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변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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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 하는 소리와 함께 페이커의 등에 있는 낙하산이 펴졌다.
페이커는 눈대중으로 '대충 이쯤이면 되려나?'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폈지만, 자신들은 꽤나 높은 상공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이른 모양이다.
아직은 페이커의 텔레포트로도 바닥에 닿을 수 없을 정도의 높이에서 페이커는 자신의 배 부분에 고정되어 있는 쿠로요루에게 말을 걸었다.
"경치 하나는 되게 좋네. 그렇지 쿠로요루?"
"………"
"응?"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을 죽이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소녀의 대답이 없자, 페이커는 몸을 구부려 그 얼굴을 위에서 봤다.
"기절했네"
학원도시의 새로운 '어둠'인 '신입생'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겨우 이 정도로 기절하나. 딱히 고소공포증도 아니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며, 페이커는 목적지도 없이 그저 바람에 몸을 맡긴 채로 자신의 텔레포트가 닿을만한 사거리 까지 날아갔다.
그렇게 2분 정도 러시아의 경치를 보며 흔들거리던 페이커는 쿠로요루를 잡은채로 텔레포트 하여 지면에 착지했다.
"웃차"
페이커는 에어로칩(공기조종) 능력으로 공기를 압축시켜 손가락 끝에 조그마한 칼날을 만든 다음, 그것으로 자신과 쿠로요루를 구속하고 있던 낙하산의 줄을 자른다.
딱히 낙하산을 회수할 필요는 없다. 돌아갈 때도, 러시아에 온것과 마찬가지로 적당한 비행기를 훔쳐타면 될것이다.
일단 페이커는 기절해 있는 쿠로요루를 자신의 등에 업은뒤, 터덜터덜 눈길을 밟으며 걷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구만"
주위에 보이는건 듬성듬성 자라 있는 나무뿐이었다.
아무래도 이 곳은 조그마한 산이거나, 아니면 숲속일것이다.
페이커는 아마도 짐승이 이용했을 만한 조그마한 오솔길을 따라 걸어간다.
늑대나 곰. 심지어는 중화기로 무장한 범죄자들과 맞닥뜨린다 하더라도 그는 혼자서 군대와 싸울 수 있다고 여겨지는 레벨 5(초능력자)다. 오히려, 학원도시의 외부에서는 적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페이커는 두려운 마음 하나 없이, 자신의 마당을 산책한다는 가벼운 기분으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아무리 가벼운 소녀라고 하더라도 한 사람을 업고 걷는다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얼마정도 걸었을까, 두꺼운 털 파카 아래로 등에서 축축한 땀이 나는 것을 느꼈다.
초능력을 쓰면 간단하겠지만, 언제 어떠한 적과 만나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까지 사용할지는 모른다. 그리고 그 능력은 배터리를 엄청나게 먹으므로, 헛되게 배터리를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딱히 목적지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마술'에 연관된 곳이라면 좋다. 일단, 엘리자리나 독립국 동맹이라는 곳이 가장 의심되므로, 그곳을 향해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일단은, 이 산인지 숲인지 부터 벗어나야겠지만.
그렇게 걷던 페이커의 시야에, 마치 일부러 숨겨서 지은듯한 건물이 보였다.
나무가 우거져 있는 숲의 깊숙한 곳, 오솔길 조차 없는 그 구석에 커다란 공장같은 건물이 있었다.
(주변에 마을은 커녕 식료품을 구할데도 없을것 같은데, 이런데 공장?)
적어도 어떠한 기계가 돌아가고 있다던지, 커다란 인기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호기심이 생긴 페이커는 공장의 문을 열려고 했지만, 쿠로요루를 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주 약간 고민을 한후, 오른손으로 쿠로요루의 엉덩이를 받힌채로 왼손으로 문을 열였지만 문이 열리지는 않았다.
"뭐, 일부러 만진건 아니니까"
자신을 속이듯. 그렇게 말한 페이커는 텔레포트를 사용해 건물의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내부는 커다란 체육관 같았다.
아무것도 없이 뻥 뚫려 있는 광장같은 내부에, 물품을 보관하는 방인지 셔터가 내려가져 있는 방이 여러개 벽에 붙어있었다.
2층이 있긴 하지만, 딱히 층벽이 있는건 아니다. 사람 두명 정도가 다닐 만한 좁은 길에 손잡이 까지 있는 2층은 마치 농구장의 관람석 같았다.
