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30 「육리무중」
마을의 어느 길, 한 남자가 도망치고 있다.
그 뒤를 쫓는 것은 바로 오니.
「거기 서어어~, 먹어주마아아~」
남자의 세 배는 될 법한 거구의 오니가 외친다.
마치 아이처럼 어눌한 말투에서는 한 조각의 지성조차 느낄 수 없었다.
배가 고프니 눈앞의 인간을 먹는다. ──그 하나의 욕구에만 지배된 본능밖에 없는 하등한 오니.
하지만, 쫓기는 인간에겐 이 오니와 지성을 가진 오니의 차이 따윈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오히려, 가장 단순하게 실감할 수 있는 요괴가 가진 원초적인 공포를 가진 오니였다.
야무지지 못하게 벌어진 입에선 썩은 내가 나는 침과 함께 기나긴 혀가 꿈틀댄다.
그 오니의 왼팔은, 팔꿈치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뜯겨나간 근육과 살덩이 사이로 노출된 뼈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 뼈마저 손 부분은 부서졌는지 사라져 있었다.
전투 중에 입은 부상, 은 아니다.
남자가 이 오니와 마주쳤을 때부터, 그 팔은 저꼴이었다.
이건 남자가 모르는──모르는 편이 좋은──일이지만. 이 오니는, 너무 굶주린 나머지 자신의 팔을 몇 년 동안 조금씩 뜯어 먹은 것이다.
「거기 서어어어~」
굶주림이란 광기에 물든 오니는 포기한다는 이성도, 앞질러 길을 막는다는 지혜조차 없이, 그저 똑같은 말만을 반복하며 남자의 뒤를 쫓았다.
그런 우직하고 끝없는 추적에서 평범한 인간이 제대로 도망칠 수 있을 리 없다.
남자의 체력에 한계가 찾아온다.
다리가 얽혀, 넘어진다.
바로 고개를 들어보니,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오니의 입이 보였다.
추적한 사냥감의 저항을 즐긴다는 여유로운 사고를 굶주린 오니가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잘먹겠습니다아아」
위아래로 빽빽이 자리 잡은 이빨이, 절망에 가득 찬 남자의 머리를 물어뜯기 위해 좁혀든다.
남자의 비명이 오니의 입속으로 사라져가던 그 순간──.
「빙괴 「그레이트 크래셔」!」
남자의 코앞에서 오니의 입이 닫혔다.
앞머리가 아주 약간 뜯겨나간다. 말 그대로 위기일발의 상황.
오니의 입을 닫은 것은, 머리 위에서 낙하한 엄청난 질량을 가진 것과의 충돌이었다.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굶주린 오니의 정수리에 낙하한 것이다.
「아파아아아앗!!」
머리의 데미지만이 아니라, 갑자기 입이 닫힌 탓에 자신의 혀까지 물어뜯고만 오니는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제대로 된 지능조차 없는 저급 요괴일지어도 오니.
그 완강함은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고통의 외침이 그대로 분노로 물들고, 머리에 꽂힌 얼음 덩어리에 주먹을 힘껏 때려 박았다.
단 일격에, 바윗덩어리나 다름없는 무게와 단단함을 자랑하던 얼음이 산산조각난다.
「이, 이럴 수가!? 이 몸의 새로운 필살기가!」
부서진 얼음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치르노였다.
「뭐야아……너어, 방해하지 마아」
아무리 지능이 낮아도 종족이 가진 격의 차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자신을 방해한 것이 요정이라는 것을 알자, 오니는 몸에 붙은 벌레를 털어내듯이 팔을 휘둘렀다.
맞으면 아까 부서진 얼음덩어리와 같은 말로를 맞이할 공격. 하지만 치르노는 그런 공격에도 기죽지 않고 침착하게 피해냈다.
대부분의 능력이 이 저급한 오니보다도 못한 치르노였지만, 속도 하나만은 더욱 위였다.
「메롱이다아─! 안 맞는다고!」
「이게에~!」
「치르노, 이제 됐어! 떨어져!」
서로 장난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 치르노에게 지시가 내려졌다.
치르노는 순순히 그 말에 따라 재빨리 오니와 거리를 벌린다.
거리를 벌려 멈춰 선 위치엔 어느새 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치르노가 미끼역할을 하고, 그 틈에 첸이 남자를 안아들고 재빨리 자리를 이탈한 것이다.
아이와 비슷한 체격을 가진 첸이지만, 그녀의 정체는 고양이 요괴이며 거기에 더해 지금의 그녀는 야쿠모 란의 「식신」으로서의 힘을 받아 평소보다도 더욱 강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태다.
「너, 너희는 대체……?」
갑자기 나타난 요정과 요괴. 게다가 겉모습은 작은 여자애들.
아직도 저편에서 날뛰는 오니의 흉측한 모습에서 느껴지는 갭도 포함하여, 도움 받은 남자는 매우 놀라고 있었다.
「야쿠모 란 님의 명에 따라 왔습……온! 첸이에……다!」
「이에, 다?」
「으읏, 시끄러워, 인간! 어쨌든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니까 방심하지 마!」
실태를 속이기 위해 첸은 힘껏 요괴다운 「잘나 보이는 말투」를 썼다.
「후훗, 걱정하지 마. 이 몸이 저 오니를 박살내줄 테니까!」
치르노는 팔짱을 끼며 자신만만하게 외친다.
원망스런 빛으로 번뜩이는 오니의 탁한 눈빛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반대로 노려보는 치르노.
기개만은 훌륭했다.
하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첸은 그것을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었다.
「무리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상대가 오니라는 거 알고 있어!?」
「이 몸의 사부는 그 오니를 쓰러트렸어!」
「그게 뭐!?」
「즉, 그 첫 번째 제자인 이 몸 또한 오니를 쓰러트릴 수 있다는 거지!」
「뭐야 그 이론은!?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솟는 건데! 이렇게 된 것도 네 탓이잖아!」
「마을의 오니를 퇴치하는 게 네 일이잖아?」
「아니야, 난 정찰이라든가 보조라든가……그런 사소한 일을 명령받았다고! 나한테 무슨 힘이 있다고 오니랑 싸우라는 건데!」
「한심한 녀석!」
「뭐어─!? 요정주제에, 무슨……」
치르노와의 말다툼에 기를 쓰며 소리치던 첸은, 문득 제정신을 차렸다.
「건방진, 말을……」
고개를 돌려보자, 그곳엔 이쪽을 향해 힘껏 뛴 오니의 거체가 시야를 가득 매우고 있었다.
「저언부 싸잡아, 먹어주마아아~」
「우와아아악!?」
「냐아아앙!?」
「덤벼!」
첸과 남자의 비명이 겹치고, 치르노가 용감하게 외친다.
오니에 덮쳐지는 인원이 둘 늘어난 것을 빼면, 아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이번엔 한 방향에서 휘몰아친 불길이 다가오던 오니를 덮친 것이다.
「──나 참, 이래서야 재탕이잖아」
오니의 거체를 꼼꼼히 휘감으며 밀어낸 불길은 자연적인 것으론 보이지 않았다.
치르노 일행의 뒤에서 날아온 그 불길은, 봉황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히 인위적인, 요술과도 같이 뻗어 나온 불길은 표적에 맞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니의 온몸을 엄청난 화력으로 불태웠다.
한 손에 남은 불길의 흔적이 어슴푸레하던 숲속을 밝혔다.
그 손의 주인은 바로 모코우였다.
게다가 옆에는 테위까지 함께 있었다.
「치르노, 먼저 가지 말랬잖아?」
「하지만 이 몸이 이 녀석을 구했는걸」
「……뭐, 그렇다면야 괜찮지만」
「아……저기」
「아, 누구? 첸……이였나」
「네. 그……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괜찮아. 먼저 앞서 가버린 사형 때문이니까」
「형씨, 허리가 빠진 건 아니지? 혹시라도 그랬다간 두고 간다?」
모코우가 첸과 치르노를 상대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테위가 심술궂게 웃으며 땅에 넘어진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남자를 제외하면 모두가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것은 아니다.
원래는 같은 곳에서 밤을 보냈을 리 없을 인요 일행이, 오늘 밤엔 어찌된 일인지 행동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모, 모코우 씨……」
「어라, 너 자경단 사람 아니야?」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모코우와 남자는 서로가 아는 사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아챘다.
모코우는 헤매임의 죽림의 안내자로서 신세를 지는 사람도 많고, 케이네와 선대를 찾아 마을에 종종 찾아올 때도 있기에 마을 사람들과 어느 정도 안면을 텄다.
