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31 「귀신」
환상향 전역이 말려들어간 이변.
지금, 그 이변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규모의 싸움이 이 격리된 이공간 속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선대무녀와 홍 메이링 단 둘이서, 30마리가 넘어가는 오니 떼와 정면승부를 시작한 것이다.
최초로 일어난 것은, 아까 일어났던 상황의 반복이었다.
선대무녀가 뿜어내는 불가시의 일격.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자들 중 그것을 회피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오니 떼 한 쪽이 손 한 번 써보지도 못하고 나뒹군다.
「젠장, 아까보다 더 세졌잖아!?」
어떻게든 직격을 면한 오니 한 마리가 욕을 내뱉었다.
땅을 나뒹구는 오니 중엔 공격을 맞은 팔이나 다리가 이상한 각도로 꺾인 자도 있었다.
강철보다도 단단한 오니의 팔이나 다리를 간단하게 부러트리는 범상치 않은 위력.
만약, 아무 방비 없이 머리를 맞기라도 했다간 그대로 뜯겨 날아가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런 섬뜩한 생각을 마친 오니들은 오히려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이거 놀랍군! 오니가 인간을 상대로 생명의 위기를 느끼게 될 줄이야!!
오니들이 선대와 메이링을 향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그들의 얼굴엔 근심이나 두려움 같은 감정이 아닌, 통쾌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두 명을 몰아세우듯이 진격하는 오니 떼를 향해 메이링이 탄막을 발사했다.
스펠카드 룰에 따른 탄막이긴 하지만, 발사된 탄환들은 하나같이 살상력을 극한으로 높인 실전용이었다.
인간이나 평범한 요괴가 상대였다면 집단전에 있어서 충분휘 효과를 발휘했을 탄막.
하지만 상대는 오니였다.
날아드는 무수한 탄막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아랑곳없이 전진하는 오니들.
화려한 탄막은 오니의 강철 같은 육체에 튕겨나가 잔광을 남긴 채 사라지고, 빗나간 것을은 땅을 부수며 허무하게 흙먼지를 피울 뿐이었다.
「가렵지도 않군! 겨우 먼지만 날리는 공격으론……!」
입을 연 오니의 비웃음이, 그 순간 얼어붙었다.
──먼지를 날려!?
비교적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오니 몇 마리가 메이링의 속내를 눈치챘을 때엔 이미 흩날리는 흙먼지와 여기저기서 반짝이는 탄막의 잔광에 시야가 크게 가려지고 말았다.
「위험해!」
한 오니가 다른 오니들을 향해 주의하라 외친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렇게 외친 오니의 주먹이 꽂혀들었다.
흙먼지 속에 숨어 발소리도 내지 않고 다가온 선대무녀였다.
목숨을 잃을 정도의 단련 끝에 만들어진 오랜 상처가 새겨진 손. 그 손을 꽉쥐고 강대한 영력을 한데 모아 발해진 권격이 오니의 얼굴을 사정없이 부쉈다.
피가 뿜어지고 이빨이 부러지며 짓뭉개진 안구가 튀어나온다.
어지간한 요괴라 할지라도 즉사했을 일격.
그러나, 오니는 움직였다.
선대를 향해 무모하게 팔을 휘두른다.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적을 감지한 오니의 본능이 반격하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하지만 선대는 이미 오니의 바로 앞까지 파고든 지 오래였다.
머리 위를 스쳐가는 굵직한 팔을 무시하고, 냉철하고도 무자비한 일격을 꽂아 넣는다.
「샷건!」
듣도 보도 못한 기술의 이름이 오니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었다.
오니의 얼굴을 부순 주먹의 반대쪽 주먹에 모아뒀던 영력을, 이번엔 꽃아 넣은 순간 해방한다.
명치에 꽂힌 주먹은 직격한 순간 마치 산탄처럼 영력의 탄환을 내뿜었고, 밀착된 상태에서 그 탄환을 전부 받아낸 오니의 몸을 두 덩어리로 나눴다.
아무리 오니라도 이렇게 된 이상 죽을 수밖에 없다.
하반신이 먼저 쓰러지고, 그 뒤를 따라 상반신이 땅에 떨어진다.
선대는 그 상반신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다음 표적을 향해 이동을 개시했다.
선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달려든 다른 오니의 공격이 허무하게 허공을 가른다.
한편 메이링 또한 선대를 따라 자신이 만들어 낸 연막 속에서 오니와 접근전을 시도했다.
메이링은 「기」를 다루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눈에 의지하지 않고 기척을 느끼는 것이 가능하며, 그 감지력 또한 선대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오니의 움직임을 전부 꿰뚫어본 메이링은 표적으로 정한 오니의 뒤에서 접근하여 기습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내뻗은 발차기가 오니의 목을 베어낼 기세로 꽂힌다.
오니의 몸이 요동친다.
메이링은 찬 다리를 회수하며 발끝에서 느껴진 감각에 전율했다.
마치 바위──아니, 과장을 약간 보태자면 맨땅 같았다.
땅을 차봤자 효과가 있을 리가 없다.
땅은 부동의 존재, 땅에 발차기를 먹일 틈이나 타이밍 따윈 없으니까.
──효과가 없어!
메이링의 확신을 증명하듯이 오니가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돌아올 반격을 예측하고 무심코 자세를 잡는 메이링.
그러나, 오니는 주먹을 휘두르지도, 발로 차지도 않고 그저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
포효했다.
이미 그것은 단순한 소리의 영역을 지나, 소리를 가진 충격파나 다름없었다.
오니의 포효에조차 깃들어 있는 파괴적인 힘.
그 힘이 포효와 함께 사방으로 뿜어지자, 주변 일대가 요력과 소리의 폭풍에 밀려 파괴된다.
자세를 잡고 버티려던 메이링의 몸을 뒤로 물린 오니의 포효는 당연하게도 허공을 맴돌던 흙먼지를 간단히 헤쳐 버렸다.
오니들 앞에 모습을 드러난 데다, 포효 탓에 한순간 경직 상태에 빠져버린 메이링과 선대.
반대로 다른 오니들은 동료의 포효에도 별다른 이상을 보이지 않았다.
「찾았다!」
우연히 선대의 뒤에 있던 오니가 그녀를 향해 단숨에 달려든다.
그 장면을 본 메이링이 경고를 하려 했으나, 자신 또한 다른 오니의 표적이 되었다는 것을 깨달아 그럴 수 없었다.
메이링의 경고를 듣지도 않고 공격을 눈치챈 선대가 바로 몸을 돌려 손바닥을 내뻗어 오니의 공격을 교묘하게 흘려냈다.
메이링은 바로 손을 한데 모아 오니의 주먹을 막아냈다.
하지만 힘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은 이미 자명한 사실.
두 팔과 다리의 관절을 굽혀 되도록 충격을 흡수했으나, 메이링의 몸이 뒤로 저만치 날아가 땅에 부딪혔다.
묵직한 고통이 두 팔을 뚫고 내장에까지 닿았다.
피를 토한다.
방어를 했음에도 이 정도의 충격이라니.
──안되는 건가!?
자신을 쫓아 달려드는 오니를 노려보며, 메이링은 절망했다.
──역시, 내 힘으론 승부조차 할 수 없는 건가!?
싸우기 전에 한 각오가 흔들리지 않는 현실을 앞에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날카로운 질책이 메이링을 채찍질했다.
「겨루지 마라!」
메이링는 자신을 쏘아 맞히듯 바라보는 선대의 시선을 눈치챘다.
「특기를 살려라!!」
자신 또한 여러 오니의 공격을 받고 있음에도 메이링을 향해 외치는 선대.
그녀 자신 또한 위박한 상황에서 메이링을 위한 조언을 남긴 것이다.
메이링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모든 불안들이, 그 말에 단박에 날아갔다.
자신이 입은 충격과 고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네, 「사부」!」
메이링은 그 순간 그렇게 대답했다.
다시금 눈앞에서 다가오는 오니를 향한 눈 속에서 엄청나기까지 한 힘과 투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자신의 약함이나 승부의 결과 따윈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그저 올곧게 마주할 의지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기세를 타 단순하게 행동해서야 아까와 다를 것이 없다.
강력한 요괴로서의 힘──그것은 자신의 「특기」가 아니다.
배워야만 한다.
말수가 적은 그 사람의 귀중한 조언 한 마디로 열이든 백이든 배워 익혀야만 한다.
오니가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별다른 잔재주는 싣지 않은 공격.
아니, 재주 따위는 필요치 않다. 오니의 힘은 그것만으로도 필살.
돌진하는 힘을 그대로 싣고 있기 때문일까, 아까보다도 더욱 예리하고 묵직해진 주먹을 메이링은 정면으로 맞섰다.
──그 사람에게 닿지 못한다면, 적어도 놓치진 않겠다고 결심했어!
메이링은 싸움 속에서 선대의 움직임을 눈에 새겼다.
아무리 기상천외할 단련으로 다져진 육체라고 할지언정, 약하디 약한 인간이라는 그릇을 가지고 강맹한 오니와 「기술」로서 맞서는 그녀의 싸움.
그 속에 담긴 싸움의 이치를, 자신이라면 실천해보일 수 있다.
그 어떤 요괴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기술」을 연마해온 자신이라면, 가능하다.
──이렇게, 구나.
포탄이나 다름없는 오니의 주먹을, 힘이 아닌 권법의 이치에 따라 받아넘긴다.
생각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몸에 새겨질 정도의 단련을 거치지 않고선 도저히 해내지 못할 기술.
──이렇게 하면 돼!
