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말이 여기에 써진다는 것을 알았을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만일, 네게 연필은 없지만 읽고 쓸 수 있는 나이라면 -이 친구가 말하려는 거는 뭐야, 음- 어떻게 해서든 길가에 숫자를 긁어놓으라는 거야, 안 그래요?”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아침이 밝아요. 그리고 나는 일어나요. 잠시 분홍색 잠옷이 구겼다가 펴져요. 나는 햇살이 비쳐오는 것을 잠깐 보고 몇 바퀴 돌아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달의 마지막 노래‘라는 노래를 불러요.
달에 있는 미트라라는 거대한 탑에서 공주는 노래로 우주 저 건너편에서 운명의 수레바퀴가 도는 것을 기록하며 살고 있었어요.
신의 명령을 받고 운명이 도는 것을 보면서 달빛을 내는 아름다웠던 공주.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운명의 반복을 계속 노래하던 공주는 한 남자를 보았어요.
이기적이고 냉정한 남자. 공주는 그 남자의 눈을 본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었어요.
매번 노래를 부르며 공주는 남자의 운명을 부르며 즐거워하고 기뻐했지요.
하지만 운명은 눈을 가린 칼.
남자는 운명에 따라 사지를 찢기고 머리가 잘려 온 세계를 돌아다녀야 했어요.
공주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에 절망했지만 운명 밖에 서있던 공주는 남자를 만날 수도, 도와줄 수도 없었어요.
공주는 남자의 운명을 향해, 그렇게 반복된 운명을 만든 신을 위해 달에서 눈물을 흘리며 남자의 처절하고 잔인한 죽음을 공주는 불러야 했어요.
이후 공주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어요. 운명은 더 이상 기록되지 못했어요.
달에 있는 탑의 공주는 오늘도 노래를 부르지 않아요.
죽음을 향한 마지막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않기 위해서.
“컥컥…….”
노래를 다 부른 나는 기침을 해요. 노래 때문에 목이 아파요. 하지만 노래를 아침에는 항상 불러야 해요. 그래야 두렵지 않아요.
저는 팔을 가볍게 떨면서 기지개를 펴요. 똑딱이는 시계를 봐요.
"7시 반아요"
몇 달 전만해도 학교에 갈 준비를 하던 시간이에요.
하지만 오늘도 학교에는 안가요. 누가 저한테 나쁜 짓을 했대요.
이렇게 계속 가지 않으니 친구들이 매일 해주던 ‘장난’이 가끔은 그리워져요. 물론 매번 ‘장난’이 끝나면 ‘상처’가 남아 아프고 멍이 들기도 했지만요.
그렇지만 그때는 그런 장난보다 정말 더 아팠어요.
‘오빠’가 ‘장난’을 치셨거든요.
원래 앉기가 힘들지만 그때 이후엔 더 그런 것 같아요. 가끔 머리를 만져주시던 ‘오빠’가 경찰 아저씨와 같이 가고 저도 같이 가서 아저씨가 어쩠냐고 묻기도 했어요.
“‘오빠’는 나쁘지 않아요.”
라는 말을 하면 엄마는 울면서 나를 안고 아빠는 화를 냈어요.
아빠는 좋은 사람이지만 화가 나면 무서워요.
‘오빠’를 싫어하셔서 저번에는 칼을 가지고 ‘오빠’에게 갔다고 저에게 말했어요.
그러면 안 된다고 나쁜 짓이라고 얘기를 하면 다시 화를 내시다가 사과를 하시곤 해요.
“안녕히 주무셨아요 읍!”
또 실수했어요. ‘아요’가 아니에요.
왜 이렇게 '아요'를 계속 말하게 되는 걸까요?
모르겠어요.
생각을 하는 것은 이렇게 잘 되는데요.
나는 다시 실수할까봐 입을 두 손으로 꼭 누르고 거실로 나와요.
오늘도 부모님들은 없으셔요. 일을 하셔야 해요. 새벽에 나가셔서 저녁 늦게까지 일하시다 들어오시고 지쳐하시면서 저를 보며 우시고 화를 내시고 그러다 또 사과하시고.
