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문화 콘텐츠 사이트 삼천세계

Faker


Original |

다섯번째 이변 6화


**

밤에는 인적이 ​드​물​다​. ​

세계 어느곳을 가나 공통된 사항이긴 하지만, 생활하는 사람 대부분이 학생인 학원도시는 낮과 밤의 차이가 극단적으로 심하다.

"흐음"

그런 밤의 거리에, 페이커는 서 있었다.

아무도 없는 거리지만, 밝은 가로등은 규칙적으로 세워져 있어 어둠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그 가로등 중에 하나. 고장이 났는지, 규칙적으로 세워져 있는 가로등의 사이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 가로등이 있다.

페이커는 그 고장난 가로등의 아래. 어둠속에 서 있었다.

도시에 있는 모든 사람이 갑작스럽게 증발한 유령도시 같은 쓸쓸함이 느껴질법했지만, 페이커는 차가운 밤바람이 기분 좋은듯 옅게 미소를 짓고 있다.

"왔구나"

밝은 가로등 너머로 보이는 어둠을 향해, 페이커가 말했다.

그러자 또각또각. 하는 여러명의 구두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이내 밝은 가로등 안으로 세명의 소녀와 한명의 소년이 나타났다.

이렇게 네명으로, '아이템'이다.

"이 시간에 나를 불러냈으니까, 좋은 대답을 가지고 왔겠지? 그렇게 믿고 싶어"

학원도시의 최고랭크의 기밀정보를 내놓으라고 하는 사람 치고는 너무나도 가벼운 언동이었다.

또각. 하고,

가로등 아래라는 '빛'에서, '어둠'으로 다가가듯이, 키누하타 사이아이가 한발자국 앞으로 걸어나왔다.

가로등의 빛이 닿지 않는 어둠과, 가로등의 빛.

정확히 그 사이에 서 있듯이 멈춘 키누하타가 어둠을 향해 말했다.

"파라미터 ​리​스​트​(​소​양​격​부​)​는​ 넘겨주겠어요"

"그래? 다행이야. 그렇게 판단할거라 생각하고 있었어. 그 편이 훨씬 합리적일테니까. 그럼 내가 그쪽으로"

"다만"

키누하타의 목소리에, 한발자국 걸어가 가로등의 빛 아래로 들어가려고 하던 페이커의 몸이 멈췄다.

페이커도 키누하타처럼 가로등의 빛과 어둠. 정확히 그 사이에 멈춰섰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학원도시 최고의 기밀정보에요. 그렇게 완전 쉽게 넘겨주기에는 아무래도 찝찝해요"

"그래서? 추가로 원하는거라도 있어? 나도 악인은 아니니까, 왠만한거면 다 들어줄거라 생각하는데"

"공적으로, 사적으로, 몇가지 질문을 하고 싶어요"

"얼마든지"

페이커는 환영이라는듯, 그 양 손바닥을 보이며 우아하게 고개를 숙였다. 보통 같으면 얕보고 있다. 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저 페이커라면 그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단순한 쇼맨쉽일것이다.

"이것을 대체 어디에 쓰려고 하는거죠?"

"대뜸 본론이군"

페이커는 한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손을 휘적거리며 말했다.

"그 파라미터 리스트(소양격부) 내에는 학원도시에 있는 모든 학생들의 '재능'이 적혀있지. 그 안에서, 나는 나의 이름을 찾고 싶어"

"…단지 그것뿐이라구요?"

"뭐, 겸사겸사 해서 나에게 필요한 능력을 가진 녀석들을 찾아서 내 능력을 늘리겠지만"

"교섭재료로는 사용하지 않는건가요?"

"교섭?"

이해가 안간다는듯, 페이커는 크게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더니,

"그 대답은, 아마 너의 다음 질문에 이어질것 같은데"

"………"

대답하지 않고, 키누하타는 계속해서 질문한다.