남자는 마을의 치안을 지키는 자경단의 일원이다.
몇 번 만나서 인사를 나눴던 정도의 사이긴 하지만, 아는 사람이라느 것은 분명했다.
「도와주러 오신 건가요?」
마을의 상황을 되새기며 질문하는 남자에 말에 모코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꽤나 일이 귀찮아졌나본데」
「네, 마을 안에 방금 그 요괴랑 비슷한 녀석들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케이네 씨의 말을 들어보니 「오니」라고 불리는 요괴라던데요」
「케이네는 어딨어?」
「서당 근처에 있을 겁니다. 아마도 저 오니란 요괴들하고 싸우고 있을 테니,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부디 도와주러 가주세요!」
「알겠어. 넌 어쩔 거야?」
「케이네 씨가 오니에게 대항하는 수단을 알려주셨습니다. 전 그걸 최대한 빨리 마을 사람들한테 알려야 해요. 이대로, 가겠습니다」
대답하는 남자의 눈은 두려움과 함께 그 두려움을 억누르는 강직한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바로 방금 생명의 위기를 겪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탄할만한 담력이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곳의 치안을 자신들의 힘과 단결력으로 지킨다는 목적을 가진 자경단.
일찍이 격동하던 시대 속에서 마을에 평화를 되찾아온 것은, 선대무녀뿐만 아니라 이들이 있었던 덕분이기도 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고무된 모든 인간의 업적인 것이다.
자경단은 그에 소속된 사람들의 결속력으로 단단히 굳어져있다.
모코우는 깨달았다. 특별한 힘은 없더라도, 그 또한 마을의 위기에 맞서 싸우는 동료라는 사실을.
「……알았어. 조심해」
「뭐, 그렇게 겁먹지 않아도 괜찮아. 분명 이 앞에서 오니를 만날 일은 없을 테니까」
영문도 모르고 낯선 테위에게 등을 얻어맞은 남자는 당황하면서도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밤의 어둠속으로 사라져가는 등을 불안한 눈빛으로 배웅한 뒤, 모코우는 옆에 서있던 테위에게 물었다.
「능력, 쓴 거냐?」
「썼다고 할까 쓰지 않았다고 할까, 인간이 상대라면 멋대로 써지는 거라서.
뭐, 헤매임의 죽림에서 헤매지 않고 나갈 수 있을 가능성이랑 오니를 만나지 않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을 가능성, 비율은 비슷하지 않으려나? 약간의 행운만 있다면 가능할 거야」
테위는 「인간에게 행운을 주는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다.
그 힘을 방금 그 남자에게 사용한 것이다.
물론 행운이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와 함께 갈 수 없는 모코우에게 있어선 그나마 안심할 수 있는 요소였다.
오니를 찾아냈을 경우 바로 없앨 생각인 자신들과 함께 행동하는 것보다 안전할지도 모른다.
모코우는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긴장된 표정으로 남자가 떠나간 방향과 정반대에 있는 곳을 돌아봤다.
남자가 도망쳐온 곳.
즉, 오니가 쫓아온 방향이다.
오니에게 달라붙어 불타오르던 모코우의 불길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불길이 사라진 뒤엔──상처 하나 없는 오니가 변함없는 분노를 품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또 방해꾼이 끼어들었어어어」
「일단, 최대 화력이었는데 말이다. 가죽이 그을린 거 빼곤 상처 하나 안 났다 그거지」
그야말로 바위나 다름없는 육체.
봉래인이라고는 하나 불길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빼면 능력은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코우로선 감당키 버거운 상대였다.
적어도, 이곳에 모인 자들 중 그 누구도 오니를 상대로 우수한 입지를 점칠 수 있을만한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첸의 얼굴이 다시금 창백해졌다.
「그, 그러니까 오니는 평범한 요괴들하곤 다르다고 했잖아……!」
「어쩔 수 없네. 모코우 대신 이 몸이 직접 나서주겠어」
「아니, 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자신만만하게 한 발짝 나서려는 치르노를 첸이 당황하며 붙잡았다.
그런 두 사람의 대화에도 아랑곳없이 모코우가 걸어 나온다.
「뭐, 기다려봐. 치르노」
가벼운 걸음이었다.
맞았다간 단번에 즉사할 터인 오니의 위협을 무시하며 별일 없다는 듯 걸어간다.
심할 정도로 침착한 행동이었다.
설령 공격을 받더라도 상관없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실제로 불사신인 모코우에게 있어 죽음이란 결코 위협적인 것이 아니다. 살해당해봤자, 되살아난다.
예전의 모코우라면 그런 생각으로 이렇게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모코우는 그때와, 영야이변이 일어나기 전의 그때와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이 가벼운 걸음은 무모함과는 정반대에 위치한 마음가짐에서 나온 행동이었던 것이다.
「위대하신 사형의 새로운 필살기는 잘 봤어. 다음은 내 차례다」
시선은 오니에게서 떼어놓지 않았음에도 치르노를 향한 말엔 느긋함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오니를 향해 점점 다가간다.
오니의 공격이 닿는 거리까지, 앞으로 세 걸음.
앞으로 두 걸음.
앞으로──.
「뒈져어어어어!!」
오니가 움직였다.
발을 크게 내디디며 왼팔을 내뻗는다.
보기 흉하게 부서진 뼈의 날카롭게 갈린 끝부분은 그야말로 흉기.
그 공격을, 모코우는 이미 전부 예측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상대방의 호흡을 가늠하고 있던 것이다.
자신이 재빨리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움직임에도 맞출 수 있는 정확함──격투의 전문가나 다름없는 움직임이었다.
모코우는 오니의 팔이 몸에 닿기 전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을 구부리며 그때 함께 굽힌 무릎의 탄력을 이용하여 단번에 상대의 품으로 파고든다.
찰나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시간차로 오니의 굵은 팔이 허무히 모코우가 있던 장소를 향해 헛손질을 한다.
오니의 간격을 뛰어넘어 반대로 자신의 공격이 닿을 거리까지 다가간 모코우.
선수를 가져간 것은 오니였으나, 의표를 찌른 것은 모코우였다.
눈앞에 놓인 오니의 몸통.
모코우는 그야말로 바위처럼 단단한 그 복근을 노려 오른 주먹을 내질렀다.
그 주먹엔, 예리함과 함께 새빨간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지나친 속도에 의해 발생한 마찰열로 불꽃이 피어오른 것 같은 지르기가, 그대로 오니의 배에 직격했다.
폭음이 울려 퍼졌다.
비유가 아니다. 살이 살을 때리는 타격성이 아니라, 화약이 폭발하는 소리와 충격이 오니의 몸통을 꿰뚫고 등으로 뛰쳐나온 것이다.
「……어라아?」
지성이 부족한 오니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사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불가사의한 눈빛으로 아래를 쳐다 보곤 딱딱하게 굳었다.
모코우가 오른팔을 내뻗은 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다시금 죽여 버리겠다. 그런 생각으로 팔을 움직이려던 그 순간, 겨우 깨달았다.
자신의 배에 뚫린 커다란 구멍에서 탄내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는 것을.
「어……라아……?」
오니는 자신의 배에 뚫린 구멍을 쫓아 등을 돌아봤다.
배에 난 구멍은 모코우의 주먹과 같은 크기였으나, 몸통을 꿰뚫고 등에 난 구멍은 그보다 배는 넓었다.
모코우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와 몸을 꿰뚫고 지나간, 봉황을 닮은 불꽃 덩어리가 밤하늘을 우아하게 춤추며 떠나가는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는 오니.
「아아……」
마지막으로 그런 말을 흘리곤, 그제야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이해했다는 듯 커다란 소음을 내며 뒤로 쓰러졌다.
오니가 정말로 죽었다는 것을 확이한 모코우가 자세를 푼다.
산뜻할 정도의 일격필살이다.
「……굉장해」
첸은 그런 평범한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세련된 몸놀림은 물론이었으나, 무엇보다 오니의 육체를 꿰뚫은 일격이 더욱 굉장했다.
그저 불꽃을 휘감아 친 것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
「으음, 저것은 「봉익천상」!」
「에, 그게 뭐야!? 알고 있어, 테위!?」
테위가 연극을 하는 것처럼 과장되게 흘린 신음에 치르노가 순수한 마음으로 질문했다.