이렇게 더럽게 돈을 벌어야 한다고 어머님은 몇 번이나 우시고 화내시고 그러시지요.
그렇게 지쳐 주무시곤 해요. 저번 장마 때 젖어 치쳐있던 참새처럼.
나는 참새가 집에 남아 있을까봐 조심조심 걸어요. 그리고 부엌에 있는 쪽지를 봐요. 밥을 해 놓으셨대요. 현미밥, 된장찌개에요.
“까르륵”
나는 웃음이 나와요. 떠오르는 두부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 매우 나를 간지럽게 해요.
수저를 들고 밥이랑 된장찌개를 먹어요. 맛있어요. 이것보다 검은 단것이 더 맛있지만 엄마가 해 주신 거예요.
“어……. 아요?”
숟가락이 딸랑 이라는 소리와 함께 국에 떨어져요. 나는 수저를 주우려 손을 뻗어요. 그리고 찌개에 손을 넣어요.
“뜨거…….”
뜨거워요.
하지만 수저를 주워야 해요. 다시 손을 뻗어야…….
그런데…….
머리가……. 눈이……. 어지러워요.
그리고 저와 옆과 위와 아래와 그리고 지금 앞의 거리와 밑의 그림자가 일렁이면
서 지금.
모든 것이 멈추어요.
이건 언제나 그래요. 30분 혹은 하루 종일 안 그럴 때도 있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멈추고 그리고 소리는 들리고 바람은 불고 있어요. 검은 파도가 그리고 내 눈앞의 모든 것이 일그러져요. 형태가 부서지고 나를 보려고 했던 아래가 사라져요.
말을 해야 해요. 그리고 길을 기억해야 해요.
“‘바벨’앞에는 사거리가 있고 빌딩이 가득 있어요. 그 사거리에서 쭉 직진을 하면 광장이 보이고 광장과 시장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있다가 사라지고. 그리고 돈가스 집에서 약 1600걸음 걸으면 고등학교가 나와요. 그리고 도시 밖으로 가는 터널이 3개…….”
숫자도 세야 해요.
“1, 그리고 아래 지하도에는 길이 총 10,352갈래가 있어요. 2, 방향은 모두 ‘바벨’ 아래에 아주 큰 물탱크로 향해요. 3, 그리고 또 도시 외곽에는…….”
점점 모든 물건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해요.
수저는 사라졌다가 하늘에서 서서히 아주 느린 속도로 나의 말과 함께 내려와요. 그리고 그릇에 담겨있었던 찌개는 그릇에서 점점 스며 나오고 있어요. 그리고 식탁에 흐르고 땅에도 흐르기 시작해요. 먹었던 밥들은 어느 새 제 몸에 국에 젖어 붙어 있어요.
“다행이아요”
또 말실수를……. 아마 저는 또 부모님에게 혼 날거에요.
나는 입을 때려요.
몸에 찌개 냄새가 나고 바닥에 음식이 있어요.
엄마가 해 준 음식이에요. 나는 손으로 주워서 음식을 먹어요.
거의 다 먹어갈 때 쯤 언니가 올 거예요.
언니가 오려면 다 먹어야 해요.
배는 고프지 않아요.
그렇지만 저는 먹어야 해요. 언니는 그렇게 바라고 있을 거예요. 며칠 전 언니에게 혼났을 때 '너 같은 건 없어져 버려!' 라고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저는 그래서 밖으로 나와 저만이 아는 길로 갔다가 또다시 모든 것이 멈추어서 지하도에서 쉬었었어요.
다시 점점 움직여갈 때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가 저를 안고 엉엉 울었어요.
엄마처럼 또 미안해하면서 계속 울었었어요.
아 그렇다고 언니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언니가 있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본적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저희 가족도 기뻐했어요. 티비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언니를 향해 환호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또 언니랑 같이 나가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환호하고 소리 질렀어요.
"언니왔……."
언니가 왔어요! 현관문을 열고 거실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요. 그리고 저를 보고 있어요. 저는 언니에게 말해요.
