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이변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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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즈라 시아게와 타키츠보 리코는, 제 3학구에 있는 독실 살롱에 있다.
독실 살롱이라는 것은 학원도시 특유의 서비스업중 하나다. 바깥에서는 파티룸이라고 할까? 노래방을 커다랗게 만든것 같은 장소에 게임기, 텔레비전, 컴퓨터, 노래방 기계, 영화DVD, 보드게임 등이 있어 그런것들을 이용할 수 있는 기본적으로 유흥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식사의 주문도 가능하고, 여러명이서 신나게 떠들면서 파티분위기를 만들수도 있다. 다소 비싸기는 하지만, 어른들의 눈을 피해 어느정도의 프라이버시를 보장받는 비밀기지라는 것은 학생들에게는 꽤나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다.
뭐, 식사도 그리 뛰어나지는 않지만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딱 제 값을 한다고 해야할까?
그런것을 느끼면서 식사를 마친 하마즈라는 벨을 울려 다 먹은 그릇을 점원이 가져가게 했다.
뒷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긴장상태의 하마즈라가 말했다.
"그, 이, 이제 뭐, 뭐할까?"
누가 듣는다면 책임감 없는 남자라고 욕할 것이다. 애인과 데이트를 하러 나와서 뭐할까? 하고 물어보는 남자라니.
하지만 불쌍한 하마즈라를 대신해서 변명을 하자면, 확실히 하마즈라는 계획을 짜서 나왔다. 오늘을 위해 빡세게 로드 서비스로 돈을 모아서 독실 살롱까지 예약했고, 키누하타한테 맞아가면서 그 B급 영화관에 가는 약속도 취소하고, 제대로 된 데이트 코스도 짜왔지만.
"하마즈라가 좋아하는거면, 아무거나 좋아"
애인인 타키츠보의 반응이 이렇기 때문이다.
아침일찍 만나 적당히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예약한 살롱으로 들어와 좀더 놀고, 미리 조사한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살롱으로 돌아와 영화를 보고, 좀 더 시간을 떼우다가 조금 큰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밤거리를 돌아보는, 거창한 계획이 존재했다. 인터넷에서 조사한거지만 말이다.
하지만 타키츠보는 살롱에 들어올때부터 조금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점심을 먹으러 나가자고 하자 '그냥 여기서 먹는게 좋아' 라고 해서, 점심까지 살롱에서 먹게된것이다.
덕분에 금전적으로는 좀 더 여유가 생기게 됐지만, 하마즈라가 신경쓰는것은 그런것이 아니었다.
(나, 나랑 있는게 재미없나…!?)
사랑스러운 애인과 단둘이 데이트.
그런 꿈만같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하마즈라는 무척이나 초조해보였다.
왠지 모르게 기운이 없어보이는 여자친구. 게다가 혼자보는 B급 영화가 또 마음에 들지 않는지, 키누하타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전화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하마즈라는 키누하타한테 오는 전화를 무시한채 '오늘 하루는 제발 봐줘!' 라며 고민을 하다 결국, 어떻게든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래방 기계의 전원을 넣고 마이크를 집으며 말했다.
"그, 그럼 한곡 뽑겠어"
자리에서 일어나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리모콘을 조종하여, 미리 연습해둔 노래의 번호를 입력한다. 한 2년전쯤에 유행하던 아이돌의 노래였다. 하마즈라는 '크,크흠!' 하고 목을 추수리고, 들썩들썩 뛰는 가슴을 한손으로 부여잡은채로 노래를 시작했다.
(좋았어. 나쁘지 않게 부른거 같아!)
연습하길 잘했다며 자신의 노래실력에 어느정도 자신감을 가지면서 노래를 마무리 하자, 짝짝짝. 옆에서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하마즈라 노래 잘하네"
"그, 그래? 헤헤… 타키츠보도 한곡 어때?"
"응"
조용히 마이크를 넘겨받은 타키츠보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번호를 입력했다.
설마 하지만 타키츠보가 하마즈라를 위해 몰래 노래를 연습하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여자들 끼리는 노래방에 잘 온다고 들었으니, 아이템끼리 자주 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하마즈라는 조용히 전주를 듣고있는 타키츠보를 그윽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오늘 타키츠보는 항상 입던 핑크색 저지 차림이 아니다. 무릎까지 오는 옅은 물색 치마에 검은색 스타킹. 보는것만으로 따뜻해 보이는 갈색의 니트제 스웨터를 입고 있고 그 옆에는 갈색의 코트가 있다.
옷을 고를때 항상 편안함을 추구하는 타키츠보가 이런 옷을 살 일은 절대 없다. 하지만 하마즈라와 데이트를 한다는 것을 들은 키누하타와 무기노가, 타키츠보에게 반 강제적으로 입힌 코디가 이런 옷이었다.
