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36 「쇄월」
「……저건 대체」
하릴없이 밤하늘을 유영하던 마리사는 마을 쪽에서 뿜어져 나온 빛을 더듬어 그 광경을 목격했다.
아직 마을은 멀다.
하지만 이렇게나 멀찍이 떨어져 있음에도 그 광경은 뚜렷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마을의 상공에서 탄막놀이가 펼쳐지고 있다.
마치 온 마을에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은, 탄막이라는 이름의 빛의 비.
환상향 어느 곳에 있어도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전대미문의 규모와 물량을 자랑하는 탄막놀이였다.
「레이무, 구나」
마리사는 자연스레 그 이름을 입에 담았다.
물론, 이 거리에선 탄막의 빛은 보여도, 누가 결투를 하는지 까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마리사에겐 기묘할 정도로 확신할 수 있었다.
레이무는 저곳에서 하쿠레이의 무녀로서 이변의 원흉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마리사는 자석이 서로에게 끌려가듯이 빗자루의 끝을 마을로 향하곤──언뜻 떠오른 생각에 몸을 굳혔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오니와 싸우고, 그 뒤엔 요우무와 싸워 승리를 따낸 마리사는 그 어디로도 갈 생각이 없었다.
애당초 신사에서 뛰쳐나온 건 충동적인 행동의 결과였을 뿐이다.
두 번의 승부를 끝맺은 뒤에 왠지 모르게 사라진 불가사의한 충동에 마리사는 밤하늘을 방황하고 있었다.
이제, 뭘 해야 할까.
아니, 뭘 하고 싶은지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늘을 방황하는 동안, 마리사는 레이무가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생각을 고쳐먹은 것이다.
딱히 이제 와서 레이무와 마주하는 게 거북한 건 아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이건 시시한 고집에 불과하다.
한심했던 과거의 자신을 내치지 못하고, 레이무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
레이무는 그런 것 따윈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애당초 자신이 이상했단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것대로 화나는걸, 이라며 마리사의 사고는 무심코 삼천포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게 자기도 알 수 없는 마음에 마을로 가지 못하고 헤매는 동안, 마리사는 한 그림자가 점점 다가오는 것을 눈치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인간의 모습과 비슷한 그림자──아홉의 꼬리를 가진 그림자를.
어슴푸레한 달빛 아래라 한들, 잘못 볼 리가 없는 상대였다.
「란!?」
「스스럼없이 부르지 마라, 인간」
란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벌레를 보는 것만 같은 눈을 빛내며 마리사와 마주섰다.
그 손엔 아름드리나무의 밑동만큼이나 거대한 오니의 목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주인님 심부름이라도 하던 거냐?」
「원숭이 치곤 훌륭한 추리로군. 그 말대로다」
란은 별다른 집착을 보이지 않고, 들고 있던 오니의 목을 내던졌다.
대지를 뒤덮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오니의 목을 보는 마리사의 뇌리에, 그 늙은 오니의 최후가 스쳐지나갔다.
자연스레 속이 메스꺼워진다.
역시, 이 녀석은 싫다, 며 란에 대한 적대심을 다시금 확신한 마리사는, 마치 도전하듯이 눈매를 날카롭게 세우며 마주봤다.
「볼일이라도 있어?」
「볼일?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따위에 볼일 같은 건 없다만」
「……여전히 불쾌한 녀석일세」
「그러는 넌 길을 잃기라도 한 건가? 신사에서 얌전히 기다리면 됐을 것을, 주제도 모르고 오니를 퇴치한다고 나선 건 아닐 테지?」
「그렇다면, 어쩔 건데?」
「방해밖에 안 된다. 너 따위는 하급 오니가 나서기만 해도 먹잇감에 지나지 않아. 네가 죽든 말든 상관없지만, 오니가 사람의 피를 먹고 흥분하기라도 했다간 곤란해진다. 쓸데없는 수고가 늘어날 뿐이지」
이 말에 숨겨진 뜻이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란은 진심 외엔 입에 담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의 마리사는 그런 태도에 화를 내지 않았다.
기가 막힌다는 듯 한숨을 내뱉을 뿐이었다.
「널 귀찮게 만들다니, 그거 참 가슴 아픈 일인걸. 뭐, 안심해, 오니는 혼자 알아서 잘 처리했어」
「……뭐라고?」
마리사의 대답을 들은 란의 눈빛이 바뀌었다.
약간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틀림없이, 마리사를 향해 처음으로 내비치는 동요였다.
「설마, 오니를 쓰러트렸단 말이냐?」
「그래, 맞아」
「거짓말이로군」
「정말이라고」
마리사는 낙담한 기색을 보이며 대답했으나, 자세한 내막을 밝히진 않았다.
정말 싫어하는 이 요괴여우에게 그 늙은 오니와의 결사적인 싸움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싸움은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더럽히고 싶지 않은 소중한 기억이었다.
그걸 말할 바에야, 그냥 거짓말이라며 믿지 않아주는 편이 낫다.
「그런가──」
하지만 란은 그 대답에 의심 대신,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마리사를 바라봤다.
지금까지 보내오던 시선이 벌레를 대하는 것처럼 차가웠다면, 지금 란의 시선엔 나름대로 온기가 느껴졌다.
마리사는 그건 그것대로 기분이 나쁘다는 듯 몸을 움츠렸다.
란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리사의 몸 구석구석을 관찰했다.
「……뭐야!? 볼일 없으면 얼른 가라고! 아니면 나랑 승부라도 할 거냐!?」
스펠카드까지 꺼내드는 마리사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란은 간신히 표정을 바꿨다.
「결과가 뻔한 승부를 해서 어쩐단 말이냐. 난 그렇게 한가한 몸이 아니다」
코웃음을 치는 란.
그 반응에 발끈한 마리사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란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다시 봤다. 아주 약간이지만 말이지」
「무, 뭐야 갑자기……기분 나쁘게시리」
「너는 꽤 쓸 만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라고 말이지」
「쓸 만하다고?」
「그렇다. 그러니 내가 사용해주마. 따라와라」
「뭐? 싫어, 왜 갑자기 명령인데」
「오니 퇴치를 돕게 해준단 거다. 명예로운 일이지」
「네 심부름꾼 노릇을 하란 거잖아! 싫다고!」
「오니는 인간과의 도박을 존중하는 경향이 있다. 네 힘은 약하다면, 하기에 따라서 오니 토벌에 공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 말을 들어!」
「됐으니, 따라와라. 아니면 따로 할 일이라도 있는 거냐?」
란에게 추궁 당한 마리사는 무심코 말문이 막혔다.
바로 아까까지만 해도 실제로 할 일도 없었던 데다, 레이무와 만나는 것을 꺼리는 자신의 심경을 들킨 것만 같아 움찔한 것이다.
아니, 란의 미소를 보고 있자니 들켰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마리사의 망설임을 꿰뚫어본 란이 더욱 짙은 미소를 지었다.
「없는 것 같군」
「시, 시끄럽다고!」
「서둘러라. 새벽이 새기 전에 끝내고 싶군」
이미 대답은 알고 있다는 듯, 란은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렸다.
그리곤 그대로 저멀리 날아가기 시작했다.
마리사는 그 등을 분한 눈빛으로 째려봤다.
짜증나는 녀석.
정말 짜증나는 녀석 같으니.
얼른 아무데나 가버려!
──그렇게 속으로 원망 섞인 말을 내뱉으며, 결국 마리사는 란의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기다려, 란!」
「떠들지 말고 조용히 따라오기나 해라──키리사메 마리사」
란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불렀단 것을, 초조함에 빠진 마리사는 깨닫지 못했다.
◆
──왜 그러지?
선대와 마주선 스이카는 약간이나마 당황하고 있었다.
──덤비지 않는 거냐!?
스이카의 뇌리에 그려졌던 싸움과 현실은 약간이지만 차이가 났던 것이다.
선대는 지금, 눈앞에서 자세를 잡고 있다.
한치의 틈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전투태세.
그녀가 진심으로 자신과 싸우려고 하는 것은 틀림없다.
틀림없다──면 어째서, 그 「보이지 않는 공격」을 쓰지 않는 거지!?
스이카는 「백식관음」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다.
절대선공이자 일격필살의 권타.
피할 자신도, 견딜 자신도 없다.
만약, 그 공격에 당한다면, 그때엔 그저 「승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각오가 갑작스레 허물어진 느낌이었다.
이건 지극히 정정당당한 승부다.
하지만, 이래서야 당당함이 지나치지 않은가.
──이래도 되는 거냐?
──너, 이 이부키 스이카를 그 정도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아니, 아니야. 이건 자만심이 아니야.
──방심하지 마라. 상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왜 그러는 거지?
──혹시,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사용할 수 없는…….
그렇게 머릿속을 사고가 어지럽혀 생겨난 찰나의 빈틈──.
선대가 공격을 가했다.
앞으로 내디디고 있던 스이카의 왼발을 노려서, 오른발을 휘두른 것이다.
자세를 취한 팔은 물론이요, 상반신 자체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곧게 선대의 움직임만을 살피던 스이카는 시야 바깥에서 일어난 공격에 반응할 수 없었다.
몸통도 아니고, 무릎에 말뚝을 박는 듯 내려찍은 것이다.
엄청난 타격음이 울려 퍼지고, 근육과 뼈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충격과 함께 스이카를 덮쳤다.
「크극……!」
스이카는 눈을 부릅뜨고선 고통의 비명을 씹어 삼켰다.
인간이었다면 무릎이 반대쪽으로 꺾이고, 뼈가 살을 뚫고 나와 두 번 다시 쓸 수 없게 될 정도로 강렬한 위력의 발차기.
오니의 육체이기에 그런 충격에도 견딜 수 있는 것이었다.