바람을 가르는 굉음이 메이링의 귓가를 스친다.
오니의 주먹이, 그녀에게서 빗나가 허공을 가른 것이다.
메이링은 오니의 공격을 받아넘겼다.
그 주먹에 닿은 두 손바닥은 피부가 벗겨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완벽한 기술은 아니었다.
그러나, 맞았다간 치명상을 입었을 공격을 큰 피해 없이 막아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네요, 사부!」
선대가 대답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메이링은 환희를 말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가사의한 원리로 공격을 막아내진 오니가 짜증 섞인 신음을 흘리며 다른 팔을 휘둘렀다.
그것을 다시금 받아넘긴다.
곧바로 다음 공격이 날아든다.
어떻게든, 그것 또한 받아넘긴다.
공격을 흘려내는 양손에서 선혈이 흩날렸다.
그 사람과 비교하면 꼴불견에다가 치졸하기까지 한 기술이다. 도저히 그 사람에게 미칠만한 실력은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나쁘지 않다.
이 아픔은 나쁘지 않다.
이 상처도 나쁘지 않다.
넝마가 되어가는 양손이, 묘하게 믿음직스러웠다.
필살의 일격이, 「일격」이란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잇달아 날아든다.
그 둔중해 보이는 거체에 비해 무서울 정도로 빠르고 빈틈없는 연공. 게다가 마치 무한한 체력을 가졌다는 듯 공격이 멈추질 않는다.
눈으로 본 뒤에 반응해서야 도저히 흘려낼 수 없다.
──생각하지 마라, 느껴라.
메이링은, 한때 선대가 내렸던 가르침을 되새겼다.
한순간의 판단 미스가 생명의 위기로 직결되는 궁지 속에서,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그 말에 따른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려는 사고를 그만두고, 자신의 감각에 모든 의식을 집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감각으로 느낀다.
그리고 그 감각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그대로 맡긴다.
오니가 휘두르는 폭풍 같은 연타 속에서, 메이링은 손을 움직이고, 다리의 위치를 조금씩 바꿔가며, 눈과 귀에 의존하지 않고 피부로 느낀 뒤, 감으로 판단했다.
일격으로 메이링의 몸을 부쉈어야 할 공격들이, 모두 뜻을 이루지 못하고 허공만을 가른다.
모든 각도에서 휘둘러진 주먹이, 모든 각도로 흘러나간다.
겹겹이 거듭되는 공방.
──더 빠르게.
──더 능숙하게.
──더.
──더.
메이링의 손에 받아넘겨진 공격은 다음 공격으로 이어질 때까지 약간의 틈을 낳았고, 그것이 몇 번이고 반복된 결과, 마침내 메이링의 움직임이 오니의 속도를 넘어섰다.
한 번의 공격을 받아 흘린 직후, 한 수 앞서 메이링이 움직인다.
연격의 빈틈을 꿰뚫듯이 뻗어 나온 왼손바닥이 오니의 아랫배를 강타한다.
완강한 육체에 상처를 입힐 위력은 없다.
하지만, 타격당한 부위에서 퍼져나간 충격이 오니의 육체를 굳혔다.
움직임이 멈춘다.
그리고 공수가 바뀐다.
그래도──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다.
그렇게 말하듯 오니는 움직이지 않는 사지 대신 입을 크게 벌렸다.
다시 그 포효를 내지르려 한 것이다.
그대로 두고 봤다간 힘들게 빼앗은 공세를 허무하게 빼앗기게 된다.
메이링은, 그 행동을 예측하고 있었다.
아니, 기다리고 있었다.
메이링의 오른손이 관수의 형상을 취한다.
그 손을, 크게 벌린 오니의 입속을 향해 날카롭게 찔러 넣는다.
즐비하게 늘어선 송곳니가 피부를 찢고 상처를 입힌다.
그러나, 그런 것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혼신의 힘이 들어찬 관수가 오니의 목젖까지 파고든다.
아무리 강철보다도 단단한 육체를 가진 오니여도 속까지 단단하진 않다.
두 눈을 크게 치켜뜬 오니가 피와 함께 기괴한 비명을 지른다.
「화부 「파산포」!」
찔러 넣은 손에서 탄막이 작렬했다.
아무리 오니라 해도 입안에서 일어난 폭발엔 버티지 못했는지, 안쪽에서부터 머리가 터져나간다.
메이링이 피가 묻은 손을 뽑아냄과 동시에, 힘을 다한 오니가 쓰러진다.
손에 묻은 피는 오니만의 것이 아니었다.
좁은 공간에서 폭발에 휘말린 손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몇 개의 손가락이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기도 했다.
하지만 메이링은 그 상처를 걱정하지 않았다.
부러진 손가락을 억지로 굽혀 주먹을 말아 쥔다.
인간이었다면 심각했을 상처.
하지만 요괴라면, 손가락 한두 개 쯤, 크게 걱정할 것이 못된다.
「특기, 살렸습니다」
메이링은 선대의 가르침을 입에 담으며 대담하게 웃었다.
자신은 요괴다.
어중간한 힘밖에 가지지 못한, 어중간한 요괴다.
하지만 그 어중간한 요괴로서의 특성이 조금이라도 이익이 된다면, 어떻게든 써먹을 뿐이다.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힘과 기술을 구사한다.
죽을 힘을 다해 맞선다.
모든 것은, 그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길의 저편에, 그 사람이 있다──.
「사부!」
한 마리뿐이라곤 해도 「오니를 쓰러트린다」는 쾌거를 이룩한 메이링은 그것을 실감하자마자 다음 행동을 시작했다.
선대 주변에 모인 오니 떼를 향해 달린다.
역시 다른 오니들은 선대만을 위험 대상으로 보고 메이링에겐 크게 주의하지 않았다.
그것을 불만스럽다고 생각할 만큼 메이링은 자만하지 않았다.
그렇게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낙관하지도 않았다.
힘과 숫자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자신들의 얼마 안 되는 유리한 점이 있다면 우선 「협동」을 꼽을 수 있다.
힘껏 땅을 박차 높게 점프한 메이링은 선대의 뒤를 노리고 다가가는 오니의 정수리를 향해 발차기를 찍어 내렸다.
──「강화축」
발차기가 그리는 궤적이 무지개색의 빛을 내는 기술이다.
정수리에 발차기를 맞은 그 오니는 보기 흉하게도 땅바닥에 벌렁 넘어졌다.
물론, 그것이 치명상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메이링의 부름에 반응하여 고개를 돌린 선대와 한순간 시선이 얽힌다.
이심전심이 가능한 사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그저, 선대무녀의 힘을 의심하지 않았을 뿐이다.
메이링은 그대로 넘어트린 오니를 무시하고 선대와 대치하고 있던 정면의 오니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자리를 바꾸듯이 몸을 돌린 선대가 그대로 넘어진 오니를 공격한다.
앞으로 엎어진 오니는 너무나도 무방비했다.
메이링의 방어에 선대의 공격태세를 아무도 막지 못했고, 선대의 「백식관음」이 후두부의 급소에 한 점의 오차도 없이 내리 꽃혀 오니의 머리를 산산조각 냈다.
오니의 머리를 뚫고 지나간 충격이 땅을 박살내고 뒤흔들었다.
한편 메이링은 등을 보인 선대를 지키듯이 탄막을 발사하고 있었다.
피해를 입을 정도의 위력은 없을지언정, 그 물량만큼은 압도적인 탄막.
자신들을 덮쳐오는 빛의 물결을 채 감당하지 못한 오니들은 결국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 틈을 탄 선대가 재빨리 다음 상황을 대비하여 자세를 바로잡았다.
메이링의 등에 선대의 등이 맞닿는다.
「메이링, 고맙다」
선대가 짧게 감사를 표한다.
그것을 들은 메이링은 온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만큼 기뻤던 것이다.
「아니요……」
「힘든 싸움이 될 것 같군」
「아니요. 힘들지 않을 거예요」
메이링은 거짓 없는 진심을 내비쳤다.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뺨이 붉게 물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들부들 떨려왔다.
피로 때문이 아니었다.
공포 때문도 아니었다.
메이링은, 그 떨림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이건 기쁨의 떨림이야.
──내 육체가, 마음속부터 머리털 하나에 이르기까지, 기쁨에 차 떨고 있어!
──이 사람을 만난 뒤로 수십 년간 단련해 온 힘과 기술이, 이제야 눈을 뜰 때를 맞이하고 기뻐하고 있어!
──나는 지금, 이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두고, 이 사람의 등을 지키고 있어!!
메이링은 상처투성이인 두 손을 굳게 쥐었다.
이 상처는 자신의 기술이 미숙하단 증거이다.
하지만 그것을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 사람의 손과 닮았다. 닮아져가고 있다.
그 사실에 기쁨조차 느꼈다.
무한하게 솟아올라오는 힘이 이 두 손에 깃들고 있었다.
메이링은 입가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
놀랍게도 오니와의 집단전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개전의 신호를 울린 것은 「백식관음」
어떻게든 위력을 올려보기 위해 한껏 집중하여 힘을 쥐어짜냈지만, 이걸로 쓰러진 오니는 없었다.
뭐, 어차피 예상했던 사태긴 하다. 이제 저 녀석들의 내구력과 방어력을 상식의 선에서 재는 건 포기했다.
경계하고 있는 녀석들 상대로 정면에서 들이대 봤자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물론 제대로 방어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 기술이긴 하지만, 정신적인 면으로 「각오」같은 걸 굳히면 버틸 수 있는 것 같다.
이건 단순한 정신론이 아니다.
