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은 모든 것을 명확하게 한다."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오직 힘만이 정한다."
"그러니 우리는 생각하길 포기한 멍청이 뿐이다."
시나 안쪽에 도착한 코르보와 한네스는 헤어졌다. 이 세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코르보는 자신의 복장과 무기들이 이질적이라는 것을 한네스에게 지적받았다. 시나에 도착하고 복장을 바꾼 코르보는 이 세계의 상식을 익혀나갔다. 거인과 인간의 역사, 벽의 등장, 생산자와 조사병단, 주둔병단, 헌병단, 벽을 신성시 하는 교단, 왕족 등.
그 중에서 코르보가 가장 경악한 것은 이 세계의 치우친 지식들이다. 어째서 이들은 '벽'에 대해서 의문점을 품지 않는가. 거인이 그토록 강했다면 벽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며, 그걸 해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위업인지. 신이 내려줬다고 주장하는 책도 있지만, 사실적으로 역사를 기록한 책은 인간이 세운 것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거인의 혹독한 공격 속에서 저렇게 견고한 벽을 짓는가. 심지어 저 벽은 흠이나 틈이 하나도 없다. 문자 그대로 견고한 하나다. 마치 콘크리트를 틀에 부어 굳힌 것 처럼.
-진실을 구하든지.
-사람을 구하든지.
-지켜보겠다, 코르보.
상식을 익히고 이 세계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살핀지도 3개월. 이 세계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거인이다. 단절된 세계 안에 갖힌 인간은 거인이 어떤 존재인지 정의하지 못했다.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인간은 정체했고, 100년이란 시간동안 거인은 진화했다.
세상은 늘 그렇다. 살아남기 위해 포기한 무언가는 부메랑이 되어 나를 덮친다. 때론 생존을 위해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도, 반드시 되돌아온다. 자유를 포기했고, 거인과의 대적을 포기한 인류는 어찌할 바 없는 약자였다.
-자, 그럼 어찌한다.
코르보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다크 비젼으로 보이는 벽의 안쪽엔 거인들이 서 있다. 등을 밖으로 등진 모습은, 마치 거인이 인간을 지키기 위해 벽이 된 형상이다.
밤마다 벽을 돌며 질문한다. 인류는 이것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벽에 의지할 수 없게 된다면 무슨 짓을 할 것인가. 교단은 이 사실을 아는가. 왕실은 무엇을 하는가. 거인의 목 뒤에 파묻힌 인간은 무엇인가.
"자, 자네! 여기에 어떻게 왔나?"
밤에는 사람이 없기에 기척을 줄줄 흘리며 다니니 순식간에 들켰다. 코르보는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을 봤다. 한네스다. 그의 얼굴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코르보는 다가오는 한네스를 손짓으로 저지했다. 그는 주둔병단이다. 거인은 밤에 움직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빛을 쬐지 않으면 무력화 된다. 가끔씩 이렇게 순찰을 돌며 벽 근처에서 무력화된 거인을 확인한다. 아마 그것 때문에 왔으리라. 품 안의 가면을 숨기며 한네스에게 걸어갔다.
"그, 뭐시기냐."
한네스는 어색한 듯이, 뭔가 부끄러운 듯이 딴청을 부렸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자네 말대로 살아있어야 뭐든 할 수 있더군."
"아아."
"그건 그렇고, 자네가 여긴 어떻게 왔나? 옷도 누더기가 아닌가!"
"내가 입던 옷은 너무 눈에 띄더군."
"아, 그 깜장옷은 확 튀지. 음, 자네 이름이 뭔가? 생각해보니 자네 이름도 묻지 않았군."
코르보는 망설였다. 여기서 본명을 말해도 될까. 아니면 침묵하는 것이 옳을까.
"코르보. 코르보 아타노."
"코르보! 좋은 이름이구만! 내 이름은 한네스네. 자, 이럴게 아니라 일단 내려가지. 혹시 돌아다니면서 본 거인들이 있나?"
