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쿄우스케는 코스튬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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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 3화


"병문안 가봐야 하는거 아니야?"

"저도 가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소이다만…"

"……"

쿠로네코가 오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평소처럼 모여서 나름대로의 걱정을 하고있었다.

언제나 자신감 넘치고 저돌적인 키리노는 평소같았으면 바로 쿠로네코의 집에 쳐들어갔겠지만 그럴 수 없는게, 쿠로네코의 마지막 연락 때문이었다.

'오늘도 몸이 좀 안좋아서 사양할게. 신경쓰지마. 되도록이면 병문안 온다던가 하지 말아줘'

내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낸 것이 아니고 키리노의 핸드폰에 연락을 했다는 점이 의아했다.

몸은 괜찮냐는 내 문자에도 답장이 없고, 키리노가 자신에게 연락온 것을 나에게 알렸을 때 또 전화를 하였지만, 그때도 역시 쿠로네코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받지 않은건지, 받지 못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마치…

그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구체적인 단어로 바뀌기 전에 나는 살짝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의도적으로 불길한 생각을 그만뒀다.

"괜찮소이까? 쿄우스케씨"

"아… 아아. 괜찮아"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사오리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 정도로 죽을 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기분이 다운돼 있는건 나 자신도 알 수 ​있​었​다​. ​

"켁. 매주마다 만나는거 어쩌다 한번 안왔다고 완전히 죽을 상을 해가지고는… 마나언니 때도 그러더니 완전 진상이야 너"

사오리와는 반대로 한심하다는 얼굴로 조소하는 키리노.

왠지 모르게 어제 했었던 [시스터x시스터 콤플렉스 ~완벽초인 여동생~]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키리노와 판박이인 완벽초인 여동생이, 자기가 좋아하는 오빠가 무슨 일이 있어서 우울해 하거나 하면 쏜살같이 달려와서 독설을 내뱉는 장면이 많다.

뭐, 전형적인 새침떼기 케릭터인 것도 있지만, 당연히 이 여동생은 자기가 좋아하는 오빠가 힘들어 하는 것을 보기가 힘들어서 '그런건 어서 털어버리고 일어나!' 라며 나름의 방법으로 오빠를 위로해주는 거다.

오빠는 그런 여동생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애지간히 눈치가 없는 ​오​빠​라​니​까​. ​

현실은 게임과는 다르기에, 게임처럼 감정묘사가 자세히 나와있는 것도 아니니까. 키리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이 해?"

내가 평소같이 키리노의 조소에 반응하지 않고 키리노의 얼굴을 멍하게 보고있으니 키리노는 약간 걱정하는 표정으로 다시 말했다.

"아무것도…"

'너랑 완전히 똑같은 에로게임 케릭터 생각했어' 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응?

아니, 잠깐만…

"키리노"

"왜"

"마나언니… 라니?"

"!!??"

내가 피로해서 잘못들은 걸까, 아니면 이곳이 다른 세계선인걸까, 내가 약간 창백해진 얼굴로 그렇게 묻자, 키리노는 나보다 한참은 더 창백한 얼굴이 됬다.

"아, 아니야! 이제 별로 미워할 이유가 없으니까 평범하게 옛날처럼 부르는 거라니까?"

'아니야' 라는 말만 넣으면 부정문인줄 알고 있는게 아니라면, 역시 키리노는 당황했을때 괴멸적으로 거짓말을 ​못​하​는​구​만​… ​

"예전에는 무슨 이유로 미워했는데?"

"앗, 저, 그, 아니 그게 그러니까…"

궁지에 몰린 쥐를 몰듯이, 나는 키리노에게 얼굴을 가까이 하며 계속해서 물었다. 그러자

"시,시끄러워!! 알바 아니잖아!!"

"커헉!"

그대로 내 명치에 전력으로 헤딩을 꽃아넣고 키리노는 방에서 나가 그대로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거실로 뛰어갔다.

키리노의 타격을 맞은것도 오랜만이네… 몸이 기억하고 있는지, 거의 바로 몸이 반응해 등을 뒤로 빼서 피해를 최소화 한게 다행이다. 훗. 장하다 내몸.

