴와 사부는 대체 무슨 사이래?」
모코우는, 그 이변 뒤로 선대 무녀를 사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유카는 선대님과 한 번 승부를 한 뒤 지고 말았다. 그래서 한 번 더 싸우려 들고 있지. 그것도 어느 한쪽이 죽을 때까지 말이야」
「예상보다 더 살벌해!?」
「선대님은, 유카를 친구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만」
「……저번부터 드는 생각인데, 사부는 거물이네」
「그렇지? 나도 동감이다!」
「아니, 딱히 칭찬한 게 아니야」
케이네도 약간 머릿속 나사가 풀렸어—,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속내를 전혀 내보일 생각이 없는 모코우였다.
「——하지만 결국 저 요괴가 어쩌려고 진료소에 온 건지, 그걸 모르겟네」
「그러고 보니, 그 요우무라고 하는 소녀도 그렇군」
둘은 함께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료소에서 나온 뒤, 얼마 걷지 않아 유카는 발을 멈췄다.
그 뒤를 따라 걷던 요우무도 함께 멈춰섰다.
「나는 돌아갈 거야. 넌?」
「아, 네. 저도 돌아가려고요」
「그래. 잘 가렴」
산뜻할 정도의 작별인사였다.
이 둘은 조금 전, 안면을 튼 게 다다.
모코우가 우연히 둘에게 말을 걸었을 뿐, 아는 사이긴 커녕 첫 만남이었다.
그저 「선대 무녀의 진료소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라는, 기묘한 공통점이 있을 뿐이었다.
「……당신은, 어째서 그곳에 간 건가요?」
여기서 헤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요우무는 무심코 유카에 질문했다.
천천히, 양산으로 가려진 등이 이쪽을 향한다.
그것뿐인 동작 속에서, 등골이 오싹함에 싸늘하게 식어가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땅에서 뻗어 나온 한 줄기 빛의 기둥이, 달을 부쉈지――」
그 말에, 요우무는 숨을 삼켰다.
이번에 일어난 이변을 말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 이변은 「영야이변」이라 일컬어지며 환상향 전역에 퍼졌다.
일부의 관계자 외엔, 그 이변이 사실은 「가짜 달이 떠오른 이변」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리고 그 가짜 달을 소멸시킨 것이, 바로 그 선대 무녀라는 사실도――.
「아무래도, 넌 거기 있었던 모양이네」
요우무의 반응에서 정확하게 속내를 읽어낸 유카는 유쾌하다는 듯 미소지었다.
아름답지만, 역시 등골이 오싹해지는 무서운 미소였다.
「당신은――」
「알아. 왜냐면, 그 빛은 그 녀석의 힘이니까. 내가, 그 녀석 힘을 몰라볼 리가 없어」
말을 빼앗듯이, 유카는 질문에 답했다.
「달을 부술 정도의, 그 강대한 힘에 매료돼서, 무심코 여기까지 찾아왔겠지――아니야?」
「……아뇨, 맞습니다」
「너랑은, 뭔가 통하는 게 있다고 생각했어」
「제 진짜 목적은, 선대님이 아닙니다」
「그것도 알아.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하하호호 수다를 떨고 있을 수 없었을 테니」
「만약, 목적이 선대님이었다면, 어쩔 생각이셨나요?」
유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도전적인 요우무의 태도에, 작게나마 입가를 기울였을 뿐이었다.
서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 시선과 함께, 살기와도 같은 무언가가 나뉜다.
하지만 결국, 유카에게서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잖니」
「네. 제 목표는, 하쿠레이 레이무니까요」
「헤에, 선대의 딸이라. 나는, 그쪽에는 흥미 없지만」
「거기다 선대님의 힘에도 순수하게 감탄했습니다. 이상적인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네 목표는, 아무래도 달을 떨구는 것보다 어려울 거야」
「네. 하지만 머지않아 반드시――」
――나도 달을 부서주지.
――나도 달을 베어주지.
두 명은 자연스레 서로 비슷한 미소를 지었다.
흉포한 미소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서 기묘한 무언가가 오가는 것 같은 미소였다.
마치 다른 사냥감을 노리다 마주친 사자와 늑대가, 서로를 인정하며 짓는――짐승의 표정이었다.
「네 건투를 빌게」
「건투도, 기원도 필요 없습니다.」
「우연이네. 나도 마찬가지야」
「그럼」
「그래」
「앞으로 다시 만날 수 없겠죠」
「그렇겠지, 잘 가렴」
두 마리 짐승은 서로 등을 돌린 채 서로의 사냥감을 노리고 걷기 시작했다.
◇
【집으로의 귀한】
……해줘〜. 시합해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느새 에이린과 싸우게 되어버린 권.
죄송합니다, 무심코 나댔습니다.
아무리 완전 부활 덕분에 텐션이 올라갔다지만, 재활훈련 첫 번째가 에이린과 대련이라니 레벨이 너무 높잖아!
물론 에이린도 날 배려해서 꽤 봐준 것 같지만, 그럼에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여태까지 수많은 상대와 싸워봤지만, 합기도를 쓰는 상대는 처음이었어.
