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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선대록

東方先代録


원작 |

역자 | DanteSparda

그 37 「결착」


「엄마, 괜찮아?」

 요괴퇴치를 끝내고 돌아와 홀로 상처를 치료하고 있자니, 살짝 열린 미닫이문 사이로 살그머니 날 바라보는 어린 레이무의 모습이 보였다.
 훗, 문제없다.
 레이무의 상냥함 덕분에 이제 전부 나았으니까!

 날 염려해주는 딸의 모습이 기특해 팔불출 부모 같은 텐션이 되어버렸지만, 그런 속내는 여전히 얼굴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나는 눈썹 하나 까딱 않고 레이무를 바라봤다.

「밤이 깊었다. 이만 자거라, 레이무」
「네……죄송해요」

 아니, 잠깐……그게 아닌데?
 나는 레이무가 걱정돼서 이러는 거란다?
 아직 어린 레이무의 성장에 지장이 없도록, 충분히 자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하지만 슬프게도 그런 마음이 눈곱만큼도 말투에 실리지 않아서인지, 약간 혼내는 것 같은 말투가 되어버린 것이다.

 크윽……젠장, 이 만년 기능장애를 일으키는 입 같으니! 레이무가 풀죽어버렸잖아!
 매번 있는 일이긴 하지만, 제대로 되질 않는 모녀간의 소통에 진절머리가 날 지경이다.
 레이무의 눈엔 분명 「쌀쌀맞은 어머니」로 보일 테지.

 속으로 좌절하며, 나는 어떻게든 해결해볼 심산으로 움츠러든 레이무에게 손짓했다.

「이리 와보려무나」

 내 말에 레이무는 작게 미소를 짓고는 바로 옆으로 달려왔다.
 싫다, 뭐야 이 천사.
 대체 누구 따님이지?
 내 딸입니다! 후헤헤.

「강한 요괴였어?」
「아니……」

 최근에 묘하게 내 일에 대해 흥미를 갖기 시작한 레이무의 질문에 짧게 답한다.
 이건 일부러 무뚝뚝하게 대답한 것이다.
 이번에 입은 부상은 완전히 자업자득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쿠레이의 무녀로서 요괴퇴치를 오래도록 해오며 나름 상당한 경험을 쌓았다.
 지금이야 피라미가 상대더라도 결코 방심하지 않고, 이번에 만난 적도 어김없이 그런 피라미였지만──.

 ──보기 드문 인간 형태에, 사이즈까지 인간과 비슷한 요괴였기에 「호왕」과 각종 서브미션 기술의 훈련까지 겸해서 싸우고 말았다.

 자업자득이라고 할까, 방심과 자만심 때문이구나. 피라미라지만 요괴의 공격력을 얕보고 있었어.
 카운터에 실패해서 안 맞아도 됐었을 공격을 몇 번 맞고 말았다.
 뭐, 날 죽일 생각으로 가득한 상대에게 미완성된 기술을 몇 번이고 걸려던 내가 나쁜 거긴 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머리로만 알고 있던 기술들을 실제로 단련할 수 있었다.
 이쪽도 크게 반격을 먹긴 했지만, 적의 사지를 분지르고, 마지막엔 턱 째 머리를 차서 으깨버렸다.

 후후후, 이 「호왕」만 있다면 설령 상대가 오니라 하더라도 질 것 같지 않군!
 ……정말로 오니랑 싸우는 건 절대 사양이지만 말이지.

 붕대를 다 감은 나는, 미리 탁자 위에 놓아뒀던 술병과 잔을 집어 들었다.
 술은 딱 한 잔만.
 레이무를 줍기 전부터 여태까지 해온, 요괴를 퇴치한 뒤의 의식 같은 것이다.

「……엄마, 일 끝내고 돌아오면 항상 그거 마시네」

 레이무가 불가사의하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 아이 앞에서 술을 마신 건 이보다 더 어릴 적 일인데, 그걸 전부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싫다, 뭐니 이 천재.
 대체 누구 따님이지?
 내 딸입니다! 우헤헤.

「물이야?」
「아니, 이건 술이라는 것이다」
「맛있어?」
「맛있다고 생각하는 자도 있겠지」
「어머니는?」
「그리 맛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건 내 진심이었다.
 못 마실 정도로 싫은 건 아니지만, 술의 맛이라는 걸 잘 모르겠다.
 그렇게 강한 것도 아니고, 파문의 호흡이 쉽게 흐트러지기도 하니까.
 그리고 이 술 또한 내 돈으로 사온 건 아니다.
 이 하쿠레이 신사에 봉납된 물건 중 하나다.

 원작에선 참배자가 없는 걸로 유명한 곳이긴 하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하쿠레이의 무녀로 취임한 뒤로 가끔 이런 공양물을 가져오는 사람이 늘게 되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오는 길에 요괴를 만날 수 있기에 위험해서 역시 빈도가 낮긴 하지만, 이걸로도 충분히 굉장한 일이다.

 요괴를 마구잡이로 퇴치하는 나를 두려워하는 듯, 신사에 위험한 녀석들은 다가오지 않기에 옛날보다 더 안전해지긴 했을 것이다.
 거기다, 요즘 레이무가 수행을 쌓기 시작했는데, 그 일환으로 신사 근처나 요 앞 돌계단에 연습용 결계를 마구잡이로 치고 있다.
 덕분에 이 근방 일대는 레이무의 결계가 수두룩하다. 아직 미숙하긴 하지만, 어설픈 잡요괴 수준으론 다가올 수도 없는 요새가 되어가는 중이다.

 뭐, 그런 건 참배하는 사람은 모를 테니 용감한 행동이란 건 변함없지만.
 그리고 더욱 굉장한 것은 아직 어림에도 불구하고 재능의 일각을 보이기 시작한 레이무 자신과 이 아이를 뒤에서 가르치고 있는 유카리이며, 나는 아무 상관도 없다.

 ……어머닌데 말이지.
 일단, 하쿠레이의 무녀인데.

「맛없는데, 마시는 거야?」

 멋대로 좌절중인 내 상태에도 아랑곳없이, 레이무는 어린이다운 순수한 의문을 품었다.
 나 또한 맛 이전에 부상을 당했을 때의 음주가 몸에 그리 좋지 않다는 건 안다.
 그럼에도, 나는 옛날부터 요괴퇴치 뒤의 술 한 잔을 결코 빼먹지 않았다.

「──싸운 뒤에 남은 탁한 증오를, 술로 내쫓기 위해서지」

 나는 레이무에게 대답했다.
 이 말은 어떤 만화의 등장인물인 복수에 집착하는 남자의 대사이다.
 그렇다고 만화 소재랍시고 레이무의 질문을 얼버무린 것은 아니다.
 내게도 내 나름대로 진지한 이유가 있기에 이 말을 흉내 낸 것이다.

「술로 내쫓아?」
「그래」
「증오를 남기면 안 되는 거야?」
「그래, 안 된다」

 이 세계는 게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내가 요괴를 퇴치하는 것은 점수를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괴는 악행을 저질렀기에 퇴치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내가 퇴치한 요괴는 마을과 멀리 떨어진 취락에서 환상향의 규칙을 무시하고 무차별하게 사람을 죽였다.
 먹기 위해서가 아닌, 즐기기 위해서 사람을 학살한 것이다.
 인간을 닮았기에 그런 건지, 아니면 사악하기에 사람을 닮은 건지──어느 쪽이 됐든 상관없지만, 본능이 아닌 이성으로 움직이는 만큼, 잔인하며 악랄한 요괴였다.

 아이 한 명을 남기고 일가족을 몰살.
 남겨진 아이는 마을에 보호됐지만, 그 아이의 참혹할 미래를 생각하니 가엽기 그지없다.
 그리고 이 사건을 일으킨 요괴를 향한 미움 또한──.
 나는 기술의 실험대로 썼다고 했으나, 그 속엔 적을 넝마로 만들어 찢어죽이고 싶단 칙칙한 감정 또한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요괴를 죽이는 것에 대해 아무런 저항감도 없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 한들, 말을 하고, 감정을 보이는 요괴를 죽이고 아무렇지 않을 순 없다.
 이 세계에 이름 없는 엑스트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눈앞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모니터 너머로 바라보는 것처럼 보며 평정을 유지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이미 훨씬 옛날에 체감하고, 오늘날까지 수없이 느껴온 것들.
 생명이 빼앗기고 생명을 빼앗는 일상.
 좋아하는 수행으로 나날을 덜렁이처럼 보내면서도, 사소한 때에 마주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나를 올바르게 이끌어 준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전생의 지식이었다.

「증오는, 아무것도 낳을 수 없으니까」

 이 말 또한, 같은 만화 속에서 나온 대사다.
 그러나 이런 나의 인생을 여태껏 지탱해준, 위대한 말이다.
 전생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 말을 이해했을까.
 현실감 없는 픽션에서나 들을법한 말?
 하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세계가 곧 현실인 나로선 더할 나위 없이 마음속에 파고드는 말이다.
 나는 이러한 말을 표본 삼아, 오늘을 곧게 살아갈 수 있다──.

「아무것도 낳지 못한다……」
「그렇다. 기억해두려무나, 레이무」
「응. ……네」

 레이무는 보기 드문 진지한 표정을 짓고선 씩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식 교육에도 효과적인 명언! 역시 대단하구먼!

