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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4: ◆GULJi96aoSzS 2013/09/24(火) 20:32:28.44 ID:OC7borXCo
× × × ×
타운라이너를 내려 약속장소를 향해 걸었다.
20분 전에 약속장소에 이르자 데이트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로 넘치고 있었다.
오늘 첫 데이트인지, 고백하려고 생각 중인지, 장미 꽃다발을 든 채 잔뜩 기합이 들어간 대학생도 멀리 보였다.
혼잡 속을 보지만 아는 얼굴은 하나도 없다.
「유키노시타, 아무래도 우리가 제일 먼저인 것 같다.」
「응, 그러네. 히키가야 군.」
우리는 이전 부르던 대로 서로를 불렀다.
아까 답을 내지 못한 이상 크리스마스 파티가 끝날 때까지 둘의 관계를 공개하지 않고 평소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715: ◆GULJi96aoSzS 2013/09/24(火) 20:33:56.13 ID:OC7borXCo
부르르…….
코트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코마치가 보낸 메일일까?」
왜 그걸 네가 대답하는 거냐?
메일 온 건 나라고.
그리고 코마치라니, 혹시 질투?
외톨이한테 아는 여자 따위 없잖니.
아니, 그러니까 아는 남자도 없는데.
그리고 「누구한테 온 거야?」 하며 화면을 들여다보려는 시선이 엄청 무서운데.
716: ◆GULJi96aoSzS 2013/09/24(火) 20:36:53.62 ID:OC7borXCo
장갑을 벗고 터치패드를 조작한다.
유키노는 당연하다는 듯이 들여다본다.
「히키가야 군, 나와 연인이 되었으면서 히라츠카 선생님과 아직도 메일을 주고 받고 있었네…….」
무서워, 무섭…….
그리고 사귀기 시작한지 아직 1시간 정도밖에 안 지났잖아.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아직 사귄다고 보고 안했으니까 화 좀 그만 내라.
「메일 수신 히라츠카 시즈카 1건」
이 표시 하나에 질투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유키노를 보고 집에 가면 메일에 암호 걸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717: ◆GULJi96aoSzS 2013/09/24(火) 20:37:56.85 ID:OC7borXCo
「어머, 히키가야 군. 메일 안 읽어도 되는 거야.」
유키노의 목소리는 기분 탓인지 떨리고 있었다.
물론 분노의 의미로.
「아니ー……, 우리 갑작스레 학교에 갔다 귀가가 늦어졌잖아. 그러니까 왜 늦니 하는 메일 아닐까……」
장갑을 벗은 오른손을 힘없이 늘어뜨리고 변명해 본다.
「그럼 내가 대신 읽어줄 필요도 없겠네.」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눈은 얼어붙은 듯 차가운 미소를 보낸다.
그리고 뭐, 읽어준다니, 속으로 읽으면 안 될까?
사귀기 시작한지 1시간 만에 느닷없이 수라장이라니, 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718: ◆GULJi96aoSzS 2013/09/24(火) 20:39:22.37 ID:OC7borXCo
쭈뼛쭈뼛 메일을 열었다.
「히라츠카 시즈카 제목 『유키노시타와의 데이트는 어땠나요(웃음)』」
「아, 아, 아, 아……」
갑자기 얼굴을 붉힌 채 사고가 정지된 유키노의 눈이 허공을 맴돈다.
「어때, 소리 내서 읽어볼까?」
심술궂게 말하자,
「아, 아니야……」
하고 별안간 가냘픈 목소리로 답한다.
어떻게 나하고 유키노가 데이트하는걸 아는 거지.
혹시, 내 스토커?
역시 나는 히라츠카 선생님이 데려가는 운명인 거냐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메일이 열렸다.
719: ◆GULJi96aoSzS 2013/09/24(火) 20:40:19.82 ID:OC7borX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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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송인 : 히라츠카 시즈카
제목 「유키노시타와의 데이트는 어땠나요(웃음)」
본문 「히키가야 군, 아까는 갑자기 학교에 와서 놀랐습니다. 설마 나를 만나러 온 건가 하고 순간 생각해버렸습니다 (웃음) 그러고 보니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네요. 모처럼의 이브인데 파티가 있어 아쉬워요. 아까 부실에서 사랑 고백이라도 한 것 인가요 (웃음) 둘이서 처음 만난 곳이니 말이지요. 유키노시타는 그렇게 보여도 무척 섬세한 아이라서 히키가야 군이 부드럽게 리드해줘야 할 거에요. 그런 건 히키가야 군이 잘 알고 있겠지만요 (웃음) 그러고 오늘은 파티에 불러줘서 고마워요. 히키가야 군의 상냥함에는 무척 감사하고 있답니다. 결혼활동 파티를 취소하기까지 하고 가는 거라 오늘은 기합을 넣고 갑니다. 유키노시타는 질투심이 많을 것 같으니 저한테 홀리지 않도록 해요. 유키노시타 무서우니까 (웃음) 학교에서 나오는 게 조금 늦어져 아슬아슬하게 도착할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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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 ◆GULJi96aoSzS 2013/09/25(水) 21:35:30.18 ID:8abVCrzlo
뭐냐 이 메일은.
중요한 용건은 마지막에 부록처럼 적어놓은 게 아무리 봐도 현대국어 교사가 보낸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내 행동이 자세히 적혀있다.
설마 발신기나 도청기 달아놓은 건 아니겠지?
유키노는 메일을 보더니 처음에는 거듭 얼굴을 붉혔지만 읽어나가며 차츰 험악한 표정으로 변했다.
「히키가야 군, 너 히라츠카 선생님하고 도대체 무슨 관계야.」
「아무런 관계도 아니야. 네가 알고 있는 그대로라고.」
학생과 교사, 부원과 고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잖아.
「교사와 학생의 금단의 사이 같은 건 아니겠지.」
번뜩 째려보는 눈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뻗어 나온다.
나는 이대로 죽는 건가?
721: ◆GULJi96aoSzS 2013/09/24(火) 20:48:52.59 ID:OC7borXCo
「이 메일을 어떻게 읽으면 그렇게 되냐. 한 번 더 읽어봐!」
그리고 다시 얼굴을 붉히더니 눈매가 사나워졌다.
「……좋아. 이번은 없던 일로 해줄게……」
끝까지 자기 죄는 인정하지 않는군요.
「그 대신, 히라츠카 선생님한테 홀리거나 하면, 너 죽은 목숨이야.」
꿀꺽…….
웃기지 않은 농담이네.
기합은 넣은 히라츠카 선생님은 평소라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우니 말이지.
아무리 유키노시타 유키노라 해도 그건 당할 수 없다.
뭐, 이쪽은 미인이라고 하기 보다는 아직 미소녀니까 나이 먹으면 예뻐질 테지.
휴대폰을 다시 코트 안에 넣자 자연스레 둘의 거리가 벌어지고 다시 침묵의 시간이 시작됐다.
자연스레 유이가하마에 대한 게 머릿속에 떠올라, 조금 답답해졌다.