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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 ◆GULJi96aoSzS 2013/09/11(水) 19:36:19.28 ID:lpCuwcbf0
난 입시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공식을 외우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하고 일말의 불안을 느꼈지만 최근 2주간의 공부로 약간이지만 스스로도 실력이 붙었다는 실감이 든다.
언젠가, 카와……뭐시기한테서 온 고민 상담 메일에 회답할 때 유키노시타가 말한 「공부에 왕도는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래,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망각곡선으로 감퇴하는 기억량을 보충하는 수밖에 없다.
「히키가야 군, 놀랍네. 너와 처음 만났을 때 별로 좋지도 않은 스펙을 자랑스러워하더니 그 이상의 능력을 지니고 있을 줄이야.」
448: ◆GULJi96aoSzS 2013/09/11(水) 19:37:57.91 ID:lpCuwcbf0
유키노시타는 비행기 태우기에도 능숙했다.
지금 하고 있는 내용은 수Ⅱ 맨 처음에 배우는 기본 중의 기본이니 유키노시타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 좀처럼 남에게서 칭찬 듣는 일이 없는 외톨이는 이 정도로도 기뻤다.
지금까지의 나라면 그 말에도 뭔가 꿍꿍이가 있겠거니 의심했겠지만 같은 말도 유키노시타가 하면 믿고 싶어진다.
내 연심을 잘 이용해 의욕이 생기게 하는 유키노시타 유키노, 무섭기 짝이 없군.
아니, 내가 단순한 바보일 뿐인가.
아니 잠깐만. ……나, 칭찬이라고만 생각해 우쭐대고 있었는데 잘 생각해보면 바보 취급 당한거지.
유키노시타한테 무슨 말을 하든 쓸데없으니, 상관없나…….
449: ◆GULJi96aoSzS 2013/09/11(水) 19:39:18.18 ID:lpCuwcbf0
「15번 손님, 주문 나왔습니다……」
여대생으로 보이는 점원이 트레이를 가지고 왔다.
2명이서 커플석처럼 앉아있는 우리를 보고는 생긋 웃는다.
그 미소의 의미를 순간적으로 인식한 우리는 부끄러워 얼굴에 홍조를 띠고 말았다.
그, 그렇지. 이런 식으로 앉아 있으면 아무리 봐도 단순히 닭살 커플로 보이겠지…….
450: ◆GULJi96aoSzS 2013/09/11(水) 19:41:15.57 ID:lpCuwcbf0
「고, 고, 고마워요……」
하고 둘이서 동시에 더듬으며 대답하고 말았다.
그게 더 부끄러워 눈이 완전히 바닥을 향하고 말았다.
힐끗 곁눈질로 유키노시타를 보자 어깨를 떨며 완전히 사고가 정지되어 있었다.
그런 우리를 보면서 주문 내용을 복창하고 테이블에 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즐기다 가세요」
하고 말하곤 떠났다.
한 단계 높은 목소리 톤인 게 아주 신이 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키득하고 따뜻한 미소를 짓는 느낌이 들었다.
451: ◆GULJi96aoSzS 2013/09/11(水) 19:42:34.09 ID:lpCuwcbf0
이 민망한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햄버거에 손을 뻗었다.
유키노시타도 동시에 손을 뻗었다.
나는 며칠 전에 서점에서 참고서로 향하는 유키노시타의 손을 일부러 잡아 화나게 했다.
또 얻어맞지 않도록 잽싸게 손을 뺐다.
유키노시타도 나에게 잡히지 않을 생각이었는지 동시에 손을 뺐다.
더욱 더 부끄러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둘 다 이성에 면역이 없는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일을 반복할까.
하지만 익숙해지지 않고 언제까지나 이런 설렘을 느끼는 관계로 있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457: ◆GULJi96aoSzS 2013/09/12(木) 19:11:09.14 ID:NjSNtI9y0
× × × ×
「유키노시타, 이거 햄버거 값이야」
테이블 위를 미끄러지듯이 손가락으로 500엔 동전을 건넸다.
「아니, 괜찮아. 이전에 히키가야 군한테 얻어먹은 적이 있는걸」
유키노시타도 쓱 500엔 동전을 손가락으로 밀어 돌려줬다.