"언니 오셧아요!"
언니는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놓고 쓰러지듯 앉아요. 왠지 모르지만 울고 있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제가 다시 싫어진 것일까요.
“제가 싫아요?”
언니는 답을 하지 않아요. 그냥 고개를 저어요. 눈을 맞추면서 느리게 저처럼 국을 묻히면서 가까이 와요. 그고
"왜 국을 흘렸어……."
라면서 나를 안아요.
언니 냄새는 참 좋은 것 같아요. 달콤한 우유 냄새 같은 냄새에요.
언니와 같이 씻었어요. 그리고 거실에서 머리를 말려요. 드라이기 바람이 따뜻해요.
"전화가 안돼서 놀랬잖아"
저는 언니의 얼굴을 바라봐요. 언니는 고개를 갸우뚱 하고는 뭔가 알았단 표정을 지어요. 드라이기보다 크게 말해요.
“저언화가아안됐어어!”
나는 고개를 끄덕여요.
"안오셧아요."
언니도 고개를 끄덕여요.
"그으래그으래 고오장났나아보네에!"
나는 대답으로 ‘고장’ 이라는 입모양을 내요. 언니는 드라이기를 꺼요. 말하기 힘들었나 봐요.
“이상하지~ 문자도 안되고”
“수리해야아요?”
“그래 수리”
“어디를 수리해야아요?”
“으음…….”
언니는 저의 머리를 묶어주면서 고민해요. 그리고 베란다 밖의 ‘바벨’을 보고 말해요.
“저어기 저 ‘바벨’을 수리해야지!”
나는 끄덕거리고 평상시와 같은 말을 해요.
“오늘은 어디로 아요?”
“글쎄……. 오늘은 광장으로 가자”
“광장”
광장은 항상 사람이 많은 곳이에요. 근처에 시장이 있어서 물건도 많아요. 그리고 재미있는 것도 많아요. 광장 가운데 ‘장미분수’는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에요. 수백만송이의 장미가 예쁘게 피어있어요. 그리고 분수아래 하수도는 342번30호 지하도랑 이어져 있어요. 게다가 광장에서 바로 가장 높은 빌딩인 ‘바벨’이랑 아주 가까워서 구경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렇지만 자주 안가는 곳이에요. 제가 가면 사람들이 싫어할 거예요.
사람이 많은 곳에서 다시 멈추면 언니는 화낼 건지 물었더니 언니는 고개를 흔들고 입모양으로 ‘아니’라고 말하며 저를 앉은 다리에 앉혀요. 그리고 턱을 제 머리에 괴요. 턱까지 밖에 오지 않는 저의 약간 덜 마른 머리가 언니의 긴 머리랑 섞이는데도 언니는 전혀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지 않아요.
“저는 나쁜 사람이아요”
“아니야”
“광장은 저를 싫어할 꺼아요”
“…….”
언니는 아무 말 없어요. 평상시처럼 두 갈래로 머리를 묶어주어요. 그리고 나를 돌려 앉히고 언니의 코로 제 코를 비벼요.
“히히히 언니 간지러아요”
“히히히히”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웃었어요. 그리고 언니가 입을 열어요.
"티비에 나오고 싶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여요.
"광장에 가면 티비에 나올 거야~ 기자언니랑 언니랑 너랑 같이 놀자~"
"놀아요."
언니는 저를 바닥에 앉히고 일어서요. 그리고 베란다 밖을 봐요. 약간 머리가 이상하게 말라 언니의 긴 머리는 약간 흩어졌지만 등 뒤로 비치는 햇살이 언니를 비춰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햇살이 이렇게 밝았던 적은 없었어요. 오빠에게 '장난'을 당했을 때도 이렇게 밝진 않았어요. 만일 다시 멈추는 일이 있다고 해도 언니의 얼굴은 또렷이 보이고 빙그르르 돌면서 가벼운 뽀뽀를 볼에다 해주곤 했던 어제와 엊그저께와 그리고 많은 시간들이 있어요.
'오늘'은 뭔가 달라요.
다시 말해.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아요."
“빛이 아요.”