「선대무녀에게서 가르침 받은 「천심」의 마음가짐은 자신이 가진 힘을 한 곳에 극한으로 모을 수 있게 해준다.
이 힘의 흐름을 불꽃의 힘에 응용하는 것으로 넓게 퍼져나갔어야 할 터인 열기를 한 점에 모아 발사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데, 이것이 타격과 함께하는 것으로 만들어지는 관통력과 파괴력은 보는 바와 같지. 저 기술의 이름이 바로 「봉익천상」인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굉장해!」
「──라고, 케─네가 말했어」
「케─네, 굉장해!」
모코우의 수행을 보고 있던 케이네의 설명을 당당히 인용하여 해설하는 테위의 말에 치르노는 순수하게 감동했다.
그 반응을 본 모코우는 그다지 싫지만은 않다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던 첸은 단번에 놀란 마음이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놀랍고, 대단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왠지 좀」이란 기분이었다.
「──「봉익천상」이라니, 같은 이름의 스펠카드 가지고 있지 않았어? 모코우」
치르노도 테위도, 첸도 아닌 또 다른 인물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모코우는 미소를 지우곤 기분 나쁘단 표정을 지었다.
방금까지 숨어있던 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싸움이 끝나고, 위험이 사라진 이곳에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지금쯤 영원정에 있어야할 카구야였다.
「강 건너 불구경하다 이제야 나타나는 거냐, 카구야」
「어머머, 난 그 애가 숨어 있으라고 해서 숨어 있었을 뿐이야」
「마, 맞아요! 카구야 님은 중요 인물이니까요!」
첸은 긴장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 어디에 오니가 있을지 모르는 이상 혼자 남겨지는 게 더 위험할지도 모르지만」
「아……죄, 죄송합니다!」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인 첸을 바라본 카구야의 얼굴은 능글맞은 미소가 피어있었다.
그냥 농담이다.
하지만 성실한 첸은 카구야를 자신의 주인이나 그 주인의 주인인 야쿠모 유카리와 동급으로 대하고 있는 듯 보였다.
카구야에게만 비정상적일 정도로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훤히 알 수 있었다.
그런 둘의 모습을──정확하게는 카구야를──모코우는 흥미 없다는 듯 바라봤다.
「어차피 죽지는 않으니까 그냥 내버려둬도 상관없어. 아니, 애당초 영원정에서 데리고 나올 필요도 없었단 말이지」
「너무하네. 그대로 있었다간 영원정을 덮친 오니 떼한테 내가 먹혔을지도 모르는데」
「아, 그거 잘됐네. 긴 생애에서 몇 번 없을 귀중한 경험이 될 거야」
「난 딱히 네가 지켜줬으면 해서 따라온 게 아니란 걸 명심해」
모코우와 카구야의 관계는 그 이변 뒤로도 별달리 변하지 않았다.
모코우가 감정적으로 카구야를 싫어하고, 카구야는 무감정하게 모코우의 적의를 무시한다──그런 관계였다.
이 둘이 함께 행동하고 있는 이유는 치르노 때문이었다.
지금 마을이 그렇듯이 에이린의 부재를 노린 것처럼 오니가 영원정을 습격했을 때, 카구야를 구한 것은 모코우와 합류한 치르노였다.
케이네를 돕기 위해 마을로 가고 있던 모코우에게 카구야와 동행하기를 제안한 것 또한 치르노다.
그리고 두 사람이 그 제안을 승낙한 이유 또한 치르노 때문이었다.
모코우에게 있어서 치르노란 약간의 억지 정도는 들어주고픈 소중한 동료다.
카구야는 이변 뒤에 치르노와 알게 됐다. 권유를 거절할 이유도 딱히 없기에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모코우에게 악의를 품고 한 행동은 아니다.
그렇게 함께 이동하던 도중 테위와 만나게 된 것이다.
「그래그래, 모코우한테는 과분하다 그거야. 이 몸이 오니를 쓰러트리고 카구야도 지키겠어!」
「고마워」
치르노의 말에 카구야는 진심을 담아 미소 지었다.
이 요정이 이루어질 수 없는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놀릴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기에 「믿을게」라고 하지 못하고 「고맙다」라고 대답한 것이다.
카구야가 진심으로 싸운다면 그 능력은 수행을 거쳐낸 모코우마저 능가한다.
불사의 육체마저 가진 카구야를 지킬 존재란 사실 필요하지 않았다.
이 장소에서 그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모코우와 테위 뿐이었다.
「정말로 카구야 님을 지킬 생각이라면 그런 무모한 짓은 그만둬. 이분한테 무슨 일이 생겼다간 란 님이나 유카리 님한테 어떤 꾸중을 들을지……!」
「첸도 참, 불평만 잔뜩이네. 도망쳐봤자 어쩔 수 없잖아. 지금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란 말이야」
「으음─, 뜻을 알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말만 저런 건지……」
첸과 치르노의 대화를 남일 지켜보듯 테위가 중얼거렸다.
서로의 겉모습이 겉모습이기에 저 셋이 모여 있으면 꼭 아이들이 장난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 그녀들을 바라보던 모코우와 카구야는 서로의 말다툼이 왠지 유치하다고 느꼈다.
미리 짜놓은 듯이 서로 동시에 흥, 하고 코웃음을 친다.
「……뭐야?」
「뭐가?」
「아까 그 질문」
「아, 네 스펠카드에 같은 이름의 기술이 있지 않았냐고 했잖아」
「아마, 우연이겠지만. 아까 그 기술을 만들어냈을 때 그걸 본 사부가 기술의 이름을 붙여줬어」
「사부……선대무녀 말이구나」
「그래. 불꽃이 담긴 주먹으로 사용하는 유명한 기술이 있는데, 그 기술의 이름이 「봉익천상」이래」
「흐응」
자신이 한 질문에 대한 대답에 카구야는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어조로 맞장구쳤다.
대답보다, 그 대답 속에 있는 「사부」라는 말에서 연상한 「선대무녀」의 존재에 기분이 나빠진 것이다.
모코우는 그런 카구야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그녀가 선대에게 품은 감정은 복잡하다.
적어도 호의적이진 않다, 모코우라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카구야와 선대는 이변 뒤로 만나지 않았다.
추측하건대, 카구야의 마음은 모코우를 두고 선대와 수많은 매도와 부정의 말을 섞어가며 싸웠던 그때 그대로 멈춰 있을 것이다.
「겉멋만 잔뜩 들어간 이름이네」
「솔직하게 멋지다고 말해」
속마음을 속이듯이 코웃음을 치는 카구야의 태도에 모코우 또한 입을 비쭉 내밀며 대답했다.
「그 선대 말인데, 여기 와있으려나」
카구야의 그 말은 남에게 향한 질문이라기 보단 자신을 향한 독백에 가까웠다.
마을의 중대사에 하쿠레이의 무녀가 움직이지 않을 리가 없다.
오늘 밤 하쿠레이 신사에서 그 두 무녀가 개최한 연회가 거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카구야도 모코우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을의 사태가 알려졌다면 태평하게 연회가 계속되고 있을 리도 없다.
모코우가 케이네나 마을 사람들을 걱정하면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분명, 도와주러 올 것이다.
그 누구보다 의지할 수 있는 도우미가──.
그럴 것이다. 라고 모코우가 다시금 생각을 정리하던 그 순간.
「──앗!」
목소리를 높인 것은 첸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모두가 변화를 눈치챘다.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아니, 「소리」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었을 뿐, 사실 소리 같은 건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마을 저편──방향을 따지자면 마을의 입구 부근에서 무언가가 삐걱대는 소리가, 더 애매한 표현을 쓰자면 「위화감」이 전원의 감각을 자극한 것이다.
그 감각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한 것은 첸이었다.
「결계예요!」
첸은 모코우 일행에게 지금 일어난 사건을 설명하겠다는 듯이 외쳤다.
「이건, 아마 유카리 님의 결계일 거예요! 유카리 님의 결계가 저쪽에서 펼쳐진 것 같아요!」
첸이 가리킨 곳은 위화감이 전해져온 마을 입구 쪽이었다.
모두가 얼굴을 마주본다.
첸은 야쿠모 유카리의 결계라고 했으나, 기묘하게도 모두가 같은 결론을 내린 지 오래였다.
「──사부야!」
「뭐, 그렇겠지─」
그렇게 단정 짓는 치르노의 말에 테위가 쓴웃음을 지으며 긍정했다.
그리곤 시선을 돌려보란 듯 눈짓으로 위를 가리켰다.
