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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ker


원작 |

다섯번째 이변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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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체정이라고 불리우는 ​능​력​체​결​정​(​能​力​体​結​晶​)​은​ 일시적으로 능력자에게 거대한 힘을 안겨준다.

평상시라면 불가능한, 평소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능력자의 폭주 상태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판단능력을 상실해 제어가 불가능한 폭주가 아니라 확실하게 컨트롤 할 수 있는 폭주. 그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강제적인 레벨의 ​상​승​이​다​. ​

무척이나 편리한 물건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페이커는 효과가 거대하면 그 효과에 비례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쯤은 암흑의 5월 계획에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죽기 전에, 죽인다!!!)

몇번 사용할 수 없는 비장의 수라고는 해도, 죽는 것보다는 나은 것이다.

페이커는 어떻게든 흥분상태를 억누르며, 능력의 질을 '폭주 상태에 적절하게' 바꿔간다.

페이커의 능력 사용 제한시간은 24시간. 미래예측을 사용하면 30분. 체정으로 인해 폭주한 능력을 사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어차피 아직도 페이커의 퍼스널 리얼리티(자신만의 현실)은 어긋나있다. 결과가 늦게 보이는 미래예측에 들이는 연산을 한없이 줄여, 최소한의 공격만을 예측한다.

세세하고 정밀한 능력의 사용도 불가능하다. 아니,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헛수고일 것이다. 노력에 비해 얻는 결과가 압도적으로 적다. 그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힘으로, 눌러 죽인다!!)

세세한 조정 없이, 압도적인 힘으로 광범위하게 피해를 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한 페이커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넓은 범위로 펼친다.

(크,크으으윽)

수백개의 얼음의 창을 ​만​들​어​낸​다​. ​

주변에서 뽑은 사철로 날카로운 드릴을 만들어 ​회​전​시​킨​다​. ​

좌표를 지정하지 않은채 무작위로 중력을 내려찍고, 콘크리트의 파편에서 석유를 뽑아 파도를 만들어내고, 부서진 파편들을 ​텔​레​키​네​시​스​(​염​동​력​)​으​로​ 띄워 아무렇게나 흔들고, 날카로운 바람의 폭풍을 ​만​들​어​낸​다​. ​

쓰레기통에 들어있는 알류미늄을 폭파시키고, 뇌운을 만들어 그 모든곳에 전격을 휘감는다.

수십개의 불덩어리를 아무렇게나 만들어낸다. 그 영향으로 석유의 파도에 불이 붙어, 불의 파도가 됐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최대한 많은 능력을 사용해서 대응할 수단 자체를 봉쇄한다. 그리고 동시에, 서로 반발하지 않는 능력만을 사용한다.

건물이 부서지고 도로가 부서질수록 사철의 드릴도, 석유의 파도도, ​텔​레​키​네​시​스​(​염​동​력​)​로​ 부유하는 물체들도 점점 수가 증대 해간다.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 석유가 타는 냄새, 내려치는 번개.

그런 재앙속에서도, 그 힘을 휘두르는 페이커는 자기 자신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냉정했다.

AIM 확산역장을 추적, 간섭하는 타키츠보가 체정을 사용한다면, AIM 확산역장을 추적, 간섭하는 능력의 질이 일시적으로 향상된다.

그렇다면.

​화​염​을​.​얼​음​을​.​바​람​을​.​중​력​을​.​뇌​운​을​.​텔​레​포​트​를​.​흙​을​.​지​진​을​.​전​격​을​.​질​소​를​.​공​기​를​.​물​을​.​액​체​를​ 조종하는 페이커가 체정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 모든 능력의 질이 상승된다는 의미다.