팔로 막아내지 못한다 해도 공격에 대비하고 있다보면 몸이 굳는다.
이건 오니만이 아니라 인간 또한 가지고 있는 당연한 반사행동이다. 복근을 굳혀 보디블로를 맞는 것과 같은 원리라고 할까.
그리고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튼튼한 오니의 경우, 그 육체의 반응이 그대로 방어수단이 되어버린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몸의 강도가 강철보다 단단해진다.
……뭐야, 저 치트는.
신체능력이 근본적으로 다르잖아.
이래서야 두 팔에 모든 영력을 모아서 방어해도 견딜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안 드는걸…….
결국, 오니의 방어를 부수기 위해선 힘이 빠진 곳을 노리든가, 의식하지 못했을 때 빈틈을 노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설픈 공격으로는 안 된다. 한 방에 모든 힘을 실을 기세로 치지 않으면 상처가 나질 않는다.
공격이 아예 효과가 없다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만, 그걸 생각해도 힘든 조건이 붙은 싸움이 시작됐다.
아니나 다를까 수적 우위를 무기로 달려드는 오니들.
백식관음의 힘을 확산시켜서 여러 표적을 노릴 수 있지만, 그랬을 경우의 디메리트는 유우기와의 싸움에서 겪어봤기에 잘 알고 있다.
어중간한 요격으로는 체력을 낭비할 뿐이다.
위력을 유지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힘을 아껴두고 싶은 나로서는 이 전법과의 궁합이 최악이다.
그럼 어쩔까──라고 멍하니 고민하고 있자니 메이링이 훌륭하게 원호해줬다.
탄막을 사용한 연막.
드, 듣도 보도 못한 발상이다……! 탄막을 못 쓰니 당연하지만.
나 정말로 「똑바로 가서 스트레이트」밖에 모르는 바보구나.
연막 속에 숨어 기척과 발소리를 읽으며 다가간다.
후후훗, 기를 읽어내어 상대의 움직임을 알아내는 Z전사들의 전투법을 참고 삼아 싸우는 내게 연막 따윈 무의미!
노렸던 대로 혼신의 힘이 담긴 주먹이 오니의 빈틈에 틀어박힌다.
무서울 정도의 반응에 무심코 「해냈나!?」라고 외칠 뻔 했다.
하지만 오니 역시 평범하진 않았다.
놀랍게도 머리가 반쯤 뭉개진 채 반격한 것이다.
젠장, 방어력은 유우기보다 낮은 것 같지만 이 끈질김은 충분히 귀찮다. 게다가 이런 게 아직도 잔뜩 남았다니.
미리 각오해두지 않았다면 전의가 사라졌을지도.
하지만 난 이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다.
결정타를 먹인 뒤에 확인사살을 하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으니까.
나는 공격을 흘려내며 반대쪽 주먹을 힘껏 때려 박았다.
처음 일격도 한계에 가까울 정도로 영력을 모아뒀었지만, 이 주먹은 그보다도 더 많이 시간을 들여 힘을 모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 영력을, 단번에 해방한다.
우오오오! 먹어라! 정식명칭은 「영환」이지만 이쪽이 좋으니까 기합은 이거다!
「샷건!」
말 그대로 산탄총에서 발사된 총알 같은 기세로 뿜어져 나온 영령에 오니의 몸이 양단됐다.
겨우 한 마리 격파!
합계 두 마리 격파!
그리고 남은 적은……가득하군! 좋아, 해산!
무심코 집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전황은 이런 드립을 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메이링이 있는 방향에서 엄청난 외침이 들리더니, 소리와 함께 충격파가 주변 일대를 휩쓸었다.
온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는 끝나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버티지 않았다면 휘말려 날아갔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럴 정도니 주변의 흙먼지는 당연히 싸그리 날아가고 말았다.
……포효로 탄막을 뿜어내는 유우기에 비하면 귀엽다고 생각해 버린 나는, 꽤나 상식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찾았다!」
모습이 훤히 드러난 나를 향해 오니 세 마리가 달려든다.
아까 말했던 바키 이론에 따라 세 마리 이상에게 둘러싸이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3대1이란 상황은 너무나도 불리하다.
속도로는 이쪽이 이기고 있지만, 그래봤자 숫자부터 다르다.
두 팔을 가진 적이 셋. 한 호흡에 여섯 발의 주먹이 날아든다.……아, 이 녀석은 팔이 4개네.
운 나쁘게 한 대라도 맞았다간 그대로 끝나버릴 것이란 긴장감.
나는 그런 긴장감 속에서 일방적인 방어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으음, 자만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이렇게 힘든 상황인데 메이링은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살짝 눈을 돌려 그쪽을 보니 공격을 맞고 날아가는 메이링의 모습이, 우아아아앗! 스쳤어!? ……이런, 나도 쓸데없이 정신을 딴데 둘 여유는 없을 듯하다.
도와줄 순 없다.
그렇다고 메이링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
초조함에 빠진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곤란에 빠졌을 때의 명대사」를 골라 메이링을 향해 외쳤다.
「겨루지 마라! 특기를 살려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에서 조언으로 써먹기엔 너무 무책임한 정신론.
미안해……하지만 솔직히 이런 대사밖에 생각나지 않았는걸.
느긋하게 기술을 가르칠 상황도 못되고, 그걸 말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니다.
만화에 나오는 스승님들처럼 뭔가 심오한 뜻이 담긴 한 마디로 상대가 「그런가, 그런 거구나!」라며 각성하는 전개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난 남을 가르치는데 소질이 없구나. 모코우를 가르칠 때도 그렇고.
어쨌든 마음만으로는 내 모든 것을 담아 메이링에게 보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거네요, 사부!」
──그랬더니 메이링이 정말로 각성해버린 사건에 대해.
에……뭐야 저거. 레츠 카이오의 철벽방어잖아.
중국권법으로 보이는 기술들로 오니의 연속 공격을 전부 흘려내더니, 다시 포효하려던 순간을 노려 입속에 손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탄막이 폭발.
인간의 나로선 망설여질 정도로 피해를 감수하는 작전을 메이링은 망설임 없이 단번에 해낸 것이다.
머리 반쪽이 날아간 오니가 쓰러진다.
이걸로 세 마리.
적들도 이 상황은 예상치 못했는지, 내가 메이링에게 정신을 빼앗겨 빈틈을 보였음에도 덤벼들지 않고 메이링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이 전투의 주도권을 잡은 메이링이 움직인다.
이쪽으로 달리던 메이링은 달리던 힘을 그대로 담아 내 뒤에서 날 덮치려던 오니의 정수리에 발차기를 먹이고 땅에 착지한 뒤, 한순간 눈을 마주치곤 내 옆을 스쳐 달려갔다.
이때── 난 메이링의 뜻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뻥이야.
미안, 사토리처럼 마음을 읽진 못 하는걸.
그래도 메이링의 행동에 담긴 의도는 읽었다.
메이링과 자리를 바꾸듯이 서로의 표적을 향해 몸을 돌린다.
내가 노려야하는 것은, 메이링이 빈틈을 만들어준 내 뒤에 있던 오니.
대신 나는 지금까지 대치하고 있던 적들에게 등을 내주게 되겠지만 망설이지 않는다.
그대로 오니의 뒷통수에 혼신의 힘이 담긴 「백식관음」!
효과가 없을 리가 없다. 오니의 머리는 그대로 곤죽이 됐다.
이걸로 네 마리!
등 뒤에서 탄막을 펼쳐 적을 견제해준 메이링과 자연스럽게 등을 맞댄다.
「메이링, 고맙다」
「아니요……」
후우, 설마 이렇게나 협동 플레이가 잘 먹혀들어갈 줄이야.
이것도 남몰래 팀워크를 단련해놓은 덕분이다.
──현실이 아니라 뇌내에서 말이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내가 아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에 내 자신을 투영하여 이미지 트레이닝을 해왔던 것이다.
왜냐면, 이제까지 동경해왔는걸…….
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겪어본 적이 없으니, 완벽한 망상이었지만 말이야.
같이 해줄 상대가 아무도 없는걸.
현역시절 유카리가 파트너 위치에 있었지만, 솔직히 둘이 같이 싸울 기회는 거의 없었고 말이지.
그때엔 밧슈랑 울프우드처럼 서로 등을 맞대고 싸울 날을 망상했었다.
그 망상이 지금! 메이링 덕분에 현실이 됐다고!
「힘든 싸움이 될 것 같군」
아니, 그렇지도 않나. 오늘 밤은 나와 너로──라고 말하려다가 어깨너머로 드러난 메이링의 표정을 보고 굳었다.
메이링은 웃고 있었다.
그것도 왠지 「히죽」이란 느낌의 웃음이었다.
……메이링, 각성을 좀 너무한 거 아냐?
그거 미녀가 지을 표정이 아닌데?
좀 무섭다고.
아, 아니……이건 동시에 믿음직하단 의미기도 하지만 말이지.
나, 혹시 터무니없는 말을 해버린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을 외면하며 전투에 집중했다.
오니 떼와 서로 마주보고 있던 처음과는 달리, 지금은 포위당해 있는 형국이다.
눈앞에서 몰리는 위압감은 조금이나마 줄었으나, 상황적으로는 더더욱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방금 보여준 활약 덕분에 메이링도 주의하고 있는데다가, 네 마리를 쓰러트리긴 했어도 여전히 압도적인 수적 열세다.
예상하지 못한 도움 덕에 아직 체력은 많이 남았지만, 결코 방심할 수는 없다.