뭐, 그런식으로 약간 뿌듯해 하는 표정을 지은 상태로, 지렁이같이 바닥에 고꾸라져 있는것만 아니면 더 좋았겠지만.

"쿠로네코씨라면 분명 다음주에 만날 수 있을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이다"

오타쿠 차림의 사오리는 그 차림에 어울리지 않은, 예의바른 자세로 차를 마시며 말했다.

**

요번 일주일은 정말로 한달처럼 느껴졌다. 공부도 손에 잡히지 않고, 키리노의 에로게임도 손에 잡히지 않고, 그저 멍-한 상태로 보낸 ​일​주​일​. ​

정기적으로 쿠로네코 포인트를 획득하지 못하면 죽는 병에 걸린것 같다고 정말…

하지만 그런 나의 바램에도 불구하고, 전날 키리노가 내 방문에 노크까지 하며 들어와서 보여준건 쿠로네코의 문자였다.

'이래저래 일이 있어서. 미안'

설상가상으로, 사오리까지 집안 행사 때문에 오지 못하여, 이번주는 평소처럼 놀지도 못하게 되었다.

저번주에 쿠로네코가 못나온것을 알기에 괜찮다고 해도 몇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고 하는 사오리한테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할 정도라고.

"그녀석,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성에 갇힌 공주님이라도 연기할 셈!?"

키리노는 이까지 뿌득이며 화를 내고 있었다. 자신의 소중한 친구와 놀지 못해서 화가 난것인지, 아니면 나를 걱정해줘서 그런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바보취급 당했다고 생각하는건지, 모르겠지만.

"어, 어디가?"

"…잠깐 바람좀 쐬러"

그런 나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도, 키리노는 안절부절 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아마도, 나름 걱정해주고 ​있​는​거​겠​지​. ​

"정말 바람만 쐬러 나가는거야. 너답지 않게 왜그러냐? 이 브라콘이"

내가 히죽거리면서 그렇게 말하자, 여태까지 보는 쪽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로 애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키리노는 한순간 얼굴이 붉어지더니

"이…!! 바보! 멍청이! 등신! 해삼! 말미잘! 나가!!"

역정을 내면서 침대위에 있는 인형을 마구 던지면서 말했다.

인형을 다 던지면 이제 뭔가 딱딱한 것이 날아올 것이 틀림없기에 나는 대답도 안하고 그대로 집밖으로 나왔다.

바람을 쐰다고 해도 마땅히 갈곳도 없기에 정처없이 걷다보니 도착한 곳은 동네의 공원. 

일요일의 오전이라 동네에 사는 꼬마애들도 많이 있었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고 한가운데에 있는 그네에 앉았다.

'키리노 녀석은 기운좀 차렸을려나…'

키리노가 기운이 없을 때는 같이 바보짓을 해주는게 가장 좋은것 같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그런 표정을 짓는다는게 슬픈것도 있지만 그 대상이 여동생이라면, 정말 오빠 실격이라고..

"하아…"

기름칠을 한지 오래된건지 그네에 앉은 채로 살짝 움직이자 삐걱이며 기분나쁜 소리가 났다.

그 소리 때문에 그런건지, 순간 뭔가 머릿속에서 뚝- 하며 끊어지더니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도대체 뭐냐고!!"

양손으로 머리를 싸맨채, 폐에 있는 모든 산소를 뱉어내며 소리질렀다. 목에서 피맛이 느껴질 정도의 착각.

공원에 있는 꼬마애들이 전부 미친사람을 보는것처럼 쳐다보고 있지만, 이제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고…

누군가, 누구라도 좋으니 이야기를 하고싶다. 상담을 받고싶다. 인생상담, 이라기 보다 연애상담이라고 할까…

하지만 내 주위에 이성을 많이 사귀어본듯한 사람이라고 해도, 미카가미 녀석밖에 생각이 안난다.