나도 요괴를 상대한 적이 많았으니 힘을 받아넘기는 기술엔 자신 있었지만, 역시 본고장은 달랐다.
결국, 끝까지 기술의 원리를 알아낼 수 없었다.
예비지식 없이 당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파문과 바키 쪽 지식이 없었다면 즉사했을 거야…….
진심으로, 무서운 상대란 생각이 든다.
원작에서도 최강 레벨 캐릭터니, 긴장감이 범상치 않다.
뭐, 원작 캐릭터와 하는 전투는 상대가 누가 됐든 마음을 놓을 수 없지만.
그 다음에 왠지 조금 심각한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그건 됐다. 딱히 중요한 건 아니다.
죽음이라는 것을 가벼이 여기는 건 아니지만, 내 입장에서 보자면 새삼스러울 정도다.
이래 뵈도 한 번 저승 체험까지 했으니, 겉치례가 아냐―! 라는 느낌.
현역 시절에는, 싸움은 물론이요 수행까지 필사적이었다.
객사 정도는 항상 각오하고 있었던, 젊었던 그 시절.
그때와 비교해,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딸에게 마지막 가르침을 남기고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로 훌륭한 의미를 가진 최후라고 생각한다.
그날이 올 때까지, 그 아이가 목표로 삼기에 걸맞은 등을 가진 부모로서 살아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영원정에서 나온 나는, 마을로 돌아가는 길에서 벗어나 아는 사람들이 있는 곳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재활훈련을 핑계 삼아 달리다보니, 어느새 즐거워졌다.
반년 만에 해보는 달리기.
그곳엔, 건강한 몸으로 달려나가는 선대 무녀의 모습이――!
「이젠 두 번 다시 오니와 싸우지 말아야겠군」
……정말로 안 싸울 수 있으려나?
싸우지 않아도 괜찮겠지?
왜, 왠지 플래그가 꽂힐 것만 같은 느낌이야, 이 일은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
어쨌든, 여기저기 다른 곳들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린노스케는 만날 수 있었지만, 태양의 밭에 유카는 없었다. 으으, 꼭 감사인사 하려고 했었는데.
만날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으니, 그 뒤에 요괴의 산과 홍마관에 들르고 나서야 겨우 마을에 돌아왔다.
아 맞다, 요괴의 산에서 예상 못한 사건을 겪었다.
내가 요괴의 산을 처음 오른 것은 적어도 수십 년은 된 옛날이야기다.
게다가 그 당시 큰 사건을 일으키고 말았다.
환영 받지도 못할 테고, 애당초 기억하고 있을지도 의문이지만――그럼에도 나는 내 자신의 무사함을 모미지에게 일러두고 싶었다.
물론, 아야에게도 알려주고 싶었지만, 여기선 결국 만날 수 없었다.
뭐, 홍마관에서는 아야의 신문을 보고 내 퇴원을 알고 있다고 했으니, 좋을 대로 생각하자.
왠지 모르게 삐걱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모미지와 만났지만, 여기서부터 예상치 못한 사태가 시작됐다.
――놀랍게도. 모미지가 내게 퇴원 축하 선물을 준 것이다!
병문안은커녕 칼부림이 날 가능성도 높았던 만큼, 의외이기도 했고 감동하기도 했다.
고마워. 소중히 먹을게.
정말로 기뻤다.
과감하게 만나러 온 게 정답이었다.
어째서일까? 나도 잘 모르겠지만, 모미지와 아야는 나도 모르는 새 특별한 관계가 되어있는 것만 같았다.
딱히 깊게 사귄 적도 없을 텐데――.
그리고 너무 갑작스러워 당황하고 말았지만, 다시금 놀랍게도 그 히메카이도하 타테에게도 퇴원 축하 인사를 들었다.
어라? 오늘 내 생일인가?
뭔가 착각을 하고 있던 것 같아, 무심코 제대로 인사를 할 수 없었지만, 다음에 만날 일이 있다면 꼭 말하자.
――그런데 나 분명 하타테랑 처음 만난 거 맞지?
원작 지식이 있는 만큼, 첫 만남을 가진 상대에게 실수로 친근하게 대하지 않도록, 그런 기억들은 제대로 정리해뒀을 텐데.
거기다 하타테에게서도 왠지 묘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으음, 왤까? 좋은 느낌이기도 했으니, 다음에 또 찾아가볼까.
아야랑도 다시 만나고 싶고.
그리고 지금, 나는 나의 집인 진료소의 앞에 서있다.
집을 그리 오래 비워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집에 멀쩡한 다리로 돌아오는 건 정말로 오랜만이다.
심호흡을 한 번 하며, 나는 문을 열었다.
「! 어서와, 사부. 저녁밥 만들어놨어」
「어서오십시오, 선대님. 오늘 밤은 축하로 보내죠」
모코우와 케이네가 미소로 날 맞아준다.
케이네가 기다리고 있겠다는 말은 했었지만, 아니, 뭐랄까……기쁜걸.
영원정부터 시작하여, 오늘 하루 다양한 곳에 들르고, 마지막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러고 보니, 내 집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일지도 모른다.
조금 부끄럽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미소를 지으며 둘에게 답했다.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