게다가, 그것을 사용하는 자가 레벨 ​5​(​초​능​력​자​)​로​서​의​ 연산능력과 운용법을 가지고 있다면ㅡ

(진짜, 해도 너무하는구만 이거…)

페이커 본인조차 믿기지 않을 정도의 출력이다. 사용하는 자가 그 파괴력에 놀라, 지레 겁을 먹을 정도였다. 그리고 당연히, 그 파괴력에 비례하는 부작용은 엄청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섬짓. 하고 페이커의 척수에 차가운 느낌이 흘러갔다. 체정의 ​부​작​용​일​것​이​다​. ​

(이 출력으로는 아마도 8분… 아니, 5분도 채 안되나)

부작용을 생각하면, 최대한 빠르게 전투를 끝내고 체정을 토해내는 것이 옳을 ​것​이​다​. ​

아무리 길어봤자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5분.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그런건 사소한 일이다.

대규모의 자연재해에 필적할 능력이다. 아무리 날고 기는 레벨 ​5​(​초​능​력​자​)​라​도​,​ 버틸 수 있을리가 없다.

흠칫. 하고 페이커의 움직임이 살짝 멈췄다. 시선의 끝에, 키누하타가 맨몸으로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이커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녀의 오펜스 ​아​머​(​질​소​장​갑​)​로​는​,​ 같은 오펜스 아머(질소장갑)를 사용하고 있는 페이커의 몸에 상처를 내는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불타는 석유의 파도가, 중력이, 날카로운 바람의 폭풍이 알아서 그녀를 다진 고기로 만들 것이다. 레벨 5(초능력자)인 무기노라면 모를까, 키누하타가 그 자연재해 속을 뚫고올 가능성은, 페이커의 미래예측으로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눈앞에 있는 레벨 5(초능력자)에게 의식을 집중한다.

(이 일격으로, 확실하게 죽인다!!)

​쿠​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뱃속까지 깊게 울리는 듯한 진동과 함께, 공중에서는 밤하늘을 완전히 가리듯이 떠있는 수천개의 얼음의 창이, 사철의 드릴이, 콘크리트가, 알류미늄 폭탄이 지상에 쏘아진다.

지상에서는 불타는 석유의 파도가, 날카로운 폭풍이, 지진이, 중력이, 무작위로 공간을 파괴한다.

그 모든것들이, 무기노 시즈리라는 한명의 인간에게 향하고 있다.

"큿ㅡ!"

초조함을 감출 여력도 없는 무기노는 코트의 반대쪽 주머니에서 여러개의 사각형의 실리콘 ​번​(​확​산​지​형​반​도​체​)​를​ 던지고는, 거기에 전력의 입자 파동 고속포를 발사한다.

그 멜트 다우너는 수십, 수백개의 광선으로 갈라져 공중에 떠있는 얼음의 창을. 사철의 드릴을. 알류미늄 폭탄을. 확실하게 ​제​거​해​나​간​다​. ​

하지만 ​모​자​르​다​. ​

모잘라도, 턱없이 모잘르다.

아직도 수천개의 능력의 결정들은 밤하늘을 완전히 가리듯이 전개해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확실하게 무기노의 목숨을 노리고 날아온다.

하지만 불행중 다행일까. 아니, 이런것을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빌딩높이만큼 높이 떠있는 능력의 결정들은 규모가 규모이다보니, 낙하하는 속도가 느리다. 저만한 질량에다가 숫자다. 대충 낙하시킨다고 해도, 그렇게 간단히 컨트롤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놀때가 아닌걸!!"

멜트 다우너로 요격하는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무기노는 진심으로 페이커를 죽일 기세의 멜트 다우너의 광선을 쏜다.

대충 공중에 있는 자연재해와 같은 공격이 착탄하기까지는 30초정도. 제압이 아닌 사살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판단한 무기노였지만,

끼이이이잉! 하며, 페이커의 손에 부딪힌 멜트 다우너가 기이한 방향으로 튕겨나간다. 체정을 사용하기 전이면 모를까, 지금으로선 30초 정도로 페이커를 죽이기엔 불가능하다.