──바보냐, 나는!?
온몸에서 날뛰는 격통보다, 자기 자신을 향한 욕설이 솟구쳤다.
완전히 자신의 방심이 부른 결과였다.
이 마당에 와서 싸우던 중에 잡념을 품다니.
상대는 약해졌다, 라고.
자신이 유리하다, 라고.
공평한 싸움이 아니다, 라고.
그 교만과 빈틈을 보기 좋게 찔린 것이다.
왼 무릎에서 올라오는 격통에 제정신을 차린 스이카가 다시금 상대를 노려봤다.
바로 아까까지만 해도 아슬아슬한 거리를 유지하며 멈춰있던 선대가, 이 순간 노도와도 같은 거센 파도로 변모하여 덤벼들었다.
왼 무릎을 내리찍은 오른다리가, 다음 순간 스이카의 턱을 노리고 단번에 솟아올랐다.
로 킥으로 상대의 자세를 무너뜨리고, 맞히기 힘든 큰 기술을 급소에 맞힌다.
타격전의 정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콤비네이션이다.
물론 스이카는 그런 격투 기술에 대한 지식 따윈 가지고 있지 않다.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무릎에서 전해져오는 고통을 참아내고 간신히 자세를 되잡은 스이카는 경이적인 동체시력을 발휘하여 턱을 노린 하이킥을 피해냈다.
이 모든 것이 인간과 오니의 근본적인 신체능력의 차이가 낳은 결과였다.
강맹한 기세로 뻗어 올라간 발이 뒤로 뺀 턱을 파공성을 일으키며 스쳐 지나간다.
만약 맞았다면 아래턱, 아니면 머리가 통째로 날아갔을지도 모른다──그 발차기엔 오니조차 전율할 정도의 위력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피했다.
선대의 발차기는 하늘을 꿰뚫을 기세로 뻗어졌다.
그것은 동시에, 그녀가 아직 다리를 회수하지 못했다는 것이 된다.
이 다리를 되돌릴 때까지의 시간, 그것이 선대의 치명적인 빈틈이 됐다.
──반격 개시다!
스이카는 다시금 기합을 넣었다.
승부는 지금부터다.
이제 방심도, 자만도 하지 않는다.
잡념은 버려라.
오로지 전력으로 눈앞의 인간을 때려죽인다!
그 각오를 두 눈에 담아 선대의 얼굴을 노려봤다.
그러나──.
이때, 스이카가 볼 곳은 선대의 얼굴이 아니었다.
아직 땅에 남은 선대의 왼발.
그 발이, 오른발이 빗나감과 동시에 땅을 박찼다.
마치 오른발의 궤적을 덧쓰듯이, 왼발 또한 스이카의 턱을 노리고 쏜살처럼 날아든 것이다.
「……」
스이카는 아래에서 자신을 기습해오는 왼발을 눈치챘다.
눈으로 보지 못한 발차기를 어떻게 알아챈 건지 자신조차 알 수 없었다.
야생의, 오니의 감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직감 덕분일지도 모른다.
당황하며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두 번째 공격에 대한 회피를 시도한다.
하지만, 그 도망치려는 머리를 쫓아, 바로 위에서 떨어져내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피해냈다고 생각한 오른다리가, 이번엔 뒤꿈치를 세우고 정수리를 노려 내려찍히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피할 방도는 없었다.
스이카는, 지금 그야말로 닫히기 직전인 호랑이의 아가리 속에 놓인 꼴이 된 것이다.
위와 아래. 정수리와 턱. 오른다리와 왼다리.
두 방향에서 동시에 닥친 타격이 스이카의 머리를 덮치고, 충격이 의식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
「호왕이다……」
땅바닥으로 쓰러지는 스이카를 본 치르노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지상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보는 자들은 적었다.
그 적은 사람들 중에서도, 공방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한순간에 일어난 교전을 제대로 파악한 사람은 더더욱 적을 것이다.
치르노도 확실하게 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분을 넘은 확신을 가지고 그 기술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저게 「호왕」!?」
처음으로 실물을 본 메이링이 무심코 흥분하며 물었다.
모코우와 케이네도 치르노에게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잖아, 치르노. 지저에서 썼다는 거하고 좀 다르지 않아?」
모코우의 의문에, 메이링과 케이네도 동의의 뜻을 나타냈다.
이 셋은 「호왕」이라 불리는 기술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지저에서 일어난 싸움에 대한 기사를 붕붕마루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특히 모코우는 제자로서 함께 지내던 중 선대 본인에게서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들은 말과 눈앞에서 펼쳐진 기술 사이엔 꽤나 차이가 커보였다.
치르노의 실력이나 지능이 낮기도 하니, 잘못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틀림없이! 이 몸은 사부가 싸우는 걸 봤다구! 이 몸은 알아!」
하지만 치르노는 단언했다.
그런 필사적인 모습에 모코우 일행도 무심코 수긍하고 말았다.
결국, 자신들은 글과 말을 통해 알았을 뿐이다.
이중에서 그때 선대의 싸움을 실제로 본 것은 치르노 뿐이다.
「……과연. 그런 기술이구나」
고요한 분위기 속, 테위가 혼잣말을 흘렸다.
「뭔가 알아낸 거야, 테위!?」
「응. 요컨대 「호왕」이라는 건, 그 이름대로 자신의 두 다리로 호랑이의 턱을 모방한 기술이야.
지저의 싸움에 대한 기사에는 오니의 팔을 부러뜨린 기술이라고 설명되어 있어서 착각했지만, 저건 관절을 부러트리는 기술이 아니야. 어떤 모습으로 쓰든, 상대의 머리를 두 다리 사이에 넣어 타격을 입히는 기술이 「호왕」이란 거지」
「그렇다면, 역시 저것도──」
「 「호왕」이 틀림없어」
「봐봐, 내 말이 맞지!」
내 뜻대로 됐다, 라는 것을 알자마자 치르노가 가슴을 폈다.
한숨을 내뱉는 모코우와는 반대로 메이링이 순수하게 감탄한다.
「역시 사부의 첫 째 제자시군요」
「흐흥, 너도 정진하라구」
「너무 자신만만해하지 말라고……그런데, 이걸로 결판 난 걸까?」
모코우는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는 스이카를 바라봤다.
그 기술이 「호왕」이라면, 오니에게 치명상을 입힌 실적이 있는 엄청난 기술이 제대로 먹혀들어갔다는 소리가 된다.
만약 이대로 결판이 난 것이라면, 이변의 주모자 치고는 꽤나 어이없는 최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전에서 그런 것을 챙길 수는 없다.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빈틈을 찔러 큰 기술을 맞히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이다.
과연, 일어설 수 있는 것인가──.
「아니, 설 거야. 오니라는 건, 이 정도가 아니니까」
그 의문에 답하듯이, 테위가 말했다.
「오랜 세월동안 쌓인 고집도 있을 테고 말이지」
그 말대로, 스이카는 어느새 일어나 있었다.
◆
어!?
뭐야 이게!?
나, 언제 이렇게 작아졌지?
능력을 쓴 기억은 없는데.
아니면, 선대가 커진 건가?
뭐야, 이거. 저 녀석 머리가 엄청 높은 데 있잖아──.
눈을 뜬 스이카는 잠깐이나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이 땅바닥에 쓰러져있다는 것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가슴과 뺨에 닿은 흙의 감촉에 의식을 부여잡고 간신히 제정신을 차린 스이카가 당황하며 일어섰다.
몸이 휘청거린다.
처음엔, 어째서 이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내 자신이 입은 충격마저도 그제야 겨우 생각났다는 듯 몸이 자각했다.
발차기에 맞은 턱이 아리다.
정수리에서 전해져온 충격이 머릿속까지 침투해 사방팔방으로 퍼지며 시야를 뒤흔든다.
이를 악물지 않으면 의식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형편없어.
이래서야, 짝이 없을 정도로 형편없잖아.
스이카는 두 주먹을 얼굴의 양 옆을 가리듯 들어올렸다.
딱히 격투기를 익히지는 않았다.
그저 본대로 흉내 낼 뿐인, 더 이상 상대에게 급소를 허용하지 않기 위한 자세였다.
놀랍게도, 오니인 자신이 인간을 상대로 방어를 굳혔다는 것이다.
스이카는 자조의 웃음이 지어질 것만 같은 심정을 견뎌냈다.
아직 승부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자신이 이미 수세에 몰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애당초 내가 어떤 공격을 맞고 쓰러진 건지 아직도 알 수 없다.
같은 공격을 해온다면, 지금 상태로는 피할 수 없지 않을까.
그리고 다시 설 수 없는 건 아닐까──.
스이카는 마음속에 깃든 불안과 의심을 뿌리쳤다.
하지만, 뿌리쳤음에도 그것들이 다시금 들러붙었다.
생각해봤자 별다른 방도도 없을 텐데, 무심코 생각해버리고 만다.
진정해.
괜찮아.
이미 꽤 회복했어.
이대로 상대가 공격하지 않으면, 당장 반격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할 수 있을 거야.
……이대로?
그러고 보니, 왜 선대는 지금 공격해오지 않는 거지?
그렇게 무른 상대는 아닐 터.
빈틈을 노리고 있는 건가?
그렇지 않으면 설마, 내가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거냐?
어리석긴.
적이 약점을 보였다면 그 약점을 온 힘을 다해 노려라.
나는 오니.
너는 인간.
종족의 차이가 있다.
이 싸움에서 네게 「비겁」따윈 존재하지 않아.
자, 어서 덤벼라!
「자, 어서 덤벼──」
대담한 미소를 지으며 선대를 도발하려던 스이카의 입이, 대뜸 날아든 바위보다도 단단한 주먹에 짓눌려 뭉개진다.