니트제 스웨터와 여성용 코트. 뭔가 서로의 취향을 어느정도 반영한것 같은 패션이지만, 길거리에 싸보이는 여자들과는 달리 청초한 매력을 뿜는 타키츠보에게 어울리는 패션이었다.
(키누하타, 무기노… 고맙다 정말!!)
타키츠보가 부르는 노래는 최신의 멜로곡이었다.
하마즈라는 낮은 음색으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런류의 노래를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애인이 생긴후에 애인이 부른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감정이입을 하고 부르는 타키츠보의 노래실력은, 음악에 별로 관심이 없는 하마즈라도 감탄할 정도였다.
"하마즈라?"
"어… 응?"
거의 넋을 잃고 타키츠보를 바라보느라 노래가 끝난것을 늦게 파악한 하마즈라는 그제야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질렀다.
"타키츠보야말로 노래 정말 잘부르네"
"고마워"
옅게 웃으며 대답한 타키츠보였지만, 바로 그 직후 다시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다른 사람이라면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이템이나 하마즈라이기에 눈치챌 수 있는 미묘한 변화였다.
"…"
"……"
그리고 어느정도의 정적 후에, 하마즈라가 입을 열었다.
"호,혹시… 별로 재미없어?"
"으응. 아니야"
"조금, 불편해 보이는거 같은데. 혹시, 나랑 있는게…"
"아니야"
타키츠보는 그 멍한 눈에 힘을 준채 하마즈라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난. 하마즈라한테 짐이 되기는 싫어"
"…?"
"여기, 비싸잖아"
"엥?"
"하마즈라가 열심히 일해서 번돈을, 나 때문에 쓰는것 같아서…"
"뭐, 뭐야. 설마 그거때문에 고민하고 있던거야?"
끄덕끄덕. 하고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위아래로 흔드는 타키츠보.
"…그치만, 돈은 내가 더 많아. 어둠쪽 일이, 보상은 많으니까… 조금이라도 나한테 상담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타키츠보…"
찌잉. 하고 눈물이 나올뻔했지만, 하마즈라는 눈을 깜빡거리면서 참았다.
"그런거라면 걱정마.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돈을 쓴다는건 꽤나 행복이라고? 그럼 다음부터라도 먼저 이야기 할테니까. 모자를때 보태주거나 하면 되잖아. 응. 그거면 됐지?"
"…응"
"그, 나,나도 널 위해서 열심히 제대로된 일을 하는거니까. 양아치짓도 이만 졸업해야지"
얼굴이 근질근질해질 정도로 부끄러운 대사였지만, 지금의 하마즈라라면 견딜 수 있었다.
어울리지도 않게 얼굴을 붉힌채 쑥쓰럽게 말하는 하마즈라를 보고, 타키츠보도 덩달아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더니,
"그래도 이런 비싼곳에서 놀기 위해서 오래 일을 하는것보다, 싼곳도 괜찮으니까 내 곁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있었으면 해"
"타, 타키츠보오오오!"
"꺗"
평소보다도 훨씬 귀여운 타키츠보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말을 한게 잘못이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하마즈라는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타키츠보를 밀어넘어트렸다.
소파 위에서 타키츠보를 덥치는 듯한 자세로, 양팔을 타키츠보의 고개 옆에 두고 아래를 내려다보는 하마즈라와, 그런 하마즈라를 붉어진 얼굴로 올려다보는 타키츠보.
그리고 몇초간 자신을 바라보던 타키츠보가 살짝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오, 오케이!? 노!?)
평생동안 여자와 사귀어본적이 없는 이 쑥맥은, 그것이 어떤것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다.
결국 제 정신이 돌아온 하마즈라는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완전히 붉은 얼굴로 그 양손을 휘적거리며,
"아 그,미,미미미미미미미미미안! 자, 잠깐 제정신이 아니었나봐!"
"…………………………………"
뭔가 다시 멍한 눈빛으로 돌아간 타키츠보가 아무말 없이 일어나 소파에 다시 앉았다.
하마즈라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세간에선 이런 표정을 '삐쳤다' 라고 할것이다.
토라진 타키츠보가 아무말을 하지 않자, 다시 정적이 이어졌다.
(뭐, 뭘 잘못한거지!?)
정좌자세로 식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고민하던 하마즈라는, 인터넷에서 봤었던 연애의 기술의 내용을 머릿속에서 다시 정리했다.
(에… 길거리를 돌아다닐땐 여자를 차도쪽으로 하고, 자주가던 음식점은 금지. 일어날땐 손을 잡아주고… 옷차림을 칭찬… 그래, 옷차림!)