언니는 고개를 돌려요. 베란다를 향하던 언니의 얼굴이 저를 보아요.
"그리고 지금 시간이라면 괜찮을 거야"
손을 뻗으며 얘기하는 언니. 저는 고민해요.
티비에 내가 나오면 어떨까 꺼져있는 거실의 티비를 보아요.
내 얼굴이 비추고 있어요.
누나가 나에게 '장난'을 하는 것 일거에요. '상처'가 남지 않을 거예요.
고개를 끄덕여요.
그리고 나는 손을 잡아요.
밖은 아직 추워요.
“좋다!”
언니는 한번 외치고 한 바퀴 빙글 돌아요. 언니는 흰색 저고리랑 긴 검은색 치마를 입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있어요. 저에겐 청바지랑 가벼운 모자달린 옷을 입혀주었어요.
햇살은 분명 따뜻했지만 아직 아침공기는 차가워요. 약간 떨면서 난 말에 답해요.
“그……. 그렇…….아요”
“아직 약간 쌀쌀한가?”
“괸…….찮아…….요”
언니는 제 몸을 언니에게 붙여요. 그리고 나도 최대한 붙어요.
“따뜻아요”
아직 몸은 떨지만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아요.
언니는 손목시계를 보아요.
"8시 30분"
나는 언니의 얼굴을 보아요.
언니는 웃으며 말해요.
"10시에 티비에 나오기로 했어"
장미광장의 분수는 아직 켜지지 않았어요. 배수구의 물은 9시가 되어야 켜져요.
언니와 나는 광장 중앙에서 오른쪽 가장자리에 파란장미가 피어있는 곳으로 가요. 아직 덜 핀 것도 있지만 가장 신비로운 곳.
장미넝쿨이 있는 아치를 통과하며 나는 물어요.
"빨간 나비는 어디에 있을아요?"
언니는 뭔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말해요.
"마음속이려나?"
"아니아요"
언니는 뭔가 생각하며 너머의 의자에 앉아요. 나도 옆에 앉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쓰고 있던 후드를 벗어요.
"동화속?"
"그건 파란 나비아요."
"꿈속?"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하고 말해요.
"그건 초록이아요."
어깨를 으쓱이는 언니는 날 놀리나는 표정으로 저의 눈을 보아요.
나는 답해요.
"빨간 나비는 어디에 있냐면 붉은 거미의 품속에 있아요. 죽은 것들을 먹고 스스로 다시 살아나는 붉은 거미아요. 계속 스스로 자신을 부숴가면서 살아요."
언니는 어깨를 으쓱해요.
"그래? 그럼 붉은 거미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건 여기에 있……."
저기 밝은 불빛을 보고 그리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눈빛이 흐려지고 언니가 빠른 속도로 저에게 달려들고 그리고…….
'어?'
“쾅”
아ㅍ……. 그리고 지금 어디에 제 머리가……. 너무 아파……. 아무것도 보이지 ㅇ낳ㅇ……. 귀에 어ㄸ…….이 멈ㅊ……. 아니 아까전에 들었ㄷ…….
"살ㄹ……."
다시 모든 것이 멈추는 것일까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 저는 누군가에게 안겨 어딘가로 가고 있어요. 다급한 목소리도 들리고 뭔가가 계속 눈이랑 이마에서 흐르는 것 같아요.
거친 숨소리랑 비릿한 냄새. 눈을 감고 싶지만 눈을 떠야 해요.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눈을 계속 뜨고 있어야 해요.
파란장미를 보고 싶어요.
곧 분수가 시작되고 물방울이 퍼지면서 햇살이 부서질 거예요.
누나랑 같이 티비에도 나오면서 장난도 치고 웃고 놀고. 장미 잎이 이리저리 퍼지고 그렇지만 지금 뭔가 뜨거운 것을 느끼고 다시 가라앉고
지금 여기에 나는 왜 이렇게 아프고……. 잠이 오고 머리
가 계속아ㅍ…….