모두가 그 뒤를 따라 고개를 들어보자, 밤하늘을 날아가는 레이무의 모습을 찾아냈다.
하쿠레이의 무녀가 마을의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방금 그 사건에 누가 엮여 있을지──이미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케이네한테 가자」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으나, 한층 더 각오를 굳힌 모코우가 말했다.
──마을을 덮친 오니와 싸워서.
──오늘 밤, 결판을 낸다.
그렇게 각오한 순간이었다.
치르노, 테위와 차례대로 얼굴을 마주보며 같은 생각임을 확인한다.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첸을 설득하듯이 더욱 강하게 마주본 뒤 시선을 옮기자──카구야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 어라─, 카구야 님!?」
중요인물을 잃었다는 사실에 첸이 비명을 내질렀다.
아주 잠깐, 아주 잠깐 눈을 떼어놨을 뿐이었다.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카구야의 모습은커녕 누군가의 발소리나 기척마저 느낄 수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한순간에 뒤를 쫓지도 못 할 정도로 멀찍이 떠나간 것이다.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모코우와 테위는 그런 행동을 가능케 하는 카구야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능력을 사용한다면 설령 눈앞에 있더라도 놓치고 말 것이다.
──문제는, 카구야가 어디로 갔을지다.
「어, 어, 어, 어, 어쩌지!? 카, 카구야 님을 찾아야 하는 건가!? 그래도, 그렇지만 카구야 님이랑 만난 건 우연이었고, 내가 할 일은 아니지만, 하지만……!」
모코우와 테위가 한 걸음 앞선 고뇌를 하고 있을 때, 첸은 지금 눈앞에 놓인 문제를 처리하지 못하고 헤매였다.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 것인가.
그 다음엔 뭘 해야 할까.
미숙한 그녀로선 알 수 없었다.
「아아, 란 님의 명령이 없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우왕좌왕하는 첸을 진정시키겠다는 듯 한 손이 첸의 어깨를 굳게 잡는다.
손으 정체는 바로 치르노였다.
「모르겠으면 남한테 물어봐!」
「그, 그렇구나! 치르노는 어떻게 하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
헤매인 끝에, 첸은 어째선지 치르노에게 물었다.
기세와 자신감만은 흘러넘칠 정도로 가득 찬 치르노의 분위기에 무심코 휘말린 것이다.
「이 몸의 뒤를 따라!」
「응!」
「좋아, 지금부터 넌 이 몸의 부하야!」
「응!」
첸은 반쯤 정신줄을 놓곤 달리기 시작한 치르노의 뒤를 쫓아갔다.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인 듯했다.
대충 지칠 때까지 달린 뒤에 냉정해지면 또 한 차례 소동이 일어날 것임이 뻔히 보였다.
그런 둘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테위는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우선, 쟤들을 쫓아가자, 모코우」
「그래야겠네」
「공주님은 방치해도 괜찮을 거야. 단순히 변덕이 일었을 가능성도 충분하고 말이야」
「딱히 그 녀석을 걱정하는 게 아니야. 그 녀석이 무슨 짓을 할지 걱정하는 거지」
「그도 그렇네」
걱정스럽다는 모코우의 말에 동의하듯이 테위가 중얼거렸다.
◆
──장소를 옮겨 마을의 입구. 시간을 약간 거슬러 올라간다.
선대와 오니들은 정면으로 마주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서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서로를 살피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자신이 내뿜는 기백이 상대의 빈틈을 만들어낼 때까지 끈기 겨루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느 싸움이든 이런 때는 언제고 존재한다.
단 하나, 이 장소에서 비정상적인 것을 꼽으라면, 인간 한 명이 30마리가 넘는 오니 떼와 맞서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떠한 자세조차 취하지 않고 당당히 서있는 선대를 상대로 오니들은 어떻게 공격해야할지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어이, 어쩔까?」
「어쩐다니……뭘?」
무리에서 가장 앞에 서있던 오니들이 모두 한결같이 입을 다물었다.
앞에 선 오니들이 빈틈을 보이면 눈앞의 상대가 엄청난 기세로 쳐들어오진 않을까, 하는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뒷줄에 서있던 오니들이 의식을 되도록 선대에게 향한 채 서로 속닥였다.
「저 녀석이랑 싸우는 거 아니었냐」
「그야 당연히 싸우러 온 거지, 아니면 여기 오지도 않았어」
「그럼 왜 아무도 다가가질 않는 건데?」
「병신아! 그렇게 막 들이댈 수 있을까보냐!」
「맞아, 저 녀석이 유우기랑 싸울 때 어땠는지 벌써 까먹었냐?」
이 자리에 모인 오니들 중 대부분은 지저에서 벌어졌던 선대와 유우기의 사투를 보고 「전력으로 저 인간과 싸우고 싶다」란 생각으로 모였다.
그런 강렬한 욕망이 있다.
그렇기에 눈앞에 서있는 저 인간이 가진 두려울 정도의 힘을 잘 알고 있었다.
「유우기 누님이 처음에 맞았던 일격. 난 그거에 버틸 자신이 없다고」
눈으로 좇을 수조차 없는, 일격필살의 기술.
오니 중에서도 특히나 완강한 유우기의 얼굴에서 피를 흐르게 만든 그 공격은, 그 광경을 봤던 자들의 뇌리에 깊게 박혀 있었다.
단순히 서있을 뿐인 선대의 모습이, 이미 그 공격을 하기 위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정도로.
오니들은 패배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는 것은 사양이다.
그렇게 길가에 박힌 돌멩이쯤밖에 안 되는 취급을 당하고 싶진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선대에게 먼저 덤벼들지 못했다.
「어쩔까, 여럿이서 동시에 달려들까?」
「인간 상대로 그러면 비겁하지 않냐?」
「지금 그걸 따질 때냐!」
「어느 쪽이 됐건 처음 가는 놈이 꽝이라는 건 바뀌지 않는 사실이다. 나는 사양하겠어」
「나도 사양이다. 저 녀석과 전력으로 싸워서 진다면 모를까」
「그건 누구든 마찬가지라고!」
「그만 닥치지 그래, 이야기의 진도가 나가질 않잖냐!」
「너야말로 아가리 싸 물어!」
결국 오니들끼리 말다툼이 붙고 말았다.
뒤에서 일어난 소란에 가장 앞에 나서 있던 오니들은 긴장을 풀지 않으면서도 기가 막힐 정도였다.
「──그렇다면, 내가 가도록 하마」
이제까지 말 한 마디 없던 오니 한 마리가, 무리 속에서 한 발짝 걸어 나왔다.
그 자리에 모인 오니들 중에서도 고참인 노련한 오니다.
그런 오니의 섣부른 판단에 주변에 모인 오니들이 의아하단 표정을 지었다.
「……정말이냐?」
「글쎄다. 모처럼 훌륭한 싸움을 해볼 기회를 고작 일격에 잃을지도 모르지」
노련한 오니는, 히죽 웃었다.
「확실히 일격에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격은, 호시구마 유우기를 때려눕힌 주먹이지 않느냐?」
그 말에 주변에 모인 오니들은 「으음」하고 신음을 흘렸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그 속에 담긴 뜻을 왠지 모르게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니의 사천왕을 때려눕히고, 승부를 승리로 이끈 주먹이다. 가벼이 볼만한 것은 아니지. 일격필살이란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저것이다.
최초로 한 발짝을 내딛으려면 결사적인 각오가 있어야만 하지. 버틸 수 없을 게다. 난 이곳에서 목숨을 잃는다. 그 일격을 버텨낼 수 있다면, 이 몸은 그 유우기와 동격이라 이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자랑해주마!」
마치 노래를 부르듯이 외치는 그 오니의 말에 다른 오니들은 숨을 삼켰다.
누구라고 가리킬 것도 없이, 모두가 서로의 동태를 살핀다.
그 눈빛엔 아까 같은 강요가 아닌, 서로에 대한 질문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럼, 가보도록 할까」
늙은 오니가 앞줄의 오니들을 밀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지금, 선대와 가장 가까운 곳에 발을 내디딘 것이다.
그것이 계기가 됐다.
「──그 자리, 잘 받아가마!」
「뭣이, 네놈!?」
다른 오니들의 머리 위를 뛰어넘은 오니가 무리 속에서 뛰쳐나왔다.