직후, 무기노는 멜트 다우너의 반동으로 페이커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간다. ​텔​레​키​네​시​스​(​염​동​력​)​으​로​ 날아오는 콘크리트를 맨손으로 파괴했지만, 그 파편이 무기노의 몸을 사정없이 ​두​들​긴​다​. ​

중간중간에 궤도를 바꿔 그라비티 ​프​레​셔​(​중​력​압​박​)​은​ 피해내지만, 그 반동의 피해와 날카로운 바람의 폭풍이 무기노의 온몸을 사정없이 찢어발긴다.

치명상까지는 아니라도 출혈량으로 보면 충분히 목숨이 위험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기노는 그 왼손을 사정없이 페이커에게 휘두른다. 그리고 페이커는, 무기노의 '창술'을 막듯이, 자신의 오펜스 아머(질소장갑)을 무기노의 팔에 부딪힌다.

"!?"

퍼억!!

둔한 소리와 함께 무기노의 왼손이 통째로 날아갔다.

의수의 기계부품이 하나하나 날아간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체정으로 인한 능력향상으로 페이커의 오펜스 아머(질소장갑)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질소의 범위도 늘어난 것이다. 수십번 공격한다면 모를까, 그 범위를 정확히 가늠할 수 없는 무기노가 정확히 타격을 흘리는것은 불가능하다.

누적된 데미지에 휘청, 하고 몸을 숙이는 ​무​기​노​. ​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페이커가 확실하게 최후의 일격을 날려는 순간이었다.

"나는 완전 무시하는건가요 페이커?"

거의 동시에, 바로 옆에서 키누하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뭐ㅡ!?"

페이커는 기겁을 하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날카로운 바람의 폭풍에 온몸이 베여 피가 철철 흐르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목숨에 영향이 있는 정도는 ​아​니​다​. ​

키누하타가 그 능력의 폭풍속을 무사히 돌파하여 자신에게 도달할 확률은 존재하지 않았다. 페이커의 미래예측으로도 보이지 않는 결과가, 갑자기 나타난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녀의 능력으로는,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것이 불가능하다.

그렇게 판단한 순간.

텁. 하고, 무언가가 자신의 허리에 매달렸다.

"하아, 하아… 나의, 오펜스 ​아​머​(​질​소​장​갑​)​는​,​ 피부 주위에 몇cm의 질소를, 조종하는, 능력, 이에요, 하아… 당연히, 그 만큼의 질소밖에 조종하지 못해요…"

"그게 뭐? 그래봤자 너가 나한테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은 없어"

"그건, 확실히, 그렇, 겠죠"

하지만요. 페이커.

하고, 키누하타는 말했다.

"나의 오펜스 아머(질소장갑)를 해제하고 밀착한다면, 당신의 오펜스 ​아​머​(​질​소​장​갑​)​도​,​ 나의 영향권 안에, 완전, 들어와요"

"!!!"

키누하타의 오펜스 ​아​머​(​질​소​장​갑​)​는​,​ 액셀러레이터의 '방어성'의 연산패턴을 이식받은 능력이다. 그렇기에 무의식적으로 24시간 내내 사용할 수 있고, 딱히 전투가 아니더라도 그 능력을 해제시킬 필요가 없다.

그렇기에.

항상 효율적으로,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페이커이기에 생각할 수 없었던.

완전한 맹점.

(자신의 방어능력을 포기하고, 나의 방어능력도 지워버린다고!?)

그리고 동시에, 빙글 하고 무기노가 등을 ​보​였​다​. ​

페이커는 그것이 뒤돌려차기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최소한의 미래예측으로 인해 보인다. 무기노의 멜트 다우너에 맞지 않게 파고들지만, 오펜스 아머(질소장갑)가 해제된 상태로 평범한 타격에 의식이 끊기는 자신이.

해결방법은, 무척이나 간단했다.

자신의 오펜스 아머(질소장갑)를 해제시켜, 완전하게 무방비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매달려 있는 키누하타를 죽인다면, 그것으로 자신의 오펜스 아머(질소장갑)의 능력은 돌아온다. 그리고 무기노의 일격을 막아내고, 밤하늘을 가득 채운 능력의 결정들을 완전하게 떨어트리고 자신은 텔레포트로 탈출할 수 있을것이다.

