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38 「환상향」
「한자리에 모인 꿈, 환상, 그리고 백귀야행」
선대무녀가 금기의 땅인 지저에서 해냈다고 일컬어지는 「오니퇴치」 일화는 지금도 새록새록 하다.
그때엔 선대무녀가 직접 갔던 그곳에서, 이번엔 오니가 지상으로 올라왔다. (오니의 두려움은 본 신문의 지난 호를 참조해주길 바란다)
거기다 그들의 목적은 지금 환상향에서 적응해가고 있는 「스펠카드 룰」을 완전히 무시한, 직접적인 침공이었던 것이다.
백 마리의 오니떼가 한 곳에 모여 닥친 긴급사태에, 하쿠레이의 무녀뿐만이 아니라, 현역에서 물러난 선대무녀와 환상향의 관리자인 야쿠모 유카리 본인을 포함한 수많은 요괴들이 총출동하여 맞서 싸우게 되었다.
이 전대미문의 대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선대무녀를 따라 신문의 집필을 위하여, 본 기자도 용기를 내고 위험한 현장으로 함께 동행하였다.
그곳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던 것은 오니들의 우두머리 「이부키스이카」와 하쿠레이의 무녀들 사이의 장렬한 결투였다.
엄청난 싸움 끝에 승리를 거둔 것은 하쿠레이의 무녀.(자세한 사항은 후술된 기사를 참조)
그 후, 당당히 이부키 스이카를 탄막놀이로 물리친 당대 하쿠레이의 무녀인 「하쿠레이 레이무」에 의해서, 살아남은 오니들과 지상 세력 간의 화평이 제시되었다.
오니와 인요가 한데 뒤섞인 거대한 연회가 마을에서 개최된 것이다.
단 하룻밤의 꿈만 같았던 연회는, 수많은 양상을 낳으며 새벽까지 이어졌다.
이 기사는, 당시 그 모든 것들의 모습을 상세히 서술한 것이다──.
──「붕붕마루 신문」 일부 발췌.
◆
마리사는 한 번 심호흡을 하고는, 각오를 굳혔다.
주변은 이미 소란스러운 수다로 한껏 달아오르고 있었다.
낯이 익는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다.
하지만 지금 마리사의 눈에 비춰지고 있는 건 오로지 한 명뿐이었다.
레이무가 있다.
이 연회를 개최한 장본인 주제에 자긴 소란스러운 일엔 관심 없다는 듯 용신상에 등을 기댄 채 축 늘어져선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인간과 요괴가 한자리에 모인 환상향의 이치를 작게 옮겨놓은 것 같은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 듯 보이는 건, 역시 너무 과한 생각일까?
지금부터 그런 레이무의 앞으로 다가가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기를 하며 「어이」라고 말을 거는 것──.
그걸로 끝인 일에, 왠지 모르게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
──맞아, 긴장할 필요는 없어, 거북해할 필요도 없어.
──왜냐면, 나는 오니도 쓰러트린 여자니까.
──이건 어지간한 인간은 꿈도 못 꿀 일이야.
──그러니까 가슴을 피고 당당하게 굴면 돼.
왜 「그러니까」인 건지, 마리사 자신도 자신의 의중을 알지 못했지만, 의문을 가지진 않았다.
레이무에게 다가갈수록, 날뛰는 감정만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이상했다.
그렇게 망설였었는데, 지금은 얼른 레이무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이」
마리사는 술이 들어찬 술잔을 한 손으로 들고선, 털털한 태도로 레이무에게 말을 걸었다.
「화려하게 저질렀구나」
「그러는 마리사 넌. 설마 오니랑 승부해서 이길 줄은 몰랐어」
「후후, 다시 봤어?」
「응, 꽤」
「나를 약해빠진 녀석이라고 생각했지?」
「맞아」
「하지만 이젠 다시 보이지?」
「다시 보여」
「좋아, 봐주마」
「아니, 뭘?」
레이무의 질문에 대한 대답도 없이, 마리사는 마음속으로 더할나위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너도 대단한 일을 했네」
「그게 일이니까」
「일이라……그럼, 재밌진 않았던 거야?」
「재미?」
「탄막놀이 말이야. 일로 놀아선 안 돼, 같은 생각을 할 만큼 성실한 것도 아니잖아?」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그러니까, 그 이부키 스이카라는 오니랑 했던 탄막놀이는, 재밌었냐고 묻고 싶은 거라고」
레이무는 마리사가 왜 그런 것에 대해 신경 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지만, 레이무는 솔직히 대답했다.
「뭐, 긴장감은 있었네. 나름, 재밌었어」
「……그래. 「나름」이라」
「왜 좋아하는 건데?」
「응. 아니, 「나름」 재밌는 것보다 「제법」 재밌는 게 더 좋은 거잖아」
「?」
「내가 이겼어」
「뭐가?」
「이쪽 이야기」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해하는 레이무의 어깨를 스스럼없이 두드린 마리사는 미소를 지은 채 떠나갔다.
뭔가 만족스럽다는 건 알겠지만, 왜 온 건지를 알 수 없다.
마리사는 의기양양한 모습 그대로 레밀리아 일행 사이에 끼어들었다.
처음으로 남의 페이스에 말려들어갔다는 당황스러움을 느끼며, 레이무는 마리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
「어라아, 마리사잖아! 잘 마시고 있어~!?」
「……거하게 취했는걸, 이거」
한 손에 술잔을 쥐고 쾌활하게 웃는 메이링을 보며, 마리사는 쓴웃음 지었다.
평소에도 밝은 성격이긴 하지만, 저렇게 들뜬 모습은 솔직히 말해 비정상적이다.
취기가 인격을 파괴하는 전형적인 예시를 본 마리사는, 똑같이 쓴웃음을 지으며 메이링을 지켜보는 사쿠야 일행에게 다가갔다.
「저 녀석, 술 약한 거야?」
「아니. 그냥 과음했을 뿐이야」
「절도를 지킬 줄 아는 성실한 문지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자제하지 못할 정도로 마실 이유라도 있었어? 설마 아가씨가 억지로 먹인 건 아니겠지?」
「듣기 안 좋은 소리는 그만둬」
사쿠야를 대신하여 레밀리아가 대답했다.
대부분 일본주를 들이키는 연회 속에서 홀로 하쿠레이 신사로부터 공주한 와인을 와인잔에 따라 마시는 그녀.
우아하게 서서 술잔을 기울이는 그 모습은 마치 지체 높으신 분들의 파티에 참석한 고귀한 아가씨처럼 보였으나, 이 장소에선 그저 튀고 있을 뿐이었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것 같아. 술을 마시기 전부터 묘하게 들떠 있었거든」
「대부분, 선대와 관련된 일이겠지만 말이지」
사쿠야와 레밀리아의 설명에 마리사는 다시금 메이링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번엔 파츄리에게 엉겨 붙어 있었다.
정작 파츄리는 한번쯤 어울려줄 생각인 듯, 술이 들어찬 잔을 들고 있긴 했지만, 역시 그렇게 많이 마신 것 같진 않은 듯 했다.
거의 멀쩡한 얼굴로 메이링에게서 풍기는 술 냄새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솜씨 좋게 메이링의 눈 밖으로 벗어난 소악마는 능글맞은 얼굴로 그 둘의 대화를 지켜본다.
「양손은 상처투성이였지만 말이죠」
「자기가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싸웠던 거겠지」
걱정스럽다는 사쿠야와는 반대로, 레밀리아의 말투는 담담할 뿐이었다.
확실히, 메이링은 몸 곳곳엔 생채나 멍이 잔뜩 들어 있었고, 특히 두 손은 손가락 끝까지 붕대가 둘둘 감겨있었다.
사쿠야가 치료한 흔적일 것이다.
붕대엔 피가 스며들어 있는데다가 손가락이 부러지기라도 한 건지 잔을 쥔 모습도 어딘가 어색했다.
사쿠야가 걱정할 정도의 상처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 본인은 상처 따윈 조금도 아프지 않다는 듯 너털웃음을 짓고 있었지만.
「……잘 알지」
마리사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오른쪽 귀를 매만졌다.
붕대로 고정된 천의 감촉.
이건 란이 치료해준 흔적이다.
상냥함 따윈 눈곱만큼도 없는 손놀림이었지만, 정확하고 빨랐다.
「부상당한 거야, 마리사?」
「응, 명예의 부상이라고」
염려스러운 기미를 보이는 사쿠야의 말에, 마리사는 웃음과 함께 답했다.
「아마, 메이링도 같을 거야」
「……그렇구나. 그럼 다행이네」
「그래」
「다음에 차라도 마시면서 이야기해줘」
「물론이지. 꼭 놀러가겠다구」
「응, 기다릴게」
「사쿠야」
「왜?」
「고마워」
「천만에」
마리사와 사쿠야는 서로를 마주보며 자연스레 미소를 지었다.
신사에서 손을 뿌리치듯 헤어졌을 때에 보였던 어색함은, 더 이상 엿볼 수 없었다.