 ……유감스럽게도 전부 도용한 거지만.
 아니, 위인의 말을 통한 교육이란 건 나름 기본적인 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머니로서 복잡하다고 할까……나도 내가 한 말로 파박! 하고 레이무를 교육해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말이지. 아니, 입이 제대로 움직이질 않는다고.
 결국, 말만 가지고 표현할 수 없는 나로선, 행동이나 그 외 기타 등등의 수단을 이용하여 소통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게 제대로 전해지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긴 하지만…….

「엄마」
「왜 그러니?」
「나도, 술 마셔보고 싶어」
「안 된다」

 말없이 뻗어진 레이무의 손에서 멀리 떼어놓듯, 나는 술잔을 들어올렸다.

「짠돌이」
「짠돌이여도 좋다」

 불만스럽다는 듯 뺨을 부풀리는 레이무의 모습에 속으로 번민하며, 강철 같은 의지와 표정으로 대답한다.
 아무리 그래도 레이무한테 술은 아직 이르다.
 하지만 원작에선 분명히 미성년자일 나이에 술을 배웠었지. 모두들 연회 같은 걸 너무 자주 열어버리니 원.
 장래에 그런 흐름에 레이무가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술맛을 배우게 할 필요성이 있으려나.
 애당초 환상향은 바깥세계의 법률 같은 거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니, 성인이란 경계선은 나이로 결정되는 게 아니지만.
 환상향에서 20살이라는 나이를 고집하는 건 나뿐인가…….

「만약, 네가 어른이……아니, 한 사람 몫을 다할 수 있는 하쿠레이의 무녀가 된다면」

 그렇게 다시금 입을 연 나는, 나를 올려다보는 레이무를 마주보며 미소 지었다.

「함께 술을 마시고 싶구나」

 내가 그렇게 말하자, 레이무는 불만스럽다는 표정에 활짝 미소가 피었다.

「응!」

 레이무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그날은 필시 머지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아주 기대되기도 하지만, 외롭기도 하다.
 레이무를 무릎 위에 앉히며, 나는 다시금 입에 술을 머금었다.







 ──상대에게 탄환을 맞히면 승리.

 탄막놀이에서의 결착이란, 결국 이것 하나뿐이다.
 물론 아름다움이나 우아함 등등이 탄막의 우열을 가르는 요건 중 하나인 이상, 그 결과에 이르기 전까지의 과정 그 자체에 중점이 놓여있긴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절대이자 유일한 규칙으로서 탄막놀이의 근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단순한 결과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을 다채롭게 만드는 것이 바로 탄막공격의 높은 자유도다.
 탄막놀이엔 크게 나누어 두 가지의 공격법이 있다.

 ──하나는, 그 이름대로 미리 준비해놓은 스펠카드를 이용한 탄막의 양으로 짓누르는 방법.
 ──또 하나는, 그 탄막을 피하며 목표를 노리고 공격하는 방법.

 관점이 다를지라도, 그 두 과정에서 아름다움이나 우아함이 평가되는 점은 같다.
 두 방법에 차이가 있다면, 각 공격법마다의 특성을 꼽을 수 있다.

 후자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피하는 것을 주체로 한 이 공격법은, 말 그대로 피하지 못하고 맞은 시점에서 끝이다.
 특히 탄막놀이에서 고의적인 살상은 금지되어 있지만, 발사된 탄환의 위력과 맞은 자의 내구성에 따라 직격은 죽음과 직결되는 경우 또한 있다.

 그런 의미 또한 포함하여, 피탄 당하는 것은 승부의 결말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움직여서 피하는 것 외에도 긴급회피 수단인 『폭탄』이라는 이름의 탄막을 무효화하는 특수한 공격법도 인정되고 있지만, 이건 그저 스펠카드를 대 탄막용으로 쓰는 것에 불과하다.
 피하면서 공격하고, 가끔 『폭탄』을 쓴다──내용에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대체적인 패턴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한편, 스펠카드를 이용한 공격법은 사용자의 능력을 탄막에 담는 것으로 다종다양한 특징을 지닌다.
 탄막의 구성, 물량, 속도, 외관──닮은 것이 있긴 하지만, 어느 것이 되든지 간에 똑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용자 자신만의 탄막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탄막을 쏘아내는 쪽이 「탄환에 맞으면 패배」라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탄막을 펼치는 데 힘과 사고를 많이 쓰는 만큼, 회피에 집중하지 못하여 다른 공격법 보다 피탄 당할 확률이 훨씬 더 높다.
 탄막놀이의 승패가 한 발의 탄환으로 결정되는 이상, 아무리 화려한 탄막을 펼치더라도 자신이 단순한 표적이 되어서야 아무 의미도 없다.

 그렇게 승부가 진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각 공격법의 명확한 우열을 피하기 위해, 이 탄막에 의한 공격법에서 「탄막을 무효화하는 것으로 막는다」는 것만은 인정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스펠카드를 사용하는 동안, 탄막처럼 각각의 카드에 설정된 방법으로 상대의 탄막을 막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마법장벽이든, 결계든, 수상쩍은 힘을 휘감든, 탄환에 직접 맞지만 않으면 된다.
 이것 또한 변칙적인 『폭탄』이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승부의 정체를 막기 위하여 제한시간이나 내구도의 한계가 반드시 설정되어 있다.
 대부분의 제한시간의 경우 스펠카드의 발동과 동시에 생겨나고, 종료에 맞춰 사라지게 설정되어 있으며 일정 수치만큼 피격 당했을 경우엔 더 이상의 방어를 할 수 없게 되어 결판이 나게 된다.
 탄막놀이로 승부를 보는 자들 사이에 명백한 실력차이가 있다고 한들, 그 차이가 절대적인 요소가 되어버리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

 ──탄막을 이용하여, 수로 압도한다.
 ──그것을 피하며, 정확한 사격으로 파고든다.

 어느 쪽이 됐든 일장일단이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자유이며, 상황에 맞추어 바꾸어도 좋다.
 지금까지 이변을 일으킨 주모자들이 그렇듯이, 강대한 힘을 가진 인외들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겸 삼아 전자의 공격법을 선택하는 경향이 짙었다.
 반대로 그런 면으로 뒤떨어지는 인간은, 탄막놀이에서 인외들을 상대할 때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다소 유리하다.
 하지만 이러한 규칙 사이에도 수많은 예외가 존재한다.
 홍무이변 이후, 환상향에 정착해나가고 있는 탄막놀이엔 이러한 원칙과 실상이 엮여져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탄막놀이에서 애용되는 이 두 가지의 공격법.
 어느 쪽을 선택하든 상관없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양쪽을 전부 선택하는 것 또한 금지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레이무와 스이카의 공중전은 계단을 오르듯 점점 격렬함을 더해갔다.
 승부 초반엔 스펠카드를 사용한 쪽이 쏟아내는 탄막을 다른 쪽이 피하며 공격하는 것의 반복.
 하지만 엄청난 물량과 밀도를 자랑하는 스이카의 탄막을 처음 접한 레이무로선 회피에 전념할 수밖에 없게 되어 생각대로 공격── 『샷』이라 불린다──을 맞힐 수 없었다.

 그러나 저쪽편도 상황은 같았다.
 오니가 지닌 폭력을 그대로 구현한 것만 같은 스이카의 탄막에 비해, 고도의 구성을 자랑하는 레이무의 탄막은 탄막놀이에 익숙하지 않은 스이카를 회피로 몰아넣었다.

 이부키 스이카를 아는 자들은 그녀의 탄막을 능히 피해내고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하쿠레이 레이무라는 인간에게 경악하고──.
 하쿠레이 레이무를 아는 자들은 그녀에게 반격할 짬조차 주지 않고 압도하는 이부키 스이카라는 요괴에게 공포를 느꼈다──.

 눈앞에 선 이 상대가 최고 수준의 적이라고 인식하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한 초전.
 탐색전이 끝나자, 스이카와 레이무는 서로가 숨기고 있던 실력을 점점 내놓기 시작했다.

 두 종류의 탄막이 번갈아 밤하늘을 메우고, 그 빛 속을 꿰뚫으며 두 인요가 난다.
 전투의 레벨이 점점 올라가며, 두 쪽 다 범상치 않은 능력과 센스로 그 뒤를 따른다.
 지상에서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하늘에서 펼쳐지는 광경에 그저 압도 될 수밖에 없었다.

 팽팽한 대립을 유지하는 전투.
 그러나 당연하게도 전황은 서서히 한편으로 기울어져가고 있었다.

「쳇……저건 반칙이잖아」

 스이카의 탄막에 둘러싸인 레이무가 듣기 드문 투정을 내뱉었다.
 주변을 둘러싸고 꾸물꾸물 움직이는 방대한 양의 광탄들 중심에 선 모습이 마치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레이무가 투정을 부린 이유는 이 탄막의 난이도 때문만이 아니었다.

 상하의 분간조차 어려울 정도로 어지러운 탄막의 미궁 속에서 무언가를 찾듯이 여기저기 눈을 돌리던 레이무가 갑작스레 뇌가 끌려가는 것만 같은 감각에 덮쳐졌다.
 그것은 몇 번이고 경험해본, 자신의 직감이 위험을 느낄 때의 감각이었다.