감마. γ 3
“만일, 네게 연필은 없지만 읽고 쓸 수 있는 나이라면 -이 친구가 말하려는 거는 뭐야, 음- 어떻게 해서든 길가에 숫자를 긁어놓으라는 거야, 안 그래요?”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아침이 밝아요. 그리고 나는 일어나요. 잠시 분홍색 잠옷이 구겼다가 펴져요. 나는 햇살이 비쳐오는 것을 잠깐 보고 몇 바퀴 돌아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달의 마지막 노래‘라는 노래를 불러요.
달에 있는 미트라라는 거대한 탑에서 공주는 노래로 우주 저 건너편에서 운명의 수레바퀴가 도는 것을 기록하며 살고 있었어요.
신의 명령을 받고 운명이 도는 것을 보면서 달빛을 내는 아름다웠던 공주.
그렇게 살던 어느 날 운명의 반복을 계속 노래하던 공주는 한 남자를 보았어요.
이기적이고 냉정한 남자. 공주는 그 남자의 눈을 본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었어요.
매번 노래를 부르며 공주는 남자의 운명을 부르며 즐거워하고 기뻐했지요.
하지만 운명은 눈을 가린 칼.
남자는 운명에 따라 사지를 찢기고 머리가 잘려 온 세계를 돌아다녀야 했어요.
공주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에 절망했지만 운명 밖에 서있던 공주는 남자를 만날 수도, 도와줄 수도 없었어요.
공주는 남자의 운명을 향해, 그렇게 반복된 운명을 만든 신을 위해 달에서 눈물을 흘리며 남자의 처절하고 잔인한 죽음을 공주는 불러야 했어요.
이후 공주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어요. 운명은 더 이상 기록되지 못했어요.
달에 있는 탑의 공주는 오늘도 노래를 부르지 않아요.
죽음을 향한 마지막 노래를 더 이상 부르지 않기 위해서.
“컥컥…….”
노래를 다 부른 나는 기침을 해요. 노래 때문에 목이 아파요. 하지만 노래를 아침에는 항상 불러야 해요. 그래야 두렵지 않아요.
저는 팔을 가볍게 떨면서 기지개를 펴요. 똑딱이는 시계를 봐요.
"7시 반아요"
몇 달 전만해도 학교에 갈 준비를 하던 시간이에요.
하지만 오늘도 학교에는 안가요. 누가 저한테 나쁜 짓을 했대요.
이렇게 계속 가지 않으니 친구들이 매일 해주던 ‘장난’이 가끔은 그리워져요. 물론 매번 ‘장난’이 끝나면 ‘상처’가 남아 아프고 멍이 들기도 했지만요.
그렇지만 그때는 그런 장난보다 정말 더 아팠어요.
‘오빠’가 ‘장난’을 치셨거든요.
원래 앉기가 힘들지만 그때 이후엔 더 그런 것 같아요. 가끔 머리를 만져주시던 ‘오빠’가 경찰 아저씨와 같이 가고 저도 같이 가서 아저씨가 어쩠냐고 묻기도 했어요.
“‘오빠’는 나쁘지 않아요.”
라는 말을 하면 엄마는 울면서 나를 안고 아빠는 화를 냈어요.
아빠는 좋은 사람이지만 화가 나면 무서워요.
‘오빠’를 싫어하셔서 저번에는 칼을 가지고 ‘오빠’에게 갔다고 저에게 말했어요.
그러면 안 된다고 나쁜 짓이라고 얘기를 하면 다시 화를 내시다가 사과를 하시곤 해요.
“안녕히 주무셨아요 읍!”
또 실수했어요. ‘아요’가 아니에요.
왜 이렇게 '아요'를 계속 말하게 되는 걸까요?
모르겠어요.
생각을 하는 것은 이렇게 잘 되는데요.
나는 다시 실수할까봐 입을 두 손으로 꼭 누르고 거실로 나와요.
오늘도 부모님들은 없으셔요. 일을 하셔야 해요. 새벽에 나가셔서 저녁 늦게까지 일하시다 들어오시고 지쳐하시면서 저를 보며 우시고 화를 내시고 그러다 또 사과하시고.