솔직히 말해 요 수 주 간 꽤 지출을 해 지갑이 얇아졌다.
모양새는 안 좋지만 고마운 마음으로 얻어먹기로 했다.
458: ◆GULJi96aoSzS 2013/09/12(木) 19:13:06.94 ID:NjSNtI9y0
「그런데 언제까지 거기 앉아 있을 거야?」
내 옆에서 햄버거를 작고 귀여운 입으로 베어 무는 유키노시타에게 말했다.
「다 먹고 나서 다시 공부할 거니까 이대로 앉아 있어도 괜찮잖아」
확실히 유키노시타 유키노가 말하는 대로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그렇다.
그렇지만 그런 논리로 대답할 게 아니잖아.
그게 유키노시타 유키노답지만.
「……음. 역시 조금 이상하네」
하고 의외로 순순히 내 맞은편으로 이동하고는 살짝 토라졌다.
그렇게 유키노시타가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치 챘는지 부끄러운 듯이 휙 비스듬하게 아래로 얼굴을 돌렸다.
평소라면 뭔가 한 마디쯤 매도해 올 타이밍인데 아무 말도 듣지 않고 넘어가니 다행이다.
나는 아쉬웠지만 가만히 시선을 뗐다.
459: ◆GULJi96aoSzS 2013/09/12(木) 19:14:39.38 ID:NjSNtI9y0
그럼 다 먹었으니 공부를 다시 시작할까.
「트레이 갖다 놓고 올게」
그렇게 고하고 트레이 놓는 곳에 갔다 온다.
어이어이…….
무심코 쓴웃음를 짓고 말았다.
유키노시타는 이미 내 옆자리로 이동해 다소곳이 앉아 내 귀환을 기다리고 있었따.
착실히도 아까 앉은 곳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곳에.
460: ◆GULJi96aoSzS 2013/09/12(木) 19:16:08.32 ID:NjSNtI9y0
「저기, 유키노시타……」
말을 걸자 움찔하고 반응하더니 당황한다.
마치 눈치 채지 못한 사이에 거리를 좁힌 맹수를 본 작은 동물과 같이.
「……거기 앉으면 내가 못 앉는데」
유키노시타는 내 쪽에서 볼 때 들어가는 쪽에 앉아 있다.
비키게 하고 안으로 들어가든지, 유키노시타를 안으로 들어가게 할 수밖에 없다.
아니, 이렇게 된 바에 반대쪽 의자에 앉아버릴까.
하지만 그러면 유키노시타가 일부러 이쪽에 온 의미가 없으니 말이지.
그렇게 머뭇거리고 있으니 유키노시타는 겨우 내 말을 이해한 듯 안쪽으로 의자 위를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461: ◆GULJi96aoSzS 2013/09/12(木) 19:18:14.12 ID:NjSNtI9y0
그럼 나도 앉을까.
앉자마자 갑자기 유키노시타는 돌아 이쪽으로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가볍게 부딪치고 말았다.
서로 엉덩이를 꼼지락대며 이동해 별다른 충격은 없다.
「미안……」
「후엣……」
내가 사과하는 것과 동시에 이상한 목소리를 내는 유키노시타.
부끄러운지 새빨갛게 되어 있다.
그리고 허둥지둥 대던 유키노시타가 몸을 비틀거렸다.
462: ◆GULJi96aoSzS 2013/09/12(木) 19:20:30.00 ID:NjSNtI9y0
딱…….
유키노시타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이마를 테이블에 부딪혔다.
여자애 머리에 상처가 나면 안 되지.
깔끔하게 손질한 유키노시타의 앞머리를 쓸어 올려 이마를 봤다.
조금 빨갛게 되었지만 상처는 안 난 것 같다.
휴, 일단 안심 했지만 유키노시타의 머리는 더욱 빨갛게 열이 났다.
「아, 아, 아, 아……」
하고 유키노시타는 무슨 말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괘, 괜찮아……, 유키노시타?」
그렇게 말을 걸자 갑자기 험악한 표정으로 변했다.
「히키가야 군, 그 이상 나한테 손대면 신고하겠어」
그렇게 말하는 유키노시타는 손에 휴대폰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꿀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