빈틈투성이 자세를 꿰뚫어 최단 거리를 최고 속도로 파고든 선대의 일격.
아래턱이 비뚤어지는 감각을 충격과 함께 느끼며, 스이카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뭐가 「덤벼라」냐.
상대가 이를 다물고 있을 때 때려서야, 머리를 때려도 견뎌낼 수 있다.
그렇기에 눈앞의 바보 같은 상대가 입을 연 순간을 노려 주먹을 꽂아넣은 것이다.
선대는 그 빈틈을 냉정하게 탐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보는 나다.
──얼간이에 병신 같은 년이라고!
스이카는 또다시 날아갈 뻔한 의식을 자신을 향한 분노를 원동력 삼아 부여잡았다.
입속에서 뿜어지는 피를 그대로 씹어 삼키고, 억지로 고개를 앞으로 돌린다.
이미 두 발째 주먹이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것을 피하지 않고, 일부러 얼굴로 받아낸다.
역시, 인간의 주먹이리라곤 믿겨지지 않는 엄청난 위력이었다.
단순한 힘은 물론이요, 그 속에 담긴 영력이 오니의 육체에 피해를 입힌다.
하지만 이번엔 견딜 수 있었다.
공격을 향해 집중하는 것──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행동이라 하더라도 오니의 육체는 그에 반응하여 경도를 더하고, 방어한 것이나 다름없는 효과를 보인다.
방어를 버리고 일부러 주먹을 맞은 스이카는, 방어를 위한 한 호흡만큼의 움직임으로 반격에 나섰다.
자신 또한 주먹을 내지른다.
선대와 같은 기술은 없다.
그저 머리를 노리고, 온힘을 다해 내뻗는 것.
그 주먹에 맞는다면 얼굴이 함몰되고, 충격으로 목뼈가 바스러질 정도의 위력.
이부키 스이카의 작은 체구와 가느다란 팔엔, 그런 불합리한 힘이 숨겨져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빗나갔다.
내지른 주먹을 회수하는 동안 두 번이나 맞았다.
맞은 소리가 하나로 겹쳐 들릴 정도의 속도를 자랑하는 연격.
스이카는 반대쪽 주먹으로 맞섰다.
이번에는 피하기 어려운 몸통을 노린다.
심장째 구멍을 뚫어버릴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 주먹을 고작 몸을 돌리는 것으로 피해내는 선대.
권압이 무녀복의 가슴팍을 찢었을 뿐, 옷 아래의 피부엔 스친 상처 하나 없었다.
아주 약간의 거리를 두고 피해낸 것이다.
그 틈에, 이번엔 세 번 맞았다.
머리를 향한 공격만을 경계한 탓에, 단번에 꿰뚫을 기세로 파고드는 주먹에 무방비하던 명치를 내주어 몸이 꺾이자마자 양 뺨에 번갈아 주먹이 꽂혀들었다.
그저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스이카와는 반대로, 선대의 공격은 두려울 정도로 합리적이고도 효과적이었다.
반격한다.
반격당한다.
하늘을 찢을 듯한 굉음.
육체를 파괴하는 타격음.
흩날리는 선혈.
신음.
삐걱거림.
두 인요 사이에 주먹과 함께 수많은 것이 오고간다.
서로 밀착된 좁은 공간 속에서, 폭풍우보다도 격렬한 죽음과 파괴의 거래가 이어진다.
어느 쪽이 유리하고, 어느 쪽이 불리한지 알 수 없다.
공격을 많이 맞는 쪽은 스이카였다.
아니, 모든 공격을 피해내는 선대와 비교해, 스이카는 일방적으로 맞을 뿐이었다.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최선의 타이밍에 최선의 각도로 파고드는 선대의 공격 전부를 스이카는 그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공격이 치명상을 입혔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았다.
스이카는 모든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고, 또한 견뎌내고 있었다.
맞으면, 되받아친다.
차이면, 발차기로 답한다.
결과적으로 그 반격들은 전부 실패로 끝났지만, 한 번의 공격에 반드시 반격하고 있다.
그리고 아주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둘 다 데미지와 체력의 소모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온힘을 다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쉬지 않는다.
우직하게 버티는 스이카와 우직하게 피해내는 선대.
두 인요의 움직임에 끝이 보이지 않아서야, 어느 쪽이 상대를 압박하고 있는 것인지 다른 사람들로선 판단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심정은 당사자인 둘마저 같았다.
아무리 해도, 결정타를 먹일 수가 없다.
이유는 다르지만, 서로가 상대를 충분히 공격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 쪽이 먼저 손을 쓸 새도 없이, 투쟁이라는 현상은 멋대로 속도를 붙여나갔다.
눈앞의 적을 한순간이라도 웃돌기 위해, 보다 강하게, 보다 빠르게──.
저 하늘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또 다른 스이카와 레이무의 성대한 탄막놀이에 숨겨지듯, 보는 눈이 얼마 없던 그 둘의 사투는, 그 무의미함을 유지한 채 힘과 기술의 극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
「꼭,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
손에 땀을 쥐는──하타테는, 그 말을 그대로 몸으로 체현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싸우고 있는 것만 같은 긴장감에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부릅떠서 선대와 스이카의 싸움을 지켜보는 그녀.
그 옆엔 그런 하타테와 똑같이 싸움을 지켜보는 모미지가 있었다.
그 밖에도 천마와 대텐구를 비롯하여 수많은 동료 텐구들이 주위에 모여 있었지만, 그들은 상공에서 펼쳐지는 싸움을 보고 있었다.
텐구들 중에서 선대의 싸움을 보고 있는 자는 하타테와 모미지, 단둘뿐이었다.
텐구들의 수장인 천마는 어느 쪽의 싸움을 보라고 강요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보고 싶은 쪽을 보면 되는 법.
그렇게 판단한 모미지는 잠자코 선대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전황이 움직일 겁니다」
불안함을 숨기지 못한 하타테의 말에, 모미지가 짧게 답했다.
「이, 이길 수 있겠지?」
하타테가 어느 쪽의 승리를 바라는지는 굳이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승리하기보다도 살아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이 강하다는 것 또한, 모미지는 알고 있었다.
알고 있기에, 평소처럼 무뚝뚝한 표정으로 오로지 사실만을 솔직하게 말했다.
「이 상황이 계속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선대무녀님이 불리해질 겁니다」
「하지만, 일방적으로 흠씬 두들겨 패주고 있잖아……!」
「이미 인간이 전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지 오래입니다」
모미지의 말이 맞았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선대의 몸은 아직 둔해진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이미 체온의 상승에 의한 홍조를 지나 창백해질 정도로 산소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선대와 스이카의 공방이 시작된 지 벌써 수분의 시간이 흘렀다.
인간이 쉬지 않고 온몸을 채찍질하여 움직일 수 있는 한계는, 이미 옛날 옛적에 넘어선 지 오래였다.
◇
──해보니 알겠네, 무호흡 연타 진짜 죽겠어! 스펙 씨, 레알 개쩔어!
크윽, 힘들어!
숨 쉬고 싶어. 이제 내가 졌다고 하고 이런 바보 같은 싸움은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마음껏 산소를 들이쉬고 싶다.
그 다음에 시원한 냉수로 목을 축이고 싶다.
무심코 그렇게 현실도피를 해버릴 정도의 상황이었다.
미리 각오했으니 어떻게든 된다는 수준이 아니다.
저번에도 말했던 것 같긴 한데, 오니는 정말로 강하다.
유우기와 스이카.
어느 쪽이 강한지를 비교하는 것도 현기증이 날 정도지만, 육탄전에 한해서라면 유우기가 강할 것이다.
맞으면 최소 치명상이라는 불합리한 공격력은 똑같지만, 그래도 스이카의 힘은 유우기와 비교했을 때 다소 뒤떨어지는 면이 있다.
맞으면 그대로 튕겨나갈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유우기와는 달리, 스이카에게 맞는다면 뼈가 부러지고 살이 뭉개지는 정도로 끝날 것이다.
……그리 다른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어쨌든, 이게 원래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둘로 나뉘어졌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스이카는 유우기와 비교했을 때 그나마 양심적인 공격력을 갖고 있었다.
뭣보다 리치부터가 다르다.
나보다도 더욱 큰 키를 자랑하는 유우기와는 서로간의 리치가 거의 같았지만, 몸집이 작은 스이카라면 단순한 리치만으로 봤을 때 내가 더 유리했다.
상대의 주먹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내 주먹은 닿는다.
그렇기에 이렇게 재미있을 정도로 공격이 마구 맞아 들어간다.
──이상, 내가 유리한 점. 끝.
그 뒤로 내가 불리한 점이 쭈르륵 나열해있다.
우선 두말할 필요 없이 우수한 오니의 내구력.
유우기도 그랬지만, 아무리 공격을 먹여도 피해를 입히기만 할 뿐 결정타가 되진 않는다.
스이카가 유우기보다 터프한 건 아니었지만, 단순히 내 공격력이 떨어진 탓도 있었다.
이미 잔뜩 몸을 굴려서 그런지 신체 능력이 꽤나 떨어져 있었다.
덕분에 리미터 해제 계열의 기술로 힘을 끌어올리지도 못하는 실정.
기술 자체는 사용할 수 있겠지만, 만약 사용했다간 이번에는 정말로 죽을 것이다.
그렇기에 공격 하나하나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음에도 오니의 육체를 꿰뚫을 정도의 위력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질보단 양으로 압도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싸워봤으나, 그런 방법에도 슬슬 한계가 다가왔다.
처음 말한 대로, 쉴 틈 없이 계속 움직인 피로가 쌓여 마침내 몸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한계에 이르는 것이 너무 빠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아까 여러 마리의 오니들과 싸웠을 때하곤 다르다.