「기다려, 내가 먼저다!」
「뭐라고!?」
「병신들이 꼴깝이군! 첫 상대는 이 몸이다, 선대무녀!」
「선대! 이쪽이다, 날 노려라!」
「아니, 여기다!」
「자, 잠깐! 네놈들, 치사하지 않느냐! 먼저 나선 건 나란 말이다!!」
그런 늙은 오니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오니들이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망설이던 모습이 거짓말이었다는 듯, 앞줄에 섰던 오니들까지 가세하여 눈사태가 내리치는 것처럼 선대를 향해 덤벼들었다.
선대가 요격한다.
오니가 날아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
주먹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그 모든 것들은 주먹에 맞은 뒤에야 찾아왔다.
그 정도의 일격이었다.
권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충격파를 몸으로 받아낸 선두에서 달리던 오니 한 마리가 뒤에 있던 동료들과 함께 반대편으로 튕겨나간다.
「왔다!」
「죽었냐!?」
「하지만 이걸로 바로 다시 쓸 수는!!?」
공격 사이의 빈틈을 노리려 시도했던 오니가, 다음 순간 튕겨 날아갔다.
맨 처음 날아간 오니처럼 뒤에 있던 다른 오니들까지 함께 휘말려 날아오른다.
──연속으로 이렇게까지 빨리 칠 수 있다고!?
──한 손으로 한 발. 양손으로 두 발까지 연사할 수 있단 건가!?
──아니면, 다른 기술!?
오니들은 서로가 머리를 굴리며 추측하더니, 이윽고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무의미해.
──아무 생각 말고, 그냥 부딪혀라!
오니들은,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 생각을 실천했다.
「키에에에엑!!!」
기성을 내지른 오니가 선대를 공격했다.
어떠한 잔기술도 쓰지 않은, 단순한 주먹질.
그러나, 그 주먹질은 인간의 입장에선 일격필살의 영역에 존재하는 공격이었다.
아무 방비 없이 맞든, 만전의 태세로 방어하든, 맞았다간 즉사할 것임이 뻔했다.
선대는 발을 놀려 그 공격을 피했다.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오니가 옆면에서 달려든다.
이번엔 손톱을 이용한 공격이었다.
큰 차이는 없다. 맞는다면 같은 결과만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선대는 몸을 구부려 손톱을 피했다.
커다란 체격차이가 지금은 선대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작은 표적을 상대할 때 오니의 거구는 단체전 속에선 방해만 될 뿐이다.
두 마리 오니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세 마리 째의 오니가 주먹을 내지른다.
그 주먹의 궤도를 끝까지 읽어낸 선대는, 그 주먹을 어루만지듯이 밀어내어 피했다.
──격류를 제압하는 것은 정수.
일찍이 벌어졌던 유우기와의 싸움에서 상대의 강력한 공격에 대항하기 위한 비책.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선대의 움직임은 그때보다도 더욱 세련되어 있었다.
「안 맞아!」
「방해다, 비켜!」
「네놈이야말로──!」
오니들에게 있어 팀워크 따윈 발상조차 불가능한 것이었을까, 서로 말다툼을 시작하려던 순간, 선대의 반격이 세 마리를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또다시 어쩌다 휘말린 다른 오니와 함께 시야에서 사라진다.
오니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무대포한 돌진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수vs1이란 상황을 완전히 이용당하고 있다.
「어이, 일단 거리를 벌려!」
「시끄러워, 명령하지 마!」
「다음은 나다!!」
자제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혈기왕성한 오니들이 물러나란 말을 들을 리가 없다.
전혀 반성하지 않은 또 다른 오니가 선대를 향해 달려든다.
그 순간.
선대 자신이 맞서기도 전에, 하늘 저편에서 발사된 공격이 그 오니를 덮쳤다.
「──광부 「화광옥」!」
탄막이었다.
정확하게는, 한 데 모인 탄막이 광탄이 되어 착탄한 순간 폭발, 주변에 몰려 있던 오니를 단번에 휩쓸었다.
「메이링인가!」
선대가 전투가 시작된 뒤로 처음 동요를 드러내며 말했다.
그녀를 포함하여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원군이었다.
광탄의 뒤를 이어 하늘에서 내려선 메이링이 오니들의 앞을 막아섰다.
「홍마관의 문지기, 홍 메이링! 선대무녀를 돕기 위해 왔다!」
메이링은 그대로 권법의 자세를 취하고는 당당히 선언했다.
그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메이링의 탄막에 맞은 오니였다.
직격당한 몸에선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으나, 전혀 피해를 입은 것 같진 않았다.
「네년……」
「비겁하다고 하진 않겠지」
「거슬린단 말이다! 이 피라미가!!」
오니는 머리를 앞세워 돌진했다.
정수리에서 뻗어 나온 한 개의 뿔이, 마치 창을 앞세워 돌격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세로 다가왔다.
메이링은 예리한 뿔을 피해 양손으로 머리를 밀어내듯이 잡으며 그 돌진을 막아냈다.
한순간도 멈출 수 없었다.
오니는 자신의 돌격을 막아낸 메이링을 그대로 끌고 돌진한 것이다.
「크읏……!?」
압도적인 힘에 메이링이 신음을 흘렸다.
힘으로는 결코 승부를 가를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밀착된 상태에선 기술을 쓸 여유가 없다.
메이링은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필사적으로 다리에 힘을 넣으며, 뒤에 있을 선대를 떠올렸다.
「서, 선대님, 피하세요!」
「핫! 뭘 돕는다는 거냐! 그대로 방패가 돼서 뒈져라!!」
메이링의 몸은 오니를 숨기듯이 가리고 있었다.
선대가 맞서기 위해 공격했다간, 메이링에게 맞게 된다.
메이링은 자신의 실수를 실감하며 이가 삐걱거릴 정도로 굳게 다물었다.
자신은 신경 쓰지 말고 이 오니를 쓰러트려주세요──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선대는, 그 돌진을 옆으로 움직여 피했다.
그리고, 피함과 동시에 물이 흐르는 것처럼 오른다리가 높게 치솟는다.
하늘로 뻗어나갈 것만 같은 기세였다.
「하아아앗!」
그리고, 메이링이 눈앞을 지나친 뒤 오니의 몸이 그 뒤를 따라 앞을 지나쳐가려던 순간, 강렬한 기합과 함께 오른다리를 내리찍었다.
혼신의 힘을 담은 뒤꿈치 찍기.
순간적으로 뿜어져 나온 각력과 다리 끝에 모은 영력이 합쳐져 태어난 그 일격이 노린 곳은, 돌진하던 탓에 자세가 무너져 빈틈을 훤히 내보인 오니의 연수였다.
도끼가 내리 찍히는 것만 같은 일격이 표적을 향해 정확하면서도 무자비하게 꽂힌다.
다음 순간, 오니의 목은 「절단」되고 말았다.
머리를 밀어내고 있던 메이링이 균형을 잃고 땅바닥에 넘어지자, 머리를 잃은 몸은 약간을 더 달려 나간 다음에야 힘이 다한 듯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으윽……!」
몇 마리의 오니가 신음을 흘렸다.
동료를 살해한 섬뜩할 정도로 강렬한 일격을 보니 머리가 식은 듯하다.
누가 지시하는 것도 아니고, 선대와 거리를 취하고, 다시 모습을 살피는 몸의 자세에 들어가 있다.
그러나, 다시 그 대항이 찢어지는 것은 시간의 문제였다.
싸움은, 이미 시작되어 버렸던 것이다.
「……선대」
절명한 오니의 머리를 든 채, 메이링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돕겠다고 말했으면서 결과는 이 꼴이다.
이 사람에겐 그저 방해에 지나지 않았다.
──역시.
이곳에 오기 전부터 희미하게 떠올렸던 생각이 더욱 명확한 모습을 갖추어 메이링의 마음을 압박했다.
──역시, 나는 「이런」걸까.
메이링은 자신의 진심에서 눈을 돌리겠다는 듯, 애매한 표현을 버리지 못했다.
어떤 말로 표현하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다.
선대에 있어서 자신은──.
「왜 왔나?」
선대가 물었다.
그저 순수한 의문이 담긴 물음이었다.
그러나 메이링에게 있어서, 그 말은 자신의 무력함을 꾸짖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도움이……필요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 거지?」
──자기가 그렇게 잘난 줄 알았나.
이 소리가 자신의 착각이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메이링은 가슴이 답답하게 조이는 것만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돕는다는 건 뭘까?
그것은 도울 수 있을 만한 힘이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되는 것이다.
그 힘을 가지지 못한 자를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자신은, 딱 그렇지 않은가.