고개를 젓는다. 다크 비젼으로 본 마리아 구역엔 거인이 없다. 보는 족족 다 죽여버렸다.
"일단 내 집으로 갈까? 보아하니 자네, 어디 갈 곳도 없어 보이는데."
사람은 누구나 잘 하는 것이 있다. 코르보는 한네스에게서 사무엘의 그림자를 보았다. 자신을 섬겨서 무척 영광스럽다고, 일생의 자랑이라며 끝까지 따르던 늙은 뱃사공. 사람 좋은 그는 배신보단 신뢰를 믿었고, 누구보다 약하지만 끝까지 선했던 이다. 그는 뛰어난 항해실력과 비상한 눈치보다 더 잘하는 것이 누군가를 신뢰하는 것이다. 아마 한네스도 그런 부류이리라.
믿어도 될까. 코르보의 망설임에 손등의 문장에서 빛이 스멀스멀 흘렀다. 일단은 보류다. 그를 좀 더 보자.
"그럼, 신세 지겠다."
"너, 누구야?"
"어이! 알렌!"
코르보는 자신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알렌의 눈초리에 조금 당황했다. 닮은 곳은 하나도 없는데, 어째서 자신이 죽어가면서도 지켜달라고 말했던 여자가 떠올랐을까. 고열로 앓아 누운채 끙끙 거리면서도 무척이나 배타적인 눈이다.
한네스는 알렌의 그런 모습에 기막혀 하면서도 미안하다고 코르보게에 사과했다. 역시 사람이 좋다. 코르보는 신경쓰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 알렌을 살폈다. 12살이라고 했으니 체격의 작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마른 손발과 여윈 얼굴을 보니 애초에 여긴 영양사정이 그렇게 좋지 못함을 알 수 있었다. 코르보가 6개월간 얼음능선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면서도 체격을 유지하고 힘을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쥐고기 덕분이다. 먹어야 살고, 살아야 무언가를 할 수 있다.
"한네스. 이 사람은 위험해. 하아."
"어이, 알렌. 너 지금 열 때문에 헛소리를 하는 거냐?"
"피, 냄새. 난다고. 당신 말이야. 하아."
코르보는 품에서 칼을 꺼냈다. 2중 슬라이스 칼날이 들어있는 칼 손잡이를 빙글 돌리며 칼날을 꺼낸다. 칼날엔 굳어버린 피가 가득했다.
"이것 때문이군."
"허. 그 피는 뭔가."
"거인."
"거인이라고? 자네, 거인과 싸운 건가?"
코르보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 미터 짜리 기형종이라고 말했다. 한네스는 어안이벙벙한 표정이다. 당연하다. 기형이라도 오 미터 짜리다. 거기에 목 뒤를 정확히 파내지 못하면 죽지 않는다. 코르보는 주변을 둘러보다 작은 나무토막을 발견했다. 아무리 봐도 쓸려고 냅둔 게 아니다. 휙 던지고 이연속 베기를 펼쳤다. 나무토막은 세개로 나뉘어 떨어졌다.
"이걸로 죽였다."
"보, 보이지도 않는군. 하지만, 확실히. 그 정도의 속도로 거인의 목 뒤를 노린다면 충분하겠군."
코르보는 칼날을 수납했다. 엘렌도 한네스도 납득한 표정이다.
"아, 엘렌. 미카사는 어디로 갔냐? 그리고 은인은?"
"미카사는, 나무. 아버진 아직, 소식 없어. 하아."
엘렌에게 다가간 코르보는 그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뜨겁다. 단순한 열인가? 코르보는 엘렌이 덮은 이불을 들춰냈다. 온 몸이 발갛다. 한네스가 무슨 짓이냐며 달려들었다.
"열을 식혀야 한다."
"윽, 추워."