위치를 바꿔가며 싸우지 않으면 단번에 짓뭉개질 것이 뻔하다.
우선, 잽──이라는 느낌으로 「백식관음」 발사.
선빵 잘 먹겠습니다.
그래도 이게 적의 태세를 무너트리는 데에 꽤나 유용한 전법이다.
내가 공격함과 동시에 뒤에 있던 메이링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격하기 전에 가볍게 손으로 쳐서 보낸 신호를 잘 이해해준 듯하다.
「갈라지자」라는 것부터가 꽤나 억지스런 작전이었는데, 이해해준 메이링 진짜 내 신부.
내 등을 지키고 있던 메이링이 뛰쳐나가고 나는 내 공격에 포위가 무너진 곳이──없어!?
「뭣이!?」
나는 무심코 경악하고 말았다.
이 일격으로 쓰러트리진 못해도, 반응하지 못할 속도로 쇄도하는 이 공격을 막아낼 수는 없을 것이라 반쯤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이 싸움에서 이미 두 번이나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다.
아무리 오니라도 기습적인 충격엔 버틸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런데 백식관음에 직격당한 오니들은 아주 약간 뒤로 물러난 뒤, 곧바로 나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효과가 없었다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실제로 이쪽을 향해 돌진하는 오니들은 얼핏 봐도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다.
그중엔 기절하고 있는 건지,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녀석도 있었다.
그런 상태인데도 기세등등하게 날 향해 돌진하는 오니들.
──그 순간, 나는 그 이유를 눈치챘다.
어떻게 되먹은 놈들이야…….
공격을 당하고 버텨낸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저 녀석들이 직접 돌진해오는 것도 아니었다.
모두, 다른 녀석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뒤에 있던 오니가 앞에 있는 오니를 잡아서 그대로 전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동료의 몸을 방패처럼 써서──!
「좋아, 이대로 달려들어!」
「한 발 쯤은 버텨주마!」
「이제 인정사정 볼 거 없어! 우리들째로 저 무녀를 눌러버려!!」
두려울 정도의 광기 섞인 외침.
게다가 그렇게 외치고 있는 건 방패로 써먹히는 녀석들이다.
동료를 위해 희생하는 고귀한 정신이라든가, 그런 사고관이 아니다. 인간인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저 오니들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도리고 뭐고 없다.
돌진해온 오니들은 내 눈앞에서 방패로 쓰던 동료의 몸을 물건처럼 내던지곤, 자신의 몸마저 무기로 쓰겠다는 듯 달려들었다.
이런 건 더 이상 기술이 아니다.
자기 자신을 사용한 육탄특공이다!
바위덩어리가 쏟아지듯 내게 달려드는 무수한 오니들을 올려다보는 내 머릿속에서 엄청난 기세로 경종이 쳤다.
위험해! 죽어죽어죽어죽는다고!!?
요격불가.
방어불가.
회피불가.
이렇게 되면……남은 수단은 단 하나! 아니, 그전에 다른 방법도 없잖아, 젠장!
──「계왕권」! ……세, 세 배다!!!
◆
「사부……!?」
갑작스런 땅울림에 눈을 돌리자, 그곳엔 아까까지 느껴지던 선대의 기척과 모습 대신, 오니들의 거구가 높게 쌓아올려져 있었다.
저것은 전법이 아니다.
저것은 기술이 아니다.
그저 저 거대한 육체에 갖춰진 압도적인 방어력과 무게로 선대를 짓뭉갠 것이다.
인간인 선대로선 버틸 리가 만무한 공격이다.
「사부!!」
「한 눈 팔 여유가……있나보군!」
메이링에겐 저 아래 깔려있을 선대를 구해낼 기회는커녕 걱정할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눈을 돌리자마자 맞서고 있던 오니가 두 팔을 내리친다.
바로 옆으로 뛰어 겨우 회피한다.
힘차게 내리 찍은 망치 같은 일격이 땅을 부수고 먼지를 피워 올린다.
땅을 굴러 거리를 취한다. 하지만 그곳엔 벌써부터 다른 오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을 밟으려는 거대한 오니 아래를 그대로 굴러 곡예 같은 움직임으로 빠져나간다.
바로 일어서서 자세를 취했으나, 메이링의 정신은 반쯤 딴 곳으로 향해 있었다.
──그 사람이 죽을 리 없어!
──하지만……저래선.
겹겹이 쌓인 오니들은 마치 거대한 바윗덩이 같았다.
이미 「공격을 받아넘기는」 수준도 아니거니와 기술로 어떻게 할 수 있을만한 질량이 아니다.
설령 저 공격으로 죽지 않았다고 한들 인간의 몸이 버틸 수 있을까──.
그리고 살아 있다고 한들, 빠져나올 수단은 있는 걸까──.
「대답……」
메이링은 목소리를 높였다.
「대답해주세요, 사부!!」
바람이며 한탄이기도 한, 필사적인 호소였다.
그 부름에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당연하다.
오니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메이링마저 희미하나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살아있을 리 없다.
그 순간에도, 그리고 지금도 도망치지 못했다.
이제 어차피 살아있어 봤자 죽기 직전일 선대를 먹어치우면 그걸로 끝──.
「……음?」
가장 먼저 이변을 깨달은 것은 주변을 살필 여유가 있던 오니였다.
그 다음엔 메이링이 뒤를 이어 이변을 알아차렸다.
지금의 그녀에게 눈을 돌릴 여유 따윈 없었지만, 기척을 느끼는 것으로 바로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이다.
──겹겹이 쌓인 오니의 산이 흔들리고 있다.
작은 흔들림이 순식간에 커지더니, 마치 터지기 직전의 화산처럼 아래쪽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몸과 몸이 단단히 얽혀 만들어진 거대한 바위가 점점 흔들리더니, 마치 금이 가듯 여기저기 생겨난 틈에서 빛이 솟아나오기 시작했다.
겹겹이 쌓인 오니들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
「……으」
겹겹이 쌓인 오니들 밑바닥에서 솟아오르는 정체모를 힘.
「……으오」
그 틈새 속에서 마치 신음소리 같은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으, 으오오오오오오오오오!!!」 다음 순간, 산이 폭발했다.
바로 밑에서 폭발한 「힘」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겹겹이 쌓여 있던 오니들의 몸이 저 하늘 높이 튕겨나갔다.
그곳에 서 있던 것은 인간이었다.
그야말로 오니나 다름없는 인간이었다.
깔렸음이 분명한 선대무녀가, 압도적인 힘을 뿜어내며 오니들의 산을 되밀어내고 일어선 것이다.
「사, 사부……!」
메이링은 기쁨 이상의 경악과 공포에 휩싸였다.
선대의 모습은 아까와는 딴판으로 변해 있었다.
근육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온몸이 붉게 물들고, 혈류가 거세졌음을 나타내듯이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곳곳에 난 잔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피부에 닿는 순간 증발하여 붉은 증기가 되어 사라진다.
선대의 몸에서 비정상적일 정도의 열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열이 그대로 선대의 힘으로 변해간다.
메이링도 느낄 수 있는 「기척」이나 「영력」같은, 어찌됐든 「힘」으로 분류되는 모든 것들이 아까까지의 선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오니들을 날려버린 것은, 근력만이 아니라 흘러넘치듯이 뿜어져 나온 그 「힘」 자체였다.
「이 녀석……정말로 인간이냐!?」
메이링의 속마음을 대변하듯이 오니의 한 마리가 전율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한 마디 말이 그 오니의 운명을 결정했다.
외침을 끝맺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선대가 그 목소리에 반응하여 거칠게 고개를 돌렸다.
상반신을 아래로 푹 떨궈 돌진할 자세를 취한다.
충혈 된 그 눈은 이미 표적을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하늘 높이 날아간 오니들이 그제야 치솟는 것을 멈추고 아래로 떨어져 내린다.
「──하앗!」
다음 순간, 선대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그야말로 탄환.
박찬 땅이 산산조각 날 정도의 초동을 누구도 알아챌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엔, 방금 소리친 오니의 얼굴을 선대의 발이 꿰뚫고 있었다.
오니의 거체가 그대로 뒤로 날아간다.
선대가 그것을 쫓아 달린다.
그제야 오니들의 몸이 소리를 내며 땅에 처박힌다.
──모든 존재와 사상이, 선대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했다.
자신이 차서 날려버린 오니를 따라 잡은 선대는 힘없이 흔들리는 다리를 잡아챘다.
저항은 없었다.
아니, 이미 생명이 없었다.
발에 직격당한 오니의 얼굴은 처참하게 짓뭉개져 있었다.
즉사였다.
오니의 다리를 잡은 선대는 그대로 다리를 멈춰 속도를 줄였다.
선대의 몸이 멈춘 곳은 딱 오니 떼의 중앙.
말 그대로 적중이었다.
그 자리에 멈춰선 선대는 그대로 자신이 잡은 오니를 그대로 휘둘렀다.
팽이처럼 회전하는 선대.
자이언트 스윙──아니, 선대의 힘이 담긴 회전이 태풍과도 같이 몰아쳤다.
압도적인 힘이 주변의 오니를 쳐 날리며 날뛴다.
날아간 오니는 그대로 주변의 건물에 처박혔다.
「……나왔다」
「나왔다고! 저 인간의 「오니」가 나왔어!!」
「그때와 똑같아! 유우기를 쓰러트린 그때와──!」
동료의 시체에 맞아 날아가는 오니.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는 오니.
모든 오니가 웃음조차 잊고 떨고 있었다.
──이것이, 그 호시구마 유우기를 물리친 인간의 진정한 힘인가!
