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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선대록

東方先代録


원작 |

역자 | DanteSparda

그 34 「승부」


예를 들어 눈앞에 쇳덩이가 있다고 치자.

 ──벨 수 있을까?

 나는 자문한다.
 그 다음 위축된다.
 온힘을 담아 이 쇳덩이를 내려쳤을 때, 손에 와 닿을 감촉이 강철을 베어 가르는 통쾌한 감촉이 아니라, 단순한 충격과 진동, 그리고 뼈까지 전해질 통증이진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이 쥔 이 검이 부러질 것을 두려워한다.
 이 손에 쥐어진 검은, 자신의 마음속에 담긴 검과 이어져 있다는, 무의미한 생각을 떠올린다.

 ──벨 수 있을까?

 이 자문에 대답하려고 했으나, 그 자문은 자신을 향한 꾸짖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벨 수 있을까?

 최초의 의문점으로 돌아온다.
 의문과 미혹이 자신의 솜씨를 무디게 만들고, 결국 베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결과」인 것일까.
 처음 품은 의문을 지나치게 파고든 것이 미혹으로 이어져, 이러한 결과를 도출해낸 것은 아닐까.

 이것이 자신의 미숙함이다.
 이 미숙함을 극복했다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깨달음은 얻었다.

 의문은 불순물.
 미혹은 불순물.
 불안은 불순물.
 공포는 불순물.

 어느 것이든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모든 요소가 자신의 다리를, 손에 얽매여 이 검을 휘두를 힘을 앗아가고 만다.
 그렇다면, 모두 버리면 된다.
 머릿속에 남길 것은 단 하나.

 ──그저, 벨뿐.

 그 한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벤다.
 대답이 나오지 않는 자문자답을 반복할 바에야, 적을 베어서 결과를 만들어내면 된다.

 베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신과 상대의 강약.
 예를 들어, 자신과 상대의 승패.
 예를 들어, 자신과 상대의 생사.

 그저, 베면 된다.
 이것이 검술의 진리라 말할 생각은 없다.
 이 대답으로 한 때의 자신보다 더욱 성장했다고 말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그러나,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제 자신은 어떤 상황에서든 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꼴불견이던 그때보다 조금은 더 제대로 싸울 수 있다.

 그러니까.
 이해했겠지.
 이해했을 터다, 하쿠레이 레이무.
 승부다.
 한 번 더, 승부하는 거다.
 그때의 내 실력이 내 전부가 아니었음을 증명해주마.
 그 승패가, 제대로 된 결과가 아니었음을 알려주마.
 지금 싸워 나온 결과라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안 된다.
 그때의 패배만은 인정할 수 없다.
 그건 내 전력이 아니다.
 네가 그때 본 것은 콘파쿠 요우무의 참모습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니 지레짐작 하지 마라.
 내게, 실망하지 마라.
 기다려라, 하쿠레이 레이무.
 아직도 널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질 생각도 없다.
 나는 너를──.

 ──벨 수 있을까?

 모른다.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건 베어 보면 알 일.
 자, 승부하자.
 기다려라.
 나는 기다리고 있다.
 호시탐탐 기다리고 있다.
 네가 나를 무시하려고 한들, 잊으려고 한들.
 나는 네게서 눈을 돌리지도, 잊지도 않는다.
 베어주마.
 이번이야말로, 널 베어주마.
 그러니.
 그러니──지금, 내 눈앞에 있는 너는, 방해다. 키리사메 마리사!







「으앗!」

 어깨에서 열기와 함께 퍼져 나온 통증에 마리사는 무심코 비명을 내질렸다.
 방심했다.
 요우무의 탄막을 전부 회피──하기 직전에, 피했을 것이라 확정지은 자만심에 마지막 탄환을 피해내지 못한 것이다.
 스쳤다고는 하지만 아픈 건 아프다.
 마리사는 어깨를 부여잡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왜 그러지? 아직 스펠카드는 한 장 째다」
「그게, 이건 「그레이즈」란 거라고. 일부러야, 일부러」
「 「그레이즈」?」
「아슬아슬하게 피하면 보너스 포인트, 란 룰이지」
「그런 룰은 들어보지 못 했다만」
「내가 생각해냈어. 분명히 유행할걸?」

 마리사의 농담을 요우무는 바보 같단 표정을 지으며 한 귀로 흘렸다.
 승부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그러나 서로간의 승패는 점차 확고해져가고 있었다.

 오니와 싸우며 입은 상처와 소모된 체력이 마리사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작다고는 하나 고통을 호소하는 상처와 그로부터 생겨난 탄막에 대한 두려움이 집중력을 갉아먹는다.
 평범한 소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체력으론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고단할 정도다.
 요우무는 냉정하게 마리사를 관찰하고, 판단했다.

「 「그레이즈」든 뭐든, 맞았다면 네 패배다」
「알고 있어, 기본적인 룰을 어길 생각은 없다고. 하지만, 그러면 재미없잖아?」
「여유롭군. 그걸 졌을 때의 변명거리로 삼을 생각이냐」
「아니, 이쪽도 꽤나 진지해. 진지하게 즐기고 싶단 말이야, 난」
「즐긴, 다고」
「어려운걸」

 마리사는 마치 남 일이라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진검승부로 너한테 도전해봤자 승산이 없으니까」
「탄막이라 한들 네게 승산은 없다」
「그래? 하지만 네 그 무뚝뚝한 표정을 보아하니, 도저히 즐기고 있는 것 같진 않은걸」
「승부를 즐길 필요는 없다. 결과도 변하지 않다」
「그건 어떠려나?」
「알 수 있다」

 요우무는 두 번째 스펠카드를 꺼내 머리 위를 향해 던졌다.

「너 정도는, 베지 않아도 알 수 있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뽑혀 나온 검이 눈앞에서 떨어져 내리던 스펠카드를 벤다.
 두 쪽으로 갈라진 카드가 그대로 사라지더니, 허공을 베고 지나간 검의 궤적을 따라가듯이 탄막이 발사된다.
 휘둘러진 칼이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둑을 베어내기라도 한 듯, 무수한 탄막이 마리사를 향해 뿜어져 나온 것이다.

「검을 사용한 탄막이라, 재밌는걸!」

 탄막이란, 사용자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요우무의 탄막은 갖가지 색채를 담은 화려함은 없었으나, 성실하고도 정직한 빛을 뽐내는 예리한 칼날의 폭풍우와도 같았다.
 대담한 미소를 지으며 농담을 꺼낸 마리사였으나, 그 속내에 여유 따윈 없었다.

 시야를 빽빽이 메운 탄막은 그 자체가 거대한 칼날처럼 보였다.
 빠져 나갈 틈새조차 없어 보이는 밀도.
 다가오는 탄막을 주관적인 시점에서만 파악하고 있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인간이 가진 공간 인식 능력의 한계.

 ──눈보라 속에서 조난당하는 거나 다름없어. 이대로 저런 탄막 속을 향해 돌진했다간 내 위치도 알 수 없을 거야.

 마리사는 사고에 집중했다.
 두 눈에 힘을 모은다.
 다만, 그것은 「눈에 힘을 줘서 앞을 보자」는 목적으로 한 행동은 아니었다.

 ──머리 위에 또 다른 눈이 있다는 느낌으로, 모든 방향을 내다본다.

 이것은 영야이변 때, 레이무와 탄막놀이를 하며 그 뜻 그대로 새로 개안한 능력이었다.
 앨리스의 협력으로 익힌, 마법사가 「마력의 흐름을 보기 위한 시야」.
 엄밀히 따지자면 육안을 이용하여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마리사 자신 또한 확고한 이론을 가지고 시야를 조작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감각적인 면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제대로 배우고, 익힌 것이기도 했다.

「보는 게 전제 조건. 그 뒤는 탐구와 이해」

 앨리스에게 받은 마법사로서의 가르침은 이 싸움에 그대로 응용할 수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터무니없는 탄막을 보는 것만이 아니라, 파악하고, 이해한다.

「환상향에 떠도는 요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일찍이 파츄리에게서 가르침 받은 이 말은, 다시 말해 요소를 어떻게 파악하느냐는 것과 같다.
 잊어버린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조언을 살리지 못했을 뿐.

「기척으로 알 수 있다. 눈에 의지할 생각은 버려라」

 신사에서 들은 선대의 말이다.
 그 사람은 별다른 뜻 없이 그냥 설명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 또한 기억하고 있다.
 언제든, 강해지기 위한 힌트를 찾아 헤매고 있는 마리사다.
 설령 특별한 의도가 없을지언정, 레이무를 키워온 과묵한 사람이 자신에게 한 말을 흘려 들을 리가 없다.
 처음으로 자신에게 기대해줬던 것 또한, 그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 힘을 처음 사용했을 때 맛본 패배가, 마음과 기억 속에 깊게 새겨져 잊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레이무에 졌을 땐, 분했다.
 그 터무니없는 힘에 마음이 꺾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레이무의 힘이 자신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 힘에 패배했던 그 날의 경험이, 눈앞까지 다가온 요우무의 힘을 여실히 드러낸 탄막에 굴하지 않을 것이란 근거를 제시해주고 있었다.

