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Story - 아야세의 경우 1화
사각사각…
"…에, 아니 저기"
사각사각…
"네? 왜 그러세요 오빠"
사각사각…
"저, 지나치게 연필을 뾰족하게 깎으시는거 같은데 기분탓인지요"
사각사각…
"………"
나는 지금, 아야세의 방에서 양손을 수갑에 묶인채로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왼손에는 침대 다리에 수갑이 묶여 있고, 오른손은 반대편의 책상다리에 수갑이 묶여 있는 상황.
아야세를 제지하기는 커녕 일어나지도 못하는 사태에서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말없이 빙긋 웃으며 나이프로 지나치게 연필을 뾰족하게 깎고 있는 아야세였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될려나…
**
쿠로네코와 연인이 된 후, 여러가지 있었던 사건들이 대부분 정리됬다.
키리노와 쿠로네코가 화해하고, 그 둘을 데리고 사오리에게 가서 전후사정을 설명하고, 다시 화해했다.
그 후 어머니에게 키리노 방문 때문에 혼나고, 아버지에게 왠지 모르게 칭찬받고, 쿠로네코와 충실한 데이트를 즐겼다.
아아, 이제 내 인생의 앞은 아름다운 꽃밭만 있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정말 크나큰 무언가를 잊고 있었다.
정말로, 차라리 그냥 끝까지 잊고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 분명하게 말하는데 사건의 임팩트로 보자면 잊는게 이상했다. 하지만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기억의 저 너머로 밀어넣은 데다가 의도적으로도 잊으려고 했겠지.
'공부는 제대로 계속 해 선배. 나 때문에 성적이 떨어졌다는 소리 같은걸 하면 용서하지 않을테니까'
라는 나의 여자친구님의 말 때문에, 진득하게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한지 세시간 정도.
은근히 집중력이 아닌 집중력이 있는 나이기에 한번 공부를 하면 꽤 오랬동안 한다. 이것에 대해 쿠로네코가 말하길
'집중력이 있다기 보다, 어떤 사건에 빠지면 뒷일도 생각 안하고 앞만 보는 바보네'
라고 했다. 쿠로네코의 말대로 생각해보면 그런 일이 많네.
키리노의 취미를 지켜주려고 그 무서운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대들거나,
키리노와 아야세를 화해시켜주려고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뻔뻔하게 해서 예비성범죄자가 되거나,
키리노의 작품을 돌려받기 위해서 편집자에게 욕하고, 엎드려서 울면서 빌거나,
키리노가 힘들어 하는 것을 볼 수 없어서 미국까지 날아가서 그녀석을 강제로 끌고 온다던가.
정말, 예전부터 느꼈던 거지만 정말 쿠로네코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 본인도 모르고 있는 부분을 잘 지적해준다고 해야되나?
그거에 대해 나는 쿠로네코에게 '너, 나중에 카운셀러 같은거 해보면 어때?' 라고 진지하게 말했더니, 쿠로네코는 정말 지금당장 부끄러워 죽을것 같은 얼굴과 음색으로
'무리야… 조,좋아하는 사람에 관련된 것만 자세히 아는거니까…"
라고 말했다.
아아 하느님. 이런 귀여운 여자친구가 생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그 다음에 쿠로네코 때문에 뿅가죽을뻔한 내가 쿠로네코를 갑자기 껴안았다가 무릎꿇고 설교를 받은건 또 별개의 이야기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죄다 키리노 녀석 때문에 그런 심한꼴을 당했던 거구만.
뭐, 확실히 잊고싶은 기억들이지만 내 선택을 후회는 하지 않는다. 전에는 추억다운 추억도 없는 (기억나지 않는것도 있겠지만) 남매사이에, 이제와서 생긴 소중한 추억들이니까.
…뭐? 어떻게 되먹은 시스콘이냐고? 아아, 분명 내가 여태까지 나는 시스콘이 아니라고 여러번 말했던것 같지만, 아무래도 나는 터무니없는 진성 시스콘인가봐.
주관적인 감상은 빼놓고 제 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분명 예전부터 그렇게 보였겠지. 나는 그저, 저 열받는 여동생을 좋게 보는 자신을 인정할 수 없었나보다.
음, 하여튼 그렇게 공부를 하다가 다음 과목을 하기 위해 책상 깊숙히 있었던 책을 꺼내려고 할때, 무언가 다른 재질의 물건이 잡혔다.
