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변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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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간 지붕의 위로 여러대의 학원도시제의 폭격기인 HsB-02가 날아가는게 보였다.
연료 보급과 냉각수 보충을 제외한다고 하면, 단 1기만으로 세계 모든곳을 불태울 수 있는 압도적인 오버 테크놀러지인 HsB-02는 정작 원래의 용도인 폭격기로 사용된 전례가 없다.
러시아에서 벌어진 제 세계 3차 대전. 그 전쟁에서도, HsB-02는 그저 '폭탄'대신 '보급물품'을 수송하는 '수송기'로서 운용되었다.
뭐, 그것이 수송한 것들중 액셀러레이터, 무기노 시즈리, 미사카 미코토, 미사카 워스트라는 초능력자 3명과, 대능력자 1명이라는 사실을 보자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폭격'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10대에 달하는 HsB-02는 이번에도 수송기로서의 임무를 다했다.
하늘 위에는 수십개에 달하는 대형 낙하산이 떠 있었다. 정확히는 그 낙하산을 달고 있는 수십개의 파워드 슈트(구동갑옷)이다.
이미 지상에 도착해 있을 파워드 슈트까지 친다면, 거의 50대에 달하는 학원도시제의 파워드 슈트의 물결은 마치 비행하는 벌떼같았다.
쿠로요루는 낙하산들 사이에서 다른 파워드 슈트보다의 1.5배 정도 되는 크기의 커다란 파워드 슈트를 발견했다.
다른 파워드 슈트와는 다르게 낙하산을 장비하고 있지 않은 파워드 슈트들은 등에 있는 곤충의 날개 같은 것으로 비행을 하고 있었다.
그 사마귀 같이 생긴 파워드 슈트의 명칭을, 쿠로요루는 이미 알고 있다.
FIVE_Over.
Modelcase_"RAILGUN"
학원도시 3위의 초능력자인 미사카 미코토를 모델로 만들어진 학원도시의 양산형 병기.
스펙상으로는 그 3위를 뛰어넘는다고 하는 이 병기는 분당 4000발의 레일건을 발사하는 괴물이다.
그 압도적인 파괴력에 인간을 훨씬 뛰어넘는 AI의 백업. 그리고 빠른 이동속도와 비행능력.
일찍이 그것을 훔친 쿠로요루는, 그 병기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씨익, 하고 호전적인 웃음을 짓는 쿠로요루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한방울 주륵, 하고 흘러 내렸다.
"녀석들, 이번엔 진심인가 본데"
한대만으로 현대전의 양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릴 수 있는 학원도시제의 파이브 오버.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병기라고 하더라도 단일병기로서는 효율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스펙상으로는 레벨 5(초능력자)를 뛰어넘는다고는 하지만 그 응용성에서 떨어지는 양산형 병기들은 레벨 5(초능력자)와의 실질적인 전투에서 승리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 병기들이 '부대'를 만들고 있다면 어떨까.
푸슉! 하고, 아직도 까마득히 높아 보일만한 위치에 있는 파워드 슈트들의 낙하산이 일제히 떨어져나간다.
파워드 슈트들은 지상에 착지하기 직전, 푸슉ㅡ 하며 다리의 옆에서 분사하는 고압력가스로 인해 위치 에너지를 무효화 한다.
지상에 무사히 착지한 파워드 슈트들은 철컹 철컹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부대를 정돈했다.
그 정 중앙에는 파워드 슈트들의 대장기인지, 칠흑같은 검은색으로 칠한 기체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기체의 머리부분이 슈욱. 하고 열리더니 그 안에서 중년의 대머리의 남자가 나타났다.
순간 반짝ㅡ하고 광활한 러시아의 태양이 반사되었다. 그 빛 때문에 그런건지, 아니면 아는 사람이라 그런건지, 페이커와 쿠로요루는 동시에 못볼것을 봤다는 표정을 지었다.
"쿠케케케케케케케! 이 쥐새끼들이. 내 물건을 도둑질하고 무사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냐?"
"키하라 쿠레하… 저 벌레 변태놈은 두번 다시 보고싶지 않았다고"
쿠로요루가 중얼거렸다.
일족 전체가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학원도시의 연구자 일족. 그리고 그 중에서도 생리적으로 가장 역겨운 인간.
인간의 육체를 곤충이나 벌레와 합친다던가.