"오랜 시간 당신을 봐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의 목적을 알수가 없었어요. 그 '특성'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여태까지는 스쳐지나가는 사건이니 괜찮았지만, 이번에는 완전 달라요. 완전히 연관되어 있다구요. 그러니까, 당신의 목적을 알아야겠어요"

"목적, 이라… 별거 아니야"

가볍게 말하는 페이커였지만,

순간 이글. 하고 엄청난 살기가 내뿜어졌다.

순식간에 사람이 다가가기 쉬워보이는 가벼운 성격을 집어넣은 페이커는, 이마에 힘줄까지 띄워가며 완전히 위협적인 인상으로 변하더니,

"우리를 이꼴로 만든 아레이스타를 죽인다"

"뭐,라구요…?"

"이걸 교섭재료로 사용할 생각은 없다. 학원도시의 상층부부터 철저하게 파괴하고, 내 손으로 직접 그 총괄이사장의 머리통을 날리겠다"

"……"

키누하타는 너무나도 스케일이 큰 대답에 순간 할말을 잊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암흑의 5월 계획.

그 비인도적이고, 최소한의 선택권마저 주지 않았던 그 실험에 참가하게 된 실험체들은 전부, 단 한명도 빼놓지 않고 똑같은 생각을 한적이 있다.

학원도시에 복수를 한다.

하지만, 실험에서 탈출해 학원도시의 '어둠'에 적응할 수 밖에 없었던 키누하타와 쿠로요루가 현실을 깨닫게 될때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건 완전 불가능해요"

학원도시의 어둠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다.

그것은 마치 성질이 나쁜 늪처럼, 한번 발목이 빠져서 버둥거린다면 끝도 없이 그 안으로 빨려들어갈것이고, 허리 높이까지 온 어둠에서 벗어나길 포기했다가 더이상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순간, 다시 어둠으로 빨아들인다.

정체를 알수없는 학원도시 외부의 능력자 단체나 세계의 모든 나라가 힘을 합친다고 해도 어떻게 할수 없을 정도의 끝이 안보이는 어둠.

그런것을, 개인이 어떻게 할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오히려, 이런 나보다도 완전 깊은 어둠을 알고 있는 당신은, 이미 알고 있는거 아닌가요?"

"그래서"

페이커가 오른팔을 흔들자 우득, 하고 관절이 뒤틀리는 소리가 났다.

"그래서 나보고 그놈들을 용서하라고…? 안될거라고, 불가능하다고, 그놈들을 용서하라고?"

"용서하라는게 아니에요"

페이커를 보는 그녀의 표정은 버려진 강아지를 보는듯한 얼굴이었다.

값싼 동정심은 아니다. 진심으로, 정말로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위치에 있는 페이커를 불쌍히 여기는 눈이었다.

"그 일을 잊고 각각의 인생을 살기에도, 시간이 완전 모자라요. 앞으로 평생동안, 가능성도 없는 일에 목숨을 걸고 대체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거죠? 생각을 해봐요 페이커! 모든것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당신이 보기엔 그것이 합리적인 건가요!?"

"………"

대답은 없다. 

다른 아이템의 멤버들은 한마디도 안한채 키누하타와 페이커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다.

무표정으로 수초간 생각하던 페이커가 한발자국 뒤로 걸었다. 다시 가로등의 어둠으로 들어간 페이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쩌다 보니, 진실게임 비슷하게 된것 같네. 다른사람이면 모르겠지만, 너나 쿠로요루라면 크게 상관 없으려나"

조금, 울적해보이는 표정이었다.

​성​격​.​능​력​.​언​행​.​버​릇​.​ 그 모든것이 남을 따라하고, 거짓투성이인 페이커의 진심이 어느정도 보인것 같았다.

"키누하타. 너는, 그 연구소에 끌려갔을때를, 기억해?"

"잊을리가, 없죠"

어느날. 학원도시에서 차일드 에러(버려진 아이)들을 관리하는 고아원에서 살던 그녀는 문자 그대로 연구소에 '팔려'갔다.