정말로 숨 한 번 쉬지 않고 계속 손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 난 vs시마부쿠로 편의 일보와 비슷한 모양새였다.
피로로 몸이 멈추는 것보다 숨이 막혀 죽는 쪽이 빠를 것 같다.
죽을 각오로 공격해야 하긴 하지만, 정말로 죽어서야 의미가 없다.
결국,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육체가 먼저 한계를 맞이했다.
단 한 호흡──그 한 번을 참지 못한 내 육체가, 움직이길 멈추고, 폐로 공기를 들여보냈다.
──공기, 맛있어어어어어어!
──그리고 이때다 하고 공격하는 스이카의 공격 위험해!?
손이 멈춘 그 순간, 반격이 시작됐다.
처음부터 단 한 번의 방어조차 없이 그저 내 공격을 견뎌내며 반격만을 고수하던 스이카가, 자신의 행동을 막던 요인이 없어진 순간, 노도와도 같이 쳐들어왔다.
최초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이미 몇 번이고 피해낸 공격이다. 피해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피한 틈을 타 공격에 나섰지만, 아직 산소가 부족했다.
귀중한 시간을 사용하여, 다시금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스이카의 연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이번엔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그것도 목을 노린 날아 차기가.
목이 부러지기 전에 그대로 잘려나갈 정도의 위력이 담긴 발차기.
완전히 피해낼 수 없었기에 팔을 써서 어떻게든 흘려냈다.
사실 막아내고 싶었지만, 만약 그랬다간 팔이 통째로 날아갔을 것이다.
그렇다고 공격을 완전히 흘려낸 것도 아니었다.
발이 스쳐지나간 부분부터 시작하여 팔이 부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방금 그 공격이 특히나 예리했던 것은 아니다.
이것이 내가 이런 싸움을 택한 또 다른 이유였다.
유우기 때와는 달리, 지금의 내겐 스이카의 공격을 완벽히 받아넘길 자신이 없다.
아직도 회복된 체력과 소모된 육체의 균형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호흡 한 번만큼, 움직임이 늦었다.
이렇게 상태가 엉망이어서야, 절묘한 힘 조절이 필요한 기술을 마음대로 쓸 수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실수했다간 팔이 통째로 뜯겨나갈지도 모르는 방어.
──단순한 속도만이 아니라 공기에 녹아들어갈 것만 같은 섬세한 동작이 필요한 「백식관음」
──유우기와 싸울 때 썼던 카운터 타입의 정식적인 「호왕」
모두, 지금의 나로선 쓸 수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이 없다.
처음부터 난데없이 「호왕」으로 공격한 것 또한, 카운터를 노리기엔 리스크가 너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스이카에게 유효한 기술들을 하나도 쓸 수 없는 상태라니.
그래도 체력만은 완쾌 됐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일까.
그런 나로선 마구잡이로 공격하는 것 외에 이길 방도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방도조차 서서히 희미해져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스이카의 공격이 손을 쓰지 않으면 피해낼 수 없을 정도의 격렬한 기세로 나를 덮쳐왔다.
「사아아아앗!!」
짐승과도 같은 노호성과 함께, 스이카의 주먹이 비래한다.
기술이라곤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단순한 주먹질이다.
하지만, 그 속도, 무게 또한 그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터무니없었다.
마치 기관총처럼 연달아 주먹이 날아든다.
게다가, 전혀 쉬질 않는다.
쉴 틈이 없다.
멈추지 않는다.
피해내지 않고 방어에 나서서 공격을 막아냈지만, 그 탓에 스이카의 공세를 멈추기 위한 반격에 나서지 못하고 더욱 격한 기세로 달려든다.
일방적인 방어전이란 이런 걸 뜻하는 것이겠지.
승부의 윤곽이 점점 드러나기 시작했다.
위험해, 이 녀석.
인간이 아냐.
맞다, 오니였지.
이런 녀석이랑 맞대결이라니,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완전히 흘려내지 못한 공격에 양팔 곳곳 가득히 상처가 새겨진다.
어떻게든 반격해야만 한다.
하지만 할 수 없다.
공격하고 있지도 않은데, 이번엔 방어에 힘이 소모된다.
한계가 머지않았다.
공기를 마시고 싶단 욕구가 또다시 치솟는다.
불가능하다.
이번엔 내 마음대로 쉴 수 없다.
스이카가 나를 쉬게 내버려두질 않는다.
점점 지친다.
궁지에 몰려간다.
예전에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엔, 어떻게 했었지?
어떻게 벗어났었지?
정체불명의 힘에 각성 했던가?
이번에도, 그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모른다.
하지만, 이것 말곤 믿을 게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모든 걸 맡기고──.
아.
생각났다.
내 위에서, 레이무가 싸우고 있어.
「하앗!!」
「큭!?」
폐에 남아 있던 산소를 전부 토해내며 끌어낸 힘으로 반격을 가한다.
불쑥 내밀어진 주먹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고, 힘껏 발을 디디며 휘두른 팔꿈치를 스이카의 얼굴에 꽂아 넣는다.
코뼈가 뭉개지는 감촉과 함께, 잔뜩 눌린 스이카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일격엔 전투의 흐름을 끊어낼 정도의 힘이 담겨 있던 듯했다.
분수처럼 코피를 뿜으며 스이카가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
오니의 맹공은 멈추었고, 나도 더 이상 따라붙지 않았다.
무리한 반격에 나선 탓에 회피가 완벽하지 못했던 것이다.
옆구리를 스친 주먹의 위력에 늑골에 금이 간 것 같았다.
아프다.
하지만 이 정돈 참아낼 수 있다.
이미 끊어져버린 지 오래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싸움을 맡기는 짓은 그만두자.
「……그래. 레이무도 있으니 말이지」
「뭐라고?」
상당한 양의 코피와 눈물을 흘리는 스이카가 뭐가 뭔지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모르겠지.
하지만, 나는 알 수 있다.
지금 내겐, 레이무의 존재가 느껴지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다.
아니, 착각이라도 좋다.
보고 있나, 레이무?
아니, 안 봐도 된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우선해라.
그저, 느껴다오.
네 상대는 어떻더냐?
강한가?
이쪽은 꽤나 심각하군.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할 수가 없어.
그쪽은?
하핫, 그런가. 항상 해왔던 대로 하고 있다 그거구나.
그럼, 나도 항상 해왔던 대로 하마.
고맙다.
힘내렴.
그래, 나도 사랑하고 있다.
그러면 어디, 가볼까──.
◆
레이무는 평소와 다름없는 부유감 속에서, 중력을 느꼈다.
이 밤하늘은 마치 새까만 바다와도 같았다.
파도가 밀려든다.
이부키 스이카가 뿜어내는 방대한 탄막이라는 모습을 가진 파도.
언뜻 보면 그저 삼켜질 수밖에 없는 벽으로 보일 뿐이지만, 빠져나갈 구멍은 반드시 있다.
처음엔 없어도, 탄막의 움직임에 맞춰 틈이 생긴다.
그 사이를 빠져나간다.
빠져나온 순간, 등 뒤에 있던 틈이 바로 닫힌다.
만약, 한순간이라도 판단이 늦었다간 모처럼 열린 활로가 눈앞에서 닫혔을 것이다.
레이무는 그런 판단을 잘못하지도, 주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번엔 좀 버겁네.
멈추지 않고 밤하늘을 헤쳐 나가던 레이무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과연 오니의 대장.
엄청난 난이도를 자랑하는 탄막이다.
긴장을 풀었다간 바로 격추당하고 말 것이다.
쓸데없는 잡생각을 할 순 없다.
말 그대로 공기 자체와 하나가 되지 못한다면, 하늘을 빽빽이 매운 이 탄막 속에서 날아다닐 수 없다.
세계조차 떨쳐내듯 「하늘을 난다」는 것.
그것은 그 무엇에도 붙잡히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완전한 자유──.
레이무는 「그게 무슨 상관이야」라며 속으로 투덜댔다.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을 얽매는 잡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레이무는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레이무는 자신을 얽매어오는 중력을 느꼈다.
지금 자신이 있는 하늘 바로 아래에 있는 지상에서부터 뻗어 나온 한 줄기의 인연을 느꼈다.
유일하게 자신을 얽매는 것.
내 자신이 바라여 얽매이는 것.
레이무는 지금, 어머니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다.
착각이 아니다.
아니, 착각이라도 상관없다.
──어머니, 그쪽은 어때?
눈앞까지 다가온 탄막을 바라보며, 레이무가 중얼거렸다.
──알아, 잘 보여.
──괜찮아, 걱정하지 마.
──내 일은 반드시 내가 해낼 테니까.
레이무는 한마디 말도 없이, 어머니와 대화를 나눴다.
──응, 어머니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곁에서 느껴지는 그 사람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스이카라는 녀석, 제법 씹는 맛이 쏠쏠한 상대야.
함께 해온 과거가 두 사람을 잇고, 맡겨진 미래가 의지를 전한다.
──나는 괜찮아. 평소처럼 할 뿐이야.
두 사람의 눈앞을 가로막은 적은 강대하다.
그러나 초조하지 않다.
──힘내. 나도 힘낼 테니까.
불안하지도 않다.
──그럼, 이따 봐. 어머니.
절대적인 신뢰만이 있을 뿐.
──사랑해.
삼켜질 것만 같이 광대한 하늘.
끝없이 이어진 칠흑빛 하늘 속에서 홀로 있다는 걱정 따윈 이미 버린 지 오래.
자신은 이어져 있다.
태어났을 때 탯줄로 이어졌던 어머니는 없지만, 그보다도 더욱 깊은 것으로 이어진 어머니가 있다.
근심할 필요는 없다.
──자, 그럼, 가볼까.