"엘렌이 추워하지 않나!"
"인간의 체온이 일정 이상 올라가면 위험하다. 열부터 식혀야 한다. 몸을 차게 해야 한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코르보는 옆으로 비켰다. 단발의 여자아이, 미카사 아커만이 살기를 풀풀 날리며 코르보와 엘런 사이에 끼어들었다.
"누구? -아니, 필요 없어. 왜 엘런을 괴롭히는 거지?"
"어, 어이! 미카사! 진정해라! 저 사람을 엘렌이 위험하다고 그런거야!"
미카사는 한네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코르보를 노려봤다. 얕볼 수 없겠군. 코르보는 왼 손을 휘둘렀다. 윈드 블레스트가 발동했다. 무시무시한 바람이 불어닥치며 미카사를 날려버렸다. 벽에 부딪히는 순간 미카사는 벽을 박차고 코르보에게 덤벼들었다. 쭉 뻗은 팔. 손목을 잡고 그대로 벽으로 던진다. 그럼에도 신음소리 하나 없이 다시 코르보를 향해 덤벼든다. 코르보는 미카사의 왼쪽으로 피하며 팔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목을 조였다. 미카사는 바둥거리다 기절했다.
"난폭하군. 강하고."
"미, 미카사를 그렇게 쉽게...."
"힘을 다루는 방법이 빵점이다."
코르보는 미카사를 엘런 옆에 눕혔다. 엘런은 의식을 잃은 미카사와 코르보를 번갈아봤다.
"어떻게...."
"자고 일어나라. 몸을 났게 해주지."
수건에 물을 묻혀 온 몸을 닦아내고 마른 수건으로 닦은 후 사타구니, 목 뒤, 이마 부분에 물수건. 에밀리가 열병을 앓을 때 소콜로프가 알려준 방법이다. 한네스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코르보의 말을 따랐다. 미카사를 가볍게 제압할 실력이면 자신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러지 않고 엘렌을 위한다고 하니 믿어보는 것이다.
소콜로프가 알려준 방식으로 몸을 식히고 코르보는 약초를 구해왔다. 소콜로프의 엘릭서를 익히며 배운 지식은 어디로 간 것이 아니라 몸을 보호하고 열에 대해 내성을 주는 약은 날이 밝기 전 만들 수 있었다. 엘렌도 추위를 느끼면서도 움직일 정도로 몸이 호전된 것에 놀라고 있었다.
"마셔라."
"으엑. 이게 무슨 색이야."
진득한 보랏빛의 액체는 딱 봐도 유해해 보였다. 질색한 엘렌이지만 코르보가 계속 들이밀자 눈 질끈 감고 쭈욱 마셨다.
"맛없어..."
"앞으로 두 시간동안 몸에서 계속 땀이 흐를거다. 계속 물을 마셔라. 땀과 함께 몸에 침입한 바이러스도 같이 빠져나올 거다."
"그 전에, 당신 대체 누구야? 어떻게 미카사를 그렇게 쉽게 제압하고, 이런 걸 아는거지?"
한네스는 없다. 미카사를 제압할 때 힘을 과하게 써서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잠시 망설이던 코르보는 입을 열었다.
"나는 '밖'에서 왔다."
그게 코르보가 생각한 변명이었다. 자신의 행동과 이 곳의 행동양식은 너무 이질적이다. 상식 자체가 다르니, 상식 밖의 변명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 자신의 행동들에 대한 변명이 쉬워진다.
"밖이라면, 설마 윌 마리아 바깥!?"
코르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렌이 고개를 쑥 내밀며 바다나 화산 같은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코르보는 엘렌과 대화를 나누며 생각보다 평범한 아이라는 것에 피식 웃고 말았다.
---------------------------
"정말로?"
"그렇다면 배울래."
"세상 모든 것을 적으로 돌려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제4화.
힘을 바라는 자(2)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오직 힘만이 정한다."