더 좋은 곳으로 가는거라며 자신의 손을 잡아준 남자를 따라간곳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이 잔뜩 있는 아무것도 없는 하얀색 방이었다.

처음에는 친구가 많이 생겼다면서 좋아했다.

3일후, 지옥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기억이 안나"

"……?"

"철이 들고보니 연구소에 있었다. 하는 이야기도 아니야. 실험이 시작되고 레벨 5(초능력자)로 인정받았을때. 그 전의 기억이 없어. 완전히, 백지야"

"실험의 부작용인가요?

"글쎄, 아마도 그렇겠지"

페이커는 '그게 중요한게 아니야' 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단순히 고통스러운 실험에 강제로 참가하게 됬다는게 화가 나는게 아니야. 너는 알고 있을거야. 내 능력. 내 성격"

"…"

아무리 조용한 밤이라고는 하지만, 어느정도 거리가 있음에도 까드득. 하고 페이커가 어금니를 꽉 무는 소리가 들렸다.

페이커는 자신의 어금니를 깨부숴 씹어먹을 기세로, 그 감정을 토해낸다.

"너는 그 1위의 방어성을, 쿠로요루는 1위의 공격성을 받았지. 내가 그 1위에게 무엇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꼴을 봐!! 남을 따라하는 재주밖에 없는 내 꼴을!! 내 꼴을 보고 그 빌어먹을 자식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것 같아!? 앙!? 나 자신도 추잡한 광대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페이커는 증오에 가득찬 눈으로 키누하타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 증오의 방향은 키누하타가 아니다. 키누하타의 너머로 보이는 그 계획의 잔재일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같은 실험체라는 동질감으로 인해 자신을 투영해서 보고 있는걸까.

"단순한 복수따위가 아니야. 이건 합리적인 일이다. 나는 그 실험을 실행한 학원도시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그 실험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야 해!! 나라는 존재는, 나는, 그 실험의 부산물 따위가 아니야!! 다름 아닌 나의 의지로, 나의 선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나는 나아갈 수 없어! 무슨 짓을 해도, 나라는 존재는 앞으로 나아가는게 ​불​가​능​하​다​고​!​!​!​"​

항상 페이커가 보여줬던 거짓된 성격이나, 그 상황에 적절한 연출을 하는것이 아닐것이다.

방금의 말에서 '나는' 이란 말이 몇번이나 ​나​왔​을​까​. ​

가슴속에 맺혀 있던 그 응어리를 정확히 말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몇번이나 말한 것이다.

"페이커……"

그 간단한 행위만으로도 숨이 차는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호흡을 정돈하던 페이커가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 파라미터 ​리​스​트​(​소​양​격​부​)​가​ 필요해. 그러니까 내놔! 너희들에겐 필요없는 물건이잖아!!"

그 순간이었다.

페이커의 감정이 가장 격해진 순간.

그의 시야가 4개로 갈라지는듯 하더니,

"아,?"

쩍, 쩌적,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저​적​!​!​!​! ​

믿기지 않을 정도의 굉장한 소리가 페이커의 뇌속에서 울려퍼졌다. 진짜로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다. 꿈속에서 소리가 들리는듯한 착각. 하지만, 확실히 페이커의 뇌속은 소음으로 뒤집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ㅡ​!​?​"​

몰려오는 고통.

피부를 벗겨낸 연분홍색의 살에 바늘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신경을 하나하나 쥐어 뜯는듯한, 손톱이 통째로 뽑히는 듯한 고통이 머리속에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페, 페이커!?"

무척이나 당황스럽다는 키누하타의 음색이 들려왔지만, 그런것에 신경쓸 시간은 없다. 자신에게 일어난 갑작스러운 현상에 대해, 해석을 시작했다.

아득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페이커는 확실히 '주변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는 감각'을 떠올린다. 동시에, 주변에 있는 모든 공기입자의 움직임까지 파악할 수 있는 미래예측이 발동된다.