◆
──이 녀석, 기세가 되살아났잖아!?
스이카는 선대의 변화를 눈치챘다.
움직임이 질적인 부분부터 확실하게 바뀐 것이다.
되살아났다, 고 말하긴 했으나 그건 어떤 의미로 틀린 말이었다.
상대는 확실하게 체력을 소모했다.
땀과 호흡, 안색을 냉정하게 살피면 뻔히 보이는 사실이다.
공격의 빈도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공격의 위력이 더 강해졌다.
이쪽의 공격을 더 완벽하게 흘려내고 있다.
스이카도 긴 세월을 살아온 요괴.
자연스레 수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했다.
격투기에 관한 지식은 없지만, 육체를 쓰는 싸움에선 「힘을 주는」 것보다 「힘을 빼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잘은 몰라도 알고 있다.
적절한 순간의 적절한 근육의 완급은 순간적으로 더욱 커다란 힘을 낼 수 있다.
선대는 그런 기술을 보란 듯이 몸으로 구현해내고 있었다.
스이카가 내지른 주먹은 부드럽게 흘려내지고, 선대의 주먹은 용수철처럼 뻗어 나와 반격에 나선다.
바로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었다.
거칠게 힘으로만 밀고 나가려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공격이 거대한 철퇴라고 한다면, 지금은 마치 예리한 칼날과도 같았다.
한 방, 한 방이 더욱 깊게 육체에 파고든다.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나 바뀐 거지?
스이카는 알 수 없었다.
──확실히, 아까 거리가 벌어졌을 때 숨통을 틀 기회를 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고작 그걸로 이렇게까지 되살아날 리가 없어.
선대의 사정을 아는 자라면 「짓궂게도 체력을 소모한 덕분에 피로에 절은 육체와의 이질감이 사라졌다」라고 분석했을 것이다.
──이 녀석은 인간이야. 나랑은 달라.
인간에게는 없는 무한할 정도의 체력이 스이카의 움직임에 더욱 박차를 가한다.
──인간과 요괴는 달라.
한계를 알지 못하고 끝없이 솟아오르는 열기가 스이카의 근육을 더욱 팽창시킨다.
──그래. 이 녀석은 인간이다.
포효를 외치며 격렬함을 더해가는 스이카의 육체에, 차디찬 강철 같은 주먹이 꽂혀들었다.
피를 토하며, 선대를 노려본다.
흔들림 없는 의지를 품은 눈이, 자신을 마주 노려보고 있다.
──당연한 거지.
──인간과 요괴는 달라.
일찍이 인간과 함께 하던 긴 세월 속에서 봤던 것, 경험한 것을 이제야 떠올린 스이카가 무심코 쓴웃음 지었다.
강대한 힘을 기둥삼아 홀로 살아가는 오니와는 달리, 약한 인간들은 항상 같이 모여 있었다.
──인간은 혼자가 아니야.
외톨이처럼 보여도, 인간의 주변엔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항상 함께하고 있었다.
그것은 가족이기도 했고, 연인이기도 했으며, 친구이기도 했다.
──나 참, 이러니까 인간이란 것들은.
변화는 당연하고.
진화는 필연이다.
인간은 오니가 눈 깜박일 새도 없이 빠르게 변해간다.
눈앞에 선 이 인간이 그렇듯이.
「그걸 짓뭉개고 나아가는 게 바로 오니라 이 말씀이야. 헤헷……」
스이카는 입가를 닦으며, 허세를 부리듯 웃었다.
◆
선대와 스이카가 싸우기 시작한 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렀을까.
한창 싸움에 빠져든 당사자들은 물론, 방관자조차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의 사투.
그녀들의 싸움은 이미 상공에서 펼쳐지는 탄막놀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격렬해져 있었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두 불덩이가 서로에게 부딪힌다.
뻗어지는 주먹이, 휘둘러지는 발이 공기에 아지랑이를 피우며 격렬하게 타올랐다.
어떠한 술법도, 능력도 사용하지 않는 순수한 육탄전임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불꽃이 무수히 작렬하며 눈에 아로새겨졌다.
싸움의 폭풍우 속, 스이카는 희미하게나마 느끼고 있었다.
──밀리고 있어.
한 번의 공격이 빗나가고, 한 번의 공격을 맞을 때마다 서서히 커져가는 불안감.
──오니인 내가, 인간인 이 녀석한테 싸움으로 밀리고 있다고!
얼핏 보기에 대등한 듯이 보이는 승부라지만, 점점 우열이 가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눈치채기 시작한 방관자들이 있을 정도였다.
스이카는 그것이 참을 수 없이 신경 쓰였다.
알리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이 인간에게 지는 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기에.
오니로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기에.
싸우기 전엔 실컷 나불대며, 각오를 끝맺었다고 말했음에도 현실을 눈앞에 둔 지금.
오니로서의 허세와 고집만이 자신의 본질이었다.
그럼에도 이기고 싶었다.
지고 싶지 않았다.
만약 이 승부에서 졌다간, 자신은 한마디의 변명조차 할 수 없게 된다.
훌륭히 싸운 인간을 상대로 오니가 「승부를 양보해주마」라고 웃으며 넘길 수도 없다.
이 싸움은 주량 대결이나 재주 대결 같이 심심풀이로 하는 승부가 아니다.
순수한 맞대결.
단순하기 그지없는, 생사를 건 사투.
오니의 긍지를 걸고, 오니의 본분을 내세워 싸우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이 승부에서 진다면, 그것은 오니인 자신의 전신전령이 진 것이나 다름없다.
패배에 한마디의 변명조차 할 수 없다.
──만약, 내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면.
──만약, 「밀도」를 조종하는 능력을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상태였다면.
무의식적으로 그런 상상을 떠올리며, 스이카가 웃었다.
자신을 향한 비웃음이었다.
눈앞에 자신이 있었다면, 자신을 향해 침을 뱉으며 깔봤을 것이다.
정말 비루한 녀석이구나, 나.
오니 주제에 자기 자신을 속이려 하고 있어.
전부 납득하고 시작한 싸움이다.
두 무녀를 상대로 싸울 것이라 처음부터 결심하고 있었을 터.
그걸 이제 와서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 자신의 나약한 마음이, 정말로 싫어졌다.
그럼, 상대는 어떻지?
오니 동료들을 부추겨 잔뜩 힘을 빼놓은 주제에, 상대의 원군은 인정하지 않고 일대일의 결투를 신청했다.
애당초 오니와 인간의 태생적 차이는 어떻게 메울 셈이냐.
우리는 그런 서로간의 사정을 전부 감춘 채, 난투하고, 맞서 싸우고 있다.
그 어떤 거짓조차 끼어들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지금 눈앞에 있는 현실이 전부.
그 현실이 지금, 스이카를 궁지로 몰아세우고 있다.
강자로서 살아온 이부키 스이카에게 있어서, 생애 최초의 경험을 선사하려 하고 있다.
──이기고 싶어.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이기고 싶어.
──아니, 어떻게든 이긴다.
──「전력을 다해 싸운다」 같은 미적지근한 태도는 관두겠어.
──내가 가진 모든 수단을 써서라도 이겨주마!!
한 손에 술잔을 들고 멋과 풍류, 도박을 즐기는 오니로서의 허세를 전부 버린 스이카가, 비겁할 정도의 승리를 향한 욕망을 내비치며 외쳤다.
혼신이 담긴 발차기가 휘둘러진다.
선대가 그것을 받아 넘기고, 주먹으로 반격해 들어오는 것은 이미 예상한 바.
스이카는 그 반격을, 처음으로 피했다.
멀찍이 뒤로 물러난 것이다.
물론, 이것은 공격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거리를 벌리기 위해서.
자신의 주먹도, 선대의 주먹도 닿지 않을 거리를 둔 스이카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카아아아아앗───!!」
스이카는 입에서 화염을 토해냈다.
공기를 불태우며 「화륵」이라기보다, 「펑」하는 폭발 소리와 함께 엄청난 기세로 내쏘아지는 불길.
그것이 선대를 향해 곧게 날아들었다.
주먹이나 발차기와는 다르게 형태를 갖추지 못한 불길.
입에서 내뱉어지는 것과 동시에 방사모양으로 뻗어나간 불길을 이 거리에서 피할 방법도, 막아낼 방법도 없다.
스이카가 가진 최후의 수단이었고,
쓰지 않으려던 최후의 수단이었다.
선대와 진심으로 싸우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대등하게 육체만으로 승부하자」라는 생각이 들어차 있었다.
그런 마음을 포기해야만 했던 진정한 최후의 수단이었지만, 스이카는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겼나!?
피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다.
인간 따위는 한순간에 재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화염이다.
물론, 이 정도로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 믿을 정도로 상대를 만만하게 여기진 않았다.
형태가 없는 고로 피할 순 없지만, 그와 동시에 이 공격엔 저지력이라는 것이 없다.
불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선다면 이 정도의 거리는 한순간에 좁혀진다.
이 불길을 토해내기 위해 무방비하게 입이 벌어진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는 것을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에, 이 불길은 토해내는 것은 한순간뿐, 바로 이를 다문다.
하지만 이걸로 충분하다.
잿더미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초고온, 초고밀도를 자랑하는 도깨비불은 피부를 불태우고, 폐를 익히며, 만약 눈을 늦게 감았다면 안구가 녹아내렸을 것이다.
인간에겐 치명적인 상처일 터.
그리고 그런 상대에게 결정타를 가한다──.
거기까지 생각을 끝마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이카는 결판이 나기도 전에 승부의 결과를 상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선대를 불태울 터였던 불길이, 그녀에게 닿기 직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계로 막힌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스이카의 눈엔 그 광경이 뚜렷하게 보이고 있었다.
선대가, 맨손으로 자신을 덮쳐오는 불길을 헤쳐냈다.