이번 이변에선 꽤나 아픈 꼴을 봤지만, 그 대신 응어리져있던 수많은 문제들이 해결됐다.
그 점에 대해선 오히려 감사하고 있을 정도다.
마리사의 입장에선 이 연회에서 특히나 들뜬 메이링의 마음을 잘 알 수 있었다.
「……왠지, 묘하게 찬밥 신세네」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는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레밀리아는 낙담스런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시선을 돌려보니, 파츄리에게 키스를 하려던 메이링이 어디선가 꺼내든 두꺼운 마도서에 얻어 맞고 있었다.
기막힌 광경이긴 했지만 자연스레 미소를 지은 레밀리아는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홍마관의 멤버 중에서 유일하게 플랑도르만이 이 자리에 없었다.
그녀가 어디로 갔는지는, 물론 알고 있었다.
◆
「우으─, 맛 이상해……」
「너한테 술은 백년은 일러! 이거나 마셔!」
「나도 와인이라면 마실 수 있는걸! ……이거 맛있어!」
치르노에게 받은 쥬스를 마신 플랑도르의 눈이 반짝이며 안색이 단번에 바뀌었다.
쥬스라고 해봤자 사과를 갈아서 걸러낸 과즙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음료도 이 둘의 입맛에는 잘 맞는 듯했다.
어린아이다운 미소를 짓는 플랑도르와 어째선지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이는 치르노를 따스한 미소와 함께 바라보며, 모코우가 살며시 마시다 만 술잔을 챙겨들었다.
선대가 한입만 마시고 놔둔 것을 플랑도르가 정리하겠다고 나섰다가, 결국 마시지 못한 것이다.
「역시 내가 마시도록 하마」
「안 돼, 사부. 지금도 물 말고 약을 마셔줬으면 할 정도라고」
모코우가 옆에 앉은 선대에게 답했다.
여기저기 둘둘 말린 붕대와 흉터들이 아파보였지만, 정작 걱정은 모코우를 포함한 지인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 당장 영원정에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본인의 바람을 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곳에 선대가 있음으로 만끽하는 기쁨 또한 가득하다.
용태가 비교적 나은 편임을 확인했기에 모코우는 걱정을 접어두고, 순순히 연회를 즐겼다.
「그 물을 다 마시면 제대로 된 의사한테 가는 거다? 그렇게 격렬하게 싸웠잖아」
「보고 있었던 건가?」
「물론이지. 난 제자니까」
모코우와 그 주변에 모인 일행은, 선대와 스이카의 사투를 끝까지 지켜본 소수의 목격자들 중 일부였다.
그 외에도 바로 방금 벌어졌던 싸움으로 지쳤을 선대의 몸을 염려하여, 그리고 하쿠레이의 무녀로서의 책임을 다하여 준 것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마을의 주민이 여럿 찾아왔었다.
모두가 현역 시절의 선대를 아는, 지금은 늙은 주민들이었다.
격동의 시대를 선대무녀와 함께 이겨내 온 주민들.
그들은 늙은 몸을 가족에게 맡기고 연회에서 앞서 퇴장했다.
훌륭히 한 명의 인간으로서 가정을 만들어, 오늘날까지 살아왔음을 선대에게 감사하는 그들.
선대 하쿠레이의 무녀를 향한 그들의 믿음은, 그들의 대에서 끊어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대신, 오늘밤 하쿠레이 레이무라는 새로운 하쿠레이의 무녀가 그 자손들에게 인정받았다.
경사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모코우는 그런 이 날을 축하하는 마음과 비견될 만큼, 오늘밤 선대가 보여준 싸움을 잊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옛 시대와 함께 자취를 감추는 자들의 감사와, 지금부터 올 새로운 시대와 함께 살아갈 자들의 감사──이 둘이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훌륭한 일일 것이다.
모코우는, 자신이 봉래인이라는 사실에 처음으로 감사했다.
「특히 마지막 일격, 굉장했어. 안개로 변한 오니의 몸을 꿰뚫다니」
「모코우도 머지않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말로?」
「극에 이른다면, 말이지. 그건 「천심」 맞지?」
옆에서 끼어든 테위가 모코우가 들고 있던 잔을 갑작스레 앗아갔다.
그리고는 잔에 담긴 술을 한 모금 들이키더니, 푸하─하고 술 냄새로 찌든 숨을 내뱉었다.
겉모습은 어엿한 소녀이지만, 묘한 관록이 엿보이는 행동이었다.
「아는 거야, 테위!?」
「음. 그때 선대가 쓴 기술은──」
「아니, 해설은 됐어」
「에에, 자세하게 설명해주려 했는데」
「너 가끔 말을 지어내잖아. 지금 또 대충 거짓말로 둘러댈 생각이었지?」
「응. 뻥이야 토깽」
테위는 기죽지도 않고 개구진 웃음을 지으며 혀를 낼름 내밀었다.
「테위 넌 여기 있어도 되는 거냐?」
연회에 참여하지 않은 영원정의 주민들이 걸리는 듯 모코우가 물었다.
「괜찮지 않을까? 딱히 가족 같은 것도 아니고. 사실 고향부터 다르거든」
「쌀쌀맞은 녀석일세. 카구야네 동료 아니었어?」
「동료의식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이쪽도 마찬가진걸」
「흐응, 그럼 넌 카구야 녀석들보다 우리랑 있는 게 낫다는 거야?」
「물론이지. 너희들을 좋아하니까」
「──」
「얼굴 빨개졌어」
「안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저기, 모코우. 설마……우는 거야!?」
「아, 안 울어! 놀리지 말라고!」
「미안해, 나 거짓말 같은 건 못하는 성격이라」
「거짓말 마!」
모코우와 테위의 대화를 미소와 함께 지켜보고 있던 선대가, 눈을 힐끔거렸다.
아까부터 계속 시야 한구석에 비춰서 신경 쓰이던 무언가가 있었다.
등을 돌린 채 웅크려 앉은 케이네였다.
두 손을 써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숨기고 있긴 했지만, 손가락 사이로 튀어나온 뿔과 무엇보다 중요한 엉덩이에서 뻗어나온 꼬리를 전혀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본인이 진지하다는 것은 뼈저리게 느껴졌기에, 말을 걸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기 말이지」
「관둬라, 내게 말 걸지 마라!」
「진심으로 숨을 생가기면, 역사를 먹어치울 각오로 하는 게 어떨까」
모코우 놀리기에 질린 듯, 말을 돌린 테위가 기막히단 느낌으로 말을 건넸다.
「어째서, 숨으려 하는 건가?」
선대가 물었지만, 케이네는 등을 돌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쥬스를 다 마신 치르노와 플랑도르가 껴안길 기세로 달려들었다.
「케─네는 스승한테 지금 모습을 보여주기 싫대!」
「그러고 보니, 케─네 선생님, 저번이랑 생긴 게 달라졌네? 왜 그런 거야?」
「케─네는 말이지, 보름달이 뜨면 변신해서 강해진다구!」
「대단해! 꼭 우리랑 같은 흡혈귀 같아!」
「게다가 멋있기도 하잖아!」
「응! 저 뿔, 멋있어!」
「뭐하러 감추는 거야?」
「그래, 안 감춰도 돼!」
구멍을 낼 기세로 바라보는 순진무구한 두 아이의 시선에, 케이네가 어깨를 떨었다.
「──있잖아」
「정말로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 케이네」
「……하지만, 말이다」
테위와 모코우의 재촉에 못이긴 듯, 케이네가 조심스레 어깨너머로 고개를 돌린다.
하지만 자신을 내려다보는 선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얼굴을 붉히며 그대로 푹 수그린다.
「왜 눈을 돌리는 거지? 케이네」
「부, 부끄러워서 그런 겁니다! 당신에겐, 이 괴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반인반수라는 사실도, 보름달이 뜨면 변신한다는 것도, 케이네 네가 직접 말해주지 않았나」
「말하는 것과, 직접 보는 건 다른 겁니다. 이런, 보기 흉한 모습을 보이다니……」
「그렇지 않다」
점점 의기소침해져 목소리가 작아진 케이네의 어깨를 잡은 선대가, 약간 힘을 써서 억지로 케이네의 시선을 돌렸다.
「케이네 넌, 지금도 아름답다」
선대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시선을 돌리자마자, 존경하는 인물의 늠름한 얼굴과 올곧은 시선을 마주본 채, 귓가에 속삭이듯 들려온 말.
말의 뜻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시간을 할애했으나, 이윽고 케이네의 정지된 사고가 다시 움직임과 동시에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졌다.
입을 뻐끔거리며, 말문이 막힌 입으로 어떻게든 목소리를 내려고 필사적인 시도를 거듭했다.
단순한 기쁨도, 부끄러움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지극히 감동했다는 표정이었다.
「아……감사, 합니다」
이윽고 케이네는 겨우겨우 그렇게 대답했다.
표정도 어느 정도 고쳐져 있었다.
야무지지 못하게 넋이 빠진 미소였지만 말이다.