원인은 ​알​아​냈​다​. ​

페이커는 4개로 갈라진 시야로, 눈앞에 있는 '적'을 응시했다. 그리고 적은, 확실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타키츠보 리코.

​A​I​M​스​토​커​(​능​력​추​적​)​이​라​는​ 레벨 4(대능력)을 가진 '적'이, 자신의 능력을 사정없이 페이커에게 쏟아붇고 있었다.

(이,이게 레벨 4(대능력) 이라고…? 정보랑, 전혀 다르잖아. 체정도 없이 이 정도 출력이 가능할리가…?)

타키츠보의 ​A​I​M​스​토​커​(​능​력​추​적​)​는​ 능력자의 AIM 확산역장을 기억해서 검색하는 것으로 검색한 대상의 위치를 알아내는 능력이다. 기본적으로 비전투계열의 능력이지만, 능력자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AIM 확산역장을 포착, 간섭하여 대상의 퍼스널 리얼리티(자신만의 현실)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 가능하다. 그 응용법으로, 적의 공격의 방향을 바꾸거나, 능력의 발현을 어느정도 방해할수도 있다.

그렇다면.

하마즈라 시아게라는 '완전한 이레귤러'를 통해 정신적으로, 능력적으로 성장한 타키츠보가 그 능력을 전력으로 사용한다면.

상대의 퍼스널 리얼리티(자신만의 현실)을 통째로 뜯어내는것이 가능하다.

아무리 타키츠보가 '여덟번째'의 소질이 있다고는 하나, 아직은 레벨 4(대능력)의 규모다. 그 학원도시가 통상적인 커리큘럼으로는 시간과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 포기한 인재다. 아무리 하마즈라 시아게라는 이레귤러가 영향을 끼쳤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단기간 내에 성장하는건 불가능하다.

평소의 페이커에게는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AIM 확산역장에 개입하는 것을 미리 눈치채고, 중간에 끊고 정상적인 반격에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감정이 격해진 페이커는 눈치채지 ​못​했​다​. ​

키누하타가 뭐라 하며 타키츠보를 말리고 있는것 같긴 하지만, 그 정도로 능력이 취소될일은 없어보였다.

"빌,어먹,을"

피를 토하는 듯이, 페이커의 목소리는 부분부분 끊어졌다.

"나,를 속였,겠,다"

"아니에요! 페이커, 나는"

"이것,마,저 빼,앗기,면,"

키누하타의 말을 듣지도 않고, 페이커는 중얼거렸다. 누구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이.

"이것마저 빼앗기면 ​나​느​으​으​으​으​으​으​으​으​으​은​!​!​!​!​!​!​"​

정신을 재정돈한 페이커는 자신의 퍼스널 리얼리티(자신만의 현실)을 도려내고 있는 타키츠보의 AIM 확산역장을 스캔했다. 이미지적으로, 문어발 같은 얇은 능력의 선이 여러개가 자신의 뇌에 붙어있는 ​느​낌​이​었​다​. ​

섬세한 ​정​신​감​응​(​텔​레​파​시​)​ 능력으로 그 연결을 하나하나 끊어냈지만, 그 영향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정확한 능력의 발현이 되질 않아. 퍼스널 리얼리티가 뒤틀린건가, 제길. 영구적인 손상인지 아닌지조차 알수가 없어)

뇌라는 컵에 능력이라는 물이 차 있는 것처럼, 빈틈없이 안을 매꾸고 있을 퍼스널 리얼리티가 네모난 얼음이 된것처럼 뒤죽박죽으로 뒤틀려 ​있​었​다​. ​

그리고, 하나의 결론을 내렸다.