넓게 펴 보인 두 손등에서 게슴츠레 빛나는 것은 틀림없는 영력의 빛이었다.
그것으로 오니의 불길을 헤쳐냈다.
흘려보낸 것이 아니다.
두 손이 허공에 원을 그리듯 움직이고, 그 손등에 밀려 치워지듯이 불길이 선대의 몸에 닿기도 전에 흩어져 사라진 것이다.
미리 예정한 대로, 스이카의 입에선 더 이상 불길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스이카는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선대가 일으킨 정체불명의 현상을 「방어」라고 판단조차 하지 못하고, 경악에 빠져 굳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치명적인 빈틈을, 선대가 온힘을 다해 찔러 들어갔다.
스이카가 벌려놓은 거리를, 이번엔 선대가 진각이 섞인 질주와 함께 혼신이 힘이 담긴 정권지르기를 배에 꽂아 넣었다.
「커헉!!」
자신이 내뱉은 커다란 신음과 함께 스이카가 제정신을 차렸다.
배로부터 온몸으로 퍼진 충격과 고통이, 위액과 함께 입으로 넘쳐흘렀다.
몸이 ㄱ자로 꺾인 스이카의 모습에도 아랑곳없이 선대가 무자비한 공격으로 추격했다.
그대로 하늘로 뻗어나갈 기세로 쏘아진 발차기가 스이카의 턱에 꽂힌다.
튕겨 올라간 머리가 내려오기도 전에 몸통박치기로 함께 지면에 쓰러졌을 때엔, 선대는 이미 스이카의 위에 앉아 마운트 포지션을 잡고 있었다.
일찍이 유우기를 상대로도 효과를 발휘했던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는 자세.
선대는 그때의 일을 재현하듯이, 그 자세 그대로 스이카의 얼굴을 난타했다.
스이카는 양팔로 머리를 감싸고 필사적으로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반격 따윌 할 여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아직 혼란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아직도 선대가 뭘 했고, 자신이 뭘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그 불길을 막은 거지?
그것은 정말로 최후의 수단이었다.
비겁한 건 아닐까, 같은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그런 내 갈등이, 어리석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원스럽게 막히고 말았다.
그 결과가 이 꼴이다.
뭐야.
이 녀석, 너무 강하잖아.
인간이 아냐.
싸움의 권화라고.
오니나 다름없는 녀석일세.
유우기.
이런 녀석의 다리를 어떻게 부순 거야.
안 돼.
이길 수 없어.
이대로는 지고 말아.
싫어…….
싫다고, 지고 싶지 않아.
젠장.
깨끗하게 패배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지고 나서 「훌륭하다」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까.
그런 건 엿이나 먹으라 그래.
나는 이 승부에 모든 걸 걸었다고.
변명할 순 없어.
낭떠러지다.
뭐가 됐든 부여잡을 수밖에 없단 말이야.
설령 보기 흉한 꼴로 발버둥을 치더라도 이기고 싶어.
질 바에야 흙탕물을 마시는 게 낫다고.
젠장.
지기 싫어.
지기 싫단 말이다──!
◆
내려쳐지는 주먹 아래서, 스이카가 외쳤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성이었다.
오니가, 날뛰는 아이처럼 형편없는 꼴로 아우성친 것이다.
스이카가 그런 아우성과 함께 방어를 풀었다.
적의 이상에도 한 치의 동요조차 없이, 선대는 그저 냉철히 싸움을 끝내기 위해 주먹을 내리쳤다.
그때, 스이카의 한 손이 땅바닥의 흙을 움켜쥐었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지 못했다.
그저 본능적으로 「지기 싫다」는 비겁하고도 격렬한 마음이, 몸을 멋대로 움직였다.
스이카는 움켜진 흙을 선대의 얼굴에 내던졌다.
생각하지도 못한 반격에, 선대가 신음하며 눈을 손으로 가렸다.
치명적인 빈틈이 생겨났다.
그 빈틈을, 스이카가 온힘을 다해 노렸다.
잠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옆으로 휘두른 주먹이 선대의 팔꿈치를 꺾고, 그 너머에 있는 늑골을 부러트리며 그대로 날려버렸다.
자유롭게 풀려난 몸으로 일어선 스이카는, 땅에 쓰러진 선대를 보고──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차렸다.
◆
쓰러진 선대를 본 스이카는, 그 다음 흙으로 더럽혀진 자신의 손을 보고는 당황하며 사방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자신이 한 짓을 누군가가 봤을 것이란 생각에 기를 쓰며 주변을 살폈다.
수많은 방관자들은 여전히 상공의 싸움에 눈을 빼앗겨 있었지만, 선대의 싸움을 보는 자들 또한 많았다.
그 방관자들과 스이카의 눈이 마주쳤다.
모두가, 믿기지 않는단 표정으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쉴 틈도 없이 펼쳐지던 싸움이, 생각지도 못한 일로 끝나버린 것이다.
싸움의 흐름을 끊은 것은 스이카의 비술도, 선대의 오의도 아니었다.
인간의 힘에 궁지에 몰린 오니가, 놀랍게도 눈에 흙을 뿌린 것이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아무 수도 없는 애들처럼 악다구니를 쓰다가, 주변의 흙을 쥐어 내던졌다.
긍지 높은 오니가.
그 이부키 스이카가──.
「하……하핫, 하하핫……」
스이카는 쓰러져 있던 선대를 향해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일어서겠다는 듯,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 하하하핫……!」
스이카의 입가가 쪼그라들 듯이 말려 올라간다.
결코 그녀답지 않은, 비굴함이 엿보이는 웃음이었다.
「어때, 이제 좀 알겠냐?」
한쪽 끝에서부터 금이 가, 그대로 부서질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비겁하다고 욕이라도 할 셈이야?」
웃고 있음에도, 그런 욕을 듣는 것을 정말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선대가 일어섰다.
하지만 그 왼팔은 힘없이 축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스이카는 선대의 팔이 부러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격을 막아낸 팔꿈치 뼈가 인대 채 짓뭉겨졌을 것이다.
그 팔꿈치 너머로, 늑골 세 개 정도를 부러뜨린 것 같은 반응 또한 제대로 확인했다.
내장 또한 다쳤을 것이다.
선대가, 거무칙칙한 피를 토했다.
궁지에 몰려 있던 승부가, 단한번의 공격으로 역전됐다.
이것이 오니의 강력함이다.
아무리 불합리하다지만, 종족으로서의 특징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스이카는 자신과 상대를 자랑스러워하며, 전력을 다해 공격을 이어나갔을 것이다.
그 역전의 계기가, 비열한 짓만 아니었더라면──.
「이기면 돼……」
스이카는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흙을 뿌리든, 돌을 집어 후려치든, 뒤에서 덮치든, 아무래도 좋아.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겼다는 결과만 있으면 된다고!」
비명을 지르듯 외치는 스이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말을, 자신을 포함한 모든 자들에게 변명하듯 외쳤다.
스이카는 더 이상 주변을 둘러볼 수 없었다.
자신이 한 짓과, 그것에 대한 반응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다.
──실망스럽다는 시선.
──비웃는 미소.
──깔보는 중얼거림.
그런 것들을 단 하나라도 인식했다간, 마음이 꺾여버리고 말 것이다.
오니로서 살아온 기나긴 세월 동안 쌓아올린 모든 것이, 그 자리에서 무너지고 만다.
지금까지 내세운 자신의 긍지가, 전부 거짓이 되어버리고 만다.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이부키 스이카라는 자부심 강한 오니가, 보잘 것 없는 짐승이 되어버리고 만다.
외면하고 싶었다.
자신이 한 짓을 돌이켜 없었던 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뒤집을 수 없는 법.
최후의 순간에 남의 눈도 아랑곳없이 승리를 갈구한 이 모습이 바로 자신의 본성.
그리고 이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젠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았지만──스이카는 선대를 바라봤다.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이대로 싸운다면 스이카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궁지에 몰려 있는 쪽은 스이카였다.
선대가, 딱 한마디, 한마디의 말만 해도 끝나게 될 것이다.
무슨 말이 됐든 상관없다.
그 한마디의 의미를, 그 누구보다 스이카 스스로가 가장 잘 이해할 테니까.
단 한마디, 깔보고, 조롱하고, 혹은 동정이 담긴 한마디 말만 있다면, 이부키 스이카라는 오니는 죽는다.
「왜 그래? 무슨 말이든 해보라고, 선대. 팔은 어때?」
굳이 선대의 분노를 돋궈내듯 도발한다.
자신을 죽일 말을 유도해낸다.
스이카는 이미 싸울 힘을 잃고 말았다.
「──글쎄, 직접 확인해 보는 건 어떤가?」
선대의 얼굴엔, 대담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한쪽 팔을 당했다만, 너 정도는 이길 수 있다」
남은 오른손으로 주먹을 움켜쥔 선대가 웃고 있었다.
견디기 힘든 격통이 온몸을 괴롭히고 있을 것임이 분명한데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 눈동자엔 기력이 가득 차있었다.
이 상황에 이르러서도, 선대는 승부에서 이길 속셈이라는 것이 뻔히 보이는 모습이었다.
「와라, 스이카. 능력은 버리고, 덤벼봐라!」
스이카는 표정을 꾸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눈이 휘둥그레지게 떴다.
선대의 시선이나 말 속엔, 지금 스이카가 한 짓을 비난하려는 기색이나 깔보려는 느낌은 한 치도 존재하지 않았다.
싸움을 시작했을 때와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전의가 가득 들어찬 눈으로 스이카를 올곧게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스이카의 몸이 다른 의미로 떨리기 시작했다.
