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쿄우스케는 코스튬 플레이어


원작 |

<IF> 10권. 6화




**

모임이 끝난 후, 나는 곧바로 쿠로네코, 사오리와 함께 전철을 타러 밖으로 나왔다. 자신의 집에서 나와 자취방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뭔가 또 묘한 기분이 들게 했지만, 겨우 하루도 안되서 꼬리를 말기엔 내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는다고.

집에서 나올때 키리노는 무언가 무척이나 기분이 나빠 보였다. 친구들끼리 만나기 전부터도 그랬는데, 놀때는 괜찮았지만 모임이 끝나고 나서는 그 얼굴에 확실히 '나 지금 기분 나빠'라고 써져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럼, 또 다음주에 보자"

"다음주엔 쿄우스케씨의 자취방으로 집합입니다!"

"네네, 알았다니까"

집이 반대편인 사오리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온 전철을 탔다. 전철이 움직일때까지 무지막지한 기세로 팔을 흔드는 거인녀를 배웅한뒤, 나는 쿠로네코와 함께 반대편으로 향하는 전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전 쿠로네코가 이사를 간 곳을 마츠도. 저번에 키리노와 같이 놀러 간적이 있는데 전철 시간과 걷는 시간까지 합치면 대충 한시간 정도 되는 거리였다. 나는 걷는 시간이 많기는 하지만 겨우 30분 정도로 이렇게 귀찮은데, 쿠로네코는 용케 잘 다니고 있구나.

"당신"

"응?"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멍하니 서 있자, 옆에서 쿠로네코가 불렀다.

쿠로네코는 전철이 들어오는 플랫폼 쪽을 쳐다보며, 나에게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멍한 얼굴로 말했다.

"자취는 왜 하게 된거야?"

"뭐 어쩌다 보니"

"흐응…"

그러자 쿠로네코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봤다.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하는 내가 어설프게 거짓말을 할빠에, 그냥 애매하게 대답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것 같다.

"………"

그런 진실을 요구하는 눈으로 쳐다본다고 해도 어머니가 남매사이를 오해하고 있다. 라고 이런걸 솔직히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잖냐!

쿠로네코는 그런 나의 표정을 지긋히 관찰하다니,

"뭐, 예상은 가지만"

"에, 진짜?"

"시스콘 남매에게서 생기는 문제는 전부 여동생 때문이니까"

"윽"

아까도 말했듯이, 나는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뭐라고 반박할 수가 ​없​었​다​. ​

쿠로네코는 그런 나의 행동에서 확신을 얻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당신 여동생은 당신이 자취를 하고 있다는걸 비밀로 하려고 했겠지"

"너…"

나는 이번에도 뭐라고 반박을 하지 못한채, 고개를 돌려 쿠로네코의 얼굴을 ​쳐​다​봤​다​. ​

그러고 보니, 아까도 한번에 내가 자취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 냄새 라고는 말했지만, 사람이 개도 아니고 정말로 냄새로 맞춘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무언가로 눈치를 채고, 곧바로 내 방을 확인하고 낸 결론이겠지.

키리노의 말처럼 중2병에 걸린 전파계 케릭터지만 이녀석, 사실은 진짜로 사기안인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그러자 쿠로네코는 내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것으로 눈이 마주치자, 쿠로네코는 아까와 같이 무표정으로 말했다.

"이런건 마안(魔眼)을 사용할 필요도 없어. 당신 여동생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는 거니까"

"또 읽혔어!?"

이 정도면 진짜 무서운데!!? 쿠로네코씨!? 이것도 읽고 있는건 아니죠!?

"훗"

쿠로네코가 그렇게 웃자, 안내음과 함께 플랫폼 쪽으로 전철이 들어왔다. 우리는 그런 바보짓을 잠깐 멈추고 전철에 올라탔다.