(저 녀석은 너무, 위험해)

순식간에 타키츠보의 후방으로 텔레포트한 페이커가 오펜스 ​아​머​(​질​소​장​갑​)​으​로​ 무장한 주먹을 타키츠보에게 뻗었다. 퍼스널 리얼리티에 손상을 입은이상, 사출계 능력이나 텔레포트 같은 세세한 계산이 필요한 능력보다는, 자신의 육체를 사용해 확실하게 사살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하지만, 타키츠보의 부드러운 육체가 고기덩어리가 될 일은 없었다.

"!?"

주먹을 뻗던 페이커가 움찔. 하고 뒤로 살짝 도약했다. 그리고 방금까지 페이커가 있던 공간을 지우듯이, 무기노 시즈리의 멜트 다우너가 날아왔다.

(퍼스널 리얼리티에 입은 손상이 미래예측에도 영향을 끼치는 건가!? 해석이, 느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네"

무기노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판단한 순간, 시야의 끝에 무기노의 치마가 펄럭이는것이 보였다. 그것이 발차기라는 것을 파악한 페이커는 고개를 크게 숙여 공격을 피했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퍼억! 하고 옆구리에 강한 충격이 왔다. 키누하타가 아래에서 위로 올리는 주먹을 꽃은것이다. 같은 오펜스 ​아​머​(​질​소​장​갑​)​으​로​ 피해는 없지만, 반격의 기회를 놓쳤다.

"칫ㅡ!"

페이커는 그 왼쪽 손바닥을 공중에서 아래로 내려찍듯이 휘둘렀다. 그러자 눈에 보이지 않는 매우 무거운 물체로 지면을 찍어내린듯. 쩌억! 하고 땅이 갈라졌다. 제대로 당한다면 뼈까지 가루가 될 정도의 위력이었지만, 그 갈라진 지면 위에 무기노의 시체는 없다.

"늦어"

허리를 거의 접듯이 자세를 낮춘 무기노가 빙판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듯 매끄러운 움직임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주먹이 아닌, 손끝을 뾰족하게 세우는 형태로 페이커의 미간을 노렸다.

페이커의 육체엔 오펜스 아머(질소장갑)이 둘러져 있다. 25mm 짜리 대물 저격총의 탄환도 무리없이 막아낼 수 있는 질소의 막에 인간의 발차기나 주먹은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

그렇기에 페이커는 능력을 믿고 무기노의 손끝을 미간으로 받아내려고 했지만,

(무,뭐?)

스으으윽! 하고 미간의 정 중앙이 꿰뚫리는 미래가 보였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 본능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크게 흔든 페이커의 얼굴을 얇게 베며 무기노의 손끝이 ​지​나​갔​다​. ​

(손 끝에, 멜트 다우너가 있어!?)

멜트 ​다​우​너​(​원​자​붕​괴​)​가​ 반드시 '입자 파동 고속포'라는 광선으로 사출되리란 법은 없다.

자신의 폭주로 없어진 왼팔에 방대한 전자선을 사용한 입자 파동 고속포를 회전시켜 '팔'의 형태를 만들어냈던것처럼, 타격점의 끝에 적은양의 멜트 다우너를 회전시키는 것이다.

무기노의 능력은 양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든, 많든, 균등하게 닿는 모든것을 즉시 '소멸'시키는 공격이다. 저런 공격이 맞는다면, 피격부위가 지워질것이다.

무기노의 맹공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무기노의 공격을 피해, 얼핏 무방비해 보이는 그녀의 등에 공격을 먹이려고 하던 페이커는 다시 한번 죽음의 이미지를 느꼈다. 세세한 조정 없이 아무렇게나 텔레포트를 하여 거리를 벌리자, 손끝을 지르는 형태였던 무기노가 순식간에 위치를 반전하여 바로 직전까지 자신이 있던 위치를 포함해, 족히 10M는 되는 거리를 가가가가가가각ㅡ! 쓸어버리며 날아갔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무기노의 신체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불가능한 기행이다.

그 말도 안되는 기행을 본 페이커가 지긋지긋 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무슨 터프한 여자야!? 멜트 다우너를 반대로 쏴서 그 반동으로 공격한다고!?"