「……모코우 공」
「왜 그러신가, 테위 공」
「그대의 벗. 저건 진성이 아니오이까?」
「그럴지도 모르겠구려. 사부님을 향한 존경심이 평범치 않다는 것쯤이야 알았소만」
「동성애는 비생산적이지 않소이까. 서당의 교사로서, 도덕적인 입장에서 볼 때에 어떨까 싶구려」
「……너네 약사한테 부탁해서 성별을 바꿀 수 있는 약 같은 걸 만들어달라고 할 순 없을까?」
「남성기를 만들어내는 약은 본 적 있는데」
「정말? 그럼 문제 해결이네」
「아니, 그렇게 돼면 이번엔 어느 쪽이 마시느냐는 문제가──」
「어이, 너희들!!」
케이네가 테위와 모코우의 멱살을 잡더니, 강렬한 박치기를 한 방씩 박아 넣었다.
백택의 신체능력은 겉치례가 아닌 듯, 엄청난 소리가 그 둘의 두개골에서 울려 퍼졌다.
「아이도 있다, 아무리 농담이라도 입을 조심해라!」
케이네가 엄히 혼냈지만, 이미 테위와 모코우는 기절한 지 오래였다.
농담이라고 말하긴 했어도, 얼굴은 붉어질 대로 붉어져 있었다.
거기다 그 둘의 속삭임을 들은 것은, 변신한 덕에 오감이 예민해진 케이네 뿐이었기에, 치르노와 플랑도르는 이상하단 표정으로 그런 소동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축 늘어진 테위와 모코우를 던져버린 케이네는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다시 선대를 마주보았다.
당연히 선대에게도 그 둘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만약, 그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이기라도 했다간, 자신은 자살했었을 것이라며 케이네는 몰래 안심하고 있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전 이제 두 번 다시, 이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런데, 선대님. 이제 몸을 쉬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만」
「알고 있다. 나중에 유카리에게 영원정까지 마중을 부탁할까 한다」
「아직 볼일이라도 남으신 겁니까?」
「그래, 하나 남았지」
그렇게 대답한 선대가 고개를 돌린다.
그런 선대의 시선을 쫓은 케이네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다녀오마. 다음에 다시, 마을에서 만나자」
「──조심하십시오」
떠나가는 선대를, 케이네가 염려스럽단 표정으로 전송했다.
선대의 발걸음이 향하는 그곳엔, 카자미 유카가 있었다.
◆
유카는 빈 술잔을 들고 손 위에서 놀리고 있었다.
술은 이미 마신 지 오래다.
주변의 소란에 낄 생각도 없고, 다른 인요와 친해질 생각 또한 없다.
──그러면서, 왜 난 여기 있는 거지?
답이 나오지 않는 스스로를 향한 자문은, 결국 하나의 답으로 귀종하고 있었다.
그건 결코──자신을 향해 비틀비틀 다가오는 얼간이를 기다리고 있던 건 아니다, 라는 것을.
빈 잔에 시선을 떨구며, 그 겉면으로 비춰지는 선대의 모습을 유카 못 본 척 무시했다.
「유카」
선대의 말에, 이제야 눈치챘다는 시늉을 하며 유카가 고개를 들었다.
「팔은 괜찮나?」
「네가 할 말은 아니어 보이는걸」
유카가 코웃음 쳤다.
기이하게도, 서로가 한쪽 팔에 부상을 입었다.
──만약, 지금 싸운다면 5분이 한계려나.
문득 떠오른 생각에, 유카는 속으로 기막히단 듯 웃었다.
딱히 웃길 정도로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자신이 가장 우선시해야 할 목적은, 선대와 싸워서 이기는 것이기에.
지금까지 잔뜩 무마된 만큼, 싸울 기회가 온다면 그때가 어떤 순간이든 환영이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무척 아쉽단 마음이 들기에 어쩔 수 없을 뿐이었다.
「이겼네」
유카는 스스로 화제를 돌리려는 듯, 이부키 스이카와의 싸움을 언급했다.
「본 건가」
「그래. 그 다음엔 한가해서 네 딸의 싸움도 봤어」
「어땠지?」
「딱히 드는 생각은 없어. 네 딸한테 흥미는 없으니까」
「그런가」
「뭐야? 자기 딸을 나랑 싸우게 만들고 싶은 거야?」
「아니……유카 넌, 지금도 나와 싸우고 싶나?」
「당연하지」
이제 와 무슨 소리야, 라며 유카는 낙담스런 표정으로 답했다.
그 결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눈곱만큼도 약해지지 않았다.
지금은 흥이 나지 않는다지만, 만약 싸울 수 있는 상황이 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스펠카드 룰 따윈 알 바가 아니다.
공교롭게도 레이무가 각오와 행동으로 내보인 환상향의 이치는, 이 꽃의 요괴에게만큼은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대답을 듣고 입을 다문 선대의 의중을 헤아리지 못한 유카는 의아하단 시선을 향한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알겠다. 그렇다면 싸우도록 하지」
선대의 입에서 튀어나온 예상하지 못한 말에, 유카는 눈이 부릅떠졌다.
「……뭐?」
한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토록 자신의 도발을 흘려듣고, 계속 도망치기만 하던 선대가 「싸우자」고 한 것이다.
농담──이라고 의심할 만큼, 유카는 눈앞의 인간을 얕보진 않았다.
뭣보다도,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 속에서 자신 또한 잘 아는 것이 빛나고 있었다.
흔들림 없는 의지의 빛이.
「탄막놀이로, 말이야?」
「아니. 진검승부다」
「이부키 스이카랑 싸운 것처럼?」
「그렇다. 스이카와의 싸움과 같은 싸움이다」
「──」
「그걸 바라는 것 아니었나?」
유카는 몰래 침을 삼켰다.
「맞아」
선대가 진심이란 것을 깨닫자마자, 그 말이 천천히 온몸으로 울려 퍼졌다.
그 한마디를 자기도 모르게 떨리는 목소리로 되새기는 유카.
「그 말대로야」
뭔가가 몸속에서부터 솟구쳤다.
그것이 온몸을 서서히 떨리게 했다.
유카는 필사적으로 참으려 애썼다.
하지만 억누르지 못한 충동이 입가에 미소로 나타났고, 쥐고 있던 술잔은 이미 가루가 되어 있었다.
「지금, 여기서?」
「아무래도 그건 무리겠지」
「그래. 그렇겠지, 그 정도는 알고 있어」
입으로는 그렇게 말한 주제에, 속으로는 살짝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유카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선대 몰래 천천히 심호흡을 하여 어떻게든 마음을 진정시킨 유카가, 다시 선대를 바라봤다.
「심경이 바뀐 건, 역시 딸 때문이야?」
반 이상 확신이 깃든 예상을 유카가 들먹였다.
「그래. 저 아인, 이미 한 사람 몫을 다할 수 있게 됐다. 오늘, 그걸 다시 실감했지」
「그러니 이제 미련 없이 죽을 수 있다, 그런 말이려나」
「조금 다르다. 오늘 결정한 것이긴 하지만, 나는 레이무가 스무살이 되면 파문을 사용하는 것을 그만둘 생각이다」
「왜, 하필 스무살?」
「내 개인적인 조건일 뿐이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흐응……뭐, 좋아」
유카는 자신의 말대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건,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즉, 그 날 나랑 싸우는 거라고 생각해도 되는 거겠지?」
「그렇다」
「파문을 멈춘 날을 시작으로, 넌 점점 약해질 거야」
「그렇다」
「그러니까, 그 날이 네 최전성기가 되는 셈이고」
「그렇다」
유카는, 마지막으로 다짐을 받아내겠다는 듯 물었다.
「생애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날을, 나와 죽고 죽이기 위해 쓰겠다고?」
「그렇다」
선대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유카가 「흐응」하고 맞장구를 쳤다.
깊게 생각에 빠진 듯한 행동을 보이며, 다시 「그렇단 말이지」라며 말을 잇는다.
사실, 아무 생각도 없었다.
머릿속이 새하얬다.
오로지 환희의 빛깔로만 물들어 있었다.
그것이 결코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온힘을 다하고 있었기에, 아무 의미도 없는 말과 행동을 반복할 뿐이다.
이윽고, 유카는 방황하던 시선을 선대의 왼뺨을 향해 돌렸다.
스이카가 입힌 깊은 상처가 새빨갛게 드러나 있었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유카가 말없이 능력을 발동했다.
「선대」
「왜 그러지?」
「상처에 약을 발라줄게」
텅 비어있던 손바닥 위에 약초를 틔어내어, 그 잎을 손가락으로 짓이긴다.
「절대 움직이면 안 돼?」
「알겠다」
선대의 대답이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 지은 유카가 팔을 뻗었다.
느릿느릿한 손놀림이었다.
약을 바른다기보다, 상처에 쑤셔 넣는다는 표현이 올바르게 느껴질 정도로 힘이 잔뜩 들어간 손놀림이었다.
게다가 몇 번이나 손가락을 굴려 상처를 벌려내고 있을 만큼 사심이 듬뿍 들어가 있다.