곤충이나 벌레를 초능력자로 만들려고 한다던가.
머리가 여러개인 거대한 곤충을 만들어 낸다던가.
B급 괴물 영화나 고어 영화에서 등장할법한 정신 나간 실험을, 실제로 하고 있는 연구자. 그것이, 키하라 쿠레하라는 인간이다.
"모델 케이스 레일건이 사마귀의 외형과 곤충의 날개를 달고 있는 것을 보고 눈치 챘어야 했는데. 저 파이브 오버의 제작자는 저 놈이었나"
16대로 이루어진 레일건의 부대와, 그 레일건을 지원하는 수십대의 일반형 파워드 슈트.
그리고, 그것을 지휘하는 정신나간 사이코패스.
이것이 학원도시 전체의 의지인지, 쿠레하의 단독행동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것은, 그 오버 테크놀러지의 병기들을 활용하지 않으며 러시아를 농락하던 때와는 다르게 이쪽을 전력으로 공격해올 것이라는 점이었다.
"총괄이사회한테 걸리지 않고 실험 가능한 '원석'을 하나 훔쳐두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알고 있~냐? 덕분에 이 상황을 숨기느라 또 시말써를 써야돼잖~냐 멍청~아"
(역시 멜트 다우너가 기동했을 때 바로 신호를 보낸건가)
멜트 다우너가 기동한건 대충 한시간 전.
연락을 받은 쿠레하가 되도 않는 이유로 자신의 사설 부대를 움직일 승인을 받은 후, 곧바로 날아왔다고 하면 시간상으로도 딱 맞다.
페이커는 합리주의자다.
저런 정신나간 녀석과 대화를 해도 얻는것 따위 없을 테고, 저 생리적으로 역겨운 녀석을 계속 보고 있을 필요도 없다.
"흥"
페이커는 콧방귀를 끼며, 쿠레하의 검은 파워드 슈트가 있는 좌표위치를 계산한 후 그라비티 프레셔(중력압박)을 사용했다.
아무리 강력한 파워드 슈트라고 하더라도 중력으로 전 방향에서 천천히 압박한다면 철로 된 공이 될것이다.
하지만.
"…!?"
비이이익비이이이익비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ㅡ!! 하는 벌레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파앙! 하면서 페이커의 그라비티 프레셔(중력압박)이 무효화 됬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튀어나왔을것 같~냐?"
(무효화… 아니, 분해됬어?)
능력의 사용한 입장이기에 알 수 있는 사실.
페이커의 보이지 않는 능력이 마치 모래가 된듯이 분해되어, 바람에 날아갔다.
"모든 인간은 '혐오감'에 큰 반응을 하게 돼~지. 그것이 너희같은 멍청이들이 애써 괜찮은 척 해도, 그나마 덜 멍청한 멍청이들의 뇌가 알아서 반응한다~고. 그 현상에 반응하는 정확한 파장으로 뇌를 자극한다면 순간적으로 퍼스널 리얼리티(자신만의 현실)을 없애는 것이 가능하단~다 멍청~아"
아직 시험단계지만 말이~야. 라고, 쿠레하는 그 대머리를 빛내며 쿠켁켁. 이상한 웃음소리를 냈다.
"이 아이를 어떻게 할 작정이냐"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뿜는 쿠레하를 보며 올레루스가 말했다.
"으응~? 별~로? 그 '요정'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아름 답잖~아? 특히 그 날개~가. 일단 살아있는 채로 온몸에 잔뜩 자극을 준 다음에 그 뇌를 꺼내 비커에 담궈둔후 충분히 연구를 해주~지"
"……"
"쿠케케케케케케케켁. 게다가 '암흑의 5월 계획'의 성공작인 멍청이도 끌고가면 '원석'건은 어떻게든 되겠~지. 쿠케케케케케케!"
파킹! 쿠레하의 검은 파워드 슈트의 머리 부분이 다시 닫혔다.
"그러니~까. 나머지 놈들은 죽~어"
슈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ㅡ! 총 16대의 레일건의 개틀링 건이 돌아가는 소리와, 철컹철컹! 수십대의 파워드 슈트가 '보병의 총'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45mm 구경의 라이플을 조준하는 소리.
16대의 레일건은 그 사마귀 같은 몸체를 숙여 수십대의 파워드 슈트로 만들어진 고기의 벽, 아니, 강철의 벽의 사이사이에 그 개틀링 건을 뻗는다.
