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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 ◆GULJi96aoSzS 2013/09/12(木) 19:22:45.50 ID:NjSNtI9y0
결국 나와 유키노시타는 뒤바뀐 형태로 앉아 차분히 시간을 들여 벡터 복습을 했다.
이제 내일 강의에서 조금은 머리에 들어오겠지.
모처럼 나를 위해 츠다누마(津田沼)까지 나와 줬으니 데이트라도 해볼까.
데이트란 단어를 말하면 화낼 테니까 입 밖에 내지 않도록 하자.
467: ◆GULJi96aoSzS 2013/09/13(金) 04:38:56.47 ID:1siUWyUE0
× × × ×
15시를 지났을 무렵 가게에서 나왔다.
유키노시타한테는 가보면 안다고만 말하고 잠시 동안 산책을 한다.
내 오른쪽이 자기 자리인양 달라붙어 있는 유키노시타.
이전과 같이 사람 눈은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일단 내 존재를 인정하는 듯하다.
J반에서 추궁은 안 당하나 궁금하지만 이건 묻지 않는 게 낫겠지.
다름없이 침묵한 채 걷는 것뿐이지만, 이걸로 만족이다.
유키노시타도 그런지 시종 생글생글이었다.
468: ◆GULJi96aoSzS 2013/09/13(金) 04:40:51.45 ID:1siUWyUE0
이윽고 나와 유키노시타가 닿은 곳은 볼링장이었다.
겨울방학에 들어선지 얼마 안 돼 맞는 삼일연휴의 첫 날이어서 그런지 꽤 붐볐다.
코마치와 같이 와 쓰려고 했던 1게임 무료 티켓을 써서 3게임하기로 했다.
볼링이 처음인 유키노시타에게 신발 빌리는 법이나 공 고르는 법 등을 가르쳤다.
유키노시타가 열심히 공을 찾는 동안에 이름을 입력했다.
살짝 장난칠 생각으로 몰래 「YUKINON」이라고 입력하자, 등 뒤에서 순간 냉기가 뿜어져 나올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히키가야 군, 그건 대체 누구 이름을 쓴 거야?」
469: ◆GULJi96aoSzS 2013/09/13(金) 04:42:02.61 ID:1siUWyUE0
하는 수 없이 입력한 이름을 수정한 후 스타트 버튼을 누른다.
나는 장난친 죄에 대한 벌로 하마터면 유키노시타에 의해 「HIKIKOMORI」이라고 등록될 뻔했다.
어이어이, 그만둬 주지 않으렴.
얼떨결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수록되어 버리면 어떻게 하냐?
전 세계가 쿨하고 팝한 일본문화라고 생각한 나머지 유행시킬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난 트렌드 최첨단을 달리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걸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지 않다.
안 그래도 흑역사밖에 없는 나니까.
어, 벌써 수록되었다고?
역시 유키피디아 씨네.
470: ◆GULJi96aoSzS 2013/09/13(金) 04:43:19.99 ID:1siUWyUE0
유키노시타에게 투구 폼을 가르쳐주고 먼저 던진다.
그럭저럭 스트라이크를 내서 일단 체면은 세웠다.
자리로 돌아오자, 유키노시타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아까부터 깜박깜박 다른 레인을 보던 유키노시타.
스트라이크나 스페어가 나올 때마다 하이파이브를 하는 모습을 보는 거겠지.
그런 유키노시타의 뜻을 따라 나는 손을 세게 쳤다.
손이 닿은 순간 얼굴을 붉히는 유키노시타가 귀여워 참을 수가 없다.
471: ◆GULJi96aoSzS 2013/09/13(金) 04:44:58.16 ID:1siUWyUE0
1게임을 끝내고 유키노시타와 같이 병 콜라를 마신다.
볼링장 올 때의 묘미다.
코마치하고 같이 플레이할 때는 둘 다 스코어 100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지만 120대를 내어 기분이 좀 좋다.
유키노시타는 생판 초보니까 이기는 게 당연하지만 완벽초인 유키노시타에게 이길 수 있는 게 하나는 있었구나.
유키노시타도 승부를 의식하지 않아 편하게 보냈다.
그런 유키노시타는 아까부터 뭔가 걸리는 게 있는 듯 같은 레인만 보고 있었다.
472: ◆GULJi96aoSzS 2013/09/13(金) 04:46:43.64 ID:1siUWyUE0
그곳에는 즐겁게 볼링을 하는 가족이 있었다.
내 시선을 알아챈 유키노시타는 이렇게 물었다.
「히키가야 군은 가족과 함께 볼링한 적 있어?」
「응, 소학교 때뿐이지만 몇 번인가 온 적 있어. 중학교에 들어와서는 부모님 일도 바빠져서 코마치하고 둘이서만 왔지만」
「그래……」
쓸쓸한 표정을 한 유키노시타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아니, 아니야. 내가 보고 싶은 유키노시타 유키노는 이런 게 아니야.
「유키노시타, 나한테 1게임 진 게 그렇게 분했어? 그런 거 해보지 않아도 내 승리인 게 당연하잖아.」
그렇게 말하자마자 유키노시타의 눈빛이 바뀌었다.
「히키가야 군, 무슨 말 하는 거야. 지고 나서 축 늘어질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한걸, 이누가야 군」
그래, 이거다.
유키노시타는 이래야지.
477: ◆GULJi96aoSzS 2013/09/13(金) 20:02:05.09 ID:1siUWyUE0
× × × ×
2게임이 시작됐다.
나로서 오늘 유키노시타와 승부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순수하게 둘이서 화기애애한 볼링을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 것이 약한 유키노시타를 보고 싶지 않아서 승부로 마음을 달래주려고 생각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유키노시타는 대결 모드 전개로 평소와 같이 돌아왔다.
스스로 건 싸움이지만 별로 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
478: ◆GULJi96aoSzS 2013/09/13(金) 20:03:53.66 ID:1siUWyUE0
그런 걸 변명으로 삼을 생각은 아니지만 나는 1경기 1투에서 느닷없이 스플릿이 되고 말았다.
이런 거 노릴 수 있을 리 없잖아.
2투에서는 게이트볼에서 말하는 제1게이트 통과가 되고 말았다.
그에 비해 유키노시타는 스트라이크.
뭐지, 이 완벽초인은?
흐흥하고 콧소리를 내는 게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짜증난다.
2경기, 3경기도 역시 1투에서 갈라버리는 나.
유키노시타는 어느 샌가 능숙해져서 *터키 같은 걸 내고 있다. (역주 : 3연속 스트라이크)
승부에 있어서는 남들 갑절이나 뜨거워지는 유키노시타지만 그 투구는 지극히 냉정하면서도 침착하다.
스코어를 착착 내면서 아까까지의 쓸쓸한 표정은 거짓말처럼 자취를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