페이커는 공기의 칼날을 두른 주먹을 꽉 쥐고, 전력으로 키누하타를 내려쳤다.

퍼억!

메마른 소리가, 어둠속에 울려퍼진다.

**

"…어째서"

이곳저곳이 파괴되어, 차갑고 울퉁불퉁한 콘크리트 바닥에 쓰러진 페이커가 말했다.

"어째서, 내가 진거지?"

"…정말로, 모르겠나요"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

고개를 들을 힘조차 없지만, 분명 키누하타는 울고 ​있​었​다​. ​

모르는것 투성이다.

절대로 돌파할리 없는 파괴의 중심을 키누하타가 맨몸으로 돌파해온것도.

분명히 자신의 손으로 목을 잘라버렸을 키누하타가 살아있는 것도.

자신이 패배했는데, 키누하타가 울고 있는 것도.

그 어느하나, 이해할 수 없었다.

"………"

희미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페이커는 답을 찾아간다.

"체정의 부작용, 인가… 연,산능,력의 배터리가 모,자랐던 건가… 아니면, 둘,다 일,수도…"

"완전 틀렸어요"

뚝. 뚝. 물기가,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지만, 우는 소리는 내지 않지만, 그 애절한 마음만큼은 전해지고 있었다.

"눈치채지 못했나요…?"

"…뭘?"

"그 연구소에서, 나와 쿠로요루를 죽이지 않은게, 당신이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첫번째 주체였어요. 그리고, 말소작전때, 당신이 구해준것도 나와 쿠로요루 였구요. 그게 정말, 우연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무의식이었다고 해도 당신은…"

"…………"

"항상 합리적인걸 고집하는 당신이, 그 합리적인 선택을 포기하면서 까지 얻으려고 하는건, 자신이라는 주체에요…"

울먹거리면서도, 키누하타는 확실히 말했다.

페이커라는 아주 불쌍한, 아주 딱한 남자를 향해.

"그런 당신이… 나나 쿠로요루한테 해를 끼칠 수 있을리가, 없잖아………"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암흑의 5월 계획.

남을 흉내내는 재주밖에 없는, 페이커(가짜).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죽이지 않은 소녀.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구해준 소녀.

"그런,건가…"

죽일 수 있을리가 없다.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으로, 세세하게 능력을 조정해 키누하타에게 가해지는 공격을 억지로 피하게 한것이다.

다른 이들의 성격이나 감정을 흉내내기도 전, 처음으로 자신의 의지로 이어진 인연이다. 가짜 투성이의 인생의, 단 하나 있는 진짜다. 그런 녀석들을, 죽일 수 있을리가 없다. 

그런 복잡한 이야기 말고도 좀 더 간단한 감정으로 이야기 할 수도 있겠지만…… 페이커는 그 감정조차, 가짜인게 아닐까 두려웠다.

"………"

체정의 부작용과 함께, 체력이 다한 페이커는 그것으로 의식을 잃었다.

"키누하타"

왼팔을 잃은 무기노가 말했다.

"그 녀석, 죽이는게 나을거야. 아이템에게도, 너에게도, 그 녀석에게도"

"…할수있을리가, 없잖아요"

"후회할텐데도?"

"후회 투성이의 인생이에요. 후회할게 한두개 더 생긴다고 해도, 완전 괜찮아요"

"흥"

의외로 고분고분하게 키누하타의 이야기를 들은 무기노는 빙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멋대로 해. 난 병원이나 갈테니까"

"……"

키누하타는 주머니속에서, 조그마한 크기의 USB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페이커의 주머니에 넣으면서, 나지막히 말했다.

"확실히, 합리적인건 완전 효율적인 일이에요. 합리적인 인간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항상 합리적인걸 고집하는게, 과연 합리적인 일일까요…?"

**

"저기 말이야. 다좋은데 말이야. 응? 어이. 키누하타. 정말로, 다좋은데 말이야"

"아아 완전 시끄러워요. 아까부터 왜 그래요 하마즈라?"