유카는 상쾌한 미소를 짓고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당하는 쪽은 고문을 당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고통을 느낀다.
하지만 선대는 자신이 말한 대로 눈썹 하나 꿈쩍이지 않고 서 있을 뿐이었다.
상처가 벌어지고, 멎은 피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을 쯤 유카가 손을 뗐다.
피가 묻은 손가락을 품속에서 꺼내든 손수건으로 닦아내곤, 뒤를 이어 피에 젖은 선대의 뺨도 닦아냈다.
「상처에 잘 듣는 약이야」
「고맙다」
피로 더러워진 손수건을 챙긴 유카에게 선대가 감사를 표했다.
「그 날을──」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선대와 죽고 죽일 것을 약속한 날.
「기대하고 있을게」
「그래」
「약속을 어기면 죽일 거야?」
「어기지 않으마」
「그 날까지, 다른 녀석이랑 싸워서 져도 죽일 거야」
「나는, 이제 싸우지 않는다」
「뭐? 잠꼬대를 하려면 자면서 하는 게 어때?」
진지함이 차고 넘치는 선대의 대답에 유카는 말도 안 된다는 듯 웃었다.
「네가 싸우지 않을 리가 없잖아.
예언해줄게. 설령, 네 딸이 제 몫을 하게 되든, 하쿠레이의 무녀라는 지위에서 완전히 발을 빼든──너는 계속 싸우게 돼. 원하지 않아도, 오히려 기회가 널 찾아올걸. 그런 별 아래서 태어난 거야, 넌」
농담으로도, 진심으로도 보이지 않는 말투로 유카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제 됐어. 네가 다른 조무래기랑 싸우든, 나는 이제 신경 안 써.
그저, 그런 적들에게 끝없이 이겨내서, 마지막으로 내 앞에 서 있기만 하면 돼──」
유카는 그렇게 말하곤, 선대 앞에서 떠나갔다.
떠나가며 남은 것이 있다면, 현기증이 일 만큼 아름다운 미소뿐이었다.
◆
「어머?」
유유코가 그것을 깨달은 것은, 좀처럼 넘어가지 않는 술을 3분의1잔 정도 마셨을 쯤이었다.
술만 있어서야 입이 심심하다, 란 생각에 여기저기 눈을 돌리던 그 때.
떠들썩한 연회장 저편에서 선대무녀와 카자미 유카가 서로 마주보고선 무어라 말하는 것이 보였다.
그곳에서부터 반대로 더듬어오듯 옆에 앉은 유카리에게 시선을 돌린다.
아니나 다를까, 유카리는 그런 두 명을──정확히는 선대를──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유카리가 선대를 크게 걱정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부키 스이카와의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그녀를 보고 있었으니까.
싸움에서 승리한 뒤에 쓰러지려는 선대를 어느 누구보다도 먼저 챙겨주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카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때, 유유코는 유카리의 심정을 헤아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모든 사건이 일단락된 지금, 유유코는 고민에 빠진 친구에게 조언을 해주기로 했다.
「──선대, 라」
「뭐?」
불쑥 중얼거린 말에 바로 반응하는 유카리를 보며, 유유코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 이야기가 끝나면 의사한테 데려가는 게 좋아」
「그래, 알고 있어」
「실수로 명계로 데려오면 안 돼?」
「유유코」
「농담이야, 그렇게 노려보지 마」
「그때 일은, 선대한테도 사과했어」
「그럼, 따로 응어리진 거라도 있는 거야?」
「……맞아」
긍정하는 유카리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맥이 빠져 있었다.
「꽤 옛날 일이야」
「그렇구나」
「이제 와서, 생각나다니」
「그럼, 그 옛날 일이란 것도 이야기하고 와」
「──」
「느긋하게, 말이야. 아마 날이 새면, 연회는 알아서 끝날 테니까」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나누는 사이, 둘의 시야로 보이던 유카가 선대에게서 등을 돌렸다.
남은 선대는, 더 이상 이야기할 사람도 없는 듯, 그저 서있을 뿐이었다.
유유코는 눈빛을 보내며 유카리를 재촉했다.
「그럼 이만, 선대를 영원정으로 데려가도록 할게」
「힘내」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드는 유유코를 원망스런 시선으로 노려본 유카리가, 선대를 향해 다가갔다.
그런 그녀를 떠나보낸 뒤, 홀로 남은 유유코는 다시금 주변을 둘러봤다.
소란스러운 밤.
그리고 그만큼 유쾌한 밤이었다.
생의 끝에는 죽음이 있지만, 죽음의 끝엔 그 무엇도 없다. 변화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는 명계와는 달리 현세에선 오만가지 일들이 잔뜩 일어난다.
망령인 자신으로선, 그런 수많은 사건들이 신선하고 즐겁다.
경솔해보일지도 모르지만, 친구인 유카리의 고민 또한 유유코에게 있어선 미소가 지어지는 일일 뿐이다.
이변도 연회도, 나름대로 즐긴 유유코는 이제야 돌아가자고 마음을 먹고는──.
「그러고 보니, 요우무 이 애는 어디에 있는 걸까?」
멍하니 품고 있던 의문을, 이제야 중얼거렸다.
◆
이부키 스이카를 중심으로 모여든 오니는 한 자리에 모여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역시, 그렇게 간단히 남들과 친해질 순 없었다.
환상향의 거주자들 대부분이 이미 오니에게 원한을 갖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에 오니들은 그 누구보다도 이 연회가 당황스럽기 짝이 없었다.
자신들이 구사일생 했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다.
하지만 애당초 자신들은 지고난 뒤에 몸을 사리려고 이변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용서받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아직 받아들여지진 못한 것이다.
애당초 자기 자신마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지 않았는가.
복잡하리만치 배배 꼬인 심경이, 오니의 얼굴에도 드러나고 있었다.
묵묵히 잔을 비우고 있는 것은, 스이카와 그녀 옆에서 술시중을 하는 오니 가면을 쓴 소녀뿐이었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요? 두목」
받은 술잔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오니 한 마리가, 작게 중얼거렸다.
둥그렇게 둘러앉은 오니들은 이도 저도 전부 몸집이 큰 녀석들뿐이 없었지만, 체념해서 굽어진 몸이 스이카보다 작아 보였다.
「뭐가?」
스이카가, 일부러 쌀쌀맞게 되물었다.
「아니, 그러니까……저희, 술을 마시고 있지 않습니까」
「술은 마시라고 있는 거니까」
「그야 그렇지만, 그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음 제대로 말하란 말이다, 바보 놈아」
「그러니까……그렇잖습니까, 동료들도 전부 죽었는데……」
「그럴 걸 알고 한 싸움 아니었냐? 아무도 후회하지 않을 거다」
「……후회하고 있는 건, 우리들 아닙니까. 우리들, 살아남아버린 데다……연회에 참석해서, 술까지 마시다니」
「──」
「정말로, 이래도 되는 겁니까? 이렇게 끝내버려도……」
어느새, 그 오니의 말에, 스이카를 비롯한 동료들 전부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을 진심으로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긍정하고 있지도 않았다.
황당함이 배어나오는, 야무지지 못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런 모습도 포함하여, 이 오니의 말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는 듯 울려 퍼졌다.
──아무도 후회하지 않는다.
지저에서 이변을 일으키자며 궁리하고 있었을 때엔, 모든 오니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환상향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무대 그 자체를 상대로 싸우는, 일생일대의 대승부임은 분명했지만, 그 앞에 기다리는 것이 승리든 패배든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는 각오가 있었다.
이기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진다하더라도, 떳떳하게 죽자.
옛날 옛적부터 남에게 해를 입힌 오니는, 보기 좋게 퇴치되어 영웅담은 막을 내린다.
그럴 터다.
그렇기에 이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해두지 않았다.
졌을 때 죽을 각오 정도는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고도 살아나갈 각오는 하지 않았다.
「목숨을 부지한 거야, 어쩔 수 없잖아」
스이카는 이제 포기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자신 또한, 전력으로 싸웠음에도 지고 말았다.
죽어버린 자신의 반신이 가진 그 힘도, 영혼도 이젠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들을 살려둔 레이무의 판단이, 선의나 호의 때문은 아니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그녀의 판단에 감사할 순 없다.
차라리 모든 오니의 목을 베어 효수하는 편이 더욱 수습이 잘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정당한 복수는 이루어지고 오니 퇴치는 막을 내린다──.
적어도, 살아남은 자신들을 제외하곤 전부 그런 방식으로 오니로서의 삶을 끝맺었다.
「하지만……」
──왜, 우리들만?
남겨진 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 여길 확 뒤엎어버리든가」
「뒤엎는, 다니……」
「그 손에 든 잔을 내던지고, 미친 듯이 소리치면서 적당한 인간을 때려죽이라 그 말이야. 그렇게 아무 생각도 없이 마구 날뛰다보면, 하쿠레이의 무녀는 그때야말로 용서치 않겠지. 철저하게 「퇴치」해줄 거다」
스이카의 말을 들은 오니는, 손에 쥔 잔에 시선을 떨궜다.