 레이무는 바로 그 자리에서 추락하듯 하강했다.
 그러나 도망갈 길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듯 탄막이 휘몰아쳐 길을 막는다.
 그것조차 회피하고 마는 레이무의 판단력은 이미 인외의 영역에 달해 있었으나, 회피를 한 탓에 한순간 틈이 생기는 것 까진 어쩔 수 없었다.
 바로 아까까지 레이무가 있던 곳이 어딘가에서 고속으로 날아든 『샷』이 꿰뚫고, 레이무의 회피에 따라붙듯 움직인 탄막이 레이무의 몸을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뜯겨나간 무녀복의 소매가 맹렬히 타올랐다.
 평소처럼 여유를 가지고 일부러 살짝 피해내던 때와는 다르다.
 직격은 아니었다지만, 확실한 레이무의 실수였다.

「규칙을 어기진 않았다고 생각한다만!」

 레이무가 눈을 돌려 직시한 탄막 속, 그 그림자에서 스이카가 뛰쳐나왔다.

「스펠카드도 한 장만 쓰고 있다고! 스펠카드를 한 번에 여러 개 쓰면 금지지만, 스펠카드를 사용하는 중에 시전자가 움직이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단 말씀이야!?」
「그게 가능한 네 능력이 반칙이라는 거야」
「그렇다면, 그건 칭찬으로 받아두마!」

 스이카는 대소하며 레이무를 노리고 탄막을 발사했다.
 스펠카드로 탄막을 발동한 채, 자신 또한 고속으로 하늘을 중구난방 휘젓고 다니며 예기치 못한 각도에서 레이무를 『샷』으로 노리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이 두 공격법을 섞어 쓰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다.
 하지만 본래 이런 짓은 「할 수 없어야 하는 게」 현실적이다.
 삼차원이 가진 범위와 넓이, 구성의 세밀함과 그것을 실현시킬 정밀함 등등, 탄막에 요구되는 힘과 기술은 어마어마하다.
 탄막을 사용하는 자는 자신의 능력 대부분을 그것에 할애하고 만다.
 아니, 할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중간한 능력의 행사는 탄막의 구성이나 밀도를 낮추고, 결국 상대가 공략해올 빈틈을 늘려 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탄막을 사용한다면, 상대를 확실하게 몰아치기 위한 물량과 구성을──.
 회피에 철저하다면, 탄막을 전부 피해내기 위한 극한에 다다른 집중력을──.

 어느 쪽이 됐든 한쪽에 철저하게 임하여, 그 능력을 어디까지 끌어올리느냐가 승패를 가른다.
 그것이 탄막놀이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이카는 그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선가 무한하게 솟아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방대한 힘이 담긴 탄막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샷』을 멈추지 않고 자신 또한 탄막 속에서 자유자재로 날아다닌다니.
 어딜 어떻게 봐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레이무 수준의 실력자에게조차.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알 수 없었다.
 적이 이부키 스이카니까, 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녀가 가진 「밀도」를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능력이, 탄막놀이의 규칙 안에선 정석을 뒤엎을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저 단순히 강하다.
 레이무에게 있어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강적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잖아! 뒤통수에 눈이라도 붙어있는 거냐!?」

 뒤에서 날아든 사격을 보지도 않고 피해낸 레이무의 모습에 스이카가 웃으며 말했다.
 두 가지의 공격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스이카와는 반대로, 그저 회피에만 특화된 레이무 또한 이미 평범한 수준이 아니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자기가 어디 있는지조차 잊고 말 탄막의 중심에서, 스이카의 움직임을 의식해가며 고속으로 비행하는 레이무.

 가속은 위험했으나, 감속 또한 해선 안 됐다.
 움직임을 멈추면 자신을 노린 공격에 맞고, 탄막 속을 고속으로 돌아다니다 한순간이라도 판단이 늦었다간 그대로 자멸.
 레이무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그 아슬아슬한 줄 위를 걷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레이무라도 한계는 있는 법.
 다시 스이카가 발사한 화망을 벗어나자, 바로 앞에 탄막이 나타났다.
 아주 약간의 틈밖에 없는, 벽이나 다름없는 탄막.
 범위마저 넓은 그 탄막은 지금 이 위치에서 궤도를 바꿔봤자 피할 수 없다.

 레이무는 그 순간 품속에서 부적을 꺼내들었다.

 ──령부 『몽상봉인』

 레이무를 중심으로 수많은 영력의 탄환이 소용돌이치듯이 뿜어져 나오더니, 주변의 탄막을 집어삼키며 스이카를 향해 쏘아졌다.
 공방이 역전된 상태에 아무 수도 쓰지 못한 스이카는 결국 모든 탄에 직격당하고 만다.
 하지만 스이카의 몸에 닿은 탄환은 단 한 발도 존재치 않았다.
 발동중인 스펠카드에 의해 막힌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밀도」를 조종하는 능력에 의해 전부 분해되어 무효화되고 말았다.
 역시 움직이는 도중에도 스펠카드 행사 또한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다.
 즉, 스이카를 이기기 위해선 탄막 속에 숨어 날아다니는 그녀를 파악하며, 스펠카드로 설정된 내구력이 다할 때까지 공격을 맞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궁지를 벗어났음에도, 레이무는 여러 속내를 담아 혀를 찼다.

「내가 『폭탄』을 쓰게 만들다니……!」
「멋진 얼굴인걸, 하쿠레이 레이무!」

 쉼 없이 탄막을 쏘아내던 스이카가 웃으며 말했다.
「승부를 시작했을 때도──」

 그 말 속에선 도발적인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유쾌하다는 듯한 미소만이 지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 전에 한 승부에서도──」

 스이카는 이 이변에서 서로의 적으로 처음 만난 레이무에게 친밀감마저 품고있는 듯했다.

「넌 표정 한 번 안 바뀌었었지!」
「그렇게 기뻐? 겨우 이 정도로 날 몰아세웠다고 생각하는 거야?」
「매력적이라는 말이야! 그 얼굴, 더 비뚤어지게 해주마!」
「어디 한 번 해봐!」

 레이무는 자기도 모르게 커다란 외침으로 답했다.
 지금까지 레이무는 적에게 별다른 감정을 갖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스이카의 도발을 무시할 수 없다.

 자신이, 아마 처음으로 곤경과 맞서고 있음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얼굴에서 초조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이제까지의 생애에서 처음으로 지어보는, 강대한 적을 향한 도전적인 미소가 피어 있을 뿐이었다.







「오니는 굉장하네……」

 다른 구경꾼들처럼 상공에서 펼쳐지는 수준 높은 탄막놀이를 올려보던 유유코가 중얼거렸다.
 순수한 감탄이었다.

 이부키 스이카라는 요괴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하쿠레이 레이무의 실력에 대해선 충분히 경험해보았다.
 춘설이변 때, 유유코는 레이무와 싸워 완패 당했다.
 탄막놀이에 관한 레이무의 실력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런 레이무를 상대로, 스이카는 압도적이진 않지만 확실히 우세를 점하고 있다.
 유유코가 갖고 있던 인상과 저 위에서 격렬히 싸우는 레이무의 모습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녀가 여유를 갖지 못할 정도로 몰려 있다는 증거다.

「힘들어 보이는구나, 레이무」

 이번에 흘러나온 중얼거림은 옆에 있는 친구를 향한 말이었다.
 어느새 유카리가 유유코와 함께 나란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바로 아까까지만 해도 아야 옆에서 선대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을 텐데, 그녀의 싸움이 끝나고 이곳으로 돌아온 듯하다.

 ──왜 다친 선대무녀한테 가지 않는 걸까?

 유유코는 유카리의 심경을 헤아리고, 그 일에 대해선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런가보네. 레이무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봤어」
「재밌나봐?」

 유카리의 얼굴에 피어오른 미소에, 유유코가 장난스런 말투로 물었다.

「저 애의 무뚝뚝한 얼굴은 슬슬 질렸거든」
「그건 유카리가 레이무한테 미움 받아서 그런 게 아닐까?」
「나도 저 애가 싫으니까 문제없어. 그저 스이카와의 승부를 통해, 더 많은 것들을 겉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으면 할 뿐이야」
「하지만 이변을 해결하는 하쿠레이의 무녀로선 그런 흔들림 없는 마음은 강점이라고 생각하는데」
「보고 있으면 불쾌하단 말이야」

 말과는 반대로, 유카리의 얼굴엔 밝은 미소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왜냐면, 그 무뚝뚝한 얼굴은 자기가 동경하는 어머니 흉내니까. 나는 그런 면에서 귀염성을 느낄 만큼 그 애를 좋아하지 않아」

 유카리의 대답에 유유코는 무심코 웃음소리를 흘렸다.
 확실히, 유카리가 레이무를 싫어한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귀염성」 있는 반응에 무심코 웃어버린 것이다.
 유카리가 정말로 혐오하며, 적대하는 상대에게 향하는 냉철함을 알고 있는 유유코로선, 이 두 인요의 사이는 더욱 복잡하게 꼬여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레이무 정도의 힘이 있다면 굳이 남 흉내를 내지 않아도 괜찮아. 누가 단련시켰다고 생각해?」

 ──글쎄, 그건 너랑 선대 둘 중 어느 쪽이려나?

 유유코는 굳이 그 질문을 말로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속으로 생각하며 웃을 뿐이었다.