"저기, 근데. 왜 나만 중상?"

"………"

키누하타와 하마즈라가 그런 대화를 하고 있는 곳은, 하마즈라가 입원하고 있는 병원이다.

온몸에 붕대를 둘둘맨채, 전신 타박상에 온몸의 뼈에 금까지 간 하마즈라는 병원에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로 말했다.

"응? 저기 말이야. 그 세계의 종말같은 상황에, 중앙에서 싸운 너랑 무기노는 비교적 경상인데, 너가 도망치게 하려고 집어던진 나는 왜 중상? 응?"

"그, 글쎄요………"

"하마즈라가 나를 감싸서…"

옆에서 사과를 깎고 있던 타키츠보가 힘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타키츠보가 건내는 사과를, 무려 앙~ 하면서 한입 받아먹은 하마즈라는 계속해서 말했다.

"그러니까. 다 좋은데 말이야. 거기서 누가 봐도 확실한 사망 플래그 세워놓더니만, 왜 너는 멀쩡하냐고"

"어, 어쩔수 없었다구요!"

"니가 거기서 화를 낼 ​타​이​밍​이​냐​!​!​!​?​"​

"꺄악! 하지만 진짜 어쩔 수 없었어요! 안그러면 괜히 완전 심각한 표정으로 말렸을거 아니에요! 게다가 그렇게 잘 풀리리란 확신도 없었는데!"

"시끄러워!! 어떻게 책임질거야!!"

"사실 타키츠보가 24시간 옆에 붙어있으니까 완전 만족하는거 아니에요?"

그러자 하마즈라는 고개를 돌려 창문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후… 그래도, 아무도 안죽고 잘 끝났구만"

"완전 노골적으로 말을 돌리는데요"

키누하타는 타키츠보가 토끼모양으로 깎아놓은 사과를 하나 집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하마즈라는 '으악, 내 사과!?' 라면서 울상이 됐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병자가 떠들어봤자 그다지 큰 의미는 없었다.

**

"………"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의식이 ​돌​아​왔​다​. ​

처음으로 죽지 않은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왜, 죽이지 않은걸까.

그 다음으로 자신의 상태에 대해 확인했다.

갈비뼈 두대에 금이 가있고, 체정 때문에 속은 엉망진창이다. 시스터즈의 네트워크에 연결되어있는 배터리는 개미 눈꼽만큼 남아있다. 조금이라도 능력을 쓰려면, 목숨을 걸어야 ​할​것​이​다​. ​

자신의 전격으로 배터리를 충전한다는 선택지도 무리다. 능력으로 발생한 전기는 당연하게도 AIM확산역장을 내포하고 있다. 그런 것을, 뇌에 다이렉트로 연결되어있는 전극에 쏜다는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퍼스널 리얼리티(자신만의 현실)도 어긋난체 그대로다. 아무래도, 완전히 위치를 벗어난 ​모​양​이​다​. ​

비틀, 거리면서 페이커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호오, 아직 일어날 수 있는건가. 대단하군"

정말로 오랜만에 들리는 목소리.

아마 자신의 목소리보다 더 오래 들었을한, 역겨운 목소리에 빠직. 하고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네놈"

암흑의 5월 계획.

그때 자신을 정비하던, 늙은 연구자의 조수였다.

저 역겨운 목소리와 어울리지도 않는 올백의 헤어스타일을 잊을리가 없다.

그 뒤로는 총을 들고 있는 학원도시 외부의 용병들이 5명. 서 있었다.

딱히 저것으로 페이커를 제압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여태까지 안티스킬의 출동을 방해하고 지금까지 숨어있던거니까.