「……아니요, 그게 아니에요. 제 도움 따윈 필요하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당신을 도울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쯤은」
메이링은 피를 토하는 것처럼 대답했다.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하는 것은 참지 못할 만큼 괴로웠다.
그것은 자존심이나 고집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원통했다.
자신이 선대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아니란 현실이 괴로웠던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당신을 보고 싶었어요」
메이링은 몸을 떨며, 울었다.
「아무도 보지 못했을 당신의 싸움을, 저만은 결코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선대는 오니들을 향해 있던 시선을 돌려 메이링을 내려다봤다.
「당신과 대등해지고 싶다는 말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소리인지는 저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그런 생각을 멈추고 싶진 않았습니다. 당신이 보는 걸, 같은 곳에서 보고 싶다고 항상 생각해왔어요」
일찍이 선대와 맞섰을 때, 메이링은 기뻤다.
그 위대한 등을 보기보다, 정면에서 마주보기를 바랐다.
선대무녀가 자신보다 몇 수 위에 있는 존재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것을 알고 존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만족하는 것만은 피했다.
「당신과 같은 곳에 서서, 같은 곳을 목표로 하고 싶었어요……그래서 전 여기 왔습니다」
메이링의 고백은, 고백임과 동시에 한탄이기도 했다.
의지에 걸맞은 힘이 없다면 아무리 강하게 바란들 실현될 리 없다.
그런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여기에 자신이 있는 것은 선대에게 부정적인 요소로밖에 작용하지 못한다──.
「──메이링」
고개를 수그린 메이링에게서 시선을 돌려 오니를 바라본 선대는,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서라」
「……예?」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 메이링은 선대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평소처럼 항상 싸움에 대비한 표정을 지은 선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부터 결계를 펼친다. 설명은 들었을 테지. 이걸 펼치면 오니와 함께 한 공간에 갇히게 된다. 도망갈 길은 없다」
선대는 유카리에게서 받은 음양옥을 꺼냈다.
손위에 떠오른 음양옥이 희미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빛에 섞여 들어가듯이, 구슬의 겉면이 아련히 일렁이며 사라져간다.
결계가 발동하고 있다는 징조였다.
「이곳을 떠날지, 남을지. 지금, 여기서 결정해라」
「……괜찮나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하지만, 메이링은 다시금 선대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당신과 함께 싸워도, 괜찮나요?」
「괜찮다. 하지만──」
선대는 등을 보인 채 고개만을 돌려 메이링을 바라봤다.
「──따라올 수 있겠나?」
선대의 얼굴엔, 메이링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도발적인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자신에게 향해진 위대한 뒷모습이, 그 무엇보다 메이링의 마음을 자극했다.
그 미소와 말이 자신을 고무하기 위한 것이란 사실을 이해했을 때, 메이링은 다른 뜻이 담긴 떨림을 느꼈다.
한심하게 비뚤어졌던 입가를 말아 올리며 눈물을 닦아낸다.
메이링은 일어섰다.
지금까지의 약해빠진 모습을 날려버릴 정도의 힘이 두 다리에 깃들어 있었다.
「따라가겠습니다!」
메이링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긴장에 의한 떨림이었다.
메이링은 웃고 있었다.
그것은 환희에 의한 웃음이었다.
온몸에서 넘쳐흐를 것만 같은 힘이 솟아올랐다.
「──그렇게 됐다. 이걸로 이쪽은 두 명이로군」
묵묵히 그녀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오니들을 향해, 선대는 도전적인 미소를 지은 채 대담하게 선언했다.
손을 떠나간 음양옥이 머리 위를 향해 높이 치솟는다.
일어선 메이링은 기합을 다시 넣겠다는 듯 오른 주먹으로 왼손의 손바닥을 쳤다.
「설마, 비겁하다고 하진 않겠지?」
메이링의 대사를 흉내 내며, 선대가 말했다.
다음 순간, 머리 위로 떠오른 음양옥이 가루가 되어 부서지고, 그곳을 기점으로 펼쳐진 결계가 그 자리에 있던 전원을 이공간 속에 가뒀다.
◇
──메이링, 네가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다면! 나를 믿어! 너를 믿는 나를 믿어!
이 대사로 할까─했지만, 내 캐릭터완 조금 다르기에 다른 위대한 선구자를 흉내내기로 했다.
애초에 말 한, 두 마디로 사람을 힘내게 만들 수 있을 만한 말재주를 가지진 못한 나다.
그렇기에 등으로 말한다.
……메이링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모 궁병 씨는 등으로 말하기의 달변가던데 말이지.
어쨌든, 메이링은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 같았으나, 솔직히 원군이 오니 숨통이 트인 느낌이다.
뭐, 아까 전엔 내가 알아서 잘 처리하는 바람에 오히려 메이링을 도와주게 됐지만, 이대로 장기전이 되어버리면 나중 일을 장담할 수 없다.
아니 그것보다, 역시 너무 많잖아.
게다가 무지 터프해.
오니와 싸운 지 얼마 안 됐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한 마리도 퇴치하지 못하다니.
처음 백식관음에 맞아 날아갔던 오니들은, 전부 살아 있었다.
휘말려서 날아간 녀석들은 그렇다 쳐도, 직격당한 녀석까지 일어서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지저에서 유우기와 싸웠을 때와 같다──아니, 그 뒤로 수행을 더욱 거듭해왔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어느 정도 위력이 강해졌을 텐데도 이렇다니.
물론 상처조차 입히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두 뿔 중 하나가 부러지기도 했고, 머리가 움푹 패여 눈을 잃은 오니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어서 사그라지지 않은 전의를 보내온다.
안 그래도 짝을 찾기 어려울 정도의 압도적인 방어력과 내구력을 가진 주제에, 죄다 기력 수치가 최대다.
……어쩌지─ 이 녀석들.
일단 아까는 「동시에 네 명을 상대해서 이길 수 있다면 백 명과 싸워도 이길 수 있다」라는 만화적인 이론을 응용하여 수적 열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수가 많은 쪽이 유리하단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쪽은 한 방에 즉사 아님 중상. 중상을 입었을 경우엔 다른 녀석들의 공격에 역시 즉사. 게다가 장기전이 됐을 경우엔 체력이 다 돼서 죽는다.
내 체력에도 한계가 있는데다가 오니한테 먹힐만한 공격을 하려면 말 그대로 전력을 발휘해야 한다.
뭐여, 이 말도 안 되는 게임은!
능력이 뒤떨어지는 인간 쪽에 핸디캡을 준다니, 이게 시방 뭔 소리냔 말인겨!
무심코 딴지를 걸고 싶어졌다.
누구에게─라고 묻는다면 딱히 대답해줄 수도 없지만.
이 궁지 속에서 날 도와준다면야 얼마든지 환영이다.
「설마, 비겁하다고 하진 않겠지?」
나는 웃으며 말했다. 물론 허세다.
그리고 진짜로 「비겁해」 같은 말을 들어봤자 들은 척도 안할 거다 뭐. 오히려 이쪽이 할 말이라고.
어쨌든 어찌저찌 결계가 펼쳐진 뒤, 나와 메이링, 그리고 오니들은 이공간 안에 갇히고 말았다.
언뜻 보면 아무 변화도 없는 것 같은 주변 풍경.
마을의 건물들도 그대로였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떨어진다든가, 애니메이션 같은데서 나왔던 것처럼 색이 바뀐다던가 하는 연출을 예상했는데, 정말로 아무 변화도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느껴지던 사람들의 기척이 전부 사라졌다.
딱 보니 이 결계는 「나를 제외한 인간은 놔두고 요괴만을 가두는」 것 같다.
아마 여기서 주변을 부서도 결계 바깥에는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한다든가, 그런 설정이겠지.
헤헷……이제야 마음껏 날뛸 수 있겠군!
─이라며 투쟁심을 불태울 일은 없었다.
내게 있어서 싸움이란 언제나 여유를 부리지 말고, 방심을 하지 않고 진지하게 임해야 하는 것이니까.
「이 결계는 또 뭐야!?」
「흐음. 주변 인간들의 냄새가 갑자기 사라졌구먼」
「오호라. 요컨대 이 공간은 그걸 위한 거라 그건가」
「좋아. 철저하게 해보자고!」
「마음껏 날뛰어주겠어!」
오히려 오니가 기뻐하고 있다.
……미안, 유카리. 이 결계는 날 위해서 준비해준 건데, 한 순간 뿐이지만 후회했어.