"그러니 우리는 생각하길 포기한 멍청이 뿐이다."
힘을 바라는 자(1) 3화
시나 안쪽에 도착한 코르보와 한네스는 헤어졌다. 이 세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코르보는 자신의 복장과 무기들이 이질적이라는 것을 한네스에게 지적받았다. 시나에 도착하고 복장을 바꾼 코르보는 이 세계의 상식을 익혀나갔다. 거인과 인간의 역사, 벽의 등장, 생산자와 조사병단, 주둔병단, 헌병단, 벽을 신성시 하는 교단, 왕족 등.
그 중에서 코르보가 가장 경악한 것은 이 세계의 치우친 지식들이다. 어째서 이들은 '벽'에 대해서 의문점을 품지 않는가. 거인이 그토록 강했다면 벽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며, 그걸 해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위업인지. 신이 내려줬다고 주장하는 책도 있지만, 사실적으로 역사를 기록한 책은 인간이 세운 것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거인의 혹독한 공격 속에서 저렇게 견고한 벽을 짓는가. 심지어 저 벽은 흠이나 틈이 하나도 없다. 문자 그대로 견고한 하나다. 마치 콘크리트를 틀에 부어 굳힌 것 처럼.
-진실을 구하든지.
-사람을 구하든지.
-지켜보겠다, 코르보.
상식을 익히고 이 세계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살핀지도 3개월. 이 세계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거인이다. 단절된 세계 안에 갖힌 인간은 거인이 어떤 존재인지 정의하지 못했다.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인간은 정체했고, 100년이란 시간동안 거인은 진화했다.
세상은 늘 그렇다. 살아남기 위해 포기한 무언가는 부메랑이 되어 나를 덮친다. 때론 생존을 위해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것도, 반드시 되돌아온다. 자유를 포기했고, 거인과의 대적을 포기한 인류는 어찌할 바 없는 약자였다.
-자, 그럼 어찌한다.
코르보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다크 비젼으로 보이는 벽의 안쪽엔 거인들이 서 있다. 등을 밖으로 등진 모습은, 마치 거인이 인간을 지키기 위해 벽이 된 형상이다.
밤마다 벽을 돌며 질문한다. 인류는 이것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벽에 의지할 수 없게 된다면 무슨 짓을 할 것인가. 교단은 이 사실을 아는가. 왕실은 무엇을 하는가. 거인의 목 뒤에 파묻힌 인간은 무엇인가.
"자, 자네! 여기에 어떻게 왔나?"
밤에는 사람이 없기에 기척을 줄줄 흘리며 다니니 순식간에 들켰다. 코르보는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을 봤다. 한네스다. 그의 얼굴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코르보는 다가오는 한네스를 손짓으로 저지했다. 그는 주둔병단이다. 거인은 밤에 움직이지 않는다. 정확히는 빛을 쬐지 않으면 무력화 된다. 가끔씩 이렇게 순찰을 돌며 벽 근처에서 무력화된 거인을 확인한다. 아마 그것 때문에 왔으리라. 품 안의 가면을 숨기며 한네스에게 걸어갔다.
"그, 뭐시기냐."
한네스는 어색한 듯이, 뭔가 부끄러운 듯이 딴청을 부렸다.
"고맙다고 해야 하나. 자네 말대로 살아있어야 뭐든 할 수 있더군."
"아아."
"그건 그렇고, 자네가 여긴 어떻게 왔나? 옷도 누더기가 아닌가!"
"내가 입던 옷은 너무 눈에 띄더군."
"아, 그 깜장옷은 확 튀지. 음, 자네 이름이 뭔가? 생각해보니 자네 이름도 묻지 않았군."
코르보는 망설였다. 여기서 본명을 말해도 될까. 아니면 침묵하는 것이 옳을까.
"코르보. 코르보 아타노."