사용방법 자체도 어이가 없지만, 더 어이가 없는 것은 따로 있었다.

순간적으로 저만한 파괴력을 가지는 광선의 반동이다. 마치 대물 저격총을 서서쏴 자세로 쐇을때 정도의 충격이 육체에 가해질 것이다. 하지만 무기노는 그냥 사용한것도 아니고, 이미 손을 뻗은 그 자세를 억지로 ​반​전​시​켰​다​. ​

"흥"

근육통 정도로 견딜 수 있는 레벨이 아닌 충격을 받고도, 무기노는 표정하나 바뀌지 않는다.

"능력에만 의존해서야, 학원도시의 어둠을 견딜 수 있겠어?"

그녀의 멜트 ​다​우​너​(​원​자​붕​괴​)​는​ 매우 정밀한 계산을 요구하는 능력이다. 지근거리에서의 교전에선 유용하지 않는데다가, 어느정도의 생존 본능이 제약을 걸고 있긴 하지만 조금만 잘못해도 사용자의 육체도 날려버리는 위험한 능력에만 의존해서야, 다른 능력자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을수 없다.

그렇기에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단련했다. 뒷세계의 격투술과 어지간한 운동선수를 가볍게 뛰어넘을 정도의 체력. 그리고 멜트 다우너의 여러 응용으로, '근접전에서는 가장 취약'할 터인 4위의 레벨 5(초능력자)는, '근접전에서 가장 최강'의 전투능력을 발휘한다.

"큿ㅡ!"

자세를 낮추고 다가오는 무기노를 피해, 페이커가 뒤로 크게 도약했다.  

무기노는 페이커가 생각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공격해온다. 게다가 페이커는 퍼스널 리얼리티가 어긋나, 정교한 능력의 발현도, 정확한 미래예측조차 ​불​가​능​하​다​. ​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무기노와의 거리를 벌린것이었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것은 큰 실수였다.

"어라, 그쪽에서 거리를 벌려주는 거야?"

그녀의 멜트 ​다​우​너​(​원​자​붕​괴​)​가​ 반드시 '입자 파동 고속포'라는 광선으로 사출되리란 법은 없다.

​하​지​만​, ​

반대로 말하면.

멜트 다우너의 진가는 원거리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번쩍ㅡ! 하고, 무기노의 손에서 스치는 것만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라도 소멸시키는 광선이 발사됬다.

어느정도의 미래예측으로 그 공격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페이커는, 그녀의 능력을 본따서 만든 모델 케이스 멜트 다우너와 교전했을 때처럼, 쉴틈없이 계속되는 텔레포트로 문제없이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타키츠보의 공격에 당해 AIM 확산역장이 뒤집힌 페이커는 정확한 위치에 텔레포트를 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처음 타키츠보 쪽으로 텔레포트 했을때도, 그곳은 원하는 위치가 아니었다.

​"​오​오​오​오​오​오​오​!​!​"​

이를 꽉 깨물고 페이커가 옆으로 뛰자, 무기노의 입자 파동 고속포가 도로를 지우며 날아간다.

계속해서 날아오는 무기노의 광선을 뛰고, 구르고, 점프하고,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피​해​가​지​만​, ​

(이래서는, 시간문제야!!)

이대로라면 언젠가 무기노의 입자 파동 고속포에 즉사할것이 확실했다.

그렇게 판단한 페이커는 어쩔 수 없이, 전장을 이탈할 기세로 크게 텔레포트를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적은 거리를 이동한 페이커가 계속해서 텔레포트를 사용하려고 한 순간이었다.

"텔레포터와의 전투라면, 한두번 해보는것도 아니야"

깊숙히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무기노가, 그 손에 집히는 무언가를 높히 던졌다.

육각형의 실리콘 ​번​(​확​산​지​원​반​도​체​)​이​다​.​ 기본적으로 동시에 하나의 입자 파동 고속포밖에 사용할 수 없는 무기노가 그 공격을 여러갈래로 분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지만, 그것은 사각형의 경우다.