그렇다고 쿠로네코와 나를 위해 정성을 다해 커플링까지 만들어준 그녀석에게 연락을 하기엔 망설어졌다. 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그녀석에게 상담하라는 ​거​야​…​? ​

나는 반쯤 포기한채로 핸드폰의 전화번호부를 열은후 아래 키를 꾹 누르고 10초정도 있다가 통화키를 눌렀다. 아무나, 아무한테나 연결되겠지…

「옷-스. 네 쪽에서 전화를 걸다니 의외네. 무슨일? 카나코 오늘 좀 바쁜데」

"아… 좀 상담하고 싶은게 있는데… 조금 통화 가능하냐…?"

「어디 아파? 목소리가 다죽어가는데. 아아 카나코 말야~ 지금 행사뛰고 있거든. 지금은 휴식중. 켁, 오늘도 오타쿠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대성황이라니까. 이대로 차곡차곡 카나코는 국민아이돌에 가까워지는 거겠지♡」

"확실히 너라면 충분히 가능할거야"

「……? 물론 맞는말이긴 하지만 너 오늘 묘하게 이상하다구? 흥. 그래서 상담이 뭔데? 카나코가 도움이 되는거라면 도와줄테니까」

이녀석 입에서 그렇게 순순히 '도와줄게' 라는 말이 나올줄은 몰랐지만, 이녀석도 근본은 좋은 녀석이니까. 솔직하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잠깐 휴식중이라고 하니, 나는 최대한 간결하게 있었던 이야기를 말했다.

"…그렇게 된건데"

「으으므…」

전화너머의 카나코는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듯 하더니, 이내 평소와는 다른, 조금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길거리에서 적당한 남자 붙잡아서 밥 사게 한다던가, 악세사리 사달라고 하다던가 하면서 가지고 논적은 좀 있지만. 솔직히 카나코도 연애경험은 거의 없거든? 말하자면 카나코는 요즘들어 보기 힘든 완전 순수녀야」

"자기 입으로 가지고 논다고 해놓고 순수녀라고 하냐"

「뭐뭐, 그건 중요하지 않으니까 둘째치고. 하여튼, 그런 나의 말이니까 딱히 '이게 정답이다!' 라고 말할 수는 없어. 하지만 카나코 친구들이라던지, 이야기 들어보면 비슷한 경우도 있었거든. 그러니까ㅡ」

그렇게 말한 카나코는 한타이밍 쉬더니

「그거, 평범하게 차인거 아냐?」

내가 생각하기 싫었던- 아니, 생각했으면서도 잊으려고 했었던 말을 입에 담았다.

「하루카라는 친구가 있는데, 그녀석도 사귀던 남친이 이사를 가서 원거리 연애를 했거든. 꽤 거리가 됬어서 거의 한달에 한번 만났나? 그랬을꺼야. 근데 어느 순간부터 연락도 잘 안되고, 남자친구가 왠지 대충 대답하는거 같아서 나중에 알고보니까 그쪽 학교에서도 또 여자친구를 만든거야. 말하자면 양다리라는 거지」

카나코는 쳇. 하며 혀를 차더니, 이 이야기를 생각해낸것 자체가 기분이 나쁜지, 불만인듯한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잖아? 다행히도 일방적으로 차인게 아니라, 하루카도 마음이 멀어졌는지 '그래? 그럼 헤어지지 뭐' 하더니 끝났었어」

카나코의 말대로, 쿠로네코가 처음 전학을 간다고 했을때 불안하게 생각한 것이 있었다.

원거리 연애라던가, 마음이 멀어진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쿠로네코는 자존심도 무척 강한 주제에 소심한 성격이고, 만년 중2병 속성에, 독설까지 아무렇게나 하는 여자다.

그렇지만 외모만 봐서는 그 키리노랑 비교될정도로 엄청난 미인이다. 인형같은 긴 흑발. 군살없는 슬랜더한 몸매. 눈부시게 하얀 피부. 키리노와 같이 시부야 거리라도 걷는다면, 독자모델 스카웃 제의가 올거라고 100% 확신할 수도 있다.

게다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게 서투르기 때문에 초면에는 착각할 수도 있지만 배려심 깊고 상냥하다.