「아무리 위험해보여도──」

 마리사는 각오를 마친 뒤, 탄막 속을 향해 돌진했다.

「레이무보다는 나아!」

 마리사는 이미 앞을 보고 있지 않았다.
 마리사의 눈엔 움직이고 있는 자신을 포함한 모든 탄막의 움직임이 확실히 보이고 있었다.
 극한의 이른 집중력 탓일까, 피로도, 아픔도 머릿속에서 잊혀진지 오래였다.
 남은 생각은 단 하나──이 탄막을 어떻게 피하느냐가 전부였다.
 마리사의 몸을 탄막이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갔으나, 그럼에도 피해내고 있었다.

 표적을 짓뭉갤 기세로 펼쳐진 탄막의 틈바구니를 고속으로 파고들어 빠져나가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혜성.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요우무의 눈매가 약간 치켜 올라갔다.
 마리사에게 위협을 느낀 것은 아니다.
 위협 따위, 느낄 리가 없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 벌이고 있는 승부에서 여느 때와는 다른 무언가가 느껴진다는 것은 확실했다.
 이것이 ​실​전​이​었​다​면​─​─​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덮쳐오는 탄막을 피하고 적과의 거리를 어떻게 좁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실전.

 그런데 이 승부는 달랐다.
 마리사는 일직선으로 이쪽을 노리는 것이 아니라, 탄막 속을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회피만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것이 규칙이기 때문에.
 그것이 탄막놀이이기 때문에.
 요컨대, 이건 놀이다.
 효율적인 전투와 비정한 결판을 배제한, 놀이를 겸한 싸움일 뿐이다.

 ──과연, 사정이 다를 만도 하다.
 ──저 녀석은 이런 승부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을 수 없을 뿐이다.

 요우무는 그렇게 납득하고는, 다시금 마리사를 바라봤다.
 역시 위협은 느껴지지 않는다.
 벨 필요도 없다. 알 수 있으니까.
 그녀보다, 자신이 강하단 것을.

 확실히 제법 실력은 있어 보이지만, 그리 문제될 것도 없다.
 두 번째 스펠카드에서 쏟아져 나온 탄막이 이윽고 잦아든다.
 세 번째 스펠카드를 사용해도, 지금의 마리사라면 이겨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네 번째는 어떨까.
 그 뒤의 다섯 번째 스펠카드는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걸까.

「──네 말 대로다」

 요우무는 방금 마리사가 한 말을 긍정했다.

「넌, 하쿠레이 레이무가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질 이유 따윈 없다!」

 한층 더 밀도를 더한 탄막이, 마리사를 향해 날아들었다.







 밤의 정적을 깨부수듯이 마을은 지금 큰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온갖 장소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소리가 마을을 뒤흔든다.
 현재, 마을에선 오니와 텐구가 한데 뒤섞여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전장에 섞여드는 수많은 자들의 의지와, 그 속을 헤쳐 나가는 인요들, 환상향 전역에서 모여드는 자들──.
 마을 위를 날아다니고 있는 중인 하타테로선 그 전부를 알아내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하지만 예감은 하고 있었다.

 ──수많은 무언가가 마을에 모여들고 있어.

 하타테는 그 중심을 찾아내기 위해 마을을 탐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타테 씨!」

 갑자기 들려온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하타테가 지상을 내려다본다.
 낯익은 얼굴이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심코 긴장감에 굳어졌던 표정을 풀며 하타테가 마을을 향해 강하했다.
 내려선 곳은 몇 번이고 와봤던 주점의 앞.
 그 가게 앞에 서있던 청년은 눈앞에 내려선 하타테를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맞이했다.
 인간과 요괴.
 그러나 그 청년에게선 하타테를 향한 경계심 따윈 한치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사했나보네. 다행이야」
「덕분이에요. 설마 텐구 님들이 도와주실 줄은 꿈에도 몰랐지 뭐에요」

 청년은 텐구인 하타테와 친했다.
 어릴 적 요괴에 산에 납치당했을 때 일어난 하쿠레이의 무녀와 텐구들의 분쟁 속에서 하타테에 입은 은혜를 계기로 알게 된 사이이다.
 한 때 품었던 은의는, 세월을 거쳐 성장한 지금에 이르러 순수한 호의로 변하여 그의 마음속에 머물고 있었다.
 하타테를 마주한 청년의 얼굴이 붉어져 있는 것이 그의 심정을 여실히 나타내주고 있었다.

「이미 늦은 건 줄 알고 걱정했어」

 물론, 하타테 본인은 그런 청년의 마음은 전혀 모르는 듯했다.
 그럼에도 명랑하게 웃는 하타테를 앞에 둔 청년은 그녀를 따라 웃었다.
 습격당했단 사실조차 잊은 듯, 만족한 표정이었다.
 하타테와의 관계가 유년기 시절에서 그다지 진보하지 못했음에도, 이 나이가 되어 결혼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 원인은 틀림없이 청년 본인에게도 있었다.
 둔감한 텐구만을 꾸짖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생각보다 피해가 적나보네」
「자경단 분들의 통지 덕분에 습격에 관한 정보가 빨리 손에 들어왔거든요. 거기다 구체적인 대응책도 함께 말이죠. 케이네 선생님 덕분입니다」
「오호라. 그쪽도 오니들 상대로 꽤나 날뛰고 있다고 하던데」
「저희들은 괜찮으니까 얼른 가보세요!」
「알고 있어. 벌써 다른 텐구들이 도우러 가고 있을 테니까」
​「​다​행​이​네​요​─​─​그​나​저​나​,​ 역시 하타테 씨는 대단하네요. 혼자 다니고 계시는 건가요?」
「……응」

 부하나 동료와 함께하지 않는 하타테의 모습을 청년은 호의적으로 해석했다.

 ──사실, 데려갈 만한 부하나 동료가 없었을 뿐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타테는 부하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동료와 함께할 사교성도 없기 때문이었다.
 아야가 선대와 함께 출발한 뒤, 모미지가 대텐구와 함께 따로 행동을 취하게 되어 하타테는 홀로 남겨지고 말았던 것이다.
 자조로 가득찬 어두운 미소를 밤의 어둠으로 숨기며, 하타테는 청년의 추궁을 돌리기 위해 화제를 바꿨다.

「그, 그것보다──저건 어떻게 된 거야?」

 하타테는 청년이 경영하는 술집의 입구를 가리키며 물었다.
 오니에 대한 대책으로 입구 앞에 콩이나 멸치 머리가 놓여 있던 집을 몇 군데 보긴 했지만, 이 가게 앞에 놓여 있던 것은 바로 술이었다.
 통이나 병에 담긴 상당한 양의 술이 진열되어 있던 것이다.

「아, 이건 오니의 주의를 돌릴 미끼라고나 할까요. 술을 좋아한다고 했으니까요」
「과연. 먹여서 시간을 벌 속셈이었구나」
「예. 오니라는 건 집을 통째로 뒤엎을 정도로 힘이 센 요괴잖아요.
 전에 봤던 「붕붕마루 신문」에 실려 있던 기사에 오니가 얼마나 무서운 요괴인지 자세하게 쓰여 있었으니까요.
 하타테 씨한테서 직접 들은 것도 있고, 이야기로 들은 대책만으로는 조금 불안했던 데다, 오니들을 모아 시간을 벌 수 있다면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용감하지만, 무모한 행동이기도 했다.
 하타테와의 교제가 길어 요괴에 익숙해진 탓일지도 몰랐다.
 조금 위험했던 건 아닐까 생각하며 남자의 기대가 이뤄지지 않고 무사했단 사실에 하타테는 안도했다.
 이제 오니들이 이 술에 손을 댈 일은 없을 것이다.
 마을을 향한 습격은 서서히 진압되어가고 있으니까.

「나는 지금부터 이번 이변의 중심지로 갈 생각이야. 소란이 멎을 때까지 조금만 더 버텨」

 친한 인간의 안부를 확인한 하타테는 다시금 자신이 맡은 일을 끝내기 위해 발을 돌렸다.
 그런 하타테를 청년이 무심코 불러 세운다.

「잠시만요! 역시, 이번 일의 원흉은 요괴인가요?」
「자세한 건 나도 모르겠지만, 마을의 중심에 있는 광장에서 하쿠레이의 무녀가 싸우고 있다던데」
「저도──아니, 저를 포함해서 그곳으로 갈 생각이에요」
「무슨 말이야, 위험하다고!?」

 이 말엔 하타테도 놀랐는지 안색이 바뀌었다.