100장은 가볍게 넘어 보이는 가로 세로 6cm 정도의 얇은 정육각형의 실리콘 번들은 순식간에 다시 여러개의 육각형으로 갈라졌다.

챠락, 챠르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수백장은 되보이는 실리콘 번이 공중에 고정됬다. 아마 전자를 이용하는 무기노의 능력상, 그것으로 공중에 띄운것일 것이다.

이런 간단한 현상만으로도, 페이커가 이것이 어떠한 역할의 물건인지 파악하기엔 충분했다.

​"​다​산​지​향​성​폭​탄​!​!​?​"​

텔레포트는 물체를 3차원에서 11차원을 경유해, 다시 3차원으로 이동시키는 능력이다. 11차원에서 3차원으로 이동하는 물질은, 3차원에 있는 물질을 밀어내는 형태로 등장한다. 그것이 종이 한장으로 다이아몬드를 자를 수 있는 능력의 정체다.

그렇다면, 직경 10cm의 정사각형의 물체를, 직경 3cm의 작은 정사각형의 위로 텔레포트하면 어떻게 될까? 큰 물체를, 작은 물체와 겹치게 이동한다면 말이다. 언뜻 생각하기엔, 작은 물체가 마치 소멸하듯이 지워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텔레포트는 그런 소멸능력이 아니다. 질량 보존의 법칙을, 거스를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결국, 3차원의 물체의 위치를 바꾸지 않으면서, 동시에 '밀어낼 공간'이 없는 경우엔, 그 위치에 있던 3차원의 물체는 산산히 부서지게 된다.

그리고 그 3차원의 물체가, 여러개로 부서질 경우 집약성 폭발을 일으키는 고성능의 폭탄이라면ㅡ

"제길!"

이대로 텔레포트를 하여 다산지향성폭탄을 '밀어낸다'면, 정확히 순수한 자신의 육체와 오펜스 아머(질소장갑)의 질소 사이로 폭탄이 밀려날것이다. 당연히, 즉사할게 분명하다.

텔레포트를 봉인당한다면 그것으로 끝이다. 아주 적게나마 있는 활로마저 사라지는 것이다.

페이커는 속으로 침을 뱉으며, 그 공중에 고정되어 있는 육각형의 폭탄들을 능력으로 날려버리려고 했지만,

"약점이라는건 사용하는 쪽이 더 잘 아는거야. 그렇게 하게 냅둘것 같아?"

퍼엉!!! 하는 폭발음과 함께, 멜트 다우너의 반동으로 악몽같은 속도로 무기노가 다가왔다.

능력의 보조를 받지 않는 평범한 육체라고 해도, 맞는 위치에 따라서는 일격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주먹이, 발이, 무릎이, 팔꿈치가, 계속해서 날아온다.

페이커는 최대한 냉정히, 전투의 활로를 찾아간다.

(멜트 다우너는 손끝. 발끝. 팔꿈치의 끝같은 타격점의 마지막 부분에만 존재해. 어중간하게 팔 전체에 멜트 다우너를 고정시킨다면, 자기 팔이 날아갈테니까. 최소한의 능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뽑아내는건가!)

무기노의 체술은 오히려 체술보다도 창술에 가깝다. 창끝에 맞으면 확실하게 목숨을 잃겠지만, 창을 고정하고 있는 장대에 맞으면 그리 쉽게 죽지는 않는다.

페이커는 어중간하게 피하기 보다는, 오히려 무기노의 '창'에 다가가듯이 무기노의 품속에 파고들어 다리라는 장대에, 팔이라는 창대에 자신의 몸을 부딪힌다.

"호오, 썩어도 레벨 ​5​(​초​능​력​자​)​인​가​봐​?​ 대단한 센스네"

조롱하는듯한 음색이었지만, 내심 무기노도 놀라고 있다.