「으……으아아아!!」
손 한번 못 써보고 없게 동료가 쓰러져가는 광경을 지켜보던 한 오니가 소리를 지르며 돌진했다.
그때, 그 오니는 용감한 포효가 아니라 위축된 자신을 몰아세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소리를 쥐어짠 것이었다.
사방으로 몰아치는 회전 속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인 머리 위를 노려 높게 점프한 오니.
그것을 눈치챈 선대는 휘두르고 있던 시체를 그대로 돌려 오니를 향해 내던졌다.
믿기지 않을 정도의 힘에 휘둘리던 그 오니의 상반신은, 목과 두 팔이 있을 수 없는 각도로 꺾여 있었다.
이미 시체라기보다 고깃덩이로 변한 그것은 선대의 손이 놔진 순간 포탄처럼 발사되어 위에서 덤벼들던 오니와 충돌했다.
그뿐인 공격에 튼튼함으로는 따라올 자가 없는 오니의 육체에 엄청난 충격이 퍼진다.
한순간 몸이 굳은 오니는 눈을 한 번 찡그리고는, 다음 순간 눈을 커다랗게 치켜떴다.
땅을 박차 뛰어오른 선대가 더욱 위쪽에서 오니를 내려다보고 있던 것이다.
오른다리가 한계에 가까울 정도로 치솟아 있었다.
피할 수 없다.
「하아아아아아!!」
선대의 짐승과도 같은 포효.
하지만 그 뒤꿈치는 냉철할 정도로 정확하게 오니의 정수리에 내려 찍혔다.
체중을 실은 채 낙하함과 동시에 그대로 짓밟는다.
한 치의 용서도 없는 일격.
그리고 한 호흡조차 쉬지 않고 바로 다음 행동으로 들어간다.
땅에 착지한 순간 선대는 다음 표적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온몸을 포탄 삼은 정권지르기가 그 주먹을 막으려던 오니의 두 팔이 단번에 부서지고, 충격이 몸을 관통하여 척추를 조각낸다.
그 주먹이, 오니의 몸을 꿰뚫는다.
그 발이, 오니의 목을 베어낸다.
그 장타가, 오니의 턱을 박살낸다.
그 손날이, 오니의 몸을 양단한다.
그것은 파괴와 죽음의 폭풍이었다.
적들 사이를 휘몰아쳐 생명을 앗아가는 포학의 폭풍우.
삼십에 달하는 오니 무리가 그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선대 한 명에게 휘저어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메이링 또한 선대를 따라 힘차게 싸웠다.
극한의 혼란에 빠진 오니들.
그런 오니들의 빈틈을 노리고 접근하여 한 표적을 단번에 정리하는 선대.
메이링이 하나하나 쌓아올린 확실한 전과는 선대의 압도적인 전투에 가려져 적이 그녀에게서 관심을 돌릴 정도였다.
메이링은 전투를 이어가며 선대를 돌아봤다.
──저건 기술을 동반한 폭력이야.
──극한까지 드높인 힘을 마구잡이로 폭발시키는 게 아니라, 기술로 힘에 지향성을 줘서 확실하게 적에게 때려 박고 있어.
──힘을 억누르고 있지 않아. 오히려 힘을 마음껏 풀어놓고 증폭시키고 있는 거야.
그런 힘을 한 몸으로 받고 있는 자들에게 있어서 그 사실은 더할나위 없이 두려운 것이었다.
메이링은 다시금 선대무녀를 향한 전율감과 공포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봐온 선대가 가진 힘의 일부와는 다르다.
아마 저것이, 그녀의 비장의 수단이다.
「굉장해……하지만!」
메이링은 초조했다.
확실히 굉장한 힘이다.
오니를 완전히 압도하고 있다.
그 호시구마 유우기를 쓰러트렸다는 것이 납득될 정도다.
──하지만, 그 유우기와 싸운 뒤, 그녀는 어떻게 됐지?
저 힘은 비정상적이다.
인간의 몸으로 발휘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반드시 어딘가 말썽이 생긴다.
실제로 선대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공격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몸 여기저기에 잔뜩 피가 묻어 있었다.
코에서 흐르던 피가, 이번엔 입에서, 눈에서, 그리고 끊어진 혈관에서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몸에서 피어오르는 증기를 보건대 이미 체온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
한계가 가깝다.
그리고 그 한계를 넘었을 때──아마 그녀는 죽는다.
지금 당장의 전황은 일방적이었다.
메이링의 눈앞에서 또 다시 한 오니가 선대의 손에 죽었다.
이걸로 순식간에 오니를 열 마리도 넘게 해치운 것이다.
하지만 적의 수는 이제야 반이 줄었을 뿐이었다.
◇
──「제정신을 차리다」라는 표현이 제일 비슷할지도 모르겠지만, 확실치는 않다.
하아, 하아, 하는 잔음이 낀 소리가 들렸다.
내가 호흡하는 소리다.
마치 남의 숨소리처럼 들려온다.
그만큼 지쳐있다는 증거다.
내가 비장의 수단인 리미터 해제를 사용한 순간, 뭔가 다양한 것들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 기술 피가 나왔었지. 코나 눈 같이 원래 나와선 안 되는 구멍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위험한 기술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다.
아드레날린이라든가 하는 것도 쫙쫙 나온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 그런 걸 볼 수 있다면 내 뇌는 뇌내 마약에 푹 절어있었을 것이다.
피만이 아니라 배속에서 마그마가 흐르는 건 아닐까하고 생각할 정도의 열이 온몸의 근육을 맴돌았다.
나는 그렇게 뿜어져 나오는 「무언가」가 자극하는 대로 싸워나갔다.
마구 싸웠다.
의식이 없진 않았지만, 그 의식이 반쯤 날아가 버린 것 같은 상태에서 터무니없이 몸을 놀렸다.
자기보다도 큰 상대를 차 날리고. 두 다리를 잡아채서 자이언트 스윙으로 날려버리고, 그거랑 같이 다른 적들도 날려버리고──말 그대로 무쌍 상태였다.
솔직히 이 정도의 성과는 나로서도 예상외였다.
이 기술은 몇 번 써본 적이 있는데다 유우기와 싸울 때 썼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지만, 이렇게까지 극적인 전투력 상승은 경험해보지 못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걸까──.
「세, 세 배다!!!』
……에, 설마 그거 때문이야?
그냥 하는 김에 외쳐봤을 뿐인데. 정말로 계왕권 세 배 같은 효과가 나온 건가?
그때는 정말로 절체절명이어서 무의식적으로 억누르고 있던 한계를 더 크게 넘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네.
어쨌든 내 리미터는 예상했던 것보다 몇 개 더 풀리고 말았다.
그 결과가 내가 보기에도 마치 오니처럼 싸우던 내 모습이다.
그리고 그 말로가──지금의 이 꼴이다.
발휘한 힘은 세 배. 그리고 소모도 세 배였다.
언제 힘이 다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내 발은 멈췄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움직일 수조차 없다.
온몸이 납처럼 무겁다.
그것도 빨갛게 될 때까지 달군 납이다.
근육 속에 그런 납이 가득 들어차기라도 한 듯이 뜨겁고 나른하다.
싸우고 있을 때엔 육체를 자극하던 열이, 지금은 그저 고통과 무게로만 느껴졌다.
이……이게, 세 배의 리스크라 그건가……!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가사의한 현상에 전율했다.
지쳤다든가, 체력의 한계라든가, 그런 게 아니다.
움직일 수 없다.
몸이 마치 진흙 같다.
숨밖에 쉴 수 없는 진흙.
아까 전부터 들리는 기묘한 숨소리는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아무리 힘껏 산소를 들이켜도 체력이 회복될 기미가 없다.
이제 틀렸다.
얼마나 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걸로 모든 걸 쏟아냈다.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벌써부터 검게 물들기 시작한 시야로 주변을 둘러본다.
오니의 시체가 잔뜩 널려있다.
주변의 건물들도 몇 개는 반쯤 붕괴했거나 아예 가루가 된 집도 있었다.
30마리는 있던 오니가 반 이상 쓰러져, 이젠 서 있는 놈이 더 적을 지경이다.
내가 날뛴 결과다.
물론, 메이링이 노력해준 결과기도 하다.
좋아.
최후의 순간이 가깝다.
가깝……지만.
──남아있는 녀석, 생각보다 많지 않아?
나는 이제 오니가 아닌 피라미 요괴한테 한 대만 맞아도 훅 갈 것 같다.
그런데 오니는 아직도 열 마리가 넘게 모여 있었다.
◆
폭풍은 갑작스레 그쳤다.
넘쳐흐르는 힘과 예리한 기술로 오니를 마치 휴지조각처럼 잘게 썰어버리던 선대는, 몇 마리째 오니의 머리통을 깨부수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힘이 다해 쓰러진 오니의 시체를 앞에 두고 제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거친 숨과 함께 어깨가 들썩인다.
땀과 피가 섞인 액체가 온몸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냉정하게 관찰해보니, 손발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고양된 정신에 몸이 반응하여 떠는 것이 아니다. 그저 혹사된 근육이 경련할 뿐이다.
──한계야!
메이링은 그 사실을 깨달았다.
무의식적인 행동인지, 선대 자신의 판단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육체는 한계에 다다라 멈춘 것이다.
저대로 한계를 넘어서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감에 휩싸여있던 메이링에게 있어선 다행인 일이었다.
하지만 전황을 돌아보면 이것은 최악에 가까운 사태다.