아무리 연인 사이라도 부끄러운 대사를 하기엔 아무래도 힘이 든다. 그것도 연애의 엄청 초반부라면 더하고 말이다.
하마즈라는, 머릿속에서 할말을 먼저 정해둔뒤 속사포처럼 말했다.
"역시타키츠보는귀엽다니까.오늘옷도무척이나귀여웤↗!?"
무척이나 긴장해서 그럴까. 결국 성대하게 삑사리를 내버린 하마즈라는 속으로 '헉. 망했다!?' 같은 생각을 했지만,
"풋"
하고, 타키츠보가 소리내서 웃었다.
"하마즈라는 재밌어"
"그, 그래?"
좋아하니 다행이구만.
하는 생각을 하며, 하마즈라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식은땀을 닦은 후, 음료수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런 남자친구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쳐다보던 타키츠보가 말했다.
"그래도, 하마즈라는 바니걸 복장을 좋아하잖아"
"풉!!!"
콜록 콜록! 성대하게 전방에 음료수를 뿜어버린 하마즈라는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무,무무무무무무무슨 소리야!? 그건 키누하타의 헛소리라니까!"
"하마즈라는 내가 좋아?"
"당연하지!!!"
"그럼, 나랑 키누하타는?"
"물론 타키츠보지!!!"
"나랑 무기노는?"
"무조건 타키츠보지!!!!!!!!!!!!!!!!!!!!!!!!!!!!!!!"
그건 생각할 필요도 없다!!
라며, 흉포한 레벨 5(초능력자)에게 정보가 들어간다면 상하체가 분리될만한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레벨 0(무능력자).
그러자, 타키츠보는 만족한것인지 양손의 검지손가락을 마주댄채 꼼지락 꼼지락 대면서 말했다.
"그럼, 바니걸. 입어줘도 되는데"
"입어주십쇼!! 꼭 부탁드립니다!!!!"
주먹을 꽉 쥔채 무심코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하는 하마즈라.
속으로 나이스! 나이스! 를 몇번이나 외친 하마즈라였지만, 타키츠보는 눈을 가늘게 뜬채, 이렇게 말했다.
"…하마즈라 변태"
"커헉!"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히고 양손으로 가슴을 가리는듯한 타키츠보의 한마디가 가슴에 박혀 소파에 쓰러지는 하마즈라.
"……"
타키츠보는 얼굴을 붉힌채, 소파에 엎드린채 꿈틀꿈틀. 하고 있는 하마즈라를 향해 속삭였다.
"……그럼, 바니걸 복장을 입은 키누하타랑 나는?"
"에?"
"…"
"……"
"………"
"…………"
"무, 물론 타키츠보지!!"
"………………반응, 늦어"
"아냐! 절대 상상하다가 반응이 늦은건 아니야! 진짜야!"
씨도 먹히지 않을듯한 거짓말을 하는 남자친구를 찌릿. 하고 노려보는 타키츠보.
그리고 하마즈라는 자신의 여자친구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자 생각을 해봐. 내가 키누하타랑 너 사이로 고민을 할리가 없잖아"
"……"
"키누하타는 너보다 몸매도 나쁘고, 성격도 나쁘고, B급 영화나 좋아하는 멍청이에다가 자기중심적이고 뭐만하면 날 괴롭히고 음료수 셔틀로 부리질 않나 그러고 보니 저번에는 로프로 둘둘 날 묶었잖아? 자 봐봐, 이녀석 전화 오는거 오늘은 받지도 않고 있다고. 그런 성격나쁜 중딩을 내가ㅡ"
콰앙!! 하고, 마치 하마즈라의 말을 끊듯 독실 살롱의 문이 날아갔다.
최근 일어난 사건들 때문인지, 습격이라고 판단한 하마즈라가 타키츠보의 손을 잡고, 습격자의 정체를 확인하자 그곳엔,
"하마즈라!!"
"꺄악!!!!!!!"
그 성격나쁜 중딩이 서있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해서 죄송함다!!! 거짓말이에요 거짓말!! 솔직히 꽤 어울리겠거니 하고 상상했어요!!"
"헉… 헉, 저, 전화도 아, 안받고, 헉… 무슨 완전 바보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거에요, 바보즈라!"
"으, 엥?"
문을 깨부수고 들어온 키누하타는 꽤나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이 날씨에 땀까지 흘리며 심각한 표정으로 숨을 고르면서 말했다.
"무, 무슨 일이야?"
"완전 긴급상황이에요"
덩달아 진지해진 하마즈라의 질문에, 키누하타가 대답했다.
"무기노한텐 이미 연락해놨어요. 완전 간단히 할수있는 이야기가 아니니까 일단 이쪽도 합류부터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