「실은 그게, 오니한테 습격당해서 집이 부서진 사람들한테 들은 이야긴데요, 그 사람들의 말을 듣자하니 「아이가 ​납​치​당​했​다​」​고​─​─​」​
「……「납치」? 눈앞에서 먹힌 게 아니라?」
「네. 그 사람들 말이 맞다면 상처 하나 없다고 해요. 어두울 때 바깥으로 나오면 위험하니 말리긴 했습니다만, 만약 사실이라면……」
「확실히 거기 있을 가능성이 높겠네……」
「부탁드려요!」

 고개를 숙이는 청년의 모습을 곤란하다는 듯 바라보던 하타테는, 이윽고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부탁이고 뭐고, 나한텐 허가할 권한 같은 건 없어」
「그럼……」
「알아서 가면 되잖아──뭐, 광장까지 호위 정도는 해줄게」
「하타테 씨!」
「말해두겠는데,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책임 못 지니까 말이지!?」

 경애로 가득 찬 청년의 눈을 피하듯이, 하타테는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우연하게도 고개를 돌린 하타테의 눈이 향한 곳은 마을의 광장 쪽이었다.
 하늘에서 작은 빛이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밤하늘에서 깜빡이는 그 빛은, 틀림없이 탄막에 의해 생겨나는 섬광이었다.
 저 하늘 위에서 하쿠레이의 무녀가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상대는, 이 이변의 주모자일까.
 그리고 그 아래에선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적어도, 오니가 기다리고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자신과 함께 가게 될 인간들도 포함하여, 그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수많은 무언가를, 하타테는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맹렬한 탄막의 폭풍우 속에 발을 디딘 뒤로 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아직 찰나의 시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마리사는 피로로 범벅이 된 머리로 시간의 흐름을 재고 있었다.
 그러나 곧바로 그것이 쓸모없는 짓임을 깨달았다.
 긴 시간이 지났든, 전혀 지나지 않았든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요우무의 탄막은 그런 것을 가리지 않고 덮쳐온다.

 그것을 피해냈다.
 계속 피해냈다.

 몇 장의 스펠카드를 피해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거고 저거고 전부 난이도가 높은 것들 뿐이었다.
 한순간이라도 집중이 끊긴다면 그 순간 탄막에 삼켜지고 말 것이다.
 신경이 긴장 상태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이젠 괴로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느낄 여유 따윈 없었다.

 그저, 아깝다고 생각했다.
 의식을 너무 집중해서 이거고 저거고 전부 똑같은 탄막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전부 그냥 「어려워」 「벅차」라는 감상 외엔 느낄 수 없었다.
 아까웠다.
 분명 제3자의 입장에서 봤다면 탄막의 구성이나 겉모습에서 아름다움이나 재미를 하나하나 찾아내가며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자신에겐 이런 탄막을 피하며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여유를 부릴 수 있을 만한 힘이 없었다.
 그 늙은 오니의 무책임한 조언이 묵직하게 어깨를 짓누른다.

 즐기란 말이지──.
 어렵다고, 이런 걸 즐기라니.
 그렇지만──확실히 이걸 즐길 수 없다니, 아쉬운 일이다.
 탄막놀이는, 즐기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면 분하다.
 패배하는 게 무서워서 한창 승부 중일 때 움츠러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승리에 집착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승부의 전부는 아니야.

 지금이라면 그렇게 단언할 수 있다.
 만약, 내가 진다면 이 말도 설득력 없는 패배자의 변명이 되어버리는 걸까.
 하지만, 적어도.

 ──나는, 즐길 수 있어.

 마리사는 요우무와의 탄막놀이에서 레이무와 처음으로 탄막놀이를 했을 때의 기억을 되새기고 있었다.
 그런 현실도피나 다름없는 행동을 승부 도중에 했다간 집중이 풀려 치명적인 빈틈을 내보이게 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기억은 마리사의 머릿속에서 선명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마리사와 레이무와 처음으로 탄막놀이로 승부 했던 것은 사실 홍무이변이 일어났을 때였다.
 영야이변 때에 했던 것 같은 진지한 승부는 아니었다.
 마치 워밍업이라도 하듯, 두 명은 하쿠레이 신사를 나서기 전 짧은 승부를 치뤘었다.
 스펠카드 룰이 제대로 도입되지도 않았을 때였다.
 혹시 그때의 우리는 환상향에서 처음으로 탄막놀이를 한 장본인들일지도 모른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마리사의 패배였다.
 아직 패배의 무게를 실감하지 못한 시절이었다.
 그때의 자신에겐 「변명거리」가 있었으니까.

 ──탄막놀이라는 것을 체험하기 위한 승부였기 때문에.
 ──이변을 해결하러 나서기도 전에 전력을 다할 순 없으니까.
 ──탄막 자체에 아직 익숙해지지 못했었고, 앞으로 차차 나아질 예정이었기에.

 몇 가지 이유가 자신의 패배를 납득시켜줬다.
 아무 각오도 없이 탄막놀이에 임한 마리사는, 레이무와 탄막을 겨루고, 패배했다.
 가슴 안쪽에서 솟아오른 약간이지만 씁쓸한 마음을 단순히 져서 분할 뿐이라며 삭혔다.
 승자인 레이무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웃어줄 수 있었다

 역시나 대단한걸, 레이무.
 강했어.
 다음엔 지지 않을 거라구.

 분명 그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고 말았다는 부끄러움을 숨기려는 의도가 다분한 말이었기에, 잊고 싶기도 했고, 확실하게 기억나지도 않지만, 그 뒤에 들은 레이무의 대답이 이제야 생각났다.

「꽤, 재밌었어」

 레이무는 승부 뒤에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별다른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평탄한 말투였다.
 그때엔 「이긴 녀석의 여유냐」라며 투덜댔던 것이 기억난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레이무. 너는 그때, 처음으로 탄막놀이에 대한 감상을 말했었지.
 요우무한테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뒀을 때도, 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내가 두 번째로 졌을 때도 넌 아무 감개도 없는 것 같았다고.
 각오 하나 없이 싸웠던 그때, 너는 처음으로 승부에 대해 체험을, 생각을, 느낌을, 약간이지만 말했었어.
 난 그 말을 들었었지.
 정말이지, 그건 대체 얼마나 귀중한 말이었던 걸까.
 그때의 난 가볍게 맞장구를 쳐줬을 뿐이었어.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았고.
 그대로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탄막놀이를 하려 갔었지.
 아까운 짓을 해버렸는걸.
 지금에서야 후회돼.

 이봐, 레이무.
 나는, 이제야 내가 뭘 하고 싶었는지 알게 됐다고.
 강해져서, 이기고 싶다──거기까진 같아.
 진짜 목적은, 그보다 더 앞에 있었어.
 너와 한 번 더 승부하고 싶었어.
 그리고, 당연히 이기고 싶다고 생각했지.
 졌던 게 분했고, 두 번 다시 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했어.
 하지만, 레이무.
 만약 널 이긴다면, 그 뒤에 뭘 요구할지 훨씬 더 많이 고민했어.
 진 너를 놀리고 싶지도 않고, 네 앞에서 우쭐거리고 싶지도 않아.
 너를 미워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아.

 레이무.
 너를 좋아해.
 알고 있지.
 너도 날 좋아하니까.
 딱히 자만하는 건 아니야.
 좋아하니까, 너한테 이기고 싶어.
 너와 대등한 존재로 있고 싶다는 마음은, 의무적인 게 아니야.
 그러니까, 너한테 이기고 싶단 마음 한편엔 네가 항상 내 위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하기도 해.
 너와 승부하고 싶어.
 한 번만 더, 같은 말은 하지 않을게.
 몇 번이고 승부를 가르고 싶단 거야.
 그리고 언젠가, 어쩌다 내가 이길 때가 온다면, 그땐 이렇게 말하고 싶다.

「레이무, 재밌었어」

 그 말을 들은 네가 조금이라도 분하단 반응을 보여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
 나는 우쭐거리면서 네 어깨를 두드리고 웃을 거야.
 같이 밥이라도 먹으러 가든가, 차라도 마시자.
 그게 다야.
 그게 다라구.
 그리고, 또 승부를 하자.
 이기는 건 기쁘고, 지는 건 분해.
 하지만, 너와 하는 승부는 즐거워.
 그러니까, 몇 번이 됐든 너랑 놀고 싶어.

 ──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한걸, 요우무.
 잠깐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었다구.
 이상하네.
 이제 네 얼굴을 그냥 볼 수 있어.

 방금 네가 할아버지를 베었을 때엔 왠지 부글부글 거렸었다고 생각해.
 좀 더 화난 얼굴로 널 보고 있었을 거야.
 너한테 싸움을 걸었을 때도, 그저 승부에 이기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어.
 그건 분명, 레이무한테 도전할 때와는 다른 이유 때문이겠지.
 아마, 틀림없이 네가 미워서 도전한 걸 거야.
 싫어하는 너를, 이기고 싶다는 충동만 가지고 달려들었어.
 미안해.

 네가 어떤 생각으로 이 승부를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이 승부를 신청한 동기는 불순한 이유 때문이었어.
 너를 이기고 싶다든가, 매운 맛을 보여주고 싶다든가, 그런 생각으로 승부해봤자 무의미한 짓이잖아.
 그런 생각으로 승부를 걸 바에야, 차라리 어중간한 규칙으로 서로를 제한하지 않고, 좀 더 위험한 승부를 벌이면 돼.
 그 손에 쥔 검으로, 날 직접 베는 승부를 말이지.
 그런 승부가 불리하다니까 널 도발하고, 스펠카드 룰을 위시해서 싸우려고 하다니, 난 치사한 녀석이다.
 진검승부로 승산이 없다고 내 입으로 직접 말했을 정도니까.
 룰이라는 무기를 써서 널 이길 생각이었어.
 한심하지.

