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이변 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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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램버스 제 0성당구에는 성 조지 대성당이라는 이름의 교회가 있다.
너무나 유명한 이름의 교회이기 때문에 물론 같은 이름의 교회도 런던 내에서만 양손가락 모두로 세어야 할 정도로 많지만, 이곳은 다른 성 조지 대성당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만월이 떠오른 밤의 교회는 어딘가의 별세계 같이 무척이나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은은한 빛을 내며 천천히 흔들리는 여러개의 촛불, 스테인글라스에 비춰지는 무척이나 밝은 만월의 달빛. 이런 분위기에 종교적인 의미까지 있는 교회라면 누구나 이런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 성 조지 대성당의 깊은곳.
아름다운 머리칼을 가진 여인이 설교단 앞에 앉아 있다.
그 여인의 앞에는 그런 신비한 분위기의 교회와는 어울리지 않는 액정 모니터가 한대 놓여져 있다.
"으흐흥~"
영국 3대 파벌중 하나인 청교파의 우두머리이자, 동시에 그 산하 조직인 네세사리우스(필요악의 교회)의 우두머리. 아크비숍(최대주교) 로라 스튜어트는 흥얼거리며 그 아름다운 머리카락에 빗질을 하고 있다.
로라의 무릎에는 금이나 은으로 된 빗이 여러개 놓여 있었다. 그 빗을 하나하나 차례차례 모두 사용할 기세로 천천히, 정성스럽게 머리카락의 한올 한올을 빗는다.
「너는 항상 머리를 빗고 있군」
로라의 앞에 있는 모니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로라는 모니터에 신경을 쓰지 않은채, 계속해서 빗질을 하며 대답했다.
"여자의 몸 단장은 낮과 밤을 가리지 않소"
「햇빛이라면 모를까, 달빛은 미신이라고 말을 했을 텐데」
"역시 로망이 없는 남자구려. 물론 나의 황금빛 머리카락은 태양에도 어울리겠지만, 아무래도 여자라면 달빛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겠소?"
「과학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없어」
"나는 마술사지 과학자가 아니니깐 말이오"
「…」
모니터 너머의 남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사악, 사악, 계속해서 머리를 빗는 소리가 대성당 안의 대리석을 통해 방안에 울린다.
로라는 빗질을 계속 하면서 스윽, 하고 모니터를 옆으로 흘겨본다. 원통형의 수조에는 새빨간 액체가 가득 차 있고, 초록색의 수술복을 입은 사람이 거꾸로 떠 있었다. 남자 같기도 하고 여자 같기도 하며, 어른 같기도 하고 아이 같기도 하며, 성인 같기도 하고 죄수 같기도 한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수없는 무표정으로 모니터의 너머를 쳐다보고 있었다.
「햇빛이 아니라 꼭 달빛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건가」
그 말에 빗질을 하는 로라의 손이 순간 멈췄지만, 바로 계속해서 빗질을 하러 움직였다.
"그런것보다"
아까까지만 해도 생긋 생긋 웃고 있던 로라 역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수없는 무표정이 되어 말했다.
"그쪽도 물론 알고 있겠지요"
「뭘?」
"모르는척 하긴. '성인 살해자' 말이오"
「아무래도 정보 자체는 들어오더군. 그런데, 그것 때문에 이 시간에 연락을 한건가?」
"물론, 이런 중대한 사항이 아니면 내가 왜 연락을 하겠소?"
「………」
모니터 너머의 남자의 대답이 늦다. 하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전혀 파악할 수 없다.
로라 역시 자신의 내면을 숨기는 듯한 무표정으로 남자의 대답을 기다린다.
그렇게 5초 정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지난 후, 모니터 너머의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학원도시가 관계된 일은 아닐텐데」
"오야. 섭섭하게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총괄이사장 아레이스타. 청교도와 학원도시는 동맹관계잖소?"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 미소의 뒤에 어떠한 꿍꿍이가 있는지, 전혀 감조차 오지 않는다.
