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변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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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신(魔神)?"
"그래 마신(魔神). 아, 마계의 신 이런게 아니라, 신의 영역에 다다른 마술사. 란 의미야"
자신을 올레루스라고 소개한 남자는 완전히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무방비한 모습이었다.
아까의 기묘한 압박감이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커다란 힘을 휘두르는 모습은 착각이 아니었을까. 하는 기분이 들 정도의 순박한 청년. 이라는 느낌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한창 신경이 예민해졌던 페이커는 적어도 적이 아니라는 판단에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그럼, 당신은 '마술' 사이드의 최강인가?"
"글쎄. 아무리 그래도 진짜배기 천사는 당해내지 못하겠지만"
올레루스는 그리고, 라며 덧붙인다.
"나는 분명 마신의 힘을 다루기는 하지만, 마신은 아니야. 마신이 되지 못한. 이라고 했잖아?"
"그럼 그 '전조'가 없는 힘은…"
올레루스는 검지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가져가, 조용히 하라는 듯한 제스쳐를 취했다.
"일단 이 아이가 추워하니까 우리 집으로 먼저 이동하자. 궁금한건 거기서 답해줄게"
이미 바람을 막아주던 폐허는 멜트 다우너로 인해 폐허나 다름없는 모습이 되었기에, 올레루스 옆에 딱 붙어 있는 여자아이는 추운듯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올레루스도 봄이나 가을이 어울릴법한 얇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니 페이커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두꺼운 외투를 벗어주기 위해 몸을 뒤척였다. 그리고
"…너, 내 등에서 아직도 뭐하고 있냐"
뭔가 방금까지도 정신이 없었기에 쿠로요루를 업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페이커가 그렇게 말하자, 쿠로요루는 짜증나 죽겠다는 음색으로 대답했다.
"왜. 닥치라며"
"아니 그게… 그런 의미로 말한게 아니라…"
"됐으니까 일단 내려놔 재수없는 놈아"
"…넵"
어쩔줄 몰라하며 안절부절 하던 페이커는 별다른 변명조차 하지 못하고, 쿠로요루를 내려주기 위해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쿠로요루의 성격이라면, 아마 자신을 죽여버리겠다며 당장 그 봄버랜스(질소폭창)을 휘두르며 주위에 있는 모든걸 초토화 시킬 것이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쿠로요루를 달래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으니.
"커헉!?"
쿠로요루가 뻥ㅡ 하고 페이커의 뒷통수를 전력으로 후려갈겼다.
"다음엔 절대로 죽이겠어"
그런 말을 하는 쿠로요루는 페이커의 예상과는 다르게, 평탄한 어조의 목소리였다. 아니, 냉정하다고 하는게 더 옳을려나.
자신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올레루스라고 불린 남자의 옆에 있는 여자아이에게 외투를 벗어주는 페이커를 보며 쿠로요루는 생각했다.
(……소름끼치는 녀석)
암흑의 5월 계획의 생존자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아무래도 키누하타 보다는 쿠로요루쪽이 페이커와의 악연이 길었다.
그렇기에 알고 있다.
알고 있는건, 페이커의 능력 뿐만이 아니다.
페이커의 저 가벼워 보이는듯한 성격도, 그저 다른 사람의 성격을 흉내내는 것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암흑의 5월 계획의 '성공작' 이라는 것을.
왠지 기억이 날듯말듯 한 옛날 일이지만, 페이커의 성격은 예전과 비교해서 확실히 둥글둥글해 졌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퍼스널 리얼리티(자신만의 현실)을 훔치면서, 그 영향으로 사용자의 성격이나 버릇. 말투 등에 어느정도 영향을 받게 되고 그렇기에 남들보다 두 세배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페이커가 보통의 능력자도 반은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린 그 실험을, 액셀러레이터의 뇌 정보를 구겨넣는 암흑의 5월 계획을 견뎌낸 것이다.
당연히 다른 능력자들 보다 그 액셀러레이터에게 영향을 크게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커는 그다지 다른 피험자들처럼 그러한 성향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성공작'이라고 하는 건가… '성공작'이 무엇을 의미하는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빌어먹을 연구자들이 그렇게 생각한건 맞아. 하지만 그런것보다 이 녀석은ㅡ)
쿠로요루가 페이커를 꺼림칙하게 여기는 이유.