 이렇게 해봤자 분명 제대로 된 승패가 가려지진 않을 거야.
 나한테도, 너한테도, 변명거리가 생기고 말아.
 미안해.
 반성했다.
 이제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않겠어.
 순수하게, 너와의 승부를 즐겨주지.
 그래, 즐기는 것.
 나는, 상대를 죽이는 데에 진지해질 수는 없어도, 즐기는 데엔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만큼 진지해질 수 있단 말씀이야.
 그리고 진지해진 난, 꽤나 강해──라더라.
 구두긴 해도 오니가 보증한 거라구.

 어라?
 뭐야, 탄막은 벌써 끝이냐.
 어느새 전부 피해버린 거구나.
 아, 이런.
 어떤 탄막이었는지 거의 기억이 나질 않아.
 아까워.
 아무리 이렇게 말해봤자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갖자니, 어려운걸.
 내 실력도 이게 전부야.
 보기 흉할 정도로 필사적이네.
 완전히 지쳐서 헤롱헤롱하다.
 하지만, 좀 더.
 아직, 좀 더 할 수 있어.
 즐기자고, 요우무.
 레이무랑 승부했을 때처럼.
 자, 이번엔 내 스펠카드가 나설 차례다──.







 요우무는 전율했다.
 마리사가 다섯 장째 스펠카드를 클리어 한 것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였다.
 하지만, 예감하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았다.
 탄막놀이가 시작된 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요우무는 점차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맨 처음 스펠카드를 선언했을 때 느끼지 못했던 무언가를, 세 번째 스펠카드를 선언할 때 느꼈다.
 키리사메 마리사라는 인간에 대한 인식에 조금씩 수정해야 할 점이 늘어났다.

 저 녀석은, 약하다.
 저 녀석은, 무르다.
 저 녀석은, 피하는 건 어느 정도 하는 듯하다.
 저 녀석은, 생각보다 실력이 좋다.
 저 녀석은, 얕볼 게 아닐 지도 모른다.
 저 녀석은, 이 다음 탄막 정도는 피해낼지도 모른다.
 저 녀석은, 혹시…….
 저 녀석은, 설마──.

 그리고 지금, 마리사는 요우무의 예상을 또 하나 빗나가게 만들었다.
 말 그대로의 비장의 패였던 다섯 번째 스펠카드를 돌파한 마리사는 딱 보기에도 한계에 이르러 있었다.
 피로에 절어 땀을 쏟아내고 있는데다가, 얼굴은 창백하고 움직임엔 생동감이 없다.
 제대로 떠 있지도 못했다.
 죄어들어간 저 입가는 미소를 지으려고 했던 것일까.

 그녀의 신체능력이 평범한 인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을 따져 봐도, 지금의 마리사는 온갖 부분에서 한계를 맞이했음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판단은 다섯 번째 스펠카드 선언을 하기 전에도 똑같았을 터다.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마리사가 한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을 터.

 그럼에도──.

「……말도 안 돼」

 요우무는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그런 나약한 소리가 자신에게서 나왔음을 깨달았다.
 자신이 내뱉은 말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이를 꽉 깨문다.

 어째서 동요하지?
 뭘 초조해하는 거냐?
 마리사가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은 만만치 않은 상대라고 한들, 도대체 무엇을 위협으로 느껴야 한단 말인가.
 저건 저 녀석의 「힘」이 아니다.
 말하자면, 탄막놀이를 「잘」할 뿐.
 그건 진정한 의미의 위협이 아니다.
 위협이란 자신을 해를 입힐 수 있어야 하는 법.
 마리사의 힘으론 자신에게 결코 해를 입힐 수 없다.

 요우무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 자신을 타이른다.
 하지만 완전히 동요를 없앨 수는 없었다.

 초조함이 땀으로 변하여 이마를 흘러내려 땅에 떨어진다.
 마리사가 스펠카드를 꺼냈을 때, 무심코 경계하고 자세를 잡았단 사실에 수치심을 느꼈다.
 자기가 자신의 말에 납득할 수 없었다.
 그 마음이 동요를 낳고, 초조함을 만들어냈다.
 요우무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자라나기 시작한 온갖 심정을 결코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마리사가 탄막을 쏟아낸다.
 탄막이라는 말은 겉치례가 아니라는 듯, 방대한 양의 탄환이 요우무를 덮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탄막에선 자신을 짓뭉갤 것만 같은 압박감이나 박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표적을 반드시 쏘아 맞추겠다──란 생각은 없는 것만 같은 적당한 밀도.
 탄환 하나하나에 큰 파괴력이나 살상력은 없었지만, 그 대신 눈부실 정도로 밝디 밝은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사방으로 흩뿌려진 별모양의 탄막은 상대를 상처 입히기보단, 마치 상대를 감싸 안는 것만 같았다.
 그 탄막은 실전에 있어선 별 효용성이 없었다.
 탄막놀이라는 승부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그리 효과적이진 않다.
 그러나, 마리사의 탄막을 본 요우무는 문득 생각했다.

 ──아름다워.

 그리고 곧바로 제정신을 차린다.
 승부 도중에 잡념이 생긴 자신이 부끄러웠다.
 어느새 눈앞까지 다가온 탄막을 당황하며 회피한다.
 아니, 당황할 필요 따윈 없다.
 겉멋만을 중시한 마리사의 탄막은 결코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
 반짝반짝 빛나는 별모양의 탄환이 쏟아져 내리는 광경은 무슨 놀이기구를 보는 것 같았다.
 긴장해야 할 요소는 없다.
 저 녀석은 이 승부에 진지하게 임할 생각이 없는 건가.
 웃기지 마라.
 이런 건 승부가 아니다.
 놀이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좀 더 성심껏 해봐라.
 성심껏──.

「──큭!?」

 탄환 하나가 아슬아슬하게 팔을 스친다.
 요우무의 탄막을 마리사가 피했을 때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비슷해?
 ──그건, 저 녀석하고 내가 같은 수준이란 말이냐!?

 어느 누구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마음속에서 멋대로 솟구친 생각에 요우무는 멋대로 분노했다.
 그리고 그 분노가 요우무의 집중력을 더더욱 앗아갔다.
 서서히 격렬해져가는 탄막을 요우무가 간신히 피해낸다.
 필사적인 몸짓.
 어느새 요우무의 속과 겉에선 여유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리고 그 사라진 여유가 아직 있을 것이라 착각하고 혼란에 빠진 것이다.

 이건 대체 뭘까.
 이건 대체 무슨 일이냔 말이다.
 왜.
 왜, 난 필사적인 거지.
 진정해라.
 침착하게 맞대응하면, 이런 탄막쯤은 충분히 피할 수 있을 터다.
 피할 수 있을, 터인데.

 큭.
 지금 그건 위험했다.
 대체 뭐지?
 충분히 집중하고 있는데도 당할 뻔 하다니.
 이보다도 더 빠른 공격을, 더 위험한 공격을 피해낸 내가 이런 느린 탄막에 맞을 리가 없는데.
 봐라, 잘 보이지 않는가.
 눈으로도 제대로 따라잡을 수 있는데다, 이걸 어떻게 하면 피할 수 있을지도 안다.
 여기서 아래로 빠지면──.

 큭, 스치다니!
 내가 가려던 곳에 탄막이 먼저 자리 잡다니.
 그 탄막도 제대로 보고 있었을 터다.
 피할 수 없을 리가 없는 속도였을 텐데.
 마치 이쪽이 움직이기 어려운 상황을 일부러 노리는 듯한 탄막.
 저 녀석이 내 움직임을 읽고 있다는 것인가.
 말도 안 된다.
 스펠카드로 발동된 탄막의 움직임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는 것.
 상대의 움직임에 맞춰서 탄막을 조작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런 건 단순히 표적을 추적하는 공격이 아닌가.

 그렇다는 건, 설마?
 내 행동이, 감쪽같이 저 녀석 마음대로 조작 당하고 있다는 건가.
 그런 말도 안 되는──.

 크윽, 또 당했다!
 좋다…….
 좋아, 인정하마.
 탄막에 관한, 키리사메 마리사의 기술은 나보다 한 수 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요점은, 피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저 녀석이 내 탄막을 피해냈듯이, 나도 저 녀석의 탄막을 피해내면 될 터.
 그럼 된다.
 이보다 더욱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본의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
 자신의 미숙함을 인정하고 이기면 된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침착해라.
 괜찮아, 동요하지만 않으면 이 탄막은 피해낼 수 있다.
 애당초 동요할 필요조차 없을 터다.
 이 탄막에 맞아봤자 죽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긴장하고 있는 거지?
 왜 필사적으로 피하려드는 거지?
 내 지나친 긴장감이 오히려 행동을 방해하고 있다.
 그건, 알고 있다.
 그래, 알고 있을 터다.
 알고 있지 않나, 나는.

 ──모르는 건가?