그러니까,

쿠로네코가 전학간 학교에서, 쿠로네코에게 호감을 가지는 남자가 적어도 한둘은 아닐거다…

같은 고등학교를 다닐때는, 아직 쿠로네코를 이성으로 좋아하는지 조차 인식하고 있지 못했던 이유도 ​있​지​만​, ​

학교에서 '1학년 미소녀 여친을 데리고 다니는 3학년 도둑놈' 이라는 내용의 이야기가 있었다. 물론 나도 어느정도 듣고는 있었던 이야기다. 그게 설마 나와 쿠로네코의 이야기 일줄은 꿈에도 몰랐다. 쿠로네코와 사귄 이후, 세나가 말해줘서 알게 된거니까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연인끼리 다녔기에 그 학교에서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전학을 간 상태라면… 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내 자신에게, 자신이 없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만 해도 하나같이 장점투성이의 뛰어난 녀석들뿐.

독자모델이면서 완벽초인인 키리노와 아야세. 쿨한 성격으로 남자,여자에게 모두 인기많고, 얼굴도 잘생기고 운동도 잘하는 아카기. 요리를 잘하고, 누구보다도 상냥한 마나미. 키리노와 비슷한 스펙에다가 마음씨까지 넓은 미카가미. 아이돌 지망생으로 다재다능한 카나코와 브리짓. 게임제작에 재능있고 똑부러진 세나. 우리 모임의 리더이며, 카리스마도 있고 포용력도 있는 사오리.

물론 그 모두에게, 단점이라고 부를만한 것들도 존재한다. 키리노와 브리짓은 오타쿠고, 아야세는 고집이 강하고 자신의 주장을 잘 접지 않으며. 아카기녀석은 시스콘에다가. 세나는 부녀자. 카나코는 성격이 그모양. 마나미는 음… 마땅히 없군.

하여튼, 그런 녀석들과 지내면서 어느날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의 장점'은 무엇일까- 하고

그리 진지하지 않은 생각으로 몇날몇일을 고민해본 결과, 마땅히 장점이랄 것이 없었다.

그도 당연한게 키리노 녀석이 떨어트린 CD를 줍기 전부터 내가 바래왔고, 그렇게 행동했던 삶의 모토는 '평범한 삶' 이었으니까.

당연히, 평범하게. 무난하게. 아무런 특색없이. 그저 흘러가는데로 살아왔으니까.

자신의 취미를, 고집을, 꿈을, 혹은 다른 것들을 위해 개성적으로 살아갔던 그녀석들이랑 비교해서, 내가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한 것이다.

내가 포기했던 것들을, 그녀석들은 쟁취하기 위해 온갖 시련을 뛰어넘었으니까. 키리노 녀석이 말한데로, 나는 '여동생에게 상냥한' 정도밖에 장점이 없다. 아니, 애초에 그건 동생을 가진 오빠라면 누구나 해야되는 일이잖아? 그렇다면, 장점이라고 부르기도 뭐하네

그러니까,

나보다 인격적으로도, 개성적으로도 뛰어난 남자가 쿠로네코를 좋아하고. 쿠로네코도 나에게 질려한다면. 나는 쿠로네코를 붙잡을 수 있을까? 무슨 낯짝으로? 무슨 이유로? 무슨 권한으로? '진짜 좋아한다면 놔줘야 한다' 라는 싸구려 에로게임 같은 전개는, 게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런 이유로 놔줄리가 없잖아.

'계속 사귀면서 고코우씨도, 오빠의 한심한 부분에 질릴게 분명하니까요'

아야세의 말대로, 내 한심한 모습에 질린걸까.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걸까.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에서 도망쳤던 나는 겁쟁이다. 정말로, 한심하다.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 이 정도로 한심하니 쿠로네코가 나에게 질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겠지…

「아. 휴식시간 끝났어. 이만 끊을게」

"…아아. 고맙다."

「…………좀 더, 주위 사람들을 의지해봐. 다들 도와줄테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는 끊겼다.

"제길……"

사람을 좋아한다는게, 이렇게 복잡하고 괴로운 일이 되는거였구나.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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