대답이 늦어질 만큼,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무리입니다. 그런 짓,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습니까」
「왜?」
「그야, 이미 결판이 나버렸으니까요.
이게 아직 결판이 나지 않은 승부였다면, 죽을 때까지 발버둥치고 싶습니다. 꼴불견이어도, 최후의 순간까지 땅을 굴러주겠어요.
하지만 전 이미 져버렸습니다. 금색 머리칼을 가진, 젊은 계집애한테요. 몸은 가느다란 주제에 간 하나는 배 밖으로 튀어나온 녀석인데 말입니다. 힘 승부는 아니었지만, 그 녀석이랑 승부해서 진심으로 「졌다」고 생각해버렸지 뭡니까」
「그리고 나서 목이라도 가져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그러니까 말입니다. 제 목 따위엔 흥미 없다면서, 살아서 수치를 알아보라니, 너무했죠.
……하지만, 그러니 이제 그 계집애한테 보기 흉한 꼴을 보일 순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승부에서는 발버둥 칠지언정, 끝날 때만큼은 떳떳하고 싶지 말입니다」
이야기를 하며 감정이 복받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끝맺은 오니의 투박한 얼굴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슬프기 때문에, 분하기 때문에 흘러나오는. 원통함이 섞인 눈물이었다.
다른 오니들 또한, 눈물까지 흘리진 않았지만 모두 하나같이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모두가 손에 쥔 잔에 시선을 떨군 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다면, 납득할 수밖에 없어」
스이카가 말했다.
굳은 눈빛이 오니들을 향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없다면, 살 수밖에 없지. 지상에 남아도, 지저로 돌아가도 괜찮아. 언젠가 자길 퇴치할 녀석이 나타날지, 그보다 먼저 시간이 우릴 잡을지, 기다릴 수밖에」
「……아득하게만 들리는 말이군요」
「어쩔 수 없어, 졌으니까!」
자포자기했다는 듯 웃으며, 스이카는 술이 가득 담긴 잔을 단번에 들이켰다.
입가를 닦아내곤, 빈 잔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나는, 지상에 남을 생각이다」
모두가 스이카를 바라봤다.
그러나 무어라 물을 생각은 없었다.
「너희들도, 마음대로 해」
「──」
「언제든 그러면 돼. 오니니까, 마음 가는 대로 살면 되는 거야」
「……네」
맥없이 대답하는 오니.
그렇게, 오니들 사이에 다시 침묵이 돌았다.
스이카의 빈 잔에, 오니 소녀가 묵묵히 술을 따른다.
지금의 심정이 어떻게 느껴지는지는 둘 째 치더라도, 맛있는 술이었다.
마을의 술집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중요한 장사 밑천일 텐데, 이 갑작스런 연회에 아낌없이 베풀었다.
스이카는 머릿속과 마음속에 수많은 것들을 품으며, 아무 생각 없이 그 술을 바라볼 뿐이었다.
「적어도, 죽은 녀석들은, 이 술을 마실 수 없어」
「……확실히 맛있는 술이긴 합니다만, 위로가 될 정도는 아니에요」
지쳤다는 듯 맞장구를 쳐주며, 그럼에도 오니는 작게 미소와 함께 술을 들이켰다.
◆
──이상이, 오니의 습격에서 그 해결에 이르기까지 벌어진 사건이다.
이후에 살아남은 오니들의 동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대부분은 지저로 돌아가, 앞으로 지상으로 나오는 것을 야쿠모 유카리 당사자를 통해 단호하게 금지되었다.
하지만 살아남은 소수의 오니들 중에서도 극소수의 일부 오니들은 지상에 남는 것을 희망했고, 스펠카드 룰의 준수를 조건으로 이를 허락받았다.
취급은 다른 요괴와 동등하며, 더욱이 일부 오니는 다른 몇몇의 관리 아래에 놓였으니 안심하기 바란다. 그렇다고 해도 인간 여러분은 요괴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마지막으로, 지상에 남은 오니들의 소재지를 가능한 한 상세히 명기해 둔다.
우선, 이부키 스이카는 하쿠레이 신사에서 체재하는 것을 희망하여, 하쿠레이 레이무가 감시를 겸해──.
◆
선대가 처음 방문했을 때와 비교하면, 영원정의 인테리어는 상당히 뒤바뀐 점이 많았다.
바깥과 관계를 맺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기 위한 「진찰실」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준비된 방에서, 선대와 에이린은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치료는 이걸로 끝이야」
진료기록카드를 쓰며, 에이린이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는 선대는 온몸은 붕대가 감겨 온통 새하얬다.
하지만 깨끗한 붕대가 부상을 입은 곳에 정확히 감겨진 그 모습은 분명 치료가 완벽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가장 중상을 입은 왼팔도, 기브스로 굳게 고정되어 있다.
모든 처치가 마치 신이라도 들린 듯 정확하면서도 신속했다.
「뺨의 상처는 꽤 깊긴 했지만, 미리 치료를 잘 해둔 덕에 이미 낫기 시작했어」
「그런가」
「하지만 역시 흉터는 남을 거야. 지울 수 없는 건 아닌데, 어떡할래?」
「이제 와 말할 것도 아니다」
「다른 흉터랑 비교해도, 아마 꽤 눈에 띌 거야. 그것도 얼굴이잖아」
에이린은 여자로서 걱정이라는 듯 충고를 덧붙였다.
하지만 선대는 상처를 가린 붕대 너머로 가볍게 상처를 쓰다듬으며 작게 미소 지었다.
「아니, 이대로 놔둬도 괜찮다」
「……그래」
에이린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 상처에 대해 따로 생각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건 당사자의 자유다.
──그녀의 흉터에는, 그런 기억들이 하나하나 머물고 있는 걸까?
에이린은 머릿속으로 쓸데없는 잡념을 그렸다.
「그 왼팔 말인데, 다시 확인할 테니 대답해줄래?」
마음을 다잡고, 질문했다.
저런 중상을 입은 경위는, 치료를 하며 대충 들어서 알고 있다.
「이부키 스이카와 싸우다가, 공격을 막아내서 왼팔의 팔꿈치 부분이 골절. 그 뒤, 전투 도중에 「파문」을 사용해서 상처의 고통을 달래고 그와 함께 골절 부위를 일시적으로 접합. 이부키 스이카를 전력으로 때린 덕에 그 반동으로 다시 골절──내 말 맞아?」
「맞다」
긍정하는 선대를, 에이린이 가만히 바라본다.
「바보 아냐」
에이린의 입에서 담담한 매도가 흘러나왔다.
「그냥 복합골절도 아니고, 한 번 부러진 곳이 다시 부러져버렸잖아」
「……미안하군」
「나한테 사과해봤자 별 수 없어.
날이 지나기 전에 여기에 와서 다행이네. 섣부르게 방치해뒀다가 알아서 나았다면, 아마 뼈가 제대로된 모양으로 붙지 않았을 거야」
「고맙다, 에이린」
「이쪽은 두통이 일 지경이지만 말이지」
에이린은 한 손으로 이마를 부여잡았다.
선대의 인사는 야유, 말뿐만이 아니라, 순수하면서도 솔직한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쓸데없이 두통이 몰려왔다.
봉래인도 아닌 주제에, 이 인간에겐 신변의 위험에 대한 심각함이 부족하다.
에이린은 눈을 치켜뜨곤 선대를 살짝 노려봤다.
「전에 내가 말한 거, 기억하고 있어?」
「그래」
「좀 더, 자애를 가져줘」
「노력하마」
「……노력이 필요한 거구나」
「미안하군. 항상 깨닫는 게 느려 곤란할 따름이다」
농담인지 아닌지 궁금해질 만큼 진지한 표정을 지은 선대가 담담하게 답했다.
저 말에 무슨 뜻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니까, 쓸데없는 사색임을 깨닫고 한숨을 내뱉는 에이린이었다.
「당분간은 왼팔을 쓰지 마」
「당분간?」
「몰라. 당신의 회복력을 계산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니까」
「에이린……」
「농담이야. 일주일 뒤에, 한 번 더 진찰 받으러 와」
선대가 곤란하다는 듯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에이린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주 약간, 정말로 아주 약간에 불과했지만 그 선대의 표정에 눈에 보일 정도로 무너졌다는 사실에 속이 풀린 것이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갈 채비에 나선 선대를 마중하기 위해 에이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원정의 문까지, 짧은 거리를 걷는다.
아직도 밤하늘엔 동이 트지 않았다.
분명 마을에선 아직도 떠들썩한 연회가 벌어지고 있겠지만, 이만치 멀리 떨어진 대나무 숲 안쪽에 있는 영원정으로선 그 소란과 무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변은 또 다른 의미로 소란이 번져, 산만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이나바 테위를 닮은 인간 모습을 한 요괴 토끼들이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센은 그런 토끼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여기도, 오니에게 습격당했다고 들었다만──」
곳곳이 부서진 영원정을 둘러보며, 선대가 중얼거렸다.