무언가 상태가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적도 자신과 같은 레벨 5(초능력자). 한순간의 방심이 목숨을 앗아갈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한 무기노는 한층 더 빠르게, 한층 더 강하게 팔다리를 움직인다.

복싱경기같은 공방전이 계속된다.

(아니야)

하지만 페이커가 그리는 그림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오펜스 아머(질소장갑) 덕분에, 무기노의 타격은 간지럽다고 느껴질만한 ​수​준​이​다​. ​

페이커는 그 오펜스 아머가 둘러져 있는 몸을 부딪혀가면서 무기노의 팔다리를 날려버릴 계산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부딪혀도, 무기노의 몸은 꺾이지 않는다.

"이 괴물!! 공격을 하면서 이쪽의 충격은 흘려보낸다고!?"

"미안하지만"

번쩍. 하고, 무기노의 왼쪽 의안이 빛나는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거, 우리팀 능력이거든. 얼마동안 봐왔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 멍청이는?"

지금 페이커의 전투력은 보통때와 비교하면 아무리 잘쳐줘도 3할 내지. 

능력의 응용성. 판단력. 정밀함. 파괴력. 그 모든 것이, 레벨 5(초능력자)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다.

같은 방법으로 무기노의 타격을 계속해서 막아내는 페이커는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해간다.

(이대로 계속되면)

텔레포트를 사용하면 확실하게 사망.

복잡한 계산식을 요하는 능력은 어긋난 퍼스널 리얼리티 때문에 불가능.

격투능력이나, 체력적인 부분에서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미달.

그리고,

그런 모든 요소들이 도출한 하나의 결론.

(죽,는다고? 내가!?)

어중간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페이커에게는, 이 상황이 마치 장기처럼 보였다.

그래. 이것은 장기다.

무기노라는 적진의 마(馬)가. 차(車)가. 상(象)이. 포(包)가, 페이커가 낼 수 있는 수를 막아간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해도 무적은 아니다.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적의 공격을 미리 알고 있지만, 반격할 수단 자체가 적다. 게다가 그 적은 수단중에서도 가장 유효한 수단을 생각해도, 무기노의 마(馬)를 제거하면 상(象)이. 상(象)을 제거하면 포(包)가, 포(包)를 제거하면 차(車)가 페이커의 궁(漢)을 먹어치운다.

"…기지마. 이대로 아무것도 못한채 광대인채로 죽는다고…?"

"뭐라 중얼중얼 거리는 거야? 하하핫ㅡ! 괜찮은거야? 속도가 무뎌져가는데!"

​"​웃​기​지​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퍼억!!! 하고, 여태까지 질소의 막을 때리던 느낌과 다른, 확실하게 인간을 때리는 소리가 났다.

스스로 오펜스 아머(질소장갑)을 해제시킨 페이커의 옆구리를, 무기노의 다리가 걷어차는 소리였다.

페이커는 수미터를 날아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최소한 뼈에 금이 갔을 것이다.

지지직! 하고 바닥에 몸을 지지한채 몸을 숙이고 있는 페이커의 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반투명색의 종이봉지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무언가의 하얀색 가루가 들어있었다.

"설마, 거짓말이지?"

하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 무기노의 대처는 늦었다. 신체적인 능력을 떠나, 심리적으로 늦은것이다.

꿀꺽.

하고, 페이커는 종이봉지채 그것을 삼켰다.

폭주한 능력자의 뇌속에서 형성되는 특수한 신호전달 회로를 생성하는.

각종 신경전달 물질과 호르몬을 이상분비시켜, 의도적으로 폭주한 능력자와 같은 효과를 발생시키는.

​능​력​체​결​정​(​能​力​体​結​晶​)​

즉,

체정을.



분량조절 실패했다

뭔가 적당히 끊어서 나눴어야 했는데 너무많이 써버렸다...

님들 흥미진진하죠? 그렇죠? 흥미진진하다고 해주세요

근데 저도 알아요. 안흥미진진한거

흐규흐규



댓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