"일단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어"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손에는 매우 작은 USB가 들려 ​있​었​다​. ​

"일단 상층부는 이 파라미터 ​리​스​트​(​소​양​격​부​)​를​ 어떻게 해서든 회수하고 싶었거든. 덕분에 쉽게 구했지만"

"내놔"

"자네의 마음은 알겠지만. 이쪽도 꽤나 심각한 일이어서 말이지"

까득. 하고 페이커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연구자는 피식. 하고 웃더니,

"자네한테 연결돼있는 배터리의 용량은 이제 한계야. 조금이라도 능력을 쓰면 연결이 해제될텐데? 그럼, 뇌에 과부화가 걸려 죽는건 자네 아닌가?"

응? 그건 합리적이지 않잖아.

라며, 페이커를 조롱하는 남자. 

확실히 맞는 말이다. 그걸 알고 있는 남자이기에 용병들로 페이커를 죽이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혹시라도 페이커가 동반자살을 할 생각으로 능력을 사용하면 골치아파지니까.

"…꺼져"

"상황판단이 빨라서 좋아. 패턴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그 이레귤러보다는 정말로 교섭하기 편해. 뭐, 자네는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무슨 말이냐?"

"글쎄? 자네의 잃어버린 기억 이야기일까"

그 순간이었다.

콰앙!!!!

공간 자체를 때려부술듯한 소음과 함께, 정확히 남자의 뒤에 서 있던 용병들이 찌부러진 음료수캔 같은 모습이 됐다. 오렌지를 갈아 으깬것처럼, 그 안에 있는 모든 액체가 파악. 하고 사방으로 튀었다.

"뭘 알고 있는건지, 말해"

온몸에 사람의 피를 묻혔음에도, 남자는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내가 무언가를 말한다고 해도, 자네는 그 정보를 신용할 수 있겠어?"

"……"

"불가능할테지. 내가 어떤 대답을 한다고 해도, 자네는 믿지 않을 거야. 그렇다면 처음부터, 나의 기억을 훔쳐보는것이 낫지 않겠나?"

페이커는 대답하지 않는다.

한손으로는 왼쪽 옆구리를 쥐어잡은채, 비틀비틀 걸어가 나머지 손으로 남자의 머리를 콱! 하고 잡았다.

배터리는 정말로 한계치지만, 조금이라면, 조금이라면 괜찮을 것이다.

그렇게, 능력을 쓴 직후였다.

​삐​이​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엄청난 이명음이 들리는듯 하더니, 온몸이 힘이 빠졌다.

덜컥. 하고 무릎이 무너져 앞으로 고꾸라진 페이커의 눈에서, 빛이 사라져간다.

"그 5위의 레벨 5(초능력자)가 3시간에 걸쳐 세공한 정신계 프로텍터야. 가짜 따위가, 뚫을 수 있는게 아니지"

"…………"

"아레이스타의 서드 플랜(제3후보) 주제에, 여태까지 잘 해줬어. 뭐, 들리지도 않으려나"

남자는 옆구리에 달려있는 조그마한 가방을 열어, 들고 있는 USB를 여러가지 보안장치가 있는 상자에 넣고, 몸을 돌렸다.

남자는 그대로 연구소로 갈 작정이었지만,

"아, 맞아"

중요한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몸을 멈췄다.

"파라미터 ​리​스​트​(​소​양​격​부​)​도​ 손에 들어왔겠다. 그 하마즈라 시아게라는 레벨 0(무능력자)를 살려둘 필요도 없겠지. 겸사겸사, 아이템 녀석들도 죽여둘까"

그러자,

콰직.

"?"

등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당연히, 그 미지의 소리에 놀라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뭐"

그 눈앞에 있는건,

"뭐,지? 이건?"

등뒤에서, 두장의 칠흑같은 검은색의 날개를 내뿜는 채로 서 있는 페이커였다.

​"​빌​q​p​w​b​z​을​q​m​b​j​놈​이​b​x​o​"​

날개는 마치 고무처럼, 이상할 정도로 휘는 궤도로, 남자를 향해 날아왔다.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일격에도, 남자의 표정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다만,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릴 뿐이다.

"…그렇군, 나조차도 '플랜'의 일부였나"

쾅! 하고, 남자는 음료수캔처럼 꾸부러진 용병들이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됐다.