반 이상의 오니가 선대와 메이링의 손에 쓰러졌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아직 오니는 전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선대와 메이링과의 교전으로 크든 작든 상처를 입은 오니들 뿐이긴 하지만, 아직 싸울 수 있는 오니가 10마리 이상 남았다.
중요한 선대는 한계 직전까지 힘을 짜냈고, 아직 여력이 있는 메이링이라도 부상을 입은 상태다.
아니, 애당초 메이링이 여럿의 오니와 싸울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까지 메이링이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어지러운 난투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덕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싸워야만 해.
선대는 더 이상 제대로 싸울 수 없다.
그렇다면, 자신이 할 수밖에 없다.
메이링은 처음부터 각오했었다.
처음부터 「목숨을 버린다」고 각오한 것이다.
「머……멈춘 건가」
「……젠장! 쫄아서 연명하다니! 오니란 이름이 울겠군!」
「아직이야! 방심하지 마……!」
「맞아, 싸우던 중에 열불 내는 건 무의식적으로 이겼다고 생각한다는 증거다」
「그래, 아직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저 빨간 머리 요괴한테도 더 이상 방심해선 안 돼」
선대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알아챈 것은 메이링만이 아니었다.
아직 수적 우세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남은 오니들은 약간의 방심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심을 경계할 정도였다.
싸움을 시작할 때처럼 기뻐하며 목숨을 건다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
선대와 메이링을 향해 지금보다도 더한 경계심을 품는다.
──숨통을 끊는 그 순간까지, 털끝만큼의 빈틈도 보이지 않겠다.
그런 자세가, 기백으로 변해 전해져왔다.
오니의 기백이 뭉쳐 철과 같은 무게로 주위를 짓누른다.
그것만으로도 지친 선대는 쓰러질 뻔 했다.
이미 균형조차 제대로 잡지 못할 정도다.
휘청휘청 힘이 풀린 다리로 걸었다.
──앞을 향해.
「사부!? 이제 무리에요!」
메이링이 눈을 치켜뜨며 말렸다.
하지만 늦는다.
느릿느릿한 선대의 움직임에 대한 오니들의 반응은 엄청났다.
움직인 것은 세 마리. 동시에 덤벼들 수 있는 최대한의 숫자가 서로 움직이는 타이밍까지 맞춰 선대를 향해 덤벼들었다.
스치기만 해도 죽어버릴 것 흉악한 일격이 선대를 덮친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을, 선대는 흐려진 눈으로 바라보곤.
──후우.
숨을 내쉬며 피해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발도 아직 휘청거리고 있었다.
간신히 자세 비슷한 것을 취하고는 있으나, 제대로 잡혀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주먹에도 전혀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피했다.
선대는 오니의 공격을 스칠 듯 말 듯한 거리에서 피해낸 것이다.
「무슨──」
놀란 것은 메이링뿐이었다.
오니는 동요조차 하지 않는다.
두 마리째 오니가 온 힘을 담아 손톱을 휘두른다.
피하기 어려운 궤도다.
분명 맞아야할 공격.
──하아.
또다시, 숨을 내쉬며 피해낸다.
허공에 떠다니는 종이처럼, 힘이 풀린 몸이 바람을 가르는 오니의 손톱을 피해냈다.
──후우.
그리고 세 번째 공격까지 실패했다.
절망적인 세 차례의 공격을 전부 피해낸 것이다.
공격 뒤에 찾아오는 한순간의 경직.
원래라면 반격을 날릴 기회.
하지만 선대는 이미 공격을 피해낸 것이 기적과도 같은 상대다.
들어 올리는 것조차 힘들어 보이는 저 팔로 오니를 쓰러트린다니,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강철보다 단단한 육체를 뚫기는커녕, 피부에 상처조차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선대는 아직도 초점이 흐려져 있는 멍한 눈으로 오니의 얼굴을 올려다보고는, 늘어져 있던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하아.
그 순간, 오니의 머리가 자신의 몸에 작별을 고하며 떨어져나갔다.
◇
만화 속 상황이란 녀석은 꽤나 만능이다.
어떤 상황이든.
어떤 상태이든.
반드시 그 위기를 헤쳐 나온 선구자들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그런 위대한 선구자들을 존경한다.
그렇기에 나는 그런 선구자들의 경험을 양식으로 삼는다.
지금 또한 그렇다.
나는 궁지에 몰려 있다.
30을 넘는 강적들을 상대로 충분히 선전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포기하지 않는다.
왜냐면, 이 정도의 위기는 이 길을 걸어 나갔을 위대한 선구자들 또한 이겨냈을 테니까.
그래……이럴 때 「그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베르세르크의 가츠는 오직 벤다는 것에만 집중하여 심장의 고동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때까지 검을 휘둘러 이겨냈다.
베가본드의 무사시는 한 곳에 머물지 말고 강의 흐름에 몸을 맡기듯이 계속 움직이라고 했다.
아니, 이 경우엔 자기 자신이 강줄기가 된 듯 움직여라, 였나?
무사시가 썼던 건 「공격용 소력」이었지? 가츠는 녹슨 칼로 대나무를 베며 명경지수를 위한 수행을……아니, 아니야. 왠지 섞였어.
의식이 몽롱해져서 잘 생각나질 않는다.
헤헷, 뭐야. 드디어 내 가면도 벗겨지기 시작한 건가.
하지만 의도한 바는 아니어도 지금의 난 그들과 같은 경지에 다다랐을지도 모른다.
과연.
요컨대 자신에게서 쓸데없는 걸 하나하나 줄여나가다 보면 진리를 찾을 수 있다는 걸까.
──명경지수.
──물의 마음.
──맞다, 모코우한테 가르쳐줬던 「천심」도 잊어먹으면 안 되지.
제자인 모코우가 할 수 있게 됐는데 내가 할 수 없다니, 그럼 안 되잖아.
지금이야말로 이런 진리를 한 곳에 모아 궁지에서 벗어날 때다.
아.
……하지만.
지쳤어.
체력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몸이 깎여나간 것 같은 기분이야.
온몸이 욱신거린다.
그리고 움직이질 않는다.
정말로 몸을 깎아가며 싸웠다면 당연한 결과인 걸까.
아니, 이건 단순한 비유다.
사지는 멀쩡하다.
손이 있고, 다리가 있다.
눈도 아직 보인다.
폐도 숨을 바라고 있다.
심장도 움직이고 있어.
아직이야.
아직, 나는 움직일 수 있다.
이 정도의 궁지는 만화 속의 영웅들도 심심찮게 겪은 거잖아.
맞아──만화. 애니메이션. 그 외에도 수많은 환상 속의 존재들.
동방이라는 세계에 사는 내 입장에선 결코 환상이 아닌 존재들.
현실에 있을지 없을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그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난 항상 그들이나 그녀들「처럼」 살아왔다.
도저히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엔 그들의 가르침에 따랐다.
지금도.
지금도?
어떠려나.
이번엔 지금까지완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지금의 난 한계를 넘어서 다음 한계를 맞았으니까.
힘이라곤 이제 정말로 쥐뿔만큼도 남지 않았다.
이런 꼴인데 남의 흉내를 낼 힘이나 의식이 남아있긴 할까?
유우기와 싸웠을 때와 비슷하지만 , 미묘하게 다르다.
그때엔 여유는 없었어도, 남은 힘은 있었다.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서있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경험해온 싸움들 또한 그렇다.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은 몇 번이고 들어서봤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힘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처음이었다.
한 명의 강적을 상대로 모든 것을 걸고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적들을 상대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냈다.
생명을 깎아내며 싸웠다.
리미터 해제한 그 짧고도 긴 농밀한 시간 속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한계를 뛰어넘어 움직일 때마다, 공격할 때마다, 나라는 존재를 덮고 있던 가죽이 벗겨졌다.
그리고 한계 일보직전인 상황에서 반보 쯤 발을 내디딘 것 같은 지금 이 상황.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싸워야만 한다.
지금의 내겐 나를 가리고 있던 가죽이 남아있는 걸까.
지금의 내겐 무엇이 남아있을까.
역시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있는 것마저 남의 흉내인 걸까.
어때?
좀 더, 나아가면 뭔가 보일 듯했다.
그 무언가가 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보고 싶었다.
진정한 내가 어떤지 보고 싶었다.
이제 한계지만, 그럼에도 아주 조금만이라도 더욱 나아가보고 싶다.
봐봐.
이제 반보.
아니, 3분의 1발짝 정도일까.
희미하던 시야에 무언가가 보였다.
어라? 뭐야, 이 녀석 오니잖아.
오니가 날 죽이려고 팔을 치켜들고 있어.
안 돼. 그건 안 돼. 죽고 싶지 않아. 죽을 수 없어.
이럴 때엔……어떻게 하면 되는 거였지? 잊어버렸네.
죽고 싶지 않아, 가 아니라,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거 아니었나?
하지만 난 죽고 싶지 않아.
왜지?
옛날엔 그러지 않았는데.
벼랑에서 뛰어내리기까지 했는데.
진심은 어떻지?
내 진심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아니, 잠깐. 생각하지 마. 죽는다든가 죽지 않는다든가, 예상하거나 떠올리거나……그런 건 아마 쓸데없는 짓이다.
어찌되든 상관없어. 생각하는 건 힘 낭비야.
몸에 맞기면 돼.
혼에 따르면 돼.
머리가 아니라, 지금까지 수많은 수행을 거치며 몸의 뿌리까지 새겨진 것만이 마지막으로 내 몸에 남겨진 것이겠지.
그래.
