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10권.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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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응…"
시끄러운 자명종 시계의 알람에 잠이 깬 나는 그렇게 한참을 침대에서 뒤척였다. 아무래도 나는 키리노랑은 다르게 아침에 약한 인간이기에, 조금 힘들거나 피곤하면 아침에 일어나는것이 힘든편에 속하니까, 매일 아침은 이런 느낌이었다.
"아… 학교… 응…"
얼마전까지라면 마지못해 결국 어머니가 깨워주셨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자취를 시작한 마당에, 일어나기 힘들다고 일어나지 않으면 무조건 지각을 할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몸은 침대의 푹신한 마력에 빠져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나릇한 몸에 채찍질을 하여 침대에서 일어난건 5분씩이나 지나고 나서였다.
맹한눈으로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면서 생각해보자 최근 몇일동안은 이렇게 일어나기 힘든일이 없었던것 같았다. 아니 뭐, 어제는 충분히 정신적으로 피곤한일이 있긴 있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전에도 힘든일이 없었다고 하기엔 뭐한데 말이야.
"아… 그런가?"
수건으로 얼굴에 묻은 물기를 훔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마 그런거겠지. 낯선 집에서 낯설게 느껴지던 생활 때문에 피곤함을 느낄새도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 이제는, 편하게 '나의 집'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익숙해졌다는 의미가 아닐까?
뭐, 나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은후, 근처 편의점으로 걸어가 도시락을 하나 사왔다. 저녁에 사먹을땐 어쩔 수 없이 남는걸 사왔었지만, 아침에는 아직 팔리기 전의 인기메뉴들이 많기에 아침식사는 저녁보다 맛있게 먹는 느낌이었다. 그래봤자 편의점 도시락이긴 하지만. 아, 쿠로네코의 도시락. 또 먹고 싶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다시 아침을 때우고 양치를 한후, 등교준비를 마친 나는 핸드폰을 꺼내 단축번호 1번을 길게 눌러, 키리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번호를 알게된것 자체가 얼마 되지도 않고, 통화횟수조차도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정도라서 단축번호에 지정할 필요도 없는 녀석이긴 하지만, 뭐, 동생이니까.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이상하다…"
하지만 키리노의 핸드폰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전원이 꺼져있었다. 뭐라고 할까, 여중생에 대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요즘 애들은 특히나 핸드폰에 집착하지 않던가? 특히 키리노는 독자모델 관련으로 연락이 올수도 있겠고, 핸드폰으로 소설을 쓸 정도로 핸드폰에 숙달된 녀석인데, 왜 하루종일 충전을 안한거지? 갑자기 핸드폰이 고장나거나 했을리는 없을텐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다시 한번 키리노에게 통화를 하려고 했지만, 슬슬 출발하지 않으면 진지하게 지각이 걱정되는 시간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학교로 향했다.
"오우, 코우사카"
"왜"
5분 정도 일찍 교실에 도착하자, 내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의 친우이자 극렬 시스콘인 아카기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언제나처럼 귀찮다는 듯이 대충 대답하자, 아카기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어이어이, 요즘따라 왜그렇게 쌀쌀맞냐?"
"내가 너한테 안쌀쌀맞은적이 있었냐?"
"요즘따라 심하다고~"
"……!"
왠지 카악! 하고 가슴속에서 덩어리가 진듯한 짜증감이 올라왔다. 순간 아카기 녀석에게 뭐라고 쏘아붇일뻔했지만, 나는 어떻게든 그걸 참은 후, 최대한 짜증을 지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하다 나.
"요즘따라 심하다니, 무슨말이냐?"
그러자 아카기는 그런 나의 얼굴을 바보를 보는듯이 쳐다보면서,
"봐봐, 지금도 얼굴에서부터 짜증을 내고 있잖냐"
"……내가?"
내가 짜증을 낸다고 말을 하면서도, 아카기 녀석은 히죽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뭐, 이녀석이 사람이 좋은 녀석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아니, 그러고보니 이녀석이 화내는건 한번도 본적이 없…… 자기 여동생 이야기 할때 화냈었구나. 대단한 시스콘 녀석.
"왜, 요즘 무슨 짜증나는 일이라도 있냐?"
"글쎄… 어디보자…"
나는 양팔을 팔짱끼고, 한번 곰곰히 생각해봤다. 어디보자, 요즘 무슨 짜증나는 일이 있었던가? 하지만 아무리 진지하게 생각을 해봤자, 딱히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요즘이라고 했으니 어제일은 아닐테고, 해봤자 자취를 시작한일. 정도일까? 그거라면 확실히 피곤한일이 맞기야 하겠지만. 그것이 남에게 티가 날 정도로 짜증이 났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뭐, 별거 없는데?"
"그러냐? 아 코우사카, 그것보다"
아카기 녀석은 내가 짜증을 낸것에 대해 조금도 기분이 상하지도 않았는지, 다시 실실 웃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어떻게, 저번에 그 인생상담은 잘 해결됐냐?"
"푸훕-!"
"우왓!?"
"그 단어는 잊어! 하다못해 그냥 상담이라고 말하라고!"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아카기 녀석은 갑자기 죽일듯이 달려드는 내 모습에 당황해 식은땀을 흘렸지만, 나는 그 배는 더 흘리고 있었다. 정말, 왜 그때 하필 인생상담이라는 말을 꺼냈어가지고… 키리노가 하면 괜찮겠지만, 다른 사람이 하면 그 이상 유치한 말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라고 이거. 그래. 전부, 키리노 때문이다!