 어째서 또 스치는 거지!?
 게다가 아까보다 더 위험하지 않은가.
 아니, 기분 탓이다.
 기분 탓이야!
 애초에 맞아봤자 뭐가 어떻단 말인가.
 이런 탄환, 맞아도 죽지 않는다.
 상처 하나 나지 않는다.
 꼭 피한다는 생각을 버리면 된다.
 이렇게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다니,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맞아도 괜찮다.
 문제없다.
 무시하면 된다.
 무시하고, 곧게 탄막을 돌파해서 저 녀석을 베어버리면 된다.
 이런 장난에 놀아나주는 것보다, 유유코 님이 내린 명령을 해내는 편이 더욱 중요하지 않은가.
 승리나 패배에 연연하는 것은 눈앞의 인간뿐.
 그러니 무시하면 된다.
 그래, 무시하면 돼.
 눈앞으로 다시금 탄막이 펼쳐진다.
 지금이다.
 무시해.
 무시하고, 돌진하는 거다.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저 녀석을 베면 된다.
 승부가 어쩌니 하는 말을 꺼내기 전에 베어라.
 해라.
 하는 거다, 나.

 ──젠장. 또 스치다니! 쓸데없는 생각을 하니까 이러는 거다!
 안 된다, 쉴 새 없이 다음 탄막이 몰아친다.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정확한 루트를 선택해서 피해내지 않으면 피해내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짜여진 탄막을.
 맞아봤자 상처 하나 나지 않을 탄막.
 그저 승패가 결정될 뿐이다.
 하지만, 그게 무섭다.
 피할 필요가 없는 탄막을 어째서인지 필사적으로 피해낸다.
 그걸 맞으면 질 테니까.
 내가 지게 되니까.
 지는 건 싫다.
 또 패배할 수는 없다.
 그랬다간 내가 저 녀석보다 약하단 말이 되어버린다.
 그럴 수는 없다.
 움직여라, 내 몸.
 더 빠르게 움직여라.
 아, 안 돼.
 멈춰라.
 이대로 가다간 맞는다.
 어떻게든, 피해야.
 피했다.
 하지만 눈앞엔 벌써 아름다운 색채로 반짝이는 별이 몇 개나 다가와 있었다, 여기는 오른쪽인가, 아니면 왼쪽인가, 이런, 실패했다. 이쪽으로 왔다간 더 이상 피할 수가──.







 앞서 추락한 요우무를 쫓아가듯이, 마리사가 땅 위에 내려셨다.
 우연하게도, 그곳은 사방이 뚫려있는 곳이었다.
 주변은 밤의 어둠에 묻힌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마리사와 요우무가 내려선 곳엔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로 정돈되어 있었다.
 아마 마을로 이어진 길일 것이다.

 마리사는 제자리에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다가, 이윽고 그것이 무의미한 행동이란 것을 알고는 고개를 멈췄다..
 마리사는 땅에 떨어졌을 그 늙은 오니의 시체를 찾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우무와 탄막놀이를 하며 처음 있던 곳에서 꽤나 멀리까지 오고 말았다.
 뭣보다 주변에 있는 숲에 떨어졌다고 한다면, 이런 어두운 곳에서 찾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피곤한걸──이라며 마리사는 다시금 심호흡을 했다.
 피로함을 없앨 순 없었지만, 요우무와 겨루며 흐트러졌던 호흡은 이미 꽤나 나아져 있었다.
 승부의 긴장감에서 해방된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탄막놀이는 끝났다. 
 승패가 갈라진 것이다.

「내가, 이겼어……」

 마리사는 지면에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수그린 요우무의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
 요우무는 마리사의 탄막에 맞아, 그대로 추락했다.
 상처도, 피해도 입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안전하게 착지한 요우무의 움직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요우무는 마리사의 말에 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마리사 또한 아무 말 없이 침묵을 고수했다.

「──보냐」

 요우무의 입에서 새어나온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인정할 수 있을까보냐!!」

 요우무의 외침과 함께 손에 쥐여 있던 칼이 뽑혀 나왔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뽑힌 칼날은, 섬광처럼 날아들어 마리사의 목덜미를 겨누고 있었다.
 칼날의 싸늘한 감촉이 목으로 느껴졌다.
 아주 약간이라도 늦게 멈췄다면 피부를 베었을 것이며, 빠르게 멈췄다면 닿지도 않았을 것이다.
 요우무의 검은 그런 절묘한 타이밍을 정확히 맞춘 것이다.
 서투른 실력으로 할 짓이 아니었다.

「어떠냐……?」

 요우무는 잔뜩 일그러져 알아보기도 힘든 미소를 지었다.

「어떠냐!? 지금 그게 보였나!?」
「아니, 전혀 안 보였어」

 마리사는 곧은 목소리로 요우무에게 대답했다.
 칼은 여전히 목덜미를 겨누고 있었다.

「허를 찔려서 피할 수 없었나!?」
「아니, 뽑을 거라고 말하고 뽑았어도 못 피했을 거야」
「당연하지! 너 따위가 내 일격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 난 레이무가 아니니까」
「그렇다, 난 너를 죽일 수 있다!」
「맞아, 넌 날 죽일 수 있어」
「그런데……!」

 요우무의 미소가 무너졌다.
 일그러져 있던 입이 그대로 분을 참는 듯 억세게 다물린다.

「그런데, 왜 너냔 말이다!?」

 요우무가 외쳤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만 같은 절규였다.
 마리사를 노려보는 눈엔 적의나 살기 대신 눈물이 맺혀 있었다.
 마리사는 그 탁한 눈동자를 곧게 마주볼 뿐이었다.

「네가 나보다 강하다는 거냐!? 나보다 더 검을 잘 다룰 수 있단 말이냐!?」
「아니」
「네가 나보다 더 많은 수행과 가혹한 실전을 거쳐오기라도 했단 건가!?」
「글쎄. 비교해본 적이 없으니 모르겠는걸」
「넌!」
「──」
「……너, 는」
「──」
「네, 승리라니, 그런 걸 인정할 수 있을까보냐!!」
「그럼 이대로 베면 되잖아」

 마리사의 말이, 그대로 주먹이 되어 요우무를 강타했다.

「승부 운운하는 건 너랑 나뿐이야. 네가 인정하기 싫다면, 나를 베면 그걸로 끝이지」
「뭐라고……?」
「나는 레이무랑은 달라. 그 녀석처럼 너랑 진검승부를 하고 이길 수 있을 거란 자신은 없어. 네가 베려 한다면, 피하지도 못해」

 요우무의 뇌리에 일찍이 명계에서 레이무와 겨뤘을 때의 경험이 떠올랐다.
 탄막 승부에서 져 이성을 잃고 뽑은 검조차, 레이무는 당연하다는 듯 막아낸 것이다.
 힘으로도, 기술로도 졌다.
 완벽한 패배였다.
 그때, 마음이 꺾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때와는 다르다.
 상대는 하쿠레이 레이무가 아니다.
 탄막 승부로는 졌으나, 진짜로 싸운다면 마리사가 요우무보다 뒤떨어진다는 것은 자타가 인정할 것이다.
 그러니.

 ──그러니, 어떻다는 거냐?

 요우무의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나의 목소리가 냉랭하게 울려 퍼졌다.
 자신의 변명이 얼마나 꼴불견인지 깨달은, 또 다른 내가.

「……취소해라」

 요우무가 폐를 짜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뭘?」
「지금 그 승부가 네 승리라는 선언을 취소해라」
「──」
「네 입으로, 그렇게 말하란 말이다!」
「──」

 매섭게 치켜뜬 눈과 칼날에 살기를 더하며 외치는 요우무의 행동에 마리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을 위협하는 요우무를 마주볼 뿐이었다.
 그 시선엔 아무 감정도 깃들어있지 않았다.
 되돌아오는 것은 침묵과 시선뿐이었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만으로 요우무는 궁지에 몰리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으면 늘어놓을수록, 침묵이 돌아오면 돌아올수록, 당장이라도 죽어버리고만 싶은 후회와 비참함이 마음속에 쌓여갔다.
 이윽고, 그 중량감을 견딜 수 없어진 듯, 떨리던 다리를 꿇고 만 요우무가 말했다.

「……말해라, 키리사메 마리사」
「──」
「아무 말이든, 해다오」
「──」
「내게, 실망했다면 그렇다고 해라. 꼴불견이라고, 비겁하다고……」
「시체를 다그치는 취미는 없다고」
「동정하는 거냐……」
「네가 어쩔지 너무 뻔해서 그런 거야. 어차피 무슨 말을 해봤자 납득할 수 없잖아. 승부는 내가 결정하는 게 아냐. 네가, 이미 정해버리고 만 거지. 나를 베면, 그걸 확실하게 알게 될 뿐이라고」

 마리사는 담담한 말투로 고했다.
 그 말이 결정타가 된 듯, 요우무의 속에서 무언가가 꺾였다.
 이미 마리사의 목덜미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칼이, 마침내 요우무의 손에서 떨어져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텅텅 빈 두 손으로 땅을 짚은 요우무는, 땅에 웅크린 채 몸을 떨었다.
 그런 그녀를 내려다보는 마리사의 눈에 요우무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볼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굳게 다물어진 입 사이로 새어나오는 오열만은, 가벼이 넘겨들을 수 없었다.