「편하게 죽이는 걸로는 만족하지 못할 텐데, 정정당당히 정면에서 주먹을 꽂아 넣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나를 물어 죽이는 게 소원 아니었나? ──그럴 터다, 스이카」
선대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처음엔 알 수 없었다.
그 의도의 속내를 알아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말에 담긴 뜻을 읽어내, 천천히 이해하는 동안, 스이카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솟구치기 시작했다.
「자, 다시 그 주먹으로 덤벼라. 일대일이다. 이런 즐거운 싸움을 그만두고 싶은 건 아니겠지?」
손에서 놓은 자신의 긍지를 다시 그 손에 잡고 덤비라고, 선대가 그렇게 말하는 듯이 들렸다.
희미하게 사라져가던 전의가, 선대의 말과 행동에 부추김 당한 듯 다시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덤벼라, 스이카」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이고는,
「──무서운 거냐?」
선대가 히죽, 하고 웃었다.
스이카는 물론이요 그녀를 잘 아는 자들조차 처음 보는 미소였다.
어떤 싸움에서도 구도자처럼 과묵함을 잃지 않는 선대무녀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그녀답지 않게 적을 도발하고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스이카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모든 탁한 감정들이 폭발하여 날아가버린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이제껏 느껴지던 것들이 사라지고, 이제부터 다른 생각 따윈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남은 것은 통쾌함뿐이었다.
어떻게 되먹은 녀석이냐.
대체 어떻게──!
「큭……크하핫……네 녀석」
울컥 올라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아까와 같은 비굴한 웃음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웃는 데 쓸 힘마저 아깝다.
모든 힘을 지금부터 시작될 싸움에 쏟아 붓고 싶었다.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저 강대한 적에게 「저건 해도 된다」라든가 「이건 하면 안 된다」같은 생각은 낭비일 뿐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래봤자 저 녀석은 동요하지 않는다.
그 정도로 평정을 잃었다면 이렇게 고생하지도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이길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이기고 싶다.
오직 그 일념만이 스이카의 마음을 잠식했다.
선대, 고맙다.
내 상대가 너이기에, 나는 아직 싸울 수 있어.
내 상대가 너이기에, 나는 아직 이기고 싶단 생각을 버릴 수 없어.
「쳐 죽여주마아아아!!」
이제 남이 어찌 보든 상관없다.
책략 따윈 없다.
물러설 길조차 버리고, 자신의 몸을 내세워 특공에 나선다.
마음속 깊은 곳부터 끓어오른 포효를 내지르며, 스이카는 최후의 전투에 나섰다.
◇
팔이 부러졌다.
늑골도 부러졌다.
몇 대나 부러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 대만 부러진 게 아니라는 건 확실하다.
……격투만화 같은 데에 나오는 캐릭들은 늑골이 몇 대나 부러졌는지 정확하게 알아내던데, 그거, 수수하게 굉장하지 않아? 현실에서도 그럴 수 있나?
이런 생각으로 현실도피를 할 만큼 점점 내가 초조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고통은 괜찮다. 이미 익숙해진 지 오래다.
왼팔을 못 쓰게 된 것 또한 이 상황에 비교해 차라리 나은 편이다.
문제는 나만 궁지에 몰린 게 아니라, 스이카 또한 같다는 것이다.
설마 그 스이카가 흙을 뿌릴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그런 계열의 공격은 싫어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오니의 긍지 같은 데에 고집했으니 말이지.
즉, 그만큼 내가 스이카를 궁지에 몰았다는 것이다.
확실히 아까까진 나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스이카의 도깨비불을 갑작스레 떠오른 「회전방어」로 막아냈을 때엔 무심코 속으로 승리의 포즈를 취했을 정도였다.
직접 써보니 이 기술, 정말로 「화살이든 총이든 화염 방사기든 가져와 봐라」라는 느낌이다.
처음 시험해본 거긴 하지만 「황금의 회전」이랑 조합한 게 정답이었을지도 모른다.
원작에서도 불을 막아냈던 기술이니 잘 될 것 같다고 예상하긴 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이르러──호신개안(護身開眼)!
하지만 새롭게 발견한 기술도, 이렇게 한쪽 팔이 망가진 상황에선 의미가 없다.
이번엔 내 쪽이 단숨에 궁지에 몰리고 말았다.
꽤나 위험한 상황이다.
──아니, 그렇다고 뭐라 할 생각은 없어. 나는 전혀 신경 안 쓰니까 말이지!!
비겁하다고 할 생각은 없다.
이 싸움에 규칙이 없다는 것 정도야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실전이었다면 상대가 모래나 자갈을 눈에 뿌리든, 항복한 척 하다가 기습하든, 피자를 얼굴에 박아버리든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니까.
근거는 아랑전.
굳이 잘잘못을 따지자면 그 공격에 당한 내가 나쁘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만약 반칙을 쓸 정도로 궁지에 몰린 스이카가 능력을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이 상황이 압도적으로 위험해!
지금까진 왠지 쓰지 않고 있었지만, 「밀도」를 조종하는 능력을 사용했다간, 모래 뿌리기 따윈 별 상관없어질 정도로 위험천만한 상황이 닥치고 만다.
안개로 변해서 공격이 맞지 않는다, 정도라면 차라리 귀여운 편이다.
이러다 「미싱 파워」라도 썼다간 전혀 승산 없지 않아?
베지터랑 오공이 싸울 때처럼 되어버린다고.
그것 말고도 공식설정엔 없었지만 「안개로 변해서 상대의 몸속으로 침투해 파괴」같은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요컨대 스이카는 동방 최강 설. 네, 논파 완료.
나 사실, 그런 계열의 공격엔 엄청 약하다고.
어쨌든, 스이카가 내 상상대로 능력을 사용했다간 정말 손을 쓸 수 없어진다.
일어선 난 서둘러 스이카를 바라봤다.
두서없이 거대화라도 했다간 정말 도망치는 것 말곤 방법이 없다.
자, 어떻게 나올 거냐, 스이카──?
「왜 그래? 무슨 말이든 해보라고, 선대. 팔은 어때?」
도발적인 대사──그 말을 들은 순간, 내 머릿속에 비책이 떠올랐다.
큭, 우연이라곤 하지만 설마 스이카가 이 재료를 들고 나올 줄이야!
그래……이 루트라면 할 수 있어!
스이카가 능력을 쓰지 않고, 이대로 맨손으로 싸우게 할 수 있어!
나는 모 아니면 도의 확률에 승부를 걸었다.
말로 상대를 낚는 건 처음이지만, 할 수밖에 없다.
「──글쎄, 직접 확인해 보는 건 어떤가?」
근육☆세뇌법, 개시!
「와라, 스이카. 능력은 버리고, 덤벼봐라!」
설명하지!
근육 세뇌에 걸리면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해지며, 인질로 잡힌 딸이고 뭐고 상관없이 격투로 결판을 낼 수밖에 없단 생각 말곤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자, 다시 그 주먹으로 덤벼라. 일대일이다. 이런 즐거운 싸움을 그만두고 싶은 건 아니겠지?」
자연스럽게 「그 주먹으로」란 말을 강조하며, 능력에서 눈을 돌리게 만든다.
애당초 말을 안 해서 입이 굳을 정도인 나이기에 도발을 해본 적은 거의 없지만, 이번만큼은 이상적인 표본이 있으므로 완벽한 도발을 날려줄 수 있었다.
내 비장의 카드는 만화 지식만이 아니다. 영화 지식 또한 있다.
나는 울끈불끈한 근육이 가득한 마초맨처럼 자연스럽게 스이카를 도발했다.
「덤벼라, 스이카──무서운 거냐?」
끝으로, 얼굴 근육을 총동원하여 미소를 지었다.
──들어갔다!
이 말을 듣고 머리에 피가 오르지 않을 놈은 없지!
「쳐 죽여주마아아아!!」
아니나 다를까, 이성적인 판단을 잃은 스이카가 엄청난 기세로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잔뜩 가라앉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인지 스이카는 눈빛은 전의와 투지로 가득 넘쳐흐르고 있었다.
공격 또한 보다 격렬했다.
하지만 능력을 사용할 바에야, 아무리 격렬하든 단순한 격투전이 더 승산이 높으니 상관없다.
후하핫, 감쪽같이 내 책략에 놀아났구나, 스이카.
앞일을 훤히 꿰뚫어 보는 것 같은 술책이 아니더냐!
위험해, 나 사실 책사의 재능이 있는 거 아냐?
하지만 아직 우쭐거리기엔 이르다.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데다, 중상까지 입은 내가 불리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
하지만 이제 곧 결판이 난다는 것 또한 사실.
간다, 스이카. 이게 최후의 싸움이다──!
◆
주먹을 휘두르며, 스이카는 결말이 가까워졌음을 예감했다.
발을 뻗으며, 스이카는 이 공격으론 결판이 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단한번이라도 봐주진 않는다.
온힘을 다해 공격하고 있다.
이제 곧 결판이 난다.
그때를 위한 결정타가 준비되어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 순간은 지금도 점점 다가오고 있다.
근거는 없다.
그저, 자신의 예감을 믿을 뿐이었다.
스이카는 이미 상식적인 판단이나 예측 따윈 그만둔 지 오래였다.
그저 온힘을 다해 움직이고 있을 뿐.
이 인간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니를 상대로, 한 팔만 가지고 맞서고 있다.
아까와 다름없이 공격을 피하고, 흘려내고 있다.
부러진 왼팔은 물론, 무사한 오른팔조차 사용하지 않고, 놀랍게도 오직 다리만으로 싸우고 있었다.
날아드는 주먹과 발차기를, 다리로 피하고, 흘려내는 선대.
게다가 반격마저 다리가 도맡고 있었다.
옆에서 채찍처럼 휘어진 발차기가 덮쳤다고 생각하니, 내찔러지는 창처럼 명치를 노린 앞차기가 날아든다.