이렇게 더럽게 돈을 벌어야 한다고 어머님은 몇 번이나 우시고 화내시고 그러시지요.
그렇게 지쳐 주무시곤 해요. 저번 장마 때 젖어 치쳐있던 참새처럼.
나는 참새가 집에 남아 있을까봐 조심조심 걸어요. 그리고 부엌에 있는 쪽지를 봐요. 밥을 해 놓으셨대요. 현미밥, 된장찌개에요.
“까르륵”
나는 웃음이 나와요. 떠오르는 두부가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 매우 나를 간지럽게 해요.
수저를 들고 밥이랑 된장찌개를 먹어요. 맛있어요. 이것보다 검은 단것이 더 맛있지만 엄마가 해 주신 거예요.
“어……. 아요?”
숟가락이 딸랑 이라는 소리와 함께 국에 떨어져요. 나는 수저를 주우려 손을 뻗어요. 그리고 찌개에 손을 넣어요.
“뜨거…….”
뜨거워요.
하지만 수저를 주워야 해요. 다시 손을 뻗어야…….
그런데…….
머리가……. 눈이……. 어지러워요.
그리고 저와 옆과 위와 아래와 그리고 지금 앞의 거리와 밑의 그림자가 일렁이면
서 지금.
모든 것이 멈추어요.
이건 언제나 그래요. 30분 혹은 하루 종일 안 그럴 때도 있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멈추고 그리고 소리는 들리고 바람은 불고 있어요. 검은 파도가 그리고 내 눈앞의 모든 것이 일그러져요. 형태가 부서지고 나를 보려고 했던 아래가 사라져요.
말을 해야 해요. 그리고 길을 기억해야 해요.
“‘바벨’앞에는 사거리가 있고 빌딩이 가득 있어요. 그 사거리에서 쭉 직진을 하면 광장이 보이고 광장과 시장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있다가 사라지고. 그리고 돈가스 집에서 약 1600걸음 걸으면 고등학교가 나와요. 그리고 도시 밖으로 가는 터널이 3개…….”
숫자도 세야 해요.
“1, 그리고 아래 지하도에는 길이 총 10,352갈래가 있어요. 2, 방향은 모두 ‘바벨’ 아래에 아주 큰 물탱크로 향해요. 3, 그리고 또 도시 외곽에는…….”
점점 모든 물건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해요.
수저는 사라졌다가 하늘에서 서서히 아주 느린 속도로 나의 말과 함께 내려와요. 그리고 그릇에 담겨있었던 찌개는 그릇에서 점점 스며 나오고 있어요. 그리고 식탁에 흐르고 땅에도 흐르기 시작해요. 먹었던 밥들은 어느 새 제 몸에 국에 젖어 붙어 있어요.
“다행이아요”
또 말실수를……. 아마 저는 또 부모님에게 혼 날거에요.
나는 입을 때려요.
몸에 찌개 냄새가 나고 바닥에 음식이 있어요.
엄마가 해 준 음식이에요. 나는 손으로 주워서 음식을 먹어요.
거의 다 먹어갈 때 쯤 언니가 올 거예요.
언니가 오려면 다 먹어야 해요.
배는 고프지 않아요.
그렇지만 저는 먹어야 해요. 언니는 그렇게 바라고 있을 거예요. 며칠 전 언니에게 혼났을 때 '너 같은 건 없어져 버려!' 라고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저는 그래서 밖으로 나와 저만이 아는 길로 갔다가 또다시 모든 것이 멈추어서 지하도에서 쉬었었어요.
다시 점점 움직여갈 때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가 저를 안고 엉엉 울었어요.
엄마처럼 또 미안해하면서 계속 울었었어요.
아 그렇다고 언니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언니가 있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본적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기뻐하고 저희 가족도 기뻐했어요. 티비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언니를 향해 환호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또 언니랑 같이 나가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환호하고 소리 질렀어요.
"언니왔……."
언니가 왔어요! 현관문을 열고 거실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려요. 그리고 저를 보고 있어요. 저는 언니에게 말해요.
"언니 오셧아요!"