「승부는, 내가 이겼어」

 마리사가 말했다.
 더 이상 말할 필요 없는 사실을, 당연한 사실을 일부러 말한 것은 마리사 나름의 배려였다.
 그러나 그것이 요우무에게 있어서 도움이 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작게 새어나오던 오열이, 조금 커졌다.

「저기, 요우무. 너랑 한 탄막놀이, 꽤 재밌었어」
「……흐윽……」
「다음에 또, 놀자고. 진심이야」
​「​흐​윽​…​…​으​으​…​…​크​읏​」​
「너는, 어땠어?」

 마리사의 물음에 요우무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여유는 없었기에.
 마치 졸린 목에서 새어나오는 것 같은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오는 듯했다.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저 어린 아이처럼 울며 떨 수밖에 없었다.
 마리사는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그런 요우무의 모습을 감췄다.

「다음에, 들려주라」

 발을 돌려 빗자루에 올라탄다.
 드문드문 끊기는, 하지만 결코 그칠 리 없는 요우무의 오열을 등으로 받아내며, 마리사는 밤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남겨진 것은 비참한 패자의 모습뿐이었다.







「──몽부 「봉마진」」

 레이무가 발사한 탄막은 무수한 부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제까지 발사하던 영럭 탄환이나 퇴마침 같은 공격적인 탄막은 아니었다.
 정화의 영력에 불타오르고 수십의 바늘에 찔렸음에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던 오니 소녀는, 그 부적 탄막을 피하지 못하고 마침내 직격 당했다.
 한 장의 부적이 몸에 붙은 것을 시작으로, 움직임이 멈춘 오니 소녀를 향해 부적이 들이닥친다.
 오니 소녀는 눈 깜짝할 새에 영력이 담긴 부적에 휘감기고 말았다.

「너, 너무 막나가서 쓰러트리지 않고 봉인하기로 했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된 표적의 얼굴에 마지막으로 광탄을 때려 박는 레이무.
 연기를 피워 올리며 추락하는 광경을 내려다보던 레이무는 한숨을 한 번 내쉰 뒤, 그 뒤를 따라 지상으로 내려갔다.

 레이무는 스이카가 기다리는 용신의 석상이 지어진 광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먼저 떨어진 오니 소녀는 부적에 봉인당해 쓰러져 있었다.
 자신의 술식에서 전해져오는 반응에 저항해봤자 소용없단 생각을 품은 레이무였으나, 겉으로 내비친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본 채, 오니 소녀가 작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졌어」

 탄막놀이 도중에도 시종일관 침묵만을 고수하던 그녀가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그런 그녀의 패배선언을 레이무는 아무런 감개 없이 받아들였다.

「즐거웠어. 저기, 너도 그렇지?」

 오니 소녀의 물음을 무시하듯, 레이무는 입을 다물 뿐이었다.

「너는, 즐겁지 않았어?」
「귀찮아. 너, 스펠카드 룰을 제대로 이해하긴 했어? 피격당해도 견디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란 말이야」

 두서없는 레이무의 대답에도 오니 소녀는 뭐가 좋은지 다시금 웃었다.
 오니의 가면을 쓴 것 같은 얼굴에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묘하게 유쾌한 것 같은 목소리였다.

「또, 너랑 승부하고 싶어」
「이제 두 번 다신 사양이야」
「그래, 유감이네……」

 말을 마친 뒤, 오니 소녀는 입을 다물었다.
 넘어진 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죽은 것 같진 않았다. 아마 정신을 잃은 것일 뿐이다. 충분히 피해도 입혔고, 체력도 소모시켰으니까.
 실제로 싸워본 레이무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럼, 다음은 네 차례야」

 새로운 상대를 향해 눈을 돌린다.
 시선 저편엔 여전히 용신의 석상 위에 진을 친 스이카가 웃으며 레이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발밑에 있는 아이들 또한 무사했다.
 레이무에겐 탄막놀이를 하는 도중에도 마을 전체의 상황 할 관찰할 냉정함과 여유가 있었다.
 마을을 덮친 오니들은 지금 환상향의 요괴들과 인간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남은 오니는 눈앞의 이부키 스이카 단 한 명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변을 일으킨 오니와 하쿠레이의 무녀──두 명은 모든 사건의 중심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마주섰다.

「그 녀석의 머리를 가질 생각은 없는 거냐?」

 스이카는 동료일 터인 오니 소녀를 가리키며 그렇게 물었다.

「오니의 머리에 흥미는 없어」
「하쿠레이의 무녀는 악행을 저지른 요괴를 퇴치해야 할 텐데」
「맞아」
「어중간한 처벌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걸, 난」
「딱히 어중간하게 처리한 게 아냐. 물론 동정한 것도 아니고」

 레이무는 단언했다.

「내가, 그렇게 결정했어. 하쿠레이의 무녀의 퇴치란 이런 거라고」

 스이카는 레이무의 눈을 곧게 마주봤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던 그 둘의 결투가 머릿속에서 흐른다.

 ──환상향에 생겨난 새로운 규칙.
 ──스펠카드 룰.
 ──탄막놀이로 가르는 승패.

 스이카는 그 모든 것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스이카는 한 번 끄덕였다.
 레이무의 대답에 납득한 것 같기도, 납득하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무거운 뜻이 담긴 몸짓이었다.

「새로운 시대가 어떤지 확실하게 알았어」

 둥실 떠오른 스이카가 땅에 내려선다.

「네 긍지 또한 이해했다」

 등 뒤에 있는 아이들이 두려움에 떠는 기척을 느꼈으나, 아랑곳 않는다.

「──그런데, 그게 나한테 통할 거라고 생각해?」

 마주선 레이무만을 바라보며 스이카가 말했다.
 지금까지 보이던 온화한 분위기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눈에서, 입에서, 온몸에 이르러 두려울 정도의 전의가 형태를 갖고 날뛴다.
 거칠게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에도 눈썹조차 까딱하지 않은 레이무가 중얼거렸다.

「갑자기 할 마음이 생겼나보네」
「말했을 텐데? 「약간 돌아가기로 했을 뿐」이라고. 약간, 승부를 겨루기 전까지 길을 돌아왔을 뿐이야」
「그럼 얼른 시작해서 팍팍 끝내볼까」

 레이무의 대담한 말에 스이카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슬슬 다 모였으니까」

 그런 의미심장한 스이카의 말에 답하듯이, 그 둘에 주위에 차례차례 사람들이 모여왔다.

 점차 끝나가는 마을에서의 싸움에서 빠져온 텐구들이 내려선다.
 케이네 일행이 대텐구, 모미지 일행과 함께 광장으로 달려든다.
 하쿠레이 신사에서 온 유카리와 레미리아 일행이, 홍마관을 나선 사쿠야와 파츄리 일행과 합류하여 나타난다.
 하타테의 호위를 받은 마을 주민들이 달려온 것도 거의 비슷한 타이밍이었다.
 그밖에도 아직 눈에 보이지 않는 기척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스이카가 돌아보고, 그 뒤를 따르듯이 레이무도 눈을 돌렸다.
 스이카는 웃고 있었다.
 다종다양한 인요에 둘러싸여, 그녀들이 전부 자신의 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이카는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던 것이다.

「──다 모였군」

 주위를 둘러보던 스이카가 군중의 중심에서 고개를 멈췄다.
 그 뒤를 따라 돌아본 레이무의 눈이 약간이나마 크게 뜨인다.

「기다리고 있었어 「너희」를」

 그곳에 나타난 자는, 어머니였다.

「나는, 환상향에 싸움을 걸러 왔다」

 아야의 부축에 기대어 서 있는 선대무녀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스이카가 미소 지었다.
 말 그대로 귀기가 느껴지는 미소였다.

「오니 사천왕, 이부키 스이카. 지저에서 일생일대의 대승부를 치르러 왔다──이번 이변을 해결하고 싶다면, 이 나를 퇴치해보이거라 「하쿠레이의 무녀」!!」

 이 장소에 모인 자들 모두에게 닿을 정도로 크게 울려 퍼진 선전포고가 스이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것은 레이무와 선대, 두 모녀를 향한 말임이 틀림없었다.







「이래서야 야반도주나 다름없잖아요」

 사토리가 밤길을 걸으며 중얼거렸다.
 거의 투정에 가까운 말투였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밤의 숲길을 걸으며 그 말을 듣는 자는 약간 뒤에서 걸어오는 유우기 뿐이었다.

「그렇네」
「애당초, 왜 신사에서 도망쳐야 했던 건가요? 쓸데없이 야쿠모 유카리의 의심만 부추기는 꼴이 됐지 않습니까」
「그럴지도」
「제대로 듣고 있는 건가요, 유우기 씨!?」
「물론이야」

 어깨너머로 뒤를 돌아본 사토리의 험악한 표정에 유우기는 옅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사실 듣는 것은 물론이요 사토리의 속내를 헤아리고 배려까지 해주고 있었다.
 보폭에 큰 차이가 있음에도 천천히 걸으며 사토리에게 앞자리를 양보한 것 또한 그 연장선에 들어갔다.
 그러나 사토리는 마음에 드러나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배려를 해준 유우기의 그런 걱정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었다.