 레이무와 스이카는 서로의 위치를 바꾸거나, 거리를 벌리고, 가끔 교차해가며 격렬한 전투를 펼치고 있었다.
 일대일의 사격전이라면 레이무의 기량과 경험이 확실하게 앞섰다.
 하지만 주변에서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탄막 전부가 레이무를 방해하는 장애물.
 전장을 아군 삼은 스이카가 레이무의 움직임을 서서히 따라잡기 시작했다.

「거기냐!」
「칫!」

 스이카의 『샷』이 레이무의 옆구리를 스쳤다.
 결과적으로 몸에 맞진 않았지만 회피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레이무의 양옆에 떠있던 음양옥 중 한 개가 피탄 당했기 때문이다.
 레이무의 『샷』이나 『폭탄』을 보조하기 위해 에너지를 저축하고 있던 음양옥은, 관통 당하는 것과 동시에 대폭발을 일으켰다.
 비행기의 연료탱크가 유폭하는 것과 같았다.

 가까운 거리에서 일어난 폭발에 튕겨나간 레이무는 몸을 반 바퀴 돌리며 허공을 춤췄다.
 크게 자세가 흐트러졌음에도 주변의 탄막을 피해가며 균형을 고쳐 잡으려는 그 센스는 비범하다는 말로도 충분치 못했다.

 하지만 실수는 실수.
 스이카의 탄환이 쉴 틈 따윈 주지 않겠다는 듯 자세가 채 잡히지 않은 레이무를 추격하고, 반대쪽에선 탄막이 날아든다.
 탄환을 피해 움직였다간 탄막에 자기 발로 돌진하는 꼴이 될 터.
 레이무는 한순간의 판단을 재촉 당했다.

「──걸렸다!」

 탄막에 돌진할 기세로 움직이는 레이무를 본 스이카의 입에서 무심코 환성이 튀어나왔다.
 저 작은 틈새를 빠져나갈 속셈인 듯하지만, 그 틈새는 당장이라도 닫히기 직전.
 저래선 자멸할 뿐이다.

 그러나 그 순간──.
 레이무의 몸이 탄막에 닿기 직전, 스이카의 스펠이 제한시간에 다다랐다.
 아슬아슬하게 탄막이 사라지고, 그 결과 텅 빈 공간에 돌입한 레이무는 스이카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회피해냈다.

「젠장……, 설마 이것까지 계산하고 있었던 거냐!?」
「흥」

 분함에 이를 가는 스이카의 질문에 레이무는 코웃음으로 답했다.
 확실히, 지금 그 판단은 우연이 아니라 노린 것이다.
 하지만 여유가 있던 것은 아니다.
 평소엔 담담하게 탄막놀이를 해내는 레이무의 얼굴에 떠오른, 작은 미소와 약간의 땀방울이 그녀의 심경을 정확하게 나타내고 있었다.

「꽤 좋은 작전이라고 생각했는데, 다 피해버릴 줄이야」
「네 스펠카드를 전부 피하는 작전도 있을 법 한걸」

 스이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땀을 닦으며 레이무가 말했다.
 상대의 스펠카드를 전부 공략하는 것 또한 예외적이지만 승부를 내는 방법 중 하나다.
 싸울 수단을 전부 써버린다면 승부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장전 끝에 판정승으로 끌고 가는 치사한 방식이긴 하지만, 이변을 끝내는 것이 목적인 레이무에게 있어서 승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스펠카드 룰로 싸우는 이상, 스이카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터였다.

「내가 널 격추하는 게 먼저일지, 네가 내게서 잘 도망치는 게 먼저일지──」

 스이카는 다시금 스펠카드를 꺼내들었다.
 물론, 카드를 무한히 준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승부의 끝은 착실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오니는 확하고 오는 깔끔한 결말을 좋아하거든!」

 스이카의 미소가, 갑작스레 사나운 짐승과도 같은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꺼내든 스펠카드를 여봐란 듯이 내미는 스이카.
 다음 탄막에 대비하여 준비하던 레이무는, 갑작스레 변화한 스이카의 분위기와 그 행동으로부터 그녀의 의도를 재빨리 알아챘다.

「굳이 싸움을 오래 끌고 가려는 귀찮은 짓을 할 생각은 없어! 이쯤에서 슬슬, 승부를 봐야 하지 않겠어!?」


 ──『백만귀야행』


「스펠카드가 아니야!?」

 스이카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탄막의 형상에 레이무가 무심코 외쳤다.
 겉만 보면 탄막이긴 하나, 그 본질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탄막의 위력이 인간 따윈 단 번에 날려버릴 만큼 높다는 점이야 그려려니 하겠지만, 문제는 그 구성이다.
 압도적인──그저 압도적인 물량이, 레이무를 포함한 주변의 공간 자체를 메우고 있다.

「언뜻 보면 피할 구멍 따윈 없어 보이는 탄막」이라는 것 정도야 지금까지 경험한 스이카의 스펠카드가 가진 특색이다.
 하지만 이 탄막은 이미 「놀이」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난 탄환의 폭풍우였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을 꼽자면, 스이카는 스펠카드를 이용하지 않았다.

 스펠카드는 그 자체로선 별 다른 힘도 없는 단순한 종이에 불과하지만, 사전에 스펠카드를 내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이 탄막에 규모나 시간 따위의 설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른다는 것과 같다.
 이래서야 단순한 무차별 제압사격이다.
 그것도, 특히나 흉악한.

 ──여기까지 와서, 룰을 버렸다고!?

 레이무는 속으로 투덜거렸지만, 지금 이래봤자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애당초 오니 동료들을 끌고 환상향을 습격한 녀석이다.
 자연스레 탄막놀이로 승부를 시작했지만, 극단적으로 말해서, 이쪽의 이치에 따를 생각이 없다면 승부의 결과 따윈 결국 무의미할 뿐이다.

『이거 참, 내가 저버렸는걸. 그럼, 이젠 서로 죽여볼까』

 같은 말을 태연하게 꺼낼 지도 모르는 상대였다.
 스이카는 승부의 방식을 바꾸었다.
 그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환상향의 이치에 따르지 않는 자들을 상대로, 이치에 따라 퇴치한다──그것이 하쿠레이의 무녀가 맡은 역할이라는 것을 레이무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잊지 않는다.
 잊을 리가 없다.

「……흥, 뭐, 마침 딱 좋아」

 작은 동요를 호흡 한 번으로 진정시킨 레이무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탄막을 바라봤다.
 도망칠 생각은 없다.
 이 싸움은 수많은 인간과 요괴들에게 보여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사람이 보고 있다──.

「하쿠레이의 무녀 앞에서 규칙을 어기는 게 어떤 의미인지──너는 본보기가 되어줘야겠어!」


 ──『몽상천생』


 스이카의 탄막에 맞서 싸우듯이, 레이무 또한 탄막을 전개했다.
 넓디넓은 마을의 상공을 통째로 가리는, 말 그대로 탄환의 막이 펼쳐진다.
 맞부딪힌 광탄이 소멸하며, 밤하늘을 무수한 섬광과 폭음으로 메운다.
 서로가 회피를 버리고 그저 온힘을 다해 상대를 압도하기 위해 펼쳐진 그것은, 이미 탄막이라기보다 빛의 해일과도 같았다.

 두 인요의 거대한 해일이 서로 부딪히고, 서로를 밀어내며, 상대의 영역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
 밤의 어둠을 완전히 지워 없애고, 지상에서 올려다보는 사람들의 눈을 멀게할 정도의 격돌이 상공에서 펼쳐지고 있다.

 탄막에 대해 탄막으로 응전해서는 안 된다는 룰은 없다.
 하지만 본래 그런 승부는 자연스레 기피당하기 일쑤였다.
 왜냐하면, 두 탄막이 서로 부딪힐 경우, 단순히 물량으로 앞서는 쪽이 상대를 압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이카의 탄막은 그런 단순한 물량으로 레이무의 탄막을 웃돌고 있었다.

 서로의 탄막이 격돌하고, 소멸하는 탄막의 틈새를 몇 발의 탄환이 돌파한다.
 채 부딪히지 않은 스이카의 탄막이다.
 그것들이 탄막의 중심에서 움직일 수 없는 레이무 본체를 노린다.
 설령 결계를 치고 있더라도 상관없다.
 스이카는 스펠카드를 사용한 탄막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니까.
 위력과 양으로 압도하여, 결계가 파괴될 때까지 계속 공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뭣이!?」

 스이카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믿어지지 않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무에 직격할 터였던 탄환이, 빗나가는 것도, 막히는 것도 아니고──육체를 「통과한」 것이다.

「그 녀석이……최후의 수단이냐!」

 힘을 더욱 짜낸 스이카가 다시금 탄막을 쏟아냈다.
 이미 물량으로는 스이카가 크게 웃돌고 있다.
 레이무의 탄막은 스이카에게 닿지 않지만, 스이카의 탄막은 레이무에게 닿는다.
 그러나 역시 잘못 본 것이 아니다.
 마치 그 자리에 있는 레이무의 육체가 환영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 몸에 맞은 탄환은 그대로 통과하고, 그대로 뒤편을 향해 사라졌다.

 ──무적인가!?

 스이카는 속으로 「설마」하는 생각을 품으면서도, 냉정하게 그 기술의 정체를 판별하려 애썼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에누리 없는 현실밖에 보이지 않는다.
 탄환은 레이무의 몸을 통과한다.
 그저 그뿐이다.
 어떤 원리도 보이지 않았다.
 흔들리지 않는 현실만이 존재했다.