언니는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놓고 쓰러지듯 앉아요. 왠지 모르지만 울고 있어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제가 다시 싫어진 것일까요.
“제가 싫아요?”
언니는 답을 하지 않아요. 그냥 고개를 저어요. 눈을 맞추면서 느리게 저처럼 국을 묻히면서 가까이 와요. 그고
"왜 국을 흘렸어……."
라면서 나를 안아요.
언니 냄새는 참 좋은 것 같아요. 달콤한 우유 냄새 같은 냄새에요.
언니와 같이 씻었어요. 그리고 거실에서 머리를 말려요. 드라이기 바람이 따뜻해요.
"전화가 안돼서 놀랬잖아"
저는 언니의 얼굴을 바라봐요. 언니는 고개를 갸우뚱 하고는 뭔가 알았단 표정을 지어요. 드라이기보다 크게 말해요.
“저언화가아안됐어어!”
나는 고개를 끄덕여요.
"안오셧아요."
언니도 고개를 끄덕여요.
"그으래그으래 고오장났나아보네에!"
나는 대답으로 ‘고장’ 이라는 입모양을 내요. 언니는 드라이기를 꺼요. 말하기 힘들었나 봐요.
“이상하지~ 문자도 안되고”
“수리해야아요?”
“그래 수리”
“어디를 수리해야아요?”
“으음…….”
언니는 저의 머리를 묶어주면서 고민해요. 그리고 베란다 밖의 ‘바벨’을 보고 말해요.
“저어기 저 ‘바벨’을 수리해야지!”
나는 끄덕거리고 평상시와 같은 말을 해요.
“오늘은 어디로 아요?”
“글쎄……. 오늘은 광장으로 가자”
“광장”
광장은 항상 사람이 많은 곳이에요. 근처에 시장이 있어서 물건도 많아요. 그리고 재미있는 것도 많아요. 광장 가운데 ‘장미분수’는 도시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하나에요. 수백만송이의 장미가 예쁘게 피어있어요. 그리고 분수아래 하수도는 342번30호 지하도랑 이어져 있어요. 게다가 광장에서 바로 가장 높은 빌딩인 ‘바벨’이랑 아주 가까워서 구경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렇지만 자주 안가는 곳이에요. 제가 가면 사람들이 싫어할 거예요.
사람이 많은 곳에서 다시 멈추면 언니는 화낼 건지 물었더니 언니는 고개를 흔들고 입모양으로 ‘아니’라고 말하며 저를 앉은 다리에 앉혀요. 그리고 턱을 제 머리에 괴요. 턱까지 밖에 오지 않는 저의 약간 덜 마른 머리가 언니의 긴 머리랑 섞이는데도 언니는 전혀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지 않아요.
“저는 나쁜 사람이아요”
“아니야”
“광장은 저를 싫어할 꺼아요”
“…….”
언니는 아무 말 없어요. 평상시처럼 두 갈래로 머리를 묶어주어요. 그리고 나를 돌려 앉히고 언니의 코로 제 코를 비벼요.
“히히히 언니 간지러아요”
“히히히히”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웃었어요. 그리고 언니가 입을 열어요.
"티비에 나오고 싶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여요.
"광장에 가면 티비에 나올 거야~ 기자언니랑 언니랑 너랑 같이 놀자~"
"놀아요."
언니는 저를 바닥에 앉히고 일어서요. 그리고 베란다 밖을 봐요. 약간 머리가 이상하게 말라 언니의 긴 머리는 약간 흩어졌지만 등 뒤로 비치는 햇살이 언니를 비춰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햇살이 이렇게 밝았던 적은 없었어요. 오빠에게 '장난'을 당했을 때도 이렇게 밝진 않았어요. 만일 다시 멈추는 일이 있다고 해도 언니의 얼굴은 또렷이 보이고 빙그르르 돌면서 가벼운 뽀뽀를 볼에다 해주곤 했던 어제와 엊그저께와 그리고 많은 시간들이 있어요.
'오늘'은 뭔가 달라요.
다시 말해.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아요."
“빛이 아요.”