수행의 나날들──발단이 뭐였든, 그렇게 쌓아올린 것들은 전부 내 거야.
동경으로부터 시작한 수행이라 해도, 그걸 계속해온 시간은 더할나위 없는 현실.
그래.
초심이 떠올랐다.
남한테 이기기 위해, 남보다 강해지기 위해──아니, 더 장황하게 말하자면 남을 위해 수행해온 것이 아니다.
내가 익힌 비법이 「명경지수」인지 「물의 마음」인지 「천심」인지, 아니면 아무것도 익히지 못한 건지.
이 마지막 순간에 알 수 있다.
나타날 거야.
맞아.
진리. 오니의 주먹. 눈앞까지 다가온. 명경지수. 몸이 무거워. 풍압이 피부에 닿는다. 물의 마음. 흔들리듯 움직인다. 집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던 공격이 이런 희미한 시야로 보일 리 없는데도 피해내고 두 번째 공격도 강이 흐르듯 멈추지 않고 회피 세 번째 공격을 피하면 한순간이나마 빈틈이 생길 테니 나무판을 뚤는 물방울처럼 쓸데없는 힘은 쓰지 않고 오른 주먹을──.
좋아, 쓰러트렸어.
멈추지 마.
다음 녀석을 노려.
◆
「한계에 다다른 건 확실해……그런데」
메이링은 자신의 눈에 비치는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분명히 아까보다 강해졌어……!」
선대가, 오니를 쓰러트리고 있었다.
마치 망령처럼 휘청휘청 걸으며 불에 뛰어드는 나방과도 같이 살아남은 오니에게 다가간다.
위압감은커녕 툭 밀면 그대로 쓰러질 것만 같은 모습에도 오니는 무심코 뒷걸음질 쳤다.
그러던 오니가 결국 마음을 다잡고 선대를 공격한 순간──.
죽은 것은 오니 쪽이었다.
메이링은 당연하단 듯 반복되는 몇 차례의 공방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었다.
선대의 움직임은 처음과 비교하면 훨씬 느려진데다 활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간신히」굉음을 퍼트리는 오니의 맹공을 살짝 피해낸다.
그 움직임은 느렸다.
반격하기 위해 주먹을 쥐는 손가락의 움직임마저 똑똑히 보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제대로 쥐어지지도 않은 것 같던 주먹이 사라지더니,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오니의 몸 한 부분이 사라져 있었다.
머리를 맞으면 머리가 사라지고, 가슴을 맞으면 심장이 있는 곳이 통째로 모습을 잃는다.
메이링은 그제야 선대가 어디를 노리고 공격했는지 알게 되고, 오니는 죽는다.
그런 일이 벌써 몇 번이고 반복되고 있었다.
우연이 아니다.
기적도 아니다.
선대의 훌륭한 방어와 공격이 어우러진 결과인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도대체 완전히 지쳐버린 저 몸 어디서 저런 힘이 나온단 말인가.
힘이 아니라면, 기술인가.
만약 그렇다면, 짜질 대로 쥐어짜져 채 한줌도 남지 않았을 힘으로 오니를 쓰러트리는 기술이란 대체 무엇일까.
메이링은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도움 따윈 필요치 않았던 것이다.
남은 오니는 이제 그녀 혼자서 전부 해치울 수 있다.
그 정도로 압도적인 광경이었다.
압도적임에도, 선대의 모습은 여전히 반 시체나 다름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어.
──아니, 무언가가 드러나고 있는 거야.
──피로에 절어 의식도 몽롱해졌을 선대의 안에 있던 뭔가가 얼굴을 내밀고 오니를 압도하고 있어.
메이링은 직감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미 선대에 대한 놀라움은 없었다.
지금 선대가 보이는 움직임은 메이링이 지금까지 봤던 그녀의 모든 기술과 닮아 있었으며, 동시에 어느 것과도 닮지 않았다.
마치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것을 모은 집대성──그렇다고도 볼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단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평소엔 바닥을 알 수 없는 실력과 심오한 마음을 가진 그녀. 그런 그녀의 바닥에 있던 무언가가, 지금 드러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보지 못한, 진정한 당신을……」
메이링은 넋을 놓은 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선대무녀의 모습을 눈에 넣을 기세로 바라본다.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남아있던 오니들 대부분이 죽고 마지막 한 마리만이 남아 제자리에 서있었다.
그리고 선대 또한 마지막 표적의 앞에 겨우 도달할 수 있었다.
마주선 두 명은 똑같이 만신창이였다.
끝까지 살아남은 오니는 이미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
오른팔은 부러져 바깥쪽으로 꺾여 있었고, 한쪽 눈은 뭉개지고 오른쪽 뿔 또한 부러져 있었다.
간신히 서있는 것은 오니든 선대든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표정을 바꿀 힘조차 잃은 것 같은 선대에 비해, 오니는 자신의 미소를 다시 되찾았다.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둔 자의 웃음이다.
「훌륭하구나, 무녀여」
오니는 마치 늙은이 같은 말투로 말했다.
기이하게도, 마지막으로 남은 이 오니는 싸움이 시작될 때 선대무녀에게 가장 먼저 덤벼드리라 각오했던 오니였던 것이다.
무슨 인과일까, 가장 먼저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 오니가 홀로 남을 때까지 살아남다니.
「이 장소의 오니는 내가 마지막일세. 짓궂은 운명이군 그려」
「──」
「웃을 수 없는 겐가. 이미 그럴 힘도 없는 것이겠지. 그럼에도 너는 지금, 내 앞에 서있다」
오니가 멀쩡한 팔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굳게 쥐어진 오른팔에 힘이 모여든다.
「유우기가 말한 대로구먼」
비정상적일 정도로 모여드는 힘.
이 오니만의 힘이 아니다.
주변에서 죽어간 오니들의 시체에서 빨려나오듯이 요력이 빠져나와 주먹에 모여든다.
그것은 남아 있던 요력일까, 아니면 죽은 오니의 혼일까.
어쨌든, 그것들은 늙은 오니의 손바닥 안에서 하나의 커다란 「힘」으로 변해갔다.
「──장하고도 훌륭하도다! 그 힘에 맞서 이 몸의 전신전령을 걸고 이 마지막 일격으로 도전하마!!」
오니의 주먹이 굉음을 울리며 빛을 뿜어낸다.
두려울 정도의 위력을 품은 빛.
싸움이 시작된 뒤, 수많은 오니가 해온 다양한 공격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공격이, 지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의 능력은 「밀도」를 다루는 능력! 우리 오니들의 두목에 필적하는 이 힘, 이겨낼 수 있다면 이겨내 보거라!」
그런 오니와는 반대로 선대는 묵묵히 두 손을 한 데 모으고 있었다.
합장으로부터 이어지는, 볼 수도 막아낼 수도 없는 강력하기 짝이 없는 일격의 잔재조차 보이지 않았다.
느릿느릿한 속도로 오랜 시간을 들여 드디어 두 손을 한 데 모아 합장하는 선대.
「승부!!」
오니의 주먹이 뻗어졌다.
그리고──.
그 주먹이 채 뻗어지기도 전에, 선대의 주먹이 오니의 몸을 두 쪽으로 갈라놓았다.
◇
……지쳤어. 나 죽네.
◆
마지막 일격은 잔상조차 보지 못했다.
오니가 쓰러진 뒤, 뒤늦게 선대가 무릎을 꿇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자마자 제정신을 차렸다.
메이링은 당황하며 선대의 곁으로 달려들었다.
가냘픈 호흡만을 반복하는 선대를 안아 옆에 있던 벽에 기대 앉힌다.
어느새 이공간을 만들어낸 결계는 해제되어 있었다.
오니의 전멸이 조건인지, 아니면 또 다른 조건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것이 전투가 종료됐음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이공간에서 파괴된 건물은, 현실세계에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쩡히 서있었고, 주변에서 나뒹구는 오니의 시체들만이 전투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증거였다.
「……이겼나」
──아니, 살아남은 거야.
메이링은 씹어 삼키듯 힘을 담아 중얼거렸다.
「끝났어요, 사부」
메이링은 어린애를 대하듯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돌아오는 반응은 애매했다.
어쩔 수 없다.
선대는 지금쯤 기절해도 이상치 않은 상태다.
싸움이 끝나고 긴장의 끈이 풀린 선대는 확실히 의식을 잃기 직전까지 도달해 있었다.
싸움의 종반부에 드러났던 그녀가 품은 「무언가」 또한 이미 행동을 멈춘 지 오래였다.
──진정한 선대님의 모습.
그것을 보지 못했단 사실이 유감스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안심이 되기도 했다.
불가사의한 무언가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공포이기도 하다.
메이링은 복잡한 마음을 숨기고 선대의 간호에 힘썼다.
「……메이링」
「사부!?」
의외로울 정도로 힘이 담긴 부름에 메이링이 놀란다.
「나는, 신경 쓰지……마라. 마을에, 아직, 오니가 남아있다……」
「그건──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두고 갈 수는 없어요」
「나보다……마을을……」
「저는, 요괴예요. 당신을 위해 싸울 이유는 있어도, 인간을 위해 싸울 이유는, 없습니다」
메이링은 굳게 단언했다.
인간에게 냉정한 것이 아니다.
그저 선대를 향한 마음이, 인간보다, 요괴보다, 어느 누구보다 우선될 뿐이었다.
싸움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엿본 메이링은 자신의 행동이념을 더욱 명확하게 정해놓은 것이다.
하지만 선대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나를 위해 마을을 지켜다오」
보이는지 어떤지도 모르는 눈으로 메이링의 눈을 곧게 마주보며 말하는 선대.