마치 무언가가 날뛴 것만 같은 흔적이 있다.
그리고 오늘 밤만큼은, 날뛴 「무언가」의 정체는 분명했다.
영원정 안에선 강한 피비린내가 아직도 감돌고 있었다.
「맞아, 이나바 몇 마리가 먹혔어」
「먹혔다고……」
「당신도 토끼 고기 정도는 먹을 거 아냐」
담담하게 대답한 에이린은 「구제」된 오니의 시체가 쌓여 있는 툇마루를 가로질렀다.
「뭔가, 도울만한 건 없나?」
「아무것도 없어. 상처를 고치는 거에나 신경 써」
「치료를 해준 답례다」
「그건 이미 야쿠모 유카리에게 받은 지 오래야. 오니 시체를 처리해주는 걸로 말이지. 저택의 수리는 그렇다 쳐도, 저걸 처분하는 건 어려우니까」
「그런가」
「마음만 받아둘게」
선대의 선의를 타산적인 대답으로 넌지시 받아넘기는 에이린.
에이린에 있어, 선대무녀는 대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단순히 「흥미로운 인간」 「호의적인 친구」라고 받아들이기엔, 서로의 입장도 알게 된 경위도 너무 복잡하다.
무엇보다, 자신은 이미 그녀에게 약점을 들키고 말았다.
되도록 이쪽과 엮이지 않길 바라는 바다.
영원정 전체와 자기 자신의 평온을 염두에 둔다면, 그래야만 할 것이다.
──이 인간과 관계를 갖는 건 위험해.
그런 경계심이나 불안함으로 물든 속내를 완벽하게 숨기며, 에이린은 선대를 배웅했다.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온 유카리와 함께, 밤의 어둠 속으로, 서서히 영원정에서 떠나가는 그녀.
이윽고 그 둘의 등이 보이지 않게 되자, 에이린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등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향해 입을 열었다.
「갔어, 카구야」
문의 그늘에서, 카구야가 넌더리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내밀었다.
그 단정한 미모가, 형용키 어려운 표정으로 비뚤어져 있다.
「……주의가 부족했어. 설마 선대가 여길 찾아올 줄이야」
「선대와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아니,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럼 딱히 숨을 필요도 없지 않을까. 그냥 당당하게 있으면 됐을 텐데」
「그러면 선대랑 마주칠지도 모르잖아!」
모순된 카구야의 엉뚱한 화풀이에, 에이린은 기가 막힌다는 듯 한숨을 내뱉었다.
어딜 어떻게 봐도 카구야는 선대와 만나는 것을 거북하게 여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즉,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영원정이 오니에게 습격당했을 때, 우연히 모코우 일행에게 끌려가 마을까지 갔다는 것은 카구야 본인에게서 들었기에 알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곳에서 선대와 무어든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선대를 향한 카구야의 복잡한 심경을 더욱 꼬이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기이하게도, 주종 둘이, 한 인간에게 비슷한 인상을 느꼈다는 것이 된다.
마치, 우연마저 그녀들의 아군이 된 것처럼.
──역시, 관계를 맺기엔 위험한 상대야.
다시금 선대를 향한 염려를 품은 에이린의 표정에는, 경계심 보다는 곤란하단 쓴웃음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사정만 아니었으면 좋아할 수 있었을 텐데」
「싫어. 저런 녀석, 죽더라도 좋아지지 않을 거야」
「너, 죽지 않잖아」
◇
──에이린의 치료를 받고 영원정을 나선 나는 오늘이라는 하루를 돌이켜보았다.
기대하고 있던 연회가 오니들의 갑작스런 습격 탓에 망쳐지고, 그 오니들을 퇴치하기 위해 마을에서 난투극을 벌여서 이겨낸 끝에 그 이부키 스이카와 결사적인 사투를 펼쳤지만, 어떻게든 승리를 거두고 이렇게 살아남아 연회를 즐길 수 있었다.
──믿겨져? 단 하룻밤 만에 일어난 일이라고, 이거…….
그야말로 격동하는 하루라고 부르기에 더할 나위 없는 날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엔 지저에서 싸웠던 때에 비하면 나름 경상으로 그쳤고, 이 소동에서 얻은 것 또한 많았다.
결과 올 라이트라는 말은, 분명 이럴 때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특히 레이무의 성장을 이 눈으로 직접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내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다.
춘설이변 때에, 명계에서도 레이무의 활약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느꼈던 레이무의 성장이 한순간의 감동이라면, 이번 일은 내 인식을 새로 쓴 하나의 고비라고 말할 수 있다.
레이무는 아직 어른이 아니다.
하지만,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진정한 의미로, 하쿠레이의 무녀로서 훌륭히 한사람 몫을 해낼 수 있다, 라고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확신이, 부모로서는 조금 쓸쓸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마음이 가득 채워졌다.
이제 레이무에겐 내 도움 따윈 필요치 않을 것이다.
어머니로서 해야 할 일 하나를 끝낸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일지도 모른다.
──유카와 싸우자는 약속을 해버린 건.
아─, 저질렀다─.
나, 저질러버렸어.
이제 와서 해봐야 이미 늦었지만 좀 후회되기 시작했다.
떠날 때, 유우카링의 아름다운 미소를 봤으니 용기를 내서 말해보길 잘했다고 생각할까보냐 이 바보! 과거의 나 바보!!
확실히 무지 예쁜 미소였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느껴본 한기가 들었다고!
위험해, 그거. 살기라든가 그런 영역을 완전히 초월했잖아…….
그 뒤로 기분이 좋아졌는지 약을 발라주긴 했지만, 뭐야 그거? 새로운 고문?
조금만 더 했으면 비명을 내지르면서 울었을 레벨이라고.
단순히 심술을 부린 게 아니라 정말로 잘 듣는 약이라는 게 또 알 수가 없단 말이지.
설마, 그건 유우카링 나름의 호의였던 걸까.
일단 적어도 그날이 오기 전까진 평화가 약속됐다지만, 그와 함께 도망칠 수 없는 결전의 날마저 정해지고야 말았다.
레이무가 스무 살이 된 그날, 나는 천수가 다하기 전에 목숨을 걸고 싸움에 임해야만 한다──!
지금 와서 유카한테 「너와 마지막으로 싸운다고 했었지? 그건 뻥이야」같은 말이라도 했다간 이쪽이 낭떠러지에서 내던져질 게 분명하다.
그날에 대비하여, 각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으음─, 파문 사용을 그만둘 날을 구체적으로 결정한 김에, 묵힌 감정도 풀어두잔 생각이 안 좋았던 건가?
뭐, 전부터 유카와의 관계는 언젠가 제대로 해결하자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 언젠가가 지금 찾아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건, 내가 파문을 멈출 날 또한 마찬가지다
여태까진 그저 막연히 「레이무가 어른이 되면, 남은 인생은 자연에 맡기자」고 생각해왔다.
레이무가 어른이 되는 날──그것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여태껏 결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이변이 일어났다.
나는 레이무가 제 몫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깨닫고, 드디어 일선에서 물러선다는 결의를 다질 수 있었다.
결의를 다진 뒤, 거기다 「스무 살까지」라는 기간을 만든 건, 내가 가진 전생의 기억 속에서, 「어른」으로서 인정받는 구체적인 연령이 스무 살이기 때문일 터이다.
깊은 의미는 없다.
솔직히, 지금 나한테 그리 여한은 없으니까 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빨리 죽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영역을 초월한 힘과 기술을 사용하여, 거기다 사람이 아닌 존재가 되어가면서까지 살아갈 이유가 없을 뿐이다.
평범하게 살아서, 그 덕에 오래 살 수 있다면, 하는 바람보다 더한 것을 추구한 적은 없다.
그렇다곤 해도 요절할 게 틀림없다는 에이린 선생님의 보증수표가 붙어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터무니없는 상처들도 감안하고 살아온, 내 인생의 일부이기에.
그런 내가 인생의 방침을 새로이 결정했다는 점을 보아도, 오늘 밤은 중요한 하루였다──.
「선대」
옆에서 들려온 유카리에 목소리에, 나는 짧은 회상에서 의식을 돌렸다.
틈새를 통해 영원정까지 함께 동행 한 유카리는, 지금 나와 나란히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상처는 어땠어?」
「경상이다」
「도저히,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예전 상처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지」
조금 꾸짖는 느낌이었기에 얼버무리며 대답하니, 유카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정말 미안.
매번, 걱정만 끼치는구나.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
「정말이지. 그래도, 괜찮아. 이미 익숙해졌으니까」
「꽤 오랜 지기니 말이다」
「그렇구나」
그때, 왠지 모르게 한순간 유카리의 얼굴에 울적한 표정이 지어진 듯 보였다.
「……이 죽림을 걸어 나가기도 귀찮으니, 틈새로 마을까지 보내줄게」
여태까지 계속 함께 걷고 있었으나, 말에서 「이제 작별」이라는 듯한 분위기를 느낀 나는, 무심코 그런 그녀를 말리고 있었다.