"아무것도 없나" 라고 중얼거리던 페이커는 무언가 어린 아이가 우는 듯한 소리가 들린것 같았다.
"…?"
언젠가 들었던 괴담을 떠올리며, 청각에 집중을 하자.
"흑,흑…"
하고 우는 소리가, 분명히 페이커의 귀에 들렸다.
과학의 총본산인 학원도시에서 온 페이커다. 귀신 따위 믿을리가 없다.
그래도 페이커는 꿀꺽. 침을 삼키며,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벽의 가장 중앙에 붙어있는 물품을 보관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방. 그 닫혀진 셔터 뒤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페이커는 오펜스 아머(질소장갑)을 집중시킨 발로, 혹시라도 안에 사람이 있다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그 셔터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걷어찼다.
마치 종이를 자르듯 허무하게 셔터가 찢어졌다.
셔터의 내부는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잘 정돈된 방이었다. 생필품은 물론이고 변기, 침대에 TV까지 있었다.
그리고 그 잘꾸민 감옥같은 방 안에, 8살 정도로 보이는 아주 어린 여자아이가 그 침대에 앉아 울고 있었다.
"…뭐?"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이상현상에 페이커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이런 영문도 알 수 없는 곳에 어린 여자아이가 있다는 것에 대해 놀란건 아니었다.
주기적으로 사람이 정돈한듯한 방을 보고 놀란것도 아니다.
그 여자아이의 주변에, 아주 조그마한 몸에 벌레의 날개가 달린 듯한 인간. 즉, 흔히 생각하는 '요정' 네 마리가 빛을 내며 떠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페이커의 모습을 본 여자아이는 화들짝 놀라더니, 뭐라고 말을 걸어왔지만. 러시아어를 모르는 페이커가 알아들을 순 없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지, 여자아이는 이제는 다급한 표정으로 페이커의 뒤를 손가락질했다.
"?"
페이커가 고개를 돌리자 마자, 이 방의 맞은편에 있는 방의 셔터가 투쾅!!! 하고 날아가더니, 그 안에서 가로 3M 세로 5M 정도의 커다란 기계가 나타났다.
그 기계는 마치 거북이 같은 모습이었다. 길쭉하고 평평한 몸체 아래에는 12개의 길쭉한 다리가, 그 위에는 원형의 커다란 쓰레기통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엥?"
갑작스러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페이커보다 기계의 반응이 빨랐다.
페이커는 처음에 이 기계의 다리가 12개라고 생각했지만, 곧바로 각 모서리에 있는 4개만이 다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유리같이 속이 비치는 재질에 길쭉한 4개의 발가락이 달린 발은 투쾅! 하고 지면에 자신을 고정하는 듯 하더니, 그 유리같은 재질 속에서 사람 주먹만한 노란색 구슬이 떠올랐다.
그러자 투명한 고무펌프같이 생긴 나머지의 8개의 다리들이 미친듯이 펌프질을 하기 시작하나 싶더니, 곧바로 그 안에서 주황색의 용암같은 액체가 끓어올랐다.
페이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몸통의 위에 달려 있는 원형의 커다란 쓰레기통으로 갔다.
그 쓰레기통의 정 중앙이 위잉- 하고 회전하며 열리더니, 사람의 입 같은 구멍을 만들어 낸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마치 고슴도치에게 찔려죽은 생물처럼, 기계의 온몸에 사람의 입 같은 구멍이 무차별적으로 생겨났다. 보는 사람이 몸이 가렵게 느껴질 정도다.
어떻게 봐도, 이것은 어떠한 무기를 발사하기 위한 구멍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그 해답을 찾기도 전. 페이커는 그 구멍의 윗 부분. 사람으로 치자면 이마에 해당하는 부분에 써져 있는 알파벳을 보았다.
FIVE_Over.
Modelcase_"MELT-DOWNER"
"이런 미친!"
쓰레기통의 중앙에 달린 사람의 입 같은 구멍이 빛난다.
모든 것을 녹이는 절대적인 위력의 입자 파동 고속포를, 페이커는 그대로 2층에 있는 난간으로 텔레포트하여 피했다.
방금까지 자신이 있었던 바닥은 깊이조차 알 수 없을 정도의 좁고 깊은 구멍이 생겼다.