능력자의 퍼스널 리얼리티를 순간적으로 흩트려 초능력을 분해하는 이상한 장치.
혹시나 있을 화력을 막아주기 위한 수십대의 파워드 슈트로 이루어진 강철의 벽.
단 한대만으로도 초고층의 건물을 옥상에서부터 고철덩이로 만들 수 있는 모델 케이스 레일건이 16대.
일발 일발이 최신식의 전차를 두부 가르듯이 파괴하는 레일건이 총 분당 64000발. 초당 960발. 그 외에 수십대의 45mm 구경의 라이플이 발사된다.
그 죽음의 선율은 페이커의 오펜스 아머(질소장갑) 마저 간단히 뚫고 페이커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다. 끊어지며 들리는 기분나쁜 벌레의 울음 소리에 텔레포트로의 도주조차 불가능하다.
이것은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그럴터였다.
그곳에 있는 두명의 남자가 탁. 하며 페이커의 옆에서 양 옆에서 한발자국씩 전진한다.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다니"
오른쪽의 남자. 어디에 있을 법한 금발 녹안의 멍청할 정도로 사람이 좋은 선한 남자. 올레루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자세로 서 있었다.
일찍이 마술 세계의 공식적인 최강의 자리인 마신(魔神)이 될 기회를, 다친 아기고양이를 병원에 데려다 주느라 포기한 남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다루는 마신의 힘은 학원 도시의 레벨 5(초능력자)를 가볍게 제압할 정도로 강력하다.
그는, 마술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다.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다"
왼쪽의 남자. 붉은색의 머리카락에 붉은색의 옷을 입은, 붉은색의 우방의 피암마의 오른쪽 어깻죽지. 그곳에서 무언가의 '투명한' 팔이 솟아났다.
우방의 피암마가 다루는 힘. 미카엘(신을 닮은 자)의 '기적의 상징'인 '성스러운 오른쪽'을 구현하는 제 3의 팔.
비록 피암마가 자신의 '오른쪽 팔' 이라는 상징을 잃어버렸어도, 그 힘을 막는 여러가지의 '제약'을 가져 약화되었어도.
로마 정교를 통째로 좌지우지하던 '신의 오른쪽 자리'. 그리고 그 '신의 오른쪽 자리'를 혼자서 좌지우지하던 우방의 피암마.
그도, 마술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다.
우방의 피암마가 투명한 오른팔을 대충 휘둘렀다.
마신이 될뻔했던 남자. 올레루스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그 죽음의 선율이 페이커 일행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을 일은 없었다.
천여발의 레일건의 쇠말뚝과 45mm 구경의 총알이 고무로 된 투명한 벽에 부딪힌듯, 아무렇게나 튕겨나갔다.
찰캉. 하는 간결한 소리가 나더니 앞에 있는 수십대의 파워드 슈트의 팔과 다리. 45mm 구경의 라이플이 잘려나갔다.
"뭐가 어쩌고 저…!?"
가운데에 있던 검은 파워드 슈트의 쿠레하의 절망의 외침은 뒤에 있는 16대의 레일건의 머리가 폭발하는 소리에 묻혔다.
그야말로 압도적.
적의 목숨을 취할 필요도 없을 정도의 힘의 차이.
"크읏ㅡ!"
말도 안된다. 이런것이, 가능할리가 없다.
왠만한 나라와 전면전을 한다고 해도 압도할 수 있는 병력이 단 1초만에 무력화됬다.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는 쿠레하는 자신의 파워드 슈트의 오른팔에 달려있는 조그마한 머신건을 조준한다.
"카악!!"
퍼엉! 하고 그 오른팔이 통째로 날아간다.
"쓰레기가"
쿠로요루의 손에서 거대한 압력으로 적을 찢어발기는 봄버랜스(질소폭창) 발사된것이다.
완전히 패닉에 빠진 쿠레하는 능력자의 퍼스널 리얼리티(자신만의 현실)을 분해하는 장치의 발동도 잊고 있었다.
쿠로요루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푹. 푹.
"!?"
쿠로요루의 양 손에서 발사된 두 개의 봄버랜스(질소폭창)이 그 양쪽에 무력화 되어 있는 파워드 슈트의 가슴팍을 비집고 들어간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물론 즉사했을 것이다.
빠각.빠각.