확실히, 안내자도 없이 헤매임의 죽림을 걸어 나가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것보다, 난 돌아가는 길도 몰라.
하지만──.
「조금 더, 걷지 않겠나?」
내 제안에, 유카리는 놀랍다는 듯 눈을 둥글게 떴다.
싫다, 유카링도 참, 갑자기 그런 무방비한 표정을 보여주다니, 오히려 내가 더 놀랐잖아.
옛날과 마찬가지로, 유카리는 초특급 미인이다.
정말이지, 무슨 표정을 짓든 그림이 된다.
평소의 요염한 미소도 좋아하지만, 이 표정도 레어한걸! 머릿속에 저장!
그런 느낌으로 혼자 깝죽대는 사이, 유카리는 여유로운 미소를 되찾은 지 오래였다.
「돌아가는 길은 알아?」
물론, 모릅니다.
유카리가 틈새를 만들기 위해 뻗었던 손바닥을 뒤집으니, 그곳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나타났다.
유유코의 탄막을 닮았지만, 이쪽은 마치 전등처럼 밝은 빛을 내뿜고 있다.
그 나비가 살포시 유카리의 손에서 날아올라 우리들의 안내자라도 된 냥 길을 앞서 날며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으로 어둠을 밝혔다.
「저걸 따라가면 돼」
「알았다」
나와 유카리는, 다시 어두운 죽림 속을 함께 걷기 시작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똑같아 보이는, 단조로운 풍경만이 계속된다.
나비의 빛과 머리 위에 덩그러니 뜬 달만이 밤의 어둠을 걷어낸다.
주변은 고요하다.
헤매임의 죽림에는 요정이나 요수가 서식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뭐, 내 옆엔 얼굴 보기도 송구스러워질 정도의 대요괴가 있으니, 어떤 녀석이든 간에 숨을 죽일 수밖에 없을 테지.
그렇게 잠시 동안, 나와 유카리는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
흐음─, 이렇게 조용히 걷는 것도 좋지만, 모처럼 단 둘뿐이니 유카리랑 아무 이야기나 하고 싶은데.
이런 때의 정석은 「날씨 좋네」같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화제로 시작하는 거겠지만, 지금은 깊은 밤이다.
그 대신 달이 예쁘니 일단 그걸 소재로 말을 꺼내볼까?
「──레이무가 스무 살이 되면 평범하게 산다는 말, 사실이야?」
하지만 나보다 먼저, 유카리가 말문을 텄다.
「유카와 한 대화를 들은 건가?」
「맞아. 뭔가, 터무니없는 약속을 해버렸네」
「그렇지」
「딱히 당신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 그쪽은 어찌되든 상관없어」
당연하다는 투로 말을 꺼낸 유카리의 태도를 보아, 나의 승리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 듯했다.
고마워, 유카리.
하지만 유카는 그리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내 힘을 믿고 있는 건지, 유카를 가벼이 여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것 말고도 「유카가 죽든 말든 상관없다」고 말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기분 탓인가?
「당신이, 그렇게 결정한 이유는 레이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직접 봤기 때문이야?」
「그래. 오늘 밤, 똑똑히 봤다」
「그렇구나. 나도 지켜봤어」
「그 아이는, 이미 훌륭한 하쿠레이의 무녀다. 내 역할은, 정말로 끝난 거다」
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을 그대로 전했다.
이 날을 끝으로 배틀 삼매경인 일상과는 작별을 고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섭섭하단 생각도 드는걸.
……유카의 예언 같던 충고는, 억지로라도 무시하자.
일어나면 안 된다!?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된다, 트러블!?
「──그렇구나, 감회 깊은 일이야」
유카리의 얼굴에 또 다시, 울적한 표정이 떠올랐다.
「나와 당신이 만난 지, 벌써 몇 년이나 지났을까?」
「길군. 40년은 지났겠지」
「요괴의 산에서 당신을 찾아냈을 때엔, 아직 어리숙한 여자애였는데 말이지」
「그랬었지.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말이다」
「지금의 레이무보다 어렸던 건 확실해. 후훗, 당신은 갑자기 튀어나온 날 보고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어」
그때 당시의 가혹한 환경과 수행 탓에 철면피가 생겨버렸다는 것을, 유카리는 모른다.
그리고 야쿠모 유카리라는 걸 알자마자, 놀라움이나 불안함이 단번에 날아가 버릴 정도로 텐션이 올라갔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나와 유카리의 운명적인 해후였을지도 모른다──막 그래!
「그때, 난 당신이 수련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그랬었나?」
「응. 그리고 확신했지. 당신의 힘과 소질이 있다면, 그 당시의 환상향을 크게 바꿀 수 있을 거라고」
「그렇기에, 하쿠레이의 무녀로 임명한 건가」
「맞아. 그리고 당신은 내 기대에 충분히 답해줬어.
마침 그 시절의 하쿠레이의 무녀가 죽고, 요괴가 인간을 덮치는 빈도가 늘어나고, 그 탓에 인간들 사이에서도 불신과 불화가 커져만 갔지──그런 불안정한 시대를, 당신이 힘으로 바꿔놨어」
그냥 레벨을 올려서 평타로만 싸운 거나 마찬가진데 말이지.
굳이 말하자면, 그런 내 행동을 유카리가 능수능란하게 이용해낸 결과가 평화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소를 짓고 있는 유카리에게 그런 풍류 없는 참견을 할 생각이 들지 않은 난, 순순히 칭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유카리의 기대에 답할 수 있었다면, 다행이야.
「……그런데, 선대. 내가 당신에게 기대한 건, 그 힘뿐이었어」
갑자기, 유카리가 중얼거리듯 말을 꺼냈다.
「스스로 가꾸어낸 당신의 힘에, 기대하기도 했고 믿음도 있었지.
하지만 그게 다였어. 그것 말고는 그 어느것도, 당신에게 바라지 않았어. 걱정도 하지 않았지. 쓸모없다고 생각했었으니까」
「──」
「나, 당신에겐 하쿠레이의 술식에 대해 그다지 가르쳐주지 않았잖아? 당신에겐 「어울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던가.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어.
하지만 그 이상으로 난, 당신에게 지금의 레이무처럼 결계를 관리하는 하쿠레이의 무녀로서의 역할을 기대하지 않았던 거야. 나는 그저, 당신이 힘을 휘둘러주기만을 바랐지」
묵묵히 귀를 기울이는 나를 보며, 유카리가 말을 이었다.
「처음으로, 당신이 새로운 하쿠레이의 무녀라고 마을에 발표했을 때 어땠는지, 기억해? 처음엔 평가도 최악이었지」
「그래.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후후, 맞아. 아직 어렸던 데다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요괴를 때려죽이는 것 뿐.
요괴가 마을까지 덮쳐오는 상황에서, 결계는커녕 호신용 부적조차 만들 수 없는 당신에게, 인간들은 모두 실망했어. 지금은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그때엔 아무도 당신에게 기대하지 않았고, 협력하지도 않았었지」
「그렇다」
「그야, 나도 당신에게 그런 걸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협력하지도 않았던 거야」
어느새, 유카리의 발이 멈췄다.
나도 같이 멈춰 선 채, 묵묵히 마주 바라본다.
「내가 당신에게 기대했던 건, 단순히 칼날이 되어주는 것뿐이었어. 문드러지기 시작한 환상향에서 썩은 것을 잘라내기 위한 칼날. 그런 당신을 이용해서, 나는 환상향을 고쳐 세울 생각이었던 거야」
「……그런가」
「내 기대에 답해주는 당신에게, 만족했어.
그 힘을 발휘해서 요괴를 퇴치할 때마다, 사람들의 실망이 점차 공포로 바뀌고, 당신을 기피하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슬퍼하긴커녕 만족했지」
「──」
「공포는 이윽고 신뢰로 바뀌고, 당신은 사람들의 믿음을 얻게 됐지만──그건 내가 의도한 게 아니었어. 당신이 자력으로 얻어낸 거야.
나는, 그런 기대는 하지 않았고, 그래서 협력도 하지 않았어. 당신의 인간관계가 어찌되든 염두에 두지 않았어. 당신에게 동료나 친구, 가족이 생길 수 있도록 배려하지도 않고, 그 어느 것도 그냥 내버려두다가──」
유카리는 마음속에 쌓여 있던 모든 것을 토해내듯,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죽거나 움직일 수 없게 됐을 쯤에, 하쿠레이의 무녀가 본디 가진 역할을 맡을 수 있는 새로운 무녀를 찾을 셈이었지」
이야기해 끝낸 유카리가, 빙긋 웃었다.
당장 눈물이 터져나올 것만 같은 미소였다.
나와 유카리는, 잠시 동안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마주봤다.