 ──어이 농담이지……. 정말로 무적이라고!?

 스이카는 절망을 넘어, 기가 막혀 메마른 미소밖에 지을 수 없었다.
 저건 오니 특유의 힘으로 압도하여 찍어 누르려던 자신을 제치고 불평을 들어도 모자라다.
 짝이 없는 불합리의 구현, 딱 맞는 말이다.
 규칙에 따른 승부를 버린 자신도 자신이지만, 승부 자체에 제대로 임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상대의 철저함엔 머리가 수그러질 정도다.
 이런 불평의 장본인인 레이무는 탄막의 중심에서, 하늘에 모든 것을 맡긴 듯 눈을 감고 양팔을 펼친 채 그 어느것도 간섭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쏟아져 나오는 탄막마저도 자신의 의사가 아니라, 주변이 멋대로 만들어 내기라도 한다는 듯이, 레이무는 모든 사상으로부터 엇나가 있었다.

「이게 「하쿠레이의 무녀」의 힘이라 그거냐……!」

 이미 스이카에 남겨진 길은 두 개 뿐이다.
 패배하느냐──.
 대지를 되밀어 칠 각오로 끝까지 발버둥 치느냐──.

「망할 녀석 같으니, 결국 연장전으로 가겠다 그거지!」

 스이카는 한껏 지친 기색으로 말하며, 다시금 힘을 짜냈다.
 레이무가 인간인 이상, 능력의 행사에는 한계가 있다──그럴 터다.
 그 확실치도 않은 가능성에 걸고, 그저 자신 힘을 끝없이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서로의 생명이 전부 불타오를 때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 겨룸──.

 하지만 사태는 예상과는 달리 단번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레이무의 눈이 뜨였다.
 그것을 계기로 삼았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무슨……」

 레이무가 눈을 뜬 순간, 그녀가 뿜어내고 있던 탄막이 멈추고, 그 대신 레이무 본인이 행동을 개시했다.
 어째서 이 타이밍에 움직인 것인지, 스이카는 알 수 없었다.
 사실 이 짧은 시간이 그 무적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한계였던 건가.
 아니면, 뭔가 이길 기회를 찾아낸 것인가.
 그걸 알아채다니.
 어떻게?
 감인가.
 우연인가.

 어쨌든, 스이카에 그것을 판단할 시간은 없었다.
 레이무는 『몽상천생』을 해제하고, 스이카의 『백만귀야행』 속을 향해 스스로 뛰어들었다.
 신들린 듯한 회피운동과 함께 고속으로 비행하여, 탄막의 범위에서 빠져나가려는 레이무.
 하지만 압도적인 물량은 도망갈 길마저 물리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스이카가 손 쓸 새도 없이, 시야 저편에서 레이무의 몸이 탄막에 휩쓸리고.

 ──방심하지 마.

 스이카는, 스스로를 꾸짖었다.
 적의 실력은 여태까지 싸워온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레이무를 집어삼킨 탄막이 그 자리에서 사라져간다.

 아니나 다를까, 아직도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빛 속에서 레이무가 반격과 함께 뛰쳐나왔다.
 놀라움은 적었다.
 날아드는 광탄을 피하며, 역시 무사한 레이무의 모습을 확인하고──눈을 부릅뜨며 놀랐다.
 이번엔, 그 『기술』을 간파할 수 있었다.

「아니, 환영인가!」

 그 말에 답하듯이, 레이무의 모습은 티끌이 되어 사라지고 진실로 그 자리에 남아있던 것은 반쯤 부서진 음양옥 뿐이었다.
 스이카의 의식을 돌리기 위한 미끼였던 것이다.
 레이무가 무사할 것임은 예상했으나, 음양옥의 반격에 한순간이나마 레이무 본인이라고 착각하고 말았다.
 싸움 도중에, 적이 없는 곳으로 집중을 돌리고 말았다.
 그것은 아주 작지만, 틀림없이 파고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빈틈이었다.

​「​─​─​『​박​려​환​영​』​」​

 하쿠레이 비술의 이름을 작게 중얼거렸을 때, 레이무는 이미 아득한 하늘 위에서 스이카의 머리 위를 점하고 있었다.
 굳게 쥐어진 그 손에는, 다다미 바늘과 비슷한 크기의 봉마침이 들려 있었다.
 그것을 레이무가 판별해낸 궤도──이곳에서 스이카에게 이르기까지, 탄막들 사이로 생긴 아주 약간의 틈새를 노려서, 던졌다.
 뻗어나간 빛의 궤적이 그야말로 바늘구멍 같은 틈새를 고속으로 돌진하여, 스이카의 사각에서 그녀를 덮친다.

 하지만 스이카는 오니다.
 그 어떤 전조도 없었음에도, 스이카는 이 기습을 알아챘다.
 고개들 들어 볼 새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밀도」를 조종하는 능력을 한순간에 발휘한다.
 지척까지 다다랐던 쇠바늘이, 스이카의 눈앞에서 말 그대로 가루가 되어 분해되었다.
 이 상황에 이르러, 두 인요의 전투는 이미 싸움의 정석이나 도리를 완전히 넘어서고 있었다.

 레이무를 올려다본 스이카가 「아직 멀었다」며 대담한 미소를 띄우고──그 순간, 두 번째 바늘이 그녀의 코앞에 다다라 있었다.
 첫 번째 바늘 뒤에, 딱 붙어 있던 바늘이.

「……젠장」

 비뚤어진 미소를 지은 스이카의 이마에, 바늘이 정확히 박혀들었다.







 스이카가 용신상 옆에 성대하게 추락한 뒤, 레이무는 천천히 땅으로 내려섰다.
 잡혀있던 아이들은 이미 구출되어 각각의 가족들의 곁으로 돌아간 지 오래다.
 광장에 남아있던 것은, 레이무에게 봉인당한 채 아직도 움직이지 못하는 오니 소녀뿐이었다.
 그 소녀 또한 어느새 눈을 뜨곤, 아무 말도 없이 쓰러진 스이카를 바라봤다.
 그녀만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자들 전부가 이해하고 있었다.

 ──오니와의 결투는, 하쿠레이의 무녀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하늘과 땅, 두 곳에서 벌어진 싸움이 끝났음에도 그 누구도 소란을 떨지 않았다.
 아직 이번 이변 자체가 해결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땅에 발을 붙인 레이무가, 꿈적도 못하고 쓰러져 있는 스이카를 확인한 뒤,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꽤나 구경꾼이 늘어나 있었다.
 마을에서 벌어지던 오니퇴치가 거의 끝났음이 알려지자 마을 사람 대부분이 이 광장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포함한 인요 모두가, 레이무의 동향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쿠레이의 무녀가, 이 이변을 어떻게 종결시킬 것인가를──.

 레이무는, 사람들 사이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찾아냈다.
 지상에서의 격전을 거치고 상처투성이가 됐음에도, 아야의 부축을 받고 잠잠히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레이무는 다시 시선을 스이카에게 향했다.

「──일어서지 않을 거면, 결판이 났다고 받아들여도 되겠지?」

 레이무는 방심 없이 그녀의 동태를 살피며 소탈하게 물었다.

「몸이, 안 움직여……」

 스이카가 간신히 대답했다.
 스이카는 대자로 넘어진 채 손가락을 까딱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안개로 변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급소에 꽂힌 봉마침이, 전신의 자유를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뭐, 그런 바늘이니까. 그건 그렇다 쳐도 오니치곤 너무 시시하지 않아?」
「너무 그러지 말라고. 힘의 반은, 또 다른 내가 갖고 있으니까. 지금 내 몸은, 약간 힘이 세고 튼튼할 뿐이야」

 포기했다는 듯한 쓴웃음을 지으며, 스이카는 눈을 굴렸다.
 상처투성이인 선대무녀의 모습만이 보인다.
 만신창이긴 하지만, 그녀는 확실히 살아남았다.
 즉, 지상에서 펼쳐진 승부의 결과는 뻔했다.

「또 다른 나는, 졌나보군」

 스이카는 이제야 겨우 스스로의 반신이 「죽었음」을 깨달았다.

「신사에서 그랬던 것처럼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거 아니었어?」
「아니. 그건, 단순한 분신이 아니었어. 정말로 「또 다른 나」였다고.
 너희 둘을 얕봤다든가, 놀려고 그런 게 아니라……「나」는 온힘을 다해 「하쿠레이의 무녀」하고 싸웠어. 그리고 내 영혼의 반은 지고, 죽었지」

 스이카는 씹어 삼키듯 말했다.
 그 목소리엔 원통함이 깃들어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납득했음을 알 수 있었다.

 레이무는 묵묵히 스이카의 말을 기다렸다.
 또 다른 스이카의 승부는, 죽음에 의해 결착이 지어졌다.
 그리고 지금, 이제 다른 승부의 결착도 명확하게 끝마쳐야만 할 때가 왔다.

「……이봐, 레이무」

 스이카는 오랫동안 사귀어온 친구처럼, 거리낌 없이 레이무의 이름을 불렀다.