그 자리에 주황색의 용암이 생긴다거나, 시멘트가 녹아 끈적끈적한 액체가 생기지도 않았다. 그냥 그대로 그 위치만큼이 '소멸'해버렸다.
공격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계의 온몸에 난 수십개의 사람의 입 같은 구멍은 360도 모든 방향을 노리고 있다.
페이커는 또 다시 미래를 예측했을 때의 감각을 떠올린다.
주변에 모든 정보가 뇌속으로 들어오는 감각.
마치 자신이라는 케릭터를, 절대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페이커는 미래를 본다.
기계의 온몸에서 입자 파동 고속포가 차례차례 발사된다.
그것은 마치 빛으로 된 하나의 뱀처럼, 커다란 채찍을 공중에 치듯 점이 아닌 꾸불꾸불한 선을 그리며 공격해온다.
스치기만 해도 즉사인 수십개의 입자 파동 고속포의 안전지대만 노려, 텔레포트로 계속해서 피한다.
(학원도시의 초능력자를 본따 만들어진 양산형 병기가 왜 러시아에!? 비밀기지 같은 공장. 이상한 여자애. 저 기계는 이곳을 지키고 있는건가!?)
페이커는 예측한다.
싱크로트론(양자변속), 파이로키네시스(화염조종), 에어로칩(공기조종), 텔레키네시스(염동력), 워터 배퍼레이션(수류증발) 그 어떠한 능력도 기계에 닿지 않는다. 초능력조차 소멸 시키는 압도적인 공격력을 가진 입자 파동 고속포로 전방향에서 요격하여 사라진다.
자신의 몸을 지키고 있는 오펜스 아머(질소장갑)도 마찬가지다. 이쪽은 스치기만 해도, 즉사가 확실하다.
통하리라 생각되는건 텔레포트(공간이동)을 이용해 물체를 그 내부에 쳐박아버리거나, 그라비티 프레셔(중력압박) 으로 기계체로 눌러버리는 방법 정도지만, 명확히 이 공격에 의해 기계가 패배하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칫!!"
페이커는 앞으로 텔레포트를 하던 도중, 앞으로 숙여서 광선을 피하고, 바닥에 있던 사람의 주먹만한 돌을 집었다.
목표는 저 8개의 이상한 다리. 아마 지금도 펌프질을 하고 있는 저것이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텔레포트로 인해 11차원에서 3차원으로 다시 등장하는 물체는 그곳에 있는 물체를 '밀어내면서' 등장한다. 텔레포트에게 있어서 강도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저 커다란 철 덩어리의 무게는 엄청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라비티 프레셔(중력압박)으로 눌러버린다면 자신의 무게에 눌려 파괴될 것이다.
(그렇다면, 양 쪽 다!)
페이커는 그라비티 프레셔(중력압박)을 전개하는 동시에 손에 있던 돌을 텔레포트한다.
하지만 페이커가 초능력을 쓰기 바로 직전.
커다란 쓰레기통의 정 중앙에서 굵은 광선이 나오더니ㅡ
쿠콰카카카카카카카! 하는 굉음과 함께, 그 반동으로 순식간에 자신의 몸을 이동시켰다.
동시에 그 기계가 있었던 자리에 돌이 하나 나타나더니, 콰직, 하며 땅이 짓눌렸다.
(역시 안되나!)
그냥 텔레포트를 사용해 도망간다면 문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 아래에 있는 여자아이가 무척이나 신경쓰였다.
카미조 토우마처럼 여자아이를 구하고 싶다. 하는 감정적인 이유는 아니다. 페이커는 합리주의자다. 단지 저 여자아이 옆에 떠다니는 요정이 초능력인지, 마술인지, 그것조차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연히 얻은 단서. 그것을 그렇게 간단히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페이커의 예측대로라면, 모델케이스 멜트 다우너를 쓰러트리기 위해선 다른 한명의 힘이 더 필요하다.
자신의 등에 업혀 있는 소녀의 힘이.
"충분히 오래 잤잖아! 이제 좀 정신 차려봐 쿠로요루!! 안그러면 엉덩이 마구 주무른다!!"
그 빛의 뱀같은 광선을 계속해서 텔레포트하고, 뛰고, 숙이고 피하면서도, 페이커는 착실히 쿠로요루의 엉덩이를 주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