언니는 고개를 돌려요. 베란다를 향하던 언니의 얼굴이 저를 보아요.
"그리고 지금 시간이라면 괜찮을 거야"
손을 뻗으며 얘기하는 언니. 저는 고민해요.
티비에 내가 나오면 어떨까 꺼져있는 거실의 티비를 보아요.
내 얼굴이 비추고 있어요.
누나가 나에게 '장난'을 하는 것 일거에요. '상처'가 남지 않을 거예요.
고개를 끄덕여요.
그리고 나는 손을 잡아요.
밖은 아직 추워요.
“좋다!”
언니는 한번 외치고 한 바퀴 빙글 돌아요. 언니는 흰색 저고리랑 긴 검은색 치마를 입고 가벼운 운동화를 신고 있어요. 저에겐 청바지랑 가벼운 모자달린 옷을 입혀주었어요.
햇살은 분명 따뜻했지만 아직 아침공기는 차가워요. 약간 떨면서 난 말에 답해요.
“그……. 그렇…….아요”
“아직 약간 쌀쌀한가?”
“괸…….찮아…….요”
언니는 제 몸을 언니에게 붙여요. 그리고 나도 최대한 붙어요.
“따뜻아요”
아직 몸은 떨지만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아요.
언니는 손목시계를 보아요.
"8시 30분"
나는 언니의 얼굴을 보아요.
언니는 웃으며 말해요.
"10시에 티비에 나오기로 했어"
장미광장의 분수는 아직 켜지지 않았어요. 배수구의 물은 9시가 되어야 켜져요.
언니와 나는 광장 중앙에서 오른쪽 가장자리에 파란장미가 피어있는 곳으로 가요. 아직 덜 핀 것도 있지만 가장 신비로운 곳.
장미넝쿨이 있는 아치를 통과하며 나는 물어요.
"빨간 나비는 어디에 있을아요?"
언니는 뭔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말해요.
"마음속이려나?"
"아니아요"
언니는 뭔가 생각하며 너머의 의자에 앉아요. 나도 옆에 앉아요. 그리고 지금까지 쓰고 있던 후드를 벗어요.
"동화속?"
"그건 파란 나비아요."
"꿈속?"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하고 말해요.
"그건 초록이아요."
어깨를 으쓱이는 언니는 날 놀리나는 표정으로 저의 눈을 보아요.
나는 답해요.
"빨간 나비는 어디에 있냐면 붉은 거미의 품속에 있아요. 죽은 것들을 먹고 스스로 다시 살아나는 붉은 거미아요. 계속 스스로 자신을 부숴가면서 살아요."
언니는 어깨를 으쓱해요.
"그래? 그럼 붉은 거미는 어디서 온 것일까?"
"그건 여기에 있……."
저기 밝은 불빛을 보고 그리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눈빛이 흐려지고 언니가 빠른 속도로 저에게 달려들고 그리고…….
'어?'
“쾅”
아ㅍ……. 그리고 지금 어디에 제 머리가……. 너무 아파……. 아무것도 보이지 ㅇ낳ㅇ……. 귀에 어ㄸ…….이 멈ㅊ……. 아니 아까전에 들었ㄷ…….
"살ㄹ……."
다시 모든 것이 멈추는 것일까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 저는 누군가에게 안겨 어딘가로 가고 있어요. 다급한 목소리도 들리고 뭔가가 계속 눈이랑 이마에서 흐르는 것 같아요.
거친 숨소리랑 비릿한 냄새. 눈을 감고 싶지만 눈을 떠야 해요. 아무것도 볼 수 없지만 눈을 계속 뜨고 있어야 해요.
파란장미를 보고 싶어요.
곧 분수가 시작되고 물방울이 퍼지면서 햇살이 부서질 거예요.
누나랑 같이 티비에도 나오면서 장난도 치고 웃고 놀고. 장미 잎이 이리저리 퍼지고 그렇지만 지금 뭔가 뜨거운 것을 느끼고 다시 가라앉고
지금 여기에 나는 왜 이렇게 아프고……. 잠이 오고 머리
가 계속아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