「앨리스 씨의 말을 따르긴 했습니다만, 다시 생각해보니 이건 문제를 미뤘다가 더 어려워진 격이지 않나요」
「사토리, 그 녀석한테 불평하면 안 된다고」
「당신이 제 어머니라도 되시나요? 「그쪽 나름의 호의라는 건 알고 있잖아」란 말은 듣지 않아도 아는데다, 말하고 싶은 게 있단 것도 알고 있어요」
「그러냐. 쓸데없는 참견이었나, 미안한걸」
「그렇네요. 「복잡한 이야긴 지상의 이변이 잦아든 뒤에 다시 수습하러 가면 된다」란 것도 알고 있으니까요」
「사토리는 똑똑하니까 말이지」

 멋대로 마음을 읽으며 대화를 해나가는 사토리의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에도 유우기는 여유롭게 맞장구를 쳤다.
 겉으로는 상냥하게 대하면서 속으로는 욕을 나불거리는──그런 당연한 이면이 없는 유우기와의 대화에 사토리는 점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괜한데 화풀이하는 자신이 갑자기 악당이 된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사토리가 입을 다물자, 유우기도 함께 입을 다문 채 말없이 밤길을 걸었다.
 앨리스의 책략으로 유카리 일행을 눈을 속여 하쿠레이 신사를 떠나니 다리가 자연스레 지저로 향했다.
 실제로도 연회가 열리는 신사 말고는 지상에 머물 일은 없었다.

 그 대신 지상을 떠날 이유라면 수도 없이 있었다.
 유우기가 같이 있다고는 하나, 오니에게 노려지는 체험은 사토리에게 있어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런 사토리가 발을 옮기는대로 뒤를 쫓은 유우기는 그대로 지저 세계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나저나, 선대랑 이별 인사도 못 하고 온 건 조금 아쉬운걸」
「어차피 이변이 끝나면 얼마 안 가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도 그런가」

 별 상관없다는 듯이 말하는 사토리의 말에 유우기는 몰래 웃었다.
 지상과 지저. 인간과 요괴. 원래대로라면 깊은 골이 파여 있어야할 두 인요의 관계가 너무나도 친근했기에 절로 미소가 나올 정도로 유쾌해진 것이다.
 물론 사토리는 유우기의 그 「오해」를 읽어냈으나, 반론하기도 귀찮았기에 내버려뒀다.

 ──오해.

 그렇게 「오해」가 쌓여가는 것. 그것이 지금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이란 점에 대해 사토리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무슨 오해냐고 묻는다면, 이미 뭐라 형용키 힘들 정도로 오만가지 오해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복잡하고도 괴기한 오해의 폭풍우나 다름없었다.
 사토리의 미간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는 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오늘 밤의 연회를 거치며 싫어도 알게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에 머리를 움켜잡고 싶어졌다.

 이번에 오니가 일으킨 이변이 자신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야쿠모 유카리를 포함한 일부 인요에게 의심받는다는 오해.
 그런 의심의 근거가 되고 만 「코메이지 사토리의 정체는 엄청난 대요괴다」라는 오해.
 거기에 더해 그 계기가 된 선대무녀와의 관계에 대한──구체적으로 어떻게 상상하는 건지는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오해.

 연회에 참가하기 전에 사토리가 생각했던 것들보다도 몇 배나 더 귀찮고 심각한 상황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깨달았을 때엔 이미 늦어 도망갈 구멍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
 게다가 문제를 수습하지도, 보류하지도 못한 채 더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을 없앨 수 없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새로이 관계를 맺은 앨리스 때문이다.
 역시 앨리스의 제안을 따라 신사에서 도망쳐 나온 건 그리 좋지 않은 선택이었던 걸까.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반쯤 사고가 멈춰 있던 사토리에게 있어선 구원이나 다름없었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마치 앨리스가 자신의 동료인 것 같지 않은가.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앨리스는 우호적인 마음으로 자신들을 도와준 것이 아니다.
 사토리의 실언에 흥미가 돋은 그녀가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타산적으로 계산하여 행동한 것이다.
 앨리스는 아군이 아니며, 이쪽의 태도에 따라서 유카리와 비슷한 관계가 될지도 모를 가능성이 꽤나 높았다.
 안심할 수 있는 요소 따윈 눈곱만큼도 없는 인물이었다.
 혹시, 자신을 도망치게 해준 것은 앨리스의 책략이나 함정이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헤어지기 전에 더 깊게 진심을 읽어낼 걸 그랬군요.

 사토리는 지금 의심암귀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풀어낼 곳 없는 울분은, 가장 합당한 상대를 향하고 있었다.
 선대무녀.
 모든 사건의원흉.
 그 녀석이 나를 이런 꼴로 만든 것이다.
 적어도 사토리에게 있어 그건 결정사항이나 다름없었다.
 제3의 눈에 비친 그녀의 덜렁대는 속내가 어느 때고 뇌리에 떠오르는 것 또한 사토리의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었다.

 ──지저에 온다면, 그때 한 번 더 머리를 조아리게 해드리죠.
 ──하지만 그런 장면을 또 린이 보기라도 했다간 오해를 받고 말아요.
 ──과연, 그게 목적이었던 거군요.
 ──선대의 짓이에요. 절대 용서할 수 없어요.

 지금 상황을 타파할 해결책도 떠오르지 않자, 사토리의 속에는 선대를 향한 원한만이 산만큼 쌓여갔다.
 그런 사토리의 속내를 읽을 수 없는 유우기는 뭐라뭐라 투덜대는 사토리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한가로이 걸을 뿐이었다.
 무관심한 것으로까지 보일 정도로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그래서, 정말로 이쪽으로 가면 돌아갈 수 있는 거냐?」
「……아마. 방향은 대충 맞을 거예요」
「어이어이, 해가 뜨기 전에 돌아갈 순 있는 거냐고」
「어쩔 수 없잖아요. 지상의 지리는 모른단 말이에요」
「날면 되잖아」
「어디에 있을지 모를 오니도 그렇지만, 신사에 있던 사람들한테 위치를 들키고 싶지 않아요」
「내가 잘 지켜준대도」
「그 뒤의 일을 생각하고 있단 말이에요. 정말이지, 조용히 하고 계세요」
「오냐, 분부대로 하마」

 깔끔하게 물러나는 유우기의 솔직함은 사토리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유우기와의 관계는 양호한 편인데다, 선대와 엮인 뒤로 얻게 된 자그마한 이익들 중 하나기도 하다.
 선대와의 약속 때문이긴 해도, 쓸데없이 참견하지도 않고, 성심과 정성을 다해 자신을 지켜주며, 자신의 말에 따라주는 모습 또한 믿음직하다.
 하지만 사토리는 유우기의 성품에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었다.
 자신을 향한 순수한 호의는 선대와 닮아 있었기에.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빨리 집에 돌아가야만 했다.

 사토리는 체력과는 다른 쪽에서 느껴지는 피로를 참아내며 더욱 빨리 발을 놀렸다.
 이제 골머리를 앓는 것조차 귀찮을 지경이다.
 더 이상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를 빌며, 그저 재빨리 귀로에 오른다.
 문득 제정신을 차리고선 고개를 들었다.
 문제가 나뒹굴고 있었다.

「……이제 그만 봐주세요」

 사토리는 형용키 어려울 정도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작게 투정을 부렸다.
 시야 저편. 약간이나마 정돈된 길가 한구석에서 사람의 모습이 보인 것이다.

 나무에 기대 앉아 무릎을 부둥켜안은 소녀.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특징적인 은발과 복장을 보고 사토리는 그 정체를 깨달았다.
 깨달고 말았다.
 누군지 몰랐거나, 아니면 차라리 낯선 상대였으면 좋았을 텐데, 라며 사토리가 후회했다.
 굳이 오니 이변이 아니더라도 요괴에 습격당할 위험성이 있는 밤길에 무방비한 모습으로 나앉아 있던 소녀의 정체는, 하쿠레이 신사에서 열린 연회에서도 본──콘파쿠 요우무였다.

 뒤에 있던 유우기도 눈치챈 듯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사토리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사토리는 잠시 제자리에 멈춰 서서 요우무를 살폈다.
 요우무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쪽을 눈치챈 건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마음을 읽어도 알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건, 엄청 귀찮겠는데요…….

 사토리는 처음과는 다른 느낌으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사토리이기에 알 수 있는 요우무의 상태 탓이었다.
 마음을 읽는다──그것이 어떤 제3의 눈으로 어떻게 보이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마음속을 이미지로서 본다고 할 수도 있고, 소리를 듣는다고 할 수도 있었으며, 둘 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만, 둘 다 미묘하게 틀리다고 할 수도 있었다.

 지금, 사토리가 읽어내는 요우무의 마음은 그런 애매한 표현으로 뒤섞여 있었다.
 말하자면, 보이는 광경은 메마른 황야이며,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
 지금 요우무의 속내에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일찍이 선대가 보여줬던 무아의 경지와 비슷했지만, 그것과는 다른 면이 있었다.
 이건 마음을 읽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사토리도 나름대로 긴 삶을 영위한 요괴이다.
 인간이나 요괴, 가끔은 신의 마음조차 제3의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 이렇게 텅텅 빈 마음속──기묘한 표현이긴 하지만──을 보고, 들어본 경험이 있다.
 당분간 요우무의 모습을 살피던 유우기가 평범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듯, 사토리에게 물었다.