「왜?」
「마지막 그 기술……왜 하다가 만 거야?」
「승부를 끝내려고」
「하지만, 그대로 싸웠어도 이길 수 있었을 텐데. 그때의 넌 무적이었잖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세밀한 조정이 가능한 기술이 아니야.
 스펠카드로 만들어서 시간을 설정해두면 모를까, 진심으로 썼다간 한도 끝도 없이 발동되니까. 전력이라든가 봐준다는 잡념을 가지는 것조차 불가능한 게, 그 기술의 특징이니까」
「그러면 되잖아」

 즉, 그때 레이무는 스이카를 죽이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대로 기술을 계속 사용함으로서 확실히 찾아왔을 상대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수단을 꺼내든 것이다.
 그 말은, 결국──.

「이봐, 레이무. 너는, 나랑 싸울 때……」
「싸울 때 뭐?」
「봐준, 거냐?」

 스이카는 망설이다가, 곧 마음을 다잡고 말을 꺼냈다.

「그게 너를 죽이지 않으려고 신경을 썼냐는 의미라면──네 말이 맞아」

 레이무는 스이카의 긴장된 목소리를 아예무시하듯이, 시원스레 대답했다.

「마음에 안 들어?」
「그래, 비참한 기분인걸. 전력을 다한 결투에서 적절한 조취를 받았다는 소리가 되니까 말이지」
「응? 싸움에 진 패배자가 무슨 헛소리야? 네가 죽는 말든 딱히 상관없어. 그렇게 죽고 싶으면 나중에 자살이라도 하는 게 어때?」
「……너, 오니냐?」
「성가시네」

 말을 싹독 잘라내듯이, 레이무가 말했다.

「결투에 모든 것을 걸고,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가진 인간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아?
 평범한 인간은 평화 속에서 잃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들어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살아가고 있어. 승부에 걸려고 쌓아온 게 아니야. 그런 건, 죽자고 작정한 너희나 하면 돼」

 스이카를 포함한 오니들 전부를 향한,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비 없는 이론이었다.
 혹은, 인간이 오니와 이별한 이 새로운 시대에서 살아가는 자들의 대변인으로서 나선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스이카에겐 그렇게 들렸으며, 한마디도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지금까지 해왔듯이 강자의 오만으로 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자신은, 이미 패자다.
 아직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지만, 스이카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내 일은 요괴를 멸망시키는 게 아니야.
 이 환상향의 이치에 따르지 않는 자를, 환상향의 이치에 따라 「퇴치」하는 거지」

 레이무는 스이카 만이 아니라 주변에 모인 모든 자들에게 들으라는 듯, 확고한 의지를 담아 말했다.

「……과연. 하지만 그럼 나는 어떻게 처리할 건데? 환상향 자체를 부수려던 우리를──오니를 살린 채, 이 이변이 끝날 거라고 생각해?」

 스이카가 질문은 현실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직도 주변에 몰린 구경꾼들은 묵묵히 두 인요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모인 자들의 심경이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오니의 습격에 다친 자도 있었고, 가족이 위기에 몰렸던 자도 있었다.
 눈으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직접적인 피해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설령 실질적인 피해가 최소한으로 줄었다고 해도, 오니의 공포는 이번 사건으로 널리 퍼졌으며, 텐구처럼 미리 그 공포를 알던 자들은 다시금 그 기억을 되새겼다.

 종결이라는 말이 있다.
 하쿠레이의 무녀로서의 권한을 내세운 명령이나 지시 같은 것이 아니라, 남을 납득시킬 수 있을만한 행동이 필요했다.

「──유카리, 다른 오니는 어떻게 됐어?」

 레이무는 담담히 물었다.
 그제까지 줄곧 미소를 지은 채 상황을 확정하고 있던 유카리는, 갑작스런 질문에도 동요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손을 들어올렸다.
 그 움직임에 답하듯이, 공중에서 몇 개의 틈새가 열렸다.

 이공간 속에서 떨어져내린 것은 오니들이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무심코 비명을 내질렀지만, 정작 그 오니들은 퇴마의 부적으로 두 손이 묶여 무력화되어 있었다.
 생각대로 움직이지 못하여 땅에 엉덩방아를 찧고 신음하는 오니들 옆에, 이번엔 야쿠모 란이 살짝 내려선다.
 그 뒤를 쫓듯이 마지막으로 틈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마리사였다.

「오오, 굉장한걸. 정말로 마을이네. 너도 틈새를 쓸 수 있는 거구나」
「식신으로서 능력 사용이 허가되고 있을 때만 한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영광으로 여겨라. 본래라면 인간 따위는 유카리 님의 능력을 보는 것조차 용납 받지 못했을 테니까」

 란과 마리사를 본 유카리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자신의 식신이 명령을 완수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이런 뜻밖의 조합이 태어났을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좋은 말로도 호의적이라고 말할 순 없었지만, 이 둘 사이에선 대등한 대화가 성립하고 있었다.

「어머, 재미있는 조합이네」
「죄송합니다, 유카리 님. 오니 퇴치에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 인간의 동행을 허가했습니다」
「괜찮아. 내 의표를 찌르다니, 오히려 재미있는걸.
 고지식한 란한테 일을 맡겼는데 오니 중에서 생존자가 나올 줄은 몰랐지만, 이걸로 이유를 알 수 있었어. 네 덕분이구나, 마리사」
「아……뭐, 그렇지. 이 녀석한테 맡겨두면 문답무용으로 죽이려고 들길래, 내가 승부로 이긴 다음 얌전하게 만들었어」
「오니를 상대로 제법 대단한걸. 재검토했어」

 유카리의 순수한 칭찬에, 마리사는 부끄럽다는 듯 모자의 챙을 눌러썼다.
 옆에 선 란은 담담한 표정을 짓고 유카리만 알 수 있는 불만스러운 기색을 드러냈지만, 당연히 불평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한편 오니들은, 쓰러진 스이카의 모습을 보고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진 것이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반항의 의지가 그제야 사라지고 말았다.

「유카리, 그 녀석들을 풀어줘」

 딱 봐도 전의를 상실한 오니들은 이미 위협거리가 아니다.
 그럼에도 레이무의 판단은 위험한 것이었다.

 하지만 당사자는 그런 상황에도 아랑곳않고 스이카에게 다가가 단번에 이마에 박힌 봉마침을 뽑아냈다.
 스이카가 일어섬과 동시에 주변에서 소란이 일었지만, 유카리는 작게 어깨를 들썩이고는, 이쪽도 단번에 오니들의 봉인을 해제했다.
 오니들은 자유를 되찾았지만, 이제 와서 날뛰지는 않겠다는 듯 무거운 걸음으로 스이카의 곁에 모여들었다.

「여어, 너희들. 살아 있었구나」
「옙……두목.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전부 죽어버렸어요」
「이와구라도, 리키오도, 그 할배마저……모두, 먼저 가버렸습니다……」

 백 마리나 있던 오니들 중의 생존자는, 스이카를 포함해도 열 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조차 일생일대의 승부에서 패배한 비참한 패자들이다.
 동료의 죽음과 패배의 원통함에 눈물을 흘리는 오니들을, 스이카는 상냥히 껴안아주었다.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이지?」

 이번 이변의 주모자들 중의 생존자와.
 그들을 둘러싼 환상향의 거주자들.
 눈앞에 서있는 하쿠레이의 무녀.
 주변을 둘러보곤, 각오했다는 듯 스이카가 제자리에 털썩 앉았다.
 어떤 처벌도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유카리, 연회장은 무사해?」

 숨이 멎을 정도로 긴박한 지금 이 상황은 알 바 아니라는 듯, 레이무가 편한 목소리로 물었다.

「오니가 꽤 크게 날뛰어서 상당히 엉망진창이야」
「요리는 전멸했겠네. 그래도 술이라면 무사한 것도 있지?」
「있어. 그게 왜?」
「전부 가져와」
「흐─응……뭘 할 생각인데?」
「술을 모으면, 해야 할 건 당연히 정해져 있잖아」

 레이무는, 이 장소에 모인 사람들 모두에게 들리도록 말했다.

「연회야」

 레이무의 이 발언을 이해한 자는 적었다.
 모두가 어안이 벙벙해져선 똑같은 표정을 짓고 귀를 의심하고 있었다.
 스이카조차 예외는 아니었다.

 대화를 나눈 유카리가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짓고, 그 뒤를 따르듯 유유코가 킥킥하고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리고 아야는 부축하고 있는 선대가 작게 미소 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대체 무슨 생각이야?」

 아무리 그녀라도 동요를 숨기지 못하겠다는 듯, 스이카가 말을 꺼냈다.
 레이무는 자신의 결단에 대해서, 엄숙함이나 대쪽 같은 의지를 보이기 대신, 태연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싸운 뒤에 남는 탁한 증오를, 술로 내쫓는 거야」
「무, 뭐라고……?」
「말했잖아. 내 일은 환상향의 이치에 따르지 않는 자들을 따르게 하는 거라고.
 이변이 해결된 뒤에, 증오가 이어지는 일도, 끊어지는 일도 있어서는 안 돼. 그게 환상향의 새로운 시대의 이치야──」
「──」
「증오는, 아무것도 낳을 수 없으니까」

 한마디 말도 없이 침묵에 빠진 관중을 레이무가 휙 둘러봤다.

「이게, 하쿠레이의 무녀인 내 결정이야」

 자신의 대답에 시비를 물을 새도 없이, 그저 단언했다.
 ​누​구​에​게​도​─​─​타​인​이​나​ 선대무녀의 의견에 따른 것이 아닌, 하쿠레이 레이무가 직접 내린 결단이었다.