내가 얼굴에 오르는 열을 느끼며 숨을 씩씩대고 있어도, 아카기 녀석은 '응? 어떻게 됐는데?' 라면서 계속해서 물어왔다. 진짜 짜증나네 이녀석!!
"어떻게든 해결됐어"
내가 짜증을 내다시피 대충 대답하자, 아카기 녀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엉? 선을 넘어버렸냐?"
"내가 너냐!!? 아니, 애초에 우리 남매보다 너희 남매가 위험해도 한 세배는 위험하지 않냐!? 이 시스콘 브라콘 자식!!"
"뭣!? 내가 시스콘인건 인정하겠지만 우리 세나가 브라콘이라는건 인정 못한다고! 아니,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런식으로, 우리들의 유치한 싸움은 5분후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와 홈룸을 시작할때까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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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모두 끝나고 난뒤, 집으로 돌아가는 하교길. 나는 아침에 통화하지 못한 키리노에게 다시 한번 전화를 걸었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핸드폰의 전원이 들어와있지 않았다. 으음… 정말로 핸드폰이 고장나기라도 한건가.
계속해서 핸드폰 너머에서 들리는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갑작스럽게 짜증이 솟구쳤다. 어제 일의 피해자라고 하면 당연히 내가 피해자일텐데, 어째서 키리노가 화를 내는 거지?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왜 이렇게 안절부절 하고 있는 거지?
평소같았으면 그대로 다시 포기하고 다음에 또 전화를 했겠지만, 나 자신도 명확히 알 수 없는 짜증이 솟구치기에 나는 오기 아닌 오기가 생겨버렸다.
나는 그대로 단축번호 내에 있는 다른 번호를 꾸욱 눌러 아야세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일인가요 오빠」
"오우, 난데"
전화 너머의 아야세는 약간 기운이 없는듯한, 걱정거리가 있는듯한 한숨소리를 냈다. 나는 흠흠.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키리노, 무슨 문제 있어 보여?"
「………」
약간의 침묵.
아야세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고는,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시는 거죠?」
"왜라고 말해도… 내가 키리노의 학교생활까지 알 수 있는건 아니잖냐. 게다가 어제 그런일도 있었고"
「……그건 뭐, 그렇겠네요」
"무엇보다 키리노, 어제부터 지금까지 핸드폰이 꺼져있다고. 뭔가 아는거 없어?"
「네?」
아야세는 핸드폰 너머에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귀여운 물음표를 띄우더니 말했다.
「키리노 핸드폰, 잘만 사용하던데요?」
……엥?
"무슨 소리야? 방금도 전화해봤었는데?"
「저기, 오빠…」
그러자 아야세는 정말로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평범하게 수신거부 당한거 아닌가요…?」
"하하하. 아야세도 참, 키리노가 나를 수신거부 할리가 없잖냐. 게다가, 무엇보다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안내음이 나온다고?"
「아뇨… 요즘은 수신거부라고 하면 날뛰는 악질도 있다고 해서, 그런식으로 돌려말하는 어플도 있거든요」
"………진짜?"
「네…」
"………………"
빠직. 하는 소리가 내 이마에서 들린것 같았다.
이야기를 정리해보자면, 어제 키리노가 내가 자취하고 있는 원룸에 왔다가 나갔을때부터 나를 수신거부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도 자세한 사정은 모른채 쿠로네코가 만들어준 도시락통만 보고 말이다.
아마, 키리노도 충분히 짜증이 나있을 것이다. 키리노가 나의 사정을 자세히 모르듯이, 나도 키리노의 사정을 자세히 모른다. 어제 아야세가 넌지시 말한것처럼, 여러모로 컨디션이 안좋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부모님에게 잔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짜증이 잔뜩 나 있는 키리노가 나에게 짜증내는 것 정도는, 오빠로서 여태까지 처럼 참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키리노가 나에게 짜증을 내는 것이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 역시 충분히 짜증이 나 있었다. 어떠한 이유인지, 나 자신도 모르는 형태가 없는 짜증이 머리 끝까지 솟아오르고 있었다. 누구는 자기 때문에 처음 생긴 여자친구랑도 헤어지고, 자기 때문에 혼자 자취를 시작하게 됐는데도 키리노는 나를 신경써주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의 짜증을 받아주기를 원하는거잖냐. 게다가, 이쪽은 전력을 다해서 달래주려고 했었다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만약 평소같았으면 참았을 것이다. 하지만 배 속에서 꾸물거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갑갑함은 마치 일부러 그 갑갑함을 풀 수 있는 대상을 찾듯이 원망의 방향을 키리노에게 돌리게 됐다.
「오빠…?」
"아, 됐다. 고마워 아야세"
나는 걱정스럽다는듯, 매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나를 부른 아야세에게 감사인사를 한뒤, 그대로 통화를 끊었다.
"……"
통화를 끊은 이후, 나는 핸드폰의 아무것도 없는 검은색 바탕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손가락의 끝에서 핸드폰 뒷면에 붙어있는 스티커의 이질감이 느껴졌다. 어쩌다가 여동생과 찍게 되버린 커플용 스티커.
"될대로 되라지"
나는 핸드폰의 뒷면에 붙어있는 그 스티커를 보지도 않은채, 신경질적이게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