"코르보! 좋은 이름이구만! 내 이름은 한네스네. 자, 이럴게 아니라 일단 내려가지. 혹시 돌아다니면서 본 거인들이 있나?"
고개를 젓는다. 다크 비젼으로 본 마리아 구역엔 거인이 없다. 보는 족족 다 죽여버렸다.
"일단 내 집으로 갈까? 보아하니 자네, 어디 갈 곳도 없어 보이는데."
사람은 누구나 잘 하는 것이 있다. 코르보는 한네스에게서 사무엘의 그림자를 보았다. 자신을 섬겨서 무척 영광스럽다고, 일생의 자랑이라며 끝까지 따르던 늙은 뱃사공. 사람 좋은 그는 배신보단 신뢰를 믿었고, 누구보다 약하지만 끝까지 선했던 이다. 그는 뛰어난 항해실력과 비상한 눈치보다 더 잘하는 것이 누군가를 신뢰하는 것이다. 아마 한네스도 그런 부류이리라.
믿어도 될까. 코르보의 망설임에 손등의 문장에서 빛이 스멀스멀 흘렀다. 일단은 보류다. 그를 좀 더 보자.
"그럼, 신세 지겠다."
"너, 누구야?"
"어이! 알렌!"
코르보는 자신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알렌의 눈초리에 조금 당황했다. 닮은 곳은 하나도 없는데, 어째서 자신이 죽어가면서도 지켜달라고 말했던 여자가 떠올랐을까. 고열로 앓아 누운채 끙끙 거리면서도 무척이나 배타적인 눈이다.
한네스는 알렌의 그런 모습에 기막혀 하면서도 미안하다고 코르보게에 사과했다. 역시 사람이 좋다. 코르보는 신경쓰지 말라고 말했다. 그리고 알렌을 살폈다. 12살이라고 했으니 체격의 작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마른 손발과 여윈 얼굴을 보니 애초에 여긴 영양사정이 그렇게 좋지 못함을 알 수 있었다. 코르보가 6개월간 얼음능선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면서도 체격을 유지하고 힘을 보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쥐고기 덕분이다. 먹어야 살고, 살아야 무언가를 할 수 있다.
"한네스. 이 사람은 위험해. 하아."
"어이, 알렌. 너 지금 열 때문에 헛소리를 하는 거냐?"
"피, 냄새. 난다고. 당신 말이야. 하아."
코르보는 품에서 칼을 꺼냈다. 2중 슬라이스 칼날이 들어있는 칼 손잡이를 빙글 돌리며 칼날을 꺼낸다. 칼날엔 굳어버린 피가 가득했다.
"이것 때문이군."
"허. 그 피는 뭔가."
"거인."
"거인이라고? 자네, 거인과 싸운 건가?"
코르보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 미터 짜리 기형종이라고 말했다. 한네스는 어안이벙벙한 표정이다. 당연하다. 기형이라도 오 미터 짜리다. 거기에 목 뒤를 정확히 파내지 못하면 죽지 않는다. 코르보는 주변을 둘러보다 작은 나무토막을 발견했다. 아무리 봐도 쓸려고 냅둔 게 아니다. 휙 던지고 이연속 베기를 펼쳤다. 나무토막은 세개로 나뉘어 떨어졌다.
"이걸로 죽였다."
"보, 보이지도 않는군. 하지만, 확실히. 그 정도의 속도로 거인의 목 뒤를 노린다면 충분하겠군."
코르보는 칼날을 수납했다. 엘렌도 한네스도 납득한 표정이다.
"아, 엘렌. 미카사는 어디로 갔냐? 그리고 은인은?"
"미카사는, 나무. 아버진 아직, 소식 없어. 하아."
엘렌에게 다가간 코르보는 그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뜨겁다. 단순한 열인가? 코르보는 엘렌이 덮은 이불을 들춰냈다. 온 몸이 발갛다. 한네스가 무슨 짓이냐며 달려들었다.