 반대하는 목소리는 없었다.
 물론, 각각의 마음속에선 긍정과 반발이 복잡하게 얽히고 섥히며 갈등을 일으키고 있음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이 장소의 분위기가, 반론을 용납하지 않는 방향에 흐르고 있다는 것 또한 영향을 끼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기요──!」

 적어도 침묵을 깨트린 목소리는, 레이무의 결정에 반발하지 않았다.
 말을 꺼낸 한 명의 인간에게, 모든 사람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술이라면, 당장이라도 제공할 수 있는데요」

 하타테와 함께 광장으로 온 술집의 주인인 청년이, 긴장된 표정으로, 그럼에도 어색하게 웃으며 제안을 꺼내들었다.
 그것을 계기로 다른 인요들 또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수많은 자들이, 수많은 의견을 나눈다.
 하지만 우선──이 장소의 상황을 긍정하는 분위기가 점차 감돌기 시작했다.

 레이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유카리를 보곤 기분 나쁘단 표정을 지었다.
 레이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선대를 보곤 자신 또한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마지막으로 레이무가 스이카를 내려다봤다.

「묘하게 수상한 환상향의 관리자님 가라사대 「환상향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래​」​
「……그거 참, 잔혹한 이야기인걸」
「그 잔혹한 이야기, 받아들일 생각 있어?」

 레이무의 질문에, 스이카는 쓴웃음을 지었다.
 바늘을 뽑힐 때까지 전혀 움직일 수 없었던 자신의 손을 바라보곤, 패배한 동료들을 둘러본다.
 주변은 인요들의 소란스러운 말소리로 가득하다.
 자신들, 오니를 향하는 경계심이나 의심은 아직 느껴졌다.
 하지만 더 이상 그 누구도 싸움을 염려하지는 않는다.
 오니에 대한 걱정은 이미 날아가버린 것이다.
 이미, 싸울 분위기가 아니다.

 스이카는 결착이 지어졌음을 깨달았다.

​「​─​─​「​너​희​들​」​이​,​ 이겼어」

 스이카는 체념하곤,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했다.







「어떡해! 상처가 심하잖아!?」

 레이무가 주변으로 모여든 유카리와 레밀리아, 그리고 스이카 일행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풍경 감상하듯 지켜보고 있자니,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타테였다.
 어째서인지 모미지와 함께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아─……맞아, 그랬었지.
 나, 엄청 중상이었어.
 정신이 딴 데 팔려있어서 지금까지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난 순간, 급격하게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 아파아아!
 팔 부러졌잖아, 팔!?

「아야, 너 뭘 바보처럼 멍하니 부축만 하고 있는 거야!?」
「아니, 알 리가 없잖아! 이 녀석이 아무 말도 안 하니까 그렇지!」

 갑작스레 시작된 하타테와 아야의 말다툼에도 아랑곳없이, 모미지가 묵묵히 내게 다가왔다.
 익숙한 모습으로 내 상처를 확인하기 시작하는 모미지.

「여기는 아픈가?」
「그래……」
「죽지는 않겠군」

 모미지는 냉정히 말을 끊었다.
 그리고 묻지도 않고 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위험해, 엄청 믿음직해.
 왠지 말투도 저번처럼 존댓말이 아니라 친밀하게 변했고, 남자다움이 엄청 업그레이드 됐어.
 나는 이제 모미지에게 될 대로 되란 마음으로 몸을 맡기기로 했다.

 ──아니 그것보다, 치료 받으면서 안 건데, 설마가 아니라 정말로 내 몸이 걱정돼서 달려와 준 건가.
 어느새 하타테와 아야도 말다툼을 그만두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타테는 딱 봐도 걱정스럽단 표정인걸 보니, 혹시 아야의 저 기분 나빠 보이는 표정도 그런 건가?

 좋아. 대충 받아들이자.
 과거에 있던 일 때문에 텐구들에겐 전체적으로 미움 받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렇지만도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저번에 퇴원을 축하하러 와줬던 이 셋은 나름대로 날 신경써주고 있는 듯하다.
 왠진 모르겠지만, 그 사실이 너무나도 기뻤다.

「아, 저기─……모미지? 상처, 괜찮은 거지?」
「다행히 팔의 신경까지 파괴되진 않았습니다」

 불안한 듯한 하타테의 물음에 모미지는 은근히 「다리 때 보다야 나은 상처」라는 투로 대답했다.

「그리고 설령 한쪽 팔을 쓸 수 없게 되더라도──뭐, 그뿐이다. 소란 떨 일은 아니지. 팔이 하나라도 남아 있다면 검도, 주먹도 쥘 수 있지 않나」

 뒤에 붙은 말은, 나를 향한 것이었다.
 송곳니를 내보이며 입 꼬리를 높게 말아 올려 지은 그 미소는, 흉포함과 강맹함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만 같았다.
 나를 마주보는 눈동자가 「적어도, 나라면 그렇게 한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대체 뭡니까, 모미지 씨…….
 정말, 멋져부려!
 이 말을 들으니 왠지 정말로 팔의 상처는 전혀 문제되는 일이 아닌 듯 느껴졌다.

 넋이 빠져있는 동안, 치료 또한 끝나 있었다.
 부러진 팔을 천으로 몸에 묶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한, 응급처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치료였지만, 적어도 고통은 꽤 줄어들었다.
 만족스러운 치료도구도 없는데 이렇게까지 완벽한 처치가 가능할 줄이야, 역시 모미지다.

「서둘러 제대로 된 치료를 받는 편이 좋다」
「그래. 하지만 잠깐 이곳에 남았으면 하는군」
「설마, 연회에 참여할 생각인가요?」

 내 생각을 예리하게 알아챈 듯, 아야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완전히 기막히다는 느낌인걸.
 그래도 미안.
 걱정해줘서 엄청 기쁘지만, 이번 고집만은 너그럽게 봐줬으면 해.
 주위를 둘러보니, 방관하던 사람들의 고리가 점차 줄어들고, 술이 나눠지는 등 연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술을 한 잔, 마시고 싶다」
「죽을 거예요」
「괜찮다」

 내가 웃으며 대답하자, 아야는 어깨를 들썩이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었다.
 ……역시, 정나미가 떨어진 건가?

「아……저기!」

 이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하타테가 갑자기 꺼낸 외침에 놀란 나는 그쪽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볼일……끝나면! 꼭 의사한테 가야 돼!? 꼬, 꼭 가는 거다! 꼭이야!」
「그래」
「상처가 이렇게 심하잖아! 어, 얼굴에……상처가, 남다니 , 어떡해……! 우에엥……」

 우, 울어버렸다…….
 뭔가 마음에 찔리는 게 있는 듯, 오열을 흘리기 시작한 하타테를 어찌 해야 되는 건지 헤매던 나는 아야와 모미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 오열이 구역질 소리로 변했어.
 이번엔 토하기 직전인 하타테의 등을 모미지가 말없이 쓰다듬고, 아야는 그런 그녀들을 보고 기막혀하고 있었다.

「……미안」
「아니다……」

 이윽고, 침착해진 하타테가 다시금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머리카락도, 그렇게 길고 예뻤는데」

 스이카의 공격에 반으로 잘려나간 내 머리카락을 말하는 듯했다.
 예전엔 허리까지 닿을 정도로 길었지만, 이젠 어깨까지밖에 오지 않는다.
 어중간하게 남은 부분이 있는 탓에 균형도 터무니없으리만치 맞질 않았다.
 조만간 잘라서 묶어야만 할 것이다.
 난 딱히 머리모양 같은 건 신경쓰지 않지만 말이지.
 따로 애착이 있어서 기르던 것도 아니기도 하고.
 머리카락을 지적하는 말에 무심코 머리카락에 손을 얹고 있자니, 하타테가 말없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묶은 리본 중 하나를 풀어헤쳤다.

「뒤로 돌아봐」
「뭐라고?」
「연회에 갈 거면, 조금이라도 정리해둬야지」

 들은 대로 등을 돌리자, 내 머리카락이 만져지는 감촉이 느껴졌다.
 봉두난발이 됐던 머리카락을 아까 그 리본으로 묶어주고 있는 거구나.

「그 리본, 줄게」

 다시 뒤를 돌아보자, 하타테가 얼굴에 한가득 웃음꽃을 피우곤 그렇게 말했다.

「고맙다」

 지금 마음을 잔뜩 담아 답했다.
 리본을 준 하타테 만이 아니라, 치료를 해준 모미지에게도 향한 감사다.
 정말이지, 텐구의 상냥함은 몸속 깊이 사무치는구나!
 마음속 깊이 감격의 눈물을 흘린 나는, 하타테와 모미지에게서 시선을 돌려 자연스레 아야를 돌아보았다.

「……뭔가요?」

 아니, 딱히 아야도 아무거나 해줬으면 좋겠다는 건 아니니까 말이지?
 재촉하는 시선이 아니라고.
 그냥, 무심코.

 ……진짜 왜 돌아본 거지?

「뭐, 그나저나──정말, 대단하네요. 그 이부키 스이카한테 이기다니」
「 「승리」라……」

 아야의 칭찬에 나는 말끝을 흐렸다.
 이미 시체는 사라지고 말았지만, 스이카가 쓰러져 있던 곳을 바라본다.