유카리의 수십 년이 지나 토해낸 고백에, 나도 오만가지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유카리가 그런 나의 대답을 받아들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나는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한 뒤, 묘하게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는 듯 보이는 유카리에게 이 고물이 다된 언어기능을 통하더라도 오해하지 않고 정확하게 나의 의사가 전해지도록 단어를 선택한 뒤,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겐, 가족이 있다」
「뭐?」
「아까 말했을 터다. 레이무는 자랑스러운 딸이고, 부모로서 훌륭하게 자랐다고 생각한다」
「아, 응. 그렇구나」
「최고의 가족이 생겼다. 게다가, 지금은 수많은 동료까지 생겼다. 친구도, 내 앞에 버젓이 있다」
「……내가?」
「아닌가?」
「아니, 그렇지 않아. 하지만 난……」
「네가 옛날에, 날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지?」
「──」
「네가 얻지 못할 거라고 예상했던 동료도, 친구도, 가족도, 나는 전부 손에 얻었다만」
「……으응」
「다시 봤나?」
나는 히죽 웃으며, 말을 끝맺었다.
처음엔 내 말에 머엉, 한 표정을 짓고 있던 유카리이였으나, 이윽고 점점 진정한 의미의 미소가 그 얼굴에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응, 다시 봤어」
말 그대로 꽃이 활짝 피어오르는 듯한 미소를 보며, 나도 미소로 답했다.
하지만 상쾌한 건 얼굴뿐입니다. 속마음은, 축제바닥이야.
유카링이 너무 귀여워서 사는 게 괴로워……!
후우. 과거의 유카리가 어땠는지는 모르겠는 데다, 내가 고생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아주 즐거운 기분이다.
결정했어. 결혼하자. 그 전에 이미 내 신부지만.
「그렇다면 용서해주마」
「후훗, 용서 받았네」
유카링 리얼 아가씨 스마일을 지은 유카리와 함께, 우리들은 다시금 걷기 시작했다.
마음 탓일까, 아까보다 발이 가볍다.
유카리와 단 둘이서 걸을 뿐인데, 그리운 것 같은, 반대로 신선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야기가 끝난 뒤, 어느 쪽도 말을 꺼내진 않았지만, 침묵 따윈 전혀 거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심 들뜬 나는, 밤하늘을 바라보곤 무심코 유카리에게 말을 건네고 말았다.
「유카리, 저길 봐라」
「왜 그래?」
「달이 아름답군」
내가 그렇게 말한 순간, 유카리가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하고 뒤를 돌아보자, 눈을 둥글게 올려 뜬, 아까 봤던 보기 드문 표정을 지은 채 유카리가 굳어있었다.
「……선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
에, 뭐가?
왠지 꾸짖는 것 같은 말투에, 나는 다시금 달을 올려다봤다.
「아니, 달이 아름답지 않나? 아닌가?」
대답 대신에, 유카리는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바보」
포기했다는 듯 중얼거린 유카리의 뺨은, 아주 약간이지만 붉어져 있었다.
◆
「──다 했다」
앨리스는 완성된 인형을 작업용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손바닥 사이즈의 인형이라곤 하지만, 겨우 몇 시간 만에 손수 만든 물건이다. 완성도 또한 높다.
마을에서의 싸움을 지켜본 뒤, 연회에 참가하지 않고 몰래 귀가하여, 그대로 작업에 몰두한 결과다.
뭣보다 다른 인형들과는 달리 마법을 걸어둘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 완전한 인테리어용 소품인데다가, 어느 정도 모양새가 잡혀있었던 것 또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만들다 만 작품을, 날이 새기도 전에 완성시킨 것이다.
앨리스는 그 인형을 가만히 바라봤다.
생김새가 좋고 나쁨을 떠나, 부족한 부분이 더해진 것 같은 완성도가 느껴졌다. 자화자찬?
──아니, 그렇지 않다.
자화자찬이 아니다.
이것은 자신이 디자인한 모습이 아니다.
기억속에 있던 이미지에 따라, 본래 가지고 있던 모습을 되찾았다고 보는 것이 올바르다.
「신키」
앨리스가 중얼거렸다.
그 한마디에, 눈앞에 둔 인형의 완성도가 더더욱 올라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맞아. 너는 신키야」
다시, 씹어 삼키듯 중얼거린다.
인형을 사용하는 마법사로서 수많은 인형을 만들어왔지만, 완성했을 때 이렇게 큰 충격과 감동을 맛본 적은 없었다.
이 인형──붉은 옷을 걸치고, 기다란 은발을 지닌 아름다운 여성. 하지만 그 등엔 마치 악마의 그것처럼 새카만 날개가 6장이나 돋아나 있다.
인간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앨리스가 아는 한 환상향에 이렇게 생긴 요괴 또한 없다.
여태껏 찾아왔지만 발견하지 못했으니,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앨리스는 이 여성을 자신의 상상이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했다.
만들기 시작했을 때엔, 전체적인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아, 작업을 하다 말고 놔두고 있었다.
──이 인형의 디자인은 그저 이미지일 뿐, 영감이 오지 않기에 완성하지 못한 채 방치해뒀다.
지금까진, 그렇게 생각했다.
믿어버리려 하고 말았다.
하지만 오늘 밤의 연회에서 얻은 경험이, 도저히 찾아낼 수 없었던 부분을 갑작스레 머릿속으로 전해준 것이다.
모든 계기는 「이름」이었다.
이 실재하지 않았어야할 여성의 이름이었다.
「신키……마계의 신」
앨리스는 입에서 튀어나온 잊기 쉬운 단어를 잊지 않도록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기묘한 경험이었다.
기억 속엔 없는 것이, 자신의 입을 통해 말로써 튀어나왔다.
──마계.
──신.
──신키.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되새기며, 앨리스는 일어섰다.
완성한 지 얼마 안 된 「신키」 인형을 손에 들고, 집의 숨겨진 방으로 이동했다.
몇 번이고 집에 초대했던 마리사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장소다.
마법을 사용하여 은폐까지 마쳐둔 그곳은, 앨리스의 마음속을 그대로 표현해둔 것 같은 방이었다.
안에 들어와, 등불을 켠다.
작은 방이다.
가구도, 무엇도 없고, 있는 것은 오로지 방의 중앙에 놓인 커다란 받침대 뿐.
벽에는 무수한 뎃셍들이 어지러이 붙어있었다.
정리정돈이 깔끔한 앨리스의 집에서, 이 방만이 독보적으로 이질적인, 잡다한 광경을 보이고 있다.
화폭에는 환상향의 어느 곳도 아닌 장소, 환상향에 사는 어느 누구도 아닌 인물──.
받침대 위엔, 미완성된 인형들 몇 개가 놓여있다.
하지만 미완성인 것 치고는 기묘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뼈대밖에 없거나, 옷이 완성되지 않았다거나 하는 것처럼 평범한 순서를 밟아서 만들어진 미완성품이 아니다.
얼굴 부분만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
옷의 윗도리만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
왼팔과 오른쪽 다리만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
만들다 만 것이 아니라, 중요한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그것은, 오늘 밤에 완성한 「신키」 인형의 예전 모습과 똑같았다.
그래, 같았다.
이 미완성품들의 부족한 부분이, 앨리스의 머릿속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 네 자린 여기야」
앨리스는, 그 미완성된 인형들의 중심에 「신키」 인형을 내려놨다.
모든 것의 중심.
이 인형이, 이러한 존재들의 요점──혹은 「신」──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앨리스는 나란히 줄선 인형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이렇게 바라봐왔다.
이 생명을 가지지 못한, 움직임조차 없는 인형들에게서, 무언가 고귀한 것을 느끼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바라봤다.
몇 일이고 그것을 반복해왔다.
몇 년이고 그것을 반복해왔다.
──대체 언제부터지?
그런 자문에 대답할 수도 없을 만큼, 옛날부터.
아니, 이건 사실인가?
언제부터 그래왔는지 생각나지 않는 건, 머나먼 과거여서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과거이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이 환상향에서 살고있던 앨리스 마가트로이드라는 마법사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 처음부터 이 세계 자체가 단순한 무대이고, 이곳에서 사는 자들은 배역을 연기하는 인형일 뿐이며──그리고 이 인형들이 자신이 아는 살아있는 존재이며 세계인 것이 아닐까.
이 세상은 그저 극장일 뿐──.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대답조차, 할 수 없다.
이 세계는, 항상 기묘한 기시감에 둘러싸여 있다.
「아직, 이것 말고도 이름이 있을 거야……」
앨리스는, 미완성된 인형들을 일일이 바라보며, 확신이 깃든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눈에는, 평소처럼 쌀쌀맞은 잘려나간 감정의 색채 대신, 강렬한 의지가 품어져 있었다.
「이 인형들 전부, 이름과 모습이 있을 터. 그걸 모르면──」
앨리스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한 요괴였다.
지금까지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던 작업을, 단 한마디로 재개시키고, 인형이 완성되기에 이르렀다.
분명, 아니 틀림없이 그녀는 자기 자신도 모르는 앨리스 마가트로이드의 비밀을 알고 있다.
「코메이지 사토리」
다시 한 번, 만나야만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폭로해주겠어. 이 세계의 비밀을──!」
환상향 속에서 홀로, 앨리스 마가트로이드는 특별한 각오를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