"가아아가아아아아아아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 옆에 있는 파워드 슈트도 보이지 않는 압력에 당하듯 온몸이 구겨지면서 비명을 지른다.
"어,어이! 무슨 짓이야! 저 녀석들은 무력화 됬다고!"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당신?"
창백한 얼굴로 자신의 어깨를 잡는 올레루스에게, 페이커는 이상한 사람을 보듯이 말한다.
"저건 '적'이야. 그것도, 우리 목숨을 노리던 적. 살려둘 이유가 없어"
"하… 하지만!"
"아까 들었지? 저 녀석들. 부가적으로 나를 추적해서 온거라고. 이곳에서 살려주면 나한테 복수를 하러 올텐데. 어째서 살려두라는 거야? 게다가, 저 늙은이는 자신이 숨겨둔 '원석'을 회수하러 학원도시에 제대로된 승인도 안받고 온거야. 분명 이곳이 왔다는 공식적인 기록 자체가 남아있지 않을텐데. 추가 부대의 응원도 없는게 확실한 적을 왜 죽이지 말라는 거지?"
푹.푹
그런 대화 속에서도 쿠로요루는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웃으며, 마치 컴퓨터 게임을 하듯. 흥겨운 휘파람 까지 부르며 양손에서 한번에 한번에 두 개씩. 한번에 두 명의 인간을 확실하게 사살하는 본 벨런스(질소폭창)을 발사하고 있었다.
"카하하하하하하하하핫! 쓰레기들이!"
파워드 슈트가 완전히 행동불능이 됐기 때문에, 그 안에 있는 인간들은 파워드 슈트에서 탈출할 수도 없었다.
그대로, 그 안에서 공포에 떨며, 죽음을 기다린다.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고 그에 어울리는 강한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다.
광기어린 쿠로요루의 모습을 보며, 올레루스는 자신보다 한참은 약할 그 여자애를 보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올레루스의 옆으로 간 피암마가 조용히 말했다.
"올레루스. 당신이 옳아. 하지만, 저 녀석들도 옳아"
"크, 큭…"
올레루스는 그런 무의미한 살육을 보면서 꽈악. 하고 이를 세게 깨물었다.
분명히 맞는 말이다. 여기서 저 녀석들을 살려준다면, 그 원망은 페이커를 향할 것이다.
이것은 정당방위다. 페이커가 무의미한 사람을 죽인것도 아니고, 오히려 무의미한 소녀를 구해줬다.
페이커는, 나쁘지 않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어이, 늙은이"
페이커는 파워드 슈트째로 날아간 자신의 오른팔을 부여잡아 출혈을 막으며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쿠레하에게 다가갔다.
흠칫. 하고 검은 파워드 슈트가 떨린다.
"'암흑의 5월 계획'의 '성공작'. 무슨 말이지 그거?"
"………"
"미안한데, 난 그 연구소에 들어간 일 자체가 기억이 안나. 기억이 중간부터 끊겨 있다고. 그거, 네놈들 짓이냐?"
"……모, 몰라. 모른다~구!"
"뭐, 말하지 않아도 좋아"
눈을 빛내며, 페이커는 그 오른손을 쿠레하의 머리에 천천히 뻗는다.
"초능력으로 직접 빼내면 되니까 말이지. 아, 뇌가 망가질지도 모르겠지만"
천천히 다가오는 그 오른손을 보며 쿠레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얼굴의 모든 근육을 경기에 걸린듯 부들부들 떨면서, 쿠레하는 웃었다. 미친듯이 웃었다. 웃다가 미쳤다.
"이"
그리고, 말한다.
"이 멍청한"
페이커를 상대로, 말하지 말아야 할것을.
"남의 흉내밖에 내지 못하는 가짜 녀석이ㅡ"
천천히 뻗던 페이커의 손이 멈칫. 했다.
웃으며 파워드 슈트를 둘씩 죽여가던 쿠로요루의 얼굴이, 마치 석고로 굳힌 마스크처럼 딱딱하게 굳는다.
"저,저 멍청한 자식이!!!!!!"
진지하게 격노한 쿠로요루는 자신의 이를 부숴 씹어먹을 듯한 기세로 뿌득, 깨물며 자신의 본 벨런스(질소폭창)을 쿠레하에게 던졌지만.
"……"
페이커가 쿠레하에게 날아오는 질소폭창을 오펜스 아머(질소장갑)를 사용해 자신의 몸으로 막아냈다.