메이링은 침묵했다.
이윽고 작게 한숨을 내뱉은 메이링이 작게 미소 짓는다.
「──알겠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바란다면」
부축하고 있던 선대의 몸을 그대로 벽에 기대이게 한 뒤 일어선다.
주변의 기척을 확실히 확인한 뒤, 적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확인하곤 주저앉은 선대를 내려다본다.
「다녀오겠습니다. 이제 싸우시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편히 쉬고 계세요」
「그래……」
생각보다 또렷하게 들러온 대답에 작게 안심한 메이링은 발을 옮겼다.
마을 안쪽으로 나아가 밤의 어둠 저편으로 사라진다.
남겨진 선대는 그 뒷모습을 배웅하지도 못하고 멍하니 허공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이미 그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지고, 온몸에 남아있던 힘이 점점 빠져나간다.
기대고 있던 등이 미끄러져 그대로 땅에 드러눕고 만다.
그 시점에서 선대의 의식은 완전히 끊겼다.
주위에 나뒹구는 오니들의 시체에 한 인간의 시체가 섞인 것처럼 보였다.
간신히 반복되는 호흡만이 선대가 살아있음을 나타냈다.
저벅──.
정적으로 가득 찼던 이곳에 새로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밤하늘에서 살포시 내려선 아홉 개나 되는 금빛의 꼬리를 가진 아름다운 요괴였다.
야쿠모 란이다.
「──」
란은 한마디 말도 없이 소리조차 내지 않고 선대를 향해 걸어갔다.
쓰러진 선대의 얼굴에 귀를 대고 숨소리를 들은 뒤, 코로 피 냄새를 맡는다.
선대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그리고, 이대로 놔둬봤자 결코 죽지 않을 것이란 예측이 세워졌다.
란은 기절한 선대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차가운 눈이었다.
얼마나 그렇게 내려다보고 있었을까.
란은 이윽고 선대를 향해 손을 뻗었다.
희고 가는 손가락.
그 손가락이 살그머니 선대의 목덜미에 얹혀졌다.
그 손가락에 힘을 주려 했으나, 생각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챘다.
란의 몸을 지배한 「식신」의 제약 때문이었다.
주인인 유카리의 명령을 위반하는 행동을 했을 시, 식신인 란은 거의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선대무녀를 죽이려는 행위」엔 생각대로 힘을 쓸 수 없다.
──하지만, 눈앞의 인간은 이미 반쯤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
큰 힘은 필요 없다.
저항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보라.
이렇게 손가락 두 개로 목의 급소를 살짝 눌러주기만 하면 된다.
이대로 몇 초만 지나면 끝이다.
말 그대로, 잠에 빠지듯이.
보라.
하나.
둘──.
◆
유카는 겹겹이 쌓인 작은 언덕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한쪽 무릎은 세우고 다른 한쪽 다리는 쭉 편 자세.
그대로 세운 한쪽 무릎에 오른팔을 얹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 손엔 애용하는 양산을 들어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그 우산은 너덜너덜했다.
천은 이리저리 찢겨 넝마가 됐고, 뼈대는 구부러져 있었다.
게다가 여기저기 핏방울이 잔뜩 튀어 있었다.
마치 피로 된 비를 맞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유카 자신 또한 같은 상태였다.
격렬한 싸움을 펼친 듯, 여기저기 찢겨 피부가 드러난 옷과 온몸을 더럽힌 피는 적의 피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피이기도 했다.
유카는 바로 방금까지 싸우고 있던 것이다.
그야말로 사투라고 부르기에 합당한 엄청난 전투였다.
유카가 앉아 있는 작은 언덕──그것은 오니의 시체가 겹쳐 쌓여진 것이었다.
「──열 마리가 넘어가는 오니를 몰살하다니. 역시 대단한걸」
마치 상관없는 제3자가 말하듯 유카를 칭찬한 것은 동료의 시체를 밟고 있는 이부키 스이카였다.
유카를 올려다보는 얼굴엔 여전히 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동료 오니들이 싸운 결과 죽음을 맞이했단 사실을 애도하긴 했으나 원망하진 않았다.
스이카를 내려다본 유카가 웃는다.
「조무래기였어」
「잘도 말하네」
「정말이야. 이 녀석들의 실력은 지저에서 본 그 오니하곤 비교가 안 되거든. 선대라면 순식간에 몰살시켰을걸」
「흐흠. 정말로 몰살한 녀석이 그렇게 말하니 화낼 마음도 안 들어」
「그래도, 쓸 만한 연습상대긴 했어」
「연습이라고」
「그래. 튼튼한 거랑 힘만은 인정해줄게」
유카는 자신이 상처를 입었단 사실 자체를 모르겠다는 듯 미소 지었다.
겉으로 드러난 부상이 정말 별거 아닌 건 아닐까 하고 속아버릴 정도로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오니에게 씹혀 잘려나간 왼팔의 상처자국만 아니었더라도, 스이카 또한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스이카는 겹겹이 쌓인 작은 언덕 맨 아래에 쓰러져 있는 오니의 시체가 유카의 왼팔을 물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곤 말없이 그 팔을 뽑아냈다.
「떨어져서 싸웠다면 더 안전하게 이길 수 있었을 텐데」
그 팔을 유카에게 던져준다.
「말했잖아? 「연습」을 위해서야」
유카는 용케도 우산을 어깨에 걸친 채 그대로 오른손을 뻗어 왼팔을 잡아챘다.
「 「수행」이라고 말하는 편이 이해하기 쉽겠는걸」
「어디의 바보가 생각나서 싫어」
「강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요괴는 드물지. 특히 너처럼 오래된 요괴가 말이야」
「나는 너희랑은 달라」
받은 팔을 한 손으로 놀리며 유카가 말했다.
얼굴에 지어진 저 표정은 분명히 스이카를 향한──아니면 오니 전체를 향한 비웃음이었다.
「멸망해가는 낡은 종족. 그걸 알고도 웃는 바보들」
「……알고 있었나」
스이카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마음에 안 들어」
유카는 「뭐가」라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스이카 일행의 행동원리가 자신의 사상과 맞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단순히 이 태양의 밭에 와서 「싸움」을 하자며 덤빈 것이 불쾌한 것일까.
아니면 그냥 기분이 나쁜 것일까.
유카는 그대로 아무 말도 없이 오른손에 억세게 힘을 줬다.
그 손에 들린 왼팔이 삐걱이기 시작한다.
나가떨어졌다고는 해도, 자신의 왼팔을 뼈째로 으깰 기세였다.
아니, 실제로 유카는 자신의 왼팔을 으깨고 있었다.
그 불가사의한 행동에 스이카가 눈을 치켜뜬다.
「선대한테 퇴치될 것도 없어」
스이카가 놀란 것은, 유카가 자신의 팔을 으깼기 때문이 아니다.
사방으로 터져나갔어야 할 살덩이와 피가, 허공에서 빛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유카의 왼팔이 희미하게 빛나더니, 그대로 빛 속에서 분해되어 무수한 빛알갱이로 변해간다.
「여기서 죽어」
유카의 왼팔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소멸한 것이 아니다.
유카의 왼팔은 물질이 아닌, 영적인 입자로 무수히 분해되어 유카의 오른손 위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어이어이, 「밀도」를 다루는 건 내 영역인데 말이야」
유카가 보인 현상을 이해한 스이카는 정말로 놀라고 있었다.
「네 왼팔을 분해해서 요력으로 바꿨다 그거냐!?」
유카의 오른손에 모여 있는 입자는 눈에 보일 정도로 농밀한 힘의 덩어리였다.
몸에서 힘을 이끌어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자신의 몸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요력으로 바꾼 것이다.
자신의 몸을 연료로 불을 피운 것이나 다름없다.
「대 「선대」용 비밀병기야. 단점이 있다면 쓴 부위를 처음부터 재생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걸까」
그렇게 만들어낸 힘을 유카가 어떻게 사용할지를 눈치챈 스이카는 바로 두 팔을 가슴 앞으로 교차하여 방어 자세에 들어갔다.
「위력은, 「연습」할 겸 너로 시험해줄게!」
특별한 기술은 아니었다.
유카는 그저 오른손에 모인 힘을 앞을 향해 해방했을 뿐이다.
거대한 광선이, 앞길을 막는 모든 것을 불태웠다.
그 스이카마저 예외는 아니었다.
기껏 취한 방어자세가 허무해질 만큼 스이카의 육체는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빛이 사라진 뒤, 진정한 정적이 찾아왔다.
남겨진 것은 오니의 시체뿐.
시체조차 남지 않은 죽음뿐이었다.
「──그냥 자살하려 왔을 리는 없고」
지금은 불탄 흔적만이 남은 스이카가 서있던 곳을 바라보던 유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지금 그 일격──.
단순한 느낌이긴 했지만, 반응이 부족했다.
스이카를 죽였다는 실감이 나질 않는다.
날아가는 모습을 확실히 보긴 봤지만, 아직 살아있을 것 같단 느낌이 들었다.
기묘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아」
유카는 오니라는 존재에 대한 사고 자체를 멈췄다.
흥미 따윈 없다.
있다고 한다면 여러모로 소란스러워진 오늘 밤, 선대무녀가 어쩌고 있을지 뿐이었다.
「……사실, 아무래도 좋단 말이야. 난」
그대로 턱을 괴고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보던 유카가 갑작스레 일어선다.
말과는 반대로 무의식적으로 공중에 떠오른 몸이 어느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한 팔이 떨어져나간 유카는, 마을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