"열을 식혀야 한다."
"윽, 추워."
"엘렌이 추워하지 않나!"
"인간의 체온이 일정 이상 올라가면 위험하다. 열부터 식혀야 한다. 몸을 차게 해야 한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코르보는 옆으로 비켰다. 단발의 여자아이, 미카사 아커만이 살기를 풀풀 날리며 코르보와 엘런 사이에 끼어들었다.
"누구? -아니, 필요 없어. 왜 엘런을 괴롭히는 거지?"
"어, 어이! 미카사! 진정해라! 저 사람을 엘렌이 위험하다고 그런거야!"
미카사는 한네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코르보를 노려봤다. 얕볼 수 없겠군. 코르보는 왼 손을 휘둘렀다. 윈드 블레스트가 발동했다. 무시무시한 바람이 불어닥치며 미카사를 날려버렸다. 벽에 부딪히는 순간 미카사는 벽을 박차고 코르보에게 덤벼들었다. 쭉 뻗은 팔. 손목을 잡고 그대로 벽으로 던진다. 그럼에도 신음소리 하나 없이 다시 코르보를 향해 덤벼든다. 코르보는 미카사의 왼쪽으로 피하며 팔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곧바로 목을 조였다. 미카사는 바둥거리다 기절했다.
"난폭하군. 강하고."
"미, 미카사를 그렇게 쉽게...."
"힘을 다루는 방법이 빵점이다."
코르보는 미카사를 엘런 옆에 눕혔다. 엘런은 의식을 잃은 미카사와 코르보를 번갈아봤다.
"어떻게...."
"자고 일어나라. 몸을 났게 해주지."
수건에 물을 묻혀 온 몸을 닦아내고 마른 수건으로 닦은 후 사타구니, 목 뒤, 이마 부분에 물수건. 에밀리가 열병을 앓을 때 소콜로프가 알려준 방법이다. 한네스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코르보의 말을 따랐다. 미카사를 가볍게 제압할 실력이면 자신도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러지 않고 엘렌을 위한다고 하니 믿어보는 것이다.
소콜로프가 알려준 방식으로 몸을 식히고 코르보는 약초를 구해왔다. 소콜로프의 엘릭서를 익히며 배운 지식은 어디로 간 것이 아니라 몸을 보호하고 열에 대해 내성을 주는 약은 날이 밝기 전 만들 수 있었다. 엘렌도 추위를 느끼면서도 움직일 정도로 몸이 호전된 것에 놀라고 있었다.
"마셔라."
"으엑. 이게 무슨 색이야."
진득한 보랏빛의 액체는 딱 봐도 유해해 보였다. 질색한 엘렌이지만 코르보가 계속 들이밀자 눈 질끈 감고 쭈욱 마셨다.
"맛없어..."
"앞으로 두 시간동안 몸에서 계속 땀이 흐를거다. 계속 물을 마셔라. 땀과 함께 몸에 침입한 바이러스도 같이 빠져나올 거다."
"그 전에, 당신 대체 누구야? 어떻게 미카사를 그렇게 쉽게 제압하고, 이런 걸 아는거지?"
한네스는 없다. 미카사를 제압할 때 힘을 과하게 써서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잠시 망설이던 코르보는 입을 열었다.
"나는 '밖'에서 왔다."
그게 코르보가 생각한 변명이었다. 자신의 행동과 이 곳의 행동양식은 너무 이질적이다. 상식 자체가 다르니, 상식 밖의 변명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 자신의 행동들에 대한 변명이 쉬워진다.
"밖이라면, 설마 윌 마리아 바깥!?"
코르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렌이 고개를 쑥 내밀며 바다나 화산 같은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코르보는 엘렌과 대화를 나누며 생각보다 평범한 아이라는 것에 피식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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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그렇다면 배울래."
"세상 모든 것을 적으로 돌려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제4화.
힘을 바라는 자(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