「……사토리. 이 애, 어디 잘못되기라도 한 거냐?」
「말하자면, 마음이라는 그릇에서 넘쳐버린 거예요」
「뭐가?」
「체념. 좌절. 무기력──그런 부정적인 것들이 뒤섞인 감정이 말이죠」
「──」
「누구도 알아주지 못한 채, 어둠 속에서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이들의 마음이 딱 이래요」

 사토리의 애매한 설명에도 유우기는 뭔가를 이해한 듯 입을 다물었다.
 기나긴 삶 속에서 봐온 수많은 것들 중에, 지금의 요우무와 비슷한 꼴을 하고 있던 자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아니, 떠올린다는 표현을 쓸 만큼 옛날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옛 지옥의 골목 끝자락에 가끔 널려 있는, 어쩌다 본다고 해도 곧바로 잊어버리고 마는 존재──그런 막연한 인상이 눈앞의 요우무와 겹치고 있었다.

「그런가……그 짧은 시간에 어떤 경험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 녀석은 마음이 꺾였다는 건가」

 유우기는 사토리와는 다른 방면의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두 명의 대화가 이어질 동안 요우무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몸만이 아니라, 마음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기를 포기했다고 봐도 좋았다.

 자신에게 무어라 호소할 힘조차 없어 보이는 공허한 마음을 잠시 바라보던 사토리가 이윽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요우무의 앞을 지나 그대로 걷는 사토리.
 유우기는 그런 사토리의 판단에도 군말 없이 따랐다.
 마음속으로도 아무 불만이 없었다.
 그저 사토리의 뒤를 따라가기만을 생각한 것이다.
 사토리의 입장에선 고마운 일이었다.
 괜한 동정심이나 흥미를 가졌다간 이겨낼 수 없을 테니까.

 저 요우무가 귀찮은 짐덩이를 가득 매달고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있는 입장만 해도 충분히 귀찮았다. 분명 그 사이교우지 유유코의 종자 겸 정원사라고 했던가.
 엮였다간 이쪽이 쓸데없는 문제를 떠안게 될 것이다.
 안 그래도 복잡한 주변 인요들과의 관계가 더욱 뒤틀릴 것이다.
 그러니 무시한다.
 이게 정답이다.

 애당초 남남이나 다름없는 자신이 손을 쓸 이유는 없다.
 방치해두면 그녀의 동료나 유유코가 발견하고 회수할 것이다.
 그녀가 떠안은 문제도 그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면 된다.

 ──저렇게 되어버린 마음을 고칠 수 있는 자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지만.

 아니, 잠깐.
 제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죠?
 사토리는 쓸데없는 생각을 품은 자기 자신에게 당황하며 타일렀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요우무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는다.
 그거야 물론 그런 마음은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질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보고 있으면 연민을 낳는다.
 즉, 이건 단순한 동정심 같은 것으로 생겨난 망설임일 뿐이다.
 그렇게 자신을 타일르면서도, 생각과는 반대로 점점 발이 무거워짐을 느낀 사토리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요우무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싫은 예감을 느꼈다.

 ──근거는 경험뿐이긴 하지만, 이런 상태에 빠져버린 자는 그저 가족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는 나아지지 않는다.

 머리 한쪽 구석에서 멋대로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타일렀다.
 무의미한 생각이라고 타일렀다.
 왜냐하면, 자신은 이대로 그녀를 무시하고 떠날 테니까.
 역일 리 없는 상대에게 이런 생각을 품어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

 ──상냥한 친지와 함께하다보면 어느 정도는 나아지겠죠.
 ──하지만 제정신을 되찾은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손질」과 「꾸밈」뿐.
 ──스스로의 마음의 상처를 직시할 수 있을 리가 없어요.
 ──그게 가능할 정도의 여유가 있는 자라면 저렇게 되진 않으니까요.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꾸민 그녀의 마음을 결코 알 수 없겠죠.
 ──친한 만큼, 상대에게 다가가는 것이 두려워지니까요.
 ──당사자조차 모르는 콘파쿠 요우무의 마음을, 정확하고 냉정하게 이해해줄 수 있는 자가 있을 거라곤 생각할 수 없어요.
 ──마음이라도 읽을 수 없는 한, 말이죠.

 거기까지 생각한 뒤 사토리는 문득 제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다리가 멈춰 있었다.
 유우기 또한 함께 멈춰 서 묵묵히 사토리의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토리의 등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뒤죽박죽 섞여서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민할 필요 따윈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멋대로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누구 때문일까.
 아마, 선대 때문일 것이다.
 아니, 틀림없이 선대 때문이다.
 좋아, 다음에 만나면 때리도록 하자.

「──아, 정말이지! 엄청 눈에 거슬리네요!」

 누구에게 향하는 건지 알 수 없는 투정을 하늘을 향해 외치는 사토리.
 내적 갈등 속에서 전혀 상관없는 결론을 낸 사토리가 갑작스레 등을 돌리더니 걸어온 길을 덧씌우듯이 돌아갔다.
 내디딜 때마다 점점 빨라진 발에 힘껏 힘을 담는다.
 사토리은 그대로 요우무의 앞까지 오더니, 대답은 듣지 않겠다는 투로 말했다.

「당신을 지령전에 데리고 가겠습니다. 싫다면 저항해주세요」

 저항해주시면 만사 ​해​결​입​니​다​만​─​─​이​란​ 희미한 기대를 품은 사토리의 물음.
 요우무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네! 알겠어요, 저항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거군요. 그전에 그럴 힘도 없구요. 유감이군요─, 저한테는 훤히 보이니까 말이죠!」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요우무의 팔을 잡아끈다.
 사토리의 말대로 요우무는 저항은 고사하고 부축을 받고 일어서는 게 고작이었다.
 잡아끈 팔을 그대로 어깨에 두른 사토리에게 억지로 일어섰음에도 요우무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사토리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사토리 또한 그런 요우무의 반응이나 심정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발을 옮겼다.
 몸집이 작은데다, 그렇게 체력도 좋지 않은 사토리로선 요우무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긴 힘들었지만, 이미 반쯤 고집으로 걷고 있었다.

 애당초 이성적인 판단으로 행한 일이 아니다.
 묘하게 배려심이 느껴지지 않는 걸음과 함께 사토리는 요우무를 짊어지고 힘껏 귀로에 올랐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유우기가 쓴웃음을 짓고는 옆에 있던 요우무의 칼 두 자루를 들고 뒤를 따라 사토리의 뒤에 도착했다

「시끄러워요!」
「뭐야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만?」

 마음을 읽히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우기는 즐겁다는 듯 히죽였다.

「예? 착각도 정도껏 하세요, 제가 자비심으로 이 사람을 도왔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애초에 이게 이쪽한테 「도움」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네가──」
「 「그 녀석한테 손을 내밀려는 건 틀림없어. 재미있는 녀석인걸, 코메이지 사토리」라구요, 안다구요!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
「그래」
「앞으로 어쩔지 전혀 생각해두지 않았는데요! 어쩔까요, 이 재앙의 뿌리!?」
「글쎄, 모르겠는데. 하지만 도와달라면 도와줄게」
「그럼 일단 이 사람을 대신 옮겨주시겠어요!? 「내가 메고 가는 게 편하지 않을까」라는 걸 알았다면 지금 당장!」
「흠,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지만, 안 되겠는걸. 네가 멋대로 그 녀석을 데려가려는 거잖아. 그럼 네가 짊어지고 가야지」

 싱글벙글 웃으며 정론을 늘어놓는 유우기에게 사토리가 충혈 된 눈으로 째려본다.
 덕분에 불이 붙은 듯 히스테릭한 투정을 잔뜩 외쳐대든 사토리의 뒤를 뻔뻔스런 표정으로 유우기가 따른다.
 결국, 사토리가 요우무를 짊어진 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묘하게 멀리서 들리는 것만 같은 그 둘의 소란스러운 말소리에 요우무는 자신보다 더욱 자그마한 등에 얼굴을 묻고 살그머니 눈을 감았다.
 자신이 가고 있는 장소가 어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던 것이다.
 머릿속에, 한순간 유유코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다.
 이윽고 자비로운 잠이 요우무를 감싸고, 상처 입은 마음에 한순간의 평화를 찾아주었다. 




역자후기

달묘 님이 내 취향 NTR인 거 어떻게 아셨대....

오랜만에 뵙습니다, 여러분. 수능 끝났다고 노는 것도 작작해야 됐어요(...)

그나저나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코이시에 대한 떡밥이 나왔네요. 눈치 빠른 분들은 알아채셨을 거라고 믿습니다.

으으, 새벽 번역은 온몸을 불사르는 느낌이에요. 그, 무슨 짤이냐. 공룡이 약빨고 발광하던 짤 있는데, 딱 그 기분.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안녕~

p.s 지금 처음으로 고백하는 건데 전 이제까지 일요일이 일주일의 끝인 줄 알고 있었어요.
논스톱 클라이막스 액션!


...이게 무슨 게임 홍보문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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