"어라, 자리가 많네"

오늘 올때만 하더라도, 토요일이라 그런지 엄청나게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앉을 자리도 없었던 아까와는 다르게 지금은 자리가 꽤나 널널히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내가 빈 공간에 앉자, 쿠로네코가 내 옆자리에 앉으면서 대답했다.

"당연히 오전에는 번화가 쪽으로 가는 전철이 사람이 많아. 퇴근시간엔 반대고"

"헤에… 사실 이쪽 방향은 그렇게 자주 와보지를 않아서. 그러는 너는 퇴근시간에도 자주 다니는 거야?"

"저번 아르바이트 때문에"

그것을 마지막으로 대화는 끊겼다.

덜컹. 덜컹.

묘하게 리듬감 있는 전철의 소리를 멍하니 듣고 있으니, 눈 깜짝할 새에 15분이 지나가 있었다.

다음 점거장이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이라는 안내음을 듣고, 나는 쿠로네코에게 말했다.

"나는 다음에 내려"

"그래"

쿠로네코는 앞으로 20분 정도 더 가면 되는건가. 으음. 다음에는 사오리의 집이나 쿠로네코의 집에서 노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 뭐 물론, 다음주는 내 자취방으로 이미 결정됐지만.

그렇게 이번에야 말로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에 다 왔다는 안내음이 ​나​왔​다​. ​

"선배"

"응?"

문이 열리기 전, 내가 미리 자리에서 일어나니 쿠로네코는 관심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한채 건성으로 말했다.

"선배가 자취하는 곳. 주소를 알 수 있을까"

"주소?"

"다음에 갈때 헷갈리면 곤란하니까"

정거장에 도착함에 따라 전철은 서서히 느려졌고, 이내 완전히 ​정​지​했​다​. ​

으음. 그건 다음주가 되기 전에 문자로 다 전해주려고 했는데. 미리 알아둬서 나쁠 거야 없겠지.

나는 문이 열리기 전, 쿠로네코에게 내가 기억하는 주소를 ​알​려​줬​다​. ​

"응"

"그럼, 다음주에 보자 쿠로네코"

전철의 문이 열리고 내가 나가면서 그렇게 말하자, 쿠로네코는 내 등에다가 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내일 봐 선배"

**

그렇게 전철에서 내린 뒤 다시 한참을 걷자, 내가 자취하는 건물이 보였다.

"다시 봐도 크구만"

저 옆에 딱 붙어있는, 딱 봐도 비싸보이는 맨션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걸까. 

아니 뭐… 딱히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살고 있는 저 조그마한 원룸에도 빈 공간이 남을 정도인데, 저 정도로 큰 집에 산다면 진짜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

다만, 그냥 궁금할 뿐이다. 그 변태 부장이 말하던 모 애니메이션 처럼 창문 너머 옆 건물에 사는 여자아이와의 썸씽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라고.

뭐라고 할까, 키리노와 취미가 맞는 여자아이를 찾아내서 서로 친해지면 키리노도 자신과 취미가 같은 친구가 한명 더 생기는 거니까.

뭐, 그것도 이미 쿠로네코나 사오리. 그리고 부녀자 세나 같은 녀석들이 있으니까 키리노도 이제는 문제가 없겠지만 말이다.

"응?"

그런 생각을 하며 그 호화스러운 맨션을 지나쳐 가려고 할때, 어디서 본듯한 사람이 보였다.

허리까지 오는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 머리에 작은 체구의 여자아이. 뭔가 연관점은 없는듯 하면서도, 분명 어딘가에서 본듯한 그런 데자뷰가 느껴졌다.

"착각이겠지 뭐…"

뭘 기대한거냐. 그런 착각만으로 모르는 여자아이에게 말을 걸수 있다면 여태까지 여자친구가 없을 리가 ​없​잖​냐​. ​

……얼마 전엔 있었지만, 차였었지.

내가 눈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집게 손가락으로 눈고리를 누르고 있었을 때였다.

툭. 하고, 그 갈색 머리의 여자아이가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 여자아이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그대로 맨션의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저기요!"