(이 녀석은, '주체'가 없어. 능력도, 성격도, 스타일도. 전부 남의 것을 흉내낼뿐.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농담이고 무엇이 목적인지, 그 속을 알 수가 없어. 그래서 액셀러레이터의 뇌 정보를 수용할 수 있었던 건가)
마치 여러개의 가면을 순식간에 바꾸는 중국의 변검처럼. 그 안에 몇개의 가면이 더 있는지, 어디까지가 진짜 얼굴인지. 타인은 알수가 없다.
필요에 따라 그 성격과 말투를 바꾼다. 결국 별다른 일이 없을때 나오는 저 가벼워 보이는 성격은, 아마 그가 가장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성격일 것이다.
"……"
하지만 그것에 대해 페이커에게 질문을 한다던가, 지적을 할 생각은 없다.
단지 이렇게 못본척 하거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넘기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 기분나쁜 광경을 또 보는건… 사양이야)
자신의 두꺼운 외투를 소녀에게 벗어주는 페이커를 보며, 올레루스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겠어?"
"나 하나쯤은 능력으로 어떻게든 되니까. 그것보다, 당신 집이 어딘데?"
"가까워. 걸어서 5분 거리도 안돼. 사실 그냥 산책 나왔다가 왠 이상한 빔이 하늘로 솟구치는걸 봐서 말이지"
그러자 사이즈가 큰 페이커의 외투를 입어서 마치 굴리면 굴러갈것 같이 포동포동한 소녀는 종종걸음으로 페이커의 옆으로 왔다.
그리고 페이커의 바짓자락을 손끝으로 잡은 뒤 그 옆에 딱 붙어있었다.
하지만 몇초 지나지도 않아 손이 시려운지, 다시 외투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다.
올레루스는 그런 모습을 보며 시골청년같은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내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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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커와 쿠로요루가 있었던 산인지, 숲인지 모를 나무가 무성한 곳은 아무래도 아주 작은 숲이었던 모양이다.
올레루스의 뒤를 따라 겨우 5분 정도 걷자 그 숲에서 벗어났고, 그러자 마자 저 멀리 마을이 보였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는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 나무로 된 집 한채가 홀로 서 있었다. 올레루스가 움직이는 방향을 보면 저 집이 올레루스의 집인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집인데도 불구하고 올레루스는 그 집의 열쇠가 없는듯 했다. 왠지 모르게 안절부절 하던 올레루스가 결심을 한듯. 띵동ㅡ 하고 그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 현관문이 열리고 기품있어 보이는 금발 벽안의 여자가 나왔다.
깊은 색의 바지도, 쟈켓도 전부 바이크를 즐기는 라이더가 입을법한 옷이었지만, 그 위에 있는 작업용의 앞치마가 조화를 깨트리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연 여자는 올레루스를 보자마자, 아니, 정확히 그 뒤에 있는 페이커와 쿠로요루. 페이커의 옆에 있는 소녀를 보더니,
"그래서?"
마치 아수라와 같은 얼굴로 말했다.
"잠깐. 진정해봐 실비아. 일단 이야기를 들어줘"
"해봐"
"그러니까… 내가 산책을 나갔다가 말이지? 갑자기 하늘에 노란 광선이 퍼펑! 하고 올라오는 거야. 그게 무슨 일인가 하고 갔더니, 아니 이게 뭐야! 왠 이상한 로봇과 소녀가…"
"이 멍청한 바보자식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오오오오오오옷!!?"
실비아라는 금발 벽안의 여자는 마치 달인처럼, 그 올레루스의 순박한 얼굴에 정권지르기를 날렸다.
올레루스는 고개를 크게 뒤로 꺾어 그 공격을 피했지만.
"!?"
어째서 들고 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비아는 자신의 앞치마에서 밧줄을 꺼내, 순식간에 올레루스의 몸을 구속했다.
몸을 빙빙 둘러서 팔과 몸을 묶은뒤, 그 뒤에 있는 양손을 다시 묶고, 그 밧줄을 아래로 내려 올레루스의 다리까지.