아니, 확실히 주변이 말려들지 않으니 나로선 고마울 따름이지만. 이 전투광 놈들이랑 함께 갇혀서 싸움이 끝날 때까지 풀려날 수 없다니, 악몽이잖아. 안구에 습기가 차기 시작했어.
게다가 방금 눈치챈 건데, 울고 싶어지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이 공간에선 「황금의 회전」을 사용할 수 없는 듯하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 결계 안엔 「황금장방형」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가 없다. 있는 건 메이링이나 오니들뿐인데 얘네는 전부 다 요괴니 원.
아무래도 이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들은 자연적인 사물과는 다른 건지, 사물에서도 「황금장방형」을 찾아낼 수 없었다.
즉, 회전을 사용한 치트는 엄금이라는 겁니다. 참 쉽죠?
뭐, 아직도 그 폭주하는 것 같은 힘을 잘 다룰 수 있을 거란 자신은 없지만……비장의 카드가 하나 줄어들고 말았다.
미안, 메이링.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기대하고 있어.
「자, 싸움 시작이다!!」
「저 머리 붉은 요괴도 조심해!」
「모처럼 벌이는 결투를 방해하다니, 짓뭉개주마!」
「오니들의 싸움을 어디까지 따라올 수 있을까?」
「젠장……머리가 반이나 패였잖아! 제대로 설 수가 없어……!」
「어이, 부상자는 구경이나 하고 계시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나는 벌써 결정했거든! 여기서 죽겠다고 말이지!」
「그냥 냅둬! 금방 뒤쫓아 갈 테니까!」
정말로 등골이 오싹해지는 오니들의 대화.
저렇게나 강하고 튼튼한 놈들이 죽을 각오까지 마쳤다 그거냐.
결사적인 각오를 했을 때 발휘되는 힘은 이제까지 실천해온 내가 가장 잘 알고 잇다.
정말이지, 이거 참……힘드 싸움이 되겠는걸.
나는 속으로 죄어드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표정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게 다행인지 아닌지 항상 그래왔듯 고민된다.
우선, 자세를 취한다.
여담으로 이 자세──사실 큰 의미는 없다.
기억에 남은 격투 만화에서 본 자세를 흉내 내고 있을 뿐인데다. 멋지다고 생각한 자세를 이거저거 생각해뒀다가 그때의 기분에 맞춰 쓰고 있다. 전의 향상에 효과 좋거든.
그리고 너희는 서있는 게 백식관음의 자세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만, 일단 움직일 수만 있으면 어떤 자세로든 쓸 수 있지!
「메이링, 배수의 진이다!」
우오오오오오! 나는 사실 한 대만 맞아도 죽는다─!
「네! 이곳에서 목숨을 버리겠습니다!」
어깨를 나란히 맞댄 메이링이 자신의 각오를 보이며 답했다.
믿음직한걸.
믿음직해. 아. 거기선 「우리 둘이서 「진」이라고요?」라고 말하지 그랬어. 재료 생각해서.
◆
하늘을 난다.
레이무에 있어서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무언가 특별한 기술이나 따로 의식하며 나는 것이 아니다.
땅을 딛고 걷듯이, 하늘에 몸을 맡기고 가고 싶은 곳에 간다.
내디딘 발이 땅의 감촉을 의심하지 않듯이, 레이무에게 있어서 하늘을 난다는 것은 의심할 필요조차 없는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니, 그런 생각은 장난으로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것과 반대되는 불안감이라면 느껴본 적 있다.
레이무는 상공에서 마을을 내려다봤다.
어머니처럼 기척을 느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집들 사이사이로 드리운 밤의 어둠 속에 오니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오니들과 싸우는 자들의 존재도.
모두, 이 아래에서 싸우고 있다.
그 중엔 어머니도 있다.
레이무는 그런 광경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안함. 그런 감정을 느꼈을 때 또한 분명 「지금」과 같은 때였다.
마을의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눈치채고도 레이무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몰두했다.
레이무는 밤하늘을 그대로 날아 이윽고 마을의 중앙에 도착했다.
그곳엔 큰 광장이 있었다.
환상향을 수호하는 용신의 석상이 있는 것을 빼면 특출 나게 눈에 띄는 시설은 없는 곳이지만, 낮에는 수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곳.
그런 광장이 지금 사방을 뒤덮은 불길로 어둠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온갖 곳에서 불타오르고 있는 불꽃은 땔감이나 기름에 불이 붙어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 불꽃들은 단순한 「불덩어리」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정체는 바로 도깨비불.
오니 두 마리가, 그 불길의 한복판에 눌러앉아 있었다.
「──네가 진짜 이부키 스이카구나」
지상에 내려선 레이무는 다짜고짜 스이카를 향해 그렇게 말했다.
용신의 석상 위에 앉아 있던 스이카는 한 쪽 다리를 껴안고 그 무릎 위에 턱을 괴고 있었다.
그 바로 밑엔 또 다른 오니와 용신의 석상에 달라붙어 있는 몇 명의 애들이 보였다.
마을이 습격당했을 때 납치당한 아이들이다.
레이무는 공포에 질린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금 스이카를 바라봤다.
예상치 못한 사태에 직면했을 때의 동요 따위, 지금의 레이무완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진짜, 라고 하기도 뭐한걸. 네가 만난 건, 전부 진짜 나니까」
스이카가 대답했다.
「딱히 나를 쓰러트려봤자 다른 분신까지 쓰러지는 건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통괄하는 건 너 같은데」
「에, 어떻게 알았어?」
「감으로」
「대단한걸. 하지만, 그 감으로 알 수 없는 거야? 나를 쓰러트려봤자 사태는 나아지지 않아」
「하지만, 사태를 가장 크게 움직일 수 있어」
레이무는 양손을 펼쳤다.
두 팔의 소매에서 음양옥이 뛰쳐나온다.
손에도 퇴마침과 부적이 쥐어져 있었다.
「뒷일은 널 퇴치하고 생각하지 뭐」
「호오, 오니퇴치를 하겠다 그거냐」
스이카는 마치 연극을 보는 관객처럼 유쾌하게 웃었다.
레이무가 전투태세에 들어갔음에도 전혀 긴장감이 없다.
당장이라도 안주를 씹으며 술을 들이켜도 이상하지 않은 여유로운 분위기.
하지만 술은 마시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늘 밤 스이카의 몸엔 한 방울의 술도 들어가지 않았다.
평소에 항상 갖고 다니던 표주박은 그녀의 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스이카는 이번 이변을 단 한 줌의 취기에도 기대지 않고 결행한 것이다.
그것이 어떤 각오를 뜻하는지──레이무는 당연하게도 알지 못했다.
「내게 손을 댄다면, 인질들이 어떻게 되도 모른다~……라고 하면 어쩔 셈이지?」
스이카가 익살맞은 목소리로 말하자, 밑에 서있던 오니가 본보기를 보여주겠다는 듯 아이들을 향해 손을 올렸다.
그 손가락 끝엔 창백한 불길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도깨비불의 불빛에 놀란 아이들이 그것을 보고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어떻게든 할 생각이긴 한데, 그 방법을 너한테 알려줄 필요는 없잖아」
레이무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비겁하다, 같은 감상은 없는 거야?」
「딱히」
「아, 오해하지 말라고? 오니들은 정정당당한 걸 엄청 좋아해. 속이고 장황한 걸 싫어하지」
「알고 있어. 유우기는 확실히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오, 유우기랑 이야기해봤던 거야? 그 녀석은 상쾌한 녀석이지. 확실히 오니 중의 오니야」
「그러니까 네가 다른 오니들과 다르다는 건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어」
레이무의 눈에 힘이 실리고, 그 눈빛을 받은 스이카가 지은 미소의 질이 바뀌었다.
남을 속이던 꾸밈 속에 한순간 진심이 섞인 것 같은──그런 변화였다.
「네 수작은 쓸데없이 엄청 장황하거든」
「그래, 그래서 싫어, 싫어, 라고 몇 번이고 푸념했어」
「그럼에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거네」
「그렇네. 해야만 했으니까 한 거지만」
「그게 너와 유우기의 가장 큰 차이점이야」
「알고 있어. 하지만 이렇게 해야만 해. 그게, 내 목적이라서 말이지」
스이카는 곤란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정말로 「어쩔 수 없다」라는 감정을 잘 살려낸 표정이었다.