"'성인'은 우리 마술측의 '핵폭탄'과 같은 중요한 사람들이오. 그렇지만 벌써 살해당한 '성인'이 다섯. 이쪽도 이제는 방관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란 말이오. 게다가 범인의 정보는 완전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고, 그가 마술사인지, 학원도시의 초능력자인지, 그것도 아니면 제 3의 능력자인지 그것조차 알수없다오"
그러니까 연락을 한 것이오.
그렇게 말한 로라는 들고 있던 금으로 된 빗을 무릎위에 올려둔다.
"그러니까 도와줬으면 좋겠소. 학원도시의 초능력자를 지원해주시오"
「호오」
학원도시의 총괄이사장. '인간' 아레이스타는 흥미롭다는듯
「그렇다면 학원도시 측의 이득이 있는건가?」
"아까도 말했듯이, 범인이 마술사인지, 학원도시의 초능력자인지, 다른 제 3의 능력자인지 전혀 정보가 없소. 성인 살해자를 제압했는데, 그가 학원도시의 초능력자면 학원도시가 개입했다는 오해 자체를 막을 수 있을 것이고, 그가 마술사면 청교파가 받는 보수를 나눠줄것이고, 그가 제 3의 다른 능력자라면 그의 신원을 넘기겠소"
몸을 가르던 뇌를 꺼내 인체실험을 하던 아무런 상관 하지 않겠소.
로라는 듣는 사람이 소름이 끼칠만한 그런 말을 하고, 다시 생긋 웃으며 말했다.
"아니면 이쪽을 도울 수 있는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바쁜 일이 있는 것이오?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생각되오만"
그것도 아니면ㅡ
로라는 마치 여우처럼 눈웃음을 치며
"범인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어서 그럴 필요가 없다던가"
모니터 너머에 있는 아레이스타가 떠 있는 욕조에 뽀글. 하는 소리와 함께 한방울의 기포가 올라간다.
「재미있는 가설이군」
"그렇소? 나는 별로 재미있지는 않소만"
「역시 청교도의 마성의 여자. 꼬리가 아홉개 달렸다는 암여우란 별명은 적절한것 같아. 교섭을 하던 도중 정신을 차리면 언제나 네가 유리한 조건이 되고, 그 교섭을 무를 수도 없게 만든다는 실력은, 헛소문이 아닌가 보군"
"칭찬, 감사하오"
로라는 다시 생긋, 하고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까지 말한다면 어쩔 수 없군. 이쪽에서도 초능력자를 지원해주지. 하지만 범인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다고 했는데 무슨 수로 범인을 찾을건데?」
"뭐, 그건 문제 없소"
그녀는 그런건 매우 사소한 일이라는듯, 평탄한 어조로 말하며 무릎 위에 있는 은으로 된 빗을 집으며 말했다.
"이쪽에도 '성인'은 있으니 말이오
「미끼로 쓰겠다는 건가」
"미끼라니, 나를 너무 나쁜 여자로 몰지 마시오. 우리쪽의 '성인'은 우수해서, 그런 녀석따위에게 밀리지 않을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오"
「말은 잘하는군」
아레이스타가 떠있는 욕조에 무언가의 리포트로 보이는 문서가 떠오른다. 아마도, 그 욕조는 컴퓨터의 모니터 같은 역할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5개 정도의 문서를 차례대로 훑어본 아레이스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당장이라도 보내주도록 하지」
"고맙소. 총괄이사장 아레이스타"
「네 말대로 우리는 동맹관계니까 말이야」
아레이스타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딸칵. 하며 모니터의 전원이 꺼졌다.
은으로 된 빗으로 머리를 빗던 로라는 몇번 빗질을 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빗질을 멈췄다.
그런 로라의 표정은 노골적으로 기분이 나쁜듯한, 그녀답지 않은 굳은 얼굴이었다.
아레이스타의 말대로 로라의 특기중 하나는 뛰어난 교섭술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레이스타에게도 먹혀들었다.
100%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음에도, 로라의 표정은 어두웠다.
"……"
전원이 꺼진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로라가 잠긴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자, 어느 쪽이 여우인지 확실하게 가려보자고. 아레이스타 크로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