물건 떨어뜨렸는데요! 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대로 쏜살같이 맨션에 들어간 여자아이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그대로 사라졌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여자아이가 떨어뜨린 물건을 집었다. 절대로 말하는데, 딱히 꼬시거나 하는게 아니라고. 잃어버린 물건은 돌려줘야 하는게 예의지.

"음…"

그 여자아이가 떨어뜨린 물건은 책이었다.

아니, 책 사이즈 정도의 노트였다. 헤지고 헤져서, 한 5년은 사용했을 법한 커다란 노트.

그 안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주인에겐 정말로 미안하지만,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노트를 펼쳐봤다.

"우와…"

노트 안에는 그림과 글이 가득했다.

초보인 내가 보기에도 엄청나게 잘 그린 그림. 그것도, 엄청나게 공을 들여 그린 그림이 아니라 연필로 대충 그린 듯한 그림에서 전문가의 솜씨가 느껴졌다.

아니, 이런 것을 뭐라고 부르더라? 확실히, 저번에 다같이 코미케에 참가할때, 쿠로네코가 그렸던 그림에서 봤었던 것과 비슷했다. 콘티라고 하던가?

그런 전문적인 그림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그림 노트. 하지만 노트라고 부르기에도 정홪하지 않은 것이, 그 그림 사이에 빽뺵하게 무언가가 쓰여 있는 것이다. 그림과 글의 비율이 5:5 정도니, 단순히 그림 노트라고 하기엔 부적절 ​하​겠​지​. ​

나는 무심코, 그 안에 쓰여져 있는 것을 읽었다.

"타천의 나락의 지배자로서 영겁의 시간동안 자신의 죄에 업화하며 저주하다 진:케르베로스의 ​마​진​살​술​(​魔​鎭​殺​術​)​에​ 빠져…… 엥?"

무언가 있어 보이는 듯한 내용에, 일부러 어려운 한자만을 고집하여 쓴듯한 설정글.

나는 이런 내용이 세상에서 뭐라고 불리는 장르인지, 이미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어라, 잠깐만. 이거 설마"

나는 휘리릭, 노트를 뒤로 돌려 다른 그림들도 살펴봤다. 거기엔 매끄러운 근육질에 붉은 눈을 가진 검은색의 개와 역십자의 프릴이 가득 달린 드레스를 입은 고혹적인 여성. 그리고 매사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듯한 죽은 눈을 한채 한손에 가면을 들고 있는 핸섬 가이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이 케릭터들은, 이미 나도 잘 알고 있는 케릭터들이었다.

"마스케라 잖아?"

그렇게 좀 더 살펴보고 내린 결론은, 이것은 마스케라의 원안 이라는 것이다. 아주 당당하게 자신이 창조한듯한 세계관에 대한 설명과 주석이 달려 있고, 그것은 내가 본 마스케라와 조금도 틀리지 않게 똑같았다. 그렇다고 그것을 좋아하는 팬이 정리해뒀다고 하기엔 다음의 스토리 전개라던가, 신 케릭터라던가, 그런 내용까지 그려져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살짝 고개를 들어 호화스러운 맨션을 올려다 봤다.

방금 이것을 떨어뜨린 갈색 머리의 여자아이가 사는 커다란 맨션. 이런 맨션에서 살 정도라면, 무척이나 잘 나가는 사람일 것이다.

지금 내 손에 들려 있는 이 노트와 이 커다란 맨션.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밖에 없겠지.

"마스케라의 원작자가 여기 사는구나"

이건 뭔가 운이 좋구만.

당연히 작가에게 이 물건은 무척이나 소중한 것일 것이다. 동시에 팬들에게 팔면 엄청난 고가로 팔릴 정도의 물건이겠지만, 그런 지저분한 생각들 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이것을 빌미로 협박……… 아니, 이거는 어제 한 에로게임의 내용이고, 일단 이것을 돌려주면서 친필싸인 정도를 받도록 해야지. 쿠로네코가 무척이나 좋아할것 같다.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