 그건 「승리」였던 것일까?
 적어도, 나는 스이카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다.
 물론, 봐주는 일 따윈 불가능한 진검승부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마지막 일격을 먹일 때엔 이미 무념무상이었다.
 그 뒤, 스이카가 살아있던 것은 단순한 우연이라고밖엔 설명할 수 없다.
 그 시점에서 이미 스이카가 죽었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스이카가 자기 손으로 명줄을 끊었다고 한들 결과에 큰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스이카가 죽고, 내가 살아남은 지금, 느껴지는 것은 허무함뿐이다.
 무엇하나 내세울 수 있을 만한 것이 없다.
 유우기와 싸웠을 때와는 다르다.
 내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건 정말로 나의 ​「​승​리​」​인​걸​까​─​─​.​

「승리에요. 누가 뭐라고 하든 당신이 이긴 거라고요」

 마치 내 고뇌를 읽어내기라도 한 것 같은 아야의 발언에 흠칫 놀랐다.

「훌륭해요. 정말로, 강해졌군요」

 처음으로 내게 보이는 상냥한 미소를 짓고, 아야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나는, 이 말을 기억하고 있다.
 아주 먼 옛날에도, 똑같이 말해주었다.
 그때 느꼈던 기쁨이, 지금, 마음속에서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런가.
 아야는, 인정해주는 거구나.
 아야는, 이긴 걸 칭찬해주는 거구나.
 그럼, 아무래도 좋으려나──.

「슬슬 연회준비가 끝나가나 보군요」

 이제와 승리했다는 실감을 느끼던 나는 모미지의 재촉에 소란의 중심을 향해 눈을 돌렸다.
 광장 중앙에 수많은 인요가 모여 있다.

 인간과 요괴가──.
 끝으론 바로 아까까지만 해도 싸우고 있던 적과 아군이, 모두 함께 술을 서로의 잔에 따르고, 한 장소에 모여 있다.
 물론, 그들이나 그녀들의 마음속엔 아직 온건치 못한 것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
 갑자기 화기애애한 사이가 될 순 없겠지.
 그것은 하쿠레이 신사에서 연회를 했을 때와 같다.
 하지만 이곳은 그때보다도 훨씬 크며, 훨씬 많은 것들이 충만해 있다.
 이곳에, 모여 있다.

「굉장한 광경이로군……」

 나는, 누구에게 말하는 건지 모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 광경의 중심에는 레이무가 있었다.
 옆에는 승부를 펼쳤음이 분명한 스이카가 있다.
 내 옆에는 없는 스이카가, 레이무의 옆에는 남아있다.
 어느 쪽이 올바르단 생각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 아이는, 내가 하지 못한 것을 이루어냈다.

 그런가.
 이 광경은, 저 아이가 만들었구나.
 하하, 레이무가 말했던 그 대사.
 사실 만화에서 나온 거라는 걸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기막히단 표정을 지으려나?

 하지만 좋은 말이다.
 나는, 그 말 덕분에 올곧게 살아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내 아이에게도 가르쳐주었다.

 내가 가르쳐준 걸 여태껏 기억하고 있어줬구나.
 그걸 양식으로,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었어.
 부모다운 일,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라는 건, 알아볼 새도 없이 커버리는 거구나.
 마을에 오기 전에 아야에게 들은 말이, 어째선지 갑자기 생각났다.

 ……왠지 묘하게, 시야가 흐릿해졌다.
 이상하다, 눈과 코 안쪽이 뜨겁다.
 부러진 팔을 쑤셔오는 고통과는 다른 뜨거움.
 가슴이 아프다.
 이것도 상처 때문이 아니다.
 몸의 아픔 따윈, 이 아픔에 비하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 느낌은 뭘까?
 감동일까.
 외로움일까.
 제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잘 표현할 수 없지만, 딱 하나…….

 ──레이무. 넌, 내 자랑스러운 딸이다.







「굉장한 광경이로군……」
「그렇네요」

 맞장구를 치며, 아야는 살그머니 선대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목소리에 살짝 섞인 떨림에서 예상한대로,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자기 자신조차 우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듯, 말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처음으로 보는 선대무녀의 눈물에, 아야는 크게 놀라지 않았다.
 기자로서의 본분에 호기심어린 시선을 향하지도 않았다.
 그저 입을 다문 채, 아야는 선대와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모인 사람들 전부에게 술이 돌아간 듯했다.

 연회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은, 하쿠레이 레이무라는 한 명의 무녀.

「너는, 내 자랑스러운 딸이다……」

 선대는 아야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느 누구에게 말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멍한 눈빛으로 소란을 지켜볼 뿐이었다.
 혹시 말을 했다는 것마저 알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야는 그 시선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말은, 본인한테 직접 말하는 게 어떤가요」

 아야는 말했다.

「부모한테 칭찬 받는 걸 기뻐하지 않는 아이는 없어요」

 그렇게 말하며, 살포시 등을 밀었다.







 어느새 주변으로 모여든 수많은 인간과 요괴가 서로에게 잔을 나눠주고 있었다.
 서로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도 있고, 어색하게 눈치를 살피며 술병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나 눈에 띄는 거체를 자랑하는 천마가 텐구를 대표하여 오니들에게 잔을 돌렸다.
 오니들은 당황하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였다.
 아직, 이 상황에 대한 혼란이 사라지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그건 크든 작든 모두가 똑같았다.
 어째서 자신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 술판을 벌이고 있는 건지,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의문투성이다.
 수많은 자들이, 독촉 받는 대로 술잔을 받을 뿐이었다.

 그 의문을 웃음으로 무마하는 자들 또한 있었다.
 불손한 미소를 지은 레밀리아가 스이카와 마주하고 무어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리 우호적으로 보이진 않는 태도이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절친한 악우가 서로 장난하는 것 같은 편안함이 느껴지는 광경이었다.
 치르노가 겁도 없이 덩치가 커다란 오니를 향해 뭐라고 소리치고, 그런 치르노에게 케이네 일행이 충고를 주고 있다.

 그런 소란스러운 광경을 저 멀리서 바라보는 자도 있었다.
 조심스레 내밀어진 잔을 유카가 한 손으로 받았다.
 그 시선이 누굴 향하고,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일단, 기분이 나빠 보이진 않았다.

 ──마을 중심에서 갑작스레 시작된 연회.
 ──그 중심에서 연회의 주최자인 레이무가 홀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누군지 모를 사람에게 받은 술 한 잔과, 반대쪽 손에 또 다른 술 한 잔이 들려있다.
 아직 그 누구도 술에 입을 대지 않았다.
 누군가가 연회의 축사나, 건배 선창을 계획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마치 미리 짜놓은 것처럼 무언가를 기다렸다.

 천천히 누군가를 찾아 눈을 굴리던 레이무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인물을 보곤 그대로 멈췄다.
 눈이 마주쳤다.
 옷은 여기저기 찢어진데다 잔뜩 더러워져 있었고, 얼굴에는 심한 상처가 새겨져 있었으며, 머리카락까지 거칠게 잘려나가 어깨까지밖에 닿지 않는 흉한 몰골이었지만, 레이무는 한 눈에 그게 누구인지 알아봤다.

「어머니──」

 어머니의 몸을 염려하는 마음보다도, 기쁨이 앞섰다.
 무리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눈앞의 어머니 또한, 기쁘다는 듯 웃고 있었으니에.
 어머니는, 다치지 않은 쪽 손을 내밀었다.

「술을 다오」
「응」
「싸운 다음엔, 증오를 내쫓아야 하는 법이지」
「한 입만 마셔. 상처가 덧날거야」
「운치 없는 말 마라」
「운치 없어도 괜찮아」

 일찍이 어린 시절의 추억을 흉내 내듯, 레이무는 잔을 쥔 손을 어머니의 손에서 멀리 떨어트렸다.

「한입만이야」
「……알겠다. 딱 한입만 마시마」
「좋아」

 레이무가 다시 술잔을 돌려주었다.
 이것으로 연회의 마지막 준비가 완료됐다.
 이미 주변의 참가자들 모두가 손에 술잔을 들고 있다.
 레이무는 어머니와 함께, 마지막으로 확인하듯 주변을 둘러봤다.
 그 다음, 둘이서 서로를 마주봤다.

「함께 술을 마시는 건 처음이네」
「항상, 기대해왔다」

 일부러 옛날 일을 말로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레이무는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붉어진 얼굴로, 수줍다는 듯 작게 미소 지은 어머니가 다음에 꺼낼 말을 기다렸다.

「──제몫을 하게 됐구나, 레이무」

 생긋 웃은 레이무는 잔을 내세우고는, 이 연회 최초의 술을 어머니와 함께 들이켰다.







 연회가 시작되었다.
 아마 새벽녘이 올 때까지의 짧은 순간.
 요리도 없이, 그저 술잔만을 한 손에 들고.
 한 자리에 모인 자들은 싸움에 상처입고, 옷도 넝마가 되어 더러웠으며, 마을의 거주자 중에선 심야라는 시간 탓인지 잠옷을 입고 있는 사람 또한 있었다.
 소란통에 이끌려 새로이 이곳을 찾아온 자가 있자면, 떠난 자들 또한 있다.
 인간과 요괴가 한데 뒤섞여, 서로서로가 다른 생각과, 복잡한 마음을 품고──.

 하지만 함께.
 이 달빛 아래, 한 장소에 함께 모였다.

 연회가, 시작되었다. 



역자후기

으음....

동방 팬픽 주제에 동방 느낌이 나서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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