그런 파괴의 소음에, 페이커의 의식이 각성한다. 제정신이 돌아왔다고 하는것도 옳을것이다.

눈앞에 있는 시체같지도 않은 시체를 내려다보며, 페이커는 생각했다.

(이게, 대체…)

그 힘을 휘두른 페이커의 온몸에 급속도로 한기가 느껴졌다.

갑자기 생긴, 미지의 힘.

액셀러레이터가, 그 동양인 신부가 사용하던 그 힘. 

한계를 넘은 증오가, 분노가, 검은 날개라는 형태로 ​구​현​된​것​이​다​. ​

게다가. 그 힘이 나타남과 동시에 어긋난 퍼스널 리얼리티(자신만의 현실)이 덜컥. 하고 제 위치를 찾았다.

딱딱딱딱딱.

그것이 자신의 이가 부딪히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검은 날개의 이상하리라만큼 커다란 힘이 두려운 것은 아니다. 어긋난 퍼스널 리얼리티가 원래대로 돌아간 이유를 해석하지 못해 두려운 것은 아니다.

정말로 두려운 것은 이 날개의 성질.

다른 자의 날개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을 직접 '구현'한 페이커는 깨달았다.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이 날개의 파장은,

예전에 페이커가 수백번은 싸웠던것과 같은 파장이니까.

​"​다​크​매​터​(​미​원​물​질​)​…​ 라고…………? 어째서………?"

이 날개는 제 2위의 능력과 본질적으로 같다. 수십, 수백번 그 내용물을 바꿔가며 자신을 덮쳐오던 ​E​q​u​.​D​a​r​k​M​a​t​t​e​r​의​ 가면과 똑같은 파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아무리 여러 능력을 훔친 페이커라고 하더라도, 그 2위의 뇌는 세 조각으로 나눠져서 배양액 속에 둥둥 떠 있다. 그것과 단 한번도 접촉하지 않은 페이커가 그의 ​다​크​매​터​(​미​원​물​질​)​를​ 사용할 수 있는 일은 만에 하나라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

액셀러레이터의 검은 날개와, 그 동양인 신부의 되다만 검은 날개, 그리고 자신이 구현한 검은 날개는, 분명 같은 힘이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는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론상의 물질이나 미발견 물질이 아닌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물질.

그것 이외의 경우는 생각할수도 없다.

퍼스트 플랜(제1후보)인 액셀러레이터의 검은 날개.

스페어 플랜(제2후보)인 카키네 테이토쿠의 다크매터.

그리고,

서드 플랜(제3후보)인 페이커의 검은 날개.

"뭐,야 이거…"

누구에게 들리던지 말던지, 페이커는 온몸에 한기를 느끼며 뱃속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두려움을 말이라는 형태로 억누른다.

"대체, 어디서부터 뒤틀려 ​있​는​거​야​!​!​!​!​!​"​

서로 전혀 상관이 없어보일법한 정보들이, 하나의 연관점으로 통합되기 시작한다.

복잡하게 뒤엉켜 영원히 풀수없다고 느껴지는 ​털​실​이​었​지​만​, ​

한번 풀리기 시작한 털실은 끝도 없이 풀려나간다.



이야, 드디어 작품 소개란에 써져있는 말이 나오는 상황까지 왔군요!

무언가 조금이라도 그럴듯하게 큰 스토리를 만들고 그것을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를 풀어 쓴다는게 생각보다도 엄청 힘든 일이네요. 새삼스럽게 놀랍니다.

쓰는 입장에선 ㅋㅋㅋㅋㅋㅋ 이거 쩌는듯ㅋㅋㅋㅋㅋ 하고 쓰는데, 읽어보면 구상하고 있는것의 50%도 안나오는 ​느​낌​이​에​욬​ㅋ​ㅋ​ㅋ​ㅋ​ㅋ​ㅋ​ㅋ​ㅋ ​

보시는 분들도 이제 뭔가 슬슬 그림이 그려지시나요?

게다가 표지 바꾸는 맛도 쏠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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