시간으로 이야기 하자면 5초도 안되는 시간동안 보이는 신기. 과학도 마술도 아닌 제 3의 능력이라는건 아마도 이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실비아는 올레루스의 등을 마구 짓밟으면서
"가뜩이나 사람이 걱정해줘서! 응!? '이왕 이렇게 된거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초조해 하지 말고 좀 편히 쉬란 말이야' 라고 부끄러워 죽겠는걸 말했는데! 한시간도 채 안되서 또 미아찾기!? 이런, 식으로, 하겠다, 이거지!? 앙!? 이 멍청한 몰락귀족이!! 벌이다 올레루스! 오늘은 하루종일 그 상태로 삼각목마야!!"
"하루종일은 좀!?"
콰직 콰직. 하며 분노한채 올레루스의 등을 밟으면서 흥분하고 있는 실비아를 보며, 페이커는 이상하다는듯 눈을 찌푸렸다.
"마신이라는건, 성인보다 약한거야?"
"…!"
페이커는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것이겠지만, 그 질문에 실비아는 올레루스를 밟고 있던 발을 멈칫. 하더니, 그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당신… 내가 성인이라는걸, 어떻게 알았지?"
실비아는 성인이다.
세계에 20명도 안되는, 마술 사이드의 '핵폭탄'의 위력을 차지하는 성인.
칸자키 카오리 처럼 공식적인 입장의 전투를 전문으로 하는 성인이라면 모를까, 조용히 혼자 지내거나 전투의 전문가가 아닌 성인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고 한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커다란 힘을 가진 자라면 선,악의 입장을 떠나서 자신을 노리는 사람이나 단체가 많아지게 된다. 그야말로, 엄청 귀찮아 지는 것이다.
근위시녀라는 입장상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자가 꽤 있긴 하지만, 실비아는 적어도 이런 풋내기에게 정체를 들킬만한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다.
"아니 뭐… 저번에 봤었던 성인이라는 녀석들이랑 비슷해서 말이지"
"……눈으로 본다고 알 수 있는게 아닌데…"
"응? 다른 성인을 본적이 있단 말이야?"
손발을 완벽하게 구속당한채 누워있는 올레루스가 끼어들었다.
"카리엘인가 라이엘인가. 전격을 쏘던 성인남매라는 녀석들"
"그 자식들…"
실비아는 뿌득. 하고 이를 깨물며 말했다.
"혹시나 하는데 다른 성인들도 그 자식들처럼 쾌락주의자에 살인광이라고 생각하지 마. 그 빌어먹을 놈들이랑은 비교조차 당하기 싫으니까"
"악당이었나 보네?"
올레루스는 음… 하고 조금 생각하는 듯 하더니, 다시 끼어들었다.
"그것도 지독한 악당이지. 성인의 힘을 자신들을 위해서만 사용했으니까. 무지하게 강하기도 했지만, 여차하면 주변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도망가버리는게 특기였어"
"아 그거, 무지하게 큰 번개가 떨어지던 그건가"
"응? 어떻게 알고 있지 그걸?"
라이엘의 아스트라페 술식(제우스의 번개)는 일종의 필살기다.
오랫동안 그 남매를 추적한 일당이 아니라면, 그 기술의 정체를 알고 있을 리가 없다. 목격하는 순간 잿덩이가 되버릴테니까.
"뭐, 어쩌다보니. 아 그리고. 그 둘. 죽었어"
"…뭐?"
올레루스의 눈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올레루스는 그 기묘한 압박감을 뿜었지만, 웃긴 꼴로 바닥에 묶여 있는 상태로는 위협이고 뭐고 전혀 되지 않는다.
"어차피 이야기를 하러 온거잖아? 나는 내가 아는 정보를 알려주고. 원하는 정보를 듣고 싶어. 아무래도 학원도시의 이야기도 궁금한듯 한데"
"……"
사람이 가벼워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 손을 파닥거리는 페이커의 모습을 보고 올레루스는 어이가 없는지 입을 벌린채 멍하니 있었다.
뭐, 생각해보면 페이커의 말이 맞다. 올레루스는 처음에 소녀를 구해준 이 친절한 남자에게 이것저것 정보를 알려주려고 했지만, 학원도시의 이야기를 듣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럼,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로프로 단단히 묶여있는 올레루스가 쿨하게 말했다.
"자연스럽게 넘기려고 해도 멋대로 미아를 데려온 죄는 용서하지 않을테니까. 삼각목마 위에서나 대화하시지"
"실패!?"
"일단 들어와서 몸좀 녹여. 식사도 준비할테니까"
눈과 입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올레루스를 무시한채, 실비아는 페이커와 쿠로요루.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소녀를 향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