찰그랑
"찰그랑……?"
불길한 쇠의 느낌을 받으며, 그 물건을 꺼내보니
"………"
저번에 아야세에게 묶이고 나서 풀어놓은 그 수갑이었다.
"이거 확실히 저번에 돌려준다고 했었는데…"
그 순간 기억나는건, 쿠로네코와 가짜 데이트를 할때 봤었던 아야세의 모습이었다.
괴로운 표정으로, 나는 이해 못하는 말들을 하던 아야세는 쿠로네코에게 따귀를 맞았다.
그 후에 따로 쿠로네코와 아야세가 통화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의 원인인 가짜데이트 자체가 나 때문에 일어났던 일이니까 나도 사과를 해야겠지.
"끄응…"
사과 하는건 사과 하는건데…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설명해도 괜…찮을까?
「오늘은 그거로 참을테니… 나중에, 두고봐요!」
라는 아야세의 마지막 한마디가 떠올랐다.
나중에, 두고봐요!
나중에, 두고봐요!
나중에, 두고봐요!
"어버버…"
나는 머릿속에서, 최대한 익숙한 에로게임의 인터페이스를 꺼내서 대입하고, 상상했다.
「왜 그때 고코우씨가 제 따귀를 때린건가요!?」
나레이션 : 나에게 화를 내는 아야세. 이곳에서는ㅡ
1. 사실대로 말한다 <- 클릭
2.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사실, 내가 키리노 녀석에게 골탕을 먹이기 위해서 했던 가짜 데이트였는데…」
「죽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효과음 : 푹
나레이션 : 순간 배에서 차가운 느낌이 나더니, 다리가 없어진듯 스르륵 나의 몸이 무너져 내려갔다. 동상에 걸린듯 온몸에서 추위가 느껴졌지만, 유독 배 만은 따듯했다. 중심을 못잡고 옆으로 바닥에 쓰러지고, 희미해지는 의식속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피투성이의 식칼을 들고 있는 아야세였다.
-DEAD END-
"…역시 그만두자"
너무나 자연스럽게 데드엔딩이 확정된 미래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왜 그때 고코우씨가 제 따귀를 때린건가요!?」
나레이션 : 나에게 화를 내는 아야세. 이곳에서는ㅡ
1. 사실대로 말한다
2.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 클릭
「나도 어떻게 된건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대신 사과할게. 미안하다 아야세」
「…저에게 거짓말을 하는건가요?」
「에?」
효과음 : 푹
나레이션 : 순간 배에서 차가운 느낌이 나더니, 다리가 없어진듯 스르륵 나의 몸이 무너져 내려갔다. 동상에 걸린듯 온몸에서 추위가 느껴졌지만, 유독 배 만은 따듯했다. 중심을 못잡고 옆으로 바닥에 쓰러지고, 희미해지는 의식속에 마지막으로 본 것은, 피투성이의 식칼을 들고 있는 아야세였다.
-DEAD END-
"어쩌라는겨!?"
앞도 뒤도 데드엔딩이라고!? 설마 저거의 앞 분기점부터 꼬인거야!? 세이브 안했는데!?
그냥 못본척 할까? 아니, 저 수갑 확실히 진품이라고 했으니까 없어지거나 하면 큰일인거 아니야? 아니, 죽지 않는 다른 제 3의 선택지가…
내가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고 있으니, 옆방에서 키리노 녀석이 벽을 쾅쾅! 치면서
"아 조용히좀 해! 너 때문에 우리 미야비 목소리가 잘 안들리잖아!"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고! 못들었으면 백 로그로 다시 들어!"
그리고 다시 날아올 키리노 녀석의 독설에 대항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키리노는 말이 없었다.
나하고 싸우고 있을 빠에 에로게임을 좀 더 진행하겠다는 생각이겠지. 정말 대단한 에로게이머로서의 귀감이네…
그러고 보니, 저 녀석은 대체 언제 공부를 하는거지? 현에서 손가락 내로 들어갈 성적이면서도, 난 저녀석이 공부하는 모습은 단 한번도 보지못했다.
"으…"
내가 말을 꺼냈기도 했으니, 어찌되던 돌려주기는 해야겠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이때 그냥 못본척 하는게 좋았을 듯 하지만…
만약 판타지처럼 내가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저 상황이 된다던가,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온 상황이라도, 나는 아무래도 똑같은 선택을 했을것 같다.
…일단 아야세에게 돌려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