발만이 아니다.
주먹 또한 얼굴을 노려오기 일쑤였다.
이 녀석은 발가락을 오므려서 주먹을 만든 것이다.
발끝까지 단련되어 있다니, 어떻게 되먹은 육체냐.
공격의 궤도가 좁아진 대신, 강인한 각력에 의해 공격력이 올라간 선대의 맹공을 스이카는 간신히 버텨냈다.
공격을 맞을 때마다 온몸이 삐걱이며, 피를 내뿜는다.
스이카의 공격 또한 선대를 스치며 상처를 아로새겼다.
출혈이 피로를 덮고, 그 위로 다시금 피로가 덧씌워진다.
양자 모두 피투성이였다.
둘 다 생명의 갈림길에서 싸우고 있다.
──이제 곧 결판이 난다.
스이카는 선대의 의도를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선대는 아까부터 오른손을 공격에도, 방어에도 쓰지 않는다.
그것이 진정한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굳게 쥐어진 채 움직이지 않는 그 손은 기묘한 모습으로 쥐어져 있었다.
완전히 쥐어지지 않았다.
특히 엄지와 검지, 소지가 약간 벌어져 있다.
주먹이라기보다, 불상의 손 같은 모양새였다.
그 선대무녀가 단순히 피로하다고 주먹을 쥘 수 없을 리가 없다.
주먹이 저렇게 쥐어진 데엔 깊은 뜻이 있음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을 내보일 때가, 이 싸움에 걸린 승패의 갈림길이 될 것이다.
최후의 수단이라──.
그건 자신 또한 있다.
다만 성공할지 어떨지 모르는 내기였다.
스이카는 주저 없이 그 내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후우우,
라며 스이카가 크게 들이쉬었던 숨을 그대로 내쉬며, 주먹을 내렸다.
숨 돌릴 새도 없던 전투 도중에 찾아온, 너무나도 갑작스런 탈진.
그 한순간이 빈틈을 낳는다.
팽팽하게 맞서던 기세가, 노도와도 같이 다른 한쪽을 밀어낼 정도로 커다란 빈틈이.
「──코오오!!」
그 순간, 선대의 호흡에 담긴 리듬이 바뀌었다.
스이카는 자신이 일부러 만들어낸 빈틈을 기회 삼아 선대가 승부를 걸어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이 책략에서 이겼는지, 아니면 자신의 의도를 눈치챈 선대가 또 다른 술책으로 그 뒤를 노릴지.
하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선대가 무언가를 시작한다.
그 공격을 판단해내고, 자신이 가진 최후의 수단을 성공시키기 위해 최대한 집중한다.
오는 거냐!?
그 오른손이──!
「코오오오!!」
「뭣──큭!?」
왔다.
왼손이.
부러져서 움직이지 않을 터인 왼팔이, 갑자기 움직여 스이카의 얼굴을 후려쳤다.
설령 고통은 참을 수 있다고 한들 팔을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어째서 움직이고 있단 말인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지만, 실제로 움직였다.
스이카는 그 쓸데없는 생각을 머릿속의 혼란과 함께 잘라냈다.
의표를 찔리긴 했지만, 이건 결판을 내기 위한 공격이 아니다.
역시, 저 오른손이 진정한 비장의 수임이 확실했다.
그 근거 없는 확신 덕분에, 몽롱해진 의식으로도 선대의 오른손을 집중하여 관찰할 수 있었다.
오른손이, 움직였다.
──왔다!
스이카는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 불상의 손처럼 쥐어진 주먹이, 심장을 노리고 자신에게 향한다.
빠르다.
지금 자신의 상태로는 피할 수 없다.
방어할 수도 없다.
어떤 위력이 담겨 있을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내기다.
스이카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저 바랐다.
노려진 심장 부분의 「밀도」를 조종하여 안개로 바꾼다.
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의 능력인 「밀도」를 조종하는 정도의 능력은 대부분 위에 있는 자신에게 옮겨갔다.
이 육체는 안개로 바뀔 수도 없으며, 거대해질 수도 없다.
하지만 「밀도」를 조종하는 능력은 이부키 스이카가 본디부터 가진 힘.
능력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한순간뿐이라면──.
그게, 몸의 극히 일부분뿐이라면──.
스이카는 그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내 승리다!」
주먹이 닿기 전에, 몸의 반쪽을 안개로 바꾸는 것에 성공한 스이카는 승리를 확신했다.
아무리 큰 위력이 담겨있다고 해봤자, 물리공격에 불과한 선대의 주먹은 이걸로 무효화될 터.
최대의 공격은 최대의 빈틈이기도 하다.
저 주먹이 안개로 변한 몸을 빠져나간 순간, 경직으로 생긴 빈틈을 노린다.
스이카는 주먹을 굳게 쥐었다.
주먹이 꽂혀들었다.
──선대의 관음보살권이.
스이카의 몸이, 저 멀리 나가떨어진다.
스이카의 몸은 땅바닥을 수차례 구르고 나서야 실이 끊긴 인형처럼 쓰러져,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등을 땅에 대고 누운 스이카의 가슴엔, 치명상이 새겨져 있었다.
선대의 주먹은, 안개가 되었음이 분명한 스이카의 심장을 꿰뚫고, 커다란 바람구멍을 내버린 것이다.
스이카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쓰러져 있을 뿐이었다.
「어……째, 서……?」
제정신을 차리니 눈에 들어온 밤하늘을 믿기지 않는 심정으로 바라보며, 스이카는 순수한 의문을 중얼거렸다.
아까 움직였던 것은 환상이었다는 듯, 다시 축 늘어진 왼팔을 감싸며 선대가 스이카를 향해 다가갔다.
「──자신의 마음을 예리하게 갈아라」
선대가 작게 중얼거렸다.
「강은 뗏목을 부술 수 없다. 물방울만이 뗏목에 구멍을 내지」
「……하핫, 뭐야? 그건……」
선대는 그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스이카는 선대의 말에 무슨 뜻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대답이야말로 자신의 의문에 대한 답이었다.
그것으로 안개로 변한 스이카를 때려날린 것이다.
역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지만, 이 인간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 넘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싸움을 시작한 이래, 몇 번이고 깨달은 것이다.
결국, 선대무녀는 이부키 스이카의 위에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결판이 난 것이다.
「……내 목을 가져」
자신의 최후임을 깨달은 스이카가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선대에게 「네가 이겼다」라는 말 만큼은 할 수 없었던, 스이카의 고집이었다.
유우기와는 다르다.
자신은 그렇게 티 없는 성격이 아니다.
아직도 지기 싫단 생각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싸울 힘은 남지 않았다.
자신이 인정할 수 없더라도, 현실은 가차 없이 결말을 강요한다.
그렇다면 입을 다문 채 죽는다.
결코 스스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설령, 그것이 아무리 보기 흉하더라도.
「거절하마」
잠시 뒤에 돌아온 자신의 예상과 다름없는 답변에 스이카가 쓴웃음을 지었다.
알고 있다.
승리라는 것에 영예를 느낄 인간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것도 그녀의 미덕 중 하나일 것이다.
그 덕에 유우기는 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냐. 하지만 난 유우기와는 다르다고?」
그렇게 중얼거린 스이카는, 자신의 마지막 힘을 쥐어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몸을 일으킴과 동시에 손날을 세워 자신의 목을 내려친다.
잘려나간 목은, 몸을 일으킬 때의 기세를 타고 선대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송곳니를 드러내며 덤벼드는 스이카의 기상천외한 행동에 의표를 찔렸음에도, 순식간에 목을 기울이며 회피를 시도하는 선대.
간신히, 목을 물어뜯기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러난 송곳니가 왼뺨을 가르고, 선대의 검은 머리칼을 반쯤 잘라낸다.
스이카의 머리가, 그대로 땅에 떨어져 굴렀다.
이번에야말로 모든 힘을 다 써버린 것이다.
땅바닥에 떨어진 스이카의 머리를, 선대가 멍하니 내려다봤다.
송곳니가 가르고 간 왼뺨의 상처는, 도려내질 정도로 깊지는 않았지만, 흘러나오는 피를 보아 그리 얕은 상처도 아니었다.
설령 낫더라도 큰 흉터가 남게 될 것이다.
「쳇……최후의 바람도 보답 받지 못 했, 나……」
「어째서……」
「말했지? 나는, 유우기랑은 달라」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눈동자로 선대를 올려보며, 스이카는 힘없이 웃었다.
「이런 꼴 보기 싫은 녀석도, 있는 법이란 말씀이야……」
그럼에도 만족스럽다는 듯한 말과 함께, 스이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곤 움직이지 않았다.
선대는 잠시동안 멍한 얼굴로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이윽고, 쓰러진 스이카의 몸과 목이 서서히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다른 분신들처럼, 본체로 돌아간 것이 아니다.
둘로 나뉘었다고는 하나, 선대와 싸운 스이카 또한 본체임이 틀림없었다.
말하자면 반신이다.
그것이 소멸했다.
반신이라곤 해도, 그것은 틀림없이 이부키 스이카라는 오니의 「죽음」이었다.
선대뿐만이 아니라, 숨을 죽이고 둘의 사투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인요들도 그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선대는 하늘을 바라봤다.
상공에선, 아직도 레이무와 스이카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지상에서의 싸움은 지금, 끝났다.
결판이라기보다도, 스이카의 죽음이라는 결과에 의해──.
갑작스레 선대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그대로 쓰러지듯 몸이 넘어간다.
그런 그녀를 부축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빠르게 달려온 것은 샤메이마루 아야였다.
아야의 팔에 부축 받으면서도, 선대는 이를 악물며 하늘 위에서 펼쳐지는 싸움을 올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