「그런고로, 너와의 결투도 즐거울 것 같지만, 좀만 더 장황한 이야기에 어울려줘」
스이카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아이들을 위협하고 있던 오니가 방향을 틀어 레이무를 향해 한 발짝 다가왔다.
말은 없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유창하고 확연하게 말하고 있었다.
네 상대는 나다──라고.
「개막 공연으로 네 부하를 붙여보겠다 그거야?」
「부하가 아니야. 내게 부하는 없어. 여기까지 따라온 녀석들은 죄다 따로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모였을 뿐이거든」
그 오니는 스이카처럼 소녀 같은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키는 레이무와 비슷한 수준인데다, 도저히 오니로 보이지 않는 가녀린 체격.
이상할 정도로 긴 백발이 허리를 넘어 발목까지 뻗어 있었다.
목 아래만을 본다면, 그저 아리따운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는 외모였다.
단지, 그 얼굴에 마치 가면 같은 흉측한 오니의 얼굴이 붙어 있었다는 것을 뺀다면.
아니, 얼굴과 반쯤 하나가 되어 있는 점을 제외한다면 「오니 가면을 쓴 소녀」라고밖에 표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 녀석은 「탄막인가 뭔가로 결투를 해보고 싶다」던데」
오니 소녀는 묵묵히 두 손을 펼쳐 올렸다.
마치 레이무를 포옹하겠다는 듯이 펼쳐진 두 팔 사이에서 작은 도깨비불들이 나타났다.
그것을 탄막으로 쓸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그 불꽃에 담긴 요력은 놀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은 흉폭한 요력으로 가득 차있었다.
너무 강력하다.
레이무의 감엔 그 불꽃 속에 평범한 인간이 맞았다간 화마에 삼켜져 재가 될 때까지 사그라지지 않을 정도의 위력이 담겨 있다는 것이 뻔히 보였다.
「뭐, 이쪽 방식에 맞춰주겠단 마음만은 높이 사겠는데 말이지」
결사적인 결투를 앞두고도 전혀 긴장하지 않은 듯 보이는 레이무가 한숨을 내뱉었다.
허공으로 떠오르며 오니 소녀에게 턱짓을 하여 유인했다.
오니 소녀는 도깨비불을 휘감은 채 레이무의 뒤를 따랐다.
「이 녀석을 쓰러트리면, 그 다음은 너야」
「기다릴게」
스이카는 밤하늘을 결투장 삼아 날아오른 그녀들을 올려다봤다.
「내게 보여다오」
스이카의 혼잣말은 밤하늘의 어둠 속으로 녹아 사라져, 발밑에서 떨고 있는 아이들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보여다오, 하쿠레이 레이무──」
◆
──운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마리사는 속으로 남몰래 투덜거렸다.
눈앞엔 적이 있다.
오니다.
마을로 간 레이무를 뒤를 쫓아가고 있던 마리사는, 가던 도중 우연히 오니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그 오니는 무리를 지어 환상향을 덮치고 있는 다른 자들과는 달리 홀로 행동하고 있었다.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건지, 아니면 단체행동을 꺼리는 건지──.
마리사는 잘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적이 혼자인 것은 불행 중의 다행이었다.
마리사는 저 오니와 싸울 생각이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으로 레이무의 뒤를 쫓은 것이다.
그래, 그럴 생각으로──하지만, 오니와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행동인지 뼈저리게 알고 있기도 했다.
하쿠레이 신사에서 벌어진 인외들의 전투는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그런 전투를 인간인 자신이 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운이 좋은 거야!」
마리사는 자신을 격려하듯이 대담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마에선 이미 숨기지 못할 정도로 많은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오니가 빙긋 웃었다.
마리사와 마주친 오니는 마당에서 본 어중이떠중이 오니들과는 어딘지 모르게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대부분이 거구이던 오니치고는 작은 몸집.
물론 마리사보다 훨씬 크긴 하지만, 호리호리하고 가냘픈 몸매였다.
녹슨 동 같은 검붉은 피부와 두 개의 뿔은 틀림없이 오니임을 상징하고 있었으나, 얼굴엔 깊은 주름이 패여 있었고, 턱에서 난 수염이 가슴팍까지 자라 있었다.
마치 노인 같았다.
오니에 늙음이나 젊음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하자면 「늙은 오니」였다.
「이거 참, 활기찬 아가씨구먼」
겉모습에 어울리는 늙은이 같은 말투를 구사하는 오니.
「할아버지는 뭐하러 온 거야?」
「뭐하러 왔냐라……억지로 말하자면, 바뀐 시대를 보러 왔지」
뜻을 알 수 없는 대답에 마리사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쿠레이 신사를 덮친 오니들에게서 느껴지던 흉포할 정도의 욕망이 이 오니에게선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눈앞의 오니는 정말로 늙은이라 욕망 따윈 없는 평화로운 성격인 것은 아닐까──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니, 입가심이라도 할 겸 내게 먹혀주게나, 아가씨」
오니는 웃으며 등골이 오싹해지는 대사를 입에 담았다.
마리사는 공포와 함께 자신의 오해를 깨달았다.
뭐가 평화로운 성격이냐.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은 사람이 아니다. 요괴도 아니다.
오니다.
사람이 「두려운 것」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말이 실체를 가진 것이 바로 오니.
확실히 욕망 따윈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길가다 마주친 인간을 먹고도 별다른 생각조차 품지 않는 격이 다른 상대.
마리사는 더욱 많이 배어나오는 땀을 숨길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닦아냈다.
「그건, 사양할게」
어떻게든 제대로 대답하는 것에 성공했다.
목소리가 흔들리는 것까진 어쩌지 못했지만.
「딱히 아가씨 생각을 듣고 싶은 게 아니라네」
마리사의 속내가 훤히 보인다는 듯, 오니는 유쾌하게 웃었다.
「그럼, 어디부터 먹어볼까. 그 흰 손인가, 아니면 그 작은 가슴부터 먹어줄까,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카락도 좋겠구나」
「흥! 날 쉽게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호오, 나와 싸울 셈이더냐?」
「순순히 먹혀줄 거라고 생각했어?」
「후후후, 고작 요술을 조금 배웠다봤자 내 적수가 되진 못할 터인데」
오니는 마리사가 마법사라는 것조차 모르는 듯했지만, 그럼에도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저 늙은 오니가 오니 중에서도 약하고, 거기다 쇠약해진 녀석일 것이다──그런 낙관적인 생각은 결코 하지 않은 마리사다.
미니 팔괘로를 꺼내 손에 쥐었다.
현재,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큰 화력.
이걸 맞출 수만 있다면, 혹시──.
「효과가 있길 바라마. 나 또한 오니는 오니, 튼튼한 것엔 자신 있지. 게다가 소박한 능력도 있고 말이다」
마리사는 목울대 깊은 곳에서부터 신음을 흘렸다.
마음까지 까발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능력은 물론, 경험조차 달라도 너무 다르다.
정면으로 싸워선 이길 수 없다.
──뭔가, 이길 수 있는 요소가 필요하다.
마리사는 필사적으로 고민했다.
「……어이 할아버지!」
뇌가 타버릴 정도로 생각한 끝에, 마리사는 생각을 정리하곤 팔괘로를 쥐지 않은 손을 내밀었다.
그 손엔, 한 장의 스펠카드가 쥐어져 있었다.
「나와 승부하자!」
「호오?」
「승부라고, 승부! 탄막놀이로, 나와 승부하잔 말이지! 내가 지면 먹든 죽이든 마음대로 해!」
「……호호」
자신에게 들이밀어진 마리사의 도전장에, 잠시 할 말을 잃은 오니는, 이윽고 말뜻을 이해하곤 웃었다.
「재미있구나」
그것이 버릇인 듯, 긴 수염을 쓸어내린다.
마리사는 가슴을 졸이며 오니의 대답을 기다렸다.
「재미있어……허나」
오니는 천천히 수염에서 손을 뗐다.
입가에선 힘이 빠져있었으나, 목소리엔 그대로 얼어붙을 것만 같은 살기가 배어 있었다.
「거절하마. 널 그냥 먹는 게 가장 빠르니 말이다」
절망적인 대답이었다.
속옷에 실례를 저지를 것만 같았다.
공포에 절어 떨려오는 몸을 필사적으로 다잡았다.
이미 들켜버린 동요를 숨기기 위한 미소는, 그저 입가가 죄어들었을 뿐인 우스꽝스런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리사는 눈앞의 적에게서 눈을 돌리지도, 도전을 포기하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