덜컥. 덜컥.
페이커의 신체가 떨린다.
실이 끊긴 마리오네트 인형을 억지로 세운것처럼, 페이커의 온몸이 덜컥 덜컥 덜컥 덜컥 하고 흔들리고 있다.
"파하하하하하. 당신 지금 뭐라고 한건가요?"
"뭐? 흉내? 지금 흉내라고 했는감?"
"가짜? 가짜? 가아아아아아아아짜아아아아아아아아!!? 이 노신사분이 정신을 놓으셨나보죠"
"킥,킥.킥킥킥킥킥킥킥 앙!? 이 쓰레기 같은 새끼가 뭐!? 죽고싶냐!?"
"아니, 쉽게 죽이는 것도 의미가 없쟝"
"힉,히히힉,히히히히히히히히히힉!!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마사와요"
"우선 그 손톱을 하나하나, 뽑는게 좋을듯 하오"
"다음은 발톱. 후훗. 그 다음에엔~ 손가락의 끝부터 잘라내는게 어떠한지요?"
"꺄핫☆ 피가 분~수처럼♡"
"이몸의 역린. 네놈이 건드렸다고 할 수 있겠다"
"얼굴 가죽도 벗기는게 어땡?"
"그 가죽, 니가 먹어라냐"
"하하하하하핫. 완전 웃기다고 너"
페이커가 삼켜왔던, 훔쳐왔던 모든 인격이 튀어나온다.
이것은 변검이다. 가면을, 바꾸는 것이다.
성격. 표정. 말투. 습관. 목소리. 몸짓. 그 모든것을 계속해서 바꿔가며, 죽어가는 쿠레하를 고문한다.
고문? 아니. 이것은 화풀이다.
러시아의 하얀 설원이 쿠레하의 피로 물들어 간다.
근처에 있는 숲에 까지 울려퍼지는 쿠레하의 비명소리도, 혀가 뽑힌 후엔 나오지 않는다.
정보를 얻을 생각은 이미 사라졌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고통스럽게. 고통스럽게 죽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우,읍…"
쿠로요루는 필사적으로 구토를 참고 있다.
고문의 수위가 잔인해서 그런것은 아니다. 충분히 '어둠'을 경험한 쿠로요루도, 원한다면 동급의 고문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얼굴의 근육이 고장난건 아닐까. 계속해서 표정과 성격.말투.습관.목소리.몸짓 그 모든것을 바꿔가는 페이커의 모습은 아무리 어둠에 익숙한 쿠로요루여도, 그 모습을 한번 본 적이 있는 쿠로요루라도, 생리적으로 무리다.
카미조 토우마에게 레벨 6 시프트 실험(절대 능력자 진화 실험)이 실패했을 때.
수십명의 시스터즈들의 한마디 한마디씩. 마치 합창을 하듯 말을 이어가는 모습은 그 카미조 토우마나, 심지어는 액셀러레이터 조차 정신에 커다란 피해를 줬을 혐오적인 모습이었지만.
이것은, 그것보다 몇배는 더 역겨운 모습이었다.
학원도시의 능력자라면, 필시 이 장면을 강대한 정신계 간섭 능력자가 사람을 폐인으로 만들기 위해 만든 '환상'으로 생각할것이다.
그 정도로, 끔찍했다.
저만한 덩어리의 혐오감을, 정면에서 본것이다.
가장 먼저, 인간의 '혐오감'을 연구해 그것을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쿠레하의 정신이, 커다란 '혐오감'에 파괴되었다.
"…끔찍하군"
"우웨에에에에엑!"
그 피암마조차 고개를 돌렸다.
올레루스는, 이미 성대하게 구토를 하고 있었다.
실비아는 눈을 질끈 감은채, '원석' 소녀의 눈과 귀를 막았다.
"쿠케케케케케케케켁. 그냥 이제 죽어~라. 이 멍청~아"
5분도 안되서 쿠레하는 죽었다.
그 신체는, 동물인지 인간인지, 고기덩어리 인지도 알 수 없는 상태다.
"……가자"
뒤에 있는 붉은색의 우방의 피암마보다, 더 붉은색이 된 페이커는 아무렇게나 말을 뱉고, 그 하얀 설원을 걸어나간다.
마지못해, 쿠로요루는 그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페이커가 한발자국씩 걸을 때마다, 그 하얀 설원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